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명예를 가진 자들의 레드 예리코 작전 - 태양의 딸을 찾아서 HGS 비밀결사대 1
조슈아 몰 지음, 강미경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 <레드 예리코>의 활동 무대. 중국 본토와 남중국해, 영국, 이탈리아 피렌체에 걸쳐 있다.


세계 무대와 2천년을 넘나드는 장대한 스케일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악당들이 노리는 물질인 '태양의 딸'과 그것을 얻기 위한 열쇠인 '자이롤라베'는 기원전 326년 알렉사드로스 대왕의 인도 원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33년 과학자와 탐험가를 주축으로 결성된 폐쇄적인 HGS(명예로운 전문가 동업조합)은 자신들의 기술과 지식으로 세계에 보탬이 되고자 하였지만, 3개의 분파로 갈라지고 분파들이 악당들과 몸을 섞으면서 오히려 더욱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제 '태양의 딸'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자들과, 그 음모를 막으려는 자들로 나눠지고 이 작전에 긴밀하게 간여한 더그와 레베카의 부모님과 삼촌은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물론 이러한 구성은 작가에 의해서 나온 것이지만 세세한 정보들은 분명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연구에 의해서 나왔다는 사실을 몇 페이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전혀 새로운 형식의 소설을 접하며 들뜬 마음으로 책장을 건너며 중간중간에 밀봉된 '기밀사항'을 긴장된 마음으로 뜯어보았다. 그리고 전투함의 구조라든지 기구의 사용법을 익히며 마치 내가 그 모험에 동참한 듯한 착각을 느꼈다.

고집스럽고 호불호가 분명하지만 쾌활하고 모험을 즐기는 두 남매 더그와 레베카는 실종된 부모님을 찾기 위해 삼촌을 찾아가는데 부모님의 실종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뒤늦게 사실을 알아채게 되고, 자신들이 그 비밀의 한가운데로 가고 있다는 사실 역시 뒤늦게 알게 된다. 하지만 HGS 출신의 부모님들의 피를 물려받은 남매 답게 모헙을 피하지 않으며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아 예기치 못한 순간들과 적들을 물리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엉뚱한 꼬마과학자 더그가 발휘하는 기지는 번번이 나를 놀라게 만든다. 



<레드 예리코>의 3대 미덕

나는 다빈치 코드를 읽지 않았다. 해리 포터 시리즈, 다빈치 코드 등 영국적 상상력과 위트가 풍부한 소설들을 읽기에는 나의 독서 목록표가 너무 완고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우연히 <레드 예리코 작전>이라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영국 소설들을 너무 만만하게 보지 않았나 하는 죄책감까지 들었다. 영국인들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레드 예리코>는 우선 성실하다. 어떻게 구상하고 어떻게 디자인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텍스트의 흐름에 맞게 신문기사와 방의 구조도, 장치의 사용방법 등을 면밀히 기록해 놓았다. 특히 선박에 대한 정보 등 전문적인 분야에서 공부를 많이 한 듯하다. <작은 것들의 신>이라는 데뷔작으로 영국의 권위 있는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된 아룬다티 로이는 그 후로 단 한권의 소설도 발표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핵실험, 대형댐 건설 프로젝트, 다국적 기업의 행태를 고발하는 정치칼럼을 쓰면서 댐에 관한 기술서, 토목공학에 관한 실무적인 책들을 수없이 공부하며 정치칼럼가로서 다시 한번 태어난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기술이나 물리 등에 대해서 소홀히 생각하거나 가볍게 생각하기 쉬운데, 작가가 그런 지식을 갖고 있고 열정적으로 그런 지식을 흡수한다는 것은 분명 뛰어난 자질임이 분명하다. 나는 이렇게 많은 참고문헌이 소용된 소설책은 처음 본다. (책의 말미에 보면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참고문헌의 목록이 가득 채워져 있다)

레드 예리코의 구성은 더그와 레베카라는 똑똑하고 까칠하며 고집스러운 남매가 실종된 부모님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예기치 못한 모험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전개가 급격하기 때문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지만, 두 아이의 일기장과 스케치를 통해서 장면들을 환기해 준다. 소설의 내래이션인 셈이다. 소설이 흘러가면서 캐릭터들은 성장을 거듭한다. 성장을 거듭할수록 적들도 더 강해진다. 전형적인 게임의 원리이지만, 생각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생동감 있다. 레베카의 캐릭터는 더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지만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캐릭터 부분도 흥미를 줄 것이다.

