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철학사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 지음, 박민수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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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듀런트라는 미국 철학자의 <철학 이야기>(문예출판사)를 통해 나는 철학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책을 한 권 집으면 다음 권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는 말처럼 철학의 매력(사실은 듀런트의 문장)에 이끌린 나는 그 어렵다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잡고 읽었다. 좋은 구절을 정서하면서 여름방학 두 달을 다 보냈다. '마녀의 빗자루 효과'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됐는데, 에티카 5장을 다 읽을 쯤에는 뽕 맞은 것처럼 몸이 붕 뜨는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도서관 한가운데에서 뽕 맞은 상태가 된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때부터 나는 틈만 나면 스피노자, 스피노자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이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는지 철학과의 교수는 나에게 의미심장한 조언을 해준다.

"승주야. 특정 철학자의 저서를 통해 철학 전체를 관망하는 것은 좋지 않다. 철학사 전체를 통해 흐름을 조망하고 특정 철학자로 다가가는 것이 좋겠구나."

나는 당장 이 말을 시행에 옮겼다. 철학사 중에서 읽을 만한 책을 선배에게 물어서 '러셀'의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를 찾아낸다. 러셀은 이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철학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철학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은 러셀뿐이 아니다. 베르그송도 철학자이면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서양철학사>는 러셀의 재기발랄한 문장으로 오감을 자극한다. 다만 나는 그때 <스피노자>라는 유럽의 합리론에 귀의해 있었기 때문에, 라이벌인 영국 경험론의 계보를 갖고 있는 러셀의 서술 방식이 유감스러웠다. 특히 스피노자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그의 철학과는 무관하게 철학자로서의 삶의 자세는 위대한 철학자들의 존경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 말은 사실 철학보다 철학 외적으로 스피노자를 깎아내리는 것에 다름아니었다.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기는 하지만 대중적인 책이다. S.P.램프레히트의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는 정리가 무척 잘 돼 있다. 철학에 관심이 많은 비전공 철학도에게 철학사의 핵심 요소를 가장 깔끔하게 설명해줄 것이다. 분량도 한권으로 깔끔하다. 만약 철학의 내부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코플스톤의 철학사 시리즈를 추천하고 싶다. 지금은 절판돼 아쉽지만 <그리스 로마 철학사>와 <중세철학사>, <대륙합리론>, <영국경험론>, <현대철학사> 등 시대별로 이루어진 시리즈는 전공 철학도들에게 필수 도서로 추천되곤 했다. 코플스톤처럼 독하게는 아니지만 철학교수들이 사랑하는 철학책은 요한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상,하)이다. 나도 상권을 읽고 부분 부분 참조하긴 했지만, 철학의 내면과 상황적 필연성을 개연성 있게 잘 연결시킨 점이 만족스럽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책들은 서양철학사에 머물러 있으며 <세계철학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실정이다. 중국의 철학은 풍우란의 <중국철학사>(상,하)(까치), 인도의 철학은 라다 크리슈난의 <인도철학사>(1,2,3,4)(한길그레이트북스)를 보면 된다.

이제야 본서를 소개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광고 카피 때문에 조금은 주저했던 것도 사실이다.

철학의 본고장 독일에서 출간되어 60만부 이상이 팔렸고,
전 세계 20개국에서 번역된 세계 최고의 철학사!
1950년 초판 출간 후, 끊임없는 개정과 증보를 거듭해 1999년 17번째로 개정된 최종 결정판의 완역 출간!

이 책은 현재적 가치에 충실하며 사실은 영원한 질문의 다른 표정인 현재적 질문을 끝까지 놓지 않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믿어도 좋은가?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던 세 가지 원칙은 책의 어떤 면을 펼치더라도 위배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내게 매우 만족감을 주었던 이유는 두 가지다.

1. 처음으로 만난 '세계철학사'다.
2. 강의 방식을 훌륭하게 탈피했다.

