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사이트에서 '조선일보', '장자연'을 쳐보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조선일보를 조선일보라 부르지 못하는 언론사들. 언론사들이 간만에 '큰웃음'을 선사한다. 지난 3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장자연리스트에 조선일보 방 사장과 스포츠조선 사장이 포함되어 있다고 안다. 보고 못 받았나?"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이를 보도한 언론사가 거의 없다고 한다.
미디어스의 보도에 따르면  <오마이뉴스>와 <민중의 소리> <프레시안>만이 언론사와 언론사 대표를 직접 언급했다. <헤럴드 경제> <뉴시스> <이데일리> <아이뉴스24> <CBS> 등은 해당 언론을 ○○일보, XX일보 등으로 보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진짜 없는지 뉴스 검색창에 '조선일보', '장자연'을 쳐봤다.
일간지는 하나도 없고 미디어오늘이나, PD저널, 미디어스 같은 미디어 전문매체나 인터넷 매체만 보인다.



▲ 포털 뉴스검색창에서 '조선일보', '장자연'을 쳐보니 우리가 알 만한 일간지는 하나도 안 나오고, 미디어전문매체나 온라인매체의 기사만 나온다.


이번에는 XX일보를 쳐봤다. 우리가 잘 아는 언론사들이 이제야 얼굴을 드러낸다.

장자연 문건에 따르면 '당시 <XX일보> X사장을 술자리에 만들어 모셨고, 그 후로 며칠 뒤에 <스포츠XX> X사장이 방문했습니다'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 세계일보, 노컷뉴스


가장 일반적으로 보도한 유형이다. 그밖에 경향신문과 서울경제, 이데일리, 해럴드생생뉴스 등은 OO일보도 보도했다. 그것은 조선일보가 언론사에게 배포한 참고자료 때문이다. 국회 출입기자 등을 대상으로 작성된 '보도에 참고 바랍니다'라는 자료에는 "본건과 관련해,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을 보도하거나 실명을 적시, 혹은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을 보도하는 것은 중대한 명예훼손 행위에 해당되므로, 보도에 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 드린다"고 적시돼 있었다.

조선일보가 돌린 자료의 내용이 사실일까. 조선일보를 적시하면 정말 감옥에 가게 될까. 프레시안은 그것이 궁금했는지 변호사의 자문을 구하고 기사를 내보냈다. 한 변호사는 "이 의원의 발언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다퉈 볼 여지 자체는 없지 않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본회의장 발언을 보도하는 것 자체가 법에 걸린다는 식의 '입막음'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이종걸 의원도 변호사 출신이기 때문에 법적인 판단을 하고 대정부질의를 한 셈인데, 그는 <프레시안>과 대화에서 "그 분 정도면 공적 인물이기 때문에 사생활 부분에 대한 것이라도 프라이버시권이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면서 "특히 내 발언을 보도한 언론 매체는, 형법에 의해 면책될 수 있다"고 말했다.


촘스키의 '선전모델'로 본 주류언론 백태


▲ 노엄 촘스키의 <여론조작>에서는 현대사회의 언론이 점점 언론의 기본적인 기능보다 사기업화되고 있는 모습을 '선전모델'이라는 용어를 통해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선전모델(Propaganda Model)이라는 말을 처음 꺼낸 사람은 미국의 살아있는 양심이라고 추앙받는 노엄 촘스키다. 선전모델이란 언론의 ‘사회적 목적’이 국가와 사회를 지배하는 특권 집단의 경제적ㆍ사회적ㆍ정치적 의제를 대중에게 주입하고 옹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얼핏 보면 언론은 사회의 건강한 여론을 만들어내고, 권력자에 대한 비판기능을 소명으로 아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사회가 전반적으로 건강할 때의 일이다.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은 언론이지만, 병든 언론은 병든 사회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언론 탓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언론의 기본적인 기능은 대중에게 메시지와 기호를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개인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주고, 정보를 제공하며, 가치관, 신념, 행동규범을 지속적으로 심어주어 사회의 제도적 구조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는 것이 언론의 주된 책무다. 언론은 주제 선별, 관심 분산, 쟁점 설정, 정보 여과, 강조와 논조를 통해, 그리고 수용할 만한 전제의 범위 안에 논쟁을 제한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권력자의 이익에 봉사한다.
언론은 절대로 전위적일 수 없다. 전위적인 행위가 일반으로부터, 특히 권력자로부터 승인을 받은 경우에 한해서 언론이 입을 열기 시작한다. 삼성비자금 사건 당시 언론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모든 언론이 삼성으로부터 광고가 끊길 것을 두려워해 '삼성' 두 글자를 무겁게 생각했다. 하지만 일이 커지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닥치자 모든 언론들이 동시에 '삼성'을 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때도 삼성 두 글자를 두려워해 한줄도 보도하지 않은 언론사도 파다하다.

'조선일보 사장 발언 사건' 역시 이렇게 풀릴 가능성이 많다. 조선일보가 협박성 공문을 각 언론사에 전달했지만 모든 언론사가 조선일보를 거론한다면 일일이 대응하기는 힘든 노릇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죄수의 딜레마라는 묘한 상황이 있기 때문에, 대개는 조선일보의 위치에 있는 자가 승리하게 된다.

