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창간주역 고재열 기자는 오늘도 '블로그질'을 한다.
고재열의 독설닷컴은 현재 총방문자가 240만명이 넘었다.
고재열 기자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시사저널 파업 당시 기자들이 지쳐 있을 때 혼자 문제집을 들고 다니며 '퀴즈왕'에 도전해 당당히 '퀴즈영웅'에 등극했다. 그는 오래 전부터 1인미디어를 꿈꿔왔다고 했다. 기자라는 직함에 안정된 지면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나 일반 블로거와 마찬가지로 계급장을 떼고 누리꾼과 맞장을 뜨는 느낌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독설닷컴은 기자 블로그 사상 최초로 인턴 블로그를 모집했고, 현재 1명의 블로그와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요즘에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몇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인터뷰는 시사인 편집국 근처 '도가니탕 집'에서 이루어졌다. 이 집은 편집국의 큰형님들이 개척하고 후배 기자들에게 전파한 장소다. 편집국장과 발행인이 모두 여기를 자주 찾았다. 젊은 기자들은 큰 길에 있는 통닭집을 즐겨 찾는데, 만난 시간이 낮이었던 관계로 도가니탕집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인터뷰의 형식이 아니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적을 게 많아졌다. 간단히 근황을 묻는 분위기에서 본격적인 인터뷰로 스펙트럼을 바꿔갔다.




▲ 2007년 4월 12일 한 퀴즈 프로그램에 출전해 퀴즈영웅이 되었다. 생계형 출연자는 미션을 완수했다.


나는 롯데백화점의 고급브랜드에 불과, "미디어몽구가 진정한 파워블로거" 

작년에 창간호가 추석합본호였는데, 드디어 시사인 추석 합본호 2호가 나왔다. 축하한다. 그런데 요즘 블로거들이 고재열 기자의 안부를 자주 묻는다. 그러다가 '잡혀가는 거' 아니냐고 걱정이다. 혹시 외압 같은 것이 있지는 않은가?
- 그런 것은 아직까지 없다. 어차피 언젠가는 잡혀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마음은 편하다.

짧은 시간 동안 파워블로거가 됐다. 미디어몽구와 기사공유를 하는가 하면 블로거세계에서의 연대활동도 활발하다.
- 방문자 수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예를 들면 나는 '롯데백화점'에 입점했을 뿐이다. 총 방문자 수에서 다음블로거뉴스가 차지하는 비율이 90% 이상이다. 그런 점으로 따지면 미디어몽구는 진정한 파워블로거다. 동영상 기반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미디어몽구의 방문자 유입경로 중 블로거뉴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50% 이하다. 이렇게 다양한 분포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니 롯데백화점의 고급브랜드에 어울린다고 해야 하지 않나?

독설닷컴이 블로그스피어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
- 나는 주로 미디어에 관한 담론을 생산해 왔다. 그것도 매우 폭력적인 방법으로. A4 20장 분량을 사진 하나 없이 그대로 올린 적도 있다. 문제의식은 충만하지만 편하게 즐길 만한 콘텐츠가 없다는 게 아쉽다.
하지만 내가 제기한 문제를 다른 블로거가 다른 방식으로 확산시키는 모습을 볼 때마다 독설닷컴이 일정 정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블로거가 그 문제를 다뤄 주면 재밌다. 특히 언론사나 언론학계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인지도가 올라갔다.
그리고 이것은 좀 슬픈 이야기인데, KBS, MBC, YTN 등 방송사 관계자들이 매우 많은 관심을 보인다. 제보를 하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뤄줄 매체가 하나라도 아쉬운 것이다.

마치 예전에 시사저널 파업할 때 다른 언론사에서 어떤 기사를 올려 주었는지 아쉬워한 것과 같은 건가?
- 그렇다.



