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노동세상 좌담회에 참여했습니다.
그때를 반추해 보면 지금 내 모습이 참 한심해 보이지만,
다시 기회가 또 오겠죠.
월간촛불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싣습니다^^



[송년특집-촛불]촛불이 가져온 변화와 전망 <좌담회>
  촛불에게 길을 묻다
  사회_이춘자 (본지 발행인) / 정리_김지현 기자 ourwords@hanmail.net / 사진_김유진 기자


 
 
사회자  반갑습니다. 오늘 처음 만났는데도 오랫동안 만난 것 같은, 2008년 촛불이 있어서 우리에게 그런 동질감이 더 많이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월간노동세상 발행인 이춘자입니다. 간단하게 인사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개밥바리기  지역 촛불모임 중 하나인 강동 촛불 카페지기, 닉네임 개밥바라기입니다.

승주나무  ‘스탑 씨제이디 (조중동 반대)’ 카페에서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언소주’)이라는 단체로 등록을 완료했고, 실질적으로 단체가 되기 위해 준비중입니다. 언소주 운영위원장, 닉네임 승주나무입니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명숙입니다. 2008 촛불에서 전국 41개 단체가 모인 인권단체연석회의에서 인권침해감시단을 꾸려 활동을 했습니다.

장대현  광우병국민대책회의 대변인이고, 한국진보연대 교육위원장 장대현입니다.

찬찬마미  안녕하세요? 일명 ‘유모차부대’(촛불유모차와 함께하는 촛불가족) 카페 운영진인 닉네임 찬찬마미입니다.

정호희  운수노조 정책실장, 정호희라고 합니다.

사회자  네, 반갑습니다. (모두 박수) 월간 <노동세상>에서는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촛불정국에 많은 관심을 갖고 취재해 왔습니다. 촛불은 진보진영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 이후에 무엇이 바뀌었는가 돌아보니 아쉬움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실제 촛불을 들었던 많은 분들이 지금은 무엇을 하고 계신지, 당시를 어떻게 돌아보고 이후 촛불이 어떻게 계승되어야 한다고 보는지 듣고 싶어 한 자리에 모셨습니다. 2008년 촛불이 대단히 자연스럽고 민주적이며 주체적으로 이뤄졌던 만큼 오늘 토론도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2008 촛불은 진보진영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아쉬움도 있지만 그때를 돌아보고 촛불 2기를 전망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춘자_ 사회/본지 발행인)
 
그때를 떠올리다 
 
승주나무  처음부터 특별한 의식을 가졌던 건 아니에요. 촛불 관련한 단체에 가입한 적도 없고, 블로그나 시민기자 정도만 했죠. 처음 한두 번 참가하고, 이후에는 일주일에 서너 번을 나가게 되면서 세 가지 명확한 느낌을 받았어요. 첫째는 촛불이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게 너무 아름답다, 둘째로 촛불은 모이면 더 예쁘게 빛난다는 거. 그리고 셋째로 촛불은 꺼지게 돼있다, 그래서 꺼지기 전에 살려야 한다. 그러려면 꺼지기 전에 다른 촛불을 비춰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좀 아쉬웠다는 생각입니다. 
 
명숙  처음 청소년들이 촛불을 들었을 때가 5월 2일이었는데, 그땐 못 갔어요. 그리고 저희가 연대하는 쪽방촌 분이 토요일 촛불집회에 함께 가자고 하더군요. 그때까지는 인권운동사랑방 등에서는 많이 못 갔어요. 오히려 청소년들이나 기초생활수급자들, 지역 교회에서 얘기 듣고 가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건 예전의 이른바 조직운동, 세상을 바꾸자는 사람들의 기획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일어난 싸움이었던 거죠. 5월 한 달 내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분위기에서 많이 즐거웠어요.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게 하는 발랄함과 자발성, 다른 방식의 기획 등이 촛불이 준 첫 번째 기억이고. 두 번째는 청와대 앞에서 물대포 맞았을 때,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인권침해감시단 하면서 수없이 울었던 때에요. 새벽에 한국일보사 앞에서 경찰이 ‘너희들 인사동까지 물러가면 잡지 않겠다’고 했어요. 당시 앞에 있던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논의를 했어요. 어차피 우리의 싸움이 정당한데 쟤네가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물러설 순 없다, 끝까지 버티자 결정했고 결국 수없이 다친 날이었죠. 물대포 맞아가면서 새벽까지 싸운 우리가 지켜야할 원칙이 뭔가를 고민하면서 스스로 결정하고 싸웠던 게 자랑스러웠죠. 무엇보다 우리의 결정이 정당하고, 서로를 믿으며 폭력에 굴하지 않았다는 뿌듯함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름다운 촛불, 그 자랑스러운 기억
 
찬찬마미  저도 물대포 맞는 장면을 인터넷으로 보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곧장 현장으로 달려 나가고 싶었지만,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잖아요. 저희는 주로 낮이나 주말에 분위기 평화로울 때만 잠깐 나갔다가 들어와요. 애기 엄마들은 기저귀 가방에, 유모차 끌고 버스 타고 가야하니 그 정도만 해도 밤새 가두 투쟁한 것만큼 힘들었어요.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사는 건 주로 엄마들이잖아요. 주부들이 이렇게 싫어하는데도 정부가 들어줄 생각은 전혀 안하니 답답했죠. 차라리 정부가 이해를 구해왔다면 들어줄 자세는 되어 있었는데, ‘너네는 짖어라, 우리는 간다’는 식이니 분노가 쌓여서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기저귀 가방메고 나가게 되더라고요.
 
장대현  2006년부터 광우병쇠고기 협상이 불거졌지만, 한창 한미FTA저지 싸움을 할 때는 이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어요. 그러다 올해 4월 18일 쇠고기 협상 결과가 말도 안 되게 나왔죠. 처음엔 기존의 동원식 집회로는 안 될 것 같아 엄두를 못 냈어요. 일주일이 그냥 지나가고 2주차가 됐죠. 인터넷 공간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는데, 4월 29일 PD수첩에서 이 문제를 다루니까 인터넷이 확 달아오른 거예요. 결국 5월 2일 인터넷 카페에서 촛불문화제를 잡았고, 그날 1만 명이 모인 거죠. 초기에 인터넷 공간이 의사소통의 수준을 넘어서서 사회적인 분노를 거리로 분출시킨 가교가 된 것이 굉장히 큰 힘이 됐다고 봐요. 그리고 특징적인 것이 언론이 계속 “기존 운동권과 다른 방식이다, 새로운 시위 문화가 창조됐다” 그랬는데, 저는 처음에 굉장히 섭섭했어요. 그런데 이유가 있더라고요. 오히려 언론이 사람을 더 많이 나오게 하는데 굉장히 도움을 줬어요. 과거의 주체 세력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이 나와서, 새로운 방식으로 한다는 것. 이게 광우병이라는 이슈 자체의 폭발성에 덧붙여져 대중적인 참가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한 거예요.
또 하나는 6월 10일 100만이 모이니까, 저쪽에서도 더 이상 밀릴 수 없으니까 6월 19일 담화문을 내고 전면 탄압에 돌입했죠. 저는 이때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두 가지를 더 했으면 이길 수 있었다고 봐요. 하나는 연대의 범위를 더 크게, 예를 들면 종교 등을 아주 조직적으로 포괄하는 것. 다른 하나는 연대의 강도를 더 강력하게, 예를 들면 민주노총 파업이 진짜 위력을 발휘하는 것 등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한계가 있다고 보는데, 다음 촛불은 이런 점을 잘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촛불은 현실 권력과 사회정치적 힘의 관계를 바꿔놓았습니다. 제도영역에서의 정치적 분출이 함께 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요." (장대현_ 광우병국민대책회의 대변인, 한국진보연대 교육위원장)
 
두려움을 모르고 자기표현이 왕성한 사람들의 힘
 
정호희  운수노조가 이른바 ‘미친소 운송거부’를 내부적으로 결정한 게 5월 2일이었습니다. 이미 당시 물량의 소재지와 움직임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죠. 내부 사정상 어려움이 있었지만,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고 이미 고시 시점이 나와 있던 터라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입장을 발표하고 며칠 뒤 우연히 써 올린 오마이뉴스 기사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죠. 순식간에 운수노조 홈페이지가 ‘성지 순례’ 1호가 되어 수많은 네티즌들이 다녀가는 바람에 홈페이지 서버가 하루 종일 다운돼버렸어요. 저는 촛불에서 가장 먼저 눈여겨 봐야하는 것이 ‘감성’이라고 봅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80만이고, 진보연대까지 다 따지면 규모가 어마어마하죠. 그런데 그런 조직적 에너지보다 ‘감성 에너지’가 더 크고 원초적이었다는 거예요. 왜 아이들이 ‘미친 소 너나 먹어’하며 거리로 나왔고, 유모차가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보면 알 수 있죠. 노동운동에서 감성에너지란 게 대체 뭔지, 조직된 대중운동은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 몇 달 동안 고민하게 한 과정이었습니다.
 