촘스키가 예로 든 사례 중 인도차이나 전쟁이 인상적이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은 끔찍한 양의 화학무기를 사용했는데 케네디 정부는 1961년과 1962년에 화학물질을 이용해 남베트남의 농경지를 파괴해도 좋다고 승인했다. 미국이 한 국가의 농경지를 파괴해도 될지 안 될지 판단하는 것은 너무 흔해서 의아해할 일도 아니다. 당연히 국제법 위반이지만 미국에게 그런 것이 통할리 만무하다.
1961년에서 1971년 사이에 미 공군은 600만 에이커의 농경지와 숲에 2000만 갤런의 비소계 다이옥신이 첨가된 농축 건조제, 즉 '에이전트 오렌지'를 살포했다. 뿐만 아니라 고성능 최루가스인 CS, 네이팜탄, 인화폭탄도 사용했다. 남베트남 땅의 약 13퍼센트가 화학 공격에 노출됐다. 뿐만 아니라 고무공장 30%, 맹그로브 숲 36% 등이 파괴됐다. 1967년 일본학술위원회 농업경제분과에서 작성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작전으로 인해 남베트남의 농경지 중 380만에이커 이상이 파괴되고, 농민 1,000명과 가축 1만3,000여두가 희생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기사를 보면 어이가 없다. 1990년대에 에이젠트 오렌지와 베트남과 관련한 기사가 많았는데, <뉴욕타임즈><워싱턴포스트><로스앤젤레스타임스><뉴스위크><타임>이 내놓은 기사 총 522개 중 농작물을 목표로 삼았다는 사실을 인정한 기사는 단 9건에 불과했다.

동남아시아가 아니라 미국이 포함된 아메리카를 보면 그 노골성이 더 짙다.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는 언론인 탄압으로 따지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잔인한 나라다. 언론인을 대낮에 광장에서 살해하거나 시체를 불태우기도 한다. 그 나라에서 언론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거나 '어용언론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나라는 미국의 소중한 우방이었다. 이에 비해 니카라과는 어느 정도 언론자유가 부여된 나라였는데 미국의 우방이 아니기 때문에 <타임>은 선전모델을 충실히 적용했다. 미국이 싫어했던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부는 비밀투표의 원칙을 지켰으며 투표행위의 증거로 신분증에 도장을 받으라는 강요를 하지 않았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야당을 투표할 뿐만 아니라 기권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타임>은 니카라과가 '호전적인' 산디니스타 정부가 "무시무시한 폭력을 독점"하고 있으며, "자유선거의 경합을 위해" 그들이 "손아귀의 힘을 풀지" 지극히 의심스럽다고 표현했다. 뿐만 아니라 "선거 참여를 강요하는 정도가 심하고,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배급표를 잃게 될까봐 두려워한다"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보도했다. 그래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니카라과가 정말로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기자와 국민들을 학살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정부나 재벌에 순응적일 수밖에 없다. 언론을 다루는 장치가 무려 수백 가지나 되기 때문이다. 광고주는 광고로, 정부는 정책으로 탄압할 수 있다. 제도언론이 점점 사람들의 신망을 잃어가는 것은 진실에서 멀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언론들이 점점 오웰리즘(Orwellism :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묘사한 비인간적인 권위주의 사회의 특징으로, 선전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체제를 가리킨다)의 신봉자가 되어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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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性일보 이종걸의원에 이어 '명예훼손'으로 블로거 협박?!
    from Green Monkey Blog** 2009-04-08 01:54 
    조性일보 이종걸의원에 이어 '명예훼손'으로 블로거 협박?! 조性일보 편드는(?) 니글루스의 공습경보, 정통망법에 당하다!! * 성(性)과 성(姓)도 구분못하는 XX일보의 이종걸의원 협박질 어제(6일)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이달곤 행안부 장관을 상대로 한 국회대정부질의 과정에서 '장자연 문건'에 나온 일간신문사 및 스포츠신문사 회사명과 이들 신문 대표 2명의 성씨를 폭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관련 내용을 이종걸 의원 홈페이지와 언론보도에서 확인하고 위..
 
 
 

매로 의자를 때린 선생님

김덕신 선생님...
이름을 절대 잊을 수 없는 선생님입니다.
엄마 손을 잡고 언덕을 오르고 나서 큰 학교에 지레 겁먹었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이 내겐 있었지요.
그때 처음 만난 선생님이 '김덕신 선생님'이었습니다. 죄 많은 제자라 찾아볼 노력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항상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천재적 인간은 굳건한 신경을 갖고 있지만, 어린아이는 나약한 신경을 지니고 있다. 전자에게는 이성의 중요성이 막대하지만, 후자에게는 감수성이 거의 심신의 전부를 차지한다. 그러나 천재성 또한 마음껏 되찾은 어린 시절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이제 튼튼한 기관과 제멋대로 축적된 재료들을 모두 정리해 주는 분석적 정신을 갖춘 어린 시절에 지나지 않는다.
- 보들레르, <꿈꾸는 알바트로스>