고재열 <시사IN> 기자가 27일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누리꿈스퀘어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2008 오마이뉴스 세계시민기자포럼에서 미디어로서의 블로그에 관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시사IN의 새로운 모델을 실험하다


시사IN에 저널리즘 스쿨을 도입하려 했던 과정을 알고 있다. 지금도 유효한가.
- 그렇다. 다만 블로그를 통해 실험을 해야 할 것이 많다. 블로그 인턴제도 그 중 하나이며, 언론사를 꿈꾸는 예비 기자들의 글을 블로그를 통해서 소개하는 것도 추진하고 있다. 일의 과부하가 있기 때문에 크게 할 수는 없겠지만, 기본적인 취지는 언론사 기자를 꿈꾸면서 기사를 한번도 쓰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거다. 접수된 기사는 데스킹을 거쳐 독설닷컴에 노출된다.

일종의 오마이뉴스와 같은 방식인가?
- 그 정도의 규모화는 불가능하지만,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 첫째는 기사를 직접 써보는 것이며, 둘째는 기사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독설닷컴에서 간간히 외부기고자들의 기사를 볼 수 있었다.
- 그렇다. 최재혁 님(세상박록)이 쓴 "내가 조선일보 기자가 되려는 이유"가 가장 최근의 기사다. 이 외에도 사회인사나 언론인 대선배들을 꼬셔서 블로거로 데뷔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안병찬 기자(시사저널 초대 편집인)의 "안병찬의 기자질 46년"을 밀고 있다. 이외에 재야 구라꾼이나 기생 이야기, 대만 배우 데뷔기 등 다양한 인사들을 블로거로 등극시켜서 다양한 목소리를 전파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시사IN도 블로거시스템을 탑재한 시사IN2.0을 기획하고 있지 않은가?
- 안 그래도 시사인 블로그 T/F팀장인 남문희 기자가 편집국장에 당선됐다. 남문희 기자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열정이 많이 있다. 앞으로 시사인이 많이 달라지리라고 본다.



▲ 시사저널 파업 당시 짝퉁시사저널을 들고 시위하는 고재열 기자(사진 : 시사IN)


고재열 기자와의 짧은 도가니탕 인터뷰는 진한 국물이 목구멍에 축축히 적신 것처럼 포만감이 있었다. '꿈꾸는 기자'라니. 세상에 이런 인간문화재, 아니 '기자문화재'가 있단 말인가.
MBC의 한학수 PD(전 PD수첩 담당)는 "기자에게 '전문성'이나 '출입처'는 동일어이며, 그것은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출입처에서 공무원들을 만나다 보면 고급정보를 곧잘 얻지만, 혹시라도 출입처에 대해서 좋지 않은 기사를 내보내면 고급정보에서 제외된다. 때문에 기자는 출입처 공무원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공무원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게 된다. 조중동의 월급 많이 받는 의학전문기자나 과학전문기자가 절대로 황우석 사건을 보도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들은 모두 한패이기 때문이다. 고재열 기자는 '기자'를 버림으로써 '기자'가 된 얼마 안 되는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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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창간 선포식 시사IN의 전신인 참언론시사기자단은 2007년 8월11일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시사IN’ 창간선포식을 열고 새 매체 창간을 대외적으로 알렸다.

시사인 1년사와 2년사의 차이

2007년 9월25일 시사IN 추석합본 신간호가 나오고 꼭 1년이 지나 두 번째 추석합본호가 나왔다.
시사IN은 9월 11일(목요일)에는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창간 1주년 기념회를 성대히 치를 예정이다.
작년의 창간 선포식과 멤버는 다르지 않다.
최광기 권해효가 사회를 맡고, 손병휘(가수), 연영석(가수), 정태춘(가수) 허클베리핀(록밴드) 등 시사IN 홍보대사들이 출연한다.
금요일에는 이에 대한 기사가 몇몇 매체에 뜰 텐데, 언론식으로 표현하면 "시사IN 1년만에 착근에 성공"이라거나 "시사인의 다사다난했던 1년사" 같이 1년이라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언제나와 같이 나는 언론과 생각이 다른데, 1년사가 아니라 2년사로 보아야 한다. 창간 후 1년은 사실 창간 전 1년의 결과물일 뿐이다.