승주나무  촛불 이전에는 민주노총이나 지하철이 파업을 하면 사람들이 짜증내고 불평했어요. 그런데 촛불을 하면서는 길거리나 광장에 민주노총 노동자들, 화물연대 파업하시는 분들, 일반 사람들이 모두 함께 모여 있으니까 서로의 이유를 공감하게 된 거예요. 그 이후엔 그분들이 파업해도 불편을 좀 감수할 수 있게 된 것 같은데, 촛불의 공감이 준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개밥바라기  지역촛불 사람들에게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물었어요. 가장 많이 나온 답이 물대포 쏠 때 “온수! 온수!”, 전경차를 보고 “불법주차, 차 빼라!”고 외쳤던 거예요. 저들이 아무리 탄압해도 그냥 말 한마디로 툭 비틀어버릴 수 있었던 건 우리가 도덕적으로 압도적 우위에 서 있다는 자신감과 당당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즐겁고 다이나믹하게 감성을 표출하면서, 우리가 이미 이겼다고 서로에게 계속 확신을 준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장대현  제가 본 새로운 것이 뭐냐면, 이 사람들이 경찰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항 확산의 동력을 만들어낸 이 사람들은 또 굉장히 적극적이에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피켓을 만들어오고, 현장에 계속 있으면 지쳐서 앉아있고 싶은데도 계속 일어나서 재미있는 구호를 외치고 축제 분위기가 연출되는 겁니다. 이 두 가지, 두려움을 모르면서 자기표현이 왕성한 사람들. 저는 이 사람들이 어디서 뚝 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민주화 운동의 성과가 만들어낸 새로운 신세대 동력, 역사의 산물이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건 87년 6월 항쟁을 통해 형식적인 민주화를 이뤄낸 그 토대에서 자라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봐요.
 
2008 촛불, 감동 한 장면
 
사회자  특히 어떤 순간이 가장 감동적이었는지 이어서 말씀을 해주시죠.  
 
찬찬마미  유모차 부대랑 같이 한 토요일 정규모임이요. 유모차 끌고, 애들 간식 먹여가면서 또, 앞에서는 전진을 해도 애들 화장실 간다고 하면 옆 빌딩으로 뛰어 들어가고…. 유모차부대는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가 없어요. 사실, 그럴듯한 구호 한번 외친 적 없지만, 그런 오합지졸 같은 아줌마들과 아기들이 나타나면 박수쳐주던 분들에게 너무 감사드려요. 우리가 있는 것만으로 평화시위의 상징이 되고 열심히 하시는 분들에게 힘이 된다니 감동적이고 뿌듯했어요.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 힘들어도 계속 나와야겠다 생각했죠.
 

"평소 정치에 무관심하던 주부들도 일상의 촛불을 들기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더 큰 대중화를 고민해야 합니다." (찬찬마미 님_ <촛불유모차와함께하는촛불가족> 카페 운영진)
 
개밥바라기  저는 촛불의 감성 중에 역설적으로, ‘외로움’도 있는 것 같아요. 명장면 중에서 또 많이 나온 대답이 6월 10일 이후 시청 앞을 뺏겼다가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이 모세가 바다 가르듯 나오셔서 마이크를 잡고는 “여러분, 외로우셨죠?” 맨 처음 한마디 했을 때 사람들이 눈물을 줄줄 흘렸던 장면입니다. 촛불이 커지기 전까지, 사람들이 되게 답답했던 거죠. 강동 촛불 참가자들 얘기 들어보면 친구가 많이 없어졌다고 해요. 이명박 당선 후 그전까지 친했던 친구들에게 답답함을 토로하면 말이 안 통한다는 겁니다. 그러다 촛불이 켜지면서 두세 달 만에 친 가족 같은 사람들이 생긴 거죠. 100만이 모이는 걸 보고 내가 외롭지 않구나,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자신감을 가진 거예요. 또, 강동 촛불 참가자 중 정말 ‘진보운동’과는 멀게 사셨던 분이 있어요. 가끔 술 좀 얼큰하게 취하시면 가장 많이 말씀하시는 게 5월 31일 얘깁니다. 그분도 물대포를 같이 맞다가 새벽 4시 좀 넘어서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가셨는데, 집에 가는 내내 마치 자기가 도망가는 것 같고, 남아있는 사람들 생각나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해요. 집에 도착해 뉴스를 켜니 경찰이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장면이 나온 거예요. 그걸 보고 ‘앞으로 나는 평생 내가 살았던 거랑 다르게 살겠구나’ 생각하셨대요. 예전에 ‘80년 광주’ 한마디로 사람들의 삶이 바뀌었던 것처럼 5월 31일 기억이 사람들에게 강렬한 느낌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어제와 다른 오늘이 준 박수와 눈물, 열정과 소통
 
승주나무  제 개인적으로 촛불현장의 명장면 베스트를 꼽아보면, 촛불에서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가 ‘헌법 1조가’였죠. 그리고 단순한 노랫말 “이명박은 물러가라, 물러가라~”하는 노래가 있어요. 5월 30일 물대포가 뿌려질 때, 수천 명이 비닐을 함께 뒤집어썼는데, 그 물 쏟아지는 비닐 아래로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함께 “이명박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이명박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이 노래를 한 시간 동안 부르는데, 그 소리와 느낌에 전율했어요.
또 명박산성 앞에서 국민토성 쌓는다고 모래주머니를 나를 때. 저는 시민기자로 사진을 찍었어요. 그때 할아버지, 할머니, 어린아이, 중학생 할 것 없이 수백 명이 두 줄로 죽 늘어서서 모래주머니를 끝없이 나르던 그 광경이 엄청났죠. 또 한 번은 광화문에서 여의도 KBS로 이동하며 마포대교 건널 때예요. 수천 명이 줄지어 이동하면서 “이명박은 물러가라” 노래와 구호를 2시간동안 끊지 않고 이어가던 그때입니다. 지칠만하면 저쪽에서 들썩들썩하고, 저기서 노래하면 또 여기서 같이 부르면서 걸어갔던 두 시간의 긴 꼬리의 열정, 정말 감격했습니다.
 
명숙  저는 욕도 칭찬도 많았던 6월 10일 스티로폼 ‘소통의 벽’이 남다릅니다. 이에 대해 논란이 많았는데, 어쨌든 인권단체들은 이명박이 사람들의 갈 길과 의지를 막으며 좌절감을 주는 걸 뛰어넘자는 상징적 의미로 준비한 거였죠. 당시 제가 사회를 봤었는데, 폭력 비폭력 논쟁을 1시간 이상씩 진행하고 결국 스티로폼을 쌓았어요. 투쟁이 국민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 저들의 공격에 무너지는 게 불안해서 스티로폼조차도 폭력으로 느껴졌던 그분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이 다른 시민들이 서로 토론하면서, 우리의 얘기를 청와대에 들리게 하자 해서 쌓고 또 쌓다가 또 두 시간 동안 논쟁하고 쌓아갔던 그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2008 촛불의 키워드
 
사회자  지금 다시 듣기만 해도, 기분이 묘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추억과 느낌, 감성 에너지를 가지고 우리가 살아온 것 같은데요. 촛불을 한 단어로 얘기한다면 무엇일까요?
 
찬찬마미  제가 느끼기엔 ‘공감’인 것 같아요. 전에는 ‘정치’하면 너무 먼 얘기고, 조중동이 아니면 신문 같아 보이지도 않았는데, 저같이 평범하게 하루하루 애 키우며 사는 게 바빴던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고,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된 거거든요. 그러면서 촛불이 대중화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장 위원장님 말씀처럼 다음 번 촛불이 성공하려면 지금에 안주하지 말고 더 큰 ‘대중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튼 주부들은 열심히 생활 속의 촛불을 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승주나무  키워드라면 ‘생명’이 아닐까요? 이제까지 여러 시민단체나 정치권이 자기들의 프레임에 갇혀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촛불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을 자극했어요. 지금은 다시 처음의, 근원적인 물음으로 돌아가서 보다 세세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우리도 20여명이 구속·기소되면서 굉장히 좌절하고 갈등도 많았어요. “그럼 우리의 근본 뜻이 뭔지 다시 되돌아보자. ‘언론자유’, ‘언론소비자’ 아니냐” 그런 근원적인 질문으로 들어가니까 다들 공감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호희  운수노조 식으로 말하면 ‘펌프질’, 우리말로 표현하면 ‘감동의 상호작용’을 한 거예요. 청소년들이 “어른들은 뭐 했지” 하면서 마음을 펌프질하고, 노동조합은 “뭐하는 거냐” 한마디씩 하면서 몸도 보태고, 함께 한 거죠. “우리 불쌍하니까 도와주세요.” 하는 일방적 요구는 이제 통하기 어려워요. 사실 민주노총이 한미FTA 반대 투쟁 등 매년 정치파업하고 수없이 구속되기도 했지만 국민들은 관심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딴 세상처럼 보였던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이, 운수노조가 이런 일도 하는구나, 알게 된 거죠. 그게 전면적인 민주노총의 자기쇄신, 노동운동의 자기 혁신까지는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해도 이 세상을 바꿀 에너지가 곳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거기서 비판할 점과 배울 점이 함께 용광로처럼 녹아들어간 것이 이번 촛불 과정이었다고 봅니다.
 

