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철학자 간의 인과관계가 있는 순간을 하나의 꽁트를 통해 잡고 싶은 것뿐이다.

"쾌락과 고통은 우리들의 욕망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우리는 어떤 사물이 우리에게 쾌락을 주기 때문에 그 사물을 욕망 하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 사물을 욕망하기 때문에 사물이 우리에게 쾌락을 주는 것이다"

위와 같은 말을 한 사람은 스피노자이다. 쾌락을 위해 우리는 애를 쓰지만, 쾌락을 얻고 나면 '왜 이리 심심해?' 하고 푸념하기 쉽다. 그것은 이미 쾌락의 가치가 다 끝났기 때문일 것이다.

쇼펜아우어는 돈 많고 시간 많은 행운아로 여기저기서 자료를 모아다 진중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스피노자를 놓치지 않았을 리도 없지.

쇼펜하우어를 '염세주의자'라고 정리하기에는 약간 아쉬움이 없지 않다. 그가 염세주의자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그의 시대가 '모든 것이 끝난 시대'였던 것이다. 나폴레옹이 시민 혁명을 일으킨 후에, 다시 왕관을 받음으로써 민주주의는 퇴보하였고 괴테는 '이 시대에 노년에 접어들었다는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한다'고 하였다. 쇼펜하우어가 태어난 시대는 지식인들에게는 그토록 절망적인 지옥이었다.

아무튼 '염세주의자'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고,
쇼펜하우어는 위의 말을 받아 다음과 같은 사유를 펼친다.

"우리들의 동화와 이야기가 주인공들의 행복으로 끝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행복의 페이지가 조금이라도 넘어가면, 그들은 역시 평상시와 같이 우울하고 절망적인 나날을 보낼 것이므로, 차라리 행복했던 순간들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끝맺는 것이 여러 모로 좋은 것이다. 그 다음 이야기를 하려고 들지 마라"

환상과 공포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자, 이 결론은 우리가 문헌에서 알아낸 이야기의 대단원이다. 의심할 바 없이 대단히 정당하고 행복한 결말이다. 아! 그렇긴 하지만, 수없이 많은 해피엔딩의 평범한 이야기들처럼 진실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행복한 결말이다. 내가 이러한 오류를 수정한 것은 전적으로 『텔미나우 이즈잇소오어낫』의 저자 덕택이다.
한 프랑스 격언이 강조하듯 "더 좋은 것은 좋은 것의 원수"라고 한다. 아까 세헤라자데는 이야기가 담긴 일곱 광주리를 상속했다고 한 언급은 이제 그 바구니 수가 일흔일곱 개로 늘어났다고 수정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제 그 진실된 이야기를 덧붙여 보기로 하자.
(그 진실된 이야기는 '우울과 몽상'이라는 책에 담겨 있으니, 궁금한 사람은 책을 사서 보기 바란다)

※ 텔미나오 이즈잇소오어낫
'Tellmenow Isitsoornot'를 띄어쓰기하면 'Tell me now  Is it so or not'으로, '이제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내게 말해 달라'라는 뜻이 된다. 이는 작가 포가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생략함으로써 동양의 문헌 같은 느낌을 주도록 고안해낸 단어이다.

출처 : 에드거 앨런 포 '우울과 몽상', 중 '천일야화의 천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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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소진 소설가는 요절한 작가였지만, 지금도 '언어사용'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가 군대 시절부터 가지고 다녔다고 하는 허름한 노트는 다름아닌 '국어사전'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보았던 단어들을 스스로 정리해서 사전을 만든 것인데, 그것이 자신에게는 가장 보석이었다고 하였으니, 그 정성이 소설에 반영되지 않았을까.

이외수의 '글쓰기의 공중부양'이라는 데에 또 같은 말이 나온다. 이외수 선생이 뭐가 모자라서 논술 마당에 뛰어든 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서 샀다. 그도 역시 자신만의 국어사전을 만드는 것을 권한다.

그래서 블로그에 국어사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중에 양이 되면 항목별로 나눌라고^^

우리 한 번 '나만의 국어사전'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늘하늘하다「부」

「1」조금 힘없이 늘어져 가볍게 자꾸 흔들리는 모양. ¶흰 장다리꽃이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린다.§「2」물체가 꽤 무르거나 단단하지 못하여 자꾸 뭉크러지거나 흔들리는 모양.

「3」어디에 매인 데 없이 멋대로 한가하게 놀고 지내는 모양.

「4」『북』김, 연기, 아지랑이 따위가 조금씩 자꾸 피어오르는 모양.

「5」『북』어떤 기색이 조금씩 차츰 나타나는 모양. ¶호룡 령감의 가슴에는 남모르는 욕심이 하늘하늘 불타올랐다.≪선대≫§
「참」 흐늘흐늘.


너부데데-하다 「형」

얼굴이 둥그스름하고 너부죽하다. ¶얼굴이 너부데데하다.§ 「준」{넙데데하다. }
「참」나부대대하다.
※ '넓데데하다'는 잘못된 표현임

 
데데-하다 「형」

변변하지 못하여 보잘것없다. ¶데데한 물건/데데한 선물/데데한 사람/무능해서인지 그는 데데한 짓을 한다./어쩌면 남자 양반이 저렇게 데데할까.≪이문희, 흑맥≫§

 
구지레-하다 「형」

구저분하고 더럽다. ¶구지레한 옷차림/변명을 구지레하게 늘어놓다/대포나 포탄 등 짐을 지우고 오거나 보초를 세우는 등 구지레한 허드렛일만 시켰다.≪송기숙, 녹두 장군≫ §

 
큼큼「부」

「1」목소리를 고르게 가다듬으려고 기침하듯이 자꾸 내는 소리. ¶큼큼 헛기침으로 목을 다듬고 나서 방아 타령 한 대목을 뽑기 시작하였다.≪문순태, 타오르는 강≫ §

「2」냄새를 맡으려고 코로 숨을 들이쉬는 소리. 또는 그 모양.

 
큼큼-거리다 「동」

「1」목소리를 고르게 가다듬으려고 기침하듯이 자꾸 소리를 내다. ≒큼큼대다〔1〕. ¶고향 생각에 목이 메는지 한동안 큼큼거리던 그는 잠시 후에야 다시 말을 이었다. §

「2」냄새를 맡으려고 코로 자꾸 숨을 쉬다. ≒큼큼대다

 
드잡이「명」

「1」서로 머리나 멱살을 움켜잡고 싸우는 짓. ¶드잡이 싸움/차고 지르고 드잡이를 쳐서 코가 터지고 갓양태가 떨어진 이 비장과 배 비장은….≪박종화, 임진왜란≫/방 안에서는 사뭇 드잡이를 놓는지 요란하다. 그 드잡이 속에서 금순이의 뭐라고인지 포악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캑캑 소리만 나는 것이 아마 뭘로 입을 틀어막은 눈치다.≪이무영, 농민≫§
「2」빚을 못 갚은 사람의 가마나 솥 따위를 떼어 가거나 세간을 가져가는 일.
  드잡이-하다

뒤룩-뒤룩01[--뛰-]「부」
크고 둥그런 눈알이 힘 있게 자꾸 움직이는 모양. ¶그는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며 열변을 토한다.
「참」 뛰룩뛰룩01. ;되록되록01.

뒤룩-뒤룩02[--뛰-]「부」
군살이 처지도록 살이 몹시 쪄서 뚱뚱한 모양.
「참」 뛰룩뛰룩02. ;되록되록02.

※ '디룩디룩'은 틀린 말임

-투성이「접사」

일부 명사 뒤에 붙어)'그것이 너무 많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물,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흙투성이/피투성이.§
※ '투성이'는 접사이므로 다른 단어와 띄어 쓸 수 없음


어기대다 「동」

순순히 따르지 아니하고 못마땅한 말이나 행동으로 뻗대다

예)아이들이 되레 성가셔서 어기대지만 그래도 할머니는 기를 쓰고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고 매만져 주고 하였다.≪한설야, 탑≫

 

어깃장「명」
어기대는 행동 (~을 놓다)
예) 어깃장을 놓다

 ¶ 사람이란 늙으면 대개의 경우 어깃장도 놓고 이기적으로 된다고들 한다.≪박경리, 토지≫

 너스레 : 1. 흙구덩이나 그릇의 아가리 또는 바닥에 이리저리 걸쳐 놓는 막대기≪그 위에 놓는 물건이 빠지거나 바닥에 닿지 않게 하려고 쓰는 물건≫ 2. 남을 농락하려고 늘어놓는 말이나 짓(-를 놓다, -를 떨다)

우리는 흔히 '너스레를 떨더'는 표현을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너스레는 '수다스럽게 떠벌려 늘어놓는 말이나 짓'을 말하는데, 신문기자들이나 사람들이 이 단어만 익숙하기 때문에 '너스레'와는 관계 없는 상황에서 자꾸 너스레로 일관할 때가 많습니다. 
예컨대, 사람들의 무리가 있다고 칩시다. 한 사람이 각광을 받는데, 여러 사람들은 그를 추켜세우다가 골리다가를 반복합니다. 이 사람도 약이 올랐는지 한 동료의 말에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고 표현합니다. 이때의 '너스레'는 옳지 않습니다. '어깃장을 놓다'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에게 반항하는 분위기가 역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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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2-27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승주나무님 참 멋집니다

승주나무 2006-02-27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자꾸 업데이트를 할 예정입니다. 생각날 때마다.. 책 한 권 될 때까지^^
 

기냥.쩝, 나중에 한 번 볼라고

Name  

   無所依   (2006-02-12 12:04:07)
Subject  
   [비전공]사회적 현상의 원인과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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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의 이론에서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은 인과관계의 설정입니다. "A때문에 B가 생겼다"라는 주장을 할 경우 A는 B의 원인이 되고 B는 A의 결과가 되지요.

