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우리문화그림책 온고지신 4
김평 지음, 이김천 그림 / 책읽는곰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가위 큰보름달이 익어가고 있는 계절입니다.
설에는 <연이네 설맞이>, 단오에는 <얼쑤 좋다, 단오 가세!>를 펴내 어린이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려주는 '책읽는곰'의 온고지신 우리문화그림책이 추석을 맞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를 펴냈습니다.

점점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추석의 넉넉한 인심과 전통문화의 원형들이 많이 퇴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어릴 적 입었던 추석빔이니 올게심니니 하는 말들을 잊어버렸습니다.




올게심니는 '올해 처음 거둬들인 곡식을 대문에 매달고 내년에도 풍년이 들게 해주라는 의미에서 대문에 걸어놓는 조 이삭이나 벼 이삭 뭉치 따위'를 말합니다. 수확물은 가장 먼저 조상신이나 귀신에게 주며 다음 해를 기원하는 의미가 강한데, 이와 유사한 풍습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인공 옥토끼가 추석빔을 얻어입고 폴짝폴짝 뛰는 모습이 즐거워 보입니다.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폴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하는 동요가 생각납니다.
설에는 설빔을 입고 추석에는 추석빔을 입었지요.




옥토끼는 색동 추석빔을 입었고, 엄마는 초록색 장옷을 둘러 나들이를 가네요.




추석에는 송편이 빠지면 안 되죠~
어릴 적에는 내가 빚은 송편만 모양이 이상해서 예술작품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손으로 매만지면 그대로 모양이 나타나는 송편이 참 재밌었습니다.




추석에는 젯상이 빠질 수 없겠죠. 홍동백서 제삿상에 올라가는 순서도 엄연히 정해져 있습니다.
아직도 제사를 지낼 때는 순서를 까먹곤 합니다.
햇대추, 햇밤, 햇배, 햇감 등을 차례로 올려놓고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나서야 햇과일에 손을 댈 수 있었습니다.
어릴 적에 젯상에 올린 감주가 너무 맛있어서 주전자 한통을 모두 벌컥벌컥 마셔버리고 해롱해롱댔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색동을 입힌 2009년 기축년 소띠 해 명절과 절기 달력을 함께 주네요. 24절기는 농업 중심국가였던 동양에서 1년 동안의 기후를 가만히 관찰해서 그 특징에 맞게 이름을 정한 것이죠. 땅이 풀렸으니 씨를 심을 준비를 해라, 뭐 이런 식으로 해야 할 일을 정해놓은 거죠. 24절기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조상들은 모두 시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칩은 겨울잠 자던 개구리가 놀라 뛰어다닌다는 말이고, 곡우는 곡식 비가 내린다는 뜻이니까요.

 

▲ 책읽는곰 출판사에 언젠가 놀러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책을 만들고 있더군요. 그림책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죠. 그림 하나하나 수천번 살펴봐야 하고, 아이들이 읽는 책이라서 용어 하나하나 챙겨야 하니 책을 한권 만들고 나면 진이 다 풀린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온고지신 우리 문화 그림책은 설과 단오, 추석을 했으니 그 다음에는 어떤 주제로 그림책을 만들어낼지 궁금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책의 맨 뒷쪽에는 추석에 관한 풍습이 사진과 함께 잘 설명돼 있으니 아이들과 함께 재밌는 추석공부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8-09-04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겨운 그림들을 보니 마음이 뜨듯해집니다. 맨 윗그림 가져갈게요. 가을과 함께 넉넉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승주나무 2008-09-05 00:54   좋아요 0 | URL
네~ 그림 좋은 데 쓰시기 바랍니다^^

바람돌이 2008-09-05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추석이네요. 저는 싫지만 아이들은 좋아라 기다리는 날이죠.
아이들 선물로 이 책을 살까요? 근데 추석에 추석빔 입어야 한다고 새옷 사달라고 하면 안되는데.... ㅎㅎ

승주나무 2008-09-05 00:55   좋아요 0 | URL
올해는 독거노인이나 봉사단체에 도움의 손길이 아예 없어 이런 추석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경제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강부자들 눈에는 보일 리도 없고.. 추석빔 걱정하는 바람돌이 님 글 보면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는 거 ^^;

