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욕망공화국>의 저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더욱 강하게,
혹은 요즘 선택하는 삶과 선택되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이 일관되게 둘 중의 하나의 팔자를 갖고 태어나긴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주어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고,
선택하는 삶보다 선택되는 삶이 더 많거나 결정적이었을 때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주류'라는 것은 대체로 선택된 삶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다.
주류의 세계에서부터는 매뉴얼이라는 게 존재하며,
로얄급 주류로 가면 갈수골 매뉴얼이 촘촘하고 비정해진다.
진중권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이 있은 후에 TV에 나와 이를 전면 부정하는 홍보실 삼성맨을 비유하여 '로봇'이라고 말했다. 이때 그는 철저히 선택된 삶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선망을 받고 월급을 많이 받으면서. 그가 달리 말할 여지는 전혀 없다. 매뉴얼이 그렇게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피노자 식으로 표현하면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길은 주류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길이다. 비근한 예로, 영어공부도 목숨걸고 하지 않고 사교육과도 일정 정도 거리를 두는 사람, 사회의 관례에 이의를 제기하고 비판의 날을 세우고 양심의 명령에 따라 내부고발을 감행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자치와 독립만큼 위협당하기 쉬운 것도 없다. 대한민국의 아들딸들은 대체로 20세가 될 때까지 누가 자동으로 선택을 해주는 삶을 살아간다. 문제는 대학에 가고 직장에 들어가더라도 핸들을 잡지 않으면 계속 누군가에 의해서 자동 선택이 된다는 점이다.이렇게 선택되는 삶은 A~Z까지 매뉴얼이 확실한데, 문제는 선택하는 삶에 대한 정보는 극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선택하는 삶에 대해서 알지도 못할 뿐더러 이미 매뉴얼이 서 있는 선택된 삶에서 벗어나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사실 지구가 네모난 모양이므로 어느 지점까지 가다 보면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일탈에 대한 공포는 그야말로 극단적인 것 같다.

선택하는 삶과 선택되는 삶은 가려져서 잘 구분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내가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당위와 무언가를 하지 않았을까 나타날 수 있는 불이익에 의해 내가 조종당하고 있다면 그것은 선택하는 삶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욕망이란 고유한 생명에너지인데, 나의 욕망이 다른 사람의 욕망과 판이하게 같다면 혹은 집단적으로 그 욕망에 열광한다면 나의 인생의 주인은 어디에도 없다.

※ 100분토론의 분위기가 활기차서 좋았다. 이들의 올망졸망한 모양의 욕망들이 한결같지 않아서 좋았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함께 밤새우기를 마다하지 않는 열정에 흠칫 놀란 하루였다. 나의 욕망은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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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4-25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상조교수는 진짜 청산유수더군요..알아 듣기 쉽게 조목조목 따지고 들어가는데...
그와 반대로 이승환 변호사는 뭐하러 나왔는지 도통 알수가 없고..
더 재미있는 건.
이한유교수...
푸하하..교수 맞나 했습니다.

승주나무 2008-04-25 11:40   좋아요 0 | URL
네~ 김상조 교수는 거의 손석희 급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손석희 교수 아침마다 시사코너 진행하지 않습니까? 그 안정된 포스..
김상조 교수는 매일 불려다니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포스를 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서 김상조 교수를 섭외했는데, '잘 모르겠다'고 하시더군요^^;

무스탕 2008-04-25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잘 봤어요 (보다 끝부분에서 잤지만요... ;;)
이변호사는 옆에서 막 열불나게 토론하고 질문 던지면 어설픈 한마디 툭 던져서 김빼는데 뭐 있더군요.
이교수도 자기 생각에 너무 충실해서 차라리 앞에 앉은 사람들이 안됐다는 느낌이었고..
김교수는 강의도 저런식으로 할까 싶게 어찌 그리 말이 줄줄 잘도 나오는지..

승주나무님 받아쓰기 많이 하시더군요 ^^

승주나무 2008-04-25 11:41   좋아요 0 | URL
네.. 어디 가서든 받아쓰기 하는 게 취미가 돼 버렸어요. 오마이 시민기자를 하고 있어서요^^
100분토론의 안건과 토론 내용이 뉴스가치가 있는지 판단하고 있는 중입니다^^

마늘빵 2008-04-25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들 어제 이거 보셨네. 재방송 꼭 봐야지. 재밌겠다.