왜 2년사가 중요한가를 보려면 미국 대선을 생각하면 된다. 오버마와 힐러리의 경선과 오버마와 맥케인의 대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사실상 1년 전에 대선레이스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고 볼 수 있다. 선거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시사IN은 1년 동안 독자들과 함께 선거운동을 한 셈이다. 때로는 거리에서 때로는 언론노조사무소에서, 대여섯 번의 이사를 한 끝에 지금의 교북동 보금자리에 입주할 수 있었다.

시사인의 과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PD수첩 방영 이후 독자들이 시사인을 열렬히 구독하기 시작해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PD수첩 방영은 1년 동안 싸워왔던 결실의 마침표일 뿐이다.


▲ 거리편집국에서 기사를 쓰던 당시. 시사저널 파업기자들은 오마이뉴스와 다음 블로거뉴스를 전전하면서도 특종을 터뜨렸다. JU그룹의 다단계 비리나 JMS 비리 등이 그것이다. (사진 : 한겨레21) 


인식공유의 3단계로 본 시사IN 2년

인식의 공유(shared awareness)란 각기 다른 다수의 사람들이나 그룹들이 어떤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개인이나 집단이 마찬가지로 그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인식의 공유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면 '행동'에 도달하게 된다. 행동에 도달하기까지는 3개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1단계 : 모두가 무엇인가를 아는 단계
2단계 :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아는 단계
3단계 :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 단계

이명박이 부패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미 우리는 인식의 1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명박이 부패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뚜렷한 움직임은 없다. 2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이명박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방역권 포기 방침은 인식의 2단계를 넘어서 3단계로 도달했다. PD수첩이 고발하고, 청계광장/여의도에서 여중생들이 촛불을 들고 위험을 알렸기 때문에 3단계 인식에 도달할 수 있었다. 6월10일의 촛불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시사IN에도 인식의 3단계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시사저널의 사장이 부당하게 기사를 도려냈다. 편집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권이 편집권을 먹어버렸다.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인식의 1단계이다. 기자들이 파업을 하고 회사는 중징계와 고소 폭탄을 던졌다. 독자들이 가세헤 힘을 보태 주었고, 시사저널의 부당성을 꾸준히 알렸다. 인식의 2단계이다. 인식의 2단계에서 인식의 3단계는 사실 뚜렷한 구분이 없지만, 직접행동이 일어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인식의 3단계로 갈 수 있는 우호적인 환경은 꾸준히 마련되었다. 시사저널 사태 이후 이와 관련된 보도를 분석해 보면, 대학신문 포함 총 73개의 매체에서 821개의 기사를 쏟아냈음을 알 수 있다. 하루에 2개 이상 시사저널 관련 기사가 떠올랐다. 독자들의 눈물겨운 지원도 큰 힘이 되었다. 시사저널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시사모, 후에 참언론실천시사독자단으로 개칭/해단)이 결성돼 기자들과 투쟁을 함께 했고 검찰에 조사까지 당했다.
진품시사저널구독운동과 문화제, 일일호프, 시사IN 창간과정에는 전국적으로 '자발적 구독운동'을 추진해 전국 20곳에 6,000여 부의 '독자판' 시사IN과 기념물을 뿌렸다. 6천부라는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다.


충남에 사는 아이디 빛의 잉칼님이 두 공주님과 함께 아파트 곳곳을 돌며 창간호를 배달하는 등 전국적인 배포 활동을 벌였고 이 과정을 인터넷을 통해 공유하였다. 뿐만 아니라 충남의 고등학생은 학교와 백화점 등 대전시 곳곳에서 배포활동을 벌였으며, 특히 선생님의 배려로 친구들 앞에서 시사저널 사태와 언론자유의 필요성에 대해서 강의를 했던 일은 흐뭇한 화제로 남아 있다.

배포 부수는 수천부이지만, 배포활동을 인터넷에 공유하며 이 일을 알게 된 사람은 수만명에서 수십만명에 달한다. 시사IN은 이미 인식의 3단계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창간선포식과 PD수첩 방영이 있었다.
방영 다음날 서포터스로 시사인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매우 역사적인 순간에 그곳에 있게 된 것이 지금도 행복한 기억이다. 그때는 중국집에 요리를 시켜 놓고 전화기 옆에서 식사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화장실에 갈 짬도 못 내고 전화를 받았다. 후원계좌번호와 정기구독 예약을 받았다.

