재벌 국회의원 정몽준 씨가 MBC 여기자 성희롱 논란에 빠져들었다.
뉴타운 개발 공약에 관해 인터뷰를 요청한 여기자의 두 볼을 손으로 만진 것이 발단이 됐는데,
여기서 쟁점이 되는 것은 과연 정 후보가 볼을 '톡' 만졌는가, '톡톡' 만졌는가 하는 것..

<정 후보측> '톡' 쳤다.

"(MBC 기자의) 인터뷰를 사양하며 다음에 하자는 뜻으로 어깨를 가볍게 미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밀려 (볼을 치는) 실수를 한 것"(정후보 측 홍윤오 공보특보의 말)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70768&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NEW_GB=


<MBC 측> '톡톡' 쳤다.

"김 기자는 '정 후보가 왼쪽 손으로 오른쪽 뺨을 쓰다듬듯 짧게 두번 톡톡쳤다'고 한다"(MBC 김 기자가 소속된 보도제작국의 한 부장의 말)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70635&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NEW_GB=


결국 해당 동영상을 봐야 경위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MBC는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동영상 공개는 물론 보도 자체에 대해서 신중히 하고 있다.  "총선이 임박해 있기 때문에 영상 공개가 자칫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영상공개는 물론이고 사건 보도도 신중해야 한다"(보도제작국 한 간부)

이 사건을 최연희 씨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과 비교했을 때 크게 차이나는 부분은 바로 '의도'가 있었는지 하는 부분이다. 홍 특보는  "표를 얻으러 나온 후보가 아내가 있는 자리에서 여기자의 볼을 의도적으로 만졌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반박하며 의도가 없었음을 강조하는데, 의도가 없었다면 여성의 얼굴에 무의식적으로 손이 가는 행위가 문제될 수 있다.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인터뷰를 걸어온 기자에게 정 후보가 한 행동은 정상적인 대응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될 수 있다. 왜 손을 볼 가까이에 대는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손을 한번 젓거나 가볍게 펼쳐보이는 행동만으로 충분히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톡' 쳤거나 '톡톡' 쳤거나를 가리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공인으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반응에서 다소 잘못이 있고 결례가 있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 본인이 충분히 선을 그어야 하는데 정 후보는 이 문제가 커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애써 침묵을 지키고 있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 막는 셈이 아닌지 모르겠다.

"어제 저녁 MBC 여기자 사건(성희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
"…." (정몽준 후보)
"오늘 아침 낸 해명자료가 공식입장 전부입니까?"(기자)
"(손짓으로 공보특보 부르며 고개만 끄덕) …."(정몽준 후보)(위 기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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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4-03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의 아니게...대유행할 것 같습니다.
본의 아니게 납치했다. 본의 아니게 주물렀다. 본의 아니게 살인했다. 본의 아니게 운하팠다. 본의 아니게 의료보험민영화했다. 본의아니게 뇌물받았다.....재미있는 나라 재미있는 정치꾼들이에요..^^

승주나무 2008-04-04 01:25   좋아요 0 | URL
참.. 본의의 수난시대인 것 같아요~~
저는 점점 정치가 재미없어지려구 합니다 ㅡㅡ;

L.SHIN 2008-04-03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3시간 전에 들은 이야기가 이것이로군요. 쯧쯧..

승주나무 2008-04-04 01:25   좋아요 0 | URL
신문에 난리가 났지요~
이게 결과에 어케 작용할지는 아무도 모르죠..
근데 정동영 후보가 너무 밀리네요..
이사만 안 갔어도 참 재미있는 구경 했을 텐데 ㅎㅎ
 