종종 많은 사람들이 A와 B가 동시에 관측될 경우 A는 B의 원인이다(혹은 그 반대)라는 이론을 만들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실제로는 고려하지 않은 C라는 변수가 있어서 A와 B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이런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사회과학적 이론을 만들때 인과관계의 설정은 이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하고 연구자들이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A때문에 B가 생겼다"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C라는 다른 변수가 없는지, 혹시 B때문에 A가 생긴 것인데 그것을 거꾸로 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A와 B가 실은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이 그저 동시성 혹은 시간상의 차이만 있는데 그것을 인과관계로 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정말 아주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유학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런 형태로 구성되었다"는 susi...님의 글을 읽으며 그것이 유학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어떤 C라는 요소가 있어서 유학의 도입 및 융성과 사회구성을 동시에 초래했는지, 사회구성의 필요에 의해 유학이 도입되고 융성한 것은 아니었는지하는, 다른 해석의 가능성에 대해 면밀히 검토를 해 보시고 그런 주장을 하셨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몇가지 다른 가설 혹은 질문들을 제시해 봅니다. (susi..님의 유학에 대한 견해가 타당하다는 전제를 합니다.)

1. 유학이 도입되지 않았을 때는 사회의 구성이 이렇게 위계적이 아니었을까?
("위계적이었다"가 대답이라면 유학이 현재의 위계질서의 근본원인이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2. 위계적 사회질서의 존속이 유학적 의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반대로 유학적 의식의 존속이 위계적 사회질서의 존속 필요때문이었을까?
(역의 인과관계를 고려하자는 얘기지요. 역의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면 현재 또한 유학때문에 위계질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위계질서의 필요때문에 유학이 '팔리고' 있는 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3. 유학을 구성하는 특정한 부분들(예컨대, 위계질서)만이 남아있다고 간주될 이유는 무엇일까?
(예컨대 "도끼를 들고 상소를 했다"는 부분을 생각해보면, 현대사회에서 공무원이나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시민사회집단의 움직임은 왜 유학으로 해석될 수 없고 위계질서만 유학으로 해석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됩니다.)

4. 유학을 받아들이지 않은 다른 사회에서는 동일한 위계질서가 발견되지 않을까? 만일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이라면 유학은 그 정도의 차이만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유학과 아무 관계가 없었던 중세의 서양을 생각해보면 위계질서는 유학과 상관없이 생겨나고 발달된다고 볼 수도 있지요.)

5. 유학이 정도의 차이만을 가져온 것이라면 위계질서의 근본원인은 유학이 아니라는 가설도 성립가능하지 않을까?
(다음 질문과 관련이 있는 얘깁니다.)

6. 동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질서와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질서의 차이는 무엇일까? 동물들에게는 유학이 없는데 왜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것일까?
(위계질서는 유학의 영향이라기 보다는 권력을 추구하는 동물적 본성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7. 수많은 질문들이 있을 수 있고 다른 가설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생략하겠습니다.

요는, susi...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리 간단하지많은 않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사회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말을 할때는요. 아직은 님은 "유학적 행동패턴과 이 사회의 위계적 질서는 상당히 흡사하다"는 관찰을 한 것 뿐이지요. 다른 분들이 제기하시는 관찰 자체의 타당성을 차치하고라도, 님의 관찰이 "유학이 현재의 위계적 사회질서의 원인"이라는 님의 이론을 정당화하기까지는 님께서 검토하고 분석해야할 수많은 단계들이 남아 있는 셈입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사회현상의 원인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을 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지고 자신이 없어집니다. 다른 곳에도 글을 썼습니다만, "이 이론은 옳다"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이론이 있다면,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행복할 겁니다. susi..님이 본인의 이론에 대해 너무도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서, 그 믿음을 본인이 과연 충분한 의심과 검토를 통해 검증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한눈에 보기에 옳기에 옳다고 믿고 계신 것인지 여쭙고 싶었기에 글을 씁니다.

 

 
無所依 (2006-02-12 12:19:38)    
susi...님이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이라는 책을 권하셨더군요. 카프라던가요, 지은이가? 1980년대부터던가 이른바 new age movement라는 사회적 흐름이 등장합니다. 서양의 사고방식에 sick-up 한 서양사람들이 동양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새롭게 조명하고 받아들이고 싶어하지요. 그 근원은 아마 60년대의 히피에 두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 당시 라즈니쉬니하는 신비주의자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일본의 문화가 서양에서 대대적으로 받아들여졌고, tao(도의 중국식 발음입니다)에 대한 탐구가 인기를 끌었고, 인도기행 같은 것이 유행했고, 중국이 재평가되었고 그랬습니다.

그 책도 그런 움직임중의 하나였지요. 그 책 이전에 [현대과학과 불교사상]이던가하는 책도 있었습니다. 그 책보다 몇년 전에 나왔던 책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카프라의 책과 거의 동일한 내용이었습니다. 둘 다 현대물리학에서 발견된 것들은 동양철학(특히 도교와 불교)에서는 이미 수천년 전에 알려진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실제로는 그 책들은 "나는 불교와 도교가 현대과학과 일치한다고 해석한다"는 책에 불과합니다. 좀 말을 심하게 하자면 일종의 견강부회지요. 그 책에 있는 내용이 전혀 타당성이 없다고는 말을 못하겠지만, 석가나 노자가 살아있을 당시 혹은 그 후인들이 불경들과 도덕경, 장자 등을 만들 당시에 과연 현대의 과학자들과 같은 지식을 가지고 그 책을 만들었을까하고 생각을 해 본다면 그 답은 '아니올시다'가 될 가능성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일례로 불경에 시간을 계산하는 단위로 '겁'이 나옵니다. 그리고 우주의 나이가 수백억겁이라고 하지요. 현대 천문학에서 그 의견에 동의할까요? 님이 동의하시지는 않겠지만, 그 책은 불교와 도교의 내용중 현대과학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는 부분들만을 인용해 동양의 신비주의를 팔아먹는 상술에 불과한 책입니다.)
아르키... (2006-02-12 12:21:30)    
[물리] 당시 유학을 일으켰던 학자들 모두 그 시절의 권력구조나 사회 체제를 뒤집겠다는 수준의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제후 저 제후를 찾아가서 자기들의 이론에 따라서 정치를 하자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계급이나 사회 전반을 모두 부정하면서 자신을 기용해 달라고 할 수는 없죠.

유학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도 중국은 충분히 계급 체제가 강했고, 요즘 사람들이 보는 관점에서는 왜 저렇고 비민주적일까 했죠. 고려에 성리학이 전해지기 전에도 우리나라는 위계질서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학문 이론 더 나아가서 생활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이 큰 언행과 사고의 지침으로서 세뇌되면서 조선 후기부터 이상하게 변한 것은 사실입니다. 유교 경전에 있는 문장을 점점 맘대로 해석하고 억지를 부리면서 오늘날에는 잘못 알려진 것들이 많죠. 하다 못해 속담의 뜻도 원래와 달리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가끔씩 퀴즈를 프로그램을 보면 얼토당토 하지 않는 내용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더군요.
無所依 (2006-02-12 13:18:22)    
아르키...//약간의(혹은 아주 큰) 이견.

"하다 못해 속담의 뜻도 원래와 달리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전 원래의 뜻이 무엇이었든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쪽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 시대의 사람들이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사용하느냐의 문제지 원래의 뜻이 무엇이었느냐는 아니라는 사고방식이지요.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해석이라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겁니다.

'마누라'라는 단어는 원래 고려시대 고위층 부인을 지칭하는 말이었다지요? 현대에는 그 단어는 자신의 아내에 대한 비칭에 가깝습니다. 둘중의 어떤 것이 옳은 용법일까요? 보다 적절한 형태의 질문을 하자면, 옳은 용법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요?

딴지는 아니고 그냥 '절대적 준거점'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굳이 쓴 것이라고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volt... (2006-02-12 14:17:31)    
[인문학]흥미로운 주제였음에도 짜증스럽게 유교관련 글타래를 지켜보게만 되었던 것은 글타래를 시작한 분의 태도가 지나치게 단정적이어서 그러했습니다. 그처럼 극단의 단정적인 주장을 제기함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시비로 직결되는 것으로 전혀 바람직한 대화의 태도라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무례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적어도 사실에 대한 정확한 과학적 인식을 전제로 논쟁이 전개되는 이곳에서, 인문학적 주제도 그 수준에 부합하는 형태로 다루어 졌으면 합니다.

공자의 사상과는 별개로 유교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사람으로서도 역사적으로 유교가 지닌 가치가 그렇게 쉽게 폄훼될 것은 전혀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서구가 근대산업화에 성공하기 이전 유교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문명사회인 중국과 한반도 사회의 국가적 이념으로 성공적인 작용을 하였으며, 그것은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비교적 안정된 풍요를 결과한 사상체계로 평가되는데 이견이 있기 힘들것입니다.

더구나 임진왜란 이전 조선사회에서 만개한 유교사회의 지적인 고아함과 풍요를 당시 인간 사회의 수준을 감안한다면 어찌 평가 절하할 수가 있는지요? 문제는, 아르키님의 의견에 반하는 것이지만 조선사회에 있어서 사회체제가 지나치게 성공적인 유교사상의 내면화 내지는 심화된 체득 등의 이유로 경화되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극한의 국가적 위기 상황을 겪고서도 왕조의 교체나 전면적인 국가 개혁을 초래하지 못하는 지경을 초래했다는 측면입니다. 이런 측면을 감안하면 조선의 계급체계는 도를 넘어서 안정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중국이나 여타의 것보다 훨씬 견고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유교란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더구나 유교는 그 자체의 전승에 있어서도 변화와 발전을 계속해온 사상체계로서 앞으로의 열린 가능성 뿐만 아니라 과거의 유의미한 영향과 결실이라는 역사적 경륜을 내포한 것입니다. 한반도 사회의 유래 없는 패망과 비극을 함께하였기에 유교에 대한 비판과 부정은 필연적이겠지만 그것의 역사적 가치와 미래에 대해서 보다 긍정적인 관심을 견지하는 태도를 당부드립니다.
無所依 (2006-02-12 15:28:21)    
volt...//혹시 필명을 Voltaire로 하고 계신 것은 아닌가 문득 생각이 듭니다. 만일 그러시다면 참 멋진 이름을 사용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Volt...님의 인문학적 글과 아울러, 유교와 사회구조에 대한 다른 견해 하나를 읽으시라고 저도 글 하나 올립니다. susi...님의 주장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반론 정도 될 수도 있겠군요.