감수성이 심신의 전부를 차지하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내게는 나쁜 습관이 하나 있었습니다.
엉덩이를 들썩들썩거려서 자꾸 책상 옆으로 삐죽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몇 번의 주의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엉덩이는 말을 안 들어 다시금 책상 옆으로 나오곤 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이 수업을 하다 말고 엄한 눈초리로 몽둥이를 들고 제게로 다가왔습니다.
몽둥이를 들고 무서운 표정으로 나에게 오는 선생님에 대한 공포감. 아직도 아찔합니다.
선생님은 매를 들었지만 저는 매를 맞지 않았습니다. 매를 맞은 것은 다름 아닌 '의자'였습니다.
의자를 매로 때리며 "왜 자꾸 승주나무가 지적을 받게 옆으로 나오느냐"며 한참 의자에게 매질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나에게 매질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의자를 때렸습니다. 선생님이 의자를 때린 이유를 이해하는 데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선생님의 진심이 전해오고 나서는 그 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의 악몽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선생님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실명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선생님은 집으로 보내는 생활기록부에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승주나무는 수업시간에 딴 짓하고 장난을 잘 치는데, 자기 혼자 그러면 괜찮을 텐데 옆의 친구에게 피해를 주니까 각별히 지도를 하시거나 아니면 전학을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제가 선생님의 글을 보게 된 지는 몰랐지만, 어린 마음에도 마음에 상처로 남았습니다. 옆의 친구에게 피해를 준다는 대목이 특히 슬펐습니다. 나랑 같이 장난치며 사이좋게 놀았던 초등학교 3학년의 추억은 선생님의 생활기록부에 적혀진 글귀의 그림자로 인해서 약간 어두운 색깔이 되었습니다.


▲ 초등학교 입학식 전경(사진 : 오마이뉴스)


쓰레기통에 책을 버린 선생님

우리 어린이들의 학교 생활이 어떤지 아십니까. 제가 어렸을 때와는 달라져 있겠지요. 좋은 선생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선생님도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선생님과 처음 만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아이들이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과의 만남은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좋은 추억이든 그렇지 않든 초등학교 1학년때의 추억은 지금도 강렬히 남아 있ㅅ브니다.

이것은 제가 아는 분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처음으로 맞는 학급회의였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아이들 질문도 싫어하고 소란스러운 것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이 많은 여선생님이셨어요.

"머리가 똑똑한 아이는 설명이 끝난 다음에 바로 질문하지 않는다"고도 하고 "질문 많은게 좋은 게 아니다"라고 하면서 아이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원천봉쇄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충격적인 일이 연이어 있었습니다.

하루는 새 책을 나눠줬는데, 선생님이 일일이 나눠주지 않고 교실 뒤에 있으니까 한 권씩 가져가라고 했답니다. 아이는 수업이 끝나지 책 챙기는 걸 잊고 방과후 교실에 갔다가 아차 싶어서 다시 교실로 갔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셨다네요. 그래서 교과서를 쓰레기통에서 꺼내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이의 어머니는 정말 기가 막혀 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너무 심하게 한 것 같다"고 하더군요.

혹 아이가 선생님을 미워하거나 두려워하면 어쩌나 걱정 하면서 물었더니 다행히 선생님이 좀 이상했지만 괜찮다고 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합니다. 이제 아이와 선생님은 만난 지 1달이 되었고, 남은 시간은 버거울 정도로 깁니다. 
  
이 글을 읽은 다른 어머니는 선생님의 결벽증도 문제라고 하네요. 선생님이 워낙 깔끔하고 꼼꼼해서 그 집 딸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요. 그래서 준비물을 챙기는 날에는 온가족이 거의 비상사태라고 합니다.

학교란 거대한 권력의 성이고, 선생님들은 권력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교단은 높고 선생님의 매는 무섭고 학생과 학부모는 너무 약해 보입니다. 학교가 학원보다 인기를 잃고 교권이 붕괴되었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결국 학교란 '선생님과 학생이 만나는 장소'라는 원초적인 사실로 돌아온다면 이 만남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가슴아픈 사연을 들으니 갑자기 저의 초등학교 1학년 때 추억이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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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9-04-08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과 같은 생각인데 초등학교 일학년때 선생님이가장중요하다,,
저도 일학년 딸아이를 둔 엄마로써 많이 동감이 가요
류 담임선생님도 좀 엄하신 분인데,,,,걱정이 조금되기는하는데요, 아이는 좋아하니 다행이라고 생각을 해요,,

승주나무 2009-04-09 21:19   좋아요 0 | URL
선생님이 엄하신 것도 좋지만 사려가 깊으신 분을 만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려가 얕으면서도 엄하기만 한 선생님은 질색...

연두부 2009-04-0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딸아이 하나인데...올해 초등학교입학했어요...이래저래 아이도 우리부부도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조심 하고 있는데..너무 공감가는 글이에요

승주나무 2009-04-09 21:20   좋아요 0 | URL
초등학생 딸을 가진 부모님은 특히 무서울 것 같아요. 공감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무스탕 2009-04-08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으니 저도 초등학교(저희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렀죠 ^^) 1학년 담임선생님이 생각나네요.눈치없이 들러붙는 저를 딸래미라며 귀여워 해주셨었는데.. (선생님이 아들만 둘이셨어요)
찾아뵙지는 못해도 몇년전까진 풍월에 선생님 소식 들었는데 요즘은 들리는 소식이 없는걸보니 정년퇴직하셨나봐요.
오랜만에 저도 첫 선생님 생각도 하고 좋았습니다 ^_^

아이들을 귀찮아 하는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초등학교 선생님은요.
엄마들끼리하는 말중에 '저 선생님은 1학년용이 아니야. 1학년용이야' 라고 농담식으로 하는데 엄마들은 분명히 알아요. 다만 내 아이에게 피해가 올까봐 쉬쉬하며 말을 아끼는거지요.

