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꼭꼭 숨은 제주의 여성성을 살려낸 제주 여성 서명숙


서명숙(존칭생략)은 내가 아는 제주 여성 중에서 우리 엄마 다음으로 에너지가 넘치는 여성이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시사저널 파업기자들을 돕기 위해 싸움판 한복판으로 들어가던 때다. "'짝퉁' <시사저널>을 고발합니다"로 필화에 연루된 상황을 가볍게 떨쳐버리고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떠나는 먼발치에서 위태롭게 지켜보던 때가 생각난다. 한국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 후로 소송에 말미암은 사람들이 늘어났고 기자들은 회사와 결별수순을 밟고 있었다. 마침내 먼 순례길을 마치고 그가 돌아올 때는 기자들과 독자들이 세상의 온갖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새매체를 일으켰을 시점이었다. 와인과 현지의 치즈를 한아름 들고 나타난 티없이 맑은 자태의 거무스름한 아줌마는 과연 이국의 정취를 한껏 안고 돌아왔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이 아줌마가 스트레스가 많아서 좀 풀려고 갔구나' 정도만 생각했지, '제주 자연길'이라는 어마어마한 선물을 들고 온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제주는 '여성'의 섬이다. 모든 자연 경관과 사람들의 마음이 섬세하고 온화하다. 하지만 제주를 방문해서 '여성'의 이미지를 찾기는 매우 힘이 든데, 그것은 남성적인 힘에 지배를 많이 당해서 '보이는 부분'은 이미 남성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탑동 부근에 이마트가 생겨난 이후로 제주 동문시장과 재래시장 등 상권이 거의 붕괴되었는데, 얼마 전 신제주에 이마트 2호점이 생겼고 롯데마트도 생겼다. 성산일출봉의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는 신양리 해수욕장에는 삼성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보광이라는 회사에서 대규모 호텔단지를 조성해서 순식간에 '인스턴트 관광지'가 되고 말았다. 이 외에도 제주는 '패키지'라는 치밀한 괴물에 산채로 잡혀 여성성은 아주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 그것을 서명숙이 찾아낸 것이다.


▲ 성산포와 서귀포는 형제다. 그 구비치는 주상절리는 서귀포의 전매특허지만, 주상절리보다 높게 솟구치는 파도는 성산포가 일품이다. 이것은 서명숙도 인정해야 한다.



서명숙은 서귀포 바당(바다) 출신, 나는 성산포 바다 출신


서명숙과 나는 유년이 겹친다. 비록 사회적 경력으로 따지자면 내가 '삼촌'(제주에서는 부모 외에 어른을 모두 '삼촌'이라고 부른다)이라고 불러야겠지만, 이 책에서 '소녀 서명숙'을 만나면 왠지 맘먹고 싶어진다는 거다.

<서명숙의 유년>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와랑와랑(이글이글)한 햇볕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흙길을 팬티와 수건이 담긴 세숫대야를 옆구리에 끼고 걸어가던 여름날이, 바닷속 날카로운 돌멩이가 여린 발바닥을 찢어놓는데도 우린 아랑곳하지 않았다. 짠물을 너무 들이켜 목이 다 쉬고 귀가 멍멍해질 때까지, 우린 몇 번이고 물속에 들락거렸다.
입술이 새파래지고 으슬으슬 몸이 떨려오면 내팡돌에 엎드려서 꼬치처럼 몸을 굴려가며 햇볕에 말리곤 했다. 그러다 몸이 덥혀지면 다시 바닷물에 뛰어들고, 운동신경이 젬병인 나는 개헤엄이 고작이었지만, 내 또래인데도 자맥질을 해서 미역이랑 소라 따위를 건져 올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여태껏 내가 먹어본 가장 맛난 성게는, 소낭머리 맞은편 너럭바위에서 몸을 말리고 있을 때 친구가 잡아와서 나눠먹은 것이었다. 새까만 성게를 돌멩이로 내리치는 순간 터져나온 노오란 속살! 갯내음 물씬한 그 맛을 어찌 잊을까.
지치도록 놀다가 타박타박 돌아오는 길, 그제야 지구리로 오던 동무들이 다시 돌아가자고 붙든다. "맹숙아, 자구리 가게." 집에 서둘러 가야 하는 날에는 도리질치지만, 대부분은 동무를 따라 바다로 되돌아가곤 했다. 바다가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제야 "어멍(엄마)한테 욕들으키여" 하면서 서둘러 머리를 말리곤 했다. 제주 바당은 그렇게 우리의 어린 영혼을 살찌우고, 여린 근육을 다져주었다.
- <제주 걷기 여행>, 본문(23~25쪽) 중에서

