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휴머니즘과 사형제도..



최진실 자살 땐 '최진실 법', 강호순 땐 '강호순 법'?


냉무(내용없음) 정치, 기분파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언론이 너무 앞서간다"고 점잔을 떨던 정치인들이 언론보다 더 앞서가고 있다. 강호순의 연쇄살인이 사회 이슈가 되자 뜬금없이 사형제도를 부활시키자며 보수 정치인들이 정치판을 달구고 있다. 사형제도 부활은 유영철 때도 있었다.
사형수들은 사회적으로 시끄러운 살인사건이 있을 때마다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 '사형'이라는 최고형은 잔존하지만 사형이 실제로 실시되지 않아 공식적으로 사형폐지국으로 인정된 대한민국에서 사형수는 언제라도 다른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빠져 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는 '혹리열전'이라는 유명한 편명이 있다. 그야말로 가혹한 정치인들의 열전인데, 죄다 당대인 한나라 시절의 인물들이다. 노자는 "법 조항이 많아질수록 도둑이 늘어난다"고 했는데, 법 조항을 강화해서 범죄율을 낮춘 사례는 없다. 순간적으로 범죄율을 떨어뜨릴 수는 있겠지만 결국 범죄는 다시 빈번해진다. 사마천은 혹리열전의 맨 마지막 대목에서 당시 사형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던 수많은 살인 사례를 언급하며 "이러한 일들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라며 혀를 내둘렀다.
사형제도를 강화하는 나라는 대체로 정치인들이 자신의 무능함으로 사형제도로 회피하려는 수작이 많다. 


사형제 부활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영화 "그린 마일"


▲ 존 커피는 어린이 둘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그가 사형판결을 받은 이유는 살인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존 커피라는 사형수의 경우처럼 사형판결을 받는 사람들 중 무고하게 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무고하게 사형을 당한다고 한다. 어떤 정치적인 논의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작년 여름 100만명의 촛불이 거리로 나온 것은 정부가 '생명'을 너무 경시했기 때문이다.
최근 '용산 사태'에서도 자살테러범이니 떼쟁이들이니 하는 저주를 퍼부으며 망자를 모욕하는 정치인, 언론인이 적지 않았다. 사람이 죽으면 만사 접어두고 조의의 시간을 가졌던 옛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사형제를 논하기 전에 먼저 '생명'의 무거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린마일>에서는 사형의 순간들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그린마일'은 1935년 대공황기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의 삭막한 콜드 마운틴 교도소에서 사형수들이 전기 의자가 놓여 있는 사형 집행장까지 가는 녹색 복도를 말한다. 간수들이 하는 일은  '그린마일'을 사형수들이 전기 의자로 갈 때까지 그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영화는 사형수들이 사형판결을 받기까지의 행위를 그리고 있지 않다. 모든 컷은 사형수들의 마지막 삶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형수(에두아드 델라크로익스, 또는 '델')는 사형장으로 가기 전에 동료에게 키우던 애완동물을 맡긴다. 그들은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 반성하며 사형 집행일 동안 성실하게 시간을 채운다.

사형집행 과정도 세심하게 배려한다. 전기의자에 앉히기 전에 죄수의 머리에 물 묻은 솜을 얹히는 데 그것은 죽기 전에 고통을 최소화시켜 주기 위해서다. 신참으로 들어온 못된 간수가 자신을 골탕먹인 사형수 델에게 복수하기 위해 솜에 물을 묻히지 않고 전기의자를 작동시켰을 때 델은 처참한 고통 속에서 오랫동안 죽을 수도 없었다. 소화기를 들고 물을 끄려 하자 연륜 있는 간수는 이를 막는다. 델의 고통을 끊어주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형제 존폐를 떠나서 이 영화는 사형수들이 맞는 마지막 삶의 시간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져 있다. 사형제를 논하는 사람들은 단 한 번도 사형수들의 모습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컴퓨터에 마우스를 클릭하듯 사형제도를 논한다. 사형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사형을 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현재 사형수로 복역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상과 교육효과, 그들의 범죄이력 등을 면밀히 살펴서 설득력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담긴 중요한 정책들을 책상에서 처리하다 못해 하늘로부터 품부받은 인간의 생명조차도 책상머리에서 결정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사형제 부활을 들고 나온 것이 청와대의 이메일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용산참사를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으로 물타기하라는 지시를 경찰서로 내려보내면서 당에는 아무 지침을 내리지 않았을까. 혹시 사형제 부활이 용산참사에 대한 물타기가 아닐까 하는 의혹이 강하게 드는 대목이다. 휴머니즘도 없고 인간생명에 대한 예의도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사형제 부활을 들고 나온 이유가 정말 그들이 말하는 대로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서라면 사형과 범죄율에 대한 연관관계를 깊이 있게 연구해 보고 나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제발 기분파 정치는 그만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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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걸리면 신께 용서 빌던 옛사람