입시 공화국의 종말 - 인재와 시험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대한민국이 산다
김덕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교육부의 유아기적 사고방식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항상 '문제'라는 단어의 수식을 받는다. 교육은 항상 문제이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화법으로 문제를 지적했고, 그만큼 많은 해법이 쏟아졌다. 해법이라는 것은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고 할 때 제시가 가능하다. 문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죄다 '헛발질'일 뿐이다. 문제를 모를 때는 차라리 방치하는 게 낫다. 헛발질을 자꾸 하다 보면 실타래가 자꾸 엉켜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이 바로 무수히 엉킨 실타래와 같다. 최근 이 실타래에 한 줄이 더 엉키는 일이 발생했는데, 교육부가 천명한 이른바  ‘기초학력 미달 제로플랜’이다. 교육부는 진단평가를 정례화하고 뒤처지는 학생과 학교를 지원해 지역·학교·학생별 학력차를 줄이겠다고 했는데, 올해 10월 초6·중3·고1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초등 3학년을 대상으로 국가수준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실시한다. 매년 3월에는 초4~중3학년을 대상으로 교과학습 진단평가가 시행되니 초6·중3학년은 1년에 두 번 시험을 치르는 꼴이 된다. 교육부의 관점에서 보면 '학력'은 '성적'과 동의어다. 일제고사를 실시해서 성적이 처지는 녀석들이나 그런 학교는 '학교 끝나고 남으라'는 식인데, 이보다는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를 한줄로 세워서 관리하기 편하게 만들려는 속셈이 아닌지 의심이 된다.

대개 어떤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은 두 가지 경우로 반응한다. '문제'를 중시하는 경우와 '해법'을 중시하는 경우이다. '해법'을 중시하는 경우는 한 가지 문제만을 연상하는 1:1관계가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한 가지 문제에 대해서만 해법을 제시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초중고등학교의 객관식 풀이 능력을 잘 모르니까 이번 기회에 통제하기 쉽게 1등부터 100등까지 '해쳐모여'를 시키려는 교육부의 처사가 그것이다. 반면 '문제'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의 다발'이라는 것을 안다. 때문에 이들은 교육부의 '기초학력 미달 제로플랜'과 '일제고사'는 오히려 정부보다 보습학원이 절실히 원했던 자료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즉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다. <입시공화국의 종말>(인물과사상사)의 저자인 김덕영 씨는 객관식을 유아기 시절에 뗐어야 할 사고방식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유아가 먹어도 되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배우듯이, 정답과 오답이라는 흑백논리를 강요해 사고를 단순화시킨다는 것이다. (272쪽) 나이가 들면 서서히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면서 주관적인 세계관을 정립하는 단계, 즉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교육부 역시 유아기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력'이라는 것은 단지 '객관식'을 틀렸다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 테니 말이다.

 

 

'다른 눈으로(with other eye's)' 바라본다는 것

 

교육부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에서 교육문제와 관계 있는 사람들 역시 '해법'과 '문제'라는 두 가지 특징을 보인다. 정치인이나 정부는 당연히 '해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교육 전문가나 학자들은 '문제'적 관점에서 교육을 바라본다.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교육 관련 서적들은 <대한민국에 교육은 없다>(철수와영희, 2008.3월)와 <서울대학교 학생선발 지침>(포럼, 2008.2월), 그리고 <입시공화국의 종말>(인물과사상사, 2007.6월)이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책들은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이들의 관점으로 보면 아직은 대한민국에서 '교육 해법'은 너무나 먼 이야기인 듯하다.

<입시공화국의 종말>은 '다른 눈으로(with other eye's)' 교육의 문제점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다른 책들과 차별성이 있다. <순이삼촌>의 작가 현기영 씨는 어느 해인가 4ㆍ3 강연에서 "제주도 안에서는 제주를 쓸 수 없다. 그래서 도망쳤다"고 말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나는 그것이 '다른 눈으로(with other eye's)'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눈으로(with other eye's)'란 독일의 철학적 인간학(philosophical anthropology)과 사회학의 대가인 헬무트 플레스너가 사용한 개념이라고 하는데, 그는 바로 '다른 눈으로(with other eye's)' 독일을 보니까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잘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단지 밖에 가 있다고 해서 '다른 눈(other eye)'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치열하게 성찰하고 지치도록 고민하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끝내 '끊어진 고리'를 찾았을 때 쓰는 말로 해석된다. 단지 밖에서 배운 것에 불과하다면 미국의 경제학(주로 한물 간 시카고 학파)을 배우고 와서 신자유주의 이론만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수많은 학자들의 눈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실제로 저자약력을 살펴보면 김덕영은 독일에서 사회학·철학·역사·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공부하였는데 독일의 학풍과 교육 시스템에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독일의 위대한 학자들의 저서를 원서로 읽으며 자신만만했던 김덕영은 그러나 입학하는 순간부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공부했던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저자약력)

