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한복판에서 만난 철거촌


공덕동에 있는 친구네 회사에 놀러가려고 공덕역에서 내려서 서울 서부지방법원 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 한가운데 철거구역이 흉측하게 있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 한가운데 유리창을 깨고 철거라는 글자를 덕지덕지 써넣은 건물이 기분을 상하게 했습니다.

▲ 한 시민이 철거건물을 보면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 시민들은 거리에 오랫동안 서 있었을 철거건물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몇 개의 건물만 철거한 것이 아니라 이 구역 전체가 철거구역이었습니다.
나는 호기심이 작동해 구역을 빙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 철거구역 입구입니다. 한 양심적인 건물주는 헝겊으로 가려놓는 성의를 보였지만 이런 건물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시뻘건 스프레이로 X표시를 하거나 큰 글씨로 '철거'라고 쓴 건물이 대부분입니다.

▲ 조그만 집 한 채에 철거표시가 6개 이상은 돼 보입니다. 이 정도면 장난질을 해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 저 먼데까지 모두 철거구역입니다. 날마다 이곳으로 출근해야 하는 친구의 고초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우리동네 철거구역


▲ 우리동네 철거구역입니다. 저희 집 바로 옆에 있습니다. 한때는 헝겊으로 둘러싸지도 않아서 각종 쓰레기의 집합장소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나마 사방을 헝겊으로 둘러 쓰레기가 더 늘어나지는 않고 있습니다.

▲ 헝겊 안에는 대부분 건설쓰레기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 철거구역 전체 모습

1년쯤 화곡동에 살고 있는데 이사오자마자 앞집에 철거를 하고 건물을 세웠습니다. 석달 동안 공사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앞 건물이 다 세워지자 이번에는 옆의 건물을 철거했습니다.
나는 또 3개월 동안 소음 스트레스에 시달리겠구나 생각했는데, 건물이 다시 세워지지 않는 것이지 뭡니까?
나는 소음 스트레스를 듣지 않아도 되어서 공사를 좀 늦게 했으면 했는데, 1년째 공사를 하지 않으니 되려 쓰레기 스트레스 때문에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철거구역이 제 집 바로 옆이라 여름에는 음식물쓰레기 악취가 진동해서 힘들었습니다.
화곡동이 포함된 강서구는 뉴타운 공약을 내건 한나라당 의원이 당선된 곳입니다.
하지만 뉴타운은 포함되지 않았죠. 그래서 이 동네에는 유난히 많은 집이 철거되고 다시 지어지곤 합니다.

철거를 하고 다시 짓는 것은 자기 자본으로 하는 것이니 뭐라 할 수 없지만,
다시 지을 만한 여건도 되지 않으면서 철거부터 하고 보는 사람들 때문에 서울의 도시전경은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철거구역이 더 늘어나면 서울시가 '슬럼'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심히 우려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신경민 앵커가 진정한 저널리스트인 이유

지난 번 "MBC 직원이 말하는 신경민 앵커"라는 글을 통해서 신경민 앵커(왼쪽 사진, 사진은 MBC 제공)의 캐릭터를 묘사한 적이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신경민 앵커는 양보없는 합리적인 보수주의자"이다. 나는 신경민 앵커를 찬양하지 않는다. 인간적으로 그런 스타일에 애정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철저히 저널리즘의 관점으로 보면 신경민 앵커는 진정한 저널리스트이자 진정한 데스크다. 왜 그가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 이유를 들어보겠다. 만약 이유가 타당하다면 MBC 기자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집단행동을 하는 등 초강수를 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뉴스란 본질적으로 '보수성'을 타고 났다. 우리나라의 예를 들면 사간원(司諫院)이라고 해서 국가 기관에 속해 있었다. "조선 시대에, 삼사 가운데 임금에게 간(諫)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를 뜻한다. 태생적으로 언론이란 체제 순응적이며, 비판적인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다. 제대로 정치가 굴러가는 국가에서는 언관이 임금에게 대놓고 비판을 할 수 있었다. 체제 순응과 비판을 동시에 갖춘 기구라고 하더라도 모순될 것은 전혀 없다. 나는 '체제 순응'과 '체제 비판'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비판'이라고 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비판적 지지'를 뜻한다. 언관이 국가에 대해서 하는 비판은 철저히 국가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이다. 단지 짧은 순간은 따끔하지만 오랫동안 그 약효를 누리는 것과 같다. 이것을 동양에서는 명현 현상이라고 한다. "명현(瞑眩) 하다"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하다"는 뜻이다. 한약을 먹었을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한약이란 기본적으로 몸을 보위하는 것이다. 언론이 바로 한약과 같다. 만약 언론이 비판적 지지를 넘어 체제 비판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한약이 아니라 '독약'(毒藥)이 될 것이다.