"낮고 일상적이고 연한 연대가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 같아요. 노동운동은 촛불에 복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호희_ 운수노조 정책실장)
 
촛불이 가져온 변화
 
사회자  원래 봉우리가 한번 올라가면, 내려올 때가 있기 마련이죠. 지금은 다소 하강 국면인데, 이를 늦추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했는지, 또는 주요한 시사점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장대현  촛불과정의 변화, 시사점을 생각해 봤는데, 이명박 당선 지지율이 48.7%였거든요? 거의 압도적인 지지였죠. 그런데 지금은 이명박 지지율이 20%예요. 20%에서 절대 헤어날 수 없다는 것, 이건 거의 정권으로서는 죽은 거나 마찬가집니다. 저들이 아무리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청와대를 잡고 있어도, 그 맞은편에 있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힘이 오히려 이들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권력과 사회정치적 힘의 관계를 바꾼 것, 저는 이게 촛불이 가져온 변화라고 봐요. 그런데 그 촛불은 형체가 없잖아요. 지금 정확히 어디에 어떻게 모여 있지 않으니까, 일정한 지도력을 갖는 어떤 틀로 크게 묶어내야 된다는 건데, 그게 한편으론 ‘촛불을 드는 거’예요. 수가 적더라도, 좀 힘들더라도 계속 사회적인 힘이 촛불로 이어져서, 어떤 단일한 틀 내에서 촛불 실천이 이어져야죠. 올해만 지나면 또 선거가 이어지지요. 저는 촛불을 통한 사회적인 분출과 제도 영역에서의 정치적인 분출이 같이 나간다면,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러한 큰 틀을 가지고 촛불의 역량을 모아내고, 그것을 적절하게 사회적 힘으로 분출 시킬 수 있다면 바뀔 것 같아요. 
 
명숙  그 말씀에 동의하면서 생각을 좀 더 해보면, 이명박이 48.7% 지지로 당선됐다고 하지만, 투표율이 저조했잖아요. 사람 수로 보면 실제로 최저의 지지를 받은 겁니다. 그건 정치적인 무관심이기도 하고, 투표를 하지 않는 게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없음’을 표현하는 정치적인 행위였죠. 그리고 신자유주의적인 고통과 생존에 대한 위협 때문에 불만이 쌓여서 사람들이 촛불에 나왔다고 생각해요. ‘내가 내 목소리를 직접 내고, 행동을 해야겠다’고 나선 것이 촛불의 시사점이죠. 그러나 아쉬운 것은 촛불의 가장 끝머리에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있었고, 공정택이 당선됐잖아요. 정치적인 투표 행위나 제도적 틀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에 대해 아직도 불신이 높은 듯 해 여전히 한계와 과제가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촛불이 소외되고 배제당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우리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끼게 한 계기였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제 거의 모든 정치적 의제에 대해 네티즌들이 발언을 하고 있잖아요? 최근 조성민 씨 친권 문제로 한부모 가정에 대한 차별, 가부장적인 질서로 받는 핍박, 여성 문제를 생각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굉장히 많이 올라와요. 나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사람들의 권리를 빼앗으면 안 된다는 거죠. 노동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촛불이 많은 의제를 정치 의제화 하고 내 문제화 하도록 변화시키기 시작했어요.
 
진화하는 촛불, 다양한 영역에서 일상의 촛불을
 
승주나무  촛불이 선거로 연결되지 못했다고 말씀하시는데 촛불을 선거와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다소 논리적 비약이 있지 않나 생각해요. 촛불이 타오르며 많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은 사실이지만, 촛불이 타올랐다고 바로 선거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죠. 사람들이 신호를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 안에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촛불이 다른 촛불로 연결되지 않으면 바로 꺼질 수밖에 없죠. 문화인·언론 촛불 등 연대의 촛불로 다변화되지 않으면 촛불 2기를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촛불이 꺼지기 전에 다른 촛불로 연결되고, 약자들이 연대해야 합니다. 우리도 촛불처럼 스스로 분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승주나무 님_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운영위원장)
 


정호희
  우선, 반성하는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운수노조 지침으로 지역 촛불에 간부들과 조합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자고 결의한 바 있습니다. 저도 강동 촛불 회원인데, 한 번도 간 적이 없어 참 민망하네요.
먼저 촛불의 일상화를 실현하려면, 우선 촛불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가치요. 그것이 생명이 될 수도 있고, 평화, 공존, 주권, 자주, 참여가 될 수도 있죠. 방식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언론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 다양한 영역으로의 참여를 독려하는 문제가 있을 겁니다. 최근 노조 내부에서는 혁신의 문제를 굉장히 많이 고민해요. 그 핵심은 참여입니다. 노동조합운동, 민주노총운동을 십년에서 이십년 정도 하다 보니 참여율이 굉장히 떨어집니다. 촛불은 스스로 진화한다고 믿고 있어요. 지역 촛불이나 ‘언소주’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열심히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총의 사회적 역할이 여전히 크다고 봅니다. 어쨌든 노동운동의 자기 변화가 필요하죠. 민주노총은 출발점부터 단순히 노동복지, 임금문제로 출발한 게 아니라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고자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십수년 싸우다가 올해 좋은 기회를 맞이했는데, 충분히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마지막으로 진짜 현실 정치를 고민해야 합니다. 교육감선거의 교훈을 통해 이후 선거와 현실 정치 개혁을 멀리 내다보고 치열하게 고민해야해요. 아름다운 가치가 중요하고, 그것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지만, 현실 정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우리끼리 열심히 하다가 자족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온라인에서 광장으로, 그리고 다시 헤쳐 모이기
 
사회자  촛불의 첫 발화지점은 온라인이었고, 그것이 광장으로 나오면서 가시화됐습니다. 무엇보다 소강상태에선 오프모임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주로 온라인 소통을 하면서 가까워진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서로 관계를 더 강화시키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승주나무  러시아에 도스토예프스키 등 대문호가 많던 시절, 추앙받는 작가들이 말했어요. “우리는 고골리라는 작가의 입 속에서 나왔다”고. 마찬가지로 저희 ‘언소주’는 촛불의 종이컵 속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가를 무너뜨린 건 대출 통장 하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조중동을 코너로 몰아넣은 건 단지 전화기 하나였습니다.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 당시 전화로 계속 기업을 압박한 것이 파급을 미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 우리도 촛불처럼 분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그래서 언소주도 단체로 거듭나면서 ‘촛불 2기’에 대한 방향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광고주 불매운동을 좀 더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많이 논의되고 있는데요. 불매기업의 소액주주가 돼서 권리를 찾자, ‘무개념 기업 베스트’를 대대적으로 뽑자, 또 전화를 해서 욕설 등을 녹음하자는 것도 있어요. 사람들이 여러 가지 편하게, 접근성 높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매뉴얼을 만들어 보자는 고민도 있고요. 또 정론매체와 연계해 학교 등에 자료 등을 보내서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을 고민하는 등, 여러 가지로 에너지를 변환시킬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면서 스스로를 분화시키는 노력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찬찬마미  저는 언론뿐 아니라 전체적인 부분에서 국민 개개인이 소비자 주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뽑아서 일을 시키는 국회의원, 관료들이 얼마나 일을 제대로, 올바르게 하는지 따진 후 제대로 못하면 ‘리콜’하고, 강력히 시정을 요구해야죠. 그런 것이 쭉 쌓여서 결국 촛불을 이어나가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봐요.
저희 유모차부대는 장바구니를 하나 만들었어요. 거기에 미국산쇠고기 수입 반대와 수입업체 불매 운동 문구를 적고, 그 뒤에 ‘사지 말아야 될 기업 리스트’를 적어놨어요. 그걸 들고 마트에 가면 무얼 사지 말아야 될지 한눈에 딱 보이거든요. 일상생활에서도 레이더를 세워서, 정보를 교류하고 소비자 권리를 주장하면서 자주 목소리를 높여야겠다고 생각해요.
 
촛불을 골목으로, 현장으로
 
개밥바라기  당연히 저는 지역 촛불 예찬론자인데요. 7월 1일 아고라 강남직장인 촛불을 시작으로, 광화문 촛불이 소강 국면으로 갈 때 지역 촛불이 생겼죠. 저는 5월 말, 6월 초부터 지역 촛불을 만들었다면 교육감 선거에서 100% 이겼을 거라 생각해요. 촛불의 의제가 확산되고 전문성도 키워가면서 언소주처럼 집중적으로 싸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게 모여서 어느 시기가 닥칠 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도 필요해요. 그게 지역촛불로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촛불이 퍼지기 시작할 때부터 그런 말 하는 분들 계셨어요. “이 촛불의 힘을 빨리 광장에서 골목골목으로, 내 집 앞으로, 직장으로 옮겨 와야 되는데, 그래야 이길 수 있는데….” 저는 강동촛불이 지역촛불의 모델이라고 생각해요. 6월에 지역 국회의원이 광우병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구민을 폭행한 ‘김충환 사건’이 있었어요. 급하게 아고라에 사건을 알리고 지역 촛불집회를 처음 했는데, 비가 오는 와중에도 150명이 순식간에 모였어요. 모인 분들은 지역에서 계속 촛불을 하자고 하고, 교육감 선거 때도 자원봉사 하겠다고 많이들 찾아오셨어요. 그렇게 만든 지역촛불은 금방 하나의 공동체가 되더라고요.
 