소액후원금, 벌써 2억원이 넘었습니다. <오마이뉴스>

거액의 후원금과 투자금을 제외한 순수 소액후원금만 이틀 만에 1억이 모이더니, 하루만에 또 1억원이 찼다. 지방의 유지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독자는 선친이 남긴 유산 20억을 기증할 용의가 있다며 의사를 타진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배구조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1대 주주의 지분은 17%로 제한한 상황이다. 창간기금 30억원이 모이는 것은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앞으로 1년이 더 중대한 고비가 될 것

창간 이후에 대해서 평가하라면 한마디로 "결호 안 내르라 수고 많았습니다"이다.
시사인은 특종과 함께 화려하게 창간했는데, 이른바 신정아 단독 인터뷰다. 이 건은 뉴스데스크에서 다뤄지기도 헀다. 그 이후에 삼성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고발 건이라든지 김경준 씨의 메모 단독 보도와 에리카 김 인터뷰 등 1년 사이에 3번이나 특종을 터뜨렸다. 물론 이것은 언론에서 더 자세히 다뤄질 사안이다.

  • 인식의 3단계는 지금도 유효하다.
    이명박의 언론장악 시도에 방송사가 모두 쓰러진 상황에서 언론사도 힘겹게 버티고 있다. 그 중에서 시사IN이 가장 든든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언론자유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시사인이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것도, 혹은 해야 한다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시사IN인가'를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만약 그것이 설명이 되고 납득이 된다면 이미 시사IN은 두 번째 인식공유의 3단계로 이어질 것이며, 그 행동은 시사인을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년 후에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대안으로서의 시사IN이 건재하기를 바랄 뿐이다.


    인식공유의 3단계 이론은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갤리온)를 참조했다. 촛불집회와 언론소비자주권운동 등 현재의 시민운동 일련의 흐름과 현상을 가장 정확히 분석했을 뿐만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고착화된 현재의 상황에 답답해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어이없고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조금씩 변화시키려 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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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9-1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추석호에 승주나무님 사진이 실렸더만요. 혼자는 아니고 단체사진이지만서도... ㅎㅎ

승주나무 2008-09-17 13:19   좋아요 0 | URL
네~! 개인사진이나 기사는 다음 기회에 ㅎㅎ
 

저는 여행과는 담을 쌓은 사람입니다.
누가 가자고 하지 않으면 집에 꼼짝 않고 앉아서 책을 파든지 글을 쓰든지 하는 전형적인 간서치라고나 할까요?
그런 제가 작년과 올해만 3번의 여행을 하게 됐습니다.

세 번의 여행이 모두 뜨겁고 지친 순간에 도망가듯 훌쩍 날아갔습니다.
마녀의 빗자루라도 떨어진 걸까요? 의도하지 않은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의 힘으로 시사저널 독자소비자운동 마무리 지어

작년에는 시사저널 기자들이 회사와 결별하고 창간작업에 매진하고 있을 때 훌쩍 여행을 떠났습니다.
시사모는 참언론시사독자단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년 동안 기자들과 함께 했던 마지막 1달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고 평가도 좋게 받았던 '자발적 구독운동'은 적지 않은 반대가 있었고, 소박한 독자로서 너무 나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던 찰나 예스24 문학기행이 저를 불렀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남도여행을 2박3일 동안 하고 와서 온몸이 충전된 상태로 거뜬히 한달의 고단한 일정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자발적 구독운동은 전국 20여곳에서 6,000부 이상의 독자판(시사인 호외)을 배포하며 독자소비자운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이 공로로 민주시민언론연합에서 2007년 민주시민언론상 본상을 수여하였습니다.