<승주나무의 유년>

바닷가에서 태어난 나는 방학이 되면 아침 먹고 바닷가로 뛰어갔다. 해변에서 잘 생긴 짱돌을 하나 쥐고 썰물이 만들어놓은 신천지를 걸어서 갔다. 신천지에는 언제나 소라며 성게, 굴 같은 것이 가득했는데 점심은 그걸 깨먹으면서 해결하고 해가 빨갛게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바다의 이름이 세 개 있었는데 각각 오정께, 통밭알, 수메밑이었다. 수메밑과 오정께는 일출봉을 빙 둘렀다. 일출봉은 나에게 미지의 세계였는데, 수메밑으로 해서 일출봉을 삥 둘러서 걸어봐야겠다는 나의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출봉 뒤쪽에는 돌고래들이 둥지를 틀었다는데, 직접 보고 싶었다. 오정께는 아침의 바다였다. 물질하는 우리 엄마는 수메밑에서는 해삼물을 캐다가 오정께 옆에 있는 우뭇개에서 관광객들에게 파는 일을 했다. 엄마가 바다에 갔다가 벗어놓은 몸빼바지에서 나는 바다내음이 너무 좋아서 밤새 그것만 붙잡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바다 냄새와 엄마의 살내음이 땀내음이 함께 전해져 왔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붉혀지기도 하고 야릇한 구석도 있을 테지만, 어렸을 때는 그것을 어찌 알겠느냐. 수메밑으로는 멸치떼 같은 것들이 모래사장까지 밀려오기도 하는데, 그때는 잔치라도 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어 멸치떼를 잡아갔다. 가끔 밀물에 밀려왔다가 바위 웅덩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어린 고기떼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서너 시간은 족히 재미를 볼 수 있었다. 고기떼들은 쪼로롱 쪼로롱 떼를 지어 가다가 가끔 한번씩 몸을 비틀어서 은빛 비늘을 뽐냈다. 한번은 새끼 복어가 걸린 적이 있었는데, 뜰채로 홱 낚아채니 화가 단단히 난 듯 삐익~ 소리를 내며 몸을 한껏 부풀리는 거다. 나는 겁이 몹시 나서 물가에 던져 버렸는데,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우습기 그지 없었다.
- 5월 5일- 어른에게 더 절실한 어린이날


이처럼 느리고 게으르고 낭만적인 소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수십 년을 굴렀다. 서울사람보다 더 깍쟁이가 되었고, 서울 기자보다 더 날카롭고 빠르고 까칠했다. 그를 물가에, 아니 서울 한복판에 보낸 제주의 바다는 그가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맑은 바람을 어김없이 선사해 주었다.
나도 언젠가는 제주로 돌아갈 것이다. 서명숙은 가슴속에서 청순한 소녀를 귀환시키고 연륜과 인맥을 이용해 제주의 길을 되살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큰 빚을 진 느낌이다. 나의 '제주'는 제주 올레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 낮은 구름을 뒤집어쓴 채 누워 있는 오름 한켠에 앉아서 제주의 격정적인 바람을 맞고 있는 소녀는 서명숙의 분신으로 보인다.

 

이 책은 여행서, 아포리즘, 자서전, 에세이의 종합판이다.


<제주 걷기 여행>이라는 제목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다. 얼핏 보면 '여행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오랜 세월 감정의 앙금이 쌓인 동생과의 재회 과정과 서명숙의 유년을 살지게 했던 '길'이 주는 성찰적 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림들에 대한 회상이 저널리스트의 대중적인 문체로 기록돼 있다. 가끔 서명숙과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기는데, 동향 출신이라 그런지 금방 마음이 통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카페에서 작가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좀 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이고 사유가 듬뿍 담긴 문체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이 책이 다소 유치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 책의 한줄 한줄은 모두 돌담을 하나하나 쌓아올리듯 신천지를 펼쳐낸 경험에서 나왔기 때문에 무게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슬로우'라는 개념을 환기할 수 있었다. 속독과 속보에 익숙한 나에게 '게으른 독서'를 선사해준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처음 쓴 기사는 '엄마를 인터뷰하다'이다.

