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삼국지로, 좀 지나서는 사기열전으로, 지금은 전국책으로 권모를 좀 익혔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요즘은 특히 내게도 '권모'가 좀 필요하다. 속지 않기 위해서는 '속이는 것에 대한 이론'을 알고 있어야 하니...


이참에 권모에 대한 책을 좀 소개할까 한다.


오리지날 북으로는..


위에 소개한 삼국지나 사기열전을 다 알 테고..

 

 

 

 

 

 

 

 

 

내가 읽은 가장 인상적인 삼국지는 40년도 더 된 '정음사 판본'이다. 큰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의 아들인 최영해씨가 만든 출판사가 '정음사'라는 곳인데, 헌책방에서 어렵게 구해서 읽었다.

그 다음으로는 황석영의 삼국지가 '문학적'이고, 감동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삽화가..

이문열의 삼국지는 너무 말이 많았다. '논술'을 위해서는 좋을 것 같다. 하지만, '평역자' 주제에 원문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게 의분을 자아냈다. 차라리 장정일처럼 '새로운 삼국지'를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장정일은 '새로운 삼국지'를 쓰기 전에 삼국지에 대한 방법론을 먼저 썼다. 나는 삼국지 대신 방법론을 읽어보았다. 가장 첫 번째 권의 제목이 '홍건기의'라는 것은 몹시 상징적이다. 유비, 관우, 장비가 홍건적을 몰살하는 장면은 지금 보아도 몹시 좋지 못하다. 민중의 힘은 오늘날의 '여론'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읽어보지 못한 장정일의 '삼국지'를 권한다.

 

 

 

 

 

 

삼국지 이야기는 이쯤해서 정리하고..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그 다음으로 추천한다. 이것은 '권모' 중에서도 '중급'에 해당하니, 잘만 본다면 세상 속고 사는 일이 드물 것이다. 이것도 두 가지 판본을 추천할 만하다. 하나는 김원중 교수의 '을유문화사' 판이고, 하나는 '까지' 판이다. 참고로 김원중 교수는 두 판본 모두에 관여했다.

 

 

 

 

사기열전 원문을 3년간 읽었던 경험으로 이야기하자면, 을유문화사판을 추천한다. 을유판은 현대어로 번역이 깔끔하게 잘 돼 있다. 하지만 원문을 대조하면서 읽는 분에게는 '까치' 판본을 함께 권한다. 까치판은 '주석'이 몹시 상세하다. 옛 제도와 격식 등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해설서다.

 

 

 

 

허나 중요한 것은 '열전'은 '사기'의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본기와 세가를 빼놓을 수 없다. 본기와 세가를 빼놓고 사기를 읽는다면 3~40%밖에 얻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사기의 본기도 김원중 교수가 수고해준 끝에 을유판본이 나온 것으로 안다. 까치 판본은 기획할 때부터 나왔었다.

 

 

 

 

 그리고 '사기열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고 고우영 화백'의 만화 십팔사략을 강추한다.  십팔사략은 아주 먼 옛날부터 있었던 역사서를 열 여덟개의 장으로 짬뽕시킨 역사책이다. 고우영 만화의 멋과 재미를 아는 사람에게는 두말이면 잔소리겠다. 그냥 보라, 재미있고 유익하다. 만화 학습서의 개념을 발전시킨 위대한 만화가이다. 옌벤 출신의 작가..

 

 

 

 

다음에는 육도삼략과 전국책, 국어가 있다.

육도삼략은 '강태공'으로 유명한 '태공망'이 주나라 건국의 제왕인 '무왕'에게 '은나라 정벌 공략법'을 코치해준 내용을 담은 책이다.

 

 

 

 

내가 읽은 것은 범우사판인데.. 홍익출판사의 판본은 원문이 병기되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아는 사람은 '손자병법'보다 좀 더 기풍 있는 병법서로 이 책을 추천한다.

그리고 다음은 전국책과 국어이다.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이 책이 번역되지 못해서.. 원문만 복사해놓고.. 간간히 읽다 말았다. 하지만, 신동준이라는 분이 열심히 번역을 해준 덕에 '인간사랑' 출판사에서 출간되었고, 한길 '대단한 책'에서는 다른 분이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출판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검색하면 나오겠지 모..