캐릭터들의 생생한 대화와 행동은 이 작품의 맛을 더해준다. 특히 악당에 대한 묘사에서 작가는 경지에 이룬 것 같다. 그 중에서 악당 성팟에 대한 묘사는 얼굴을 찡그릴 정도로 '못됐다'. 성팟은 자신의 요새 주위를 호위하는 무장 경비병을 300명 거느리고 있는데, 그들의 얼굴에 직접 V자 표시를 새겨 넣었다. 그 표시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 같은 것인데 이 표시를 한 이유는 누군가 부하들을 자청하며 요새로 숨어드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만약 성팟의 부하로 변신해 침입하고자 한다면 우선 V자 표시를 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성팟이 직접 한 것이기 때문에 부하를 가장하는 것이란 불가능하다. 이처럼 <레드 예리코>에 묘사된 악당은 용의주도하면서도 끔찍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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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승주나무 > <할매꽃>, 새벽 3시에 우리의 할머니들이 몸부림쳤던 '그날'

작가, 감독과 함께 한 다큐 데이트


▲ 할머니에게 보여드리려고 만들었다는 문정현 감독의 <할매꽃>은 개봉되지 못할 뻔했다. 문 감독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영화가 주인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문 감독은 영화를 접을까도 깊이 고민했다고 한다. <할매꽃>은 (당시) 임종을 앞둔 할머니의 말못할 사연을 알아보기 위해서 손자인 감독이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 속에서 현대사와 가족, 이웃, 인간의 비극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다큐멘터리이다.


소설가 김연수는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다. 소설가로서 감정 이입이 잘 되며 스크린 바깥, 그리니까 찍지 않은 부분과 다큐가 말하지 않는 부분이 상상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극 영화는 스크린 바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우리나라는 할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 중에서는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하지 못할 이야기가 많다. 3월 18일 저녁 알라딘과 인문사회과학출판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할매꽃>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러 갔다 왔다.(홍대 KT&G 상상마당) 이미 DVD로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소설가 김연수 작가가 힘을 보태기 위해 흔쾌히 자리에 동석했다. 그의 최근 작품인 <밤은 노래한다>의 상황을 한 마을의 한 가족에게 대입한다면 <할매꽃>과 비슷하게 그려졌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팜플렛을 통해서 현대사와 가족의 문제를 다룬 다큐라는 설명을 보고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현대사를 다룬 작품들은 대개 극적인 부분을 과장하거나 너무 진지해서 지루한 일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는 다른 종류의 난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가족'이다. 김연수에 의하면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객관적인 위치가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고 작업을 하는 내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문정현 감독 본인도 "앞으로 다시는 가족에 관해 찍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다.
이 난제들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었을까? 영화는 문 감독의 감미로운 나래이션으로 시작되었다. 문 밖에만 나가도 쉽게 볼 수 있는 사람 좋은 할머니의 인생이 그 비밀을 드러냈다. 임종을 앞둔 할머니에게 바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던 감독은 결국 영화를 할머니의 영정 앞에 바칠 수밖에 없었다.

문 감독은 우선 작품의 범위를 자신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로 철저히 한정했다. 전쟁 상황에서 학살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갈등과 국내의 상황은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사실 당대의 상황은 마을 안에서도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오히려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그 동안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치 상황이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얼키고 설킨 인간적 감정들이 정치적으로 반영돼 비극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현대사를 둘러 보면 개인의 사적 감정이 국가 대사에 공공연하게 개입되는 경우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예컨대 제주 4.3 당시 제주민들을 가장 가혹하게 괴롭혔던 사람들은 북한에서 쫓겨난 부잣집 자식들로 이루어진 서북청년단원이었다. 이들은 반동분자 색출이라는 명분을 개인적 감정과 구분하지 않았다.