고대 중국에는 병에 걸리면 신께 엎드려 용서해 달라고 싹싹 빌었던 풍습이 있었다. 병이 찾아오는 이유는 안 아픈 동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줬거나 나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몸이 아픈 동안 곰곰히 지난 날을 반성하고 잘못을 빌어야 할 사람을 찾아가 진정으로 사과하고 나면 병이 낫는다는 오래된 풍습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년째 독감을 앓고 있는지라 이런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고심이 깊어진다. 죄 많은 인생을 살아서인지 앓아야 할 것도 반성할 것도 많다.

세계 금융 위기가 실생활의 위기로 번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lay-off(일시적 해고)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다. 환경파괴는 극단으로 치달으며 해마다 수백만 명의 재난자를 양산해 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교토의정서를 휴지조각처럼 여겨 왔던 미국이 정권교체 이후에 이를 진지하게 검토한다는 보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반노동자 정책이나 신자유주의 노선, 월스트리트 시스템에 대한 광범위한 반성의 물결이 전 미국을 뒤덮고 있는 현실상황이다. 개중에는 교묘한 선전효과를 노리는 정치적 제스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돌아보지 않고서는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절박한 공감대가 생긴 것만은 확실하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전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선거 때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747공약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해서 반성하는 이도 없고 문제제기를 하는 이도 없다. 7% 성장을 달성하겠다고 했는데 도리어 -3~4%까지 경제성장률이 떨어졌는데도 경제정책에 별 문제가 없다는 오만함은 변함없다. 심지어 사람이 죽었는데도 유감표명 하나 없고 죽은 사람의 동료와 유족들을 잡아가두고 시체를 몰래 부검해버리는 안하무인의 세태가 사회 지도층에 만연해 있다. 사람 몸으로 따지면 나라가 큰 감기도 하니고 폐렴에 합병증까지 도졌는데도 돌아보기는커녕 앉아서 쉴 줄도 모른다.

정치권과 사회 전반에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반성할 줄 모르는 가운데 문화계에서 '반성'을 벽두의 화두로 꺼냈다. 사회가 하지 못한 반성을 '문화'가 요구한 것이다.


사회가 하지 못한 반성을 '문화'가 요구하다

늙고 병든 농부와 그보다 더 고물이 돼 버린 소의 정직한 삶을 그린 독립 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개봉 28일 만에 40만 관객수를 돌파했다고 난리가 났다. 왜 사람들이 <워낭소리>에 끌리는 것일까. 뻔한 대답이지만 영화를 잘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독립 다큐는 감독의 작가주의가 너무 강조되다 보니 대중과 시선을 마주칠 새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공중파에서도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과 노하우가 깊어졌고 극장판 다큐멘터리까지 따로 제작하는 상황(EBS 다큐프라임 <한반도의 공룡>)에서 대중이 다큐를 돈 내고 볼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짐은 물론 관객의 입장에 충실한 다큐멘터리가 흥행작으로 탄생할 환경은 이미 갖춰진 셈이다.

영화 <워낭소리>는 아주 고집스럽고 미련하고 정직한 주인공과 그의 가축인지 친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30년지기 늙은 소가 나오는 구식 영화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를 보러 갔을 때 30년 만에 극장에 처음 와본다는 중년의 부부 관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참 신기했던 것은 구식의 정직한 생활을 보면서 몸이 들썩거리는 듯한 공감을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다. 애초부터 인간은 땅에서 나고 땅에서 자라 구식의 유전자가 몸에 배어 있었는데 도시로 떠나고 높은 건물에 살면서 점점 공허해져 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월스트리트의 첨단 금융 공법은 땅에서 나는 산물과 이를 일구는 노동의 가치를  모니터로 완전히 차단해 버렸기 때문에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끝간 데까지 가고 나서야 땀 흘리며 한푼 두푼 저금하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까. 한국 사람들이 이 영화를 찾는 것은 물론 입소문 때문이지만, 영화평을 남기면서까지 입소문을 퍼뜨리는 적극성은 바로 <워낭소리>가 던져주는 정직과 반성의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이 가장 아끼는 장면. 소설가 펄 벅이 한국에 와서 사람이 소의 짐을 나눠 지고 오는 장면을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고 감독은 덧붙였다. (시사IN 인터뷰) 