단순히 제주를 '패키지'로만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읽는 것은 시간낭비일 것이다. 하지만 제주가 주는 비유와 은유의 '와랑와랑'(이글이글)한 땡볕을 한껏 쬐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권할 만하다. (책이 잘 팔리면 현재 6코스까지 개발한 제주올레의 속살이 더 드러날 수 있다. 속살을 속속들이 보기 위해서라도 나부터 책을 많이 알릴 요량이다^^)

걷기는 온몸으로 하는 기도요, 두 발로 추구하는 선(禪)이다.(143) 두 발은 인간의 철학적 스승이자, 걷기는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제주올레를 걸음으로써 당신은 비로소 당신도 모르는 무엇인가가 치유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당신이 얼마나 약하고 여리고 아파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 구릿빛으로 검게 그을른 데다 소녀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왼쪽의 아줌마가 바로 서명숙.



※ 서명숙은 어떤 사람인가?

<시사저널> 창간멤버 서명숙은 1989년 6월부터 2003년 4월까지 15년 동안 정치부 기자·정치부장·취재1부장·편집장을 역임했다. 금창태 사장이 신임 사장으로 부임하던 당시 사장과 한 차례의 면담 후에 '떠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게 된다. 그의 불길한 예감은 100% 적중돼 <시사저널>은 매체가치보다는 '돈'으로 급격하게 방향추가 쏠리더니 2006년 6월 16일 '기사삭제 사태'를 계기로 시사저널 기자들의 길거리 생활이 시작됐다. 서명숙은 2007년 1월 9일 오마이뉴스에 올린 칼럼 "'짝퉁' <시사저널>을 고발합니다"로 인해 사측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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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9-30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가지고 있어요. 제주를 좋아하니까...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승주나무님의 행적으로 봐서 서명숙씨와 인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김없이. 흐흐 .삼촌이군요.

승주나무 2008-09-30 15:35   좋아요 0 | URL
네~ 맹숙이누나라고 부르는 사이입니다 ㅎㅎ
 

우리 동네(화곡동) 공원에 놀러 갔습니다.
주말에 너무 많이 먹어서 일찍 자려고 했지만 살이 찔까봐 산책을 하고 잘 요량이었죠.
그런데 공원 입구 계단에서 재밌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입구 담위 모퉁이에 하얀 물체가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 보니

 


고양이가 주무시고 있는 거였습니다.
사람들이 바로 옆을 지나면서 신기한 듯 멈춰서 구경하다 가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자고 있었습니다.
디카를 가져가지 못해서 좀더 선명하게 찍지는 못했지만 그것도 재밌었습니다.
더군다나 '폰카'는 찍을 때 소리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고양이가 깰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멀리서 찍었습니다. 무서웠기 때문에.
마눌님은 공격할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더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했죠.

 


고양이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겁이 없어져서 점점 다가갔습니다.
좀더 정확하게 고양이의 잠자는 얼굴을 찍기 위해 고양이 바로 앞까지 전진 또 전진했습니다.



 



플래시를 드디어 터뜨렸습니다.
플래시가 터지면 당연히 고양이가 깜짝 놀랄 거라 생각했는데,
플래시가 터지고 '찰칵' 하는 굉음이 들려도 고양이는 요지부동입니다.
저도 막말로 '겁대가리'를 완전히 상실해서 고양이 바로 앞까지 다가갔습니다.
 이놈의 고양이는 얼굴에 카메라를 대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녀석이란 것을 안 거죠.
마눌님은 멀리서 재밌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이서 찍은 고양이의 자는 모습입니다.
성능이 좋지도 않은 폰카로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선명하게 나온 것은
고양이 바로 앞에 다가가서 찍었기 때문입니다.

고양이의 단잠을 방해해서 미안하기는 했지만,
잠이 깨지는 않았으니 그나마 좀 다행이군요.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남긴 댓글에 완전 뒤집어졌습니다.

"난 뭐 누가 인형을 갖다 놓은 줄 알았네"
"완전히 무아지경에 빠진 고양이로세."
"이야~ 정말 대단한 놈이구먼"

간만에 대단한 고양이를 만났습니다.
마치 자기 안방인듯 너무 편안하고 연륜이 묻어난 듯 나이 많은 터줏대감 고양이를 만나서
저녁이 참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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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09-29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자세를 전문용어로(?) 식빵자세라고 합니다.
하이드는 위와 같은 고양이를 만났을때, 적절하게 턱밑이나 귀뒤를 긁어줍니다. (뭐, 그렇게까지 내비두는 길고양이들은 잘 없습니다만) ^^

승주나무 2008-09-30 15:36   좋아요 0 | URL
아하~! 그게 식빵자세였군요. 이렇게 초연한 고양이는 처음봤어요. 길고양이는 아니겠지요~ 완전 말년병장고양이 ㅋ