철학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철학사'를 한 권에 담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것이다.
대체로 서양철학사, 중국철학사, 인도철학사 이런 식으로 단행본을 나누게 되는데, <세계 철학사>는 인도철학, 중국철학, 서양철학을 모두 소개하고 있다. 1,200페이지라는 분량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평생을 놓고 사유하며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철학사에서 아쉬웠던 점은 똑똑한 선생이 나타나 강의를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세계 철학사>는 처음으로 책에서 나와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말을 걸어준다는 것은 상황을 교과서처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철학자나 그 상황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를 따져 준다는 말이다. 1,200쪽을 단숨에 읽을 수는 없지만, 밤에 잠자기 전에 고요한 기분으로 오래 두고 읽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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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8-11-14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힐쉬르베르거, 렘프레히트 등등의 책들이 책상 앞에서 노려보고 있네요.. 이 책들 언제나 제대로 읽어볼지 졸업 전에는 해야될텐데ㅠ 소개시켜주신 세계철학사도 나중에 한번 펴볼게요 감사합니다.

승주나무 2008-11-14 22:14   좋아요 0 | URL
오~ 바라 님~ 이미지가 엄청 길어서 아래가 많이 남네요. 철학도이신가 봐요, 반갑습니다. 힐쉬르베르거와 램프레히트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후자를 추천합니다. 후자를 먼저 읽고 전자를 읽으면 더 좋을 듯합니다.
 
 전출처 : 승주나무 > 작가와의 만남 리포터 관련...

언젠가 작가와의 만남 리포터와 관련해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충분히 예상하셨으리라고 봅니다.

http://blog.aladin.co.kr/culture/2350549

여기 발표는 했는데,

http://blog.aladin.co.kr/culture/2336327

리포터 관련한 내용이 삭제된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페이퍼가 삭제됐으니 제게 온 메일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작가와의 만남 리포터 1기의 활동 시기는 2008년 12월 31일까지이며,
당첨 분야 도서의 알라딘 작가 행사에 참석하신 후 후기 블로그를 작성해 주셔야 합니다.

자세한 활동 사항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작가 행사 오픈시 담당 분야 리포터에게 안내 sms 발송됩니다.
2. sms 수신 후 알라딘 문화이벤트 초대석 서재에서 이벤트 내용을 확인하신 후,
   행사 당첨자 발표 1일 전까지 참석 여부를 아래 메일로 보내주세요.
    - 문화이벤트 초대석 담당자 :
she@aladin.co.kr
3. 행사 참석하신 후 7일 이내에, 문화이벤트 초대석 > 후기 게시판에 행사 후기를 올려주세요.
    - 행사 후기 작성시 글 하단에 반드시 <작가와의 만남 1기 아무개>의 형태로 서명을 남겨주세요.
4. 등록된 행사 후기에 대해서는 알라딘 상품권 5만원을 지급합니다.
    - 상품권은 행사일 이후 7일째 되는 날 일괄 발급됩니다.



제가 궁금한 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현재 알라딘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하고 있는데, 제게 sms가 온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네요. 아직 시작을 하지 않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분명 11월 16일인가부터 한다는 공지를 보았거든요. 언제부터 시작하는지 명확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제가 볼 때는 리포터 모집 공지를 하고 발표만 할 게 아니라, 구체적인 안내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알라딘 측에서는 준비가 잘 안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준비가 안 됐다면, 알라딘 리포터는 2009년 1월 정도에 시작했어야 옳은 게 아닐까요.

3. 행사 당첨자 발표 1일 전에 참석 여부를 밝히지 않고 후기를 쓰면 안 되는 것인가요. 실제로 어떤 행사가 언제 있는지 뒤늦게 알 때가 많습니다. 최근 진행되었던 손낙구 씨 강좌도 뒤늦게 알아서 참석해 후기까지 남겼습니다. 최소한 리포터로 뽑어 주셨다면 리포터들에게는 일정표를 미리 알려줘서 신청을 별도로 받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4. 알라딘 인문사회 리포터로 선정되어 참 기쁘고 고마웠는데, 이후 진행되는 상황을 기다리면서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활동기간인 12월 말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알라딘이 의욕을 앞세워 일을 성급하게 추진했다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답변을 바랍니다. 알라딘이 조금 더 세심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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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제민주화' 1년 결산



2008년 벽두에 나를 흔들었던 화두는 '경제민주화'였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명박 후보가 단지 '경제'라는 두 글자로 대통령이 되는 모습을 보고 치욕스러웠다.
그 두 글자는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의 수사였던 '경제'와 토시 하나 다르지 않았고, 키는 1cm도 자라지 않은 상태였다.
정치민주화를 제물로 한 경제성장은 먹고살기 바빴던 우리들에게 '민주주의의 유예'를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지금도 똑같은 '유예'를 요구하는 모습에 치가 떨렸다.