반성의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워낭소리> 롱런의 비밀

제61회 칸 영화제 공식경쟁부문 선정작, 2009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2009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 이스라엘 사태로 인해 더욱 부각이 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 영화와 책이 거의 동시에 출시됐다. 영화는 몽환적이면서도 해학성이 잔뜩 묻어 있는 OST와 딸려 나오는 영상이 매력이며, 책은 그야말로 압축미가 돋보인다. 책을 중심으로 이 작품을 이야기해본다면, 단순히 이스라엘 사태를 스케치하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자들이 이식시켜 놓은 폐해와 학살이 왜 재현될 수밖에 없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으며, 지속적인 전쟁상태에 대한 준엄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만화책으로 120여쪽 남짓한 페이지라서 10분이면 일독이 가능하지만, 읽고 난 후에 파장은 자못 길다. 20년 만에 찾아온 친구의 악몽 이야기를 아무런 준비 없이 맞고 나서 숨어버린 기억들을 하나씩 더듬어가는 과정이 <바시르와 왈츠를>의 주된 흐름이지만, 기억의 중심으로 가면서 학살사건이라는 기억의 핵으로부터 면면이 그리고 일상적으로 인간을 왜곡시키고 인간성을 파괴하는 허위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이 작품은 사브라-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 학살사건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관점에서 은폐된 과거를 은폐된 기억으로 환치시켜 불편한 진실을 추적했다는 점에서 '반성'이라는 키워드에 어울린다. 피해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의 난민들에게는 너무나 완곡해 '면피'라는 비판을 받고,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는 제 얼굴에 침을 뱉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아리 폴먼은 박쥐 신세가 되었지만,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세계 유수의 영화상이 손을 들어준 것은 세계가 아직 '반성'이라는 가치를 인정해주었다는 뜻이 아닐까?

김종철 선생의 <땅의 옹호>(녹색평론사)는 지난해에 출간된 책이지만 올해 초에 2쇄를 찍어냈다. 작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김종철 선생이 꺼내는 화두는 바로 생태적 상상력이다. 이문재 시인이 생태적 상상력에 대해서 쓸 만한 주석을 달아놓았는데, 그는 "생태적 상상력이란 문명과 곁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문명을 완연히 거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강력한 상상력입니다"
 (박원순·김종철의 2009년 화두 "농촌으로 가라" - 오마이뉴스)라고 해석했다.

김종철 선생을 읽음으로 인해 나는 침묵과 무관심과 냉소주의의 벽이 이명박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생에 따르면 "적극적인 악행이 있기보다는 변화시키기 힘든 관성의 힘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58쪽) 미국발 금융위기와 <워낭소리>의 경고처럼 땅에서 멀어질수록 감수성이 둔화되고 우리의 삶의 토대가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하게 된다. 그런 인간은 당연히 취직을 위해서 "영혼을 팔게" 되고, 국민 대다수의 이익보다 권력자의 이익에 봉사하게 된다. <땅의 옹호>에는 김종철 선생이 <녹색평론>이라는 격월간지에서 17년 동안이나 강조했던 농적 가치와 소농공동체, 이반 일리치의 우정의 재발견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간디의 제자 네루가 임종의 순간에 써 놓은 반성문이다.

요즈음 나는 갈수록 간디의 방식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조금 이상하게 생각될런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근대적 산업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이고, 최선의 기계와 최고의 효율을 가진 기술을 선호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오늘의 형편을 볼 때, 아무리 빠르게 우리가 산업시대를 향해 진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국민은 이러한 진보의 영향을 입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언제나 사실일 것입니다. 매우 오랫동안 근대적 발전은 그들에게 이익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좀 더 다른 생산방식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론 그들의 도구는 근대적 기술에 비해 열등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도구들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실업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늘 이 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계획을 세워서, 그들의 비참한 상황을 개선하도록 분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나는 이 문제로 끊임없이 번민하고 있습니다.
- <땅의 옹호> 101~102쪽

간디는 네루에게 산업화를 경계하라는 경고를 지속적으로 했지만 네루는 끝내 이를 무시했다. 인도사회를 서구사회 못지 않게 산업사회로 만들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왔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절망적인 상황으로 치달은 민중의 고통뿐이었다. 이것은 우리의 짧은 미래를 보여주는 예언과도 같은 메시지다. 권력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기업이 잘 되면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부유해진다는 이른바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를 노래하고 있지만 기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워낭소리>의 최원균 할아버지도 알고 있다.