서양의 사고방식도 다르지 않다. 노엄 촘스키는 <여론조작>(에코리브르)이라는 책에서 언론의 한계를 분명히 규정했다. 즉 언론의 기본적인 기능은 대중에게 메시지와 기호를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개인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주고, 정보를 제공하며, 가치관, 신념, 행동규범을 지속적으로 심어주어 사회의 제도적 구조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는 것이 언론의 주된 책무다. 언론은 주제 선별, 관심 분산, 쟁점 설정, 정보 여과, 강조와 논조를 통해, 그리고 수용할 만한 전제의 범위 안에 논쟁을 제한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권력자의 이익에 봉사한다.

이 부분에서 시청자 혹은 국민들은 많이 헷갈려 한다. 신경민 앵커가 제야의 종소리나 이명박 정부의 각종 정책이나 패착에 대해서 쓴소리를 했다고 해서 그를 전위적인 사회변혁가나 철학자, 진보적 지식인 등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정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오해하는 부분이다. 이런 오해가 '신경민 하차 문제'를 정파적인 시각으로 보게 만든다. MBC 기자회에서 들고 일어선 이유는 이 문제가 정파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증명하기 위함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신경민 앵커는 '저널리스트'에 제한돼 있으며 본인 역시 여기에 충실하다. "신경민 앵커는 진정한 저널리스트이다"라고 할 때의 어감은 긍정과 부정이 섞여 있는 질척한 성격이 된다.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만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해서 헛발질하는 결론으로 달려갈 뿐이다.


신경민 앵커 '하차일'은 한국 저널리즘의 '사망일'

이 때문에 신경민 앵커를 하차시키는 문제는 절대로 정파적인 문제가 아니라 '저널리즘' 본연의 문제다.
이것은 MBC가 저널리즘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중대한 문제가 된다. MBC는 저널리즘에 있어서는 자긍심을 지켜왔기 때문에 사실상 저널리즘의 죽음은 MBC의 죽음과 동의어로 이해될 수 있다.


▲ 영화 <굿나잇 앤 굿럭>의 한 장면. “SEE IT NOW” 의 전설적인 뉴스맨 머로는 회사와 정치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신이 할 말을 모두 다 했다. 2009년 한국의 병든 저널리즘에 시의성을 던져주는 영화.

나는 2009년 이명박 정부 하의 MBC와 MBC뉴스데스크, 그리고 신경민 앵커가 매카시즘이 만연한 1935년부터 1961년까지 미국의 메이저 방송사 중 하나인 CBS에서 뉴스맨으로 명성을 날렸던 실존인물 에드워드 R. 머로와 프로듀서 프레드 프렌들리가 제작했던 인기 뉴스 다큐멘터리인 “SEE IT NOW” 스튜디오와 비교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머로는 지적인 저널리스트로서 매카시즘의 한가운데에서 매카시 상원의원과 난상토론을 벌인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가 남긴 전설적인 말을 옮겨본다.

"나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지만 매카시즘에는 반대한다"

이것을 신경민 앵커의 상황에 맞게 고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나는 진보주의자는 아니지만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는 반대한다"

이것이 왜 이명박 정부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지 궁금하다. 그는 이명박 정부를 반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명박 정부의 부분적인 실정에 대해서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비판을 가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비상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평시업무'를 하고 있는 거다. 평시업무에 대해서 지금처럼 사퇴압력을 가해야 한다면 이명박 정부의 오합지졸을 증명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고 공멸을 피하기 어렵다. 이것은 대학 신입생이나 중고등학생들에게도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말인데, 대학 나온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니 참으로 암담하다.