 

 

 

 

전국책은 '유향'이라는 사람이 쓴 책으로 주로 '전국시대'의 종횡가를 다뤘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외교관이라고 할 수 있고, 유세가라고도 부른다. '국어'는 그보다 앞선 '춘추시대'에 활약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들은 '사기열전'의 원류가 되므로, '고급'에 해당한다. 특히 역자는 '춘추전국시대'라는 시대구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단순히 역사가들의 편의를 위해 나눠놓은 것은 학문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서문을 읽어보기 바람. 서문이 너무 좋아서 워드로 다 옮겨 놓았다. 읽기가 버겁다면, 서점에서 살짝 '원문'만이라도 읽기를 권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외교의 시대에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인 것 같다. 긴박감 넘치기로는 '전국책'이 더할 것이다.

한비자의 '한비자'도 우리 '권모가'에서는 필독서로 통한다. 마끼아벨리도 유명하다지만, 제대로 안 읽어봐서 잘 모르겠다.

 

 

 

 

한비자는 중국의 천하통일에 1등 공신이지만, 친구인 '이사'의 모함에 걸려 요절한 불행한 인물이다. 특히 그는 말더듬이었지만, '글'에는 대가였다고 한다. 그가 '법가'의 체계를 확립해 놓았다. 그로부터 중국의 '중앙통치'의 '치'는 시작한다.

그의 글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내 회사의 한 친구의 이야기와도 상통하는데, 혈연을 통해 갓 업무를 파악하는 '원장'과 일 년 가까이 회사에서 구른 친구의 이야기이다. 원장은 원장이므로, 지시를 하기는 하는데, 잘 알지 못해 그 친구는 답답해하고.. 앉혀서 1~2시간 동안 설명을 해 보았지만.. 깜깜.. 요즘은 서먹하다고 한다. 한비자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에 여덟 명의 현자가 있어, 옳은 여덟 가지 제안을 하지만, 왕에 의해서 모두 처형되었다. 여덟 명의 '간신'이 있어서 달콤쌉싸름한 제안을 하지만, 여덟 간신 모두 처형되었다. 그들이 하는 열 여섯 가지의 말은 그 자체로는 모두 쓰레기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몹시 인간적이다. 먼저 왕과의 관계를 가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맨 처음에는 말을 아끼면서 왕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느 정도 그 노력이 반영된다면 점점 말을 할 기회도 늘어나고, 완전히 '왕의 남자'가 되었을 때는 무슨 말을 하든, 기둥에 칼을 던지든 뭐라 안 한다. 이 때는 열 여섯 가지 말이 모두 '옳은 말'이 된다.

내 친구는 '새내기 원장'의 말을 잘 따르는 척했어야 했으며, '감동받는 척, 존경하는 척' 했어야 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감정'이 개입되면 옳지 못하게 된다. 그것이 감정의 힘이고, 인간의 관계이다. 이 이야기는 한비자의 내용을 약간 각색하였다.

그리고 '플루타르크 영웅전'(범우사, 7권인가 8권임)은 반드시 숙독하기를 바란다. 실은 나도 2권까지밖에 안 읽었지만, 그리스와 로마를 통틀어 '축복받은 천재'는 '플라톤'과 '플루타르크스'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돈 대주지, 공부 시켜주지, 머리 좋지, 자료 많지, 정치 안정적이지(플루타르코스는 모르겠다) 글을 쓰기 위한 최적의 시기를 누렸다. 솔직히 '플루타르크'가 '사기열전'을 능가한다고 생각하며, 전국책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 다음에는 독서량이 부실해서 잘 모르겠다. '맹자'도 고급 화술과 세계관 형성에 큰 도움이 된다. 학자들은 그에게 '시대의 이빨'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부분이긴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도 권모를 위해서 좋은 '소설'이 될 것 같다. 책소개는 여기까지..

 

 

 

 

맹자의 판본을 추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논어에 비해서, 번역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김종무 씨의 민음사 본은 절판된 상태다. 다행히 학고재에서 '사서집주언해'를 출간했다. 논어, 대학, 중용, 맹자에 대한 상세한 해설과 특히 '언해본'을 풀이해 놓은 것이 주요하다. 책값은 좀 비싸지만, 당신이 맹자를 공부한다면, 전통문화연구회 같은 기계식 번역보다는 풍부한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나도 돈만 좀 모이면 전체를 구입할 생각이다.

처음으로 '블록버스터' 페이퍼를 작성했다. 아무튼 권모술수 입문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있기를 바란다.

이 글에 붙여 나의 '믿음론'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세상에는 두 가지 믿음이 있는데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는 '믿음을 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믿게 하는 것'이다.

