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날을 핑계로 이렇게 남기고 갑니다.

이 말이 진짜인지 사실인지 궁금하실 거에요...

진실이기도 하고 진실이 아니기도 하고,

거짓말이기도 하고 거짓말이 아니기도 합니다.

만우절에는 뻔한 거짓말보다는 이런 애매한 말을 해야 어울리지~ 암 ㅋㅋ

궁금하신 분은 취재를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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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i 2009-04-01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 관두고, 새로 하나 얻으신 건가요? ^^
요새는 하도 불활이라고 여기저기서 떠들어대서, 직장 가지고 농담하는 사람 만나기도 좀 어려워요. 농담할 여유가 있을 때는 아직 괜찮을 때인것같습니다.
직장을 그만두셨든 아니든, 하시는 일 잘되셨으면 좋겠어요. ^^

승주나무 2009-04-02 09:56   좋아요 0 | URL
네.. 직장을 잃고 직장을 얻고라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직장이라는 개념 자체를 분해해 버렸습니다. 다른 직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할 겁니다.
저도 그 흐름에 따르려구요..
쓰고 나니 몹시 묘한 말이 되어 버렸군요~!~

stella.K 2009-04-02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 많이했다.^^

승주나무 2009-04-07 17:32   좋아요 0 | URL
네~~

무해한모리군 2009-04-02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출발 순조로우시기를 바래봅니다.

승주나무 2009-04-07 17:32   좋아요 0 | URL
어떻게 다들 아셨나 봐요^^

바람돌이 2009-04-03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새출발이라고 믿겠어요. ^^

승주나무 2009-04-07 17:32   좋아요 0 | URL
네~ 믿어주세요 ㅎㅎ
 

스포츠 스타만 나타나면 자신과 연관시키려는 욕망


▲ 이명박 대통령이 양복 위에 한국 야구대표팀 유니폼을 덧입은 모습. 스포츠스타가 탄생하면 꼭 자신과 연관시키려는 욕망은 서울시장에 이어 대통령이 되어서까지 바뀌지 않았다.
(사진 : 오마이뉴스) 


李대통령, 김연아 선수에게 축하전화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20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 대회 여자 싱글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김연아 선수(19·고려대)에게 축하전화를 건 일로 인해 뒷말이 무성하다. 한 포털사이트에는 무려 1,000개가 넘는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대체로 현실 정치보다 가십거리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모습에 대한 비판과 최근 야구와 피겨에서 떠오른 스타들의 좋은 이미지에 편승하려는 대통령의 '욕심'을 문제삼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이 국제대회에 우승한 선수에게 전화를 걸어 격려를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서 이상한 일이 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김연아 선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격려한 일이 뉴스에 오르고 구설수로 되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것은 역시 대통령의 책임이다. 그것은 대통령이 이전에 보여주었던 스포츠에 대한 집착과 바뀌지 않은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 2002년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당시 히딩크 대표팀감독에게 명예서울시민증을 수여하면서 자신의 아들과 사진을 찍게 했는데, 아들의 복장(축구유니폼과 샌들)과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 처사가 구설에 올라 결국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사진과 사과문 캡쳐 : 오마이뉴스)

2002년 월드컵 4강으로 전국민이 축구열풍에 빠져 있을 때 대통령은 히딩크 감독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하는 행사를 한 것은 전략적으로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인에게 명분으로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욕심은 여기서 더 나아가 히딩크 감독을 사적인 사진촬영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국민적 공분을 샀다. 가족과의 사진촬영 없이 명예시민증만 수여했더라면 정치적으로 잇속만 챙기고 끝났을 일이다.

얼마 전 WBC 준우승을 한 한국대표팀을 청와대에 초청한 일에서도 이런 문제가 감지된다. 국가원수로서 국가의 이름을 세계에 떨친 스포츠 스타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격려를 한 것은 명분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미 베이징 올림픽에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기 때문에 청와대 초청도 신중해 했어야 했다. WBC의 일정과 국내 프로야구 일정이 겹치기 때문에 프로팀 감독들은 전력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선수 차출에 동의해준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렇다면 감독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선수들이 소속팀에 복귀해 적응을 빨리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야 한다. 청와대로 초청하면 선수들은 그만큼 소속팀 적응이 지체될 수 있는데 그것은 감안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그리고 유니폼은 꼭 입어야 했을지 의문이 든다. 베이징 올림픽 사건이나 2002년 사진촬영 사건이 없었더라면 아무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용산참사나 언론인탄압이 없었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야구 대표팀 유니폼 입은 대통령, '점령군 사령관' 보는 것 같아 씁쓸..

