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다른만화 시리즈 1
마이크 코노패키 외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바마 드라마는 이젠 좀 지겹다."

세계가 한 사람의 영웅을 기다리고 영웅에 의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말을 순진하게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좁게 말하면 제시 잭슨 목사의 말처럼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흑인 민권운동의 지도자들이 40여년 전에 벌인 투쟁의 결실”이며, 넓게 말하면 당파성과 대립을 종식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피부색과 관계없이 선택을 해왔던 미국 유권자들의 승리다. 그리고 민주-공화라는 양대 정당이 수백 년 동안 영락을 거듭하며 이어져온 형국이다. 최근에는 전 정부에 대한 반대표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는 이른바 '반발의 원리'가 주요한 선거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오바마의 당선에 엄청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감상적이다.

오바마의 정신적 계보 - 흑인 민권운동의 두 거목

미국을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 연설문에 주목해야 한다.

#연설1
“저는 케냐 출신 흑인 남성과 캔자스 출신 백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를 키워준 백인 외할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때 패튼 군단에서 복무했고, 할아버지가 바다 건너 전쟁터에 가 있는 동안 백인 외할머니는 폭격기 생산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가장 좋은 학교들을 나왔고, 세계 최빈국 중 한 곳에 산 적도 있습니다. 노예의 피와 노예 소유주의 피를 함께 물려받은 흑인 여성과 결혼해서 이 혈통을 사랑하는 두 딸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피부색의 형제자매, 조카, 삼촌과 사촌들이 3개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사연이 저를 일반적인 후보자들과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 지난 3월18일 필라델피아에서 행한 ‘인종 연설’



#연설2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미국인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저도 아닙니다. 2천 2백만 흑인 중 한 명으로서 미국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민주주의는 본 적도 없습니다. 조지아주 목화 농장에도 결코 민주주의는 없었으며 뉴욕, 디트로이트, 시카고의 빈민가에도 민주주의는 없죠. 우린 민주주의를 본 적이 없고 오로지 위선만을 봤습니다! 우리에게 미국의 꿈은 없었고 체험한 건 악몽뿐입니다
말콤X의 연설, 영화 <말콜 X> 중에서..


▲ 영화 말콤X의 한 장면


오바마에게는 2명의 선구자가 있는데 흑인 민권의 상징인 마틴루터 킹과 다소 과격한 흑인 민족주의를 표방한 말콤 X다. 말콤 엑스는 비폭력적 흑인 인권을 주장한 마틴 루서 킹 2세와 달리 흑인들의 현실과 분노를 그대로 뱉어낸 연설로 흑인 인권운동에서 명성을 쌓는다. 그는 마틴 루서 킹 2세를 '흑인의 탈을 쓴 백인'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를 통해 볼 때 오바마의 정신적 계보는 마틴 루터 킹으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연설1에서 보듯 오바마는 다양한 인종이 결합돼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기 적격이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정체성의 혼란에 시달려야 했다. 외조부모의 집에 머무르던 당시 오바마는 인종문제로 정체성 갈등을 겪었다. 농구에 미쳤고 술과 담배, 마약에도 손을 댔다. 어두운 경험은 말콤 엑스 등 대부분의 흑인 지도자들이 겪는 통과의례인 듯하다. 맬컴 엑스도 당시 하류층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힘겨운 생활과 함께 범죄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21세에 그는 강도죄로 투옥되었으며, 옥중에서 이슬람 신앙에 귀의하게 된다.
오바마가 정치 신인이던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진보적 미국과 보수적 미국이란 없다. 오직 미합중국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명연설은 그래서 무게감이 있다.

만화로 보는 미국인 대해부

연나라로 연나라를 친다. (맹자)
以燕伐燕


연나라가 연이은 실정과 백성에 대한 탄압으로 민심이 들끓고 일대 혼란에 빠졌다. 제나라는 이 틈을 타 연나라를 점령해 버린다. 연나라 사람들은 처음에는 제나라를 '해방군'으로 인식해 시골 촌부들까지 소쿠리에 음식을 담아와 제나라 군사를 환영했을 정도다. 하지만 제나라는 애초부터 연나라의 혼란을 해결하기보다는 제나라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연나라를 제물로 삼은 것뿐이다. 맹자는 이러한 제나라의 행태를 "연나라가 연나라를 친다"는 촌평으로 비판한다.
미국은 낡은 사고와 새로운 사고가 오랫동안 겨뤄왔던 나라다. 낡은 사고는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적인 사고이며, 대내적으로 악덕자본가의 사고방식과 인종차별주의자의 사고방식이다. 