승주나무 2008-04-25 11:41   좋아요 0 | URL
제가 광고를 그렇게 했잖수 ㅋㅋ

L.SHIN 2008-04-25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놈의 리뷰 쓴다고 끙끙대다가...완전히 깜박 잊어버린....=_=

나의 선택은 안녕한가?

승주나무 2008-04-25 11:41   좋아요 0 | URL
괜찮아요 Lud-S 님.. 아프 님하고 나란히 재방송 보삼 ㅋㅋ

순오기 2008-04-25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미있게 잘 봤어요~ 간간히 승주나무님 보는 재미도 좋았고요.^^
오늘부터 김상조교수 팬 할래요~ 그렇게 쉽고 자상하게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지식인이었어요~ 킹왕짱!!

전화로 참여하신 여자분, 시청자가 하고 싶은 말을 확실하게 해 줬죠. 그런걸 내보내는 MBC가 막 좋아지더라고요!

승주나무 2008-04-25 11:42   좋아요 0 | URL
순오기 님~ 제 얼굴을 알아보실 수 있으시던가요. 오프 모임에서 뵈지 않은 것 같아서.. 제가 여기저기에 얼굴을 팔고 다니기는 했지만서두요 ㅎㅎ

순오기 2008-04-25 19:40   좋아요 0 | URL
아~ 파란옷 입으셨다고 해서 멀리 잡히는 화면에서부터 첫눈에 알아봤어요.^^
역시 자리도 잘 잡으셨고요~~ㅎㅎㅎ
 
대한민국 욕망공화국 - 어느 청년백수의 날카로운 사회비평서
신승철 지음 / 해피스토리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해외 명품업체의  '짠돌이 기부금' 명품대학의 시간강사 급여 

<대한민국 욕망공화국>(해피스토리)의 저자 신승철 씨와 콩나물해장국을 먹었다.
글쓴이가 이 책 안에 담긴 글을 쓰던 시점은 '방황기'라고 하는데, 그 당시 나와 같은 학원에서 근무했으니 우리는 방황기를 함께 보낸 셈이다. 요즘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강의료는 1년 전에 비해 40%나 올랐는데 시간당 3만5천원이다. 갑자기 며칠 전에 봤던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해외 명품업체의 기부액에 관한 내용이었다. 예컨대 구찌그룹의 지난해 기부금은 전년 대비 160%의 어마어마한 증가율을 보였다. 그해에 영업이익은 39%였는데, 기부액을 보면 더욱 놀랍다. 전년도 50만원에서 130만원으로 80만원 오른 것이다. 영업이익이 106억6998만원이니까 기부금 비중은 0.012%이다. (경향신문 4월 22일자 보도) 그는 이른바 대한민국의 '명품 대학'에 다니는데, 대학이 벌어들이는 강의료 수입에 비하면 강사의 급여는 명품업체의 기부금 액수에 못지 않게 경쟁력(?)이 있다. 저자가 강의하고 있는 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은 500~550만원 정도다. 한 학생당 7과목 21학점을 13주 동안 듣는다고 했을 때 한 학기에 총 273시간 정도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등록금으로 나누면 시간 당 2만원 정도 된다. (입학금이나 기성회비 등 복잡한 내역은 반영하지 않은 단순 수치임을 밝혀둔다.)
한 강의당 50명이 수업을 받는다고 할 때 3시간 짜리 1강좌의 수업료는 약 300만원 정도다. 글쓴이가 강의하면서 가져가는 돈은 10만5천원인데, 나머지 289만5천원은 대학의 수입이다. 대학의 수업료 수입과 강사 수입료의 비율은 96.5% 대 3.5%다. 혹자는 루이뷔통 기부금인 0.012%보다 훨씬 많은 비율이 아니냐고 따져물을 지도 모르겠지만, 비교하기 민망하기는 마찬가지다. 저자가 월 100만원 미만의 수입을 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며, 집안권력(?)에서 밀리고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사정으로 밥값은 당연히 내가 내야 하는데, 기어코 자기가 낸단다. 옆에서 계산하는 것을 지켜봤는데, '교직원 복지카드'가 나왔다. "그래도 교직원 복지카드도 나오고 괜찮네요?"하고 농담삼아 말했더니, 동거인이 대학병원 홍보 계장이라 빌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시간강사가 복지카드를 쓸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을까?"란다. 또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욕망은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생명에너지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최근에 떠오르는 관심사는 바로 '욕망'에 관한 내용이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대통령 선거와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등 보수세력들이 보여주었던 10년의 욕망을 보라. 그 밖에 통합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진영에서는 '절실함'이 부족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민주주의란 크고 작은 욕망들의 고른 분배일 텐데, 진보 진영은 유권자들의 다양한 욕망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 것이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중용(中庸)>이라는 책의 유명한 구절 중 하나가 바로 '불성무물(不誠無物)'인데 '정성이 없다면 어떠한 것도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성'은 근원적인 기제는 아니다. 근본적으로 정성을 다하는 주체가 필요하며, 그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욕망'이다. 공자나 예수, 석가모니라고 해서 과연 욕망이 없었을까.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욕망, 욕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그들은 욕망덩어리 그 자체였고 욕망의 선구자들이었다.