"중요한 때에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이 지역이라고 생각해요. 촛불이 준 초심을 잃지 말고 더 새롭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개밥바라기 님_ <강동 촛불> 카페지기)
 
명숙  촛불 과정에서 사람들이 경찰의 폭력에 너무 많이 시달렸잖아요. 그래서 10월에 인권단체연석회의에서는 <촛불 연행자들의 모임>이나 <815평화행동단> 등 몇몇 카페와 함께 ‘내면의 촛불 빛내기’라고 경찰폭력 피해 네티즌과 함께 집단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현장에서 연행됐거나, 또는 남이 맞는 것만 봐도 심리적 공포가 크거든요. 그게 당장 드러나지 않더라도 내면에 쌓이는 거니까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 집단 심리 치료를 하면서 우리는 연결돼 있다, 같이 힘내자는 거죠. 또 매달 네티즌들과 함께 집회, 시위에 관한법률이나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에 대해 공부도 하고, 영화도 함께 보면서 후속 오프라인모임을 하고 있어요.
 
사회자  앞서 의제 확산 부분에서는 언소주, 유모차부대 등이 자기를 강화하는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강화 시스템으로 가고 있고, 또 한 축으로 광장에 있던 촛불이 동네로 옮겨 오면서 촛불이 진화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두 가지가 다 방향일 것 같아요.
 
낮고 연한 연대로 벽을 깨야
 
정호희  화물연대에 냉동차, 냉동 콘테이너를 운전하는 분들이 있어요. 이분들은 원래 작년에 뼈가 발견되는 바람에 묶여 있던 5천 톤 가량의 물량이 풀리면 두 달은 먹고 살겠다 하셨죠. 그런데 그걸 감수해야 하니 노조와 외부의 폭발적인 지원이 있음에도 사실 끝내 곤혹스러워하셨어요. 자기가 당장 죽게 생겼으니까요.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차이, 그 벽을 깨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 철도, 운수, 화물연대 파업 등 우리 조직들의 투쟁 파급력은 대단하지만 노동운동이 1년 365일 항상 싸우는 전투조직은 아니라는 거죠. 물론 중요한 시기에 자기 문제만이 아닌 사회적 문제를 가지고 함께 싸워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좀 주춤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감동의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만 싸워도 우리 문제는 충분히 이긴다고 자신하지만, 결국 큰 문제를 같이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 이런 것들이 소통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또, ‘강고한 연대투쟁’ 보다 ‘말랑말랑한 연대’가 훨씬 더 힘을 발휘한다고 봅니다. 한창 싸움 때, 우리 사무실에 <소울드레서>, <쌍코> 카페 회원들이 초콜렛 가져오고, 투쟁 현장에 라면을 갖다 주시는, 지금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있었어요. 이번 촛불에서 화물연대 파업, 운수노조의 운송거부, 민주노총의 운송저지가 완성되진 못했지만, 저는 이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낮고 일상적이고 연한 연대가 세상을 조금씩 바꾸는 것 같습니다.
 
장대현  지금 촛불이 꺼진 게 아니라 눌리고 있는 거죠. 눌리면 나중에 터지거든요. 저는 다음번 촛불이 똑같이 생활적인 요구로 터질 것 같은데, 훨씬 기층의 요구로 무섭게 올라 올 거예요. 저쪽은 한번 당해봐서 자기들이 조금만 밀리면 더 커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철저히 막고 있는 거거든요. 물론, 눌린 촛불은 그냥 기다리면 알아서 올라오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11월, 12월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이명박 정부가 민생, 민주주의 이 두 영역에서 철저하게 악법을 만들려고 하고 있거든요. ‘민생 악법’은 규제 철폐하고 세금 감면하는 건데, 출총제 없애고 금산분리 완화하고 지주회사 풀고, 또 순환출자 풀고…. 이렇게 하면 재벌이 더 자유롭게 문어발을 뻗치겠죠. 그 다음 세금감면은 그 유명한 ‘9.11 세제개편’ 나온 게 양도세, 종부세, 상속세, 소득세 같은 것들인데,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한 2% 정도 돼요. 이런 민생 악법을 다 밀어 붙인다는 거고, 한미FTA까지 한다는 거죠. 또 하나는 ‘민주주의 악법’. 사이버 모욕죄는 굉장히 주관적이고, 기준이 없잖아요. 내가 모욕을 당했다고 느껴서 신고하는 건데, 경찰이나 검찰이 알아서 수사하겠다는 거죠. 결국 사이버 모욕죄로 네티즌을 틀어막겠다는 거죠. 이런 게 다 80년 전두환이 ‘서울의 봄’을 체험하고 무섭게 올라오는 기운을 틀어막은 것과 지금 똑같은 거예요. 저들이 민생악법과 민주악법을 12월 국회에서 다 통과시키려고 하니까 이때 가만히 있으면 정말 살기가 어려워지는 거죠. 촛불을 누르는 힘이 더 쎄지고, 국민의 고통이 더 커져요. 이때 나서서 촛불은 꺼진 게 아니구나, 여전히 살아있고, 정의롭고, 여전히 공감을 얻는 거구나 하는 것을 보여줘야죠. 그래야 다음 번 촛불도 열릴 수 있고, 12월 국회에 대한 아주 현실적인 실천을 활성화해야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12월, 여전히 살아있고 정의로운 촛불의 힘 보여주자
 
사회자  각오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2009년에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서로에게 바라는 점이나 연대의 방법이 있다면 얘기해 주시죠.
 
찬찬마미  집이 마포구라 마포촛불문화제에 갔었는데, 그때 이랜드 비정규투쟁하시는 분이 나오셔서 연설하는 모습을 보고 되게 찔렸어요. 제가 홈에버를 자주 갔거든요. 전에는 농성장 보면 ‘저 천막 또 있네.’하고 흘려 지나다가, 촛불 들면서는 ‘아, 비정규직이 남의 일이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사실 제 주변에도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친구가 있고, 대기업 사무직으로 일하는 여자분들 중에도 비정규직이 많이 있는데, 그런 게 피부로 와 닿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개별적이든 유모차 카페 차원이든 음료수라도 들이밀고 ‘힘내세요’ 해드렸으면, 그때 그분들도 유모차 부대에 응원 한마디도 해주시고 하면서 더 원활하게 연대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계속 노동자는 노동자, 소비자는 소비자, 따로 나갈 게 아니라 다 같이 열심히 연대하면서 친해졌으면 좋겠어요.
 
정호희  촛불은 부정할 수 없는 시대적 아이콘이죠. 참여가 자발적이었다는 점에서 누구도 함부로 비판할 수 없는 정당성과 힘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온수’, ‘닭장투어’ 등 기존의 관성을 완전히 깨버리는 높은 창발성을 갖고 있어요. 또 의식적인 면에서 함께 살고 함께 가자는 공동체 의식을 담고 있다고 봅니다. 촛불을 막연한 향수로만 추억해서는 안 되지만, 1년 내내 하는 게 바람직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촛불의 정신으로 세상을 바꿔야하는 건 분명해요. 그걸 위해서 저는 지역에서 뿌리내리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을 중심으로 노동, 농민, 여성 등 각 부문의 혁신이 필요하고, 의제별로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촛불은 네티즌일수도 있고, 적극적인 시민일 수도 있죠. 항상 어려울 때 그들이 답을 줬다고 봐요. 과한 얘긴지 모르겠지만 노동운동하는 우리의 조직적이고 기본적인 사고가 ‘촛불에 복무한다’ 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역을 중심으로 부문 혁신, 의제별로 집중해야
 
승주나무  촛불이 만든 관계의 첫 단계는, ‘모르던 사람끼리 만나는 거’였죠. 모르던 때는 화물연대 파업이나 지하철 파업에 굉장히 불신을 가지잖아요. 그런데 만나보니까 전해 들었던 것과 달리 나랑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확신하게 된 거죠. 촛불의 만남으로 광장이 열린 거죠. 이제 두 번째 단계는 ‘손을 건네는 것’이고 이건 지금이 아닌가 싶습니다. 약자들이 연대하는 거죠. 여기서 과감하게 기득권을 버리고,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최대한 서로 대등한 관점에서 상호 존중하면서 만나야 돼요. 언소주도 이목을 많이 끌다 보니 본의 아니게 주도권을 갖는다고 보일까봐 운영위원들이 어디서 발언을 해도 그런 점을 특히 조심해 주기를 서로 당부하고 있습니다.
아직 오지는 않았지만 세 번째는 비로소 ‘모이는 것’이고, 이 때 에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어떤 단체든 두 가지 기획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단위의 고유한 전략기획과 연대 기획이 그것입니다. 예를 들면 <언소주>가 유모차부대 엄마들과 언론에 대해 쉽게 얘기해 볼 수 있는 팜플렛이나, 엄마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같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도 있죠. 의도적으로 그런 걸 만들면서 손 내밀어야 합니다.
 