 

본문에서는 독일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일화가 소개되는데, 단지 세 줄에 지나지 않는 칸트의 사상에 대해서 한 학기 동안 리포트를 준비해서 교수와 직접 토론을 하라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독일은 담당 교수가 학생과 과제를 가지고 직접 토론을 하며 면밀히 검토한 끝에 세심히 코멘트를 달아주고 원고를 돌려주는 방식이다) 글쓴이에게 잊지 못할 가르침이 되었던 담당교수의 코멘트 전문을 싣는다.

 

"칸트 윤리학의 기본적인 의도와 논리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난 후에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면 된다. 대학의 기초적인 지적 훈련 과정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221쪽)

 

이런 이유로 독일의 대학에서는 학문의 엄밀성과 명증성을 유지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대학의 모습은 부끄럽기 그지없다. 교수는 공천장을 받아들고 끝내 강의를 제끼고 말았으며, 대학생들은 시시콜콜한 연예담을 예사로 늘어놓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칸트며 플라톤, 게오르그 짐멜을 거론하던 고등학생의 기억은 온데간데 없다.

역시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더욱 명쾌하게 보이나 보다. 서문부터 던지는 질문이 거침없다. "한국이 세계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높은 교육열 때문이라고 하는 주장을 십분 받아들인다면, 한국의 교육은 앞으로도 경제성장과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왜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마을은 출산율 저하로 또는 이농으로 걱정하면서,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진 놀이터는 걱정하지 않는가?", "왜 한국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당연시하는 대학의 서열화를 외국인들은, 그것도 이른바 선진국의 국민들이 모르고 있을까?" 서두에서 던진 질문들은 본문에서 세세히 다뤄진다. 그러나 이 질문들이 귀결되는 지점은 한 가지이다. 바로 '인간 존중 교육'이다.

 

'인간 존중 교육'을 위하여

 

글쓴이가 '인간 존중 교육'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교육의 밑바탕을 이루어야 하며, 서로 부딪힐 때는 당연히 인간 존중을 교육의 위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은 책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간 존중 교육'이라는 말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교육은 '반 인간 교육이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글쓴이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축구 선진국에선 정장기에 있는 유소년 선수들의 경우 훈련 시간이 많아야 하루 2~3시간인데 반해, 한국에선-2002년 일산백병원이 축구 선수 13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최대 7시간, 평균 4.57시간이나 된다. 한국의 축구는 한마디로 성적 지상주의를 추구하는 학원 축구인 셈이다."
(동아일보 2004.6.15일자 "'축구 꿈나무'의 눈물", 34쪽에서 재인용)

 

어디 학원축구뿐이랴. 개성적이며 아름다운 몸을 가꾸는 복장은 청소년들의 성장하는 정신과 함께 몸의 논리를 구현할진대 군대나 감옥, 수도원, 공장에서나 어울릴 법한 '유니폼'은 다름아닌 감시의 의미일 뿐이다. (30쪽) 지난 2002년에 "나도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며 자살한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은 "어른인 아빠는 (이틀 동안) 20시간 일하고 28시간 쉬는데, 어린이인 나는 27시간 30분 공부하고 20시간 30분을 쉰다.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 시간이 적은지 이해할 수 없다."며 절규했다. 학원은 학생의 일상생활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데 기숙학원이나 자물쇠반에서 이루어지는 행태들은 산업혁명 당시 중노동을 견디다 버려지는 유럽의 애띤 소년 노동자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만약 교육의 현장에서 '인간의 얼굴'이 조금씩 회복된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즉 한국 사회는 이제 '국가(사회)의 개인들'에서 '개인들의 국가(사회)'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때 사회적 역량이 생기는 것이지, 지금처럼 한줄로 늘어놓고 훈시를 하듯 일방적으로 정책을 주입시키는 것은 '글로벌한 자살한위'나 다름없다.