<대한민국 욕망공화국>은 우리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욕망에서부터 범인들이 범접할 수 없는 선택된 욕망에 이르기까지 욕망의 사례들을 철학적 관점에서 분석해 냈다. 책 안에는 '폰섹스' 이야기나 '화상채팅' 같은 '야릇한 이야기'에서부터 국무회의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관한 점잖은 내용까지 그 안에 담긴 욕망의 구조를 낱낱이 해부했다. 글쓴이에 의하면 욕망은 유아기의 자연스러운 1차적 욕망과 어른이 되면서 주류 사고에 젖어 드는 2차적 욕망이 있다고 한다. 부동산 투기나 주식 투자 같은 좀 잘 살아보고자 하는 욕망은 대부분 자본주의에 의해 손상된 욕망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아무리 기승을 부리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더라도 1차적 욕망은 근원적인 에너지이기 때문에 완전히 없앨 수 없다. 예컨대 우리가 회사에서 메신저를 한다는 것은 휑하고 답답한 사무실의 감옥을 도망쳐 외부의 영토에서 삶의 활력을 획득하고 접속하기 위한 욕망의 발현이다. 상급자에게 깨지고도 모니터를 보면서 눈에 빛이 날 수 있는 이유는 메신저 안의 친구와 함께 신나게 상급자 욕을 해대기 때문이다. 그러면 영화관에서 휴대폰을 꺼놓지 않고 진동으로 해두는 사람들은? 그것은 언제 어디서든 온라인 상태로 늘 존재하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다. 언제든 나는 누군가로부터 열려 있으며 걸면 반드시 걸리는 존재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의 책은 자본주의에 왜곡된 우리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 숨쉬는 소박한 욕망들을 일깨우고, 이를 괴롭히는 구조가 무엇인지를 탐색한다. 그리하여 '욕망의 민주화'를 예견한다. 정치 민주화, 경제 민주화, 문화 민주화에 이어서 '욕망의 민주화'라. 그 말이 참 인간적이고 마음에 와닿는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자본주의와 노처녀의 욕망방정식

 

"어떻게 해서 '욕망'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 가따리의 책 중에 <욕망과 혁명>이라는 책이 있다. 거기서 결론으로 삼고 있는 선언은 "자본주의적 욕망을 어떻게 재배치할 것인가?"이다. 이를 위해서는 혼재돼 있는 여러 가지 욕망 속에서 순환할 수 있는 건강한 욕망에너지와 이를 방해하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생태주의자들은 욕망을 줄이자는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이는 욕망에 대한 매우 추상적이고 애매한 태도다. 욕망은 역시 생명에너지인데, 여기서 그들의 이중성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것이다.

 