처음에는 주변 언저리부터 살폈다.
마침 좋은 소재가 있었다.
경제민주화와는 상관 없을 것 같지만,
경제민주화는 물론 민주주의 자체를 뿌리부터 위협하고 있는 '삼성왕국'과 '법률사무소 김앤장'은 벽두의 좋은 주제임이 틀림없었다.

 

사실 그 전에 <한국경제 새판짜기>와 2007년의 핵폭풍 <88만원 세대>를 교양수업처럼 들었던 터였다.
대선과 맞물리면서 김상조 교수(한국경제 새판짜기 공저자)와 우석훈 박사는 경제라는 화두를 바르게 피려고 노력하였지만,
그들은 세상을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의미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즉, '세상이 움직여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이들로 인해 세상 사람들은 지금 상황이 잘못돼 가고 있으며, 바꾸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막연히나마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우석훈과는 그 후로도 계속 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우석훈이 한국경제 대안시리즈 4부작을 최근에야 완결지으며,
<88만원 세대>(경제대안시리즈1부)에 이은 2,3,4부를 계속 쏟아냈기 때문이다.

우석훈은 딴지일보 김어준에 의해서 <호러경제학>이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는데,
나는 이 평가가 너무 희화화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김어준은 우석훈에 나오는 등장인물(?), 즉 우리들이 죽거나 도태되는 현상 자체를 너무 피상적이고 극적으로 묘사했다.
오늘도 수십 명이 짧은 생을 포기하고 한강물로 뛰어드는 생생한 현실을 '호러'라는 장르에 대비할 수 있을까.
'호러'라는 수식어는 우석훈이 그 상황을 무미건조하게 표현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실제 우석훈이라는 사람과 이야기를 해보면, 감수성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그가 사람들이 죽어 떨어져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묘사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펑펑 울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우석훈의 지론에 '경제학'이라는 단어를 허락할 수 있다면 '감수성 경제학'이라고 이름붙이고 싶다.
그는 자칭 '비주류' 혹은 'C급 경제학자'이다.
경제학은 아무리 복잡한 수식을 동원해도 그 안에는 몇 개 안되는 명제들을 토대로 삼기 마련인데,
우석훈은 경제학의 토대를 존중하기보다는 토대 아래 쓰러져가는 형이하학적 경험치들을 일반화하고 수식화하는 데 골몰한다.
때로 많은 비약으로 인해 그의 주장이 결함투성이라는 판단이 들 때도 심정적으로 이해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도 그 못지 않게 감수성의 소유자라서 그런가 보다.
전쟁으로 따지면 그는 '전사'라기보다는 '책사'에 가깝다. 그것도 눈물이 많은...


 
장하준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교양과목 삼아 읽었던 <쾌도난마 한국경제>와 <장하준, 한국경제의 길을 말하다>라는 책은 논외로 하더라도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를 통해 장하준의 '전사적 면모'를 만나게 되었다.

장하준은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공격을 받는 독특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일반 독자로서 그의 지론에서 맡을 수 있는 '향기'는 '엘리트'이다. 그는 엘리트 경제정책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성급하게 말하면, 마치 박정희의 경제 책사 오원철(吳源哲)씨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화두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국가'와 '통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정책'이라는 형식으로 수렴된다.

그의 주적은 '신자유주의'인데, 우리는 장하준으로 인해 '신자유주의자'만이 아니라 더 많은 상대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장하준은 '투쟁 의지'가 결여돼 있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는 '질서'가 투쟁보다는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이룩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장하준의 '사회적 대타협론'은 그의 '대 신자유주의 공세'에 비해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내공을 좀 더 쌓아 장하준, 우석훈에 대해 토론하고 싶다.