▲ 미국은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고 탐욕적, 인종차별적, 제국주의적 사고를 고수해 왔다. (위에서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2004년 이라크 아부그리브 수용소의 포로 학대사건, 베트남전의 무차별적 네이팜탄 공격, 19세기 J.P.모건, 존 록펠러, 제이 굴드 등 초기 악덕 자본가들에 의해 희생당한 미국의 노동자들.


1898년 7월 17일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쿠바 산티아고에 있는 총독의 궁에는 성조기가 게양됐다. 쿠바전쟁이 끝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스페인의 항복절차에 쿠바인을 참여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스페인 민간정부가 공공업무를 계속 담당하도록 허락했다. (<만화미국사> 61쪽) 이것은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지만 친일파와 일본 관리들을 대거 요직에 등용시킴으로써 우리들의 독립 의지를 완전히 꺾어 놓았고 지금도 친일파가 득세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6.25 전후처리에서도 남한이 당사국 자격을 얻지 못한 것은 미국의 정책 때문이었다. 미군은 어디서나 점령군이어야 했다.
독재정부에 대한 지원도 미국의 전문 분야다.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 등 아메리카의 독재국가는 미국의 지원으로 탄압을 이어갈 수 있는데 이들은 기본적인 언론의 자유조차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언론탄압 실태와 기자 살인 등에 대한 내용은 촘스키의 <여론조작>(에코리브르)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드러난 이야기만으로 미국의 힘을 이해하려 한다면 반쪽짜리 지식밖에 얻지 못한다. 미국인들은 제국주의, 악덕자본, 인종차별에 대해 강력한 저항운동을 벌여 왔다.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지성인 촘스키와 하워드 진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의 잠재력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역사적인 노동운동 사건을 꼽으라면 풀먼 파업을  들 수 있는데 악덕자본이 백인 노동자들을 인디언이나 흑인처럼 천대하던 지역이 바로 풀먼 신도시였다. 유진 빅터 뎁스는 미국철도노동조합의 젊은 지도자로 활약했는데 1893년 경제불황과 공황기에 미국 철도노동조합을 결성했고, 1894년 풀먼사 노동자들과 함께 파업을 주도했다. 풀먼 노동자의 외침이 우리의 실정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1893년 5월에서 9월 사이에 우리의 임금을 다섯 차례나 삭감했습니다. 그래도 집세는 그대로입니다. 그는 고용주로서 우리에게 돈을 지급해놓고 집주인으로서 그 돈을 다시 가져가 버립니다."



▲ 1893년 풀먼사 파업 당시 사람의 논물로 목욕을 하는 해골들의 춤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한 세기 뒤 이 현상은 '바닥을 향한 경주(국가나 기업 간의 과다경쟁이 빈곤층을 만든다는 이론)이라고 달리 부르게 되었고, 월마트의 사업모델이 되기도 했다. (만화 미국사, 32쪽)


노동자운동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반전운동의 메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반전운동이 벌어진 나라다. 다만 제국주의적 행태 속에 감춰졌을 뿐이다. 일본이 자민당의 나라라는 오해를 사는 것과 같다. 일본 역시 시민운동이 활성화된 나라이며 풀뿌리네트워크가 만만치 않다. 선진국은 이와 같이 양식 있는 시민들에 의해 견딜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는 1차 세계대전에서 징집반대연맹을 조직한 엠마 골드만의 일화가 담긴 만화 한 컷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그는 징집법 위반으로 2년 형을 받고 미주리 주 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재판에서 그녀의 유일한 변호 수단은 감동적인 연설뿐이었다.

"국민을 군사적으로 예속한 상태에서 잉태된 민주주의는 결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독재정치입니다."