'믿게 하는 자'에게 '믿음을 주'어서는 안 된다. 당신이 큰 상처를 받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회사 동료가 요즘 들어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고 호소하는 것은,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다.

'믿음'을 주는 사람인지 '믿게 하는' 사람인지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마음으로 통하거나, 자신을 진심으로 할애하는 사람, 치부를 드러내며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믿음을 주는' 사람에 가깝다. 하지만 섣불리 믿지는 마라.

믿음을 주는 사람과 믿게 하는 사람을 파악했으면, 그 대처 방법은 수월하다.

믿게 만든 사람에게는 믿음을 주는 대신 역시 '믿게' 만들면 된다.

이 때 권모가 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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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02-09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품절이 된 책들이 있군요.악령은 아예 절판이라니...다시 나오려나? 암튼 가져가서 참고하겠슴다.^^

2006-02-09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라주미힌 > [퍼온글] 찾았다. 군칸시마!


<천공의 성 라퓨타>



일본에 실제 있는 작은 섬, 군칸시마



<하울의 움직이는 성>

 

전통에 대하여는 여기: http://www.aladin.co.kr/blog/mypaper/80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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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출장소에 배달된 눈물의 편지 한 통(통계청 뉴스레터)
2006년 1월 26일 경기지방청 성남출장소에 사과한박스, 뻥튀기 한봉지, 그리고 눈물의 편지 한통이 배달되었습니다.

편찮으신 할아버지(75세)와 실업자인 노총각 아들(39세)의 생계를 이끌어 가시는 할머니가 보낸 편지인데요. 영하의 혹독한 추운날씨에도 길에서 뻥튀기를 판매하시는 이 할머니는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시지만 영세민 신청하는 방법도 모르셨다고 합니다. 다행히 조사구 담당자인 정선애 조사원께서 할머니를 동사무소로 모시고 가서 사회복지 담당자에게 할머니의 형편과 사정얘기를 하여 2005년 12월 말 긴급구호자금 100만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6년 1월부터 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되어 조금이나마 생계에 보탬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사원의 성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시고 고마움을 사과와 뻥튀기 그리고 편지로 보답하고자 했던 할머니의 따뜻한 선물에 성남출장소 직원들은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답니다.

성남출장소에 배달된 편지 한 통

 

엄마한테 편지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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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되는 내 독서의 역사를 말하자면,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원수 선생의 세계소년소녀동화집과 헤어지고나서
대학 2학년 때 헤르만 헤세와 재회하기까지 꼭 십일년 동안 공백을 가졌다. 그때부터는 관심을 갖고 책을 읽었는데, 나를 키워 온 책은 많았지만, 돌풍처럼 내 생활과 세계관을 발칵 뒤집은 책은 단 세권이다.

한번은 99년인가 내 친구가 공군 입대해서 일병휴가인가 하는 것을 올 때다. 그 녀석에게 내가 갖는 열등의식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독서의 속도이다. 만화책을 보면 그녀석 두 권 읽을 때 나는 한권도 다 못 읽는다. 그래서 그 녀석은 두 권 읽고 나서 세권은 읽지 않고 담배를 한 대 천천히 피면, 그때야 끄적끄적 나는 한 권 다 읽으려구한다. 그림이 안 들어간 책은 더욱 그러하다. 나는 이문열의 삼국지 단행본을 하루 종일 읽으면 두 권을 읽을 수 있는데, 그녀석은 하루에 열 권을 다 읽을 수 있다. 그녀석과 대화를 해보면 과연 책을 많이 읽었는가 의심이 가지만 어쨌든 속도의 달인이다. 그녀석이 공군에서 책을 읽다가 발견한 책을 한 권 소개시켜줬는데, 그 책은 자신도 도저히 빨리 읽을 수 없고, 한 구절 읽을 때마다 가슴이 턱턱 막히고 책장 넘기기가 두려울 정도라고 한다. 그 책 이름은 크리슈나무르티의 '자기로부터의 혁명'이다. 나는 괜히 헛된 열정을 발휘해서 그 책을 대번에 읽어갔지만, 나도 역시 다 읽지 못했다. 특히 반말체가 아니라 존댓말체로 찬찬히 전개하는 그의 생각은 나를 완전 발가벗겨 놓는 것 같았다. 지금은 그 내용들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지만, 어쨌든 한동안 나는 그 책에 완전히 기가 죽어 있었다. 그리고 유익하다는 말도 빼 놓을 수 없다.