요즘 대학원생, 직장인, 학부생, 휴학생들과 함께 마르크스 자본론 강독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 동안 일반독자로서 읽은 경제학 해설서들을 밑천 삼아 자본주의를 가장 잘 이해한다고 평가받는 대 학자의 저서를 읽고 싶은 욕망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도 현재 경제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에 목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자본론을 읽는다고 그것이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경제를 받아들이는 내 마음에 토대 하나 정도는 세울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뜻 있는 자에게 길이 보이는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세미나 공간을 알게 되었고, 거기서 직장인, 학부생, 대학원생이 중심이 된 마르크스 강독회의 멤버가 되었다. 강독의 방식은 고전적이었는데, 그래서 더욱 믿음이 갔다.
일단 마르크스를 읽고 나서 옆의 멤버가 이를 요약하고 간사가 정리하고 나서 토론을 하고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마르크스는 강독을 해야 한다"는 지인의 조언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였다. 

그들에게 우석훈과 장하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나의 천학비재로 심도 있는 논의를 이끌지 못했다. 이 점이 아쉽고 좀더 내공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경제학자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한 학생으로부터 '뉴 케이지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흥미로운 대목이어서 인용한다.  

"그들이 현대 경제위기에 대한 진단은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정확하고 마르크스를 넘어서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들은 대안에 이르러서는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바로 '국가'였다. 국가가 경제상황을 통제하고 분배를 해야 한다는 단순한 대안으로 하나같이 동일하게 수렴되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가' 역시 기업과 결탁할 수 있다는 참으로 현실적인 가설을 들이댄다면 그들의 입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이에 비해 마르크스는 자신의 논지를 종합해서 '투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세상만사 투쟁으로 이루어지는 이치이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찾기 위해서는 투쟁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정부조차도 투쟁을 통해 획득된 것이며, 투쟁의 반대급부로 복지와 인권이 수립되기 때문에 투쟁 의지를 놓으면 아무런 변화도 이끌 수 없다고 마르크스는 강력히 주장한다.

올해는 우석훈과 장하준의 담론에 흠뻑 젖으면서 두 경제학자를 한 이야기 안에 집어넣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두 사람의 관심사와 관점 자체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둘은 쟁점의 여지조차도 별로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역시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현실에 대해서 느끼는 좌절과 그에 비례하는 '애정'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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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8-11-11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런 글이 다음 메인(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2036495)에 올라갈 줄이야.. 정치하지도 못한 글이라 자면서 자꾸 후회했는데..다음 관리자가 나를 편애하는 듯 ㅋㅋ

2008-11-12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8-11-12 16:04   좋아요 0 | URL
오~ 선생님 ㅎㅎ
감사합니다. 머리 뒤쪽이 화끈거리네요^^
 



<뮤지컬 햄릿 월드버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에로스'다. 에로스를 살리기 위해 뮤지컬 작가는 찬탈자 클로디어스 왕의 거트루드 왕비에 대한 사랑을 부각시켰고, 햄릿과 오필리아의 연인 관계를 무척 강조했다. 

11월 1일 숙명여대 '씨어터 S'에서 <뮤지컬햄릿>을 봤다. 이제까지 수많은 <햄릿>이 연극이나 영화, 뮤지컬로 상연됐지만 원작 <햄릿>의 난해함 때문에 쉽게 표현하기 어려웠다. 뮤지컬 원작자인 야넥 레데츠키도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드라마를 음악을 통해 만든다는 도전은 정말 누구에게든 쉽지 않은 작업이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번 공연의 정식 명칭은 <뮤지컬 햄릿 월드버전>으로 1999년 체코 프라하에서 최초로 상연했다. 당시 평단은 "유럽의 선율 속에 가장 잘 표현해 낸 작품"이라는 찬사와 함께 연일 만원 세례를 이루었다. (1천만 관객 동원) 2003년 브로드웨이를 평정하고 2008년부터 아시아 원정에 나섰는데, 그 첫 번째 무대가 바로 한국 공연이다. 2010~2012년에는 도쿄, 북경 등 릴레이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뮤지컬 햄릿 월드버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에로스'다. '난해'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있는 원작에 비해 훨씬 대중적이고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주제의 전환이다. 에로스를 살리기 위해 뮤지컬 작가는 찬탈자 클로디어스 왕의 거트루드 왕비에 대한 사랑을 부각시켰고, 햄릿과 오필리아의 연인 관계를 무척 강조했다.