▲ 이 그림은 수감 2년 후 감옥으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를 하워드 진이 상상해서 삽입시킨 대목이다. 하워드 진은 '엠마'라는 제목으로 그녀에 대한 희곡을 쓰기도 했다.


미국인을 알아야 하는 이유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여느 대통령과 다른 이유는 '국민과 가장 가까운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 속성, 즉 제국주의적 속성과 이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민권운동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오바마는 미국의 이전 정책기조에서 큰 틀의 변화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미국인의 의향을 지속적으로 살펴서 정책을 실현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인의 의지가 사실상 오바마의 의지가 될 확률이 높다.

우리의 경우 한미FTA에서 방점으로 보아야 할 것은 '미국 노동자'이다. 만약 FTA를 통해 미국민들의 손해가 예상된다면 오바마는 이를 없던 일로 하거나, 미국 노동자의 이익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급 선회할 확률이 높다.

지금까지 미국의 국익은 한국의 국익과 마찬가지로 '추상적 이익'에 머무른 반면, 오바마가 말하는 미국의 이익은 '미국인의 이익'에 가까울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오바마가 노무현의 길을 걸을 수도 있지만, 노무현에 비해 민권운동의 뿌리가 매우 깊은 오바마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슬기롭게 대통령직을 수행하리라고 본다. 
미국인, 미국 노동자들은 한국인, 한국 노동자들과 매우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시민과 한국 시민, 전 세계 시민들이 네트워크를 이루는 것만큼 강력한 힘은 없다.

이명박을 통한 FTA는 한국 노동자와 서민들의 이익을 절대로 대표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 노동자와 시민들이 협의할 수 있다면 미국 노동자의 입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에 얼마든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하워드진의 미국 민중사라는 책이 국내에서도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만화 미국사>는 미국의 '반대쪽 에너지'를 알기에 손색이 없다. 궁금한 내용은 추가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지만, 기본적인 뼈대는 이 책이 어느 정도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나에게 한 가지 교훈을 주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 한 쪽만 알아서는 곤란하다. 두 가지를 모두 알아야 한다."


<참고한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1050250015&code=97020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1111824005&code=21010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1051825085&code=9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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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1-19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워드진의 만화 미국사라고요? 이렇게 흥분될때가.... 이거 수업자료로 최고겠어요. 담아갑니다. ^^

승주나무 2008-11-21 16:02   좋아요 0 | URL
수업자료로도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좌파적출 바람'은 조심하세요^^

마노아 2008-11-19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주문했는데 아직 안 도착했어요. 미국 민중사 읽기 전의 워밍업이라고 생각하려고요.

승주나무 2008-11-21 16:03   좋아요 0 | URL
네~ 미국 민중사는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기 위한 워밍업이고, 이 책은 미국 민중사를 읽기 위한 워밍업인 것 같아요^^
 


10년 전 이 계절에 대학 교정을 걷고 있었습니다.
마치 단풍산처럼 교정 전체가 노랗고 빨갛게 단풍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나름 감수성이 있었는지 빨간 단풍나무 아래서 아주 조그마한 잎사귀가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직 변변하게 자라지도 않았지만 그 애기단풍 역시 '계절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죠. 그 광경은 나에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 10년 만에 만난 애기단풍입니다. 옆에 떨어진 단풍을 보면 이 단풍이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습니다.

대전에 친구 결혼식이 있어서 갔다가 빨갛게 물든 단풍 사이에서 애기단풍을 다시 만났습니다. 10년만의 일이죠. 10년 전의 애기단풍은 단풍나무 밑동에 기생하고 있었는데, 이번의 애기단풍은 아예 땅 속에 혼자서 뿌리를 내렸더군요.





▲ 올 가을에는 단풍산 구경을 못 가서 아쉬웠는데, 대전에서의 단풍구경으로 위안이 되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서 계절을 지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에 보았던 <푸지에>라는 단큐멘터리가 생각합니다.