나는 대통령이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어쩐지 '점령군 사령관'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용산참사로 희생된 사람들이 불법적 시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고인이 된 분들이 국민의 한 사람이라면 국민의 책임자인 대통령이 위로의 한마디쯤 해도 좋았을 텐데 '떼법'에 대한 엄중한 사법조치나 '준법'만을 강조했다. 망인들에 대한 위로 한마디에는 그렇게 인색한 대통령이 대표팀의 유니폼은 곧잘 입는 수고를 보여준다.

대통령의 사적인 정치가 위험 수준에 이르고 있다. 시장에 가서 자영업하시는 할머니를 안아드리는 일, 현장사무소 가서 실무자들에게 일장 강연을 하는 일, 전봇대 걱정을 하는 일 등은 사적 정치이거나 '쇼'로 분류할 수 있다. 구조적으로 그게 무슨 문제인지 고민하기보다는 당장 달려가서 자신이 그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보여주고 끝나버리는 허무함의 극치이다. 대통령의 이런 정치의 전형을 보여주는 정치가가 있다. 바로 정자산인데, 맹자는 자신이 집필한 <맹자>라는 책에서 정자산의 사적 정치에 대해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자산(子産)이 정(鄭)나라의 정사를 맡아 보았는데, 자기가 타는 수레로 진수와 유수에서 사람들을 건네 주었다. 이를 두고 맹자가 말했다. "은혜롭기는 하나 정치는 할 줄 모른다. 매년 11월이면 도보로 건너는 널빤지의 작은 다리가 이루어지고, 12월이면 수레가 지나는 큰 다리가 이루어지면, 백성들은 물을 건너는 것을 걱정하지 아니한다. 군자가 정사를 공평하게 하면, 길을 나가서 사람을 피하게 해도 좋다. 어찌 사람마다 건네 줄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 모든 각 사람으로 하여금 다 기쁘게 하려면, 날마다 그렇게 해도 부족할 것이다." - 맹자 이루하 편
子産聽鄭國之政, 以其乘輿濟人於溱洧. 孟子曰:  「惠而不知爲政. 君子平其政, 行辟人可也. 焉得人人而濟之? 故爲政者, 每人而悅之, 日亦不足矣. 」


대통령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다. 대통령은 쇼는 잘하지만 정치는 할 줄 모른다. 정치를 잘 못한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쌓인 이미지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스포츠와 관련된 구설수가 쌓였다면 당연히 대통령이 되어서는 스포츠에 대해서 얼굴을 들이밀기보다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격려를 하는 것이 더 낫다. 앞으로 국제대회에서 눈에 띄는 성적만 내면 청와대로 불려나가야 한다면 누가 기운이 나서 열심히 운동하겠는가. 마치 청와대로 불려오고 대통령과 만나는 것이 대단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니올시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통령이 가십거리에 몰두한 것이라면 참 한가하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고,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든다면 불순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명한 대통령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스포츠를 자신과 연관시키지 않으려 할 것이다.


▲ 시사IN 기사에서 캡처한 사진. 우석훈 씨는 엘리트 스포츠를 한나라당이 모두 차지했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가 보다. 한나라당은 그새 광고문구를 "경제도 김연아처럼"으로 바꿔 달았다. 3월 12일 6조원 규모의 민생 대책을 결정한 비상경제대책회의 결과를 한나라당 최고위원들이 듣고 있는 장면. (사진 : 뉴시스, 시사IN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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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 마지막 장면에 대한 의도를 묻는 거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는 내가 궁금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장면을 왜 그렇게 한 거냐?"

<밤은 노래한다>의 작가 김연수가 <할매꽃>의 문정현 감독에게 대뜸 물었다.
<밤은 노래한다>의 경우 주인공 해연은 원수와의 재회에서 그에게 복수하지 않았다.
김연수는 그를 죽이지 않은 것은 그를 용서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가족을 불행을 구렁텅이로 밀어넣었으면서도 그 가족을 웃으면서 맞아야 했던 할머니의 가슴앓이가 깊게 녹아 있는 다큐멘터리의 최대의 고민은 당사자가 아닌 후손으로서 그의 후손(친구이기도 하다)을 만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이다. 재회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고 멈추지만 관객들 중에는 어머니로 하여금 그 친구를 만나도록 강요한 감독을 원망하는 사람도 많았다.
소설가 김연수도 "안 갔으면 좋았겠는데 가더라"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 김연수 작가(왼쪽)는 다큐멘터리에 약하다. 푸지에를 보고 나서 '준비되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고, '워낭소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김연수의 블로그에는 다큐멘터리에 관한 글들이 많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알라딘과 인문사회출판협의회는 김연수 작가를 시사회의 게스트로 초대했다. 오른쪽은 <할매꽃>의 문정현 감독


문정현 감독은 담담하게 답했다.
만약 이 영화에서 패배의식을 읽으셨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한계이며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상대, 중대마을과 하대 마을 어른들이 화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
그 자식들인 어머니 세대에서는 화해가 가능할까? 이런 질문을 하려고 강요도 하고 오버도 했다고 말했다.
솔직한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심오한 의도와 철학적인 답변이 아니라 내 이웃, 내 친구에게서 들을 수 있는 답변이라 더 좋았다.