신경민 앵커의 하차에 대해서 MBC 기자회가 강수를 두는 것은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가 만약 하차한다면 현 정권은 뿌리로부터 와해되는 단초를 맞게 될 것이다. 아직 현 정권이 저널리즘을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MBC든 KBS든 YTN이든 저널리즘의 '저'자라도 자신과 관련돼 있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정파의 문제로 이해하거나 이 문제를 막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저널리즘도 팔자를 다한 셈이 될 것이다.


[영상] 문제가 된 1월 1일 MBC 뉴스데스크 'KBS 제야의종행사 중계 방송 비판' 클로징 멘트
 


27일 MBC 뉴스데스크 클로징 멘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2008년 12월 아기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한 사진. 앞으로 100일이면 아기와 만난다.

'꿈을 꾸는' 것과 '꿈을 짜는' 것

7월 24일 아기 아버지가 된다. 하지만 직장을 그만 두었다.
그것은 꿈 때문이다. 누구나 꿈을 꾸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즈음에는 꿈을 접고 현실에 뛰어들기 마련이다. 이런 아버지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무책임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꿈을 꾸는 것과 꿈을 짜는 것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꿈을 꾸는 단계는 추상적인 사고의 단계다. 어떤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구체화되지 않은 것이다. 꿈을 꾸는 단계에서는 별로 나쁠 것이 없다. 어린이들이 행복을 계속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꿈을 끊임없이 꾸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을 짜는 단계'는 이와는 다르다. 그 꿈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고 한계 상황은 무엇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판단해야 한다. '짜는 것'이라는 말 속에는 건물을 짓는 것과 같은 '구조'가 담겨 있다.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는 이유는 '꿈을 짜는 것'을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검증된 내용이다.

"사람들은 생각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다 할 것이다" - 레이놀드 경

사람들이 심사숙고하고 꿈을 짜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단지 귀찮기 때문만은 아니다. 심사숙고 끝에 얻어지는 결론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숙고를 하고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은 그 위험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을 심리학적 용어로 '일관성의 법칙'이라고 한다. 꿈을 아무리 정교하게 짠다고 하더라도 세상살이에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고, 뜻한 바가 모두 실패할 수 있다.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기까지 <드림위버>(다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 <드림위버>('꿈을 짜는 사람들'이라는 뜻)를 통해 나는 나의 꿈이 제대로 짜여졌는지 검증할 수 있었다. 구체적인 계획과 경험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도움을 받지 못하지만, 비전이나 가치, 논리적 결함 등은 충분히 검증 가능했다.


매번 새롭게 만들어지는 '나'가 있을 뿐이다

프리랜서로 일을 해보고 직장인 생활도 해봤지만, 가장 안정적인 것은 역시 고정 수입이 나오는 직장이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 강제적으로 해야 할 것들이 많다. 직장생활 자체가 고문은 아니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듯 꿈에서 점점 멀어지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철학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나'는 한곳에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한 곳에 있다고 생각한 나를 제외하고 모든 것들은 변화한다. 똑같은 물이 다시는 자기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듯, 인간의 세포 역시 3주라는 생명주기를 가지고 있다. 1분에 약 3만 개의 세포가 죽는다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전혀 다른 세포로 이루어진 '나'만 남아 있다. 이전의 세포에 둘러싸인 '나'와 전혀 다른 세포에 둘러싸인 '나'가 같은 나가 될 수 있을까?



19세기 프랑스 생리학자 피에르 플로랑은 수술시 사용하는 마취제에 대해 중요한 문제점을 발견했다. 마취제를 통해 환자가 마취상태가 되었을 때 그 기간 동안에는 기억이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깨어났을 때 고통도 기억하지 못한다. 마취 상태에서의 나는 마취 이후의 나와 같은 '나'인지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다. (<드림위버> 76쪽)

"부모님은 우리에게 나가세나라는 이름을 주셨지만 그것은 일반적으로 공통으로 사용하기 위한 용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자아란 없기 때문입니다."(<드림위버> 78쪽)

이름이란 단지 기호일 뿐 이것이 자아를 설명할 수 없다. 자아란 그만큼 우주적인 존재다. 우주적인 존재를 가지고 있으면서 항상 새롭게 변화하는 존재이면서 한곳에 머무르려고 하고, 자신의 존재를 제한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슬픈 특성이다. 얼마 전 노숙자를 대상으로 한 '희망의 인문학 강좌' 소식이 사람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한 적이 있다. 노숙자들은 인문학 강좌를 듣고 나서 삶의 자신감을 찾았다고 한다. 한 노숙자는 "겉으로 나의 환경이 바뀐 것은 없지만 내면은 자신감으로 넘쳐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우주적 존재에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깊은 성찰과 경험을 통해서 꿈을 짜는 단계에 진입하면 현실과 가까워진다.