푸지에는 여섯 살배기 몽골의 여자 아이입니다. 말을 능숙하게 타고 양과 염소를 호령하는 목동입니다. 그는 목동의 임무에 대해서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앳된 여섯 살배기 표정을 숨길 수는 없지만, 말을 타고 고원을 고원을 호령하는 모습에서 위엄이 느껴집니다. 양 모는 일은 세 살짜리 그의 사촌동생 바사가 넘겨 받았습니다. 우리의 계절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모습입니다. 푸지에의 모습에 애기단풍이 오버랩되었습니다.




▲ 1999년 의사이자 탐험가인 세키노 요시하루가 남미의 최남단에서부터 인류의 탄생지인 아프리카까지를 목표로 여행 하던 중 몽골에 머무르며 푸지에
가족과 인연을 만들어가는데, 세키노에게 푸지에는 유목민의 척도였고, 강한 자립심, 능력, 확신의 소유자였다. 푸지에는 2006년 카즈야 야마다 감독이 발표한 다큐멘터리다. 

 
사람은 세상과 함께 크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장면입니다. 몽골에서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시장경쟁이 도입되면서 유목민들은 부상을 입으면 병원에도 못 가고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애처로운 처지에 내몰렸습니다. 푸지에는 여섯 살에 불과하지만 유목민의 목축업이 계절로 따지면 겨울에 들어섰기 때문에 여섯 살의 겨울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푸지에에 대한 달느 이야기는 EBS 다큐멘터리 푸지에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애기단풍은 개인과 세계가 강력한 공동운명체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생을 살아가지만 세계의 운명에 의해서 자신의 생이 결정된다면 나의 운명은 곧 세계의 운명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나의 생만 가꿀 것이 아니라 세계의 생을 가꾸고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명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사회의 생과 개인의 생이 좀처럼 섞이지 않는 듯 보이지만, 계절의 대세가 천천히 걸어가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애기단풍의 가르침이 10년 만에 새삼 되살아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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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11-17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지에 보고서 참 먹먹했어요. 지금 베트남 관련 책을 읽고 있는데 사회주의 국가에 자본주의 경제가 도입되면서 교육과 의료 부문에서 급 취약해지는 부분들을 보아요. 푸지에도 그랬고요. 씁쓸한 일이지요.

승주나무 2008-11-17 17:00   좋아요 0 | URL
푸지에도 그렇지만 푸지에 엄마의 죽음이야말로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죽음이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푸지에 역시 사회적인 죽음의 과정 속에서 서서히 숨을 거두지 않았을까 하는.. 지인은 무방비로 있다가 한방 먹었다는 표현을 썼는데, 참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탐험가 세키노 요시하루씨는 얼마나 먹먹했을까요 ㅡㅡ;
 

1. 음악가들의 만년작 - 베르디, 베토벤, 모짜르트

만년작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대가는 바로 베르디이다.
베르디는 1870년을 전후로 모든 활동을 접었으며 부세토 근교의 농장으로 은퇴해서 오페라 리허설에 기울였던 것 이상으로 농사일에 몰두했다. 하지만 그의 음악적 열정을 깨운 것은 바로 <셰익스피어>였다. 보이토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각색해 베르디에게 선보였다. 〈오셀로〉의 극적 내용은 연속적이고 탄력적인 음악에 녹아들어 있었고, 그 음악은 등장인물의 모든 성격과 동작을 낱낱이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이 1887년의 일이다. 오페라 〈오셀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베르디 역시 이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정작 베르디의 마지막 작품은 셰익스피어 〈헨리 4세 Henry Ⅳ〉의 내용을 보충해 각색한 희가극 〈팔스타프〉였다. 베르디는 거기에 놀라울 정도로 빈틈없는 음악을 붙였고 이 작품이 불멸의 만년작이 되었다. 김정환 시인에 따르면 이 작품은 얼핏 듣기에는 흐트러져 보이지만 조화된 예술 본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 베토벤의 만년작은 현악 4중주 9번이다. 베토벤이 청력을 잃고 나서 만든 유명한 작품이다. 모짜르트의 교향곡 39~41번, 현악 5중주가 만년작으로 뽑힌다.