무스탕 2008-09-29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점 선명해지는 사진이 참 재미있어요 ^^
정말 초월한 냥이네요. ㅎㅎ

승주나무 2008-09-30 15:36   좋아요 0 | URL
네~ 선명해지는 만큼 제 간도 커지는 장면이지요 ㅎㅎ

바람돌이 2008-09-29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숙면을 취하면 피부가 고와지는거 맞아요. 저 고양이 털좀 보라구요. 어디가 길냥이인가 말입니다. ^^

승주나무 2008-09-30 15:36   좋아요 0 | URL
요즘은 길냥이들도 웰빙쓰레기 먹어서 털이 제법 곱답니다 ㅎㅎ

Koni 2008-10-03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생김새도 이쁜걸요. 늠름한 길냥이군요.

승주나무 2008-10-05 14:07   좋아요 0 | URL
아~ 길고양이를 길냥이라고 하는군요 ㅋㅋ
오늘 하나 배웠습니다^^
 

우리 세대라면 별로 이상한 이야기도 아니지만,
어린이 시절 나의 소원은 "김일성을 죽이는 것"이었다.
매일 밤마다 김일성을 죽이는 꿈을 꾼다.
북파공작원이 되어 북한군의 경계망을 뚫고 들어가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암살을 하는 것을 고민했다.
어린 시절 상상력 속에는 '암살'이라는 키워드가 '대응댐'처럼 버티고 서 있다.

아래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이의 모습에서
어릴 적 상상 속에서 김일성을 죽이러 다니던 기억이 잔인하게 스친다.




이 사진으로 197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닐 울비치는 아래의 설명을 첨부해 놓았다.

'1976년 10월 6일 태국의 수도 방콕의 타마사트 대학에 결집한 좌파 학생과 주변에 모인
우파 세력이 충돌했다. 총격전이 시작되고 국경 경비대가 동원되자 우세를 보이게 된
우파측은 극단적인 폭력을 사용하였는데, 학생을 때려 죽여 나무에 매달거나 길 위에서
태워 죽이는 참혹한 광경을 연출하기까지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수 십 명이 사망하였고 수 천 명이 구속되었으며 결국 급진적인 학생운동 세력은
일망타진되고 말았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가 국정의
실권을 쥐자, 1973년 학생궐기 이후 계속되었던 태국의 민주화 시대는 종지부를 찍었다.'



▲ 어린이를 포함한 청중들은 해맑게 웃고 있고, 시민들에게 맞아 죽은 좌파 여대생은 나무에 목이 졸려 반쯤 떠 있고, 그 사체를 의자로 무섭게 내리찍는 한 남자가 있다. 장면 하나하나가 충격적이다.


태국의 극우적 현대사는 우리나라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촘스키의 <여론조작>이라는 책에서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의 언론학살을 보았다.
그리고 바로 지난주 MBC <W>에서는 2년 동안 언론인 수십 명이 테러를 당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조사는 전무한 스리랑카의 실정을 보았다. 노동부 장관은 방송사에서 뉴스를 진행하고 있는 뉴스 디렉터를 끌어내 짓밟고 때리고 무릎꿇렸지만, 당당히 다른 언론사에도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군정'이 들어선 이후로 '극우'의 손아귀에서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조금이나마 민주화를 진척시켜 위와 같은 장면은 좀처럼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다.
사람의 인식이란 유혹당하기 쉬워서, 유혹의 극단에 이르면 잔인한 살해도 해맑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점이 온다.
사실 내가 하고 있는 사회운동이란 '목숨을 건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조금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조금 더 무서운 것을 피하기 위해, 조금 덜 무서운 것들을 하고 있는 하루, 또 하루다.


※ 사진과 설명글은 <이연의 이미지, 텍스트 읽기>(http://image-reader.sisain.co.kr/1)에서 얻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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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9-29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 말을 해야 하죠? 인간이란게 도대체 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사진입니다. 끔찍하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은.... 저런 인간의 야만이 과연 교육으로 정화되어질 수 있는걸까요? 이해 불가능하지만 절대 현실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지금. 그래서 더 끔찍한지도 모르겠네요.