아버지 왕의 스토리를 첨가한 것도 극의 개연성을 높였다. 즉 거트루드 왕비는 왕과의 부부관계에 심각한 애정결핍을 느끼고 있었으며,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클로디어스 왕(왕족의 신분이었을 때)에게 호감이 느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아버지 왕에 의해 목격되고 클로디어스는 추방을 명령받는다.

나라를 떠나지 않을 경우 '육체의 죽음'을 감당해야 하며, 나라를 떠났을 경우는 '사랑의 죽음'을 맞아야 하는 고뇌에 빠진 클로디어스가 왕을 살해한 것은 '심정적'으로는 정당방어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이것이 에로스의 첫 번째 세례다.

두 번째 에로스의 세례를 받은 것은 오필리아다. 원작에서는 광기에 빠진 햄릿에 의해 조롱당하고 이용만 당하던 오필리아가 뮤지컬에서는 햄릿의 당당한 애인으로 탄생했다. 사실 원작에서도 오필리아가 함의하는 문제는 중요하지만 주로 오필리아의 '불행'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뮤지컬 햄릿에서도 오필리아가 행복해지지는 않지만, 오필리아는 햄릿의 애인으로서 잠시나마 햄릿의 사랑을 얻고, 죽은 뒤에 햄릿의 추모를 받아볼 수 있었다.


오필리아는 뮤지컬 햄릿을 통해 비중을 인정받았다. 배우 이윤진은 햄릿 월드 버전이 데뷔작이었지만, 호소력 있는 표정과 연기력으로 비련의 여주인공 역을 잘 소화했다. 

 

햄릿의 고뇌 제대로 표현 안 된 점 아쉬워...

 

이를 통해 볼 때 원작 햄릿이 강렬하게 내뿜던 사색적인 메시지는 사랑이라는 달콤한 유액에 녹아버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뮤지컬 햄릿은 인생의 고뇌와 난해를 에로스와 로망으로 변환했기 때문에 햄릿의 절대적 비중이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클로디어스와 오필리아의 캐릭터가 강화된 지점은 햄릿의 캐릭터가 약화된 지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원작 햄릿>은 아버지 유령이 자신을 시해한 범인을 지목했음에도 햄릿은 막연하게 '더러운 짓'을 한 데 대해서 좀 더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확실한 증거가 나왔음에도 어머니에 대한 가해 욕구에 사로잡힌다. 햄릿이 아버지를 시해한 클로디어스를 더 미워했는지 클로디어스를 너무나 빨리 받아들인 어머니 거트루드를 더 미워했는지 알 수 없다. 햄릿은 난세를 당해 자신의 운명을 뿌옇게 만든 '불확정성'과 미처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행동 불능성 사이에서 우울과 자책, 그리고 광기가 더해간다.

뮤지컬 햄릿에서는 이런 햄릿의 특성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았다. 뮤지컬에서는 비극적인 사태에 대해서 회피하거나 과감하게 복수를 하기보다는 난해 그 자체를 견디면서 스스로 망가져가는 현대적인 인물이자 예술정신의 담지자인 캐릭터를 볼 수 없다.

뮤지컬 햄릿에서의 햄릿은 반항적인 행위를 일삼고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광기는 햄릿의 고뇌와는 연결되지 않는다. 다소 감정적이고, 격정적인 캐릭터만으로는 햄릿의 진수를 보여주지 못한다. 가수 이지훈과 영화배우 박건형 등 엔터테인먼트적인 인물들이 햄릿 역을 맡았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역설적이게도 <뮤지컬 햄릿>은 '햄릿'을 포기함으로써 실현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햄릿'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뮤지컬 햄릿과 원작 햄릿을 함께 보아야 한다. 원작 햄릿을 보지 않고 뮤지컬 햄릿만을 본다면 작품 햄릿은 물론 햄릿 캐릭터의 상당 부분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다행히 올 8월 아침이슬 출판사에서 햄릿 전집 중 1차분이 번역되었다. 시인이자 무대 연출가이기도 한 김정환 씨가 번역에 나섰다. 


