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에 미용실(이용실) 이용하셨어요?

저는 2달 만에 미용실을 이용했습니다.
머리 자를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닌데 어째 시간이 잘 안 나더라구요.
더 정확히 말하면 미용실에 갈 시간이 나에게 필수적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꼭 써야 할 곳에만 돈을 쓰고 꼭 가야 할 곳에만 가게 된 것이 최근의 생활 패턴인 것 같습니다.

동네 단골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랐습니다.
미용실 갈 때마다 원장님께 커트를 맡기는데,
이번에는 유난히 살갑게 대해 주시는 겁니다.
요즘 생활이나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서 닿는 대로 말을 겁니다.
저도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는 편입니다.

미용실로서는 단골을 하나라도 늘려야 하기 때문에 손님들에게 가장 친하게 대해 주는 업종일 것입니다.
이 미용실은 한 두 달 정도 전부터 커트 비용을 8,000원에서 1만원 으로 2,000원 올렸습니다.
업소가 가격을 올린다는 것은 비용의 증가도 있지만,
매출의 하락이 주된 이유입니다. 가격을 올리면 손님이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올려야 하는 절박성이 있는 것이지요.





원장님께 넌지시 매출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이번에 불황이 큰데 매출에는 영향이 있나요? 매출이 얼마나 줄었나요?"

원장님은 평년에 비해서 30% 정도 줄었다고 합니다. 즉 10명 중에 3명이 미용실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원장님은 이것을 독특하게 분석했습니다.
즉, 불경기가 되면 사람들은 미용실을 이용하는 횟수를 줄인다고 합니다. 두 번 이용할 것을 한 번에 이용하기도 하고, 아예 정신이 없어서 머리를 자르지 않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줄여야 할 비용 중에서 커트비가 간당간당하게 붙어 있는 거죠.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달 28일 수도권 520여가구를 대상으로 ‘소비행태의 변화와 시사점’을 조사해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지출 중 의복구입비(20.5%)와 문화·레저비(17.2%), 외식비(16.5%) 등은 대부분 줄였다고 합니다. 미용은 분명 의복구입비나 문화,레저비에 들어가지만 머리는 일정 시점이 되면 항상 자라기 때문에 필수 소비에 들어갑니다.
그런데도 30%나 감소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체감하는 경제 상황이 안 좋다는 말입니다.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노무현, 김대중 시절부터 정부는 착시 현상으로 국민들을 속여 왔기 때문에 경제가 좋아졌는지 안 좋아졌는지는 아주 밑바닥에 있는 실물경기의 흐름으로 읽어야 합니다.

지금 상황은 10명 중 3명이 머리 자르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못된 경기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매지 2009-03-04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는 매직도 집에서 약사서 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아무래도 미용실가면 5만원 이상 훌쩍 나오니까 부담스러워서 그런가봐요.

승주나무 2009-03-04 01:39   좋아요 0 | URL
네~ 그런 것 같아요..
저도 바리깡 사다가 집에서 중처럼 제 머리를 깎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답니다.
그런데 이매지 님~ 진짜 오랜만이군요^^

웽스북스 2009-03-04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요저요. 파마 새로 안하고 세팅기로 버티고있어요 ㅋㅋ

승주나무 2009-03-04 17:36   좋아요 0 | URL
어맛!! 웬디양 님이다!
어젯 밤에 웬디양 생각이 자꾸 나더니만...
만날 길 없는 웬디양 님..
나 웬디양님 많이 좋아하나봐 ㅋㅋㅋ

프레이야 2009-03-04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미장원 간 지 오래됐어요.
앞머리만 제가 잘라주고요.^^
아이들 앞머리는 하도 제 가위질을 못미더워해서 미장원 데려가지요.

승주나무 2009-03-04 17:36   좋아요 0 | URL
네.. 미용실 피폐해졌어요.. 생각날 때 함 가주세요~

무스탕 2009-03-04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은 방학이라서 애들 머리카락이 마구 자라있어도 버텼는데 새학기가 되기전에 꽃단장 해주느라 할수없이 미용실에 데리고 갔네요.
울 동네는 아이들 커트를 7천원씩 받아요. 아깝긴 정말 아깝지만 어쩌겠어요. 엄마가 잘라줄 재주가 없는것을..