장대현  촛불의 성과를 이어 12월 국회 대응을 어떻게 하느냐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민생민주국민회의는 이른바 진보운동진영과 시민사회진영, 그리고 네티즌 등 촛불에 함께했던 주요 세력들이 광범하게 모인 것이 특징이에요. 구성원이 다양한 만큼 ‘모여서 함께하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좋다는 것’을 상호 검증하는 과정이 불가피할 거라고 봅니다. 여기에서 성공하면 가능성을 지니는 큰 힘이 될 거다, 이렇게 생각하죠. 그래서 각자의 역할을 더 헌신적으로 할 필요가 있어요. 12월 국회투쟁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실천을 만드는 첫번째 과정이 될 것 같아요.
 
명숙  저는 여러 조직이 여러 방식으로 자기의 대안을 찾아가는 것이 촛불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해요. 민생민주국민회의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에 걸맞는 내용과 모습을 담되, 모두가 다 당연히 모여야 한다는 생각은 안했으면 좋겠어요. 네티즌은 네티즌대로, 지역은 지역대로, 각자의 영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해야 할 일이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 물론 싸울 때는 같이 모여야죠. 많은 네티즌이 이번 촛불을 통해 민주노총이나 진보세력에 대한 불신을 조금씩 없애갔다고 생각해요. 저는 촛불이 의제를 확대하면서 기륭 촛불이 생긴 데 큰 의미를 둡니다. 촛불의 의제를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반대로 이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이주노동자문제까지 못 간 것은 좀 아쉽습니다.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이니까’ 하는 사고와 연대 의식이 확장되는 방향으로 촛불 의제들도 넓어졌으면 좋겠어요.
 

"촛불은 소외된 사람의 문제가 우리 모두와 연결됐다는 걸 느끼게 해줬어요. 촛불 의제가 신자유주의 전반으로 넓어져야죠." (명숙_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우리는 다 같은 촛불, 서로 존중하며 연대와 소통을 확장할 때
 
개밥바라기  강남에서는 미조직 노동자, IT노동자들이 촛불을 만들고 있잖아요. 예를 들어 여의도 같은 곳도 직장인이 많은 지역인데, 사무금융노조나 민주노총에서 꾸준히 촛불을 들기 시작하면, 경제이슈나 생활의 문제로 다시 모이는 기회를 만들 수도 있어요.
강동촛불 회원 중 카페에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올려주는 분이 계세요. 얼마 전 100일 잔치를 치르고 모두 들떴을 때도 ‘초심아, 어디갔니?’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셨죠. 초기에는 혼자라도 다니면서 동네나 지하철에 유인물 돌리고 다니는 분들 계셨어요. 그때는 외롭지만 어떻게라도 사람들 만나려고 활동을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런 걸 안하고 있고, 우리끼리 수요일 촛불하고 함께 뒤풀이하는 정도에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글이었지요. 지금은 <강동촛불산악회>라는 등산 소모임을 만들고 또 지역 내에 엄마들이나 초·중·고등학생이 모일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을 만드는 등 더 새롭게 촛불을 확산시키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어요. 또, 평소에 자주 못 오시는 정호희님 같은 분들이 번개모임에 오셔서 언론이나 철도 파업 얘기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웃음)
 
정호희  많이 찔립니다. (웃음) 지역 촛불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라는 노조 차원의 공식 지침은 전달되어 있어요. 그런데 거의 못 했죠. 좀 더 절박하게 얘기를 해야 될 것 같아요.  
 
명숙  저희도 이번에 2008 인권선언 카페를 만들었는데 인권활동가들조차 안 들어가요. 그동안 기존 단체운동, 노동운동 해 오셨던 분들이 무성의해서라기보다 자기 생활 속에 온라인이 없으니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 같아요. 우리는 서로 배우는 관계라고 생각하거든요. 쉽지 않은 조건이지만, 서로가 잘하는 걸 배우고 가르쳐 줬으면 좋겠어요.
 
사회자  촛불의 감동적인 순간과 키워드를 떠올리면서 그때의 느낌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촛불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하며 더 크게 분출하는 촛불 2기를 전망할 수 있었습니다. 두 시간 반 동안 감사합니다. 
 
 
* 좌담회 날짜/장소 : 2008년 11월14일 / 월간노동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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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생일날에 아빠가 되다

 '심장소리는 왜 이렇게 작은 거예요 ㅠㅠ 불안해요' 라고 하니까 '아기가 2mm밖에 안될 정도로 작은데 어떻게 심장소리가 크게 들려요~ 정상이에요'

아내가 흥분된 어조로 전화를 해왔습니다. 11월 28일은 만으로 '서른'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제 생일은 11월 29일이고, 제 아내는 저보다 이틀이 빠른데(11월 27일) 우리는 공평하게 11월 28일에 서로 생일을 챙겨주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로 11월 28일, 우리 부부의 생일을 축하해준 것은 '아기'였습니다.

결혼 3년 차인 우리 부부는 그 동안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을 거듭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애간장을 태우던 아기가 드디어 우리의 품에 사뿐히 내린 것이죠. 쬐끄만하지만 이목구비가 다 보입니다. 인석이 그래도 저처럼 머리가 좀 크네요. 심장도 보이고 심장박동도 명쾌하게 들립니다. 심장박동 소리가 들린다는 말에 저는 세상이 열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픈 과거가 있어서 그런지 아기집도 오롯하게 만들어지고 맥박소리도 들린다니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있겠습니까. 난황(아기 왼쪽에 달려 있는 조그만 것)이라는 것은 저도 난생 처음 알았는데 10달 동안 아기에게 영양분을 공급한다고 하더군요.

사람은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조금 더 컸겠지만, 2mm인 아기의 씨앗 역시 하나의 우주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우주가 찾아왔습니다. 2mm짜리 하늘이 열렸습니다.



'아버지'에 대해서 생각하다

그날 저는 한 시민단체의 긴급회의라는 명분으로 아내와 약속했던 조촐한 생일파티를 하지 못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저를 붙잡는 회원님들의 만류를 정중히 거절하고 자정이 조금 넘어서 케익 하나를 사들고 아내를 찾았는데, "빌어먹을 녀석아!"하면서 욕을 하면 시원하겠는데 아무 말없이 있는 겁니다. 남편놈이 생일도 알까말까 하고 지 새끼가 내려앉았는데 밖으로만 나돌아다녀서 미울 만도 한데 한없이 순둥이 기질의 아내는 말 한마디 안 하더란 말이죠. ㅠㅠ

 

제가 요즘 생각하는 것은 '부모'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자식사랑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자식사랑 때문에 아이의 앞길을 망치는 경우도 무수히 생깁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386 형님누나들에 대한 원망을 갖고 있는데, 모든 부모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그들의 '자식사랑'이 겉으로만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근본적이고 진정한 의미의 자식사랑이 아니라 '내 자식 챙기기'의 모양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정말 자신의 자식이 사랑스럽다면 제 자식만 챙길 것이 아니라 '자식 세대의 미래'를 열어주어야 합니다. 부끄러운 소식을 하나만 더 하자면 얼마 전 조양진 선생님을 만나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차피 우리 세대에 조선일보를 절멸시키지는 못하겠지만, 다음 세대에 기필코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터를 닦아놓겠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난 말이었지만 조양진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당신 세대에서 끝내지 못하면 안 된다. 우리 아이들에게 조선일보를 보게 하여서는 절대 안 된다. 그것이 조선일보를 끝내 절멸시키지 못했던 우리 세대의 숙원이다. 당신은 그것을 반복하려고 하는가?"

다음 세대라는 말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이미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놓은 셈이죠. 저는 제 아이 앞에서 떳떳한 모습으로 살고 싶습니다. 자식 기저귀 값이나 분유값 벌려고 '부당함'에게 슬쩍 슬쩍 말을 트고 어물쩍 손목을 잡고 하는 짓거리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이를 배불리 먹인다면 아이는 겉으로는 뭐라 안 하겠지만,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경멸할 것입니다.

강만수 장관이 그린벨트를 완전히 해제하고 거기에 개발을 하겠다고 나서서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국회에 선 강만수 장관은 "후손들의 문제는 후손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지, 우리가 지금 그것까지 챙길 상황인가?"라고 하면서 그린벨트 해제를 기정사실화했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미래세대에게 참 부끄럽습니다.