"이 글을 쓴 시점이 '백수 시절'이라고 하는데, 사회에 대해서 '로그오프'한 백수의 입장에서 사회와 함께 '욕망'을 할 수 있었나?"
- 얼핏보면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백수에게 욕망이 없어 보이지만, 사회적으로 살고자 하는 욕망,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욕망 등 누구보다 건강한 욕망으로 넘쳐난다. 백수보다는 좀 '덜 쳐주는' 장애인의 경우를 보자. 그들은 노동가치의 관점에서 노동하지 않으므로 욕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장애인들 역시 노동을 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고 존중을 해주어야 한다. 장애인이 되어 보지 않고 어떻게 그들의 욕망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 욕망공화국>이라는 말에서도 암시되는 부분이지만, 저자는 자본주의를 욕망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을 저자의 말로 이야기하면 생명에너지로서의 욕망과 도착적 욕망으로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기승을 부리지 않았던 과거에는 어떤 욕망관계가 있었나?"
- 중국의 이탁오(이지)는 욕망이론을 세웠는데, 그는 어린아이의 예를 들었다. 어린아이는 욕망으로 똘똘 뭉친 존재였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이탁오의 책을 몰래 수입해서 모티브로 삼았는데, 역시 주는 아이라는 욕망적 존재가 건강한 생명에너지를 생산한다는 내용이었다. 자본주의가 없었던 시절에도 '주류사회'의 '주류적 사고'가 있었다. 도착적이고 협착한 욕망을 2차적 욕망이라 한다면, 2차적 욕망이 생기는 자리에서 건강한 생명에너지인 1차적 욕망이 죽고 만다. 과거의 주류 사고는 무엇이겠는가? 바로 유교적 사고방식이다. 어른을 닮아가고 어른에게서 배우라는 패러독스가 자본주의의 자리를 대신했다.

 

"그러니까 '선택하는 존재'와 '선택된 존재'의 차이를 말하는 것인가?"
- 그렇다. 선택된 존재는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법관이나 재벌, 정치인, 교수 들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주류에 편입되기 위해서 한번도 자신이 선택하는 인생을 살아가기 어렵다. 자신이 선택한 인생을 자발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주류사회에서 점점 밀려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88만원 세대가 배틀로얄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주류 사회게 제공하는 매뉴얼에서 한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된다. 생명 에너지로서의 1차적 욕망이 이 순간 사망한다.

 

"1차적 욕망과 2차적 욕망의 구분이 너무 어렵다. 좀더 쉽게 설명해줄 수 있나?"
- 내가 아는 독신 여성을 예로 들겠다. 그는 돈 버는 것에 엄청 관심이 많고, 실제로 많은 돈을 번다. 그가 돈을 버는 이유는 좋은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그는 돈을 버느라 진짜 욕망을 놓치고 마는 팔자다. 결국 2차 욕망에 이끌려 1차 욕망을 포기하게 되는 셈이다. 나는 그에게 충고했다. 돈 벌 생각 하지 말고 놀고, 남자 꼬시는 일에 전념하라고. 이 말을 들은 그는 노발대발 하면서 그렇게 하면 어떻게 남자를 만나느냐는 것이다. 오랜 설득 끝에 그는 돈 버는 것은 한동안 잊고 살았다. 남자를 만나고 함께 자고 술먹고 춤추고 그야말로 농탕질을 했다. 그러자 그의 욕망이 순화하면서 욕망의 본질, 즉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 식대로 말하면 자본주의에 왜곡된 2차 욕망에서 이를 치유하는 1차 욕망으로 옮겨간 것이다. 사실 이 수준까지 오면 2차적 욕망은 부질없는 것이 밝혀진다. 자본주의 상처는 이 여자의 욕망과 같다. 내 책의 좀 야릇한 부분인 '폰섹스 편'에 보면, 전에 서로 좋아했던 여자가 밴쿠버로 떠나 현지인과 결혼한다며 전화를 했던 일이 기록돼 있다. 그녀는 대화를 이끌었고 슬프지만 드라마틱한 욕망이 두 사람을 휩쌌고 육체가 합일되는 것과 같은 쾌감을 느끼며 어떤 해방감을 맛봤다. 내가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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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렇게 글을 전투적으로 써야 겠다.
박지원의 글을 좀처럼 볼 시간이 안 된다. 만사 접고 푹 빠지고만 싶다

 

연암 박지원

 

   글을 잘 짓는 사람은 아마도 병법을 알았던 것인가.

 

   글자는 비유하면 군사이고, 글 뜻은 비유하면 장수이다. 제목은 적국(敵國)이고 전고(典故)와 고사는 전장의 보루이다. 글자를 묶어서 구(句)를 만들고, 구를 묶어 문장을 만듦은 대오를 편성하여 행진하는 것과 같다. 음으로 소리를 내고 문채(文彩)로 빛을 내는 것은 징과 북을 치고 깃발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 조응(照應)은 봉화(烽火)에 해당하고, 비유(譬喩)는 유격병에 해당하며, 억양 반복은 육박전을 하여 쳐죽이는 것에 해당하고, 파제(破題)를 하고 결속하는 것은 먼저 적진에 뛰어들어 적을 사로잡는 것에 해당한다. 함축을 귀하게 여김은 늙은 병사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고, 여운을 남기는 것은 군사를 떨쳐 개선하는 것이다.