승주나무 2009-04-09 21:20   좋아요 0 | URL
저도 국민학교 출신이에요. 너무 오래 돼서 모를 까봐 그냥 초등학교라고 했죠~~
저도 어떤 엄마분이 초등학생 아이의 선생님 이야기를 하자 이 생각이 미쳤어요.. 예전부터 쓰고 싶었던 주제인데 저도 그 분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갈 때 꼭꼭 약속해 - 교통안전과 학교생활 안전 어린이안전 365 2
박은경 글, 김남균 그림, 한국생활안전연합 감수 / 책읽는곰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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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가위에 손 잘릴 뻔했던 이야기

 
7월말에 출산을 앞두고 있는 예비아빠다. 아이에 관한 책들을 많이는 보지 못하지만 줏어듣는 게 많아진다.
특히 우려되는 게 아이들의 안전사고다. 아이 때는 멋모르고 놀았지만 지금 생각하니 집이나 학교는 흉기덩어리 같다.
책상 모서리나 문지방, 책이나 숟가락 하나같이 흉기가 아닌 것이 없다.

사내아이라서 그런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 끔찍한 사건사고가 많았다.
아직도 그 감각이 생생히 살아있는 유치원 때 사건인데, 2단짜리 여닫이문에 손을 집어넣었는데 친구가 문을 확 닫는 바람에 손이 크게 다친 적이 있다. 어린 마음에 손에서 팔까지 피가 낭자했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직도 문득문득 생각난다.
초등학교 때도 이에 못지 않은 사건들이 많았다. 

 
▲ 날카로운 도구를 가지고 배우는 과목 때 유독 사고가 많이 난다. 가위나 펜은 특히 위험한 도구다. 

그 중 가장 큰 피해(?)를 입힌 것은 가위에 손이 잘릴 뻔한 사건이다. 친구가 내 가위를 가지고 엿장수 놀이를 했는데, 가위가 필요한 나는 친구에게 가위를 달라고 손을 건넸다. 엿장수처럼 두 손으로 가위질을 싹둑싹둑하던 친구는 내 손을 보지 못하고 손에다 가위질을 해버렸다. 손이 2cm쯤 잘렸고 피가 흥건했다. 어린이라 악력이 세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지만 손이 잘린 것 같은 공포심에 질렸던 하루였다. 
 

▲ 남자아이들은 돌멩이로 곧잘 장난을 친다. 돌멩이싸움을 하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머리나 어깨 등에 맞으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


방과후에 친구들과 돌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내 친구가 무심코 던진 돌이 눈 바로 아래 관자놀이를 정통으로 때리는 바람에 피가 났던 적이 있다.
어른들이 했다면 하나같이 범죄에 가깝겠지만 아이들은 무심코 이런 일들을 저지른다. 나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의 손길


어린이 안전을 위한 공익그림책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것이다. 책은 그림도 별로 없고 딱딱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아이들과 놀 수 있는 안전 가이드북 같은 게 있다면 엄마들이 가장 큰 위안을 받을 것이다.
<책읽는곰> 출판사와 <한국생활안전연합>이 공동으로 펴낸 <어린이안전365>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인 <학교에 갈 때 꼭꼭 약속해>(박은경 글, 김남균 그림)은 어린이의 동선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각종 사고사례를 묶어서 예쁜 그림으로 표현한 어린이책이다. 집에서 학교에 가는 길까지의 길목과 학교생활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각종 사건사고가 사소한 실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골목길에서 운전을 하다가 고양이처럼 아이들이 휙 튀어나와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던 경험이나, 길을 가다가 멈추면 자신의 움직임에 맞춰서 걸어오던 사람이나 자전거가 방향을 잡지 못해서 사고가 날 수 있다는 내용은 실제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내용이다.
그 외에 횡단보도에서 손을 들고 건넌다든지 차가 멈추는 것을 보면서 길을 건넌다든지, 횡단보도 오른쪽에서 길을 건너면 사고위험이 훨씬 줄어든다는 세부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그림은 스케치북에서 갓 그려낸 연필화에 파스텔을 입혀서 친근하다. 컴퓨터그래팩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고 쓱싹쓱싹 그린 그림이 아이들에게 접근성을 높여준다.

길 건널 때 조심해라, 친구들이랑 싸우지 마라, 학교에서 장난 심하게 치지 마라 같이 추상적이고 따분한 충고만을 일삼던 부모님들은 이 책을 통해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위험에 직면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아이와 차분하게 학교생활과 일상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본다면 안전사고를 훨씬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학교에 갈 때 꼭꼭 약속해>는 그림책 전문 출판사 <책읽는곰>과 <한국생활안전연합>의 합작품이다. 자주 일어나는 어린이 안전사고 중에서 대표적인 사례와 예방법 등을 예쁜 그림으로 사실적으로 그려 부모님들의 걱정을 조금을 덜어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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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승주나무 > 정치인 유시민에게 종이컵 하나 선물한다

 
▲ 3월 30일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유시민과 독자의 만남이 있었다. 이날 진행자로 나선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욕을 많이 봤다.

유시민은 정치인이다

유시민은 정치인이다. 제도정치 경력 6년차의 휴업상태라는 상황 때문이 아니라 작가로서도 '정치인'이다. 3월 30일 오마이뉴스와 알라딘이 공동으로 주최한 작가와의 대화에 나온 유시민을 어떻게, 어떤 존재로 보아야 하는가는 나에게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여의도 정치에 대한 그의 반감이 어떤 모양으로 빚어지는지 궁금했고, '관조자'로서 이번 국면에서 그의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새 술을 담기 위해 유시민이 새 부대를 장만했는지 보고싶었다.