 2. 작가들의 만년작 - 도스또옙스끼, 셰익스피어

도스또옙스끼의 데뷔작부터 장편 저작들은 거의 모두 섭렵했지만 도스또옙스끼 최고의 작품은 역시 만년작 <까라마조프가 형제들>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만년작으로 의도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지금까지의 인물계보와 주제의 완성도가 모두 이 작품에서 이루어졌다. 지성을 대표하는 인물인 이반이 보여주는 정신분열적 결말은 도스또옙스끼 인물군의 한 축을 이룬다. 지하생활자 - 라스꼴리니꼬프 - 스따브로긴에 이르는 인물군은 이반 표도로비치에게 완성된다. 도스또옙스끼는 오로지 이성만으로는 파멸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의 용도로 이반을 세운다. 알료사는 종교적 인류애의 전형으로 표현된다. 죄와 벌의 소냐 - 백치의 므이시낀 백작 - 악령의 샤또프에 이어 까라마조프 가의 막내아들이자 사제로서 종교애와 가족애를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주제 역시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기나긴 작품세계를 완성하고 있다. 도스또예프스끼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문제의식과 주제 중에서 '가족'이라는 주제로 수렴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결론이다. <까라마조프가 형제들>을 두 번이나 보았지만, 그 묵직한 주제의식을 아직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만년작>이라는 말의 기원은 셰익스피어로부터 비롯됐다. 바로 <폭풍우>가 만년작이다. 이른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등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계략과 음모, 배신과 인간의 나약함이다. 이런 요소들이 엮이고 엮여 견딜 수 없는 파멸을 초래하는 것이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향취다. <폭풍우>역시 이런 특징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형을 배신해 유배시키고, 유배지에서조차 왕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모리배들이 등장하지만 만년작에서는 '해소'를 이룬다는 점이 특징이다.





'견딜 수 없는 파멸'에서 '상생과 해소'로 이어지는 과정이 능숙하게 그려지는 모습, 그리고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보이는 '환상성'이 만년작 <폭풍우>의 진면모다.


▲ 도스또옙스끼(왼쪽)와 셰익스피어(오른쪽)는 만년작(각각 까라마조프가 형제들, 폭풍우)를 통해 작가가 평생 동안 탐구해왔던 인간의 본성과 엇갈린 운명을 녹여내면서 동시에 스스로의 모순을 해소하는 데 성공을 거뒀다.


대가들의 만년작은 다가가기 힘든 산과 같다. 이전의 작품들을 어느 정도 섭렵하고 있어야 만년작이 가지고 있는 생생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도스또옙스끼의 장편과 셰익스피어의 비극 작품을 본 정도여서 만년작의 향취를 많이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나마 맛을 알 수는 있었다. 움츠려들고 싶은 겨울, 대가들이 추구했던 문제의식과 인간에 대한 탐구를 따라가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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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8-11-17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jade는 도스토예프스키 책 읽는 낙으로 산답니다....ㅋㅋ

승주나무 2008-11-17 17:01   좋아요 0 | URL
도 선생이 그리워요~ 이번에는 단편집들을 좀 읽어보고 싶네요.. 책장 앞에 설 때마다 손이 먼저 간다는 ㅎㅎ
 




▲ 아프락사스 님이 캡처해주신 사진^^

"과거의 미디어 소비자에만 머물러 있던 독자들을 미디어 주인으로 끌어올린 시사인이 어떻게 성장할지 주목됩니다. "


"1년이 넘는 투쟁 끝에 기자들은 독자들을 믿었고 독자들은 기자들을 믿었습니다."(시사투나잇 2007년 9월 17일 방영)


미디어는 대체로 높은 자리에 있고 돈이 많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는 쪽으로 몰려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마 저널리즘이니 황색 저널리즘이니 하는 비아냥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미디어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낮은 곳으로 자꾸 들어가서 그곳에 사는 약한 사람들의 사정을 세심히 관찰해 이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는 미디어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너무나 적어서 탈이지만요.