새벽 3시에 미친 사람 같이 몸부림쳤던 그의 외할머니와 나의 외할머니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폐부 깊숙이 찌르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나의 개인사 속으로 다큐멘터리가 깊숙이 들어왔기 때문인데, 나아가 나의 비밀까지도 들춰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가 좋던 동네 친구에 의해서 동생이 즉결처형되고 또 다른 동생은 고문으로 잃고, 면회간 다른 동생은 경찰이 쏜 공포탄에 의해 정신이상자가 되었다. 가세가 완전히 기울고 남은 전답을 마저 팔아야 하는 날 새벽 3시 외할머니는 산발차림에 신발도 신지 않고 자신의 소유였던 밭을 헤매며 죽을 결심을 했다고 한다. 우물에 몸을 던지려고 우물 안으로 고개를 쳐드는 순간 달빛에 비친 우물물 속에 자식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떠올라 끝내 죽지는 못했다고 한다. 새벽 3시에는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와 추억이 겹친다. 제주도민이라면 누구나 4.3 당시 희생된 친척이 있는데, 지식인이었던 외할아버지가 영문도 모르게 잡혀간 이후에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의 책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제주도에 살던 지식인들은 제거대상 1호였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감춰야 했다. 외할아버지의 책이 문제였다. 할머니는 새벽 3시마다 남몰래 책을 태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이 끝도 없어서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어머니는 만약 그 때 책을 태우지 않고 남겨 두었더라면 골동품 가치가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마을과 중대마을은 예로부터 양반들이 살던 마을이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대마을'이라고 불리던 '풍동마을'은 하인이나 천민들이 거주하던 마을이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의 감정의 골은 깊을 대로 깊었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 그 감정의 골은 여지없이 비극을 낳았다. 비극으로 인해 선량한 한 가족의 운명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데,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의 가족을 만나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 다큐멘터리는 영화 내내 고민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할매꽃>은 '현대사'를 다루고 있지만, 작품의 주제는 철저히 '인간'이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작용한 결과가 현대사의 비극이며 <할매꽃>의 주변을 이루는 이야기일 뿐이다.

워낭소리가 인생의 큰 의미를 알게 해주는 훈훈한 다큐멘터리라면 <할매꽃>은 이제 당신의 고민은 무엇인가라는 구체적인 물음을 던진다. 문정현 감독은 시사회가 끝난 후 나눈 인터뷰에서 "고민하지 않고 완결되는 다큐멘터리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그 안에 담긴 깊은 질문과 서사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 영화와 인터뷰가 끝나고 밖에서 서성대다가 문정현 감독을 만나 사진을 찍었다. 나에게도 아직 시작하지 못한 4.3 이야기가 가슴 한켠에 남아 있는데, 문정현 감독은 소설이 되었건 영화가 되었건 지금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작품으로서뿐만 아니라 인생으로서도 '해원'할 것은 반드시 해원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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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WBC 대회 정치적으로 보기

한국이 세계적인 강팀들을 누르고 WBC에서 떠오르는 별이 되었다.
이제는 누구도 한국의 야구 실력을 우습게 볼 수 없다.
일본의 이치로에게 한 방 맞은 것이 섭섭하기는 하지만 9회말 동점타로 만만치 않은 팀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한국이 스포츠에서 기적 같은 활약을 벌이면서
국민에게는 희망을 안겨 주었고, 잠시나마 삶의 고통을 위로해줄 수 있었지만
국민들의 고통은 다시 찾아온다.
매운 고추를 먹고 나서 얼음물을 삼켰을 때처럼 순간 매운 기운이 사라졌다가
다시 입가에 가득 침이 고인다.