 

   무릇 장평 땅에서 파묻혀 죽은 조나라 10만 군사는 그 용맹과 비겁함이 지난날과 달라진 것이 아니고, 활과 창 들도 그 날카로움과 무딘 것이 전날에 비해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염파가 거느리면 적을 제압하여 승리하기에 충분했고, 조괄이 대신하면 자신이 죽을 구덩이를 파기에 족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군사를 잘 쓰는 장수는 버릴 만한 군졸이 없고 글을 잘 짓는 사람은 이것저것 가리는 글자가 없다.

 

   진실로 훌륭한 장수를 만나면 호미ㆍ고무래ㆍ가시랭이ㆍ창자루를 가지고도 굳세고 사나운 무기로 쓸 수 있고, 헝겊을 찢어 장대에 매달아도 훌륭한 깃발의 정채를 띠게 된다. 진실로 올바른 문장의 이치를 깨치면 집사람의 예삿말도 오히려 근엄한 학관에 펼 수 있으며, 아이들 노래와 마을의 속언도 훌륭한 문헌에 엮어넣을 수가 있다. 그러므로 문장이 잘 지어지지 못함은 글자 탓이 아니다.

 

   자구(字句)의 아속(雅俗)을 평하고, 편장(篇章)의 고하(高下)만을 논하는 자는 실제의 상황에 따라 전법을 변화시켜야 승리를 챙취하는 꾀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비유하자면 용맹하지 못한 장수가 마음속에 아무런 계책도 없다가 갑자기 적을 만나면 견고한 성을 맞닥뜨린 것과 같다. 눈 앞의 뭇과 먹이 꺽임은 마치 산 위의 초목을 보고 놀라 기세가 꺽인 군사처럼 될 것이고, 가슴속에 기억하면 외던 것은 마치 전장에서 죽은 군사가 산화하여 모래밭의 원숭이나 학으로 변해버리듯 모두 흩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글을 짓는 사람은 항상 스스로 논리를 잃고 요령(要領)을 깨치지 못함을 걱정한다. 무른 논리가 분명하지 못하면 글자 하나도 써내려가기 어려워 항상 붓방아만 찧게 되며, 요령을 깨치지 못하면 겹겹으로 두르고 싸면서도 오히려 허술하지 않은가 걱정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항우가 음릉에서 길을 잃자 자신의 애마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과 같고, 물샐틈없이 전차로 흉노를 에워쌌으나 그 추장은 벌써 도망친 것과 같다.

 

   한마디의 말로도 요령을 잡게 되면 적의 아성으로 질풍같이 돌격하는 것과 같고, 한 조각의 말로써도 핵심을 찌른다면 마치 적국이 탈진하기를 기다렸다가 그저 공격신호만 보이고도 요새를 함락시키는 것과 같다. 글짓는 묘리는 이렇게 하여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벗 이중존이 우리나라의 역대 과거문장을 모다 열 권짜리 책을 만들고 이름을 『소단적치(騷壇赤幟)』라 하였다.

 

   아아! 여기 수록된 글들은 마치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승리를 거둔 병사와 같은 것이다. 비록 그 문체와 격식은 다르고 정밀함과 조잡함이 섞였으나 모두 승리할 비책을 가지고 있기에 아무리 견고한 성이라도 함락시키지 못할 것이 없다. 그 날카로운 창과 예리한 칼날은 무기고같이 삼엄하며, 시기에 따라 적을 제압함은 군대를 지휘하는 묘리에 부합한다. 이를 계승하여 문장을 지을 사람은 모두 이 길을 따르리라. 반초가 서역 50여 국을 정복한 것이나 두헌이 연연산에 전공을 개신 것도 그 방법은 이런 것이 아니었겠는가?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무턱대고 옛 전법을 흉내내다 실패하는 수도 있고, 옛 전법을 역이용하여 승리를 얻는 경우다 있다. 그러므로 상황에 따라 전법을 구사하는 것은 또한 그 시점이 중요한 것이지 고정된 전법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 騷壇赤幟引