저도 일개 소시민에 불과하지만, 제 자식만이 아니라 미래의 자식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남겨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은 되도록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하며, 민주주의나 여러 가지 가치들 역시 안전하게 계승시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아이들에게 '말'을 전달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즉 '언로'를 말하는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언론은 '말'이라고 하기보다는 '언어폭력'이라고 할 정도로 혼탁해진 상황입니다. 저는 최소한 아이들이 '언어폭력'을 '상식'처럼 생각하는 사회의 공기를 마시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조선일보'를 폐간시키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우리의 부끄러운 유산입니다. 그것을 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집안일을 세심하게 돌보지 못해서 아내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 승주나무의 개인사를 말씀드리면 비인간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문상을 온 시사모(시사인 창간독자)들에게 시사인 창간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했습니다. (상복을 입고) 그들이 질겁을 했다더군요.
요즘에는 머릿속에 '언소주'만 가득 들어 있어서 언소주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도 걱정을 하십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사회적인 것에 몰입하게 되었을까요. 중용의 구절처럼 "내가 보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일단 보았다면 외면할 수 없다"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너무 개인화되고 개별해법으로 가려는 분들도 걱정이지만, 저처럼 너무 사회성이 강성한 것도 우려될 만한 점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좀 소박하게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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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12-10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한지 벌써 3년이나....
이제 아버지가 되시네요.^^ 축하합니다 승주나무님.

승주나무 2008-12-10 23:22   좋아요 0 | URL
메피 님도 슬슬 소식이 들릴 때가 되지 않았나요? 감사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08-12-10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신비합니다.
같은 서른인데 저를 많이 앞질러 가시네요 축하드립니다 ^^

승주나무 2008-12-10 23:23   좋아요 0 | URL
FTA반대휘모리 님~ 서른에 비해서 과정이 좀 빠른 듯하긴 합니다. 그렇다고 앞질러 가는 것은 아니지요. FTA반대휘모리 님의 축하댓글을 받으니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드팀전 2008-12-10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비인간적인 것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면은 우려스러운데요 ^^
승주나무님은 절대 '혁명'하지 마세요.ㅋㅋ

아기 태명 잘 지으세요.

승주나무 2008-12-10 23:24   좋아요 0 | URL
드팀전 님~ 정말 혁명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ㅋㅋ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걱정입니다.
감사합니다^^

Jade 2008-12-10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승주나무님 완전 축하드려요! >.<

승주나무 2008-12-11 00:26   좋아요 0 | URL
제이드 님 완전 감사해요^^

무스탕 2008-12-1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승주나무의 열매가 맺었네요 ^^
아가도 엄마도 건강,건강하게!!

승주나무 2008-12-12 12:12   좋아요 0 | URL
무스탕 님^^
아가도 엄마도 건강할 수 있도록 기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2-13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아기가 태어나겠군요.자상한 아버지와 남편이 되실 겁니다.

승주나무 2008-12-23 13:1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자상한 아버지와 자상한 남편은 둘 다 무척 어려운 과제입니다^^;;

감은빛 2008-12-15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드디어 아빠가 되겠군요. 아이랑 함께 있다보면 힘들거나 속상할때도 많지만 그래도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아이가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육아와 관련하여 힘든일은 언제든지 상의하세요! ^^

승주나무 2008-12-23 13:16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선배 아빠 감은빛 님을 그대로 방치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열심히 스토커 하겠습니다 ㅎㅎ

강민아 2008-12-20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 승주야 축하해.. 이제야 알았네.. 난 고모되는거냐 ㅋㅋ

승주나무 2008-12-23 13:16   좋아요 0 | URL
뒤늦게 알았으니 다행이다.. 아이가 고모를(실은 고모의 선물을) 너무 보고 싶어하는 것 같더라구 ㅋㅋ

멜기세덱 2008-12-24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뭐야! 뭐야!!!
나한텐 얘기도 안 해주구....너무해요....ㅠㅠ;;
근뎅....ㅋㅋㅋ
추카추카!!!!알라뷰소머치베이비!!!!

마늘빵 2008-12-24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이거 이제 봤어요!!! 아니 이럴수가. 축하해요!! ^^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 발도로프와 한의학이 만난 학교 1
이양호 지음 / 글숲산책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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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척이나 사람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이양호 씨는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교육의 대도를 걸었던 사람처럼 인터뷰 하는 내내 여유와 확신이 몸에 배어 있었다. 심광체반(心廣體胖 : 마음이 너그러워서 몸에 살이 오름)이라는 사자성어(대학)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

"10여 년 전부터 대안학교에 대한 절실한 요청이 있었고 몇몇은 자리를 잡은 듯합니다. 하지만 한국교육의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대안학교들은 최초의 취지를 지켜나가는 데 대해서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 독일 발도로프 대안학교에서 수학해 10년 넘게 대안학교에 대해서 고민해 온 이양호 씨를 만났다. 12월3일 홍대 주변 민들레영토에서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글숲산책, 이하 '공도인')과 <백설공주는 공주가 아니다?!>(이하 '백설공주는..> 단 두 권에 반해서 인터뷰에 함께 따라나선 독자 1명과 함께였다.
이양호 씨의 두 번째 출간작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글숲산책)에서는 우리가 소홀히 다뤘던 '도덕성'이라는 개념을 교육철학의 밑바탕으로 삼았고 고전과 토박이말도 주요한 개념으로 넣었다. 특히 심청전과 오이디푸스를 독특하게 해석한 것이 일품이며, 대안학교의 실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 것도 특색이다.

황색 점퍼 차림에 맑은 눈을 하고 나타난 이양호 씨는 드디어 자신이 생각한 교육철학 방법론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된 데 대해서 잔뜩 고무된 모습이었다. 국민일보와 부산일보 등 중소형 언론사에 소개되기는 했지만, 메이저 신문에서 자신의 책을 다뤄주지 못한 점을 아쉬워 하기도 했다.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이름, '도덕'을 너무 잘못 알고 있었다. 

 
나도 교육의 중요성과 한국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적잖은 시간 고민했고 3년간 논술을 가르치며 새로운 교육대안을 고민해보았지만, 이양호 씨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논의된 대안교육에 대한 고민에서 적어도 한두 발자국 정도는 더 나아간 듯 보였다. 이 씨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안학교는 처음에는 자연과 하나된 인성교육, 전인교육, 건전한 민주시민을 위한 교육이라는 취지에서 출발하였다.


"공부와 도덕성을 서로 짝지으셨는데, 요즘 누가 도덕성 생각하면서 공부합니까. 다들 성공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거 아닌가요?"


처음에는 좀 짓궂은 질문으로 화두를 떼었다. 어설프게 꺼낸 우문에 대해 가차없이 현답이 돌아온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이란 그야말로 도덕책에서 보았던 '예의범절'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동양의 지혜에 따르면 도(道)는 '우주의 바른 길'을 뜻하며 덕(德)은 '바른 길을 수없이 실천해서 내 몸에 쌓이게 된 것'을 말합니다. 도덕은 그야말로 우주적인 개념이죠. 서양으로 가 볼까요. 서양에서는 자유와 평등을 떠나서는 도덕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선조들은 별자리를 진지하게 관찰했습니다. 별자리에 박힌 별들은 서로 침범하는 법이 없고 질서를 따르거든요. 웅숭깊은 '보편성'이 내재된 개념이 바로 도덕성입니다."

나의 '부도덕'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맹자>라는 책의 첫머리에서 "선생께서 먼 길을 마다않고 우리 나라에 찾아와 주셨으니 우리에게 어떤 이로운 가르침을 주시겠습니까?"라고 했다가 맹자로부터 "왕께서는 어찌 사사로운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인과 의가 있을 따름입니다."라고 대번에 야단맞은 양혜왕이 된 기분이었다. 자세를 바로잡고 대안교육 10년의 흐름과 교육현실, 새로운 대안학교에 대한 밑바탕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이양호 씨는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 <백설공주는 공주가 아니다?!>는 두 권의 책을 통해서 도덕성, 토박이말, 고전읽기는 교육철학의 주춧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차등수업료제도'에서부터 대안교육은 시작한다


"신문에 보니까 대안학교 관계자가 “대안학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강남 학부모 사이에서는 ‘1순위 유학, 2순위 특목고, 3순위 (서울대 신입생을 배출한) 대안학교’라는 말도 나돈다”(시사IN 61호)고 할 정도로 대안학교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안학교가 자라온 흐름을 일괄해 주신다면?"
- 대안학교가 우리나라에 시도된 지 10년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우학교나 간디학교 등 유명한 대안학교가 있죠. 하지만 대체로 대안학교는 귀족학교라는 선입견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민족사관 고등학교나 외고 같은 특목고를 대안학교로 잘못 아시는 분들도 많지요. 그리고 어떻게 말이 돌아다니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원에 50만원 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해도 대안학교에 50만원 내면 엄청나게 부풀려져 현재의 선입견을 키운 것 같습니다. 그것은 대안학교도 대안학교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잡아나가지 못한 것도 중요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2006년 12월 교육인적자원부가 펴낸 <대안교육백서>에 따르면 대안 고등학교 졸업생 85%가 대학에 진학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께서 대안학교를 만드시려고 하는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 대안교육은 현재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교과목을 인정하는 속에서 만드는 방법(인가 대안교육시설)과 교과목 자체를 부정하면서 만드는 대안 교육(비인가 대안교육시설)이 있습니다. (인가를 받으려면 40억원 규모의 시설을 갖추고 국민공통 교육과정을 50% 이상 이수하며 교원자격증을 가진 교사를 선발해야 한다.) 저는 지금 있는 대안학교에 대해서 비판하가보다는 하나를 더 보태고 싶습니다.  