▲ 지난해 8월 베이징 올림픽 이슈 때 일어난 일들을 보여주는 경향신문의 만평


우석훈이 시사IN에 남긴 칼럼을 보면 우리나라의 엘리트 스포츠가 한나라당 같은 수구보수의 텃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정치적으로 한국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스포츠 분야는 아무리 따져봐도 월드컵이라 할 수 있는데, 불행히도 4년 주기의 월드컵과 한국의 지방선거는 주기가 딱 들어맞는다. 한국 풀뿌리 민주주의의 불행이라 할 수 있다.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은 한나라당에게 지방선거 압승이라는 정치 성과를 안겨주었고, 이런 효과는 2006년에도 여전했다. 그러면 2010년 지방선거는? 지난 두 차례 월드컵은 지독할 정도의 쇼비니즘 월드컵인 데다 정치적 냉소와 무관심 속에서 지역에 조직을 가지고 있는 토호 세력에게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주었다. 객관적 정황을 따지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 한국 축구에는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예선 탈락해 한 번쯤 쉬어 갔으면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월드컵 주기를 피해서 지방선거 일정을 조정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기본적으로 ‘엘리트 스포츠’를 지향하는 엘리트주의가 한나라당에 아주 잘 맞는 데다 지역 토호들, 이른바 지역 유지들과도 결합한 풀뿌리 조직까지 갖춘 한나라당에게는 특정 세력에 돈을 몰아주는 체육 정책도 잘 부합한다.
- 시사IN 78호, <진보 진영은 스포츠 정책이 있는가 >

나도 솔직히 우석훈과 같은 생각이다.
박찬호, 박세리라 우리 국민에게 희망을 줬다고 하지만 실은 국민보다 실세 정치인들에게 더 큰 희망을 안겨 주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이 3S의 본질이니까.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승전보를 올리고 나서 청와대가 했던 일을 기억하면 짐작할 수 있다.
선수들을 청와대로 초대해 국민에게 자랑하고, 축하 행사를 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귀국하지 못하게 한 '오버액션'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번에 만약 역전 우승을 했더라면 이명박 대통령께서 위대한 국민의 승리라며 성명을 밝힐 테고,
청와대로 초청해 일본을 세 번이나 이긴 자랑스런 한국 건아들이라며 치켜세울 것이다.
그리고 병역 면제 문제를 주된 이슈로 띄우며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다.
나도 야구대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셈이지만,
나에 비하면 이 '관록의 정치인'들이 스포츠를 이용하는 것은 거의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


▲ 이번 WBC를 바라보는 속이 시커먼 사람들의 표정을 그린 경향신문의 만평

따지고 보면 스포츠 이슈에 묻혀 버린 정말 중요한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나?

KBS 정연주 사장 해임 무효
41개 공기업 개혁 확정(사실상 민영화 발표)
일본 유일의 '강제징용전시관' 폐관 소식
강만수 장관 "양극화는 이 시대의 트렌드"

셀 수 없이 많은 이슈들이 묻혔다.
묵직한 스포츠 이슈가 지나가고 나면 우리들이 겪는 정치적 손실이 너무나 크다.
2002년 월드컵을 치르고 나서 또 월드컵을 치르겠다는 정부의 선언을 접하면서 참 씁쓸한 생각이 지나간다.
한국팀에게는 정말 아쉬운 순간이지만,
이제 WBC가 끝났으니 우리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와서 정치인들을 향한 감시의 눈을 다시금 떠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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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진이 한 달 내에 부대복귀를 해야 하는 이유


▲ 왕년의 아이돌 스타 젝스키스 출신 이재진 씨.