▲ 예스24 문학기행 때 황석영 작가와 은희경 작가를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이때부터 저의 '작가 투어'가 시작됐습니다. (맨 왼쪽에 다리털 많이 난 사람이 승주나무 ㅋㅋ)





촛불에 길을 잃었을 때 나를 불러준 일본

촛불문화제가 있는 날이면 줄기차게 따라나섰습니다. 처음에는 취재도 하고 인터뷰도 하면서 현장의 분위기를 퍼나르는 데 주력하다가 직접 목소리를 외치며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습니다.
뭐든지 처음에는 신이 나지만, 나중에는 힘이 들기 마련입니다.
게으른 성격이기도 하지만, 촛불의 지속성과 '분화'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물리적인 의미의 촛불은 심지가 다 말라가니 이것이 에너지변환의 법칙에 의해서 고스란히 다른 형식의 에너지로 전환이 되어야만 하는 상황인데, 답이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결국 예상했던 대로 경찰이 강공으로 나가고 대통령과 장관, 한나라당 정치인들이 측면지원을 해주면서 촛불은 황급히 꺼졌습니다.
현장에 있는다는 것이 괴롭고 무기력하고 답답했습니다. 그렇다고 폭력을 사용해서 스크럼을 넘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 때 일본이 나를 불렀습니다.
일본인 손윗동서에게 시집간 처형의 초대로 가족들이 일본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오사카성을 비롯해 오사카 등지를 여행하였습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이 맛난 것 많이 먹고 신기한 것을 많이 봤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상에 남는 것은 NHK 건물 1층에 있는 시립박물관 로비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공작하는 법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쳐준 일입니다. 세대를 건너뛴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함께 갔던 조카 둘은 일본인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신나게 종이접기도 하면서 놀았습니다.




▲ 일본 할머니와 한국 손자/손녀들이 함께 모여 공작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사실 조카들이 할머니들과 놀 때 저는 동서 형님과 저만치 벤치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일본 여행 이후에 별다른 해법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거리에서의 고통을 치유해준 것은 오히려 기형도라는 시인이었습니다.

"<밤눈>을 쓰고 나서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 기형도, 시작 메모

나도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거리의 소음과 구호 소리, 음악 소리는 모두 하나의 시어로 나에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 신호에 응답하는 근사한 시는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나는 최소한 거리의 촛불에너지를 시 에너지로 변환시키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여유를 찾았습니다. 일본여행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큰무덤

부덤보다 차가운 길바닥에 매달려 있던
촛불의 주인이 사라졌다.
그가 죽었다
새로운 촛불의 주인이 나타나 또다시
곤봉과 방패에 살해됐을 때도
사람들은 자꾸 나타나 기꺼이 죽었다
내가 기꺼이 죽을 테니
촛불을 더 달라고 성화다

무덤에는 사연이 많다.
더러는 너와 몸을 섞었던
치욕스러운 겨울밤을 잊고 싶어
죽음을 자청하기도 했고
물론 그보다 사소한 죽음도 있었다
사람이 죽은 자리에는
그를 기억하기 위한 무덤이 하나씩 세워졌는데
금세 사연 많은 큰 무덤이 만들어졌다

큰무덤 위에 누가 초를 꽂았다
촛불에도 사연이 많다
불나방처럼 촛불을 품에 안으려다 날개가 다 타버렸다
사람들이 촛불 앞에서 쓰러질 때마다
빛은 사연을 더해 갔다.
만 가지 사연을 가지고 애타게 타고 있는 촛불이
곧 꺼질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리에서 촛불의 내력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2008년 6월 27일. 거리에서





나의 빈 '상상력 그릇'을 채워준 지리산 여행

지리산 노고단은 나에게 '체력장'이자 詩의 스승이었습니다.
나는 일부러 아무런 글을 쓰지 않았고, 몸으로 남도 땅을 맞았습니다.
남도의 바람과 땡볕과 기후를 받아먹으며 서울촌놈의 땟국물을 남김없이 털어내려 노력하였습니다.
최대한 서울의 사연들이 틈입하지 않는 시적이고 신성한 여행을 그려나갔습니다.