"대한민국, 이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유시민, 오마이뉴스 작가와의 만남에서)

이 말 어디서 많이 들어본 기억이 있다. 작가나 지식인의 말은 아니다.

이승만 정권 때의 일이다. 펜 클럽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분들을 모시고 조그마한 환영회를 갖게 된 장소에서 각국의 언론자유의 실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끝에 모 여류시인한테 나는 『한국에 언론자유가 있다고 봅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여자 허, 웃으면서 『이만하면 있다고 볼 수 있지요』 하는 태연스러운 대답에 나는 내심 어찌 분개를 하였던지 다른 말을 다 잊어버려도 그 말만은 3,4년이 지난 오늘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언론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중간사(中間辭)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언론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이만하면 언론자유가 있다고>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 자신이 시인도 문학자도 아니라는 말밖에는 아니된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소설가, 평론가, 시인이 내가 접한 한도 내에서만도 우리나라에 적지 않이 있다. - <창작자유의 조건>《김수영 산문전집》

말 한마디를 듣고 나서 나는 유시민이 너덜너덜한 정치인의 옷을 아직도 입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은 그가 사용하는 용어의 모호함에서도 발견된다. '지식소매상'이라는 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좌파 신자유주의'만큼이나 그 정체를 알기 어렵다. '지식인'과 '장사치'의 중간사쯤 될 것이다. 유시민의 위상은 지식인과 장사치, 정치인 중 어디에 놓여 있는가? 이런 용어의 모호함 때문에 얼마 전 된통 야단을 맞았다. 르네21에서 <지식의 대융합>의 저자 이인식 선생을 초청해 강연회를 할 때 나는 <과학윤리>의 문제를 물었다. 선생은 대뜸 "과학의 윤리 이전에 과학자의 윤리가 없기 때문에 그 질문은 사치스럽다"고 답변했다. 과학계 내부의 통제가 안 되고, 과학 언론이 살아서 과학의 모순을 밝혀내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서 황우석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선생의 말을 들으며 나는 과학계에 '과학자'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유시민은 '조어'가 아니라 '표제어'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유시민과 종이컵

홍대의 '홍콩반점'이라는 음식점에 자주 가는 편인데, 그 집은 서빙교육을 엄격히 시키는지 손님을 접대하는 요령과 폼이 완벽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언젠가 헛점을 발견했다. 볶음짬뽕은 현금으로 시키고 탕수육은 카드로 주문했는데, 볶음짬뽕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짬뽕'이 나온 것이다. 예측된 시나리오에서는 완벽하지만 예측을 벗어난 상황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유시민과의 간담회에서 공교롭게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달변의 유시민과 본의 아니게 난상토론을 벌이게 되었다. 내가 물었던 질문에 대해서 양비론으로 답변해서, 나는 처음으로 '재질문'을 했다.
질문의 요지는 특이하지는 않았다. 사상 최초의 역정권교체를 당했는데, 사상 최초의 정권재탈환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특히 2~30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20대가 50대와 정치성향이 비슷하다는 답변을 하며 은근히 20대를 깔보는 '꼰대근성'을 발휘했다. 그리고 30대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30대 후반이나 40대들은 싸워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헌법조항'의 소중함을 알지만 '어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식으로 답변했다. 사실 그는 2~30대에게 해줄 답변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종이컵'의 비유로 답변하고자 한다.
일회용 종이컵은 한번 쓰고 나면 다시 쓰기 무척 어렵다. 하지만 다시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20대는 박스 안에 담긴 종이컵처럼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다행히 30대 초중반은 일종의 '완충지대'라고 할 수 있다. 과외나 사교육 열풍이 그다지 심각했던 것도 아니고 싸워야 할 독재정권이 엄존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의 '자유'를 누릴 기회가 있었다. 이들이 새로운 종이컵이다. 자유를 누린 만큼 현재 상황에 대한 빚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유시민을 포함해서 386들은 한번 쓰고 난 종이컵이다. 종이컵에 커피를 부었든 떡볶이를 담아 먹었든 쓰고 난 종이컵을 잘 닦아야 또 쓸 수 있다. 겉으로 보면 잘 닦은 것처럼 보이지만 홈에는 아직도 떡볶이 자국이 남아 있다. 물을 넣어 마시면 떡볶이 냄새가 난다. 홈까지 아주 정성스럽게 잘 닦아서 '새 종이컵'으로 승화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쓰레기통으로 가야 한다.

유시민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참여정부 시절과 지난 10년의 민주적 성과를 낙관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래서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는 386의 상황을 최첨단으로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대에 대한 힌트가 들어 있지는 않다. 유시민의 책이 의미를 얻는 지점은 바로 거기다. 지난 시대에 대한 총정리이자 반면교사다.

감수성이 있는 사람들은 <후불제 민주주의>가 새로운 어떤 것을 말해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축 늘어진 남성이 되어버린 형님들의 '자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상징자본이다. 우리 시대의 지식인들이 대부분 빠져 있는 딜레마다. 그들은 시대를 바꿀 힘도 의지도 없고 다만 '지식'을 소비할 뿐이다. 그들의 지식을 사는 사람들도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나는 그의 책을 읽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스스로 맨땅에 헤딩하며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차가운 진리와 새삼 조우했다.