승주나무 2009-03-04 17:37   좋아요 0 | URL
글쵸.. 미용실 사람들이 예전에는 카드 수수료 때문에 고통받고 이번에는 불황 때문에 그렇고.. 참 딱한 사정이더라구요~~
 


▲ 최근 산 책들 중에 양장본이 몹시 눈에 띕니다. 물론 가격이 싼 보급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출판계에 때 아닌 럭셔리 바람이 분 걸까요? 양장본을 내는 것은 출판사의 눈물겨운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1. 1만8천원이냐? 1만6천원이냐?

출판 쪽에 근무를 하고 있어서 출판사와 접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책 출간 작업을 하고 있는 출판사 편집자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번역물인데 가격 결정을 몹시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300쪽 가까이 되는 단행본이라면 15,000원이나 16,000원 정도가 적정선인데 18,000원을 고집하는 겁니다. 그러면 독자들이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어서 판매에 도움이 안 된다고 설득했지만, 편집자는 16,000원으로는 도무지 수지를 맞출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최종 판매가는 16,000원이 되었지만, 뒷맛이 씁쓸한 경험이었습니다.


#2. 분권 보급판으로 갈 것이나 단권 양장본으로 갈 것이냐?

소설 형식의 문답으로 되어 있고 세계 513명의 지성들이 출연하는 철학책 출간을 앞둔 사장님과 제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소피의 세계>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제목이나 구성 등을 잘 풀어냈는데, 가격에서 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책은 550여 쪽에 가까운데 2권으로 나눠서 갈 것인지 1권 양장본으로 갈 것인지 고민이 깊었습니다.
저희는 두 권 보급판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지만
결국 1권 양장본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1권을 사고 감명 깊은 사람이 2권을 구매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출판사는 없었던 셈이죠.
책 읽는 사람이 아무리 씨가 말랐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그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적적인 일이지만 책을 사서 구매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서 문제이지 책이 좋으면 예상보다 더 잘 팔릴 때가 있습니다.
출판사는 이렇게 책을 구매해서 읽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더 지우는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양장본의 비밀이 그것입니다. 책도 시장에서 팔리는 소비재이지만 가격을 올렸다고 해서 판매가 엄청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몇 권이라도 사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책 값이 지금의 두 배로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죠. 사실상 출판사들은 그들과 공존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중형 서점들이 픽픽 쓰러지고 나서 다음 차례는 중견 출판사들이 문을 닫는 일이 될 것입니다.
지금 징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가 무척 아끼는 출판사(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책을 출간했던)가 자금난에 시달린다는 소문이 들려옵니다.

출판사는 다음 시대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출판사에서는 '출판투쟁'을 벌였습니다.
아직도 헌책방에 가면 그 때의 생생했던 투쟁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투쟁이 사실상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 그것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출판사가 문을 닫는다는 것은 미래로 들어가는 문이 하나씩 닫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미래의 문'들이 양장본이라는 마지막 문고리를 잡으며 바둥거리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너지는 듯합니다.
이명박은 우리들이 책을 읽지 않기를 바라고, 출판사들이 문을 하나라도 다 닫기를 바랄 것입니다.

오늘 자본론 1-2권에서 무척 충격적이고 생생한 구절을 발견했는데, 마치 우리 나라의 기득권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이 섬뜩했습니다. 인용합니다.

그날그날의 노동에 의하여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을 하도록 자극을 주는 것은 오직 그들의 욕망뿐이다. 그 욕망을 완화시키는 것은 현명하지만 만족시켜 버리는 것은 어리석다. 노동하는 사람을 근면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적당한 임금이다. 너무 낮은 임금은 그의 성격에 따라서는 그를 낙심시키든가 절망적이 되게 하며, 너무 많은 임금은 불손하고 나태하게 한다.... 이상에서 말한 것으로부터 나오는 결론은, 노예가 허용되지 않는 자유로운 나라에서 가장 확실한 부는 다수의 근면한 빈민에 있다. 그들은 육해군을 위한 무진장한 공급원천이라는 것 외에도 그들이 없이는 어떤 향락도 있을 수 없을 것이며, 어떤 나라의 생산물도 가치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사회("물론 非노동자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행복하고 국민을 비참한 상태에서도 만족하게 하려면, 대다수를 무지하고 가난한 상태에 묶어둘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지식은 우리의 욕망을 확대시키고 다양화시키기 때문이며, 사람이 적게 바라면 바랄수록 그의 욕망은 보다 쉽게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맨더빌(Bernard de Mandeville), <꿀벌들의 우화> 제5판, 런던, 1728년. 마르크스 <자본론> 1-2권(비봉출판사)에서 재인용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감은빛 2009-03-04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정말 숫자 들여다보고 있으면 머리아파지는 요즘입니다!