▲ 노고단은 나에게 '술 좀 그만 처먹어라'거나 '젊은 놈이 저질체력이기는' 같은 조롱을 한껏 내뱉었습니다. 땀이 버범이 되고 찜찜한 습기가 온몸을 훑고 지나가도 바람 한점 보내주지 않다가 정상에 올라가서야 이슬과 바람을 뿌려주었습니다. 나는 노고단에게 한껏 욕을 해주고는 마음속으로 절을 수십 번도 더 했습니다. 서울촌놈으로서는 몹시도 귀한 대접을 받은 셈이었기 때문입니다.


▲ 술냄새를 따라 섬진강변을 흘러가다가 인적이 드문 식당 평상에 엉덩이를 깔고 일단 지역 토속 술인 잎새주에 전어회를 곁들였습니다. 전어회는 정해지지 않은 메뉴였는데, 누군가 반드시 질러야 하는 상황에서 정의의 용사 한 분이 기꺼이 지갑을 열어 주었습니다. 메기와 참게로 끓인 매운탕에 노곤함을 잊고 운전사 둘은 대리운전을 부를 요량으로 술잔을 거푸 집어들었고, 나머지 장롱면허를 소지한 사람들은 '뜬금운전'(뜬금없이 운전을 하게 되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오버액션을 취했습니다. 건배의 이름이 '운전해'였습니다. 잔을 비우지 않으면 운전을 하게 되니 알아서 먹으라는 거지요. 누가 보면 유치찬란하다고 하겠지만, 지역에서는 원래 이렇게 노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남도 뒷이야기는 할 것이 너무 많지만 대부분 자랑질에 머무르기 때문에 승주나무 개인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남겨 보았습니다. 아 참, 여행마다 함께 했던 꼬맹이 혹은 어린이 선물 이야기를 깜빡 했습니다.




섬진강변 주막에서 아이들과 셀카 한컨 찍었습니다. 쌍둥이 녀석들이 자꾸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사진 몇 장 더 찍으면서 놀았는데, 가려고 하니 무척이나 섭섭해 하더군요^^

공교롭게도 세 번째 여행을 하면서 초대형 스펙터클 프로젝트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지리산의 산시령(山詩靈)께서 보살펴 주셔서 상상력 그릇을 조금 채웠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제가 남도 출신(제주도)인 관계로 남도에만 가면 큰 힘을 얻고 오는 것 같습니다. 세 번의 여행 모두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청량제처럼 뿌려진 기회였습니다. 이 기회를 잘 잡아야 할 텐데, 큰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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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05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비우는 일, 여행은 바로 그런 걸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재충전의 기운을 넣어 준 여행으로 승주나무님의 프로젝트가 완성되기 바랍니다.^^

승주나무 2008-09-07 20:22   좋아요 0 | URL
네~ 여행을 통해 마음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무리한 여행이 아니라면 여행은 대체로 신선한 자극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는 꼭 성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울보 2008-09-05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다 멋진 여행을 하셧네요,

승주나무 2008-09-07 20:23   좋아요 0 | URL
행운을 얻었지요^^

하늘바람 2008-09-06 0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부럽네요 이런 여행이어야 하는데

승주나무 2008-09-07 20:23   좋아요 0 | URL
^^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은 새로운 종류의 깨달음인 것 같아요~

2008-09-06 0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8-09-07 20:2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무척 아쉽습니다~

Koni 2008-09-07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여행입니다. 새로운 힘을 얻는 여행이란 그야말로 로망.

승주나무 2008-09-07 20:24   좋아요 0 | URL
네~ 왜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로망 그 자체죠^^

2008-09-11 0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1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본 나라시의 나라국립공원은 사슴공원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만큼 사슴이 많다는 이야기죠.


왼쪽에도 사슴


오른쪽에도 사슴


버스에도 사슴입니다.





텃새도 굉장히 심한 편이고 짜증도 잘 냅니다.
특히 사슴과자를 주지 않으면 아무거나 먹어치워 버려 무섭기까지 합니다.
위의 사진은 자동으로 사진을 걸어놨는데 갑자기 사슴이 다가와 조카의 숙제로 쓸 팜플렛을 먹어치우는 장면입니다. ㅋ


사슴을 좋아하는(사슴고기가 아니라-_-;) 우리 조카 민경이도 깡패 사슴의 공격을 받았네요.