"농약이나 비료를 치면 땅이 죽고 소도 죽어 농사를 못 지어. 나중에 먹을 것이 없어."

적하효과가 사기라는 것은 <워낭소리>의 노인도 아는 사실

김종철 선생과 함께 '반성'의 깃발을 열심히 흔드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재일교포 서경식 선생이다. 서경식 선생은 이른바 '경계인'으로서 '국가'라는 틀 안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많이 가르쳐준 귀중한 작가다. '국가'와 '국민'이라는 허위성을 집중 비판하면서 사람들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만든 것도 그다. 최근 출간한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철수와영희)에서는 이제까지 써 왔던 심미적인 문체를 누그러뜨리고 대중적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이 책은 2007년 봄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에서 진행했던 강좌와 그 해 가을에 성공회 대학교 NGO 대학원 학생들과 했던 세미나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은 특히 2부의 제목인 <당연한 것을 다시 묻는다>가 '반성'의 키워드를 대표하는 장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우리들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굳어진 것들을 집요하게 캐물어 우리 사회가 지나치고 있는 편견과 모순과 비합리성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일례로 안중근 열사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안중근 열사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나서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라고 만세를 불렀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소개되면서 "대만민국 만세"라고 돌변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없었다. 후세에 '대한민국'이라는 말로 바꾼 것은 안중근 열사가 했던 행동과 당시의 상황을 왜곡한 것에 다름아니다. 서경식 선생은 이런 역사적 상황일수록 시대성과 장소성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안중근 선생이 썼던 언어와 행동, 말을 사실 그대로 옮겨와야 한다고 말했다.

서경식 선생 본인이 반성을 하는 부분도 있다. 이제까지는 '같은 동포'라는 일체감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2년간의 체류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서로 간에 존재하는 차이를 인정하고 그 바탕위에서 연대의 길이 가능한지 찾아보려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 전환점이 바로 이 책이다. 그래서 제목에도 '연대'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제는 반성이 경쟁력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못하는 것이야 말로 진짜 잘못이다."(논어)

IT의 새로운 흐름인 오픈소스, 웹2.0은 날이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위키피디아, 리눅스 등은 많은 사람들의 공유에 의해서 탄생한 산물이다. 이러한 새로운 온라인 패러다임이 경쟁력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반성'에 있다. 오류가 나타나면 짧은 시간 안에 개선이 가능한 것은 실패에 대한 유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실패를 먹고 자라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허심탄회하게 인정하면 그것은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면 자꾸 거짓을 하게 되고 피하고 숨고 누르려고 하는 마음이 생긴다. 물론 이것은 얼마 못 가 바닥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답보상태인 까닭은 '반성'이 부재돼 있기 때문이다. 정권을 잃은 쪽에서 부단한 자기반성을 통해서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게 아니라 편법과 술수로 그 자리를 보존하려고 하는 바람에 국민의 마음이 떠나 버린 것이다. 반성은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고 한다면 반성만큼 유익한 행위가 또 있을까. 하지만 우리가 반성을 하지 않는 이유는 반성하는 행동이 무섭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쓸만한 화두가 문화계에서 불어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반성 바이러스'가 사회 전체에 널리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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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클 모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로라 데이 지음, 채인영 옮김 / 허원미디어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드래곤볼에서 유일하게 기억나는 장면 

 


어린 시절 재미있게 보던 만화 중에서 <드래곤볼>이라는 게 있다.

드래곤볼에서는 손오공이라는 캐릭터가 여러 괴물들과 싸우면서 성장하는 장면이 나와 있다.

폭력물로 분류되지만 내 또래(30세)의 사람들이라면 아주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이 만화는 흥미진진한 것을 빼놓고는 별로 기억할 만한 게 없는데 '원기옥 이야기'는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

'원기옥'이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기(氣)를 모아서 뭉친 공의 이름이다.