승주나무 2008-09-30 15:37   좋아요 0 | URL
어쨌든 인생을 살면서도 자신의 인생이 아닌 것이지요
 

블로그를 운영하며 시사와 책, 일상에 관한 글을 자주 쓰게 된다. 오랫동안 기다린 책이 한 권 나와 세심히 읽고 나의 생활을 버물여 글을 올렸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작가와의 인터뷰가 성사됐다. 출판사는 물론 작가까지 글을 쓴 나를 무척 궁금해했다는 전언이었는데, 블로그의 글 하나가 만들어준 인연에 감사하며 손낙구 씨 가족과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는 9월 19일 점심께 후마니타스 출판사와 근처 식당에서 이루어졌고, 손낙구 씨 외에도 책에 발가락 그림을 그리면서 데뷔한 딸 손해인 양과, 책임편집을 맡은 박미경 씨, 리더스가이드의 일반 독자 회원이 가세하면서 자연스럽게 '팀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우리'는 책이 주는 진지한 이야기 외에도 세입자로 살아가는 일반 소시민의 이야기와 책을 만드는 에피소드 등 시종일관 '잡담 같은 인터뷰'를 유지했다. 삐딱한 출판사(후마니타스)와 삐딱한 작가, 삐딱한 독자가 만나니 당연히 삐딱한 인터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 손낙구 씨는 사실 부동산보다 '노동' 분야의 전문가다. 꼬박 19년 동안 노동자들과 함께 일했고, 5년간은 민주노총 대변인으로 일하며 기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대변인'이라는 평판을 들었다. 그 후 자리를 옮겨 4년 동안 심상정 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는데, 그 때 정부기관이 숨겨 놓은 '대외비급' 통계자료를 많이 얻어냈다.
그가 ‘부동산’에 올인하게 된 이유는 인터뷰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는 ‘부동산’과 ‘노동’이라는 두 개의 먹이사슬이 서민들에게 두 배의 고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토지공개념에 대한 공감대 기득권 사이에서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있는 지금 기회에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을 ‘출간의 변’으로 내놓았다.



▲ 필자는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담고 싶은 욕망이 있고, 편집자는 많이 읽히고 싶은 욕망이 있기 마련인데, 밑바닥에서 19년 동안이나 서민들을 접한 손낙구 씨는 서민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다툴 일이 없었다고 한다. 왼쪽은 <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 손낙구 씨, 오른쪽은 후마니타스 책임편집 박미경 씨




사기와 거짓으로 점철된 '부동산 관련기사'

- 나는 가장 거짓말이 많이 들어가는 장르가 외신 번역과 '통계'라고 생각한다. 동의하는가?
"물론이다. 통계만큼 거짓말이 많이 들어간 자료는 없다. 통계는 숫자와 그래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어떤 문자보다 설득력이 강하다. 실제로 통계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기'가 이루어졌다. (옆에 앉아 있던 박상훈 대표는 "영국의 유명한 수상 벤자민 디즈레일리가 남긴 '거짓말'을 환기해 주었다. ‘거짓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There are three kinds of lies: lies, damned lies, and statistics.)    

- 말이 나온 김에 건설 관련 기사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다. 나도 시민기자를 하고 있지만, 신문사는 이미 장사치가 다 됐다고 생각한다. 기사의 반 이상이 광고성 글이며, 부동산 가격과 주식시세를 교란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한 기사를 보면 화가 나기까지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 부동산 기사가 아닌가? 이런 기사에 대해서 독자에게 주의사항을 알려 달라.
"기자들의 좋아하는 기사는 '섹시하냐' 그렇지 않느냐 아닌가. 자극적으로 써야 잘 팔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동향에 비해 과도하거나 모나게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독자는 이런 점을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하지만 어찌 기자들만 탓할 수 있겠는가. 구조적인 문제인걸. 정보의 원천은 주로 정부기관이나 건설자본 연구소, 그것도 아니면 건설광고주에게서 나온다. 이런 기사가 약 80% 정도는 된다고 본다. 이런 기사는 정말 잘 봐야 한다."

- 언론에서는 그린벨트 해제나 공급확대 등으로 무주택자를 없앤다고 공언하고 있는데, <부동산 계급사회>에서는 언론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 동굴이나 움막에 거주하고 있는 인구가 무려 11만명이나 된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2006년 국정감사 때인 9월 말에 '판잣집ㆍ움막ㆍ동굴에 11만 명이 산다'는 요지의 통계를 발표하자 파란이 일었다. 베이징원인도 아니고 21세기의 동굴이라니 믿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관심을 갖지 않을 뿐 명백한 사실이다. 뉴스도 문명도 이들을 비껴간다. 좌파 척결이니 하며 무서운 표정을 짓는 보수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온정이 있는 보수주의자라면 이 사람들을 가만히 방치하지는 못할 것이다. (<부동산 계급사회>에서는 『부산일보』 탐사팀의 끈질긴 탐사취재로 동굴ㆍ토굴집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8차례나 보도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220쪽))