군대에서 병 인사를 담당하던 입장으로 이재진의 탈영 사태를 바라보면 이번 군무이탈의 경우 '예외적'으로 오래 걸린다고 할 수 있다. 대체로 군무이탈은 3일 내에 복귀하거나 검거되는 식이기 때문이다.
2003년 부대생활을 할 때부터 2년간 군무이탈자가 그 이전 2년에 비해서 5배 가까이 늘었다. 전군에서는 군무이탈 사건이 늘어나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 고심을 거듭했다. 군무이탈이 늘어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부대 부적응자들이 해마다 늘어난 상황과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군대에서는 새로 입대하는 병사들이 선임병에게 육체적이나 심리적 폭력을 받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인사지침을 하달하기까지 했는데, 분대장 이외에 병 상호간에는 누구도 지시를 할 수 없다는 방침이 대표적이다. 때문에 부대에서는 이등병을 '이등별'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이등병의 눈에 어긋나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병사들은 신병을 무서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이등병들의 탈영을 얼마나 완화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재진은 이달 초 질병상의 이유로 휴가를 나가 지난 6일 부대 복귀 예정이었다. 하지만 귀대 예정일에서 17일이 지난 23일 현재까지도 자대에 복귀하지 않았다. 3~5일 정도 내로 군무이탈 사태가 끝나면 부대에서 어떻게든 해결을 볼 수 있다. 영창은 피할 수 없지만 '기록'은 피할 길이 있다. 1개월 정도 안에 복귀를 하면 여지 없이 구속이 되지만 군무이탈 만큼의 군생활을 더 하기 때문에 영창에 있는 날이 많아질 뿐 본인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기록'은 피할 수 없다. 군무이탈로 구속된 기록은 전역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전과자'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개인의 신상과 상관없이 무조건 복무해야 하는 규정 재검토해야..

문제는 장기 군무이탈 사태가 지속될 때다.
내가 근무하고 있을 때 근무이탈이 6개월 넘어 이루어진 적이 있었다. 단기 근무이탈은 상급부대 헌병대의 영창생활을 하게 되는데, 장기 근무이탈의 경우 육군교도소로 가게 될 확률이 높다. 초범인 경우 재판을 통해 형량이 가볍게 나올 수 있지만, 육군교도소로 간다는 사실 자체는 본인 경력에 엄청난 누를 남기게 된다.
때문에 인사장교들이 신병교육대나 부대교육 때 병사들을 향해 "최악의 경우 군무이탈이 일어났을 때 일주일 안에는 돌아와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군무이탈을 할 수 있지만, 냉정함을 발휘해서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는 충고다.

살인죄의 경우 '시효'가 있지만, 군무이탈의 경우 평생 시효라는 게 없다. 매해마다 국방부장관 명의로 부대복귀 명령을 내리는데, 10년이 지나건 50년이 지나건 군무이탈자는 국방부장관의 명령에 따라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명령불복종죄로 다스려지게 된다. 탈영자에 대한 군대의 조치는 이 정도로 엄격하다. 이재진이 해외에 망명할 것이 아니라면 그 역시 이러한 조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군무이탈한 병사들의 인사기록을 남길 때는 사유를 적게 돼 있다. 사유의 90%는 이성 문제이다. 정말 이성문제 때문에 탈영이 대부분 벌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헌병대에서 탈영병에 대해서 수사를 하고 그 결과를 통보해 주기 때문에 이 데이터는 100% 신뢰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헌병대도 관료제이기 때문에 보고서를 남겨야 한다. 특이한 사유가 나오면 별도의 보고서를 써야 하기 때문에 있는 사유 중에 일반적인 것을 적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재진의 탈영으로 인해서 그의 입대 상황을 알게 되었는데 참으로 답답한 사정이 있었다. 2006년 산업기능요원으로 대체 복무했으나 부실복무 혐의로 재입대 통보를 받은 데 불복, 서울지방병무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이재진은 끝내 패소해 지난해 8월 현역으로 조용히 재입대했다.