승주나무 2009-03-04 15:23   좋아요 0 | URL
글쵸.. 영업하시는 분들에게는 봄이 정말 멀게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미르비 2009-03-05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사회도,지식도,계급도 양극화 되어간다는데 이딴 구절도 그걸 재확인하는 슬픈현실...그리고 그게 현실에 주는 타격은...아- 뭐하나 맘에 드는 게 없는 세상입죠.

승주나무 2009-03-06 11:46   좋아요 0 | URL
맘에 드는 게 하나 없죠..
애초 기대는 버리고 맘에 드는 것을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9-03-05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아프네요.

승주나무 2009-03-06 11:45   좋아요 0 | URL
네..양장본을 볼 때마다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서.. 책의 고급스러운 품질을 음미할 수도 없어요ㅠㅠ

비로그인 2009-03-06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사람들은, 똑똑한데 독서율이 떨어져서..
인간성은 좀 들된것같습니다.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책을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볼수있는 계기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같은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종교에서 믿음을 찾기보단,
자신교, 즉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질수있고 되돌아볼수있는 곳이
책교 라고 생각합니다.

승주나무 2009-03-06 16:03   좋아요 0 | URL
네.. 책을 읽는 이유를 분명히 말씀해주신 것 같아요.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잘 살기 위해서도 아니고 단지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면 독서의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좋은 것 하나 배웠습니다. 자전가타요 님 감사합니다^^

승주나무 2009-03-06 16:03   좋아요 0 | URL
네.. 책을 읽는 이유를 분명히 말씀해주신 것 같아요.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잘 살기 위해서도 아니고 단지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면 독서의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좋은 것 하나 배웠습니다. 자전가타요 님 감사합니다^^
 

쇼펜하우어 증후군이라는 말은 내가 만들어낸 말이다.
철학자가 쇼펜하우어의 단면이 잔뜩 담긴 사례를 이야기했다.

쇼펜하우어는 헤겔과 같은 학교의 교수로 있었는데,
일부러 헤겔과 같은 강좌를 개설했다가 그야말로 처참하게 깨지고 대학교수를 그만두게 된다.
쇼펜하우어의 염세는 시대가 만들어낸 염세다.
10여년 전 나를 철학으로 처음 인도해준 <철학이야기>의 윌 듀런트는 쇼펜하우어 탄생 이전의 절망적인 상황을 괴테의 입을 빌려서 말했다.

"모든 것이 좌절된 이 절망스러운 상황에 내가 젊지 않다는 것을 신께 감사한다."(괴테 말년)

쇼펜하우어는 살아생전에 성공을 누렸다.
윌 듀런트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게걸스럽게' 자신의 기사를 스크랩하고 구하기 힘든 자료는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구해서 밤새 관음증 환자처럼 즐겼다고 한다.

나는 나 스스로를 진단하며 "쇼펜하우어 증후군"이라고 단정지었다. 아예 이 제목의 진지한 글까지 쓴 적이 있다. (당신은 혹시 쇼펜하우어 증후군?)

2002년 월드컵 4강에 올랐을 때 나처럼 PC방에서 밤새 외신 기사를 서캐훑이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것은 쇼펜하우어 증후군과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합병증이다.

어떤 글을 쓰고 댓글을 확인하는 것을 정도껏 하는 사람에게 이 병증을 꼭 들이댈 필요는 없다. 나는 그 정도가 심하다. 글이 베스트에 올라 하루에 수만, 수십만 명이 올랐을 때 하루에 접속하는 횟수를 상상을 초월한다. 초연한 듯 보여도 속은 게걸스럽고 확인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지나치게 심하다.

그런 나에게 참으로 감당 못할 일들이 일어난다.
오마이뉴스 메인에도 올라가지 못한 글이 방송에 채택돼 방송과 책으로 만들어지게 된 한편, 인터파크 희망의 인문학 인문분야 선정위원 섭외, 최근에는 기형도 관련 전화인터뷰 요청...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나름 파워블로거로 공인되기라도 한 듯이 이런저런 시선을 끌고, 또 나도 시선을 끌기를 싫어하지 않는 중증환자의 면모가 나타나고 있다.

그냥 이런 시선을 발사대로로 삼아 우주로 날아가버릴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는 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맛살라 인디아 - 현직 외교관의 생생한 인도 보고서
김승호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도의 유명한 인물은 마하트마 간디이지만 최근에 '아룬다티 로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아룬다티 로이는 1997년 첫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이라는 작품으로 노벨상과 같은 급이라는 영국의 '부커상'을 수상하며 일약 신데렐라가 된 인물이다.