 

대체로 신선한 관점이며 타당한 주장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다른 눈으로(with other eye's)' 바라본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현지의 입장'에 대해서 너무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로스쿨의 전면적인 지방대 배분이라든가 논술시험을 담당교사가 출제하는 방법, 객관식의 폐지, 모든 시험을 토론과 논술로 치르자는 결론적 주장은 장기적 과제는 될 수 있지만, 당장 밟을 수 있는 땅은 아니다. 예컨대 담당교사의 시험 출제라든지 모든 시험을 토론이나 논술로 출제하자는 주장은 출제 이전에 담당교사의 역량이나 교사 교육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대목에서 학자와 정치인의 커다란 차이를 발견하게 되는데, 나는 무척이나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이 지점에서부터 끊어진 고리는 분명히 적임자가 생겨날 것이라고 믿는다. 당연히 정치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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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4010254455&code=970100

IT산업 ‘굴뚝만 없을 뿐’ 항공업보다 환경 더 파괴
입력: 2008년 04월 01일 02:54:45
 
ㆍ구글 1건 검색 소비전력이면 전구 45분 켜

‘비행기보다 위험한 컴퓨터?’

대표적 친(親)환경 산업으로 여겨져온 정보기술(IT) 산업이 실제로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항공 운수 산업보다 더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최신호에서 IT 산업의 에너지 소비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지구 전체 발생량의 2%로 항공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와 같은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문제는 항공산업이 바이오 연료 사용 등 온실가스 절감에 노력하는 반면, 급성장 중인 IT 산업은 직접적인 오염물질 배출이 없다는 이유로 환경 문제에 둔감하다는 데 있다.

IT 산업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막대한 전력 소비량 때문이다. IT 산업은 대용량 서버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엄청난 전력을 쓰고 있다. 인터넷 접속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서버는 24시간 쉼 없이 작동해야 하고 중요한 정보 손실을 우려해 항상 ‘열 받지 않도록’ 냉각팬을 돌려야 한다.

독일 뮌헨 지역 대학의 전산망 연결을 위해 지어진 라이프니츠 컴퓨터 센터는 2011년 도입을 목표로 슈퍼 컴퓨터를 주문했다. 이 슈퍼 컴퓨터를 유지하려면 ‘짐을 가득 실은 채 멈춰있던 400t짜리 고속열차가 시속 300㎞를 낼 때’와 같은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지금도 한 달 12만유로(약 1억8700만원)에 이르는 이 센터의 전기요금은 슈퍼 컴퓨터가 도입되면 더욱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촌에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전산망 운영 업체들은 수만대의 서버를 운영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IDC에 따르면 2000~2005년 사이 네트워크 서버의 전력 소비량은 2배로 늘어났다. 비평가들은 이를 ‘열풍기’에 비유하며 에너지 절약형 컴퓨터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에서 1건을 검색할 때 소비되는 전력이면 에너지 절약형 전구를 45분 동안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IT 기업들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주된 목적은 ‘환경 보전’보다 ‘비용 절감’이다. 구글은 최근 인터넷데이터센터를 미국 오리건주 댈즈 댐 인근에 새로 지었다. 캘리포니아주에 지불하는 돈의 5분의 1 가격에 수력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IBM은 160여개의 전산센터를 7곳으로 통·폐합했다.