셀이라는 슈퍼파워 괴물과 싸울 때 지친 손오공이 손을 들고 힘을 모았는데,

모든 생명체들이 손을 뻗침으로써 힘을 모아 괴물을 이길 수 있었다. 

 
원기옥 이야기를 안 지 15년이 훨씬 넘은 지금에 와서 이것을 다시 떠올린 이유는 로라 데이라는 과학자 때문이다.

로라 데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이며 CEO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20년 넘게 직관과 영감을 계발시키고 실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가르치는 일을 해 왔다.

브래드 피트, 니콜 키드먼, 데미 무어가 그의 동료이며 그 외에 노벨상을 탄 과학자 제임스 왓슨과 영혼의 의사 디팍 초프라와 함께 세상에 비전을 보여주는 일을 하고 있다. 

국내에 번역된 <서클, 모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허원미디어)에서는 '마술 지팡이'라고 표현했다.

인간의 의지력은 마술 지팡이와 같다. 그러나 그 의지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의지력은 우리의 안과 밖에 존재하고 있는 에너지를 끌어모아 마술 지팡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강력하게 힘을 몰아준다. 진정 자신이 원하는 꿈을 찾아내고 그것에 몰두하는 것-의지-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내적 자원이다. - 책 38쪽

 

절박한 것에 대해 관심 없었던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다

손오공이 쓰는 기술 중에서 원기옥도 둥글고 에네르기파도 둥글지만 두 개의 힘은 엄청나게 다르다. 에네르기파는 항상 쓸 수 있는 것이지만, 원기옥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만 쓴다. 그만큼 에너지가 많이 빠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점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절박하게 무엇인가를 추구하면서 살기보다는 타성에 젖어서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인생이 재미가 없어지면 타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말이 될 것이다. 

절실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절실한 마음을 먹으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없다. 절실하게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 있다면 어딘가에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잠을 자면서도 그 생각을 하고 모든 관심이 그 쪽으로 집중되고 그 일에 미칠 수 있다면 되지 않을 일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로라 데이는 그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존재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 일은 이미 나만의 것이 아닌 셈이다. 이 말에 따르면 내가 그 일에 대해서 내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아버린다면 세상의 모든 것과 통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한 번 하다가 말아버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상 모든 일에는 마찰력이 있어서 뭔가 하려고 하면 저항하는 힘이 있지만, 그 속에는 그 일을 도우려는 힘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 로라 데이의 생각이다.

더 놀라운 것은 내가 절박하게 살려는 의지도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절박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절실한지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나름 절박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대체로 생각하는 것을 내가 반복해서 생각할 뿐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까지 에네르기파만 주로 쏘았지, 진정한 의미의 원기옥을 쏘지는 못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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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9-02-11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승주나무님 저도 드래곤볼 진짜 좋아했어요 ㅎㅎ 저는 만화책만 봤어서 저 장면이 낯설어요 >.<

승주나무 2009-02-12 17:24   좋아요 0 | URL
아핫~ 그렇군요.
저는 티비 돌리다가 손오공만 나오면 멈추고 한 시간은 보는 못된(?) 버릇이 있습니다.^^

뷰리풀말미잘 2009-02-11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셀을 날려버린건 손오공과 손오반의 더블 에네르기파란 말입니다아아..

승주나무 2009-02-12 17:2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 손오공이 드는 것은 셀이 아니라 '프리더'인 모양이네요^^
프리더도 처음 나올 때는 정말 무서운 친구였는데..어쩌다가 저렇게 됐는지~~
나 지금 누구랑 대화하니 ㅋㅋ

일달 2012-02-28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짤을 퍼 갈께요!! :-)
 

'고담용산'을 아시나요?


▲ 용산 참사 사고 당일인 지난 1월20일 남일당 건물 3층에서 철거민과 대치하고 있는 호○건설 용역 직원들.(사진 :시사IN)