▲ 손낙구 씨는 우파 집권세력에게 수난받는 좌파에 대해 "경기장을 넓게 쓰지 않으면 좌파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연히 1주택자들도 포옹해서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경기장을 넓게 쓰지 않으면 좌파는 살아남지 못할 것

- 우리나라도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서 '부동산'의 비중이 너무 큰 거 아닌가?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연원을 말하자면, 땅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던 봉건주의에 대한 일종의 자유 선언이었다. 땅 중심에서 조금 벗어나자는 사회가 자본주의인데, 우리나라를 보면 아직도 봉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회인 것 같다. 우리나라는 형식적으로는 토지개혁을 통해 봉건제를 철폐했지만 자본가가 지주를 대신해 토지를 다시 사들이면서 역사의 바퀴를 되돌리고 있다."

- 그러면 한국의 자본주의는 '부동산 자본주의'라고 불러야겠다. 세계적으로 매우 희귀한 체제다.
"부동산으로 계급을 나누는 것은 마르크스에서도 나오기 어려운 개념이다. 자본주의의 본질이 '노동'을 상대하는 개념 아닌가. 그런데 한국 사회는 노동과 부동산, 이 두 개의 먹이사슬이 함께 돌아간다. 그래서 두 배로 더 고통스럽다. 문제는 이 부동산이 인간의 전 인생을 통제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평생 일을 해서 3억원을 모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1억5천만원으로는 집을 얻고, 나머지 1억5천만원을 가지고 여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집값이 3억원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에게 남은 돈은 하나도 없게 된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사람들은 '투기를 행복과 교환'한 셈이다."

- 하지만 상속세에 대해서는 비판 여론이 더 거세지 않은가. 상속세가 무엇인가? 대체로 부동산 재산에 대한 세금이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이 지난 4월 상속세 폐지와 경감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을 때 세율을 내려야 한다는 응답이 67.9%였는데, 오히려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상속세 폐지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결국 현실은 이 책이 주장하는 바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우리의 현대사, 아니 역사를 통틀어서 세금이 복지수단이 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당연히 세금에 대해서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집권세력들은 기회주의자답게 세금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을 악용하는 정책들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 하지만 좌파도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나? 대체로 우파들은 욕망을 중심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한편, 좌파는 당위를 중심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서민들의 삶에 설득력을 주는 것은 대체로 우파적인 대안이다. 최근의 감세 논쟁에서도 ‘복지’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인기도 좋지 않기 때문에 야당조차도 감세 맞불작전을 펼치는 형국이다. 즉 '세금'의 본래 취지는 뉴스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좌파'나 '진보'라는 사람들이 예전과 다름 없이 '구닥다리' 수법으로 투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동운동을 오랫동안 한 사람으로서 그 점에 대해서 고민을 했으며 인정한다. 나는 현실의 좌파와 이론의 좌파로 구분하고자 한다. 당신이 말하는 '좌파'는 '이론의 좌파'라고 할 수 있겠다. 좌파의 행동반경이 여기서 문제가 되는데, 나는 '경기장을 넓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대변해야 할 사람들은 무주택자가 아니라 집을 1채 가진 사람들을 포함해야 한다. 집을 소유하게 되면 당연히 보수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는 보수화가 아니라 집 때문에 고통을 덜 받게 하는 것이다. 23년 운동을 하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는데, '성선설' 가지고는 뭔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성선설'과 '성악설'을 적절히 버물여야 제대로 된 그림이 그려진다. 좌파든 우파든 정치가 아닌 것과 정치인 것의 구분을 없애야 한다. 정치의 사각지대, 언론의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 (뉴타운 폭탄이 떨어진 서울에서는 1주택자나 무주택자 할 것 없이 도태되어 가고 있다)


 

▲ 손낙구 씨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딸(손해인)과의 공동작업이었기 때문에 해인이를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필자를 착취하기로 유명하다는 그 출판사..


- 책의 머리말을 읽어 보니 집필 과정의 애환이 서려 있었다. 특히 이 출판사는 필자를 착취하기로 유명한 곳이 아닌가. (손낙구 씨는 <부동산 계급사회>를 집필하며 3개월간 출판사에 출퇴근하면서 라면을 함께 끓여먹었다. 그 전에 <법률사무소 김앤장>을 쓴 장화식 씨는 2개월간 이와 같은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책을 만들다 보면 필자와 편집자가 많이 다투기도 한다는 데 에피소드는 없었나?
(편집자) " 필자는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담고 싶은 욕망이 있고, 편집자는 많이 읽히고 싶은 욕망이 있다. 서로 이러한 생각이 앞서가다 보면 다툼이 벌어진다. 하지만 손낙구 선생님은 19년의 '현장경험'이 있고 대중과 호흡하는 법을 출판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번 출판작업 전체를 지휘하게 되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출판사에서 요청한 사항을 하루 만에 만들어오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손낙구 씨는 편집자의 말을 들으며 "그게 옳은 주장이니까"라는 말을 거듭 반복했다.)