중세 서양얘기부터 해야겠습니다. 길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중세질서의 파괴는 상인경제의 출현과 식민지 정책 등으로 잉여생산물이 늘어나면서 생긴 현상 즉, 물적 토대의 변화에 기인한 상부구조(사회구조)의 변화로 볼 수 있습니다. 정치경제학적 사고방식으로는 사회구조의 변화에 잉여생산물의 존재와 물적토대(경제적 구조)의 변화가 굉장히 필수적인 부분이지요.

조선의 경우 양란은 조선의 경제를 파괴해 잉여생산물을 소진시켰습니다. 게다가 조선시대의 정책으로 인해 상인경제가 발달하기 어려웠지요. 그래서 사회구조가 변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가 없었습니다.

양란이후 왕조의 교체나 국가체제의 개혁이 쉽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경제적 토대의 부족때문이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유교이념의 경화때문이라기 보다는요. 유교이념의 경화는 오히려 경제적 토대 파괴의 결과로 해석될 개연성이 높을 것 같군요.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분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배구조의 중앙통제가 아주 중요하지요. 유교는 그 상황에서 중앙통제에 대한 이념적 근거제공을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유교가 민중의 생활 깊숙히 침투한 것은 양란을 거치면서 생긴 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유교가 조선사회의 경화를 촉진했다기 보다는 조선사회의 물적 토대 부족이 유교를 지배이데올로기로 민중이 받아들이는데 역할을 했다는, susi..님이 가정하시는 것과는 반대의 인과관계가 성립합니다.

현재는 유교가 지배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는 사회는 아니지요. 이미 그 물적 토대(부유함의 정도, 주요 생산분야 등등)는 유교가 전제로 하는 사회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적 질서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대답은 현재의 사회구조가 유교에 기반한 사회구조가 아니라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즉, susi...님이 유교적 질서라고 단정하신 것은 실은 유교적 질서가 아니라는 얘기지요. 제 본 글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유교가 없던 사회에서도 위계질서는 존재했습니다. 유교는 위계질서의 정당화도구였을 뿐, 유교 자체가 위계질서를 생성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지요.(중세 서양의 신학도 그렇습니다. 신학이 위계질서를 생성했을까요? 신학은 이미 존재하던 중세적 위계질서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했지요. 그러다 사회경제적 변화로 중세의 질서가 깨지자 신학에서도 균열이 생겨납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등장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념은 사회적 질서의 정당화도구이자 사회적 질서의 종속변수이지 질서의 생성도구는 아니라는 얘기지요.) 한국사회가 보이는 위계적 구조, 구조적 문제점은 실은 다른 국가사회에서도 약간의 패턴의 차이 혹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존재하고 있으며, 한국사회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예컨대, 우리사회의 부정과 부패가 이태리와 비교해 보면 그리 차이가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유교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의 원흉이라고 단정하신 susi...님의 글은 제 관점으로는 인과관계의 오류를 보이는 결론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volt... (2006-02-12 22:04:48)    
無所依님, 제 아이디는 좀 특이한 것이어서...^^. 그리고 스스로도 의식하고 계시리라 짐작 합니다만 이제는 식상해 보이는 경제 결정론적 관점을 반복하시는 것은 좀 의아한 일입니다. 그 같은 결정론적 관점 자체가 지나친 단정들을 역시 결과했다고 생각하시지 않으신지 궁금합니다.

"사회구조가 변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가 없었다...양란이후 왕조의 교체나 국가체제의 개혁이 쉽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경제적 토대의 부족때문.... 유교이념의 경화는 오히려 경제적 토대 파괴의 결과... 이런 관점에서 볼때 유교가 조선사회의 경화를 촉진했다기 보다는 조선사회의 물적 토대 부족이 유교를 지배이데올로기로 민중이 받아들이는데 역할을 했다... 유교는 위계질서의 정당화도구였을 뿐, 유교 자체가 위계질서를 생성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 이념은 사회적 질서의 정당화도구이자 사회적 질서의 종속변수이지 질서의 생성도구는 아니라는 얘기..."

위와 같은 내용들이 아직도 역사적 실제에 부합하는 이론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뭐 주어진 모든 답을 이미 가지고 계신것과 다름이 없지 않습니까? 제 질문은 한가지 입니다. "실제로 그러했는가?"입니다.
susi... (2006-02-13 00:23:02)    
실제로 유교가 한민족을 망친 가장 대표적인 예는 조선 초기 한국의 국학 관련이나 문학 책을 거두어 없애버렸다고 단정(거의 사실)되기 때문입니다.

세조실록에보면 1457년,
세조 3년에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誌公記)·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안함노,원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도증기, 지리성모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三人記錄), 수찬기소(修撰企所)의 1백여 권(卷)과 동천록(動天錄)·마슬록(磨蝨錄)·통천록(通天錄)·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도선 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文書)는 마땅히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進上)하도록 허가하고, 자원(自願)하는 서책(書冊)을 가지고 회사(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寺社)에 널리 효유(曉諭)하라.”하였다.

즉 세조는 국학책을 금서로 만들어 수거하고 다른 책으로 바꾸어준다고 하였다. 이사건 이후로 위 책들 제목은 조선왕조실록 전체에서 완전히 사라졌다..우리 역사에 우리 역사책이 사라진 것이다.
통탄할 일이다. 모두 거두어 불태운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한단고기]라는 책에, 위에 나오는 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안함노,원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의 일부, 혹은 전부가 전한다.
문제는 유교의 폐단으로 사대를 내세워 우리 국학을 조선이 말살한 것이다. 제 나라 역사를 망친 나라가 어찌 망하지 않을 것인가?

세조의 유교정책은 자아를 상실한 조선인을 만든 것이다.
성종 때는 남여상열지사라고 고대 노래의 가사를 바꾸도록 하였다.
태종은 음양서를 모두 불태웠다.

중세의 기독교보다 더욱 가혹하게 조선의 유교는 우리 민족정신을 불태워 재로 만들었다.
나는 제 나라 역사, 제 조상의 역사를 말살한 이들을 저주하고 싶다.
일제36년 치하에서 일본인이 한국 역사관련책 20만권을 불태웠다지만, 세조때 세조와 유학자들은 이 일본인보다 더 나쁜 매국노였다.
(혹자는 세조의 유시가 유학자의 뜻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반박할 것이나,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다.)
bunn... (2006-02-13 01:20:51)    
(비전공) 제가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서도 그런 제가 보기에도 전혀 흥미롭지도 않고, 영양가도 없는 토론을 계속하고 계시는 군요. 유교는 무슨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별입니까? 중국이 중앙집권적 군주체제를 강화하고 통치이데올로기를 수립해야 하는 필요에서 생겨난 것이죠.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통치이데올로기가 필요했고, 어떤 형태로든 생겨나는 것이죠. 누가 위계질서의 원인이 유교라고 한답니까?

일례로 유교적 전통이 있는 나라만 남녀차별이 있는 것은 아니죠. 유교가 남녀차별의 원인이라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하지만, 유교에서 가르치는 덕목이 남녀차별을 정당화하기까지 하는 것이 많죠. (여기서 다시 유교의 근본 원리는 어쩌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속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제 유교원리가 중요한 것이니까. 또, 호주제 폐지 반대하는 유학자들이 무소유님보다 근본 원리를 몰라서 그러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되니까.) 유교를 비판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비판한다는 것입니다. 유교가 남녀차별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당시에 이미 존재하던 남녀의 위계를 합리화하고, 오히려 긍정적인 방향으로 계도하려고 했던 것이겠지요. 모든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선의"를 가지고(혹은 가장하고) 만들어 지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렇지만, 현재에 있어서는 어떻습니까? 지아비를 따르고 어쩌구....늙어서는 아들을 따르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선생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인데요. 유교적인 사고방식이 "교육자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라는 현대적인 개념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왜 미국 대학의 교수들보다 우리나라 교수들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겪어보신 분들은 이 점에 대해서 아니라고 하지는 않으실텐데요. 제가 보기에는 교수들의 지위에 대한 지나친 보장, 학생들의 교수 평가제도에 대한 거부감.....이런 것들이 전형적인 유교적 사고방식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하도 답답해서 글이 좀 길어졌군요. 더이상 유교에 대한 왈가왈부는 그만 하셨으면 합니다.
無所依 (2006-02-13 01:53:36)    
volt..,susi...//제 글(본글과 댓글)의 모든 초점은 사회적 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해석하는데 있어 매우 많은 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전공(경제학입니다)상 전 경제결정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님의 글 밑의 댓글은 님에 대한 댓글이라기 보다 susi..님의 관점에 대해 다른 관점도 있고 그 관점하에서는 susi..님의 주장과는 달리 이데올로기와 사회구조의 인과관계가 역전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사회적 현상의 인과관계를 논할때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제 본글의 보론정도 되는 셈이지요.

제 관점이 맞느냐? 전 맞다고 봅니다만 여기서 논할 가치는 없다고 봅니다.