시인이자 무대 연출 경험이 있는 김정환 시인이 무대언어까지 담아낸 원작 햄릿 아침이슬판이 최근 번역되었다. 원작 햄릿은 '난해'가 주요 테마인 반면, 뮤지컬 햄릿은 '사랑'이 주요 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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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 장하준의 경제 정책 매뉴얼
장하준.아일린 그레이블 지음, 이종태.황해선 옮김 / 부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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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는 국가정책의 틀 안에서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지론을 설파하며 신자유주의자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데, 최근 출간한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부키)에서는 신자유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주장과 논거를 일일이 기각하는 반대논거를 들고 있다. 그야말로 신자유주의를 대해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글에서는 장하준이 예시한 신자유주의 진영의 논거와 신문기사를 통한 정부의 입장을 대비하고 이에 대한 장하준의 논박을 소개할 것이다. 그 첫 번째 주제로 자유무역주의와 민영화에 대해서 알아본다. - 리뷰어 주
 

세계 금융위기로 시작된 신 브레튼우즈 화두와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 등으로 신자유주의의 근본적인 궤도 수정이 요청되고 있다. 최근의 논의는 '자유'와 '통제' 사이에 방점이 찍혀 있는데, 요점은 국경을 허물고 시장이 통합되는 추세에서 투기자본의 횡행과 고위험을 막기 위해 위험통제의 기구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것이 '슈퍼 IMF'로 불리는 신 브레튼우즈 논의다. 세계 2차대전으로 공황을 경험했던 나라들이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을 성사시켰듯이, 이에 준하는 강력한 시스템이 등장할 채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광범위한 공감대를 얻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시장의 위험성이 커지면 그 고통은 가난하고 약한 자들이 지고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약자들을 위험으로부터 구출해야 한다는 논의가 미국 대선을 뜨겁게 달구며 젊은 오바마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중산층, 서민들에게는 '감세정책'을 고수익자들에게는 '증세정책'을 펼치겠다는 공약과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시행하겠다는 공약으로 미국인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한국의 주류는 아직도 신자유주의를 숭앙하며 정책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다. 


산업정책은 실패했으니 자유무역으로 가야 한다?

한승수 총리는 11월 9일 SBS 시사프로그램인 `선데이 뉴스플러스'에 출연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채택 전망과 관련, "과거 1930년대 대공항 당시 각국은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노력했지만 모든 나라가 손해를 봤다""그래서 무역과 투자를 늘려야 하며, 자유무역적인 정책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8-11-09, 연합뉴스)

이는 장하준이 예시한 신자유주의 진영의 지론과 토시 하나 다르지 않다.

1930년대에는 각국 정부들이 다양한 관세 장벽을 서로에게 부과하는가 하면, '나부터 살고 보자beggar-the-neighbor'는 식의 정책까지 펼치면서 자국 산업의 성장과 안정을 추구했으나 이는 부질없는 시도에 불과했다.
- 신자유주의적 관점 예시,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18~19쪽


장하준에 의하면 이는 단선전인 편견에 불과하다. 산업화 국가는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중앙은행이나 효과적인 금융 규제가 없는 탓에 끊임없는 금융 불안을 겪어야 했으나 효과적인 금융 규제를 통해 2차 세계 대전 이후 금융 부문의 안정과 그에 따른 성장을 실현하게 되었다. (23쪽)
산업국가(이른바 선진국)들은 규제 정책을 통해 경제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데, 예컨대 18세기의 영국은 수입 규제와 수출 진흥 정책을 통해 당대 최고의 산업 국가였던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위협하였다(21쪽) 미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보호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국가였는데, 19세기 중반부터 2차 세계 대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보호주의적인 정책을 펼치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었다. 또한 유치 산업 보호정책의 지적인 모국으로서 독일과 일본이 이를 적극 수용해 성공을 거뒀을 정도였다. (22쪽)

이런 논의를 통해 볼 때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적 흐름과 시대의 문맥을 읽기보다는 특정한 시대나 상황을 단순히 인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논거로 활용했을 뿐다. 장하준은 그의 책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논의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예외적인 사례들을 일반적인 사례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승수 총리가 이를 토시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옮긴 셈이다.