하늘바람 2008-09-05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 참 좋아요 그래서 어제나 다음책이 기대됩니다

승주나무 2008-09-05 10:35   좋아요 0 | URL
네.. 처음에는 잘 안 봤지만~
요즘은 나올 때마다 보게 돼요.. 길지도 않고^^

순오기 2008-09-05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 그림책 급호감입니다~~ ^^
 


▲ 시사인이 한살이 된 기념으로 언론계에 발을 담그는 강호제현을 초대해 심포지엄을 열었다. 9월 2일 프레스센터 12층 교육센터 대강당



이명박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시사IN인 돌잔치를 열었다. 9월2일 프레스센터 12층 교육강당에서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가 사회자가 되었고, 문정우 시사인 편집국장, 이봉수 세명대학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이 발제를 맡았고, 김규원 한겨레 지역팀장,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노조위원장,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 이병 한겨레 통일문화재단 상임이사, 이재국 경향신문 미디어팀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독립'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한 언론사들은 다 모였다고 해야겠다.
시사IN 문정우 편집국장은 독립언론 1주년을 기념한 심포지엄에서 창간 1주년을 소회했다. 문 국장에 의하면 새매체를 창간한다고 하니까 주위에서 뜯어말렸다. 파업을 했던 회사 역시 "쟤네들 3개월도 못 버틴다"며 소문을 내고 다녔고, 그 짓을 지금도 하고 있다고 했다. 기자들 역시 "차라리 해산하고 말지, 뭣하러 고생을 사서 하느냐"라거나 "지금 사이 좋을 대 헤어지는 게 낫지 나중에 회사 만들다 안 되면 서로 원망하다 웬수될 것 아니냐"는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바닥민심을 확인한 결과 이는 피상적인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자본이 세상을 모두 휘어잡아 황량해 보이는 언론환경이지만, 이 때가 오히려 독립언론에게는 기회라는 것이다.
문 국장은 "요즘 대통령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살 만하다. 경향이나 한겨레도 이 점에 동의할 것이다"고 말했고, 경향신문의 이재국 기자와 한겨레의 김규원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 국장이 이명박 대통령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얼굴 없고 힘 없고 풍족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일깨워 "괜찮은 언론이 죽어가선 안 되겠구나"하는 마음을 강하게 자극했기 때문이다.
"연못으로 고기를 내모든 것은 수달이며 새떼를 숲으로 내모는 것은 새매이다."라는 맹자의 구절이 어울리는 대목이다. 일전에 기사를 쓰던 시사저널은 18년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다시 18년을 유지할 동력을 얻었다고 자신했다. 문 국장은 창간당시 한 인터뷰에서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기운을 느꼈다"고 말했는데, 이번 촛불집회 때 <거리편집국>을 운영하면서 이를 다시 확인했다고 술회했다. <시사IN>은 바로 그 민심에서 길어올린 매체이며, 독립언론들은 이 대목을 매우 유의깊게 관찰해야 한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 문정우 편집국장은 창간 즈음에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렸고 시사저널 회사도 3개월 못 버틴다며 비웃던 모습을 회상하며 실제 '거기'에 가본 결과 뜨거운 밑바닥 민심을 확인했으며 주위의 우려는 모두 피상적인 생각이었음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독립언론 어떻게 만들까, 중지를 모아 봐