'고담시'(gotham city)는 미국 영화배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가상의 도시이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타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서 따온 말로 범죄와 부패, 사건·사고가 들끓는 어둠의 도시이며 배트맨의 활동 무대이다.
'고담'이라는 말은 엉뚱하게도 국내에서 유행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최근 곳곳에서 대형참사와 범죄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대구지하철 상인동 가스폭발사고(1995년), 지하철 방화 참사 사건(2003년) 등 대형 사고가 발생한 대구에는 '고담대구'란 말이 한동안 유행이 되기도 했다. 비단 대구뿐만 아니라 '심시티서울' '라쿤광주' '갱스오브부산' '뉴올리언스수원' '마계인천' 등 전국적으로 15곳 등이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이제 새롭게 '고담'의 이름을 얻을 곳은 용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사IN 74호에서는 용산참사에 목포의 조직폭력배 'ㅅ파'가 깊이 관여하였다는 보도가 다수의 설득력 있는 증거들과 함께 소개되었다. 해당 기사에는 조직폭력배와 용역직원들이 용산을 비열한 폭력의 도시로 만드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지난 여름부터 철거를 거부한 세입자가 운영하는 식당에는 매일 아침 오물과 음식 쓰레기가 수북이 쌓였다. 벽에는 섬뜩한 낙서가 가득했다. 빈집에는 밤마다 불이 났다. 용역들의 소행이었다. 철거민이 떠나고 찾아오는 손님이 줄어들수록 폭력의 수위는 높아만 갔다. 어렵게 식당 문을 열면 험악한 용역들이 들이닥쳐 손님과 시비를 벌였다. 편의점에서 손님이 술을 마시면 술 먹는다고 때리고, 쳐다보면 쳐다본다고 때렸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머리가 터지는 일이 용산에서는 다반사였다. 철거 회사 용역들은 노인·어린아이 가리지 않고 욕을 해댔다. 팬티만 입고 거리를 활보하며 사람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 시사IN 74호 중에서..


▲ 용산구청은 용산참사가 발생한 다음날인 21일, 서둘러 문제의 철거민 비난 입간판을 떼어냈다.(사진 : 뷰스앤뉴스)

대통령이 국민들을 향해 그물질(罔民)을 하다

용산이 폭력의 도시가 되게 된 데는 공권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당일날까지 용산구는 구청 앞에 철거민을 폄하하는 대형 입간판을 달았고, 구청장은 참사 직후 보광동 주민센터에서 한강로 개발공사를 설명하던 중 "이 세입자들은 세입자들이 아니에요. 전국을 쫓아다니면서 개발하는데 마다 돈 내라고… 이래서 떼잡이들이에요"라며 철거민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검찰과 경찰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조직폭력배를 잡아야 할 경찰은 도리어 조직폭력배로 의심받는 용역직원들과 서민들을 폭력진압하는 데 혈안이 돼 있었고, 검찰은 이를 두둔하려다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자 수사의 방향을 급선회하는 등 모든 공권력이 절박한 서민들의 마음을 난도질하고 용역깡패들을 두둔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대통령조차도 유감표시는 커녕 폭력성을 부각시키며 '법치'를 운운하고 있다. 대통령의 '법치' 운운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이런 행태는 2천여 년 전에도 국가 지도자가 가장 피해야 할 습관으로 비난받아 왔다.

맹자가 제나라에 방문했을 때 제나라의 선왕이 가르침을 청했다. 맹자는 "백성들이 일정한 벌이가 있어야 준법정신이 생길 수 있는데, 백성들의 생계를 걱정하지도 않으면서 법조문만 들이대는 것은 실로 백성들을 그물로 잡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지도자가 된 사람으로서 백성들에게 그물질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짓입니다."(맹자 양혜왕 상)

국민에게 가혹한 법조문만 강요하며 탄압을 하는 것을 망민(罔民)이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철거민들이 망루 위로 올라가게 된 사정을 빤히 알면서도 법조문만 강조하고 있으니 국민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지지율 바닥에서 헤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권리금 1억을 주고 가게에 입주한 사람에게 몇 백만원을 쥐어줌 권리금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누가 봐도 타당하지 않다. 더군다나 건설회사에 있어 봐서 권리금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어디다 하소연할 데 없는 사람들이 봇물처럼 늘어나고 있다. 물이 고이면 방둑을 터뜨리기 마련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방둑이 터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다. 이것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이한 버릇이 있다. 같이 이웃하며 살고 곤경에 빠진 사람들이라도 그것이 '비정규직'이나 '철거민'이라는 말로 애써 구분을 지으려고 한다. 철거민들이 돈 몇 푼 받으려고 떼를 쓴다는 몇몇 언론의 막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자신과 철거민들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들이 돈 없어서 달라붙는 철거민이 아니라는 사실. 평생 철거민이라는 말을 듣지 않고 살 것 같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철거민이 되어버린다면 그것은 나에게도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사IN 74호의 기사를 인용한다.

