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중석 선생은 내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현대사가이다. 나의 현대사에 관한 지식이 있다면 순전히 서중석 선생한테 배운 것이다. 특히 그의 애정어린 학자적 이성은 롤 모델로 삼고 싶을 정도다. 이번에 <대한민국 선거이야기>를 냈는데, 저자후기에 앞으로 있을 선거와 정치문화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있어서 '함부로' 전문을 인용한다. 책 258~264쪽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선거로 본 한국현대사’를 강의할 때는 이러한 강의가 곧 있을 대통령 선거에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기대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다 후보가 상당히 큰 표차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한나라당 후보가 승리할 거이라고 확신한 것은 언론에서 줄기차게 주장했던 것처럼 노무현 정부의 진보정 정책의 실패나 잘못에 기인한다고, 다시 말해서 노무현 정권의 실정에 기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다른 정권하고 달라서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가는 시간을 두고 해야 하겠스니다만, 노무현 정권은 잘못한 점도 적지 않으나, 잘한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는 잘한 점만 얘기하지요. 돈을 안 쓰는 선거, 투명한 선거를 노무현 정권에 와서 처음으로 치렀다는 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러한 투명성은 경제, 사회, 여러 부문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부 수립 이래 존재했던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위압적 지배가 약화되고 허물어진 것은 퍽 좋은 일입니다. 대통령을 정상적인 상태로 돌려놓은 것이지요. 검찰의 독립성을 처음부터 보장하려고 한 일도 잘한 일입니다. 검찰 문제는 계속 말썽이 있었고, 노무현 정권 말기까지 경제권력, 정치권력에 추수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사법부도 과거의 모습에서 탈피했습니다. 과거사 청산을 위한 노력은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사법 개혁 등의 개혁도 나름대로 추진했지요.
노무현 정권의 자주외교정책은 지금까지 부각이 안 되었습니다. 한국현대사에서 처음으로 6자회담 등과 관련해 있었던 대미 자주외교는 평가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미 의회에서 유례가 드물게 이명박 대통령 당선 축하 결의를 한 것도 자주외교에 대한 경계와 관련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경제정책은 차기 정권의 경제정책과 비교해서 평가를 받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한나라당 후보의 승리를 확신한 것은, 최근 수년간 여러 여론조사를 볼 때 경제발전을 절대시하는 주장이 민주주의나 인권 문제, 사회정의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한나라등의 이명박 후보는 CEO경력자로서, 또 서울특별시장으로서 업적을 눈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에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습니다.
경제 발전을 절대시하는 태도는 박정희 정권 때 풍미했던 근대지상주의․ 성장제일주의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인권이나 민주주의, 사회정의에 대한 폄하 또는 무시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성장주의자들은 유신체제나 전두환․ 신군부체제가 어땠느냐, 배부르게 하면 되는 것이고, 노골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권위주의 통치는 한국인의 ‘적성’에 들어맞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러한 성장제일주의가 박정희 신드롬의 풍요로운 토양이었습니다.
성장제일주의, 권위주의 통치는 극우반공주의, 수구냉전논리에 익숙한 60대 이상의 세대한테 낯선 것이 아닙니다. 이들의 다수한테 김대중이나 노무현을 미워하고 햇볕정책을 비난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번 선거에서 현재와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가고 있는 50대 이하한테, 특히 편히 자랐고 앞으로 편히 생활하려는 20대한테 이러한 주장이 먹혀들었고 설득력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가치관이 배제된 천민자본주의와 연결되어 있는 성장제일주의는 지역주의의 벽도 허물어 호남 사람들로부터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부분적으로 지역주의의 벽이 허물어진 것은 노무현 정권의 특성에 기인하기도 합니다. 노무현 정권은 호남 사람들의 절대적인 지지로 탄생되었다고 볼 수도 있는데, 부산․ 경남에서 노무현 정권에 핵심으로 참여한 반면, 호남 사람들은 점차 노무현 정권과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노무현 정권을 지지해줄 확고한 대중적 기반이 없어져버렸어요. 한편 민주주의나 인권 같은 것은 이만하면 됐다는 사고도, 남북관계나 핵 문제가 답보상태에 있는 것도, 겨엦 발전을 절대시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성장제일주의는 기대의식 상승과도 결부되어 있습니다. 1950년대부터 급속히 도시가 팽창하면서 도시민의 기대는 커가는데, 정부의 시책은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도시민의 기대의식 상승은 1956년 선거부터 역대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거나 괴롭힌 장본인 중의 하나로, 장기간에 걸쳐 여촌야도 현상을 초래했습니다. IMF사태 이후 경제의 불안정성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구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이 드러났지만, 그렇다고 기대의식 상승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IMF 사태라는 눈앞의 현안을 처리해야 했던 김대중 정권 시기와도 달리, 기대의식 상승과 연관된 노무현 정권에 대한 불만은 계속 커졌습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장기집권에 대한 염증이 대단히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승만 정권이 1956년 선거에서, 박정희 정권이 1971년 선거에서, 유신정권이 1978년 선거에서 패배나 다름없는 타격을 받은 주요 요인의 하나가 장기집권에 대한 염증이었습니다. 김대중 정권 5년에 노무현 정권 5년은 불만세력한테 너무 길었습니다. 김영삼 정권 5년까지 합치면 15년이나 되지요. 특히 성장주의자들한테 노 정권은 질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워 죽겠는데, 해먹어도 너무 오래 해먹는다는 생각이 몇 년 전부터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번 선거에서 노무현 정권의 실정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노 정권의 실정이 적지 않았고, 최근 2~3년 동안 청와대에서 직언을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는 말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노 정권이 무엇을 잘못했냐고 물으면 답변을 잘 못합니다. 경제정책이 잘못이라면 다른 정권은 더 잘할 것 같으냐는 물음에도 답변이 시원치 않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실정은 이미지와 연관이 깊습니다. 노무현의 언행이나 행동거지, 승부사 기질, 설익어 보이는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불만이 대부분입니다. 대개는 노무현의 언행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 실정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특히 성장제일주의 사고나 장기집권에 대한 염증이 노무현의 언행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습니다.