꿈을 짜기 위해 나는 적어도 10년 이상 준비를 했고 최근 3개월 동안 세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위험에 대한 시뮬레이션도 끊임없이 돌려 보았다. 그리고 나서 "됐다"는 생각이 든 순간, 행동에 옮겼다. 꿈을 짜는 것은 '철학'과는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학을 통해서 '짜는 행위'가 의미 있는 행위인지, 논리적 결함은 없는지, 비전은 있는지 검증할 수는 있다.

이번 결단에서 철학에게 또 한 번 큰 빚을 졌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해한모리군 2009-04-09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럭무럭 자라고 있네요 ^^
응원합니다. 제게도 힘이 되네요.
저도 오월이면 백수가 되고 여행을 홀로 떠나는데 많이 두렵습니다.

승주나무 2009-04-09 21:17   좋아요 0 | URL
네.. 최근의 사진을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 있는 게 저 사진밖에 없어요.. 힘이 되었다니 기분 좋네요~~

드팀전 2009-04-09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이 잘 짜여지길...아이도 건겅하게...^^

승주나무 2009-04-09 21:18   좋아요 0 | URL
드팀전 님~ 감사합니다. 나를 지켜봐주시는 목격자이자 증언자이신...^^

글샘 2009-04-09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됐다"는 순간을 넘기셨군요. ^^
정말 잘 짜여진 꿈이 실현되시길...
아기와 꿈을 함께 펼치는 봄이 되시길...

승주나무 2009-04-09 21:18   좋아요 0 | URL
"아, 됐다"는 순간이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착각인 상황을 몇 번 그려 보았고 괴로웠습니다. 이것이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착각이라도 할지라도 많이 괴롭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격려 감사합니다~

마늘빵 2009-04-09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마을에도 속속 결혼소식과 아이소식이... ^^ 전에 축하드린거 같지만 다시 한번 축하해요. 그리고 용기와 과감한 결단에도 박수를! 저도 고민 중입니다. 가랑비 젖듯 계속 직장인화되어가는 제 모습을 보고, 힘이 점점 빠지고 있거든요. -_- 또 한번의 내 안의 합의점을 찾아야 할 시기입니다.

승주나무 2009-04-10 00:09   좋아요 0 | URL
네.. 멜기님은 걱정 안 되는데.. 아프 님하고 라주미힌이 좀 걱정되긴 해요~~ 라주는 사정권을 훨씬 벗어났으니.. 술먹을 기회도 마땅찮고 ㅎ
합의점을 찾느냐 투쟁을 하느냐 그것이 문제이지만 잘 하시리라 생각해요^^

2009-04-10 0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0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 노무현 공식 사이트 <사람 사는 세상>의 참여마당에는 4월 8일 현재 평소보다 10배나 많은 사람들이 글을 남겨 "노무현 돈 받았다"에 대한 사회적 충격을 보여줬다.


노무현 대통령 사이트 평소 10배 방문글 기록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의 <참여마당>에는 4월 8일 현재 1100명이 글을 남겼다. 이는 평소의 10배나 되는 수다. 평소 참여마당에 글을 남기는 사람은 100명 남짓이다. 노 전 대통령이 금품수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글을 남긴 4월 7일과 8일 양일에만 1800명이 글을 남겼다. ("사과합니다"라는 글에는 댓글이 1천개도 넘게 달렸다)글은 변함 없는 지지와 비난에서부터 알 수 없는 감정과 좌절감, 혼란 등을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때문에 4월 8일인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에서 "‘그게 무슨 잘못이냐?’ 또는 ‘정치적 탄압이다.’ 이런 취지의 글을 올리신 분들이 있고, ‘잘못은 잘못이다.’ 또는 ‘좀 지켜보자.’ 이런 글도 있습니다. 그리고 간간이 논쟁이 있고, 싸움도 있습니다."라고 밝혀 홈페이지의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그리고 "냉정한 평가를 한 글에 대하여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글을 올리는 것은 욕을 먹을 수도 있는 일일 것입니다. 보다 신중한 판단이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라는 당부의 말도 덧붙였다. 