* 참, 전 유교 자체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그냥 어릴때 사서(사서삼경의 사서) 좀 읽은게 다입니다. 그래서 susi...님이 촉발하신 유교논쟁에 끼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제 주장은 susi..님의 사회이론이 사회적 현상의 인과관계에 대해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것 같다는 것 뿐입니다.
volt... (2006-02-13 02:16:33)    
無所依님, 쓰신 글이 내용이 저에 대한 댓글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단지 평소에 쓰신 글의 내용에 미루어 좀 의외의 관점이시라는 생각이 들어서 여쭈어보았습니다.
無所依 (2006-02-13 02:48:05)    
위의 글을 수정한 순간에 volt..님이 댓글을 다셔서 별도의 글로 올립니다. volt..님이 제기하신 질문, 즉 "실제로 그러했는가?"라는 질문은 매우 핵심을 찌르는 점이라고 봅니다. 제가 제대로 해석을 했다면 이 질문은 "중요한 것은 이론의 구축이 아니라 이론이 사실관계 혹은 현실의 데이터와 부합한지 확인하는 일이다"라는 말씀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제 모든 글이 바로 그 점을 지적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과연 이론이 현실의 데이터와 부합하는가? 실은 사회과학상의 많은 이론들은, 현실의 데이터와 부합하더라도, 그 사실이 그 이론이 참이라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저 '기각할 수 없는 가설'정도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과학자들은 자신의 이론이 '참'임을 주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유의미한 가설정도로 평가하지요. 사실들이 이론을 지지하지 않는 경우는 그 이론이 기각됩기에, 이론에 대한 단 하나의 반례(통상 통계적 수준의 반례입니다)만 관측되어도 그동안 타당하다고 믿어졌던 이론들도 한순간에 기각이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과학자들의 역할은 '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각되는 이론'들을 걸러내는 것이라고 까지 해도 될 것 같습니다.

============= 딴소리.

하하. volt...님은 그동안의 제 댓글에서 제가 대책없는 수준의 자유주의자 정도로 느끼신 모양입니다. 실은 어찌 보면 그렇고 어찌 보면 안 그렇고 합니다. 얘기하기 시작하면 매우 길어지니, 경제결정론적 시각과 자유주의적 시각 사이에 실은 별로 모순이 없다는 정도로만 말씀을 드리지요. 간단히 말씀드려서 어떤 이론을 도그마화해서 받아들이느냐 '유의미한 가설' 정도로 평가하느냐하는 문제와 관련있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volt... (2006-02-13 02:58:13)    
"경제결정론적 시각과 자유주의적 시각 사이에 실은 별로 모순이 없다"

간단한 문장으로 무척 많은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런데 궁금증이 더해지는 것은 뭔가 새로운 차원의 경제 결정론이라도 구상하신 것이 아니라면, 기존의 그것에 대한 논리적 결함의 지적이 학계에서 이미 충분히 이루어진 것이 아닌지요. 심지어는 거의 무시당하는 상황으로 보이는 관점을 너무 태연히 말씀하시니 오히려 관심이 가는군요. 제가 무심하여 놓친 학계의 변화가 있었다든가...
無所依 (2006-02-13 03:00:07)    
bunn..//그냥 딴지.

제 친구(저보다 한참 어린 친구입니다)중에 이태리 애가 있습니다. 이 친구 왈, "이태리에서는 교수 되기가 쉽지 않아. 왠지 알아? 한번 교수가 되면 절대로 안 나가거든. 그래서 새로 교수를 뽑지 못해. 대신 되면 인생 피는거지. 뭐 제대로 가르치기라도 하면 내가 말을 안해. 그리고 그 권위주의란 정말..."

...여전히 전 교수들의 행태(?)가 유교적 의식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에 반대하는 셈입니다.
無所依 (2006-02-13 03:25:13)    
volt...//'학계'라고 통칭하셔서 정확하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경제학 특히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단 한번도 경제결정론적 관점을 놓은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자본주의 경제학에서는 아직까지는 인간의 의식구조와 경제현상간의 문제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없습니다.)

사회학분야 같은 경우 관심의 초점이 다소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정확하게 말씀드리기는 제가 관련 지식이 부족합니다. 역사학의 경우 적어도 부분 부분의 역사적 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 경제적 동기 혹은 경제적 구조와의 연관관계에 대한 고찰은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자신있게 말씀 드릴 수 있는 부분으로 경제사학이 있습니다. 미국식 경제사학은 통계를 통해 (미국의) 경제구조의 변화가 인간의 이익추구행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분석하는 것이 주 연구분야입니다. 예를들어 미국의 노예제 폐지가 노예의 생산성 감소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는 통계적 증거가 있지요. 어떤 의미에서는 경제사학은 그 자체가 사회적 상부구조(제도, 법, 관습 등등)가 하부구조(경제적 동기, 이해관계 등등)에 의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인문학에서는 부정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전 인문학에 대한 소양이 거의 zero입니다), 사화과학분야에서는 경제결정론적 시각이, 필요에 따라 수정되거나 정교하게 보완되기는 하더라도, 부정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volt... (2006-02-13 03:58:18)    
비록 사회학자로 분류되기는 합니다만 경제학에서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같은 저술의 관점을 다루지 않는 다면 문제가 있군요.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결정론적 관점에서 경제적 결정론에 대립하는 대표적 저술입니다.

사학 분야에서 경제사적 연구의 지평을 연것으로 평가되는 인물은 페르낭 브로델로서 특정 시대의 하부구조를 연구하여 상부구조와의 상호관계에서 그 시대의 사회상을 설명하고자 하였지만 결정론적 관점을 채택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제학 내부에서 경제사학이 어떤 경유로 세분화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식 경제사학 자체가 경제결정론에 근거하여 설립되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매우 놀라운 소식입니다.

그리고 간접적으로만 언급하자면 만약 인문학에서 규명된 논리적 결함에 근거해 수립된 경제 이론이 있다면 그것이 현실적으로 연계되어 부정되지 않는 것이 신기해보일 것입니다.
bunn... (2006-02-13 04:28:33)    
無所依 / 유교 때문이라는게 아니라, 유교가 변화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경제학을 하신다면 사회가 그렇게 단선적인 인과관계에 의해서 굴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실텐데요. 왜 그렇게 모른 척을 하시는지요. 한국에서 유교 하나 배척한다고 교수들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구요. 이태리에는 이태리 나름의 문제가 있겠지요. 모든 기득권이라는게 그렇지 않습니까? 일단 이태리의 상황에 대해서는 알 바가 아니고, 한국에서는 적어도, 교육서비스의 질적 상향을 위한 개혁에서 유교가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bunn... (2006-02-13 04:35:03)    
無所依 / 제가 남녀차별이 유교 때문이다 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수들 문제가 유교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시나요? 근데, 왜 제가 교수들 문제가 유교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죠? 상대방의 논리를 지나치게 단순화시켜놓고 반박하는 것은 좀 삼가해주시죠.
無所依 (2006-02-13 05:22:10)    
bunn..//예, 삼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님의 글 전체를 반박했다기 보다는 전 그저 님의 글 중에서

"제가 보기에는 교수들의 지위에 대한 지나친 보장, 학생들의 교수 평가제도에 대한 거부감.....이런 것들이 전형적인 유교적 사고방식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라는 부분에 대해 반대의견을 제시한 것 뿐입니다. 그것들 조차도 어쩌면 유교적 사고방식에 기인한 것은 아닐수도 있다는 얘기를 한 거지요.

참, "사회가 그렇게 단선적인 인과관계에 의해서 굴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실텐데요. 왜 그렇게 모른 척을 하시는지요."라고 하셔서 덧붙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제 생각과 님의 생각이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제 본글과 초기의 댓글이 그런 단선적 인과관계 가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글입니다. (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님에 대한 제 댓글은 저 한문장에 대한 이견을 말한 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제 글이 님의 논리를 강화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게 느껴지신 모양입니다. 저 스스로 글을 '좀 쓴다'고 자만하고 있었는데 반성해야겠습니다.
無所依 (2006-02-13 06:24:27)    
volt..님 전공을 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역사발전을 인간 정신의 움직임이라고 본 대표적인 학자가 헤겔입니다. 마르크스는 헤겔을 뒤집었지요. 마르크스가 맞느냐 헤겔이 맞느냐? 전 알지 못합니다. 사회과학의 이론을 잠재적으로만 의미있는 가설로 간주하는 저로서는 두가지 이론이 모두 논리적 정합성을 가지고 있고 비슷한 정도의 현실설명력을 갖는다면 전 둘 다 적절한 이론으로 인정할 용의가 있습니다. 둘중의 어느 것을 개인적으로 더 믿느냐라고 질문하신다면 전 마르크스를 선택하는 쪽입니다만 헤겔을 선택하신 분께 왜 옳지 않은 것을 주장하느냐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브릭이 아니라면 관련된 논쟁정도는 할 수 있겠지요.

2. 베버의 저술과 관련해 프로테스탄티즘의 등장 자체가 중세경제조건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얘기(엥겔스의 주장입니다)를 한 것으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베버가 맞느냐 엥겔스가 맞느냐? 전 잘 모르겠습니다.(실은 여기서 논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문제는 자본주의의 시작을 어디서부터로 간주하느냐하는 논쟁과 관련이 있습니다.) 베버가 엥겔스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 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가 엥겔스 대신 베버를 택해야할 이유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어느 쪽을 택하느냐? 엥겔스입니다. 이유는? 그게 제가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역사관과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역사관이 아니냐? 글쎄요...

3. 개인적인 얘기입니다. 베버는 하도 오래전에 읽어서(한 20년 된 것 같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 책 읽으면서 '뭐야, 이 사람은 왜 기독교가 자본주의를 정당화해야 한다고 믿고 있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한 뿌리에서 나온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티즘이 자본주의에 대해 서로 상반된 태도를 취하는데 왜 그럴까하는 질문도 스스로에게 했던 것 같군요. 이 질문이 프로테스탄티즘이 자본주의를 가지고 온 것인지 혹은 자본주의는 이미 존재했는데 나중에 프로테스탄티즘에 의해 정당화된 것인지에 대한 제 답과 관련이 있습니다. 제 오독이었을수도 있습니다.