슈피겔은 ‘굴뚝 없는’ IT 산업이 오히려 지구 온난화를 부추긴다는 점은 산업화 초기의 철강 산업을 연상시킨다고 전했다. 철강 산업과 IT 산업 모두 초창기 폭발적인 성장과 그 과실만 주목받았을 뿐, 이들 산업이 유발하는 오염과 자원 소비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 정환보기자 〉


이제 더 이상 무공해 IT산업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겠군요.
다음과 네이버가 속도 전쟁을 하지만, 그만큼 소비전력이 많이 나간다면
그것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것일 테고,
환경을 파괴하는 것일 테니까요.
이런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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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8-04-0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이렇게 너의 글 검색해 보는 것도 전력 소비로 인한 환경 파괸가?
인터넷 로그인 해놓고 보지도 않으면서 딴짓하는 것도 전력낭비겠네.ㅜ.ㅜ

승주나무 2008-04-02 11:3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스텔라 누나는 제 서재 즐찾 해놓았으면서 ㅎㅎ

전자인간 2008-04-02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하는 내용입니다만, 구글 검색 한 번에 전구 45분 분량의 전기가 소모된다는 기사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검색하는 행위 자체가 45분 분량의 전기를 추가로 소모하도록 하는 것이냐, 아니면 단순히 검색 엔진 서버의 총 소모 전력을 검색 횟수로 나눈 것이냐가 명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전자보다는 후자로 추측되고요, 만약 그렇다면, 이미 구축되어 있는 검색 엔진에서 검색하는 행위에는 그리 큰 환경적 죄책감 또는 부담감을 느낄 필요가 없을 것이겠지요.
(이용하는 사람이 많으니 대용량 검색 서버를 사용하게 된다. 따라서 검색 이용을 줄여야한다... 라는 논의도 가능하겠지만요.)

승주나무 2008-04-02 11:37   좋아요 0 | URL
전자인간 님 반갑습니다.
님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전자와 후자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구축된 데이터도 역시 입력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 만큼의 전략량을 소모했을 것이며, 검색이라는 것 자체가 전체의 데이터베이스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총량'이 의미 있는 척도라고 생각합니다. 신문에서는 총량을 건별로 나눠서 독자들이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소 연출했다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만, 그 자체로 독자들이 자극을 받았다는 데 대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글쓰기 관련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저자는 환경오염인가 교통사고인가 지수가 줄어들 때보다 늘어날 때 크게 또는 과장되게 쓰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신문기사의 내용은 사실이라기보다는 사실의 부분이기 때문에 독자가 사실의 나머지 부분을 채우고 기사는 발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L.SHIN 2008-04-02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즐겨찾기를 생활화합시다~ 인게죠.(웃음)
저는 자주 가는 곳을 매번 검색하는게 귀찮아서 즐겨찾기 해놓는데.
그렇지 않는 사람들돌 있더군요.=_= 어쨌든, 좋은 정보입니다.

승주나무 2008-04-02 18:49   좋아요 0 | URL
Lud-S 님..헤헤~ 님도 혹시 즐찾족?
저는 검색은 너무 어려워서 가던 길만 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즐찾 목록이 많아지긴 했지만 ㅋㅋ
 

을 한나라당에게 빼앗겨 버렸다.

멜기세덱과 분위기가 딱 어울리는 사나이다운 노래였는데..

적절히 유치하면서도 왠지 끌리는 힘..

지하철역..사무실 앞.. 너무 시끄럽다~

멜기~~~~

나도 순정 있는 사나이인가보다 ㅋㅋ

무조건 무조건이야~
짜짜라 짜라짜라 짜짜짠~

내가 필요할 땐 나를 불러줘 언제든지 달려갈게
낮에도 좋아 밤에도 좋아 언제든지 달려갈게

아는 사람들이 나를 부르면 한참을 생각해 보겠지만
당신이 나를 불러준다면 무조건 달려갈거야
짜짜라 짜라짜라 짜짜짠~

당신을 향한 나의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당신은 향한 나의사랑은 특급사랑이야~~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거야 무~조건 달려갈거야~
짜짜라 짜라짜라 짜짜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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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지다 - 강요배가 그린 제주 4.3
강요배 지음, 김종민 증언 정리 / 보리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죽은 어미 위에서 젖 빨던 그 아이 잊을 수 없어"
[서평] 강요배가 그린 제주 4·3 <동백꽃 지다>