 

 

 


두번째도 역시 99년 여름의 일인 것 같다. 그 당시는 처음으로 철학 관련 책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우연히 '스피노자'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그 때는 무척이나 더웠고, 아스팔트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던 때라 내게 '가난'이라는 의미를 절실히 가르쳐준 시절이었다. 그때 읽던 책이 '에티카'라는 책이었는데, '-기하학적 질서에 의한 윤리학'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책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말 읽어내려가기 피곤했다. 아마 한달 내내 그 책을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즉, 아침에 일어나면 '노가다'라는 걸 하러가서 해가 떨어지려고 하면 돌아와서는 샤워하고 바로 도서관으로 갔다. 그러면 한 일곱시 반 정도 되는데, 그 때부터 막차 시간까지 '에티카'를 잡고 읽었다. 정말 괴로운 한낮이었고, 더욱 괴로운 저녁 시간이었지만, 왜그랬는지 마치 부적처럼 잡고 읽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장을 읽게 되었을 즈음 내 몸이 거대한 파도에 실려 광대한 바다로 나아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스피노자는 내가 요즘 철학사나 여러 철학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한번씩은 꼭 찾아보는 철학자인데, 그 경건함이 존경스럽다. 그리고 거의 모든 서양철학자들도 그의 사상은 모르겠지만, 그의 인생의 자세 앞에서는 고개를 숙인다. 아무튼 한 달 내내 힘든 막노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에티카 때문이었으며, 그 책 때문에 내가 한 번 업그레이드 되었고, 학문에 더욱 발을 붙이게 되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현재 불거지고 있는 세계 핵문제에 관한 아주 무서운 발언을 하고 있다. 그것은 감정에 관한 장에 나오는데, 사람의 마음 속에 어떤 행위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실현된다. 그것을 제어하는 다른 감정이나 판단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지금 핵의 문제에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해볼 수 있는데, 현재의 핵 보유국들은 핵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들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쓰게 될 것이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세계는 정세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며 아주 극단적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막아주는 최후의 보루는 '세계정신'이라고 생각한다.(헤겔도 이러한 용어를 썼다고 하는데, 그것과는 관계가 없고, 그의 용어도 잘 모른다)
가령 북한같은 나라가 처절한 생계의 위기에 몰리면 핵폭탄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 위협을 할지 모른다. 그것이 잘못될 경우 그것을 쓸 것인가 쓰지 않을 것인가는 바로 북한 수뇌부의 손에 달려 있다. 나는 아무래도 북한이 NPT를 탈퇴한 것이 하나의 불길한 전주곡만 같아 보인다.
세계정신과 애국정신은 어느 나라나 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부딪친다면 애국정신을 버릴 나라는 얼마 되지 않는다. 특히 지금 미국이 아주 그러한데, 유교적 사고방식을 빌어서 말한다면, 미국은 춘추전국시대 패도와 권모를 써서 세계를 제패하다가 힘이 다하자 아무런 유익한 기억도 없이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 버린 나라들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다. 인자(仁者)는 세계정신을 위해 애국정신을 거침없이 버릴 수 있으며, 지자(知者; 이 때의 지는 지혜를 말함)는 애국정신을 버리고 세계정신을 취하는 것이 다른 것보다 몇십배는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애국정신을 버린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이 두 가지 아무것에도 닿아 있지 못하다. 힘의 균형이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옛날의 영광스런 제국들을 생각해볼 때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어떤 것을 즐기면 아랫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 기호에 열광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볼 때 현재 미국의 배타적 애국심은 세계 시민들의 인간성을 황폐화시킬 위험이 크다.
바로 이 세계정신이라는 의미는 스피노자의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이라는 사상에서 빌려온 말이다. 즉, 인간의 세계는 신의 깊은 이치와 원리에 의해서 정성스럽게 마련된 것이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볼 때 아무리 정당하지 못하더라도 그 내면에 감춰진 신의 보편적이고 공평한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것은 동양의 유학과도 통하는 철학인데, 천명(天命)에 따르는 생활을 하여야 문제가 없고 그것이 바로 왕도(王道)이다. 그것은 스피노자에 처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피노자는 아름다운 음악이 병든 사람에게는 오히려 괴로운 것이고,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이듯이 이 세상에 나쁘고 좋다는 것들은 모두 인간적인 견해일 뿐이며 그 위의 원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아무튼 스피노자의 몇몇 사상이 나의 근본을 형성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길게 써봤다.