<페이퍼에 소용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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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정확한 집계가 어렵다. 다만 <제주4.3 진상조사위원회>가 국내외 자료와 현지인 제보 등을 망라해서 조사한 자료를 산출한 결과 14,028명이라는 값을 얻을 수 있었지만 으레 학살이 그렇듯 실종이나 비공식 학살 등을 따지면 이 값은 두 배 이상을 추정할 수 있다. 1950년 김용하 제주도지사가 조사해 밝힌 희생자는 27,719명이었고 한국전쟁 발발 당시 예비검속과 형무소 재소자 희생 3,000명도 이 안에 포함된다.
진상조사위원회가 밝힌 14,028명 중에서 78.1%인 10,955명은 토벌대에 의해 희생되었으며, 1,764명(12.6%)는 무장대에 의해, 1,266명(9%)는 공란에 의해 희생됐다. 토벌대란 당국을 말한다. 당시 제주도는 제헌의원 선거를 거부해 정부의 정통성에 상처를 주었으며 남북 단독정부 수립 과정에서 북한 정부에 의해서 배제된 기득권 2세들이 제주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희생이 더했다. 제주4.3의 참혹한 역사를 그림으로 승화한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서평을 4월 3일을 생각하며 다시 선보인다 - 편집자


"죽은 어미 위에서 젖 빨던 그 아이 잊을 수 없어"
[서평] 강요배가 그린 제주 4·3 <동백꽃 지다>



<제주4.3 60주년을 기념해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가 보리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당사자 34명의 증언을 제주 4.3 전문가 김종민 씨가 정리해서 그림과 함께 생생하게 당시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200-2"의 역사적인 의미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열렸다. 이때 총 의석수는 200석이었으나 2표의 무효로 인해 제헌의회는 198명의 국회의원으로 출범했다. 이 "-2"라는 숫자는 현대사에서 그리 조명을 받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 정체성에 상처가 된다는 점이었고,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정치인생의 오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부 당시에는 이 두 가지가 사실상 동의어였다. 이승만은 현대사에서 '굴종'이라는 선례를 남기며 권력을 누렸다. 자주독립을 위해 가산과 전 인생을 반납한 독립운동가와 그 자제들, 일제에 협조하여 가산을 지키고 권세를 누렸던 친일파와 그 자제들의 운명은 이승만이 미 군정에 굴종하며 친일 세력을 대거 재임용함에 따라 갈리고 말았다. 이와 같이 현대사는 '굴종'이라는 유혹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재벌의 편법, 탈법이 일반화되고 정치인과 공직자의 일상적인 부패상은 이 '굴종의 현대사'를 더욱 빛내고 있는 셈이다.

제주 북제주 갑ㆍ을 2개 선거구의 무효는 이러한 '굴종'에 이의를 단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었다.(이듬해 5월 10일 이 두 개의 상처(?)는 신속하게 다른 '굴종'들로 채워졌다) 이 "-2"라는 역사적 메시지를 던진 죄로 당시 제주 인구 30만 명의 1/10인 약 3만명이 죽었다. (제주 4ㆍ3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2003년 통과)) 선거철마다 주요 정당이 제주에서 경선을 시작하는 것은 비단 제주가 국토 하단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선거의 향배를 예측하는 캐스팅보드 역할을 오랫동안 자처한 제주의 민심은 그 기원이 대단히 오래 되었다. 예컨대 17대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의 전국 투표율은 48.7% 대 26.1%였다. 이 차이는 22.6%로 두 후보 사이에 한 명의 유력한 대선 후보가 들어갈 틈이 있을 정도였다. 제주의 투표율은 어땠을까? 이명박 후보 38.3% 대 정동영 후보 32.4%로 불과 6% 미만의 차이였다. 그나마 정치색이 덜하다는 서울도 53.1% 대 24.4%로 더블스코어 이상의 결과가 나왔던 때다. 제주도의 이 묘한 정치적 균형감각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제주 4.3을 말해주는 '세 가지 마음'


제주 4.3을 감성적으로 표현한다면, 이를 관통하는 세 개의 마음이 존재한다. 첫째, 5·10 남한 단독선거가 제주도의 거부로 절름발이가 되자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몹시 격분한 것으로 전해진다. 1949년 1월 12일 열린 국무회의 의결사항은 '제주도 특별소탕경찰대 1,000명 파견에 관한 건'이었는데, 이 문건에서 대통령의 유시 내용은 "미국 측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하나 제주도, 전남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拔根塞源)하여야 그들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며 지방 토색(討索) 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여 법의 존엄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였다. 그보다 한달 전인 1948년 12월에 서북청년단 총회에 직접 참석해 연설을 하고 서북청년단원들을 제주도로 파견하였고, 그 단원들이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볼 때 제주도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감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제주 4.3 전 영역에 걸쳐 가장 처참한 집단 학살과 초토화 작전이 자행된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3개월만인 1948년 11월 17일 이승만이 대통령령 31호로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한 즈음이다. 제주도에 내려온 서북청년단원이 "이승만 대통령의 허락 없이 어느 누가 재판도 없이 민간인들을 마구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겠습니까?"라고 증언하는 바와 같이 제주 4.3의 일차적 책임은 이승만에게 있다.