4. 페르낭 브로델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바 전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5. 제 글에서 '경제결정론'이라는 표현이 오독의 여지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경제구조가 사회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이론은 (당연히) 아닙니다. 사회과학 이론에서 글자 그대로의 결정론이란 있을 수 없지요.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자들이 '결정론'이라고 하더라도 신학이나 고전물리학적 의미의 결정론은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굳이 얘기를 하자면 "사회현상을 이해하는데 경제적 구조변동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정도로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통계를 공부하셨는지 모르겠는데 통계학적 용어로 말씀드린다면 경제적 구조에 관련한 설명변수들이 가장 유의적이고 설명력있게 나온다는 정도가 되겠습니다.

6. 막스베버를 경제학에서 다루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다는 님의 관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실은 제가 공부하는 경제학에서는 마르크스조차 다루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경제학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경제학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문제 많습니다. 하지만 그게 막스 베버를 다루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아니라는 얘깁니다.) 다루는 대상과 연구의 필요에 따라 공부하는 것이 달라지는 것 뿐입니다. 경제학에서 막스베버를 다루지 않는 것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7. 한 학문분야의 결과가 다른 학문분야에서 이용되기란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학문분야의 성과가 상충되는 경우 어떤 것이 더 타당한지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A라는 관점이 인문학에서는 부정되지만 사회과학에서는 인정되는 경우 인문학에서 부정되므로 사회과학에서도 부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면 동일한 논리로 사회과학에서 인정하므로 인문학에서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능하겠지요.

일반적으로 보아 인문과학에서 다루는 현상과 사회과학에서 다루는 현상은 다를 겁니다. 대상이 다르다보니 사용하는 도구가 달라지는 것으로 이해해도 될 가능성이 많을 것 같군요. 천체관측을 위해 현미경을 사용할 수 없고, 세포관측을 위해 망원경을 사용할 수 없지요. "현미경도 없이 연구하는 것이 무슨 과학이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천체물리학자들에게는 매우 실례되는 말씀이겠지요.

8. 경제결정론(그냥 부르기 편하게 이름붙였다고 봐 주십시오. 마르크스 식으로 표현하자면 유물론적 변증법이 되겠습니다)적 시각은 개별 인간의 행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적용하는 경우 많은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집합적 인간 행위(사회 전체의 움직임)를 해석하는데는 여전히 중요하고 막강한 이론입니다. 몇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8-1. 유물론적 변증법은 왜 깔뱅이 하필 그때 자신의 신학이론을 제시했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왜 중세 말기에 가서야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났고, 그것이 왜 당시 대토지 소유주들에게서는 극심한 반발을 받았던 반면 신흥 경제계급(자본가들)으로부터는 큰 지지를 받았는지를 설명하는데는 아주 유효합니다.

8-2. 링컨의 노예해방선언(남부의 노예에 국한된 선언이었습니다) 이전에도 북부의 몇몇 주들은 사실상 노예제가 폐지되어 있었습니다. 남부는 끝까지 노예제를 유지하려고 했지요. 그게 북부 사람들은 남부사람들보다 더 휴머니즘적이어서그랬을까요? 실은 남부와 북부의 경제기반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남부는 대규모 플랜테이션이었고 북부는 공업이었지요. 그게 노예제에 대한 남북부의 차이를 이끌어 낸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론도 경제결정론적 이론의 하나지요.

8-3. 영국의 노예해방은 대충 보아 한 40년 걸렸습니다. 그 40년동안 일관되게 노예해방을 지지하던 계층은 공장소유주들이었고 일관되게 반대하던 계층은 토지소유주들이었습니다. 두 계층의 차이가 개인적 휴머니즘의 차이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휴머니즘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당시 영국 공장노동자의 삶은 노예보다 훨씬 열악했습니다. 공장소유주들이 더 휴머니즘 적이어서 노예해방을 주장한 것이 아니지요. 역시, 기반하고 있는 산업의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susi... (2006-02-13 11:30:28)    
volt..//"사회구조가 변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가 없었다...양란이후 왕조의 교체나 국가체제의 개혁이 쉽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경제적 토대의 부족때문.... 유교이념의 경화는 오히려 경제적 토대 파괴의 결과...
에 동감하지 않습니다.
중국에서 국민들이 배가 고프지 않으면 혁명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황건적의 난이나 등등...모택동은 중국을 기아에서 해방했다고 중국사상 최고의 인물이라는 추앙도 받았는데 혁명을 예방했다고 할 수 있죠.
따라서 양란을 통해 굶주린 백성들을 혁명으로 제대로 구제하지 못한 것은 당시 한국 지식층의 유교의식과 인내심(=기회주의?)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無所依//경제사적으로 역사적 성군을 재평가하기도 하더군요. 중국사에서 성군은 그때 마침 국민이 잘살았으면 성군이라 불리게 된다는 재해석입니다. 당태종의 정관의 치는 당태종이 잘한게 아니라 당시 교역으로 물자가 넘쳐났다거나...임금이 아무리 잘해도 굶주리면 반대가 되구요.
그 식으로 해석하면 링컨이 위대한 것은 그때 마침 북부가 노동자의 공급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는 셈이지요.
無所依 (2006-02-13 12:46:49)    
susi//
님이 volt..님의 글로 인용하신 부분은 실은 제 글을 volt..님이 재인용하신 부분입니다. 그래서 제가 답을 합니다.

이 곳이 사회과학 게시판이었다면 저 역시 기쁘게 이 논쟁을 계속 해 나갈 의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군요.

여러차례 제가 얘기를 했지만, 제 글은 제 주장이 옳음을 강변하거나 설득하기 위해 한 얘기는 아닙니다. 따라서 님이 제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하셔도 그에 대해 이곳에서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이 주장이 그렇게 간단히 무시할 수 있는 황당무계한 주장만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저 님이 워낙 본인의 주장을 확고하게 믿고 계신 것 같아서 그에 대해 약간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본인의 주장이 타당한 사회과학적 이론이 되기 위해 필요한 논리적 절차를 밟았는가하는 의문의 제기와, 본인의 주장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라고 가정해도 그것이 유일한 이론은 아니다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것을 통해 사화과학의 연구에서 쉽게 빠지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혹은 인과관계 설정의 오류에 대해 님이 인식해 주셨으면 했던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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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에 대해 언급하셔서 한마디 합니다. 노예해방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작은 기쁨을 드리기 위해 씁니다. 링컨은 실은 노예해방 반대론자였습니다. 링컨이 각종 집회에서 한 연설을 보면 링컨은 노예에게 정상적인 시민들과 같은 대우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링컨의 노예해방문은, 잘 읽어보시면, 남부의 노예에 한정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링컨은 남부의 노예들에게 얘기합니다. 너희 해방되었으니 공연히 남군 편 들지 말고 북군에 와서 싸워라. 링컨의 노예해방은 직접적으로는 내전 상황에서 상대방의 인적 자원을 소진시키려는 전략에 불과했지요. 노예해방이 남부에 한정되었기에 북부의 노예제는 공식적으로 상당기간 더 유지되었습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도 자발적으로 폐지한 주들 말고 북부의 3개주는 노예제를 유지합니다. 한참 뒤(2-3년 뒤)에 가서야 노예제는 미국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것은 남부이 병역자원을 고갈시키려는 심사였고, 북부 사람들에게 그것이 별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실은 꽤 많은 북부지역에서 자발적으로 노예제를 이미 포기했던 이유)는 북부의 산업기반이 공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volt... (2006-02-13 15:28:19)    
정확히 말씀드려서 베버를 다루지 않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결정론에 반대되는 관점을 다루지 않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말씀하셨던 바로 경제결정론 류의 관점은 경제학에서 주요하게 자리잡은 것으로 표현되었으니까요.

귀하의 입장에 대한 설명은 감사드립니다. 단 이해는 합니다만 전혀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는 말씀 정도를 드리고, 저 역시 브릭에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좀 어색하게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저는 실제로 제 전공을 그냥 인문학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제 관점에서 철학,정치학,심리학,경제학,사학,법학 등의 전공을 세분화 하는 것은 반지성적이고 작위적인 행태로 보여서요.
susi... (2006-02-13 15:39:31)    
無所依//
이제까지 무소의님이 댓글로 말씀하신 부분에 대하여 별 감정없이 쓰신 것으로 믿고 재밌게 읽었으며
저의 표현에 껄끄러운 점이 있었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토론도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토론할 수 있다는 자체가 좋은 것이고...

80년대 군부집권초에, 우리나라는 굶지 않기 때문에 군사정권에 대하여 민중혁명이 불가하다고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고정불변한 것은 없겠지요. 전두환은 물가를 잡았고 무역흑자를 처음 달성했으며, 그래서 군사정권이 공고화되었는데, 그 경제 성장이 또한 군부를 개화시켰는지 전두환의 친위구테타 요청을 군부가 거부해서, 87년 617, 629가 가능했던 것으로 봅니다. 친위쿠테타가 다시 성공했으면, 87년 서울이 80년 광주 재판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고 생각하기도 끔찍하군요.
아무튼 87년 상황은 님의 의견, 경제적 토대가 제공된 것이기도 합니다.
無所依 (2006-02-13 18:10:40)    
susi..//감정없이 보아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실제로 감정없이 쓴 글이지요. 하하.

volt..//통상의 의미에서 얘기하는 전공에 대해 여쭈어 보았습니다. 전공을 알고싶어했던 이유는 전공을 통해 님의 배경지식에 대해 제 나름대로 추측하고 적절한 표현을 쓰고 싶어서였습니다. 말씀을 안 해주시니 어쩔 수 없군요.

토론이 끝나가는 마당에 굳이 이 얘기를 짚고 넘어가고 싶어하는 까닭은 님의 몇몇 말씀이 저로 하여금 님에 대해 약간의 의혹을 갖게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논리적 결벽증이 있거든요. 뭔가 클리어하지 않으면 몹시 괴로워하지요. 그런 병적 증세가 발동했다고 이해해 주십시오.