김연수 작가가 동석을 해서 그런지 관객들은 <밤은 노래한다>의 내용과 결부시켜서 질문을 했다.
김연수는 소설의 작업과 다큐멘터리의 작업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만드는 직업은 상당히 이념적이다. 내가 이런 결말을 생각하면 그렇게 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오히려 사실과 결부되기 때문에 감독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다큐의 묘한 매력이다. 팩트도 있고 드라마도 있지만 흐름 자체에 몸을 맡겨야 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


▲ 자기 개인사와 결부된 현대사를 표현하는 것은 보통 작품을 표현하는 것보다 갑절의 고민과 공력이 든다. 그만큼 위험성도 크다. 자기가 입은 피해의식과 대중의 인식 사이의 벽이 너무도 단단하기 때문에 창작자는 그 역사를 온몸으로 승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정현 감독의 <할매꽃>이 역사를 온몸으로 승화시켰다고 묻는다면 확실히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가족과 이웃 사람이라는 소박한 관계망으로 승화시킨 것은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제주도 사람으로서 나도 제주 4.3에 관해서 형상화를 고민하고 있지만 좀처럼 형식이 잡히지 않았다.
자기가 입은 피해의식과 대중의 인식 사이의 벽이 너무도 단단하기 때문에 창작자는 그 역사를 온몸으로 승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정현 감독의 <할매꽃>이 역사를 온몸으로 승화시켰다고 묻는다면 확실히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가족과 이웃 사람이라는 소박한 관계망으로 승화시킨 것은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문 감독은 언제부터 이것을 만들려고 생각했을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최초의 시점은 언제였을까?
그는 2003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대통령이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어"라는 어머니의 발언이 나온 것으로 보아 다큐멘터리가 오래 전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동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문 감독은 영화를 접으려고 했다. 영화를 만들려고 한 것도 할머니에 대한 선물이라는 소박한 목적이지만, 영화를 접으려는 것도 역시 할머니의 죽음에 의한 영화 정체성에 대한 불확신이다. <할매꽃>은 철저히 문정현 감독의 사적인 영역에 있다. 이것은 단점이기보다 오히려 강점일 수 있다. 사회적인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표현하지 않고 사적인 영역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능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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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무장군의 청와대 습격과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을 계기로 국민의 안보의식을 고취시킨다는 명목 하에 4월 1일 향토예비군을 창설했다. (1968년, 자료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 2009년의 여성 향토예비군 창설 현장. 위의 사진과는 41년 차이가 있지만 여성향토예비군이 창설될 때는 공통점이 있다. 북한의 상황과 권력의 위기감이 그것이다. 여성 예비군은 향토예비군 설치법 제4조 “예비군 대원에 지원할 수 있는 자는 18세 이상의 대한민국 남녀”라고 명시된 조항에 근거해 편성되고 있다. (1968년, 자료 : 연합뉴스)



최근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여성예비군 부대를 창설한 것과 관련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여성예비군이 탄생하는 데는 몇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로는 북한의 도발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예비군은 1968년 박정희 정권 때 창설된다. 1968년은 북한의 도발 행위로 한국전쟁 이후 남북관계가 가장 긴장된 해였다. 강경파가 온건파를 숙청한 북한은 남한의 베트남 파병에 대한 응수로 대남도발을 집중적으로 벌였는데 1월 21일 북의 무장 게릴라 31명이 휴전선을 뚫고 청와대 부근까지 나타난 것은 큰 충격을 주었다. 이틀 후에는 원산 앞바다에서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 호가 북에 의해 나포되는 대사건이 벌어졌다. 그 해 11월에는 또 울진과 삼척 일대에 무장 게릴라들이 침투하는 사건이 있었다.
2009년의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 이명박 정권의 탄생으로 다시 남북관계가 냉각기로 접어들면서 북한은 핵과 함께 최근 대포동2동호로  미사일
로 추정되는 미사일 발사 준비를 끝내며 한반도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미 금강산 관광은 물론 개성공단까지 폐쇄한다는 강경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남북은 정부 접촉은 물론 민간접촉까지 차단된 상황이다. 남한은 공안검사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둘째는 북한의 도발 등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권력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다.
'적대적 공존'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한반도는 적대적 상황을 이용해 극우정당이 권력을 잡는 현상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고이즈미, 아베 전 총리나 현 총리 역시 북핵이라는 국면 속에서 권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북한의 도발 등 불안정한 대외 여건으로 인해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1968년 여성예비군 창설은 박정희의 정권 강화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었고, 학원에서 군사교육(약칭 교련)이 강제된 것도 이 즈음이다. 유신체제 내내 박정희는 북의 도발과 그에 대비한 안보를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 유지에 적절하게 활용했다.