자유무역을 통해 선(先) 성장 후(後) 분배를 이룬다는 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오래된 주장인데, MB정부와 노무현 정부 역시 FTA 등 전폭적인 개방과 자유무역을 통해서 파이를 키운 뒤 이를 분배하는 정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자들도 노동자들의 생활수준 감소나 특정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원 축소와 실업률 증가, 이로 인한 삶의 근거지 상실 등의 문제를 인정하지만 단기적인 조정 비용으로 치부한다. 그래서 FTA를 통해 농산업이 재앙을 맞는다는 사실을 뻔히 보고 있음에도 아무런 대책 없이 이를 강행하려 한다. 장하준에 의하면 불평등과 빈곤 확산은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오랫동안 지속되고 대다수 국민에게 고통이 미친다는 사실이 실증적으로 입증되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정부가 돈 안 되는 것을 과감해 쳐버리고 파이를 늘렸다고 하더라도 이미 정부 부문의 대규모 민영화와 기업하기 좋은 정책 등으로 인해 조세 기반이 상당히 무너진 상태에서 무슨 재정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보위할 수 있을 것인가. 때문에 장하준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자유무역 옹호론은 그럴 듯하지만 허약하기 짝이 없는 주장들이라고 비판했다. (33쪽)

 
▲ 이명박 정부의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를 거의 종교적인 차원으로 신봉하고 있지만, 설득력 있는 설명은 하지 못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명박 대통령, 한승수 국무총리, 곽승준 전 정책기획수석. 
 

신자유주의의 아이콘 '민영화'

 
신자유주의가 가장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분야는 '민영화'이다. 민영화는 순수히 시장에 의해 지배를 받으며 경영 성과 등을 지속적으로 감시받기 때문에 효율성이 증대된다는 입장이다. 민영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신자유주의자들은 '국영기업'을 부패와 비효율의 상징으로 매도한다. 즉, 국영 기업 운영은 부족한 예산 자원을 낭비하는 값비싼 시도이며, 국영 기업의 경영자는 실적에 대한 압력을 전혀 받지 않으며, 고용된 경영자이기 때문에 기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동기도 없으며, 심지어 능력을 향상시킬 동기조차 없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다. 경영에 대한 압력이 없기 때문에 경영자는 방만경영을 일삼고 관료들은 부패한다는 것도 신자유주의자들의 주된 비판점이다. 

"아시아 3위 경제인 한국 경제를 감세, 규제완화, 민영화를 통해 변화시키고 글로벌 시장 불안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을 7%로 높이겠다" - (2008-03-03, 청와대 뉴스, Financial Times에서 이명박 대통령 언급 인용)

MB노믹스의 핵심은 `작은 정부` `공공개혁` `규제 완화`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추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국민이 현 정권에 바라는 것이고 현 정권이 가장 잘하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이 산업은행 민영화, 신보ㆍ기보 통합, 주공ㆍ토공 통합이었다. (2008-11-02, 매일경제신문, 곽승준 전 국정기획수석 인터뷰)

 
이명박 대통령은 '효율성'의 관점에서 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MB 정부의 브레인으로 통하는 곽승준(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개혁'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공공부문의 비효율과 부실, 부패를 기정사실화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제기하는 민영화의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장하준에 의하면 민간 부문의 인센티브, 보상, 감독 체계 등이 국영 기업보다 낫다는 신자유주의적 관점은 근거가 없다. 실질적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민간 기업의 경영자는 기업의 현재 주가를 극대화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것은 경영 목표나 기업의 장기적 이익 또는 국가경제 전반에 도움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주가 극대화를 위해 대규모 인원 감축을 하면 실업률이 올라가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초래하며, 당장 이익이 나지 않는 장기적인 투자 부문을 폐기함으로써 기업의 잠재적 성장가능성과 기업가치를 떨어뜨릴 공산이 크다. 특히 경영자가 스톡옵션으로 보상을 받는 경우는 기업의 장기적인 이익보다 경영자 개인의 스톡옵션을 위해 눈에 보이는 '지표'만 관리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117쪽)

'감시'에 있어서도 맹점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다양하게 분포된 수많은 주주들이 민간 기업의 경영 실적을 제대로 감시하기는 사실 거의 불가능한데, 이는 주주들이 상대적으로 작은 지분을 갖고 있어서다. 실제로 감시하기 쉬운 시스템은 민간 기업이 아니라 국영 기업인데, 만약 국영 기업이 방만하게 운영될 경우 납세자인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므로 국민 대중은 최소한 민간 기업의 주주들만큼은 국영 기업의 경영자를 징계할 인센티브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영기업은 중앙 집중적 구조로 되어 있어서 정부기관이 경영 감시를 쉽게 할 수 있다. (118쪽)

장하준은 이명박 대통령과 곽승준 전 국정기획수석의 논리를 한 문장으로 논박하고 있다.