우선은 님이 경제결정론이 "학계"에서 그 모순을 지적받은 것이라고 주장을 하셨습니다. 제가 어느 학계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여쭈어 보았는데 말씀이 없으시더군요. 철학계를 말씀하시는지, 사학계를 말씀하시는지, 경제학계를 말씀하시는지, 경제학에서도 근대경제학계를 말씀하시는지, 정치경제학계를 말씀하시는지. 경제학 이론이 물리학계에서 모순을 지적받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학계에서 경제결정론을 "식상해 보이고" "모순이 있는 이론"으로 판단을 했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아울러 님이 어떤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도 알고 싶군요.

둘째, 님이 인문학이라고 일괄해 지칭하신 학문분야들은 현재의 구분으로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으로 구분됩니다. 물론 둘 다 인문학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신다면 전 별다른 의견이 없습니다만, 문제는 '경제학'을 다른 분야의 학문과 같이 취급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습니다. 경제학이 잘나서가 아니라, 경제학을 연구하는 방법론이 다른 분야와 매우 다른 접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간단히 말씀드리면, 경제학자중에 철학적 배경을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반대로 물리학, 전기공학, 기계공학, 수학, 통계학 뭐 이런 것 한 사람 무지 많습니다(저도 학부전공은 물리학이었습니다). 현대 경제학은 다른 사회과학과는 별종의 좀 기묘한 학문입니다. 인문학들과 비교해보면 그 기묘함은 말도 못하지요. 이런 것을 하나의 학문분야로 묶어서 같이 공부를 해야 한다고 보신다는 말씀이신지...

그렇게 철학부터 경제학까지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으시는 것이 저게는 몹시 생소하고 발바닥 한가운데가 간지러운 듯한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군요. 철학부터 경제학까지 아우른 님의 기준에서의 '인문학'이 어떤 모습인지 저로서는 상상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여쭈어 본다면, 님은 심리학과 경제학을 같이 공부하실 수 있나요? 학부수준의 공부가 아니라 이런 토론과정에서 관련분야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말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의 공부를 말하는 겁니다. 두가지 공부를 다 하는 사람의 모습이 제게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됩니다. 억지로 같다 붙이자면 추상수학 전공의 수학자가 영문학 박사학위도 가지고 있는 것하고 느낌이 비슷합니다. 못할 것야 없지만 아주 이질감이 심한 뭐, 그런 거지요.

셋째, 위에서 구분한 님의 학분분류와 함께 님의 베버 혹은 경제결정론에 대한 언급이 제 머리 속에서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내는군요. 경제학에서 베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요? 경제결정론이 아닌 다른 이론, 예컨대 헤겔을 든다면, 그 사람을 경제학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넷째, 경제학은 속칭 자본주의 경제학과 정치경제학 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님이 인문학에 포함시킨 경제학이 둘 중 어떤 것인지 모르겠군요. 둘 다 인가요? 둘은 같이 태어난 것들이기는 한데, 하나는 지구인, 하나는 화성인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실은 아주 이질적인 분야입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자본주의경제학자들)은 정치경제학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고, 정치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경제학을 아주 경멸하지요. 정치경제학은 철학이 있습니다만 100% 경제결정론이고, 자본주의 경제학은 인문학이라고 보기는 거의 불가능한 수준으로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어떤 경제학을 포함시키신 건지요?

제가 시비거는 것처럼 느껴지실까봐 미리 사과드립니다. 시비라기 보다는 제 성격상 장애라고 보아야 할 것 같군요. 답 하시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답을 주신다면 제가 좀 편해지는데 도움을 주시는 것이 될 겁니다.
volt... (2006-02-13 22:16:48)    
無所依 님, 시비라니요. 당치도 않으십니다. 이런 논쟁은 일상적이고 즐거운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습니다. 더 나아가 많은 분들의 참여가 있었다면 더 유익해질 수 있었다고도 생각합니다.

저 역시 유사한 성격상 장애가 심했던 사람이어서 뭔가 無所依께서 꺼내놓으신 모든 이야기들에 그럴 듯한 마무리라도 해드리고는 싶은데, 이런 조건에서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없어 죄송합니다.^^*

제가 능력이 안되는 이유나마 설명을 드리자면, 말씀하시는 내용으로 미루어 지적인 배경에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추측이 되는 면들이 많고 의사 소통이 용이한 경우가 아니라는 판단에서 입니다. 오해하시면 안되는 사항은 제가 지금 지식의 수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지적인 기반과 지향의 상이함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경우라면 통상 대화가 대단히 힘들어 진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변에서 흔히 오가는 말 중에 "아는 수준 만큼 질문도 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진지하게 드리는 견해로 이미 질문하신 내용에 대해서 나름대로 답을 하실 수 있는 것이 많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하신 내용은 매우 유의미해 보입니다.
無所依 (2006-02-14 06:05:42)    
죄송합니다. 다른 것은 다 떠나서 한가지만 답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맨 처음 한 질문입니다.

님이 말씀하신 "학계"가 어떤 것인지, 경제결정론이 "이제는 식상해 보이"고 "논리적 결함의 지적이 학계에서 이미 충분히 이루어진" 것이며 "거의 무시당하는 상황으로 보이는 관점"이라고 판단하신 님의 말씀을 어떤 학술적 근거에서 하신 것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님이 그냥 "나는 경제결정론을 믿지 않는다"라고 하셨거나 "내 생각에는 그 이론은 시대착오적이다"라고 하셨다면 제가 이토록 집요하게 여쭙지는 않을 겁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제 의견과 틀리다고 이런 토론이 썩 적합하지 않은 BRIC에서조차 누가 맞는지 따져보자고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님은 학계의 평가는 이미 그 이론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렸다(논리적 결함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 "학계"가 어디인지 제발 알려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volt... (2006-02-14 15:30:00)    
제가 답글을 주저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無所依께서 접하시는 학계와 제가 접하는 학계가 다른 것은 거의 분명하고, 서로가 어찌 되었든 추상적이지만 주류학계를 접하고 있다는 생각을 각각 하고 있는 것도 분명해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범주의 학계가 정통성이 있는 주류이고 아니고를 말하는 것 따위도 전혀 의미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말썽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집요하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 논리적으로 대립적인 관점에 서 있는 상대로 부터 우호적인 반응을 얻어 내시기에는 약간 공격적이신 셈인가요^^. 현실적으로 의견이 다른 집단과 개인 간에 우발적이고 불필요한 조우가 초래한 사소한 잡담거리라고 생각합니다.
無所依 (2006-02-14 17:01:41)    
아, 그런 취지는 아닙니다. 제가 뭐 어떤 학계인지 안다고 해서 거기에 가서 '깽판'놓을 위인도 못 되고 능력도 없습니다. 순전히 제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 혹은 세계관의 이론적 정합성때문입니다.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으로 사회적 현상을 해석하는 큰 틀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 틀이 최고의 틀이 될 수는 없겠지만,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서 최소한 틀 자체의 문제나 모순은 제거해 나가도록 해야 하지요.

제 경우에는 그에 대한 강박관념이 훨씬 심합니다.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틀을 갖추기 위해 제가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은 님이 상상하실 수 있는 것 이상입니다. (간단히 말씀 드리자면 이 틀을 갖추기 위해 제가 공부했어야 하는 분야는 수학, 논리학, 서양경제사, 계몽주의철학, 과학철학, 특정시대에 관한 동양역사, 정치학, 일부 사회학, 일부 심리학, 일부 신학, 비교종교학, 일부 동양철학 그리고 당연히 경제학 등이었습니다. 먼저 말씀드린대로 제 학부전공은 물리학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위의 분야에 대한 책들을 찾아서 읽어나가는데 어떤 노력이 필요했을지 짐작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노력과 시간을 들여, 다른 틀보다 우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적 모순은 가지지 않은 분석의 기준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요.

그런데 이 틀이 공식적으로 논리적 결함이 있다는 선고가 내려졌다는 말을 님에게서 들은 겁니다. 좀 심한 비유를 하자면 자기 자식에 대해 아주 많은 자부심을 가진 부모한테 "당신 자식은 형편없어"라고 말씀을 하신 셈입니다. 도대체 어떤 점에서 모순이 있는 것인지는 알아야 제 틀을 고치든지, 모순이 있다는 지적을 무시하든지 할 것 아닙니까? 내 자식이 도대체 어떤 점에서 형편이 없는지는 알아야 애를 고치든, 그 말을 무시하든 할 것이 아닙니까?

제 댓글에서 쓴 바와 같이 제가 가지고 있는 틀이 인간 행위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님의 말씀하신 모순이 모순이라기 보다 취약성이고, 제가 이미 그 취약성을 알고 있는 부분이라면 전 그냥 그 지적을 받으면 됩니다. 예를 들어 님이 만일 신학을 하시는 분이고, 신학자의 입장에서 볼때 경제결정론은 모순이라고 하신 것이라면 전 100%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님이 만일 사학을 하시는 분이고, 사학자의 입장에서 모순이 지적되었다면 이건 제게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님이 동양철학을 전공하셨고 동양철학적 차원에서 모순이 제기되었다면 전 받아들일 용의가 있습니다. 그건 모순이라기 보다 두 이론이 지향하고 분석하는 세계가 다른 데서 기인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님이 만일 사회학을 하는 분이라면 이 지적은 제게는 매우 중요한 지적이 됩니다.

님께 계속 전공을 여쭈어보고 어떤 학계인지을 질문하는 것은, 누가 맞나 따져보자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지만, 적어도 제게는 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이냐에 따라 아주 큰 사건이 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사고의 틀 없이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과학 공부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제가 사회를 분석하는 준거가 뭔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걸 확인하지 않고 그냥 넘기고 말기에는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제 마음이 용납을 못하는 거지요.