<제주4.3 60주년을 기념해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가 보리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당사자 34명의 증언을 제주 4.3 전문가 김종민 씨가 정리해서 그림과 함께 생생하게 당시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200-2"의 역사적인 의미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열렸다. 이때 총 의석수는 200석이었으나 2표의 무효로 인해 제헌의회는 198명의 국회의원으로 출범했다. 이 "-2"라는 숫자는 현대사에서 그리 조명을 받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 정체성에 상처가 된다는 점이었고,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정치인생의 오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부 당시에는 이 두 가지가 사실상 동의어였다. 이승만은 현대사에서 '굴종'이라는 선례를 남기며 권력을 누렸다. 자주독립을 위해 가산과 전 인생을 반납한 독립운동가와 그 자제들, 일제에 협조하여 가산을 지키고 권세를 누렸던 친일파와 그 자제들의 운명은 이승만이 미 군정에 굴종하며 친일 세력을 대거 재임용함에 따라 갈리고 말았다. 이와 같이 현대사는 '굴종'이라는 유혹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재벌의 편법, 탈법이 일반화되고 정치인과 공직자의 일상적인 부패상은 이 '굴종의 현대사'를 더욱 빛내고 있는 셈이다.

제주 북제주 갑ㆍ을 2개 선거구의 무효는 이러한 '굴종'에 이의를 단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었다.(이듬해 5월 10일 이 두 개의 상처(?)는 신속하게 다른 '굴종'들로 채워졌다) 이 "-2"라는 역사적 메시지를 던진 죄로 당시 제주 인구 30만 명의 1/10인 약 3만명이 죽었다. (제주 4ㆍ3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2003년 통과)) 선거철마다 주요 정당이 제주에서 경선을 시작하는 것은 비단 제주가 국토 하단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선거의 향배를 예측하는 캐스팅보드 역할을 오랫동안 자처한 제주의 민심은 그 기원이 대단히 오래 되었다. 예컨대 17대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의 전국 투표율은 48.7% 대 26.1%였다. 이 차이는 22.6%로 두 후보 사이에 한 명의 유력한 대선 후보가 들어갈 틈이 있을 정도였다. 제주의 투표율은 어땠을까? 이명박 후보 38.3% 대 정동영 후보 32.4%로 불과 6% 미만의 차이였다. 그나마 정치색이 덜하다는 서울도 53.1% 대 24.4%로 더블스코어 이상의 결과가 나왔던 때다. 제주도의 이 묘한 정치적 균형감각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제주 4.3을 말해주는 '세 가지 마음'

 

제주 4.3을 감성적으로 표현한다면, 이를 관통하는 세 개의 마음이 존재한다. 첫째, 5·10 남한 단독선거가 제주도의 거부로 절름발이가 되자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몹시 격분한 것으로 전해진다. 1949년 1월 12일 열린 국무회의 의결사항은 '제주도 특별소탕경찰대 1,000명 파견에 관한 건'이었는데, 이 문건에서 대통령의 유시 내용은 "미국 측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하나 제주도, 전남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拔根塞源)하여야 그들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며 지방 토색(討索) 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여 법의 존엄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였다. 그보다 한달 전인 1948년 12월에 서북청년단 총회에 직접 참석해 연설을 하고 서북청년단원들을 제주도로 파견하였고, 그 단원들이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볼 때 제주도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감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제주 4.3 전 영역에 걸쳐 가장 처참한 집단 학살과 초토화 작전이 자행된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3개월만인 1948년 11월 17일 이승만이 대통령령 31호로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한 즈음이다. 제주도에 내려온 서북청년단원이 "이승만 대통령의 허락 없이 어느 누가 재판도 없이 민간인들을 마구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겠습니까?"라고 증언하는 바와 같이 제주 4.3의 일차적 책임은 이승만에게 있다.