지난 2006년 아버지를 여읜 이재진은 군 복무 관련 행정소송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지난해 5월 다시금 모친상을 당해 충격이 컸다. 부대 적응을 잘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입대 후 이재진은 이따금씩 정신 이상 증세를 보여 국군병원을 오가기도 했으며 측근의 주장에 의하면 그가 군 복무 당시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육군은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눈치다. 군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재진은 탈영병과는 분명히 다른 상태로 군 역시 걱정하며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다. 자진 복귀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군 생활을 하다가 불가피한 사유가 발생할 경우 군 생활을 중단하고 문제를 해결한 후 남은 복무기간을 채우는 제도가 있는 것으로 안다. 이재진의 경우 우울증이나 양친의 부고가 있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군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제도로서 이재진을 감싸지 못했다는 책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군대는 심신이 건강한 젊은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현역 복무나 예비군 훈련 등 군대와 관련한 규정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격한 편이다. 군이 이재진의 군무이탈 사건을 쉬쉬하는 게 우연은 아니다.

규율만을 강조하는 일방주의적 군 행정은 앞으로 이런 사건사고와 피해자들을 계속 양산해낼 것이다. 만약 이 사건이 이재진의 부대복귀로 인해 조용히 해결된다면 군으로서는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로 끝나겠지만, 돌발변수로 사건이 확대된다면 군 행정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가 시작될 것이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군 법무관들을 파면조치하고 병사들에게 불온도서를 금지한 군대는 지금 이재진 한 사람을 노심초사하며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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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위버 - 소설로 읽는 유쾌한 철학 오디세이
잭 보웬 지음, 박이문.하정임 옮김 / 다른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철학책을 읽게 되는 계절

대학 입학 때부터 철학책을 즐겨 읽었는데, 지난 십여 년의 구비구비마다 철학책을 읽게 되는 계절이 있다.
국문학과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아 공대에 들어갔지만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문학의 자양분을 얻었다. 문학에는 글을 읽는 행위와 이야기로 나누는 행위, 그리고 직접 글을 쓰는 행위가 있는데 글을 쓰고 싶었던 나는 내 글을 쓰기에 철학이 너무 빈곤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철학의 긴 여정이 그 때부터 시작된다. 윌 듀런트의 <철학이야기>와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철학의 초심자에게 좋은 도우미가 돼 주었다. 러셀이나 코플스톤 같은 철학사를 여행하면서 서양철학(근대철학까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는데, 서양철학을 보면서 허무함이 몰려왔다. 나는 동양사람인데 서양철학으로서 대부분의 자양분을 얻어야 한다면 올바른 철학여정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미처 공맹과 노장, 그리고 한비자나 '자' 자 들어가는 동양철학으로 물흐르듯 넘어갔다.
기형도나 안도현 시인 등과 결별한 시점도 이 즈음일 것이다.
군 생활 동안 공백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조그마한 불법을 저지름으로써 철학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모두 잠든 심야에 근무가 없는 날에는 화장실 불빛 밑에서 <에티카>를 다시 읽고 플라톤을 읽었다. 운 좋게 행정병으로 선발된 것도 있지만 부대 분위기가 독서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어느 정도 '짬밥'이 찼을 때는 주말마다 사무실로 가서 하루 종일 독서에 빠져들곤 했다. <소피의 세계>를 만난 것도 그 즈음이다.
그러다가 전역 후에 철학을 꽤 오래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사회 현안에 깊이 천착하고 싶어서 대중 교양서를 많이 읽었다. 우석훈이나 장하준, 박노자 같은 사람을 통해서 내가 연결돼 있는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서 읽어낼 감수성을 익혔다.