셋째는 언론의 설레발이다. 위의 사진에서는 '승공의 아성되길'이라는 헤드라인을 썼다. '북괘야욕을 분쇄해'라는 무시무시한 제목도 보인다. 이것이 1968년의 신문기사이다. 2009년의 기사는 어떨까?

향토방위 '아줌마'가 책임진다
"아줌마의 힘, 향토방위 거뜬해요"…女예비군 훈련 열기
듬직한 "향토방위대" 여성예비군
“시누이ㆍ올케 우리가족은 여성 예비군”
 ‘아줌마 부대’ 나라 지킴이 맹활약'' 

언론사에서 뽑은 제목들이다. 하나같이 예찬적이고 피상적이다. 이것은 신문을 읽는 소비자들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씁쓸하다.
자주국방과 여권의 신장으로 인한 향토예비군 창설 취지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것이 어떤 목적을 위해서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 아닌지는 의심할 필요가 있다. 역사상 향토예비군을 권력획득과 체제유지로 이용하지 않은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한국현대사 1호인 서중석 선생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를 참조했다. 여성예비군뿐만 아니라 현대사의 중요한 맥락을 기사나 사진자료, 통계 등을 통해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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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8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8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신정근 지음 / 사계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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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10종의 서로 다른 <논어> 책을 보았고 100번 정도 읽었다. 그래도 필요한 구절을 곧잘 꺼내 쓰지는 못한다. 내가 읽는 논어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남회근 선생의 알기 쉬운 논어강의(상,하)>(씨앗을뿌리는사람)과 <주주금석 논어>(현음사)인데, 전자는 논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여지와 중국 대륙의 역사를 한 노인의 이야기로 녹여내는 맛이 좋았다. 2권의 매우 지나치게 두꺼운 분량이지만(가격도 그에 대비하여 세지만) 내가 들인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았다. 후자는 문장 해석상에서 많이 도움을 얻은 책인데 한문학 교수의 자문을 듣고 구입해 지금까지 읽고 있다.


<논어>를 자꾸 읽게 되는 이유는 읽을수록 맛이 나고 생각해볼 여지가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사귐’도 마찬가지로, 한 번 보면 더 만날 필요도 없는 사람보다는 만날수록 재미있는 사람에게 더 끌리는 법이다.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사계절)은 하이퍼텍스트와 오픈텍스트의 웹2.0 정신을 동양고전에 시도한 재미있는 책이다. 하이퍼텍스트란 구절과 구절이 연결돼 있어서 비교해 볼 수 있다는 뜻이고, 오픈텍스트는 해석의 여지를 애초에 넓게 열어둔다는 뜻이다. 국문, 원문, 음을 병기하고 주요 구절마다 논술제시문과 논제를 도입한 다용도의 구성방식과 유가, 도가 등을 섭렵한 작가의 성실함은 어떤 독자든 이 책 한 권으로 논어에 다가감에 무리가 없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 책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전통적 해석 방법에 대한 마르지 않는 비판정신이다.

한문은 '문리'라고 해서 반복적으로 읽고 암송하면서 그 뜻을 통째로 외우게 되고, 그 범례가 '문법'을 앞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옛 사람들의 번역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병폐가 많았다. 논어의 편명을 앞자리 두 개를 따서 쓰는 부분에 대해서도 대체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한학자 선생님께 들은 바에 의하면 사학(斯學, 유학을 사학이라고 부른다)을 하는 사람들은 선인이나 스승, 선배의 저작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금기하고 있기 때문에 좀처럼 부딪치는 해석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논어책 한 권을 읽으면서 참신한 해석 4~5개 정도 얻으면 만족할 만한 수준이지만,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는 각 장마다 4~5개 정도의 참신한 해석을 만나게 되었다. 그 중에서 내가 10년 넘게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이 깨질 때의 시원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즐겁다.

시대마다 고전이 다시 번역되어야 한다는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만, 그 시대의 색채가 오롯이 담긴 번역일 때 이 말은 유효하다. 이런 저에서 우리는 2009년에 어울리는 논어책을 한권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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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03-26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번! 그래서 네가 뼈대 있어 보였구나.ㅋ
이런 책은 나도 읽어보고 싶네!

승주나무 2009-03-27 21:53   좋아요 0 | URL
읽을 때마다 달라요.. 함 읽어보시면 꼭 좋을 듯~
쉽게 쓰여져서 잘 맞으실 거에요~

2009-03-27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4-02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바로 보관함에 넣어봅니다.
어서 신선한 해석을 만나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