 

 

 

소단적치인 : 引은 문체의 명칭으로 序와 마찬가지이다. 소단적치라는 책에 붙인 서문이란 뜻이다. 소단은 원래 문단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문예를 겨루는 과거 시험장을 가르킨다. 적치는 한 나라의 한신이 조 나라와 싸울 때 계략을 써서 조 나라 성의 깃발을 뽑고 거기에 한 나라를 상징하는 붉은 깃발을 세우게 하여 적의 사기를 꺽어 승리한 고사에서 나온 말로, 전범이나 영수의 비유에 쓰인다. 요컨대 소단적치란 과거에서 승리를 거둔 명문장들을 모은 책이란 뜻이다.

 

   글을 잘 짓는 자는 아마 병법을 잘 알 것이다. 비유컨대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요, 제목이란 적국이요, 고사(故事)의 인용이란 전장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요, 글자를 묶어서 구(句)를 만들고 구를 모아서 장(章)을 이루는 것은 대오를 이루어 진을 치는 것과 같다. 운(韻 운치)에 맞추어 읊고 멋진 표현으로써 빛을 내는 것은 징과 북을 울리고 깃발을 휘날리는 것과 같으며, 앞뒤의 조응(照應)이란 봉화요, 비유한 유격(游擊)이요, 언양반복(抑揚反覆)이란 맞붙어 싸워 서로 죽이는 것이요, 파제(破題 첫머리에서 시제의 의미를 먼저 설파하는 것)한 다음 마무리하는 것은 먼저 성벽에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요, 함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란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요, 여운을 남기는 것이란 군대를 정돈하여 개선하는 것이다.

 

   무릇 장평의 병졸은 그 용맹이 옛적과 다르지 않고 활과 창의 예리함이 전날과 변함이 없었지만, 염파가 거느리면 승리할 수 있고 조괄이 거느리면 자멸하기에 족하였다. 그러므로 용병 잘하는 자에게는 버릴 병졸이 없고, 글을 잘 짓는 자에게는 따로 가려 쓸 글자가 없다. 진실로 좋은 장수를 만나면 호미자루나 창자루를 들어도 굳세고 사나운 병졸이 되고, 헝겊을 찢어 장대 끝에 매달더라도 사뭇 정채(精彩)를 띤 깃발이 된다. 진실로 이러한 이치를 터득하면, 하인들의 상스러운 말도 오히려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잇고 동요나 속담도 고상한 말에 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글이 능숙하지 못한 것은 글자의 탓이 아닌 것이다.

 

   대저 자구가 우아한지 속된지나 평하고 편장의 우열이나 논하는 자들은 변통의 임기응변과 승리의 임시방편을 모르는 자들이다. 비유하자면 용맹스럽지 못한 장수가 마음에 미리 정해 놓은 계책이 없는 것과 같아서, 갑자기 어떤 제목에 부딪치면 우뚝하기가 마치 견고한 성을 마주한 것과 같으니, 눈앞의 붓과 먹이 산 위의 초목을 보고 먼저 기가 질려 버리고 가슴속에 기억하고 외우던 것이 모래 속의 원학(猿鶴)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글 잘 짓는 자는 그 걱정이 항상 스스로 갈 길을 잃고 요령을 얻지 못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무릇 갈 길이 밝지 못하면 한 글자도 하필하기가 어려워져서 항상 더디고 깔끄러움을 고민하게 되고, 요령을 얻지 못하면 두루 얽어매기를 아무리 튼튼히 해도 오히려 허술함을 걱정하게 된다. 비유하자면 음릉에서 길을 잃자 명마인 오추마가 달리지 못하고, 강거가 겹겹이 포위했지만 육라가 도망가 버린 것과 마찬가지이다. 진실로 한마디 말로 정곡을 찌르기를 눈 오는 밤에 채주에 쳐들어가듯이 할 수 있어야 하니, 글을 짓는 방도가 이정도는 되어야 지극하다 할 것이다.