- 출판사보다 책을 잘 만드는 필자라. 참 재밌다. 이 책의 딜레마는 역시 통계가 아닐까 한다. 우석훈 씨는 통계와 책 판매에 정비례 관계가 있다며 통계자료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부동산 계급사회>에 있는 '통계 처리'는 어떻게 했나?
"정말 그렇다. 이 책에서 통계는 사실상 시작과 끝이다. 삽화, 퀴즈, 요약자료 등등의 조미료를 등장시킨 것도 통계 때문이다. 통계의 원소인 숫자가 독자를 괴롭힌 것은 사실인데, 그렇다고 통계를 빼게 되면 이 책의 힘이 쫙 빠져버린다. 하지만 정공법으로 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취지는 알겠지만, 중요한 것은 시장의 반응이 아니겠나? 사실 통계도 통계지만 <부동산 계급사회>라는 제목도 굉장히 위험한 발상 아닌가?
(편집자)"제목은 4월에 처음으로 제기되었는데 장고 끝에 원 제목을 그대로 갔다. 그야말로 정공법이다. 책이 나온 후에 지인들이 나더러 '책 파는 거 포기했구나'하며 비아냥거렸다. 책을 팔기보다 이 책의 존재를 너무나 알리고 싶었다. 책에서 담은 문제의식이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걱정했던 것보다는 통계와 숫자가 잘 받아들여졌다. 나오기 직전까지도 팔릴까 걱정을 했는데, 2주 만에 3천부가 나가 재판까지 찍게 됐다."

- 축하한다. 이 책은 그림을 잘 그린다는 따님의 '데뷔작'이기도 하지 않은가?
"해인이(발바닥 그림을 그린 손낙구 씨 딸)를 등장시킨 것 역시 일종의 전략적 선택이다. 책을 읽히기 위해서는 독자들이 이해를 해야 하는데, 중3이 알아볼 수 있게 쓰자는 것이 대원칙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통계자료와 그래프를 누그러뜨리는 효과도 필요해서 해인이를 작업에 동참시켰다. 3개월 정도 그림 작업을 했는데, 데이터와 개념을 이해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러면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책 표지그림은 '퀴즈' 형식으로 돼 있는데, 원래는 대한민국 지도에 발바닥 인간 100명이 아둥바둥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각 계층의 표정을 일일이 넣어가며 갖은 고생을 다 했는데, 막판에 '그림작가'가 그림을 빼라고 하니 출판사 디자인팀과 필자가 허탈해할 수밖에 없었다.


손낙구 씨는 <부동산 계급사회>의 집필계기를 설명하며 '지식인들의 패배주의'를 경계했다. 동굴에 서식하는 인구가 11만명이 된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하면서 자료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는데, 한 목사님이 찾아와서 손을 붙잡으면서 '이건희 씨한테라도 말해서 그들을 구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하며 간절히 부탁하는 모습을 보고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대통령이나 서울시장, 경기도지사가 조금만 협력하면 이들은 당장이라도 동굴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 역설했다. 흔히 "경제는 심리다"라고 하는데, 손낙구 씨와 인터뷰를 하면서 부동산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이 떠올랐다.

"부동산은 관심이다."




▲ 손낙구 씨의 가족, 기자, 도서포털 리더스가이드의 일반 독자, 출판사 편집자는 점심을 곁들이며 3시간 동안 책과 일상에 대해서 '까칠한 잡담'을 이어갔다.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찍은 기념사진.
 


▲ <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 손낙구 씨와, 발바닥 화가인 딸 손해인 양의 공동사인, '승주나무'는 기자의 블로그 필명이다.

 

 



▲ <부동산 계급사회>는 19년 간 노동운동을 한 저자 손낙구 씨가 당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현재 진보신당 대표)의 보좌관 시절 정부기관으로부터 끈질기게 받아낸 귀중한 통계자료와 신문기사 자료를 서민 친화적인 글쓰기로 녹여낸 작품이다. 중3인 딸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다듬으면서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출간작업을 할 때는 후마니타스 출판사에 3개월간 출퇴근하며 라면을 함께 끓여먹으며 책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최근 10년 안에는 이 정도의 대중적인 부동산 인문사회서가 다시 태어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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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9-23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즐거운 만남이었군요. 못간게 아쉽.