 한편 참여정부 당시 비판적인 논조를 보였던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강력한 어휘를 사용하여 이번 사태를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검은 덫에 걸린 참여정부, 도덕성 파탄났다"는 헤드라인을 뽑았고, 한겨레는 여기서 더 나아가 <형님 이어 부인까지, 노무현 ‘패가망신’>이라고 썼다가 다시 <형님 이어 부인도…노 전 대통령 도덕성 ‘와르르’>로 제목을 고쳤다. 경향신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격변기와 '도덕성'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고, 한겨레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씨의 혐의를 파고들었다.

국가 예산으로 모든 활동이 뒷받침되는 청와대 안주인으로서 기업인한테 수억원의 돈을 받은 것은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도덕성에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기게 됐다. 그동안 나온 측근들의 비리 혐의는 노 전 대통령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부인 권씨의 행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남편의 이러저러한 정치활동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빌렸다’는 주장은 국민에게 설득력이 없다.
-한겨레, 기사 일부


열혈 노사모였던 시민들의 반응

<사람 사는 세상>에서도 알 수 있듯 노무현 지지자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도덕성이 있는 대통령으로 알고 있었는데 전 대통령과 다름 없는 사람이라는 배신감과 정치인들은 다 그저 그렇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악당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신이 되기도 했다. '사람 노무현'에 대한 차분한 평가가 아쉬운 하루였다.

그러던 중 노사모 출신의 시민들과 이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하게 되었다. 30대 초반, 40대 중반, 50대 중반 연령층이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30대, 40대, 50대로 통일함) 30대는 믿었던 한 축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고 허탈해했다. 특히 시기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50대는 시기란 현 정부에서 정하는 것이지 우연히 찾아온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유시민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3월 30일 오마이뉴스에서 진행된 작가와의 만남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며 정권교체 후 으레 있는 사정작업으로 평가했으며, 일정표를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40대는 '부인'을 거론한 부분에 대해서 분개해 했다. 대통령 경선 당시 이인제 후보에게 권양숙 씨 부친의 사상 문제가 거론되자 "그 문제 때문에 부인과 헤어져야 한다면 나는 대통령 안 하겠다"고 말했던 노무현을 기억하는 것 같았다. 부인이 돈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왕 벌어진 일이라면 본인이 모두 안고 가야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50대는 "노무현에 대해서 인정할 것은 '사실'을 말한다는 사실이다. 부인이 관계돼 있기 때문에 부인을 거론한 것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노무현은 지는 싸움은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는다"며 전략가로서의 노무현을 회상했다.


"15억원이 정치자금의 기준이 되었다"

1997년 대법원이 추징한 비자금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533억원, 노태우 전 대통령이 2097억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현재 5억원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받은 돈은 15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연관된 금액이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기준이 다음 정권에도 이어질 것이란 점을 예상할 수 있다. 노사모 회원들도 이것이 성과라면 성과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부패'의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이 기준은 가혹한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정치적 되치기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2004년 탄핵국면에서는 역풍으로 무수한 원내의석을 잃어야 했고, 행정수도 이전과 대연정, 개헌 국면에서 한나라당은 여러 번 씁쓸한 패배를 당했다.

이번 건의 경우도 한나라당과 정부는 바싹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사정의 칼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하는 일이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잘못 건드렸다가는 어떻게 역풍을 맞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15억원을 받은 사실은 무혐의로 인정해 조사하지 않기로 했다.