시사투나잇이 마지막 방송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심상정, 노회찬 의원이 낙선의 고배를 마신 일이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가장 훌륭한 의정활동을 했던 정치인들이 다음 국회에서는 기회를 얻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미디어에도 그대로 연출되었습니다. 시사투나잇이 폐지된 이유는 분명합니다. 낮은 곳에서 끊임없이 약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었고, 꺼내기 어려운 문제들을 자꾸 들춰내서 위정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시사저널 기자들과 함께 싸우고 <시사IN>이라는 매체를 탄생시키는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시사투나잇이 취재를 왔습니다. 우리들은 창간호를 포장해서 광화문, 전라도, 제주도, 강원도 등 전국 곳곳에 창간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사투나잇은 3일에 걸쳐서 포장하는 작업, 광화문에서 배포하는 작업 등을 촬영해 갔고, 9월 17일 방송하였습니다.

이제까지 미디어오늘이나 오마이뉴스 등 몇몇 인터넷매체에 잠시 소개되었던 시사모는 KBS라는 전국매체를 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우리들의 뜻도 함께 알릴 수 있었습니다.

"독자들이 이제까지는 계속 소극적인 위치에 있었고, 말하기보다는 침묵하려고 하는 모습이 많이 있어서 우리가 이번 기회에 독자들도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일종의 모델로 보여주고 싶었다."

시사인독자단 회장이라고 자막이 잘못 나오기는 했지만(시사인독자단 운영위원이 맞음) 우리들의 언론소비자운동을 전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직접적인 연관은 없겠지만, 이후에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운동의 조중동 광고지면불매운동 등 언론소비자운동이 확산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시사모의 활동이 방송이나 중앙 매체에서 보도된 것은 시사투나잇이 거의 유일합니다. 시사투나잇의 문제의식과 예민한 촉수를 따라올 시사매체는 나오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시사투나잇의 폐지는 곧 우리 언론의 감수성이 엄청나게 위축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 약자들의 소소한 목소리, 독자들의 몸부림을 지켜봐주겠습니까.
그래서 많이 슬프네요. 시사저널을 딛고 시사인이 일어났듯, 시사투나잇이 다시 좋은 프로그램으로 태어나기를 간절하게 기원합니다.


 
 

독설닷컴에서 시사투나잇 제작진의 마지막 단체사진을 퍼왔습니다.


★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시사투나잇에 관한 포스팅으로 오늘 하루 블로그스피어를 물들이는 것은 어떨까요.
많은 사람들이 시사투나잇의 가는 길에서 함께 생각해볼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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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11-14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시투 쫑파티(?? 눈물의 파티도 파티라면..._) 사진 보니깐 괜스레 눈물이 나네요. ㅠㅜ

승주나무 2008-11-17 15:48   좋아요 0 | URL
가슴에 와닿네요.. 눈물의 파티도 파티라면...
정권에 의한 쫑파티는 이제 그만 했으면 하네요 ㅠㅠ
 

내가 가진 수많은 블로그 중에서 유일하게 활성화된 블로그가 있다면
티스토리 <승주나무의 면모>와 알라딘 <승주나무의 책가지>다.
주로 책에 관한 리뷰나 페이퍼를 쓰고, 커뮤니티를 나누는데,
오늘 리뷰를 쓰다가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알라딘에도 드디어 블로거뉴스가 탑재된 것이다.
알라딘은 티스토리와 이글루스 등 오픈블로그와 교류하긴 했지만,
다음블로거뉴스와 교류한 것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알라딘 서재관리에서 <블로거뉴스 설정>을 누르면 가입을 할 수 있다.

 

나는 이미 가입해 있기 때문에, 서재를 통해 가입을 하려면 다른 계정 하나를 더 열어야 하지만,
블로거뉴스에 가입하지 않은 리뷰어라면 가입을 권한다.


그런데 리뷰어는 특성상 자신의 블로그를 '독서수첩'처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다소 폐쇄적으로 블로그를 이용하는 리뷰어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블로거뉴스에서 조회수가 폭발해서 하루에 10만명이 방문해 버린다면 그 당혹감,
또 블로거뉴스를 돌아다니는 블로거들의 댓글이 야성적이기 때문에
차분히 책읽기를 좋아하는 리뷰어에게 하나의 도전이 될지도 모르겠다.

암튼 블로거뉴스에 들어온 알라딘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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