 

   친구 이중존이 우리나라 사람이 지은 고금의 과체(科體 과거 시험에서 보이던 여러 문체의 글)를 모아 10권으로 편집하고 그 이름을 『소닥적치』라 했다. 아! 이는 모두 승리를 얻은 병졸이요, 수백 번의 싸움을 치른 산물이다. 비록 그 격식이 동일하지 않고 정교한 것과 거친 것이 뒤섞여 들어갔지만, 각자 승리할 계책을 지니고 있어 아무리 견고한 성이라도 무너뜨릴 수가 있다. 그 예리한 창끝과 칼날이 삼엄하기가 무기고와 같고, 때에 맞춰 적을 제압하는 것이 늘 병법에 맞는다.

 

   앞으로 글을 하는 자들이 이 길을 따라간다면, 정원후의 비식과 연연산에 명을 새긴 것이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인저, 여기에 있을 것인저! 비록 그렇지만 방관의 거전은 앞사람의 자취를 본받았으나 실패했고, 우후의 증조는 옛법을 역이용하여 승리했으니, 그 변통하는 방편은 역시 때에 있는 것이요, 법에 있지는 아니한 것이다. (法 ⇔ 時)

 

   붓과 먹이 날카롭고 글자와 글귀가 날고 뛴다. 이야말로 문예계의 염파와 이목이라 하겠다.

 

   세상의 이른바 '글제를 고려하여 거기에 꼭 들어맞게 지은 글'이란 것으로 과거를 위한 글을 짓게 되면, 납이 섞이고 철이 섞여서 겉으로는 마치 정련된 것 같지만, 속을 보면 실을 참작해서 관대히 보아줄 곳이 있다. 진실로 충분히 고려하고 충분히 꼭 들어맞도록 하여 한 글자도 겉도는 말이나 두서없는 말이 없게 할 수 있다면, 이야말로 득의한 고문 중에서도 상승일 것이다.

 

   주제를 결정하여 글을 엮기를 『울료자』에서 병법을 말할 때나 정불식이 군사를 출동할 때처럼 한다면 당연히 공령문의 상승이 될 것이다. 편마다 이와 같다면 어찌 온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심복하게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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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분토론 10기 시민논객에 지원했는데,
1차는 자기소개서, 2차는 전화면접, 3차는 토론면접을 하는가보다.
오늘 3차 토론면접을 하기로 했는데,
면접이 끝나면 그 날 진행되는 토론회의 방청객으로 참여해야 한단다.
그런데 주제가 흥미진진하다.
김용철 변호사와 김상조 교수 등이 참여해서 삼성특검과 삼성쇄신안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펼치게 된다.

생애 처음으로 참여하는 100분토론에서 김용철 변호사를 보게 되다니~
주제 역시 대한민국에서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관심을 갖기 마련인 삼성문제
토론면접보다 젯밥이 더 땡긴다 ㅋㅋ

오늘 MBC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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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8-04-24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진짜 대박이군요. 백분토론 안보는데 봐야쓰겄소

승주나무 2008-04-24 13:25   좋아요 0 | URL
오~ 치카 님~~ 잘 보이는 데 앉아볼게요.
오늘 일부러 파란색 눈에 잘 띄는 옷으로 입고 왔답니다 ㅋㅋ

2008-04-24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24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08-04-24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세요~
오늘 엠비씨 볼테니까 어떻게든 승주나무님이 티비에 잡혀야 할텐데요.. 자리 잘 잡아 앉으세요. 기왕이면 김용철 뒷쪽으로.. ^^;
(저도 젯밥이 더 땡겨요. 승주나무라는 젯밥이.. ㅎㅎ)

승주나무 2008-04-24 13:26   좋아요 0 | URL
네~ 김용철 뒷자리는 경쟁률이 셀 테지만, 함 추진해볼게요~~~
젯밥이 너무 맛있죠? ㅋㅋㅋ

세실 2008-04-24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오늘 하는군요. 저두 보겠습니다.
흐 기대됩니다. 삼성이 아닌 승주나무님이~~헤헤

승주나무 2008-04-24 13:26   좋아요 0 | URL
아니 세실 님~
저는 엑스트라일 뿐인데요~
그럼 저는 세실 님을 어떻게 보죠?
11기에 지원하세요(뜬금없이) ㅋㅋ

balmas 2008-04-24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승주나무님 출연이십니까?
ㅎㅎㅎ 그럼 꼭 한 번 봐야겠네 ~