50대는 "이 문제는 언젠가 털고 가야 했는데 오히려 잘됐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한나라당과 정부가 이 문제를 털어낸 것이 그들에게 유리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불리할 것 같다는 예측도 내놨다. 그리고 대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이 사태를 관망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개인적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면서 언론이나 국민들이 '인간 노무현'이 아니라 생명 없는 상징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라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도덕성 문제에 대해서 지나친 결벽성을 가지고 있다. 도덕성이란 감정이 개입되는 것이고 지고지순한 도덕성이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고지순한 도덕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권을 잡은 사람에 의해서 짓밟힐 수도 있고 더러운 물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그러면 지고지순함이란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지나친 자조와 지나친 비난과 지나친 신뢰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국 사회 전체를 유령처럼 떠다니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김민기 1집 앨범의 타이틀 표지. <친구><길><아침이슬> 등의 노래가 특히 인상적이다.
 

시대가 간절히 원하던 노래, 노찾사와 장기하가 통하다


시대가 간절히 어떤 한 노래를 찾게 만드는 때가 있다. 말을 하지 못하게 하고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면 할수록 간절함은 더하다. 노래를찾는사람들(노찾사)는 이미 한 시대다. 어떤 노래가 이들의 서정을 따라갈 수 있을까? 스튜디오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진 서정이 아닌, 이웃들의 애환과 불만을 잘 담은 노래들은 이미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가 됐다. 노찾사는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사람들에게로 구전됐다.

노찾사가 왕성하게 노래를 짓고 활동하던 시기에서 약간 비켜갔던 시기에 태어나고 살았던 나는 그것이 '노찾사' 노래인지도 모르고 무수히 따라 불렀다. 특히 운동권 선배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잠들지 않는 남도>나 <임을 위한 행진곡>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같은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투쟁가' 중에서도 유난히 입에 착착 달라붙는 노래는 죄다 '노찾사' 노래였다.

'운동권 선배가 후배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노찾사 노래를 많이 불러야 한다'는 속설도 있었다. 대체로 노동가와 투쟁가는 과격하기 때문에 새내기의 감성을 자극하지 못하는데, 감수성이 넘치는 노찾사 노래를 들려주면 곧잘 따라부르고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선배들은 노찾사 노래책을 따로 들고 다녔다. 노찾사는 이렇게 대학가에서 곧잘 '악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TV나 연극에서 그때 그 시절을 환기할 때면 나오는 <일요일이 다가는 소리> 역시 노찾사표 노래다. 통기타를 치고 목로주점에 앉아 장발으르 늘어뜨리고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에서 어김없이 노찾사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 우린 노래 하나로 그 장면의 시대적 배경이 1970년~1980년대임을 알 수 있다. 

최근 현실은 노찾사가 탄생하기 직전의 상황과 많이 닮아 있다. 그것은 지금 불고 있는 '장기하 현상'을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음악을 듣는 형식은 레코드나 CD, 테이프 등에서 컴퓨터 음원다운으로 바뀌었지만, 리메이크와 복고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비슷하다. 이 현상을 주목한 시사IN>은 1968년과 2009년의 유사성을 분석했다. 1968년 즈음은 그야말로 1960년대 대중문화가 온통 복고와 퇴행으로 치닫던 때였다.


▲ 노찾사 공연 장면


영화계에서는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버림받은 미혼모, 아이 버린 죄 많은 어미의 눈물이 극장을 뒤덮었다. 신파의 부활이었다. 대중가요계에서는, 미8군 출신의 세련된 팝이 주도하던 전반기와 달리, 1965년부터 청승스러운 이미자의 트로트가 인기를 모으더니, 1967년부터는 배호가 남자 트로트를 주도하면서 끈적한 바이브레이션으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트로트의 부활이었다.
- 시사IN 81호, 이영미 "'막장' 한복판에서 새 샘물이 솟는다" 일부

대중예술 평론가 이영미는 앞선 글(시사IN 81호))에서 대중예술계가 복고와 퇴행으로 치닫는 때는, 대개 경제와 정치에 희망이 없는 시기였다고 분석했다. 박정희의 무리한 독재와 계획경제 기간이 끝나 이농민과 도시민들은 빈곤층으로 전락했고 권력은 부패에 젖어들었다. 대내외적 위기상황은 문화계에 복고와 퇴행이라는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이영미는 '그러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중예술계가 복고와 퇴행에 빠져 있을 때, 전혀 다른 곳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통기타와 청바지가 대변하는 청년 문화가 1968~1970년 즈음까지 뚜아에무아·트윈폴리오·한대수 등으로 이어졌고, 1970년을 넘어서면서 텔레비전의 인기 판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노찾사도 이런 분위기에서 탄생했고, 현재의 '장기하'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 20대는 장기하라는 가수를 통해 드디어 '입'을 얻었고, 노찾사와 같은 오래된 '입'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지금 386과 20대는 장기하의 노래도, 노찾사의 노래도 함께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김민기의 노래에는 유독 '길'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제목이 많다. 이번에 선보일 <노찾사, 김민기를 노래하다>에는 <새벽길><길><천리길>이  포함돼 있다. (그림은 이희택의 연필 드로잉)