 


▲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대안교육 특성화학교 수는 160개에 이르며 학생수도 6,000명에 가깝다. 현재 인하대와 성공회대 등 대학교에서도 대안학교 이수자에 대한 특별전형을 실시하는 등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대안학교 모델을 세우신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구체적으로 다른 대안학교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 발도로프 대안학교의 제도 중에서 '차등수업료 제도'가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이 제도가 '의료보험제도'처럼 자리를 잡았습니다. 가정의 수입 내역이 파악되고 이에 따라서 수업료가 차등적으로 제시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산내역을 공개하는 걸 상당히 꺼려 하니까 이것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겠지요. 100만원 버는 가정과 1,000만원 버는 가정이 똑같이 50만원을 내는 것은 비교육적인 일이죠. 돈이 있는 분들은 조금 더 내고 돈이 부족한 사람들은 도움을 얻는 방식을 만들고, 입학 희망 가정을 설득해서 타협을 이뤄낼 생각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취지가 있습니다. 우선 돈이 없는 사람들도 공평하게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자는 차원입니다.


"'차등수업료 제도'를 들었을 때 '기여입학제'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입학금을 내는 정도에 따라서 학부모나 학생들이 지분을 행사하려는 경향이 강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듭니다."
- 그런 문제가 처음에 터질 거라는 사실을 모든 선생님들이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어떻게 바꿔나갈지 해결방법을 모색하려 합니다. 그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중학생만 되도 컴퓨터 게임 중독 등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너무 오랫동안 길이 들여 있어서 이것을 바꾸기가 굉장히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로 낮춰서 기숙사까지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기숙사라는 점이 또 걱정이 될 수 있지만, 생활 전반에 걸쳐서 교육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기숙사와 함께 운용하지 않으면 교육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초등 대안학교에 기숙사를 운영하는 방안에 대해서 공감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어떤 공기 속에서 생활하는가가 교육에서는 가장 중요합니다. 학교에 갔다가 집에 가면 또 비교육적인 환경, 예컨대 컴퓨터 게임이나 폭력적인 영화, 어른들의 부동산 이야기 등 동심을 왜곡하는 신호가 너무 많습니다. 전반적으로 아이들에게 대안교육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라야 아이들의 사고가 자라고, 부모들도 이런 사회적 공기 속에서 (차등수업료를 내는 데 대해서) 큰 저항감 없이 교육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공적인 것, 보편성을 알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원론적인 지점에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교육과 이제까지의 교육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인가요?"
- 기자님은 현재 우리 시대의 얼굴이 무엇인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법률사무소 김앤장'입니다. 최고의 성적으로 좋은 학교를 나와서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변호사이고, 그들 중에서 가장 상위에 있는 단체가 바로 김앤장이지요. 김앤장 현상은 두 가지 문제점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민사고나 대원외고와 같이 이른바 귀족 학교를 생각해 보십시오. 입학에서부터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공적인 것'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이러한 공기 속에서 그들이 갑자기 '공적인 인간'이 될 수 있을까요? 그야말로 '사적인 영광'일 뿐이죠. 그리고 공적인 인간이 되지 못한 사람은 '우월감'에 빠질 위험이 큽니다. 우월감이란 이타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무척 위험한 것이죠.


"말씀을 들어보니 선생님께서는 '공교육' 중심의 대안을 짜고 계신 듯합니다. 요즘 들어 '수월성 교육'과 '경쟁 시스템'이라는 말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의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공교육 평준화 정책을 '하향 평준화'라고 폄하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국제 올림피아드 같은 엘리트 시험에서 최고 등수를 올리는 학생들이 공교육 때문에 바보가 된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데요."
-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주장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은 공교육과 사교육, 수월성 교육 등 모든 교육 주체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면 재미교포 김승기씨가 최근 쓴 박사논문 '한인 명문대생 연구'에 따르면 1985∼2007년 하버드대 등 미국의 14개 명문대에 입학한 한인 학생 1400명 가운데 56%인 784명만 졸업하고, 44%의 학생이 중간에 자퇴했다고 합니다. 미국 학생 34%, 유대인 12.5%, 인도 21.5%, 중국 25%에 비해 한국 학생들의 중도 탈락률이 매우 높죠. 이 수치는 우리나라 교육이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돼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수월성 교육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올림피아드'를 거론하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엘리트에 대한 데이터일 뿐입니다. 올림피아드보다 OECD 공식 학력 테스트인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만 15세 학생들의 읽기, 수학, 과학적 소양 수준 파악 및 소양 수준에 영향을 주는 배경을 분석하여 각국 교육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시험. 3년에 한 번 OECD가 실시하며 2006년 현재 57개국 40만명의 학생이 참여했으며 우리나라는 154개 학교에서 5,000명이 참여했다.)가 좀더 확실한 자료입니다. 보통 아이들이 보기 때문에 대한민국 학생들의 평균실력을 가늠하는 이 시험에서 우리나라는 OECD 평균을 훨씬 뛰어넘고 있습니다.(2006년 기준) 문제는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실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데 이것은 중고등학교 교육과정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 2006년 실시된 OECD PISA의 시험 결과. 우리나라는 OECD 평균에서도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PISA는 올림피아드와 달리 '보통 학생'의 시험 결과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교육정책을 짜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선생님이 최근 출간한 <공도인>(글숲산책)에 보면 유난히 '도덕성', '보편성', '자유'라는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교육 모델에서부터 강조하신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 그것은 우리의 교육철학이 따로 없고 바탕 역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춧돌이 바로 서야 집을 지을 수 있듯이 공부를 가르칠 때도 '바탕'이 제대로 심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학'을 가지고 예를 들어 본다면, 우리들은 수학공부를 하면서 지혜를 얻는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수학이란 지극히 기능적인 과목으로 한정하는 것이죠. 하지만 서양의 문명에서 수학 공부는 자아를 성찰하고 수련하는 대표적인 분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플라톤, 피타고라스, 러셀, 데카르트 등 서양의 철학자들을 생각해 보면 모두 수학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저서(국가 정체)를 읽어 보면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고,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 다음이고,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주요한 방식이 바로 수학이었습니다. '창의력'에 대해서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현재 우리가 말하는 '창의력'이란 그저 욕망의 분출일 뿐 제대로 된 창의력이 아닙니다. 새로운 것이 다 창의력은 아니죠. 이전에 없던 것에 하나를 보태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산물들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즉 보편성을 가지고 있어야 바로 '창의력'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죠. 역설적인 말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창의적인 인간에 이르기 위해서는 '고전'을 배워야 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질문을 드립니다. <공도인>이나 <백설공주는..>에 보면 고전에 대한 독특한 해석과 특히 '토박이말'의 사용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만의 소신이 있을 듯합니다"
- 고전은 그 시대마다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백설공주는..>에서 독일의 자랑 그림형제의 동화 원문으로 우리 고전의 시각에서 해석했습니다. 구전해 내려오는 작품들은 어떤 식이든 상징과 시대정신이 있기 마련입니다. <공도인>에서는 '심청전'을 분석했고, 서양 고전으로는 '오이디푸스'를 분석했습니다. 단지 고전을 읽는 것보다는 하나의 고전을 잡고 여러 가지 관점으로 뜯어보고 오늘날의 현실과 갈마들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토박이말을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주체성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속에는 한자어와 많은 외래어가 들어와 있습니다. 토박이말을 버리고 다른 말을 쓰면 단절이 일어납니다. 예컨대 '모순'(矛盾)이라는 한자어를 아는 사람은 그것을 모르는 사람을 은연중에 낮추어 보게 됩니다. 그것이 첫 번째 문제이며, 우리들의 사유를 오롯이 담아낼 건강한 그릇이 바로 토박이말이라는 점은 많은 철학자들이 강조했던 점입니다. 예컨대 서양에서는 '존재'라는 단어를 가지고 무수히 많은 책을 만들었다면, 우리도 역시 '있음'이라는 말을 써서 철학을 풍부하게 해야 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토박이말을 저의 책에 계속 활용하는 것입니다. 토박이말과 고전, 도덕은 저의 교육철학을 이루는 밑바탕이 됩니다. 