하지만 지금은 이 책들을 뒤로 하고 다시 철학책을 읽고 있다. 아무래도 변덕이 있는 것도 이유겠지만 십여 년간 독서의 방향타를 다듬어 왔고, 사회와 함께 책을 읽는 훈련을 해오면서 내가 어떤 책을 읽고 행동하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지금 필요한 책은 철학책과 고전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회문제를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살펴본 바로는 수십 년 동안 엉켜 있는 모순의 실타래가 있다. 그것은 당대의 지성만으로는 도저히 풀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을의 큰 선비는 다른 마을의 큰 선비와 벗하고, 한 나라의 큰 선비는 다른 나라의 큰 선비와 벗하며, 천하의 큰 선비는 역시 천하의 큰 선비와 벗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옛 현인들을 논하고, 그의 시를 음미하며, 그가 쓴 책들을 낱낱이 살펴본다면 그를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으랴. 때문에 그의 시대를 논하고 먼 옛 현인까지도 벗삼는 것이리라.
"一鄕之善士斯友一鄕之善士, 一國之善士斯友一國之善士, 天下之善士斯友天下之善士.
以友天下之善士爲未足, 又尙論古之人. 頌其詩, 讀其書, 不知其人, 可乎? 是以論其世也. 是尙友也." 萬章章句 下-8


맹자의 위 구절을 요즘 자주 들여다 본다. 마치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원기옥을 모으며 세상의 모든 생물들에게 힘을 조금씩 모으듯 우리가 쌓아온 지혜의 우물에서 자꾸 물을 긷고 싶다.
인류가 정성스럽게 쌓아온 지성의 보고를 최대한 이용해 낡은 시대의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새로운 인간형, 새로운 사상이 요구된다는 것을 직관으로 느낀다. 나는 이런 패러다임을 창시할 정도는 아니지만 리더십(ledership)이 아니라 펠로우십(fellowship)으로 새로운 패러다임 작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다.
박이문 교수는 이 차이가 대표적인 철학사 서술 방식의 차이라고 말한다. 즉 역사 중심적인 철학사와 문제 중심적인 철학사가 분리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까지 익숙하게 읽었던 철학사는 물론 역사 중심적인 철학사다. 철학과에서 교육을 받을 때도 역사 중심적인 철학 교수법을 세례를 받았는데, 그들은 철학자가 제시한 철학을 현재 나의 문제, 나의 시대의 당면문제로 전환해서 재구성하는 것을 나의 책임으로 돌렸던 것 같다. 실제로 나는 당시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철학자들의 메시지로 풀려고 노력하였으나 그 작업은 일반 독자가 하기에는 너무나 단단했다. 오랜 세월동안 누적되고 얽힌 당면문제가 철학자의 몇몇 사상으로 단숨에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철학 교육자들의 상상력 부재를 증명하였던 셈이다.

사춘기를 넘어 이만큼 성장한 철학소설 <드림위버>

<드림위버>뿐만 아니라 철학사 전체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감지된다. 이것이 비록 철학의 최신 흐름이 아니라 외서가 국내에 소개되는 순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지만, 철학사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당대, 현실의 문제 나의 주변의 문제로 철학사의 관심사가 전환되는 것은 철학사의 하나의 진전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독일에서 60만부 판매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의 <세계 철학사>는 현재적 가치에 충실하면서, '현재적 물음'이라는 것이 사실은 영원한 질문의 다른 표정이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
<드림위버>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소피의 세계>는 비유의 힘이 강하다. 이 무기를 통해 기본 명제로 달려갈 수 있지만 그 명제가 나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소피의 세계>의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를 보면, 소피가 철학 선생을 만났을 때나, 힐데와 소피가 만났을 때 느끼는 낯섦은 그것을 뜻하며, 그것을 지켜보는 주위의 반응은 걱정스럽다. 그들의 의식 속에 소피의 고뇌를 해석할 언어가 없기 때문에 '마약'이나 '연애'를 유력한 원인으로 생각한다. <드림위버>는 바로 <소피의 세계>를 비롯한 기존 철학사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기존의 철학사는 보학(譜學), 즉 자신들의 족보를 밝히는 작업에 치중하다 보니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물질화, 비문화화, 비인간화, 소외화에 대해서 별다른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 않다. 대중들은 직면한 문제와 철학의 관심사가 멀어지는 순간 철학을 배부른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이에 브릿지 역할을 하는 것이 <드림위버>를 비롯한 새로운 철학, 즉 당면문제 중심의 철학 서술작업이다.
 