가요계의 '백석, 정지용'.. 노찾사의 뿌리 '김민기'를 찾아서

백석과 정지용은 월북 혐의를 받고 있는 작가라는 이유로 주옥 같은 작품들이 '판금'이라는 끈에 묶여 있었다. 이 작품들이 세상에 나오기 시작한 것은 노태우 정권이 끝난 이후의 일이다. 이 때 김민기의 작품들도 함께 쓸려 나왔다.  

시대를 대변했던 얼굴이기에 권력이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다. 그래서 김민기를 '노래하지 않는 가수'라고 부른다. 잘 알려진 프로필을 따라가다 보면 국민적인 애창곡 <아침이슬>의 작사작곡자요,공연기획자요,현실변혁 운동가 김민기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6.25 전란에서 아버지 없이 태어난 10남매의 막내, 자신보다 너무 크고 무서운 손 위의 형들과 누나들이 직장이며 학교로 가버리고 나면 혼자 텅 빈 집을 지키며 막대기로 마당에 그림을 그리던 외로움과 공포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꼬마 김민기를 만나게 된다(김민기의 프로필, 유년과 관련해서는 장석주(시인, 문학평론가)가 쓴 글 <노래하지 않는 가수, 김민기>를 참조).

김민기의 음악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의 뿌리입니다. 1984년, 노찾사 1집 음반을 내놓은 장본인이 바로 그였습니다. 그의 노래들은 줄곧 노찾사의 고향과도 같았습니다. 김민기의 음악은 대중음악의 한 분수령이자 대한민국 민중가요ㆍ저항가요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 <노찾사, 김민기를 노래하다> 소개글 일부

김민기에게 큰 빚을 진 노래문화집단 '노찾사'가 오는 10일과 11일 서울 홍익대 앞 롤링홀에서 '노찾사, 김민기를 노래하다'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한다. 특히 서울대 미대를 다녔던 김민기의 내적 자아를 탐색하기 위해 서양화가 이택희 화백이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흑백으로 이루어진 이택희의 연필 드로잉은 김민기의 인생 여정을 생경하면서도 기묘한 분위기로 예민하게 그려낸다. 호흡이 짧고 얇은 인상을 지닌 토막들이지만 그 하나 하나 강렬하고 단단한 인상을 뿜어내며 흑백의 색채는 흑, 회색, 흰색의 경계를 넘나든다.

적막한 느낌, 금속성의 질감, 모든 색채를 침묵 속에 삼킨듯한 색상들이 단출한 형상을 깊이 품어 안고 있다. 이는 청춘의 대부분의 시간을 감시와 탄압 속에서 보내며 노랫말 하나하나를 수놓듯 정성을 들였던 김민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하다.

이번 공연 내내 영상으로 함께할 이택희의 연필 드로잉을 통해 김민기의 심경으로 다가가려고 시도해도 좋을 듯하다. 


※ 이번 공연의 티켓은 인터파크에서 인터넷 예매로 가능하며, 예매 시 2만2000원, 현장 구매시 2만5000원이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노찾사 홈페이지와 노찾사 커뮤니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노찾사는 이번 공연을 위해 배포한 소개글에서 "
김민기의 음악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의 뿌리"라는 사실을 밝히며 공연의 취지를 설명했다. 노찾사의 '뿌리찾기'는 비단 한 노래단체를 떠나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09-04-09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찾사라구? 난 오히려 '산울림'의 21세기 버전이란 생각을 했는데.
암튼 장기하 매력있어.^^

승주나무 2009-04-09 21:21   좋아요 0 | URL
이 글 쓰려고 어제 밤새 김민기, 노찾사 노래 들었어요.. 잠도 안 자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