 
인터뷰는 3시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나름대로 교육계에 몸담고 있었거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먹먹해짐을 느꼈다. 교육의 현주소를 보면서 개탄하고 바꿔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면서도 제대로 된 교육철학을 세우지 못하고, 대세의 흐름에 정처없이 흘러갔던 그 동안의 세월이 반추되는 듯했다. 대안학교에 뜻을 함께 하는 한의사 분과 지금 대안학교의 밑작업을 하고 있다는 이양호 씨는 자신의 뜻을 읽고 손을 맞잡아줄 사람들에게 절박한 메시지를 보내는 심정으로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그의 탄탄한 교육철학이 제대로 된 날개를 얻어 비상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했습니다.
링크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27716&PAGE_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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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네 장 담그기 우리문화그림책 온고지신 6
이규희 글, 신민재 그림 / 책읽는곰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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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항상 가을만 되면 작은마루에서 찌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작은마루하고 방하고 문으로 막아놓은 것이 아니라서 집안 전체에 메주 냄새가 났다.
처음에는 냄새가 얼마나 독하던지 일부러 늦게까지 놀다가 저녁에야 집에 들어가는 때도 있었다.
"꼭 이런 데다 널어야 하나?"
하면서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메주를 발로 차면서 화풀이를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자주 맡다 보니 향긋하고 달싸름한 냄새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당시 한약을 자주 먹어서 왠만큼 독한 냄새에도 어느 정도 길들여져 있던 나는
메주의 특이한 냄새를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 건넌방에서 자고 있는 메주가 잘 지내는지 보려고 방문을 여는 순간 가을이는 코를 찌르는 냄새에 깜짝 놀라 "할머니, 어떡해요. 메주가 썩었나 봐요. 곰팡이도 나고 아주 못생겨졌어요!"라고 달려간다. 그런데 할머니는 웃으시며 그게 우리 몸에 아주 좋은 곰팡이꽃인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말했다. (<가을이네 장 담그기> 중 일부)

선량하고 덕 많은 가을이네 부모님과 할머니가 장을 담그는 이야기가 제데로 익은 된장맛으로 그려져 있다.
'책읽는곰' 출판사의 다른 책에 비해 수채화풍으로 넉넉하게 그린 게 특히 인상적이다.
나는 그림에 된장을 묻힌 줄 알았다.
<책읽는곰> 책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지만,
어린 아이가 주인공이고 그 안에서 참여하면서 실생활의 지혜를 많이 배울 수 있다.
작위적인 부분이 없는 것이 책곰 책의 장점인 것 같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주인공이 하는 역할이나 느끼는 바가 분명하게 그려져 있다. 

여문 콩을 골라내는 일을 할 때는 할머니를 돕기도 하고, 
콩으로 메주의 형틀을 만들 때도 역시 쪼물락 쪼물락 잘도 만든다.
메주를 볏짚으로 묶어 처마 끝에 매달아놓을 때도 메주 두 개를 짊어지고 아버지를 돕는다.
이런 장면들이 책의 현장감을 높여주고,
책을 읽는 어린이 독자로 하여금 직접 체험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아닌가 싶다.
나는 나이 찬 어른이 되었지만,
가끔 아무도 몰래 동심 속으로 다녀올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이 그림책 때문이다.




▲ <온고지신> 우리문화 시리즈 그림책의 맨 뒤에는 관련자료를 대화체로 엮어서 알기 쉽게 풀이해 놓았다. 처음에는 자료첨부 수준이었던 것 같은데, 문체가 조금씩 발랄해지는 것을 느낀다. 시리즈 10권 정도 가면 참 볼 만한 문장이 나올 듯하다. (이 멘트는 출판사 압박용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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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승주나무 > 포도밭 이야기와 한국사의 유산



역사적 사실을 찾아가는 것 자체가 바로 역사야!

'어른판'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를 읽으면서 문득 ‘포도밭 이야기’가 생각났다. 자식들에게 포도밭에 엄청난 금덩어리가 있으니 캐서 가지라는 유언을 남긴 아버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 포도밭을 일군 자식들. 결국 수확철에 풍성하게 자라난 포도밭을 보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뜻을 깨달았다는 유명한 이야기다. 박은봉 선생의 '어른판', '어린이판'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에서는 '한국사의 상식'이라는 금광을 찾기 위해 저자가 동분서주 뛰어다닌 흔적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사의 유산'이다. 사실이 왜 왜곡됐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왜곡됐으며 누가 왜곡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들다 보면 어느덧 그것 역시 역사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1월 26일 홍대앞 상상마당에서 있었던 박은봉 강연에서 이러한 점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참고로 박은봉 선생이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를 위해서 들인 집필 기간은 3년이며 구상기간까지 합하면 모두 5년의 기간이 걸렸다. 읽은 논문만 1,000여 편에 달한다. 어른판은 44개의 꼭지로 이루어졌는데, 어린이판에서는 어린이가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이는 내용을 정리하고 새로운 것을 추가해서 1,2권 40개의 꼭지로 나누어 펴냈다. 어른판의 저자인 박은봉 선생은 '어린이판'에서는 멀찍이 뒤로 물러서고, 이광희 작가가 어린이의 시각에 맞게 전면적으로 리라이팅을 했다. 그림과 도표, 인터뷰와 인터넷 토론방, 상황극을 넣어서 원작을 다채롭게 표현했다. 박은봉 선생은 책 속에서 자신이 '바빠서 이만'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서 내심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리라이팅 결과에 대해서는 흡족한 눈치다. 특히 박은봉 선생이 강연에서도 강조했던 역사적 사실을 찾아가는 '과정'의 온전하게 살려낸 점은 어린이들에게 유익한 역사공부가 될 것이다. 역사책에 나와 있는 대로 암기하고 문제푸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게 되는지 다양한 유형 그 자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라면 교과서에 갇히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소 이지적이고 날카로운 눈매의 박은봉 선생. 말 한마디, 조사 하나까지 신중하게 구사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말하는 동안에 진지하게 학문을 하는 사람의 선한 표정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아이야, 너의 포도밭은 어디 있니?

 

이왕 '어린이판'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니까 어린이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을 들고,

"역사책에서는 어린이를 만날 기회가 무척이나 적은데, 그 당시 어린이는 어떻게 살았나요? 그리고 어린이와 관련된 역사적 오류도 있나요?"

박은봉 선생의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19세기까지 이 세상에는 '어린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선생에 의하면 어린이가 하나의 인격체로 인지되기 시작한 것이 18세기의 일로 매우 최근의 일이다. 19세기의 서양과 동양의 어린이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우석훈 <괴물의 탄생>에 보면 성인들은 자기들 보수의 1/3만으로 소년, 소녀들을 혹사시켜 20세가 되기 전에 목숨을 잃는 어린이가 많았다. 그보다 훨씬 전인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도 어린이 노예는 3년 동안 써먹을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서양의 역사에서 어린이는 19세기 전까지 거의 없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존 스튜어트 밀 등 자유주의자들이 문제제기를 하였고 '인권'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안데르센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동화를 쓴 것도 19세기다. '이솝우화'의 '이솝' 하면 어린이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솝우화는 정확히 말하면 어린이를 위한 우화는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어린이 보는 책에, '그저 마누라는 두들겨 패야 말을 듣는다'는 진지한 충고를 써넣을까 이말이다.

동양의 어린이는 어떻게 살았을까? 박은봉 선생에 의하면 동양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워낙에 유아사망률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엄격한 유교전통 속에서 응석을 부리는 장면은 도무지 찾아보기 어렵다. 기껏 해야 서당에서 훈장님한테 매맞는 그림만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박은봉 선생은 '어린이'라는 존재를 널리 전파한 소파 방정환 선생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소파가 왜 어린이를 사람으로 대우하자고 그렇게 외쳤는지를 보면 당시 어린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어떠했는지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참으로 와닿는 말이었다.

박은봉 선생은 어린이들의 직관력과 이해력은 어른을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작업이 교과서와 배치되는 점이 내내 우려되었던 선생은 어린이 30여 명에게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설문의 내용은 "교과서의 내용과 (자신의) 책의 내용이 부딪히면 혼란스럽지 않을까?"였다. 어린이들의 대답은 대부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였다. 교과서에서 말하는 사실과,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는 사실을 구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물며 어린이도 이 정도인데, 고등학생들은 어느 정도일까? 그런 학생들에게 좌파 척결한다 어쩐다 하면서 편향된 관점의 현대사 강좌를 한다고 하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그 어른들만은 어린이보다 어리석은 것 같다.

박은봉 선생의 책을 통해서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익혔다면 한번 응용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쉽지는 않겠지만, 박은봉 선생의 책 내용에 도전해 볼까 한다.

제3장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말한 사람은 최영 장군일까?>의 대목 중 우리가 한때 즐겨 불렀던 유행가사의 한 대목을 문제삼고 있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최영 장군의 말씀 받들자"
-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가사 중

박은봉 선생은 '황금' 발언을 한 사람은 최영 장군이 아니라 최영 장군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래가사를 바꿀 필요는 없을 듯하다. 노래 가사는 최영 장군이 말씀을 하셨다는 뜻이 담겨 있지, 최영 장군이 처음으로 그 말을 했다는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황금' 발언은 그 전에 있었을 수도 있고, 최영 장군 집안의 가훈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최영 장군이 그러한 정신을 전파했다는 것이니 '황금' 발언을 최초로 한 사람은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을 하실지 궁금하지만, 어쩌면 칭찬을 해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 그 날 어린이들이 참 많이 왔다. 맨 처음에 박은봉 선생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호명하고 나서 '유치원생'이 안 와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이 듣기에는 조금 어려운 내용도 있었지만, 마치 내가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듯 기분이 좋았다.

- 알라딘 제1기 리포터 승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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