승주나무 2008-09-23 18:27   좋아요 0 | URL
오셨으면 재밌었을 거에요^^
 



한 여성이 지갑을 꺼내려다 지하철 직원의 제지를 받습니다.
지갑을 꺼내 보았자 전원은 다 꺼져 있습니다.


역시 무심코 지갑을 들이대는 시민들이 많습니다.
지하철 통과기를 그냥 지나쳐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놀라운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지하철 위로 가면 분위기는 더욱 밝습니다.


 

 


차도에 차가 다니지 않고 어린이들이 자리깔고 그림그리니 참 정겹게 보입니다.
차가 쌩쌩 달려서 무섭고 여러 가지 신호등과 도로표지판으로 통제된 공간으로만 보였던 차도가 캔버스로 변신해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동심은 오늘 신나는 하루였을 겁니다.
언론에서는 차 없는 날을 홍보하기 위해 수백 건의 기사를 쏟아냈고,
차 없는 날을 지내고 나서는 그를 알리기 위해 또 다시 수백 건의 기사를 쏟아냅니다.
올해는 강제성이 좀 덜해서 그랬는지 교통량이 예년에 비해 반밖에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오늘 하루를 지내면서 문득 <맹자>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자산(子産)이 정(鄭)나라의 정사를 맡아 보았는데, 자기가 타는 수레로 진수와 유수에서 사람들을 건네 주었다. 이를 두고 맹자가 말했다. "은혜롭기는 하나 정치는 할 줄 모른다. 매년 11월이면 도보로 건너는 널빤지의 작은 다리가 이루어지고, 12월이면 수레가 지나는 큰 다리가 이루어지면, 백성들은 물을 건너는 것을 걱정하지 아니한다. 군자가 정사를 공평하게 하면, 길을 나가서 사람을 피하게 해도 좋다. 어찌 사람마다 건네 줄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 모든 각 사람으로 하여금 다 기쁘게 하려면, 날마다 그렇게 해도 부족할 것이다." - 맹자 이루하 편
子産聽鄭國之政, 以其乘輿濟人於溱洧. 孟子曰:  「惠而不知爲政. 君子平其政, 行辟人可也. 焉得人人而濟之? 故爲政者, 每人而悅之, 日亦不足矣. 」

하루 차비의 반값을 아끼기는 했지만, 차비야 그냥 내면 그만입니다. 생색만 들어준 기분이 들어 씁쓸했습니다. 교통량이 11%라고는 하지만 서울의 교통량은 내일이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검은 매연으로 뒤덮일 것입니다. 남은 것은 서울시장의 '업적' 정도겠지요.

뉴스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드디어 그린벨트와 군사보호구역이 '삽질'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린벨트 100㎢에 이어 군사시설보호구역 213㎢가 해제됐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수도권의 환경문제를 위해 마련된 최소한의 장치인 '수도권 공장 총량제'마저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수년 동안 롯데그룹과 공군 간에 논쟁이 계속되던 제2 롯데월드가 곧 착공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제2 롯데월드는 롯데 측이 지난 14년 동안 요구해온 과업이며 112층짜리(555m) 마천루가 특징입니다. 서울의 군사안전 문제를 제기하며 끝까지 초고층 빌딩 신축을 반대해온 김은기 공군참모총장은 이 일로 인해 옷을 벗게 됐습니다.

또 이런 농담이 생각납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끓는 가마솥에 들어가야 하는 형벌인데, 죄인들이 끓는 물에는 안 들어가고 담배를 피고 있더라는 겁니다.
그는 지옥이란 곳이 이렇게 널널한 곳인 줄 알았는데, 잠시 후에 지옥 가마솥을 지키는 자가 한마디 합니다.
"10분간 휴식 끝, 100년간 다시 잠수!"

2010년 이맘때쯤 다시 차도에서 아이들을 볼 수 있겠죠. 그때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네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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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9-23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만 봤으면 좋겠어요, 이런 1회성 전시행정
오늘 평소보다 더 붐비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 자가용 운전자들은
아, 역시 못할짓이야, 나는 꼭 차 끌고 다녀야지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승주나무 2008-09-23 13:13   좋아요 0 | URL
저도 운전만 원활히 했으면 차 없는 거리를 시원하게 밟아 보았을 텐데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