 

그리고 최근에 또 한권의 책이 나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 책은 꼭 복병 같다. 나는 요즘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을 살펴보고 있으며, 동시에 '민족문화추진회' 시험 준비 때문에 논어를 보고 있다. 비중은 전자 7 후자 3 정도에 두고 있었는데, 이 책 때문에 한 닷새간 결과적으로 논어만 보게 되었다. 책이름은 '(하는데, 남회근이라는 분은 1918년 중국에서 태어나서 어린 나이에 유교 경전을 두루 통하였고 20세 이후로는 불교에 귀의하여 깊이 침잠했으며 티베트로도 가서 공부하다가 대륙이 공산화되는 광경을 생생히 목격했고, 여러 대학 교수로 있다가 지금은 홍콩에 거처하고 있다고 한다.
내 인생의 큰 틀을 맡아준 두 노인이 계신다. 한 분은 만 3년간 내게 유교의 경전을 가르쳐주시고 평생의 체험을 생생하게 전해주어 내가 한낱 서생 혹은 샌님으로 빠지지 않도록 해주신 은사님(근자엔 농담식으로 '훈장님'이라고 하던 분)이 있고, 두 번째로는 이 남회근이라는 분이다.
인생의 여러 체험을 위주로 논어의 깊은 뜻을 잘 설명하시고 있고, 중국 역사와 여러 사상과 관련하여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좀 자세히 얘기하고 싶은데, 서당에 가야겠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더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으련만...
이렇게 하니 꼭 책장사 같다.









*
논어 해설서는 내가 몇 권 가지고 있는데 논어를 볼 사람에게 참고가 될지도 모르겠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간행된 류종목 교수의 <논어의 문법적 이해>라는 책은 제목과 같이 문법적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을 잘 짚어주면서 그에 대한 용례도 친절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약간 기계적인 부분이 있어서 논어 본연의 맛에 흠이 될 수 도 있다. 명문당에서 간행된 김성원씨의 <논어신강의> 라는 책은 구절 풀이가 다른 책에 비해서 더욱 세심하다. 그리고 띄어 읽는 토시에도 신경을 써주고 있는데, 무조건 따르기는 힘들다.
현음사에서 간행된 김도련 선생의 <주주금석 논어>라는 책은 다산의 '논어고금주'를 소개하며 논어를 해석하고 있는데, 문맥에 염두하며 세련된 해석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민음사에서 간행된 김종무씨의 <논어신해>는 신선한 해석을 하고 있으나 그 논리가 받아들이기는 힘든 구석이 좀 있다.
지식산업사에서 나온 논어(동양고전연구회)책도 볼만 하다. 표지에는 여덟명의 철학자가 10년에 걸쳐 이뤄낸 과업이라고 나왔는데, 아마 각각 다른 일을 하다가 틈틈히 만나서 작업을 한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즉, 표현처럼 혼신을 기울인 것 같지는 않지만 성실하게 정리해낸 성과가 돋보인다. 논어와 이전의 권위있는 주석들을 세심하게 선별하여 수록해놓았고, 서로의 토론을 통한 짤막한 해설이 가끔 시원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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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겨울방학 때였습니다.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친구들은 열광을 하고 있는데 저는 정말 힘든 방학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살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습니다. 귀신이라도 쓰인 것처럼.

이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더럽고 무서웠습니다. 나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 순간 안되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랍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공부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각으로 머리는 가득차고, 행동은 말대로 생각대로 안 되는데... 이런 제가 너무 미워 울기도 많이 울고, 친구들한테도 상처를 많이 주었습니다.

짜증도 많이 내고, 무뚝뚝하게 대응하고 말입니다. 정말 혼자 끙끙 앓다가 너무 힘들어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위로해주시고, 걱정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썼습니다. 저에게 보내는 편지도 많이 쓰고, 운동도 무리하게 하고, 잠도 푹 자고, 먹는 것도 많이 먹고, 무슨 일이 있어도 웃는 등 갖가지 방법을 다 썼습니다. 다행히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더욱 힘을 얻어 계속해서 방법을 써가며 극복했습니다. 제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제게 편지를 보내는 것과 웃는 것이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긍정적으로 생활하려고 합니다. 긍정적으로 생활을 하면 아무리 기분이 나빠지더라도 조금은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위의 상황은 일시적인 호조인 것 같다. 여고생을 억누르는 기제와 마음 속의 갈등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여고생은 스스로를 억누르고, 자신과의 굴욕적인 타협으로 갈등을 잠시 봉인했을 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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