둘째는 서북청년단의 '증오심'이다. 일명 '서청'으로 불리는 서북청년단은 북한에서의 사회개혁 당시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상실하여 남하한 세력들이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반공단체였다. 따라서 이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되는자에게는 무조건적인 공격을 가하였다. 자신들의 터전을 없애버린 세력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품은 서청과 남로당의 적극적인 활동지인 제주도의 만남은 처참한 홀로코스트를 낳았다.

셋째는 제주도민의 공분이다. 제주도는 이승만의 반공국시 때문에 피해를 많이 본 지역으로 속하는데, 혹자는 제주 4.3이 '빨갱이들의 선동과 주민들의 동조'로 보고 <4.3특별위원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제주도민이 미군정과 당국의 행태에 공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주도민의 특이한 이력을 살펴야 한다.  

제주도가 척박하고 고립된 땅이라고해서 그 정신마저도 고립된 것은 아니다. 제주는 예부터 최후의 유배지로 꼽혔는데, 유배 온 양반들은 제주의 젊은이들에게 학문을 전수하는 일을 낙으로 삼았다. 때문에 유난히 제주도에는 유풍과 학식이 생활상에 고루 반영돼 있다. 일례로 국어학자 이기문은 일조각에서 발행한 <속담사전>에서 해방 이후의 중요한 업적으로 <제주도 속담 1,2>(진성기 편저)를 소개하며 사전편찬에 도움받은 바가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나 역시 어머니로부터 수십 년 동안 '해태(懈怠)하지 말라'는 훈계를 들었는데, 이는 '해이하거나 태만하지 말라'는 일반에서는 보기 드문 한자어이다.

해방 이후 미군정이 늦게 상륙한 이유도 있지만, 제주도민들은 그야말로 해방감을 가장 깊이 맛본 사람들이었다. 이때 남한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친일파에 대한 청산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치안과 정책을 수행하였다.

제주 4.3의 남상이 될 만한 사건은 1947년 3월 1일 제주 지역 곳곳에서 개벽 이래 최대 인파인 3만명 정도가 참여한 '3.1절 기념 제주도 대회'였다. 3만명이 운집한 것도 대단하지만 주민 6명이 죽고 8명이 크게 다친 '3.1절 발포 사건' 직후 이에 항의해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인 166개 기관ㆍ단체가 파업에 가세한 '민관 총파업'이 제주도민의 인식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사가 서중식 교수는 <동백꽃 지다>(보리)의 부록 논문에서 "제주도는 밭이 99%인데다 땅이 척박하여 소출이 적은 관계로 육지에 비해 계급 갈등의 소지가 미약했고 혈연 공동체적 요소와 사회경제적 성격으로 인해 도민들이 쉽게 단결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고 기록했다. 이 책의 자료2 <제주 4.3항쟁 일지>에 의하면 3.1절 발포 사건 이후 단행된 민관 총파업을 두고 경무부(지금의 경찰청) 최경진 차장이 "원래 제주도는 주민의 90%가 좌익 색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는데(161쪽) 이는 단선적인 사고가 아닐 수 없다. 단지 제주인들은 부패하고 굴종스러운 기득권의 부조리한 정책에 이의를 제기할 정도로 의식이 있었을 따름이었다. 이러한 마음들의 충돌은 제주 4.3이라는 필연적인 비극을 만들어낸 동력으로 작용했다.



강요배의 그림책 <동백꽃 지다>가 나왔다
 

올해로 제주 4.3 60주년을 맞는다. 그에 걸맞게 다채로운 행사가 제주에서 펼쳐진다. 출판에 업을 두는 사람으로서 나는 강요배 화백의 그림책 <동백꽃 지다>(보리)가 나왔다는 데 대해서 기쁨을 감출 수 없다. 책을 보자마자 밤새 삽화와 증언을 살폈다. 대학시절 익숙하게 보았던 그림들이 한 책으로 묶인 점이 좋고, '제주 4.3전문가 김종민' 씨가 발품을 팔아서 '당사자'들의 증언을 채록했다는 점도 좋다. 이 책은 1998년 학고재에서 낸 <동백꽃 지다>를 다시 낸 것인데, <동백꽃 지다>는 강요백 화백이 1989년부터 3년 동안 '제주 4.3항쟁'을 다룬 그림 50점을 1992년 발표한 전시회의 제목이다.


<머리에 총을 맞고 죽은 어미 위에 엎드려 젖을 빨고 있는 아이가 4.3의 처참함과 제주인의 처절한 생명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기영의 자전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실천문학사)에서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고"라는 말로 제주인의 이 같은 정신을 압축해서 표현했다>

 


 

 

 

 <난리통에는 어린아이와 부녀자 등 노약자가 최대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먹을 것이 없으니 젖이 빈 것은 당연하다. 빈 젖을 빨지도 못하고 아파하는 아이의 모습과 고개를 숙인 어미의 모습이 처절하게 다가온다>

 

 


 강요배 화백은 '기행'으로 더 유명한데, 재미있는 예화가 하나 있다. 바람과 풍랑이 잦은 제주도에서도 격렬한 비바람이 휘몰아치던 밤에 강요배는 붓과 캔버스만 들고 열 번도 넘게 바다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것은 파도와 비바람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위해서다. 현재 '민족 미술인 협회' 회장과 '제주 4.3 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소재는 종이, 펜, 먹, 캔버스를 가리지 않았으며 증언의 내용이나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선택했다. 역시 제주 민중의 일상사와 당시의 처지를 당사자들의 관점에서 생생하게 그렸다. 그래서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119쪽의 '젖먹이'와 133쪽의 '빈젖'은 당시의 처참한 일상을 고스란히 설명해 준다. '젖먹이'에 대한 증언은 김석보 씨(조천읍 북촌리)의 1998년 증언에 담겨 있다.