상당수 국가는 재정 수입을 늘리는 수단으로 민영화를 도입한다. 그러나 여러 연구에 따르면 민영화가 생각만큼 정부 예산에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국영 기업은 외국 투자자나 국내 내부자(insiders)'에게 헐값으로 팔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거래는 상당한 부패를 동반하기도 한다. - 123~124쪽

민영화가 오히려 부패를 부추길 수 있다는 사실은 경험으로 알 수 있는데, 재정부와 국세청, 법률사무소 김앤장 등 정부와 사기업이 대대적인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론스타의 사례나, 이명박 대통령의 친인척이 연계되어 있어 특혜 논란이 일고 있는 '인천공항 맥쿼리 펀드 매각설' 등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민영화는 정부 소유의 기업을 민간에 판다는 말인데, 매매 주체에 따라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마련이다. 즉 정부 쪽에서는 수익성이 가장 떨어지는 국영 기업을 매각하고 싶겠지만, 민간 부문에서는 가장 수익성이 높은 국영 기업을 매입할 것이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국영기업을 누가 거들떠 보겠는가. 정부가 민간기업의 입맛에 맞게끔 상당한 자금을 투자했을 때는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다. 국영 기업이 수익성이 높아진다면 이 기업을 매각할 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수익을 잘 내는 국영기업을 정부가 소유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영화를 시킨다는 것은 정부와 기업 간의 커넥션이 있다는 오해를 증폭시킬 우려가 크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영 기업을 외국의 민간 업체에게 팔 때이다. 이 때는 자원에 대한 권리가 외국계 기업으로 넘어간다는 뜻이므로 이용자들이 상당한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외국계 기업에서 이용가격을 갑자기 두 배로 높인다고 했을 때 정부로서는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장하준은 국영기업을 민영화시킬 때 단지 매각에 따르는 이익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분배와 정치적ㆍ사회적 비용 등 다양한 비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하고 있다. 전기나 수도 등 필요불가결한 자원을 국민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고 있다면, 이 공급활동에 따르는 손실을 단순히 손익계산서에 따라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휴대폰 보급이 일반화된 오늘날에도 일정한 거리에 따라 의무적으로 공중전화를 설치하고 이를 이동통신사에 부담하게 하고 있는데, 손익계산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는 불필요한 비용의 발생이므로 당장 공중전화를 뽑아버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정말 급하게 전화를 이용해야 하는 이용자는 전화를 쓸 수 없게 된다. 장하준은 '민영화'를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놓기보다는 조직의 개혁이나 인센티브 체계, 감독 시스템의 개선작업을 통해 효율성과 생산성 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영화에 대한 장하준의 주장을 종합하면, 단순히 민영화가 좋거나 나쁘다는 판단을 넘어서 민영화가 의미하는 것에 대해서 폭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민영화는 경제적 효율성과 국민에 대한 서비스의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가 '공공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중인 민영화 정책은 국영기업에 대한 지나친 폄하와 매각 수익 등 단순지표에 치우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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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11-10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영화를 폭넓게 이해한다. 참 좋은 말이지만요, 누가 이해하느냐... 저 위에 눈 버린 인간은 아닌 거죠. 자기 인간 심어놓는 이런 짓거리는 어디서나 결과가 더럽죠.

승주나무 2008-11-11 10:10   좋아요 0 | URL
이론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저의 모습이 한심스럽기는 합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상황에서는 촛불을 들고 나가도 계란으로 바위치기뿐이란 사실만 확인할 뿐이죠.. 하지만 권불십년이라고 했습니다. 막연한 미래라도 준비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