단 한줄이면 됩니다. "어떤 학문분야에서 이러이러한 이유로 누구에 의해 문제가 지적이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바대로 제가 나름대로 상당히 많은 분야에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님이 그 한줄만 써 주시면 제가 관련분야 서적들을 찾아 읽고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제 자식이 어떤 면에서 형편이 없는지 간곡히 수차례 여쭙고 있습니다. 답을 부탁드립니다. 좀 별종인 인간이라는 점은 말씀 안하셔도 잘 알고 있습니다.
volt... (2006-02-15 01:37:37)    
無所依 님, 인터넷에 항상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답글이 오가는데 시간적 간격이 길어져 죄송합니다.

귀하의 어떤 학문적 집요함에 대해서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낮추는 말씀을 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라고 판단하면 제가 대응이나 말없이 무시하면 그만입니다. 지금 저와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심각한데 그걸 인지하지 못하시는 점이 유감입니다. 저로서는 황당할 정도로 점점 더 의사 소통이 안되고 있습니다. 제가 귀하를 조롱하거나 무시할 이유가 없고 나름대로는 뭔가 대화를 하려고 노력을 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며, 이 건에 대해서는 귀하께서 원하는 방향의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불가하다는 말씀을 다시 드립니다.

공개된 게시판에서 익명으로 의견을 나누고 있으며 제가 무슨 대단한 권위자로 등장한 것도 아닙니다. 귀하의 자식이 제가 뭐란다고 형편없는 아이가 될리가 없습니다.

약간은 죄송한 마음으로 최근에 어떤 사람들과의 나누었던 이야기를 대신하여 드리고자 합니다. "인문학적인 자질이 뛰어난 사람의 경우 자기 존재의 불안감을 항상적으로 느끼며 살아간다는 관찰을 왕왕 하게 됩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확고한 답을 가진 사람은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無所依 (2006-02-15 08:43:46)    
님이 저를 조롱하거나 무시한다고 생각했다면 애초부터 이런 부탁을 이토록 집요하게 드리지 않았을 겁니다. 저도 무시하면 되지요. 그리고 님의 댓글이 만약 제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쓰여졌다면 역시 이러지 않을 겁니다. 속으로 이러고 말았을 겁니다. "당신이 뭘 안다고..."

위에서 읽은 님의 댓글(특히 유학에 대한 댓글)을 통해 님께서 제가 충분히 인정할 만한 수준의 지적 배경을 갖춘 분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즉, 님의 '학계'와 '경제결정론'에 대한 언급이 간단히 무시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는 거지요. 적어도 그런 언급에 대한 학술적 근거는 갖추신 분이라 판단을 하고 있다는 얘기지요.

그런데 님의 바로 위 댓글은 솔직하게 좀 실망스럽습니다. 이론물리학하는 분께 "당신 계산이 틀렸어"라고 한 뒤, 어디가 틀렸냐고 물으니 "굳이 알 필요 뭐 있어? 내가 틀렸다고 틀린 것은 아니니까 당신 스스로 맞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야"라고 대답을 하신 셈입니다.

제가 "제 존재에 대한 확고한 답을 가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론에 대한 확고한 답은 가지고 있지 않지요.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이론이 100% 옳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새로운 상황이 생기거나 이론이 등장하면 끊임없이 자기의 이론적 틀에 맞추어 해석하려고 노력하고 해석이 안될 경우 자신의 이론적 틀을 수정하지요.

제가 질문하는 것에 대해 답을 하지 않으시는 이유가 확실치 않군요. 아마도 더 이상은 댓글을 달지 않으실 모양입니다. 결국 저는 제 궁금증을 풀 수 없게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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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의 하나, 정말 만의 하나입니다. 혹시 님이 그냥 별 생각없이 그리고 별 근거없이 '학계'를 말씀하시고 '모순'을 말씀하셨던 것이라면, 앞으로는 그러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론물리학자들한테 "당신 계산 틀렸어"라는 말이 얼마나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되는지 모르시지요? 사회과학자한테 "당신의 분석도구는 모순이 있다고 증명되었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말을 소위 '일반인'도 아니고 [인문학]을 전공하신다는 분의 입에서 들으면, 게다가 그 인문학의 범주에 사회과학까지 포함시켜야 마땅하다고 주장하시는 분의 입에서 들으면 그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 만의 하나, "학계에서 사망선고 난 이론으로 알고 있는데?"라는 말씀이 그저 "난 그 이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라는 뜻이었다면, 두번 다시 이런 식으로 말씀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volt... (2006-02-15 23:40:25)    
저는 귀하가 원하는 방향에서의 답을 드리지 않겠다는 의중을 누누히 밝혔습니다. 그러나 답은 드린 셈입니다. 이 글타래의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을 해보시지요. 귀하의 글이라는 생각을 버리시고 전혀 모르는 남이라는 가정으로 특히 귀하의 글을 연달아 읽어 보십시요.

저는 귀하를 이 글타래를 통하지 아니하고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글타래를 통하여 이해되는 無所依란 분의 사고체계와 태도의 문제는 경제결정론의 문제와 별개의 것이 전혀 아니지요. 특히 만의 하나...운운하신 부분은 거의 절정 부분으로 귀하와 본인의 격을 시궁창에 던져 넣는 수준이군요.
無所依 (2006-02-16 06:14:11)    
제 격을 스스로 시궁창에 던져넣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기 싫어서 계속 님께 답을 부탁드렸지요. 하긴, 이 게시판에서 다른 사람의 질문에 답을 할 의무는 없지요. 그래도 토론의 상대방이 개인적인 얘기까지 토로해 가며, 매우 정중히 질문을 드렸으면 답을 해 주시는 것이 토론상의 예의일 겁니다.

제가 한 부탁은 그저 님이 알고 있는 사실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말해 달라는 것이었지요. 제가 님께 님의 의견을 철회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제 의견을 용납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방향의 답"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그 정중한 부탁에 대한 님의 답은 결국 "넌 몰라도 되"였네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난 말했는데 네가 못 알아듣는 거야"로군요.

하지만 님은 님의 글에서 제가 여쭙고 있는 '사실'에 대한 말씀은 안 하셨습니다. 시종일관 "난 당신 의견에 대답하지 않을거야" 혹은 "당신하고 나하고는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어"라는 말씀만 하셨지요.

제가 그거 여쭙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님이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말씀해달라는 겁니다. "어떤 학문분야에서 이러이러한 이유로 누구에 의해 경제결정론의 문제가 지적이 되었다."라는 사실에 대한 기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님이 저를 한심한 놈으로 보시든, 말귀도 못알아듣는 멍청한 놈으로 보시든, 인격이 시궁창인 놈으로 보시든, 그건 제가 관여할 수도 없고, 관여할 이유도 없겠지요. 그러니 제게 그 사실에 대한 한줄의 기술만 주시면 저는 님께 감사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지요. 님이 제 글과 제 태도에서 부당하다고 지적하시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사과드리겠습니다. 제발 님이 알고 계신 것을 알려주십시오.
volt... (2006-02-16 15:49:58)    
제가 요즘 정신적으로 아주 한가한 시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브릭 같은 곳에도 들러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합니다. 특히 황박사 사건 이후 저로서는 책임감있고 엄정한 사고방식을 견지하고 있는 지식인이라면 이곳에서 전개된 일련의 논증 과정을 직접적으로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 개인적으로는 이곳에 글을 올리시는 분들 특히 비전공분들에게 우호적인 관심과 태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귀하에 대해서도 다르지 아니합니다. 이제 이글타래가 뒷페이지로 옮겨졌고 타인의 이목도 덜하여졌으니 한가한 마음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이글타래를 통하여 저에게 드러나는 無所依님의 모습은 우선 너무나 다급한 분으로, 제 소견으로는 기본적인 태도에서부터 타인에게서 어떤 답을 구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다시 지적을 합니다만 지금 공개된 게시판에서 익명으로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귀하나 제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의 추측도 병행이 됩니다만 일단 이 게시판에서의 대화 상대는 無所依라는 분의 글로서 형성된 캐릭터가 전부입니다. 글로서 드러난 귀하의 태도는 죄송합니다만 형식적으로도 정중하기까지 한 것인지 의문이 있고 내용상으로는 무례한 것이 사실 아닌가요?^^ 문제로 삼지는 마십시다. 그리고 저는 "난 말했는데 네가 못 알아듣는 거야"라는 의견을 전한 것이 아니고 "귀하 스스로가 말한 것에서 귀하가 옳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의 문제가 드러난다."는 의견을 전한 것인데요...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서로 의사 소통이 잘안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주십시요.

無所依님은 자신의 질문 자체가 황당하고 말이 안되는 것일 수 있다는 일고의 의문도 이 시점까지 스스로 가지시지 않으시는군요. 제가 "아는 수준에서 질문을 한다"든가 "귀하의 질문이 유의미해 보인다"라고 한 표현은 가능한 정중하고 완곡하게 귀하의 질문이 "자기 사고체계의 한계에서 단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질문을 하고있다"와 귀하의 질문이 "의미가 없지는 않겠지만 틀려있다"는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혀 생각치 못하신 듯합니다. 無所依님이시라면 적어도 틀린 이론도 의미와 역할이 있었다는 측면은 이해하시겠죠.

"인문학적인 자질이 뛰어난 사람의 경우 자기 존재의 불안감을 항상적으로 느끼며 살아간다는 관찰을 왕왕 하게 됩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확고한 답을 가진 사람은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란 말씀을 드린 것도 無所依님께서 스스로도 말씀하셨듯 지적인 강박관념에 떠밀려서 조급하게 답을 찾는 태도 자체가 잘못이라는 지적을 하려는 것이 주요 이유였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과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외람됩니다만 이런 것입니다. "귀하의 질문내용과 질문하는 방식과 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질문 자체가 잘못되어 있는데 무슨 바른답을 하라는 것인지요? 너무 답에 집착을 하시기에 우려에서 유치한 설명을 더 드리자면 "어떤 학문분야에서 이러이러한 이유로 누구에 의해 경제결정론의 문제가 지적이 되었는가?"란 질문이 현 시점과 상황에서 어떻게 제기될 수 있는지 그 자체를 저는 아예 납득하지 못하는 입장의 사람이고, 그런 측면에서 귀하와는 의사 소통이 매우 어려운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입니다.
無所依 (2006-02-16 18:18:09)    
"기존의 그것(경제결정론)에 대한 논리적 결함의 지적이 학계에서 이미 충분히 이루어진 것이 아닌지요. 심지어는 거의 무시당하는 상황으로 보이는 관점을 너무 태연히 말씀하시니 오히려 관심이 가는군요."