독립언론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호흡하고 유지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이에 대해서 강호제현들이 말을 보태주었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따끔한 지적은 한겨레 이병 이사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한겨레 창간멤버이기도 한데, 한겨레 창간 당시 해직기자 출신의 홍보실 상사는 "경영이 쉽지는 않을 거다"라는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시사인 창간 당시 편집국장을 만난 자리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편집은 경험이 출중한 기자들이 있어서 걱정이 안 되지만, 경영에 대한 부분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실제로 시사인은 1년 동안 잡지 만들기와 정기구독자 늘리기에 주력하였고 경영에는 다소 소홀한 면이 없지 않았다. 시사인의 한 기자는 "시사인은 1년 동안 경영을 아예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한겨레는 91년 공덕동으로 사옥을 옮기며 단행본 사업을 시작했고, 곧이어 한겨레21을 창간해 주간지로서는 최초로 당해년도에 흑자를 기록한다. 95년에는 영화주간지 씨네21을 창간하며 젊은 독자들의 문화코드에 일대 충격을 주었다. 그 외에도 초록마을 유통사업과 한겨레투어, 99년에는 인터넷 한겨레를 만들었다. 하지만 '한겨레리빙' 부문이 1년간 100억원 가까운 적자를 낸 이후로 신사업 발굴작업은 위축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병 이사는 매채 부문과 비매체 부문의 고른 확장이 독립언론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의 근거로 그는 '가디언'을 예로 들었는데, 가디언 본지는 해마다 적자를 면치 못하지만 가디언이 만들어낸 비매체 부문은 꾸준한 수익을 내주고 있기 때문에 자본에 의한 논조의 굴복 없이 지금껏 독립언론의 드높은 위상을 드날릴 수 있었다는 평가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와 경남도민일보 김훤주 노조위원장은 본질적인 부분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오연호 기자는 모두가 하나의 모델을 만들 필요는 없으며 각자 만들어낸 모델을 공유하면 좋은 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립언론'을 절대가치화하려는 관성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도 수명이 있듯이 독립언론 역시 나이가 들어서 늙어죽을 수밖에 없다. 그때는 젊고 건강한 이들이 독립언론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라도 대의를 계승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오 기자는 "우리가 열심히 하더라도 우리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네이버, 다음과 우리 모두를 뛰어넘는, 즉 모든 것을 초월한 독립언론이 생겨날 것이다. 이들이 태어날 수 있도록 '죽을 준비'를 하는 게 우리들의 사명"이라고 의미심장한 결론으로 토론을 마무리했다.
경남도민일보 김훤주 노조위원장은 '독립'이라는 말 자체가 다른 무엇인가에 기대어 있는 상태를 뜻하므로 '독립'은 항상 지배를 전제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김 위원장은 주로 언론계에 '만연'(?)한 관습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다. 언론사가 가지고 있는 선민의식이나 특권의식이 담겨 있는 '언론인'이라는 말이 이에 해당한다.

그 자리에 참여했던 나도 '독립언론'의 '독립'이라는 말이 동아투위, 조선투위 때 쓰던 의미를 빌려 쓰는 것일 뿐이며 2008년에 맞는 '새로운 독립'이라는 개념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 언론계에서는 '독립'이라는 말을 신주단지 모시듯 숭앙하는 경향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론의 한정된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하는 관습의 그림자도 느낄 수 있었다. 시사저널 파업은 권력이 정권에서 자본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그런데 요즘은 다시 정권이 새로이 권좌를 되찾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자본은 지금껏 한번도 권좌에서 물러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정권과 자본'이라는 가장 '쎈 놈' 두 명이 힘을 합한 상황에 독립언론이 몰려 있는 것이다. 유통업계로 따지면 이마트와 홈플러스가 합병된 상황과 같다. 그리고 시사저널 때 자유언론을 세우기 위해 지원에 나섰던 독자들이 이제는 언론소비자의 주권을 찾기 위해 구속과 기소 등 정권에 의한 탄압을 무릅쓰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도 반영이 안 됐다. 그저 '그들만의 잔치'에 머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스쳤다. 언론사들이 모인 토론회에 참석하고 싶지 않은 이유다. 다음에는 언론사가 밑바닥의 민심을 온전히 반영하는 건강미 넘치는 자리를 마련해 기사쓸 맛이 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 이병 한겨레 통일문화재단 상임이사는 시사인의 앞에 진짜 남겨진 승부는 '경영'이라고 조언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글샘 2008-09-03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사 in 정말 나쁜 잡지입니다. 광고라고는, 순 불쌍한 사람 돕는 것들 투성이라서...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 ㅠㅜ

승주나무 2008-09-05 00:53   좋아요 0 | URL
그래요..정말 나쁜 잡지입니다 ㅠㅠ
좋은 세상 좋은 잡지가 그립습니다^^;;

Koni 2008-09-03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일 년이라니 감개무량해요.^-^

승주나무 2008-09-05 00:5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벌써 일년이네요 ㅎ
 

이명박 사진이 잡지 표지에 실리면 검은 테이프로 붙여놓고 본다는 그 친구가

라오스로 간 지 1년이 다 돼 가는 것 같은데.