이와 관련된 철학 담론 중에서 흥미로운 주제는 바로 '철학사=철학' 담론이다. 철학사가들은 자신들이 하는 작업이 역사가 아니라 '철학'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 새로운 시대의 관점에서 철학사를 살펴보기 때문에 현재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이들이 현재성을 불어넣기 위해 한 작업이라고는 과거의 철학사를 현대어로 번역한 수준에 불과하다. 박이문 교수도 "철학사는 과거 철학자들의 철학적 사유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역시 하나의 역사라는 점에서 철학적 지식에 불과하지 그 자체가 곧 철학적 사유는 아니다"고 규정했다.
그 외에도 내가 철학을 보면서 가장 중시하는 '사랑의 방향'을 이야기할 수 있다. 역사적 철학은 자신의 애정을 선대 철학자들에게 쏟는다. 철학자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승하기 위해서는 평생을 철학자들에게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당면 문제에 관심을 갖는 철학자들은 당대인에 대한 애정으로 넘친다. 비로소 자신과 같이 땅을 밟고 살아가는 당대인들의 문제를 공감하며 그것을 철학으로 표현한다. 내가 철학서를 고를 때 이 기준은 무척 중요하다.

이제 <드림위버>의 이야기를 해보자. '이안'이라는 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학자인 학구적인 배경에서 태어난 아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적 담론에 쉽게 빨려들어갈 수 있다. 이런 캐릭터가 그러하듯이, 그는 늙수그레한 지성을 가지고 당면문제에 대해서 엄밀히 따져보고 가공의 노인과 함께 새로운 문제에 대해서 토론하고, 꿈에서 깨어나면 현실에서는 부모님과 그 문제를 환기함으로써 자신의 문제로 만들어내는 방식이 <드림위버> 서술의 큰 틀이다. 철학을 잘 이해하고 잘 이해할 수 있는 '숙련된 조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설정은 차라리 솔직하고 전략적이라고 하겠다. 이것은 이 책을 보는 대중들과 어느 정도 거리감을 주기는 하지만 철학적 주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필요한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세계의 지성은 총 155명인데 단지 철학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리처드 도킨스 같은 과학자(실은 과학철학자)나 헤르만 헤세 같은 문학자, 칼 융 같은 심리학자, 유클리드 같은 수학자가 등장한다. 이것은 철학의 주제가 철학자에서 철학자로 계승된 이전의 방식을 넘어서는 '철학의 다양성'을 확보한 진전으로 볼 수 있다. 하루에 하나의 주제에 천착하다 보면 오래 전 느끼다 만 '법열'(法悅)이 생기는데 나의 생각이 자라는 느낌은 언제든지 기분이 좋다. 때문에 박이문 선생이 <드림위버>의 추천사에서 밝힌 평가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철학의 본질이 사유에 있고, 사유의 본질이 어떤 특정한 대답의 발견에 앞서 어떤 문제를 끝없이 추구하는 열린 과정에 있다는 점을 전제할 때, 이 책은 <소피의 세계>보다 성숙하고 철학적 방법이다. - <드림위버> 추천사


※ 리더스가이드라는 사이트에서 현재 <드림위버>에 대한 서평이벤트를 하고 있네요. 묵직해서 가격에 부담을 느끼신다면 신청을 해도 될 듯. 서평을 쓰면 책을 보내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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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3-24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철학. 하면 찔림과 그리움이 한번에 밀려옵니다. 철학 소설이나 너무나 궁금하네요

승주나무 2009-03-25 13:44   좋아요 0 | URL
이 철학소설은 거창하게 철학자들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정수만을 이야기에 녹입니다. 철학자들의 이름과 개념은 옆에 붙은 주석을 통해 알 수 있어요. 주석은 귀찮으면 그냥 통과해도 무방합니다.

마늘빵 2009-03-24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거 읽으셨군요. 저도 지금 읽고 있는 거 덮고나면 읽으려고 대기 중인데.

승주나무 2009-03-25 13:44   좋아요 0 | URL
네.. 아프락사스 님이 떠오르던 책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