둘째는 서북청년단의 '증오심'이다. 일명 '서청'으로 불리는 서북청년단은 북한에서의 사회개혁 당시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상실하여 남하한 세력들이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반공단체였다. 따라서 이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되는자에게는 무조건적인 공격을 가하였다. 자신들의 터전을 없애버린 세력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품은 서청과 남로당의 적극적인 활동지인 제주도의 만남은 처참한 홀로코스트를 낳았다.

셋째는 제주도민의 공분이다. 제주도는 이승만의 반공국시 때문에 피해를 많이 본 지역으로 속하는데, 혹자는 제주 4.3이 '빨갱이들의 선동과 주민들의 동조'로 보고 <4.3특별위원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제주도민이 미군정과 당국의 행태에 공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주도민의 특이한 이력을 살펴야 한다.  

제주도가 척박하고 고립된 땅이라고해서 그 정신마저도 고립된 것은 아니다. 제주는 예부터 최후의 유배지로 꼽혔는데, 유배 온 양반들은 제주의 젊은이들에게 학문을 전수하는 일을 낙으로 삼았다. 때문에 유난히 제주도에는 유풍과 학식이 생활상에 고루 반영돼 있다. 일례로 국어학자 이기문은 일조각에서 발행한 <속담사전>에서 해방 이후의 중요한 업적으로 <제주도 속담 1,2>(진성기 편저)를 소개하며 사전편찬에 도움받은 바가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나 역시 어머니로부터 수십 년 동안 '해태(懈怠)하지 말라'는 훈계를 들었는데, 이는 '해이하거나 태만하지 말라'는 일반에서는 보기 드문 한자어이다.

해방 이후 미군정이 늦게 상륙한 이유도 있지만, 제주도민들은 그야말로 해방감을 가장 깊이 맛본 사람들이었다. 이때 남한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친일파에 대한 청산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치안과 정책을 수행하였다.

제주 4.3의 남상이 될 만한 사건은 1947년 3월 1일 제주 지역 곳곳에서 개벽 이래 최대 인파인 3만명 정도가 참여한 '3.1절 기념 제주도 대회'였다. 3만명이 운집한 것도 대단하지만 주민 6명이 죽고 8명이 크게 다친 '3.1절 발포 사건' 직후 이에 항의해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인 166개 기관ㆍ단체가 파업에 가세한 '민관 총파업'이 제주도민의 인식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사가 서중식 교수는 <동백꽃 지다>(보리)의 부록 논문에서 "제주도는 밭이 99%인데다 땅이 척박하여 소출이 적은 관계로 육지에 비해 계급 갈등의 소지가 미약했고 혈연 공동체적 요소와 사회경제적 성격으로 인해 도민들이 쉽게 단결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고 기록했다. 이 책의 자료2 <제주 4.3항쟁 일지>에 의하면 3.1절 발포 사건 이후 단행된 민관 총파업을 두고 경무부(지금의 경찰청) 최경진 차장이 "원래 제주도는 주민의 90%가 좌익 색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는데(161쪽) 이는 단선적인 사고가 아닐 수 없다. 단지 제주인들은 부패하고 굴종스러운 기득권의 부조리한 정책에 이의를 제기할 정도로 의식이 있었을 따름이었다. 이러한 마음들의 충돌은 제주 4.3이라는 필연적인 비극을 만들어낸 동력으로 작용했다.

 




강요배의 그림책 <동백꽃 지다>가 나왔다
 

올해로 제주 4.3 60주년을 맞는다. 그에 걸맞게 다채로운 행사가 제주에서 펼쳐진다. 출판에 업을 두는 사람으로서 나는 강요배 화백의 그림책 <동백꽃 지다>(보리)가 나왔다는 데 대해서 기쁨을 감출 수 없다. 책을 보자마자 밤새 삽화와 증언을 살폈다. 대학시절 익숙하게 보았던 그림들이 한 책으로 묶인 점이 좋고, '제주 4.3전문가 김종민' 씨가 발품을 팔아서 '당사자'들의 증언을 채록했다는 점도 좋다. 이 책은 1998년 학고재에서 낸 <동백꽃 지다>를 다시 낸 것인데, <동백꽃 지다>는 강요백 화백이 1989년부터 3년 동안 '제주 4.3항쟁'을 다룬 그림 50점을 1992년 발표한 전시회의 제목이다.