‘노무현의 실정’은 조선․ 중앙․ 동아 같은 언론 매체에 의해 크게 포장되고 확대되었습니다. 한미FTA 협정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아니고 5년간을 시종여일하게 공격했고, 노무현은 노무현답게 이들 언론에 즉자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신문은 1950년대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위력이 컸습니다. 여촌야도 현상이나 기대의식 상승에도 신문의 역할이 컸습니다. 다만 2002년 선거에서는 인터넷의 위력이 조․ 중․ 동의 위력을 눌렀습니다. 그러나 장기전에서는 김대중․ 노무현을 공격해온 종이 매체의 위력이 세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때그때의 사안에 대해서는 즉흥적인 대응력이 있지만, 수공업적이고 일관성이 약한 진보적 매체에 비해 이들 매체는 오랜 기간 축적된 확고한 틀과 현실적 힘을 가지고 파고들었습니다. 한나라당을 포함해 한국의 보수세력 또는 수구냉전세력은 여론 정치에서 종이 신문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2007년 대통령 선거는 역대 선거 가운데 1967년의 대선과 함께 가장 재미없는 선거로 기록될 것입니다. 5년 전 서울역 유세장에는 이회창 후보의 연설을 듣기 위해 1만5천여 명이 몰렸으나, 2007년 이명박 후보의 첫 유세지이기도 했던 서울역은 5천여 명밖에 모이지 않아 썰렁했습니다. 또한 2007년 선거는 정책대결이 실종되고, TV 토론에 대해서도 유권자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이버 세상도 시들해졌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크게 후퇴한 선거였습니다. 대운하나 교육정채고가 같은 사안도 중요한 쟁점이 되지 못했습니다.
2007년 대통령 선거는 시민의식이나 도덕성이 실종된 퇴행적인 면을 보여주었습니다. 유력한 후보에 대해 중대한 의혹이 보도되어도 지지율에 변화가 없었습니다. 일각에서는 답답해하고 분노하기도 했지만, 몰가치성이 전제된 성장제일주의는 쇠심줄처럼 질겼고 장벽처럼 두터웠습니다. 그런 점에서 2007년 대선은 1967년 6․ 8 선거처럼 병든 선거였습니다. TV토론에서 누가 잘했는가도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바꿔야 한다는 소리만이 1년 이상 울려 퍼졌습니다.
6월민주항쟁 이후 민주주의는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진전되고 있었고,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은 혼탁함과 타락상이 그다지 보이지 않았던 깨끗한 선거였습니다. 정책대결, TV 토론이나 유권자의 자발적 참가, 국민경선대회 등 신선한 선거운동이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가 일정한 궤도에 오른 감을 주었는데, 불과 몇 년도 안 되어 여러 가지 면에서 후퇴했을 뿐만 아니라 퇴행적인 면도 노정되니 마음이 가볍지 않습니다. 역사가 일직선으로 진보하는 것도 아니고 나선형적 변화를 갖는다고 배웠지만, 너무나 빨리 온 후퇴요 퇴행이었습니다.
2007년 대선에서 진보세력한테 재앙이나 다름없었던 성장제일주의는 부메랑이 되어 이명박 정권한테 부담이 될 것입니다. 그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에 환멸이 빨리 올 수 있기 대문이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불안정성, 불안감이 작용해서인지 요즈음 들어 냄비 끓듯 하는 조급성이 더 심해졌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럴수록 이명박 정권은 대운하와 같은 무모한 경기 부양책을 쓸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제 어느 때보다 가치관이 배제된 성장제일주의의 주문에서 벗어나도록 진보와 보수 모두가 노력할 때가 아닐까요.
이명박 후보의 득표율이 48.7퍼센트로, 5년 전 노무현 후보의 득표율 48.9퍼센트보다 적다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보세력 후보들의 표가 보수세력 후보들의 표보다 훨씬 적다는 점입니다. 진보세력은 어째서 그와 같은 사태가 일어났는가에 대해 깊이 있는 인식과 냉정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겁니다.
한나라당이 경제정책이건 남북관계건 교육정책이건 진보적 정권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명박이 당선되는 것도 필요하다는 주장은 듣기가 민망스럽습니다. 지놉세력이나 보수세력이나 문제점이 많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정권을 잡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보수세력은 그동안 반성도 많이 했을 것이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을 것입니다. 마르고 닳도록 영원히 ‘한반도의 죄인’이 될 대운하만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지만.
1967년 선거로부터 4년 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는 신선한 바람이 부는 등 선거사에서 각별히 기억할 만한 활기와 유권자 의식을 보여주었습니다. 앞으로 있을 선거는 2007년 대통령 선거처럼 재미없는 무기력한 선거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이 책이 조금이라도 기여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