처음에는 서로 잘 노는가 싶더니, 어디서 수가 틀렸는지 으르렁 대더라는 겁니다.
조카가 사슴공포증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귀여운 삐끼사슴 한마리가 사슴과자 가게 앞에서 손님들에게 앵벌이를 하고 있네요.
소문에 따르면 예쁘장하고 귀여운 녀석들로 구성된 삐끼사슴단이 당번으로 가게 앞을 지킨다는..
암튼 사슴공원에 가면 사슴과자를 사되 너무 많이는 주지 마세요.
여남은 개에 150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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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8-09-05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가 보고 싶다
 

이라는 제목으로 다음 메인에 하루종일 전세를 진 포스트입니다.
자랑질은 아니지만, 요즘 다음 메인에서 제 블로그에 볼 일이 많이 있는가봅니다.
블로그에 자꾸 불이 납니다.
다음 블로그에서 만난 파비아니 님 반가웠어요^^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한때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였습니다.
지브리에서 만든 이웃집 토토로라는 애니메이션을 참 좋아했습니다.
일본에 놀러갔는데,
토토로 가게가 있더군요.
그래서 이것저것 많이 담아왔습니다.
감상하시죠~


우산을 쓰고 다니는 토토로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보기 딱 좋은 영화죠~


지브리의 다른 작품 <마녀 배달부 키키>에 나오는 고양이 '지지'라고 합니다.


쬐끄마한 빈대떡 같은 인형들입니다. 이런 아기자기한 인형이 일본 장난감을 상징하는 거 아닐까요~



가게 입구 모습입니다. 친척의 말로는 일본 전역에 있는 체인점이라고 하네요. 토토로는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인형체인점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인 것 같네요^^





실용적인 상품입니다. 토토로 화분이죠.



토토로 게시판도 재밌었습니다. 여성분들이 많이 사실 것 같습니다~






역시 쿠션을 빼놓을 수 없겠죠~
배고 자면 잠이 잘 올 것 같습니다.


일본이란 나라는 참 치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인형이나 각종 상품들을 기획하고 이를 추진해 시장을 만들어내는 거 보면요.
우리는 콘텐츠와 상품화라는 말만 부르짖을 뿐 제대로 된 애니메이션을 만들 기반이 언제쯤 찾아올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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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9-05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토로 게시판 사고 싶어요. ㅎㅎ 하지만 참을래요. 무지 비쌀걸요. ^^

승주나무 2008-09-05 10:33   좋아요 0 | URL
자세히 보면 저렴하며 값싼 것도 있습니다.
저는 지레 겁먹고 도망치고 말았다는...^^;

chika 2008-09-05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브리 박물관까지 갔다가.. 너무 비싸서 침만 꼴딱 삼키다 그냥 온 사람입니다.ㅋ (지금은 좀 후회돼요. 그냥 뭐 하나 집어올껄..하고;;;)
중고고서점에서 지브리 애니 송 시디를 건진 걸 그때의 대박으로 기념하고 있고, 제게는 토토로, 네꼬뻐스, 지지 인형있슴다. 토토로 손수건, 오르골도 있고요...저 한국판 포스터에 미야자키 할배 사인 들어간 포스터는 제 방에 붙어있슴다. (왠 자랑질? ㅡ,.ㅡ)
그래도 지금.. 라퓨타에 나오는 거신병 피규어를 못산것이 눈에 밟히고 있는 중이지요. 젤 맘에 드는 피규어였는데;;;;;
내가 벼락부자가 되지 않는 한... ............ (이라고 생각했지만 언젠가 한번은 질러대리란 예감이 듭니다.ㅋ)

승주나무 2008-09-05 10:33   좋아요 0 | URL
우와~ 치카 님, 정말 디테일하네요.
한국에 지브리 박물관지부를 만들면 치카님이 단연 박물관장을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나중에 치카 님과 흥정을 해봐야게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