하지만 그 작품을 끝으로 문학적인 글쓰기와는 결별한다. 이후로 댐 건설에 관한 아주 실무적으로 기술적인 글에 천착하더니 인도 정부를 비판하는 정치 칼럼을 지속적으로 게재하는 공격적인 작업을 한다. 한국에는 《6월이여 오라》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녹색평론사 펴냄)이 일로 아룬다티 로이는 중산층의 총아에서 공적으로 전락하지만 그의 공격적인 글쓰기는 계속되고 있다.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 비크람 세트(Bikram Sett),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i) 등과 같은 영문학 작가들이 영국 최고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그 명성을 인정받고 있다. 
- 맛살라 인디아 91쪽

인도의 외교관으로서 기업들과 자주 대면하는 저자는 으레 겉할기 정보로 가득 찬 안내서의 내용을 탈피하기 위해서 인도에서의 경험을 분석적이고 체계적으로 풀어내면서도 개인적 경험이 녹아들어가게 썼다. 그래서 신뢰가 갔다.

특히 이 책은 인도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들을 조율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알다시피 인도는 신성장 엔진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중국과 같이 양극화의 수렁에 깊게 빠져 있다. 그리고 아직도 카스트 제도가 엄존하는 현실이 있고, 폭탄테러 등 무시무시한 사건들이 자주 일어난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며 '현재진행형'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디라 간디 전 수상은 1984년 소위 ‘푸른별 작전’으로 불리던 시크교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강경 진압이 화근이 되어 암살당했다. 어머니인 인디라 간디의 뒤를 이어 국민회의당을 이끌던 라지브 간디 수상에 대한 폭탄 테러는 인도 평화유지군 파견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스리랑크 분리독립주의 무장단체 ‘타밀 타이거’의 소행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도에서 정치,종교,인종적 갈등으로 인해 테러나 암살은 그 뿌리가 깊다. (맛살라 인디아 본문)

인도 정치 상황에 대한 저자의 진단은 담담하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게 읽는 맛을 높여 준다.

그러나 심각한 불협화음을 안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인도의 국정 운영은 실제로는 민주 행정의 기본 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연립정부라는 특성을 활용하여 자신의 선거구와 소외된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절충과 타협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가능한 최선의 공통분모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느림과 인내의 미학은 그래서 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인도의 토양에 맞는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 최근 미국 CNN은 '인도가 중국을 추월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특집에서 인도의 손을 들어 주었는데, 그 요지는 민주국가로서 견제와 절충이라는 합리적 틀을 갖춘 인도가 장기적으로는 일방적이고 탄력성이 없는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를 추월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물론 미국 저널리즘이 보도하는 내용을 곧이곧대로 들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저자가 학자나 문학가가 아니라는 한계도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팩트를 중심으로 하고 오랜 경험과 인도에 대한 남다른 애정에서 오는 연구를 통해 지면을 채우고 있다는 점에서 인도에 대한 개론서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할 것이다. 단, 인도를 여행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인도 여행서가 따로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시르와 왈츠를 -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다른만화시리즈 02 다른만화 시리즈 2
데이비드 폴론스키, 아리 폴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하루에 한 번씩 읽었던 <바시르와 왈츠를>

예전에 한문 배우러 다닐 때 강독을 담당했던 선생님은 매일 아침마다 삼국유사를 한 페이지씩 본다고 했다. 매번 들고 다니면서 읽는 게 삼국유사이지만, 아침에 읽을 때마다 새로운 관점이 열린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논어나 맹자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생각날 때마다 읽곤 했는데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최근에 좋은 기회가 생겨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을 보았는데 영상미와 음악이 돋보였다. 그래서 책으로 나왔을 때 얼마나 다를까 하여 보았다. 처음에는 영화의 이미지와 책의 이미지가 같기 때문에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는데 몇 번을 더 뒤적거리다 보니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단순히 팔레스타인 학살 사건을 주제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감당해야 할 폭력과 황폐화, 그리고 전쟁 경험으로부터 훨씬 멀리 도망갔는데도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스라엘 퇴역병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전쟁에서 죽는 것과 죽이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전쟁 첫 날이었다. 나는 채 열아홉 살도 되지 않았다. 아직 면도조차 시작할 나이가 아니었다.
우리는 호위를 받으며 한편은 과수원이고, 다른 한편은 바다 길을 끊임없이 총을 쏘며 내달렸다.
누구를 향해 쏘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단지 총을 쏘아댔다. 미친 사람처럼 정신없이.
..........
전차병 : 무엇을 해야 하죠? 당신은 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죠?
장교 : 쏴
전차병 : 네? 
장교 : 나도 몰라. 그냥 쏴.
전차병 : 기도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장교 : 그럼, 총을 쏘면서 기도 해.