이제 자리를 잡았나 보다.

국제단체에 3수 끝에 합격하는 바람에

자동차 딜러를 하지 않아도 된단다.

월급을 적잖이 받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라오스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란다.

라오스로 도망가게 된 결정적 이유는 이명박 때문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당분간은 한국 일은 잊어야 몸건강하다는 것도 잘 아는 친구다.

사장님이 되면 줄을 댈 친구들이 적지 않은 모양인데,

내 자리도 있는지 몰라 주변을 서성대고 있다 ㅎㅎ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돌이 2008-09-02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누구 하나 학교 세울 인간 없을까 하는 저도 있어요. ㅎㅎ

승주나무 2008-09-03 11:59   좋아요 0 | URL
학교로 갈 수 있으면 훨씬 좋겠지만.. 저는 잘해야 '논술강사'ㅋㅋㅋ
 

언론사는 무한영리를 추구하는 기업과 한패다

어린아이들에게 이유식을 안정적으로 제공해 유아사망률을 줄이고자 했던 칠레의 아옌데 정부를 몰락시키고 독재자 피노체트를 지원한 것도, 친일파 청산을 가로막고 재임용해 현대사의 밑둥부터 잘라버린 것도 미국의 수법인데 공정한 언론이라면 미국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질타하고 여론을 조성해 압박을 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만도 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각국의 독재자와 군벌을 지원해 이익을 나눠먹는 미국정부와 언론은 한통속이다.

언론은 본질적으로 대중에게 메시지와기호를 전달하는 시스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가치관, 신념, 행동규범을 지속적으로 심어주어 사회의 제도적 구조 속으로 대중들을 통합시키는 기능을 한다. 말 그대로 언론의 속성 자체가 보수적이라는 거다.

대체로 비판언론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뉴욕타임즈>의 경우 199년 11월12일 시애틀에서 개최된 WTO 회의에 대한 시민들의 반대시위를 악의적으로 보도하였는데, 시위자들이 오물과 화염병을 하원의원들과 경찰 간부들에게 던졌다고 거짓말을 쳤다가 다음날 이것이 허위사실이었음을 인정하는 정정보도를 내어야만 했다.
명박산성 아래서 어청수 일당들이 시위자의 손가락을 자르고 여성 시위자를 방패로 사정없이 내리찍고 하는 폭력성에 대해서 주류 언론들이 침묵했듯이 미국의 주류언론, NBC, ABC, CNN,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는 경찰을 두둔하고 시위자들을 폄하하는 보도행태를 보였다. 언론사의 구체적인 수법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사건의 순서를 바꾸는가 하면, 시위자들의 위협을 과장하며, 평화시위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려는 경찰의 대규모 불법대응을 눈감아줌으로써 경찰의 표현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엄중한고 불법적인 규제들을 합법화할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뉴욕타임즈>가 말이다.


광고 중심의 언론시스템



▲ 조중동의 광고비 점유율과 그 추이. 조중동이 광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


언론시스템이 광고 중심으로 재편된 시점은 19세기 중반 즈음이다. 당시 영국은 반대의견을 통제할 방편으로서 '대중광고를 선호하는'신문들을 제도적으로 도울 것임을 천명했다. 국가가 세금과 통제를 통해서 이루지 못할 일을 시장은 자본비용과 광고를 통해 달성할 수 있다.
광고주들의 지원이 없으면 신문이 경제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광고주들은 사실상 '실질적인 사업 허가권자'이다.

광고가 호황을 누리기 전에는 신문사들이 판매수입으로 영업비용을 충당했으나 광고시장이 넓어지고 광고의 유혹에 넘어간 신문사들은 광고수익으로 생산비용을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판매가를 낮추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야말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것이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대기업의 시장폭력을 제어하는 언론들이 폭사하고 말았다.