같은 날 망루에서 숨진 양회성 아저씨(55)도 2억여원을 들여 100평 규모의 식당을 운영하던 분이다. 아저씨의 두 아들들은 일식 요리사를 준비하며 삼부자 일식 요리집을 낼 계획이었다. 이들은 하나네 식당 노부부와 같은 영세 상인도 아니었다. 무섭지 않은가? 철거민 문제는 더 이상 달동네에 사는 빈민에게만 일어나지 않는다. 재개발의 광풍은 이러한 큰 업소의 '사장님'들도 철거민으로 만들었다. 애초에 철거민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재개발의 덫에 걸리는 순간, 우리 모두는 철거민이 되어 길거리로 내몰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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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2-09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의 경찰은 60년에 고등학생들에게 최루탄을 박아 죽였고, 이제 불을 질러 죽이고 있죠. 용역은 경찰이 고용한 깡패인데, 철거민들은 다 압니다. 뉴스에 안 났을 뿐이죠. 정치깡패는 가끔 뉴스에도 나지, 철거지역의 깡패의 유치찬란 치사빤스는 영화에나 가끔 날 뿐, 눈뜨고도 안 보이는 존재들이죠. 그리고 철거민이 '난쏘공'의 극빈자가 아닌 요즘엔, 용역의 불량한 행동이 더욱 필요한 시기입니다. 극빈자를 쫓아내기보다 사업자 쫓아내기가 더 힘드니까요. 이번 용산 사건이 더 커졌던 건 그런 배경도 있지 싶어요. 판자촌 사람들과 많이 다르죠. 법원에서 경찰더러 '참 잘 했어요.' 하고 씨부릴 줄 다들 알았지 않나요? 미친 세상.
 
 전출처 : 승주나무 > 아무리 중고책이지만 열흘 지연은 너무 하잖아요



 

일본어 강독을 시작하면서 의욕적으로 예습 복습을 하기 위해 지난 달 말에 일어사전을 구매했습니다. 가장 최근 개정된 해가 2006년인데 정가를 다 주면 아깝기도 하고 책 살 돈도 아끼려고 여느 때처럼 중고책을 구매했다가 제대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단지 상품을 지연배송받았다는 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본어를 공부할 열의에 찬물을 끼얹었고 알라딘 운영자들의 조치에 대해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럼 1월 27일부터 오늘 이 페이퍼를 올리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저는 2월 2일 문자와 메일을 통해 친절한 안내를 받게 됩니다.





 

 

 

 

 

 

 

 

 

 

 

설  전에 일본어 강독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여기 저기 발품을 팔아서 어떤 사전이 좋은지 알아봤습니다.
일본어 사전을 많이 쓰신 분이 <민중서림>의 사전을 추천해 주셔서 그것으로 선택했습니다.
2월 3일 본격적인 강독을 하게 됐는데,
내심 배송이 빨리 된다면 스터디 재개하기 전에 예습을 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왠걸~ 오라는 사전은 안 오고 2월 2일 사과메일과 문자와 왔습니다.
알라딘에서 직접 관할하지 않고 회원 간 직배송이니 이런 문제가 나타나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알라딘의 조치는 거기까지였습니다.
3일 동안 아무런 조치도 연락도 없길랠 서비스 센터에 문의글을 남겼습니다.
서비스 센터 직원이 전화가 와서는 제가 다 아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일주일이나 늦어지는 경우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없지는 않지만 드물다고 했습니다.
회원 직배송의 경우 책을 파는 분의 연락처가 있지만,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재촉은 하지 않았지만 벌써 스터디를 한지 일주일이 지나고 다음 주 화요일 스터디가 있는데,
이때까지 책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내가 지금 왜 이 글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화를 잘 내지 않는 성격인데도 화가 납니다.
그것은 내가 뜻한 바가 담겨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단지 상품을 구매하는 차원이 아니라 상품을 구매할 때는 절박함이 반영된 것이고,
그 약속은 소중한 것이 아닐까요.

도대체 며칠이나 더 기다려야 물건이 도착할까요.
제가 알라딘을 상대로 전사가 되어야 합니까.
이 문제가 사소한 일이라고 칩시다.
아무리 큰 집단이라도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절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기본에 충실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비스센터에 다시 연락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알라디너 이웃님들~
저처럼 길게 배송지연된 경우가 있었나요?
제가 그럼 바보가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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