<머리에 총을 맞고 죽은 어미 위에 엎드려 젖을 빨고 있는 아이가 4.3의 처참함과 제주인의 처절한 생명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기영의 자전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실천문학사)에서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고"라는 말로 제주인의 이 같은 정신을 압축해서 표현했다>


 <난리통에는 어린아이와 부녀자 등 노약자가 최대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먹을 것이 없으니 젖이 빈 것은 당연하다. 빈 젖을 빨지도 못하고 아파하는 아이의 모습과 고개를 숙인 어미의 모습이 처절하게 다가온다>

강요배 화백은 '기행'으로 더 유명한데, 재미있는 예화가 하나 있다. 바람과 풍랑이 잦은 제주도에서도 격렬한 비바람이 휘몰아치던 밤에 강요배는 붓과 캔버스만 들고 열 번도 넘게 바다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것은 파도와 비바람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위해서다. 현재 '민족 미술인 협회' 회장과 '제주 4.3 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소재는 종이, 펜, 먹, 캔버스를 가리지 않았으며 증언의 내용이나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선택했다. 역시 제주 민중의 일상사와 당시의 처지를 당사자들의 관점에서 생생하게 그렸다. 그래서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119쪽의 '젖먹이'와 133쪽의 '빈젖'은 당시의 처참한 일상을 고스란히 설명해 준다. '젖먹이'에 대한 증언은 김석보 씨(조천읍 북촌리)의 1998년 증언에 담겨 있다.

"사람들이 동요해 흩어지기 시작하자, 군인들이 사람들 머리 위로 총을 난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너댓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중엔 한 부인도 있었는데, 업혀 있던 아기가 그 죽은 어머니 위에 엎어져 젖을 빨더군요. 그날 그곳에 있었던 북촌리 사람들은 그 장면을 잊지 못할 겁니다." (118쪽)
 

제주어에 '속솜하다'는 말이 있다. 이는 '침묵하거나 아주 작게 말하다'는 뜻이다. 나는 제주 4.3이 발발한지 30년, 한 세대 정도 지난 1978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4.3이라는 것을 알고 최초로 어머니에게 물었던 게 스무 살이 되었을 때니까 일이 벌어진 지 50년이 지난 때다. 어른들은 그 당시의 일을 입에 담는 것을 철저히 금기시했고 그것을 내면화했다. 4.3의 기억은 제주 사람들의 일상습관을 바꿔버렸다. 어머니와 이모가 우연히 대화를 하는 것을 들었다. 별로 비밀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속솜하게 말했다. 이 장면이 두고두고 이상했다.

 비단 어머니와 이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제주 4.3에 속솜했다. 과거사의 진실을 밝히자고 열변을 토했던 참여정부도 역시 제주 4.3의 거대한 뿌리는 만지지 못했다. <나의 서양 미술사 순례>를 써서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가르쳐준 '재일 조선인 2세'이자 도쿄 케이자이 대학교 현대법학부 교수인 서경식 씨는 '추천하는 말'에서 "'4.3'은 알지 못해도 되는 사건이 아니며 알 필요가 없는 사건도 아니다. 4.3은 '알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무섭고 부끄러운 그런 사건인 것인다. 우리들은 자신이 무엇을 알지 못하는가를 알아야만 한다. 평화와 사람다움을 위하여"(9쪽)라고 말했다. 1987년 대한민국에 절차적 민주화, 형식적 민주화가 실현된 것에 머무른 것처럼 제주 4.3 역시 단지 '특별법'이 통과되었을 뿐 그것의 역사적 의미나 이 사건이 주는 메시지를 알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4.3 특별위원회 폐지'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것이다. 단지 제주인만의 문제, 피해의식적인 문제, 감성적인 문제, 빨갱이 문제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좀더 성숙한 관심으로 세심하게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환갑이 다 되었으니 '철'이 들 만도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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