<데일리헤럴드>의 사례는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1960년과 1967년 사이에 <데일리헤럴드>, <뉴스크로니클>, <선데이타임스> 등은 매일 평균 930만 명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폐간되거나 기존 언론사에 흡수되었다. 특히 <데일리헤럴드>의 경우 마지막 해에 470만 명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었는데, 이는 <타임스>, <파이낸션타임스>, <가디언>의 모든 독자를 합친 것보다 2배나 많은 수치였다. 전국적으로 8.1%의 점유율을 자랑했던 <데일리헤럴드>의 광고 순수익은 3.5%로 극히 미미했기 때문에 신문시장에서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이는 신문사의 논조나 경쟁력과 무관하게 광고주에게 절벽 아래로 떠밀린 결과나 다름없었다.

광고주들이 언론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비우호적인 언론기관을 차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원칙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별하기도 한다. 그들이 선별하는 원칙이란 예외 없이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향신문과 한겨레에 삼성광고 등 대기업 광고가 사라졌다. 이러한 결과로 언론사는 당연히 중요한 공적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등한시하거나 폐지할 수밖에 없다. 언론은 정보기관과 기업의 기분을 언짢게 하지 않기 위해 민감한 뉴스를 다루지 않거나 모호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언론사가 조중동이 되어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다.



▲ 변형생성문법의 창시자로 유명하며,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이자 미국의 양심으로 일컬어지는 노암 촘스키의 <여론조작>(에코리브르)를 참조하였습니다. 촘스키는 '선전모델'이라는 가설을 통해 언론이 국가와 기업에 봉사하며, 대중들을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데 유력한 용의자일 뿐만 아니라, 조직적이고 치밀한 조작을 통해 지금도 세계의 각종 분란을 용인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언론, 집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를 떠받드는 척하다가도 자신들의 권리와 특권이 위태로울 때는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언론의 행태를 심도 있게 분석했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08-09-02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전화를 한통 받았어요. 시사IN에서 정기구독을 부탁하는...
한겨레 21을 이미 정기구독하고 있기에 잠시 망설였으나 어찌나 전화하신분의 목소리가 간절한지.... ㅠ.ㅠ 그리고 잠시 님도 생각나고 그리고 삼성이라는 거대기업과 싸웠던 사람들의 용기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뭔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1년 15만원이상의 가치를 해주기를, 처음의 그 마음과 용기들을 잃지 않아주기를 바라면서요.

승주나무 2008-09-03 12:00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 님..1년 유예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정기구독을 해줄 수만은 없지만, 요즘 언론환경이 너무 악독해서 그런 언론사가 용감한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이 커다란 위안이 되는 것 같습니다^^
 

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친구가 되지 못할까?
'배타성', '타자'라는 말은 아마도 우리를 가장 오랫동안 짓누르는 특징일 것이다.
이는 중화주의를 본받은 소중화주의와 기득권적인 유교의 관습 때문이다.
특히 왕실을 전체 가족과 일체화하여 단결력을 강조한 집단논리는
집단 외적인 요소들을 일체 거부함으로써 순혈주의를 키워 왔다.


▲ 16세기 마카오에 상륙한 포르투갈인들


조선에서 가장 먼접 접근해온 나라도 조선의 소식을 서양에 맨 처음 알린 나라도 포르투갈인데, 포르투갈인에게 비친 조선의 첫인상은 썩 개운치 않다. 1578년(선조11년) 마카오에서 일본으로 향하던 포르투갈 선박이 태풍을 만나 조선으로 향하다가 다시 일본 나가사키로 되돌아간 일이 있었는데, 이때 프레네스티노(Pader Antonio Prenestino)가 남긴 <1578년 일본행 포르투갈선 표류 항해기록>에는 포르투갈 선박이 조선에 표류했다는 증언이 실려 있다.