"사람들이 동요해 흩어지기 시작하자, 군인들이 사람들 머리 위로 총을 난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너댓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중엔 한 부인도 있었는데, 업혀 있던 아기가 그 죽은 어머니 위에 엎어져 젖을 빨더군요. 그날 그곳에 있었던 북촌리 사람들은 그 장면을 잊지 못할 겁니다." (118쪽)


제주어에 '속솜하다'는 말이 있다. 이는 '침묵하거나 아주 작게 말하다'는 뜻이다. 나는 제주 4.3이 발발한지 30년, 한 세대 정도 지난 1978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4.3이라는 것을 알고 최초로 어머니에게 물었던 게 스무 살이 되었을 때니까 일이 벌어진 지 50년이 지난 때다. 어른들은 그 당시의 일을 입에 담는 것을 철저히 금기시했고 그것을 내면화했다. 4.3의 기억은 제주 사람들의 일상습관을 바꿔버렸다. 어머니와 이모가 우연히 대화를 하는 것을 들었다. 별로 비밀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속솜하게 말했다. 이 장면이 두고두고 이상했다.

 비단 어머니와 이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제주 4.3에 속솜했다. 과거사의 진실을 밝히자고 열변을 토했던 참여정부도 역시 제주 4.3의 거대한 뿌리는 만지지 못했다. <나의 서양 미술사 순례>를 써서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가르쳐준 '재일 조선인 2세'이자 도쿄 케이자이 대학교 현대법학부 교수인 서경식 씨는 '추천하는 말'에서 "'4.3'은 알지 못해도 되는 사건이 아니며 알 필요가 없는 사건도 아니다. 4.3은 '알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무섭고 부끄러운 그런 사건인 것인다. 우리들은 자신이 무엇을 알지 못하는가를 알아야만 한다. 평화와 사람다움을 위하여"(9쪽)라고 말했다. 1987년 대한민국에 절차적 민주화, 형식적 민주화가 실현된 것에 머무른 것처럼 제주 4.3 역시 단지 '특별법'이 통과되었을 뿐 그것의 역사적 의미나 이 사건이 주는 메시지를 알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4.3 특별위원회 폐지'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것이다. 단지 제주인만의 문제, 피해의식적인 문제, 감성적인 문제, 빨갱이 문제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좀더 성숙한 관심으로 세심하게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환갑이 다 되었으니 '철'이 들 만도 되지 않았나?

 동백꽃 지다: 강요배가 그린 제주 4.3 상세보기
강요배 지음 | 보리 펴냄
제주 4ㆍ3 항쟁의 전 과정을 힘차고 간결한 필치로 되살린 강요배의 그림과 4ㆍ3을 겪은 제주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이 하나가 되어 처절했던 항쟁의 역사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동백꽃 지다>는 아름다운 평화의 섬을 피로 물들인 제주 4ㆍ3 항쟁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화집이다. 화가 강요배가 힘차고 간결한 필치로 제주 민중들의 투쟁과 처참했던 민간인 학살의 현장을 되살려내고, 여기에 4ㆍ3을 겪은 제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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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4-03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오늘이 4.3이군요. 죄송해요~
대학생 딸이 사회참여로 시위에 동참했는데, 자기 과에서 딱 세 명 참여했었대요.
빛고을에서 나고 자란 우리딸과 마산 친구와 제주 친구~~~
피흘림의 역사가 있는 곳에서 자라면 토양이 정신을 만들어가지요.
잊지 않고 기억하렵니다. 4.3 일깨워 준 페이퍼 고맙습니다!

승주나무 2009-04-07 17:31   좋아요 0 | URL
4.3이 돌아오면 항상 죄짓는 느낌입니다. 언젠가 이 죄를 갚을겁니다.
감사합니다~~

드팀전 2009-04-03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 되면 한 번씩 생각나는 노래입니다.

잠들지 않는 남도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

아 -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남도 한라산이여....

승주나무 2009-04-07 17:31   좋아요 0 | URL
저도 술취하면 자주 부르는 노래입니다.
단 옆에서 한때 운동권 선배들이 부추길 때만^^

릴케 현상 2009-04-03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지인이 신랑감을 구했대서 만나봤는데 다른 점에서는 보수적인(?) 회사원이신데 끊임없이 4.3에 관한 얘기를 하시더군요. 알고보니 제주도 사람이었어요. 그 약간의 부조화가 참 인상적이면서도 숙연해지는 게 묘하더군요.

승주나무 2009-04-07 17:32   좋아요 0 | URL
4.3에 관해서는 특수한 것 같아요. 예전에 4.3 연좌제 때문에 사람들이 해병대 많이 지원했거든요. 해병대라는 분위기상 우파가 되면서도 4.3문제만큼은 마음에서 올라오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마노아 2009-04-03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솜한 제주 사람들의 말 습관이, 우리 현대사를 표현해 주네요. '철 드는 게' 너무 힘이 드네요.

승주나무 2009-04-07 17:32   좋아요 0 | URL
철들기 쉽지 않죠. 철들지 않기도 쉽지 않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