- <바시르와 왈츠를> 35~37쪽

전쟁의 모티브가 됐던 사브라ㆍ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의 강렬한 인상 때문에 이 책을 통해서 학살만 기억하기 쉽지만 학살은 맨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 등장할 뿐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학살보다는, 학살로 가기 위한 지난한 과정일 것이다. 그 안에 자신의 존재가 갇혀 있기 떄문이다. 책 안의 심리 실험도 흥미로운 주제였다. 전쟁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기 팔다리를 자르듯이 기억의 못된 부분을 잘라버리는 인간의 코나투스(자기생존본능)가 절절히 흐르는 것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120쪽 남짓에 불과한 데다 만화책이기 때문에 10분 정도면 일독이 가능하다. 하지만 10번 정도 읽어야 작가의 메시지가 하나 둘 잡힌다.


광고불매운동과 바시르 사건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속의 내용에만 천착하는 게 아니라 현실과 갈마들며 살펴보게 된다. 그렇게 하는 독서가 나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리하게 관련을 짓는다는 느낌이 나더라도 일단 시도해 보는 것이다.
사브라ㆍ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정부를 실각시키고 수립한 괴뢰정권의 수장 바시르의 암살 사건에서부터 비롯됐다. 바시르를 따르던 팔랑헤당 당원들은 우리나라 현대사로 따지면 '서북청년단원'(서청)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승만에게 서북청년단이 있듯이 바시르에게는 팔랑헤당이 있었다. 팔렝헤당 당원들이 바시르를 따르는 것은 거의 광적인 추종에 가까웠다.

팔랑헤당 민병대들은 항상 바시르의 사진을 몸에 지니고 다녔어. 바시르 목걸이나 귀걸이. 바시르 시계 그리고 이러저러한 바시르 등을.
바시르는 그들의 우상이었고, 슈퍼스타였지.
그들이 바시르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일종의 에로틱한 것이었어.
그런데 그들의 우상이 왕관을 쓰기 직전에 살해된 거야.
바시르의 죽음에 대한 복수가 끔찍할 것이라는 건 너무나 명백했어.
- <바시르와 왈츠>를 94쪽


이스라엘 군대의 비호를 받으며 사브라ㆍ샤틸라에 도착한 민병대원들은 그러나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이 시기에 레바논 주둔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은 베이루트에서 튀니지로의 퇴로를 확보하는 조약을 체결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미 튀니지로 모든 병력이 피신했고 남은 것은 어린이들과 노약자뿐이었다. 그들이 민병대원들의 처참한 희생량이 되었다. 파악된 것으로만 3,000명이다.

'뒷북 학살'이라는 건 시공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패턴이다. 우리 속담에도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라는 말이 있듯 제주 4.3 때도 무장대원들에게 습격을 당한 토벌대들은 무장대 색출을 핑계로 무고한 양민을 대량 학살했다.

조중동도 이에 비유할 수 있다. 2008년 5월 100만 인파가 분노의 촛불을 들었을 때 조중동은 대표적인 심판대상이었다. 시민들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조중동에 광고하는 기업에 대해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개씩 광고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본 조중동은 '희생량'이 필요했고 그것이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라는 카페다. 사실 그들은 조중동이 받았던 충격과 크게 관련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카페 개설자와 도우미들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국가기관인 검찰과 공모해 탄압을 가했다.

검찰은 공소사실에 'ㅎㅎㅎ'라는 댓글을 달았다는 사실을 적시했고, 카페 메인화면에 태극기를 그려넣은 넣었다. 참 궁색하다. 검찰은 본보기를 보여줘야 한다면서 24인 대부분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언론운동을 '살인'(초범)과 같이 보는 검찰의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서로 격렬히 싸우다 많은 전사자를 낸 전쟁보다 더 처참한 것은 전쟁이 끝난 후 패잔병들에게 학살을 당하는 상황이다. 조중동과 검찰의 뭇매를 맞고 죄인 취급을 당한 언론시민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