7월17일 맹렬한 태풍을 만나는데 안내자는 "만약 앞 좇이 찢어지지 않는다면 코리아(Coria)에 도착할 것이다"고 말했는데, 코리아를 소개하며 일본보다 미개한 달단(만주를 말함) 사람이 사는 섬이라고 소개했다. 배는 조선에 당도하게 되는데, 안내자는 "거기에는 야만적이고 잔인한 백성이 사는데, 달느 나라 사람과 통상을 바라지 않는다. 몇 해 전 포도아(포르투갈) 사람의 정크선이 그곳 해안에 도착했을 때, 이 흉악한 주민들은 그 배의 소정(小艇, 작은 거룻배)을 빼앗고 그 안에 탄 사람을 죽였다. 그래서 전원이 학살되지 않기 위해 적잖이 고생했다'는 후문을 전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포르투갈인들은 몹시 두려워서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 16세기 포르투갈 상선의 모습

당시 일본에서 전교활동을 폈던 포르투갈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1532~1597)은 당시 조선의 폐쇄적인 상황을 더욱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1549~1594년 사이의 일본 통사인 <일본사(Historia de Japan)>에서 그는 "조선인은 매년 상품을 거래하러 오는 일본인 3백명을 제외하고는 어떤 경우에도 외국인이 국내에서 거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썼다. 포르투갈 범선이나 그 밖의 배가 바람이 조류 같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조선의 항구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조선인들은 곧바로 전투태세를 갖추고 다수의 무장 함선을 출동시켜 사정이나 정황을 들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쫓아낸다는 것이다.

1622년 서양 선박으로 추정되는 배가 조선에 나타났을 때의 일이 <광해군일기>에 기록돼 있는데 크기가 산과 같고 배 위에 30여 개의 돛대를 세운 배 한 척이 사도진(오늘날 전남 고흥군 영남면 금사리) 앞바다에 들어왔는데, 첨사 민정학이 편전(片箭, 길이가 1척 2촌(약36cm)인 짧은 화살)을 쏘았다고 하는데, 편전을 본 그들은 "조선의 작은 화살이 배를 거의 절반이나 뚫고 들어갔으니 활을 잘 쏜다고 할 만하다"고 했다고 한다.



▲ 네덜란드 선박으로 추정되는 서양 배를 향해 조선군이 쏘았던 편전은 두 뼘만한 크기이지만, 배를 절반이나 뚫고 갈 정도로 가공할 만한 위력을 뽐냈다. 사진은
<친절한 조선사>의 저자 최형국 씨

물론 신대륙 발견으로부터 시작된 서양의 식민지 약탈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고, 조선에 들어온 서양인들의 저의가 악의적이지 않았다는 것도 아니다. 스페인 깡패들은 마추픽추의 잉카 제국을 무식하게 멸망시켰던 것처럼 서양이든 당시 조선이든 어느 쪽도 개운한 구석이 있는 곳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폭력과 전쟁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서양은 이익을 포기할 만한 절제력이 없고, 조선은 서양과 교섭을 할 만한 유연성이 없었으니까.

당시 서양인들과 무작정 싸움을 벌였던 선조들의 피가 흐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떨까? 얼굴색이 같더라도 체제를 달리하면 사정없이 몰살시키고, 설령 우리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른 체제의 피가 들어있으면 인정사정 없이 죽여버린 것이 우리 현대사의 모습이 아닌가. 극심한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던 6.25 당시 1,800명에 달하는 대전형무소 재소자 학살(미 대사관 문서, 책 40쪽)이나 최소 5만 혹은 10만에 달한다는 보도연맹 학살 등은 조금이라도 다른 것이 들어있는 것을 용납치 않았던 폐쇄적인 조선인의 모습 그대로다.

2008년 현재는 좀 다른 피가 섞이게 됐을까? 하필이면 불교인 수십만 명이 들고일어섰을 때 대대적인 공안사건이 터지면서, 공안검사(이른바 정치검사)라든가 공안정치인이 자기들의 세를 확보하려는 욕심으로 신 공안정국을 기획하고, 이명박 정부와 하나라당이 이해관계에 따라 받아들인 모습을 보면서 '배타성'으로 먹고사는 나라의 한심하고 불쌍한 백성이 된 기분이 사뭇 초라하기 그지없다.




▲ 이상의 내용은 <현실문화> 출판사에서 출간된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를 참조했습니다. 보면 볼수록 서양인이 악령인지 조선인이 악령인지 헷갈리기는 하지만, 악령같은 오늘날 우리 자화상의 기원을 보여주고 있어서 책을 놓지 못하겠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