승주나무 2008-04-24 15:02   좋아요 0 | URL
저는 방청만 하는 거고.. 출연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합격하면 출연을 계속 할 수 있겠죠~~
내용이 원체 흥미 있는 데다 김용철 씨도 토론회에 처음 나오니까 상당히 흥미진진할 것 같아요^^

L.SHIN 2008-04-24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청객들도 질문 하지 않나요? 승주님, 멋진 한 마디 던져주세요.(웃음)

그런데 이미지 사진 여름에 어울려요. 특히, 초록 나무와 앵무새와 조화롭게 대비되는
빨간 티셔츠.ㅎㅎ

순오기 2008-04-24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예에~ 오늘밤 11시 5분, 시간 확인했습니다.
이거 볼려면 초저녁에 자고 일어나야 할까봐요.ㅋㅋㅋ

하여간에 승주나무님 보이는가 뚫여져라 볼랍니다. 젯밥이 더 땡기는 1인~~~~
 

삼성쇄신안을 발표하면서 이학수 부회장은 '참담하다'고 말했는데,
'참담하다'는 말은 삼성에서는 인사치레로 하는 말처럼 들린다.
쇄신안의 내용을 듣고 나서 참담해진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나다.
이건희 일가의 쇄신안 정도는 될 수 있겠으나 삼성쇄신안이라고 말하기는 민망하다.
왜냐하면 삼성쇄신안이 되려면 삼성그룹의 '구조'에 관한 이야기가 논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순환출자 구조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에버랜드는 곧 팔겠다 정도의 수준이다.

삼성은 꼬리자르기나 물타기 식으로 언론을 이리저리 요리하기로 유명한데,
이번의 발표는 '큰 꼬리자르기' 정도로 정리하고 싶다.
큰 꼬리든 작은 꼬리든 꼬리가 몸통이 될 수는 없다.
이건희 회장은 회장직과 삼성 관련 모든 직에서 물러난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한 10년 정도 전에 이런 말을 했으면 순진하게 믿어줄 사람이 많겠지만,
지금 그렇게 믿어줄 정도로 사회가 녹록하지 않다.
이건희 회장은 어차피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자 어둠의 대통령인데,
그가 어둠에 몸을 담고 수면에 머리를 내밀다가
수면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무엇인가?
정말로 쇄신안이 되고자 했다면
스스로의 몸에 위치추적기를 달든가
어두운 그의 방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방향으로 갔어야 했다.

쇄신안에 사람들이 기대하던 바는 '진정성'이었을 것이다.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특검 발표'를 근거로 삼을 것이 아니라,
'특검 발표'를 넘어서야 했다.
어차피 시효가 지난 일은 처벌도 받지 않으니,
이 회장 말마따나 도의적 책임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설명해 주어야 하지 않나?
야합이다 봐주기다 등등 국민의 법감정에 한참 모자라는 특검이 그어진 선 안에서
쇄신을 하겠다는 것은 사실 쇄신에 관심이 없다는 말과 다름없으며,
결국 이것이 꼬리자르기라는 반증밖에 될 수 없다.

이건희 회장 퇴진, 이재용 CCO 사임과 백의종군(?), 홍라희 관장 사임, 전략기획실 해체, 은행업 진출 포기 등등.. 구조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펼쳐진 패를 뒤집는 수준에 불과하다.
오늘의 발표를 통해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회장의 사카린 패러다임에 갇혀 있음이 더욱 명백해졌다. 도대체 뭘 얘기한 것인가?
언론의 李비어천가 또한 구역질이 난다. 영욕의 수십년이 과연 뉴스가치가 있을까?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대통령에서 하야하는 것과 동일시하는 그들의 천박성이 우습다. 드라마 말고 진짜 뉴스를 보도하는 언론은 기대할 수 없을까?
에이~ 또 새벽이 끝나간다. 자기 전에 화장실에서 귀를 씻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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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4-23 0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되어가는 현실. 1%를 위한 대한민국......ㅠㅠ

승주나무 2008-04-24 00:32   좋아요 0 | URL
1% 하니까 삼성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1%밖에 없을 거라는 삼성관계자의 호언장담이 생각나네요 ㅡㅡ;

순오기 2008-04-24 19:23   좋아요 0 | URL
그 말이 맞을지도...저도 친정가니까 다들 분위기가 그쪽이더라고요. 마치 삼성 건드리면 대한민국이 파산할 것처럼!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