제 질문은 님께서 써 놓으신 이 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저렇게 말씀 하셨기에, 님께서는 어떤 분야에서 누구에 의해 경제결정론의 문제가 지적이 되었는지 알고 계시다고 간주해야 마땅하겠지요. 제가 다른 댓글에도 써 놓았지만, 님의 글이 수준미달의 형편없는 글이었다면 위의 말에 대해 별 관심두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님의 글은 제가 충분히 인정해드릴만한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질문을 한 거지요.

제가 말하는 것이 옳고 그르고 이런 생각 없습니다. 그냥 님의 저 글이 저로 하여금 몹시 궁금하게 만들었던 것 뿐입니다.

질문방식이 잘못되었다면 사과드립니다. 특히 제 끝부분 댓글에 님의 기분이 상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제가 계속 드리는 질문 내용은 그저 님께서 써 놓으신 저 글의 학술적 근거를 좀 알려달라는 것 뿐입니다. 님의 사고체계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님과 누가 옳고 그르고 따지려는 쪽도 아닙니다.

그냥 님이 어떤 것을 알고 계시기에 저 글을 쓰셨는지 말씀해 달라는 겁니다. 그거 답 해주시기 그렇게 어려우십니까?
無所依 (2006-02-16 18:18:51)    
문득, 님이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제가 이런 토론을 할때 좀 공격적이 됩니다. 혹시 그점때문에 오해를 하고 계시다면 오해를 푸시기 바랍니다.

저 질문은 그냥 질문입니다. 제가 과문해서인지 전 저런 평을 못 들었거든요. 그런데 님께서 저런 말씀을 하신 거지요. 그래서 궁금해졌습니다. 제 댓글중 만의 하나 운운한 댓글은 님께서 하도 제 질문에 답을 안 하셔서 저렇게까지 생각을 했다는 얘깁니다. 불쾌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사과드리지요.

님의 전공분야가 뭔지 모르지만 폄하하고 싶은 마음 없고, 님의 지식에 대해서 역시 폄하하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폄하할 분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제 글이 그렇게 느껴졌다면 오해를 푸시기 바랍니다.
volt... (2006-02-16 20:13:57)    
오늘 좀 시간이 나서 이야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뭐 별 의견이랄 것 없는 의견을 나누면서 저는 저 나름대로 얻는 것이 있었습니다. 無所依님도 시간만 낭비했다는 경우가 아니시기 바랍니다.

"뭔가 새로운 차원의 경제 결정론이라도 구상하신 것이 아니라면, 기존의 경제결정론에 대한 논리적 결함의 지적이 학계에서 이미 충분히 이루어진 것이 아닌지요. 심지어는 거의 무시당하는 상황으로 보이는 관점을 너무 태연히 말씀하시니 오히려 관심이 가는군요." 라는 요지의 발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뭐 세세한 지적을 하지면 정확히 "거의 무시당한다"고 표현했고 부정당했다고 평가하지는 않았습니다. 제스스로는 무심하게 했던 발언임에도 無所依님 덕분에 여러 정황을 돌아보고, 또 다시 보아서 현 시점과 상황에서 큰 잘못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로서는 최선의 답을 드렸습니다. 저에게는 답인 것이 귀하에게는 답이 아니고 저에게는 사실인 것이 귀하에게는 사실이 아닐 정도로 커다란 시각차가 존재합니다. 저는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닙니다만...귀하로서는 의외의 경우이신가 봅니다. 그리고 이런 공개적인 인터넷 상의 게시판은 깊이 있거나 유의미한 토론 장소로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판단합니다. 귀하에 대해서 분명히 화가난 부분은 "만의 하나..." 운운하신 부분으로, 이미 불만을 표했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까지 하셨으니 되었습니다.^^ 귀하의 이해를 구하고자 하는 것은 저로서는 가능한 정직하게 답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귀하가 구하시는 답은 제게서 얻으실 수가 없습니다.
無所依 (2006-02-17 03:41:40)    
마지막으로 저도 제 입장을 정리하고 끝내지요. 경제결정론에 대한 제 입장이 아니라 님과 토론(?)을 한 것에 대한 입장입니다.

1. 최초에 님의 전공을 여쭈어 본 것은, 만일 님이 신학이나 동양철학 같은 것을 하신 분이라면 이런 질문을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님이 [인문학]에 경제학을 포함시켜 마땅하다고 하셔서 이 질문을 계속 드린 거지요. 본인 스스로 인문학에 경제학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하셨고, 본인의 전공이 인문학이라고 하셨으므로 저는 님이 경제학에 대한 적절한 수준의 소양은 갖추었다고 가정해야 마땅합니다.

2. 경제결정론이 무시당하는 학설이냐 아니냐를 여기서 논할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그런 것 얘기할 곳도 아니고, 제 경제결정론적 역사해석도 제가 맞다는 얘기를 하기보다 susi..님의 의견에 대해 다른 견해도 있을 수 있다는 정도로 얘기를 한 것이었습니다.

3. 제 질문의 핵심은 "논리적 결함의 지적이 학계에서 이미 충분히 이루어진 것이 아닌지요"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님의 이 말씀에 대해 제가 "당신이 뭘 알아?"라고 따지자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학계의 누구에 의해 어떤 결함이 지적이 되었길래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물었지요. 님은 "결론적으로 귀하가 구하시는 답은 제게서 얻으실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시는 것이고.

4. 전 여전히 님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님을 불쾌하게 만든 제 댓글에서 제가 그런 추론을 했습니다. 학계운운 하신 것이 별 근거없이 본인의 느낌으로 하신 말 아니냐라는 추론이었지요. 님이 그 글에 대해 "스스로 격을 시궁창에 넣는"다는 말씀으로 저를 비난하실 정도로 강하게 부정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긴 시간을 할애해 수차례 글을 쓰고 감정을 상하고 또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느니, 그냥 그런 말 한 학자 몇명 이름과 관련된 그들의 저술을 써주면 그만이었을 것이었지요. 제가 님이었다면 그렇게 하고 끝냈을 겁니다. (그게 제가 알고 싶었던 전부입니다.)

======

님의 바로 위 댓글에 제가 이해못할 말씀을 하셨습니다.

1. "현 시점과 상황에서 큰 잘못이 보이지 않습니다."
- 전 님의 말씀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정말 열번도 더 드린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요. 전 님의 경제결정론에 대한 시각이 잘못되었다거나 그런 말씀을 해서는 안되었다거나 하는 얘기를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님의 말씀이 근거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싶어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2. "저에게는 답인 것이 귀하에게는 답이 아니고 저에게는 사실인 것이 귀하에게는 사실이 아닐 정도로 커다란 시각차가 존재합니다. 저는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닙니다만...귀하로서는 의외의 경우이신가 봅니다."
- 님과 저의 시각 중에서 누가 맞는지 논쟁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저도 당연히 저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을 아주 많이 알고 있습니다. 제가 경제결정론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경제결정론을 님께 강요하는 것이 아님을 반복해 말씀 드립니다. 전 단지 님이 알고 계신 사실이 무엇인지 계속 묻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알고계신 사실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시각차가 있다는 답을 계속 하고 계신 겁니다.

3. '님의 말씀이 근거하고 있는 사실'이라고 말씀을 드리자니 제 글투가 따지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아서 제가 사용한 표현이 "어느 학문분야에서 누구누구가 어떤 모순을 지적했는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알고 싶어하는 사실은 그 세가지였다는 얘기지요.

4. 여전히 전 님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fact를 좀 알려달라'고 하는 제 질문에 님의 대답은 '관점이 다르다'는 겁니다. 제 질문이 님의 관점이 틀렸으니 논쟁해보자는 쪽으로 읽혔습니까? 그토록 반복적으로 그게 아니고 그저 사실에 대한 궁금증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제 사적인 얘기를 한 것도 님이 제 질문을 논쟁을 해 보자는 쪽으로 받아들이지 않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것이었습니다.
volt... (2006-02-17 09:12:24)    
"알고계신 사실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시각차가 있다는 답을 계속 하고 계신 겁니다."

상호간 아예 사실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다름으로 답이 불가하다는 사람에게 "알고 있는 사실이 무엇이냐"고 계속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기괴하고 마무리로 멋져보이지 않으네요. 어찌되었든 저로서는 얻는 것이 있는 대화였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시어 질문하신 결과가 만족하지 못하신 점은 유감입니다. 인사드리는 것으로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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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도 특허품 있다
입력: 2006년 02월 24일 18:04:24 : 7 : 2
 
‘도박용 화투를 만들었는데 상표법 위반?’

지난 23일 서울경찰청은 사기도박용 특수카드 및 화투를 제조해 판매한 김모씨(49)를 구속했다. 시중에 있는 화투와 같은 디자인의 화투를 만든 뒤 뒷면에 특수형광물질을 입혀 판매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경찰이 김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상표법 위반. 김씨가 본뜬 화투가 ‘특허품목’으로 지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특허품목인 원제품은 1990년대 일명 ‘보너스 쌍피’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ㄱ사 제품. 문양이 기존과 달리 독특하고 전체 색감도 화사한 점이 고려돼 특허품으로 인정받았다.

화투는 ‘유희오락기구’로 분류돼 특허청의 심사만 통과하면 특허품이 된다. 현재 ‘특허 화투’로 지정된 것은 25가지. 모두 그림이나 형상, 색채가 특이하거나 디자인에 상상력이 녹아 있는 제품들이다.

특허품 가운데는 화투가 가진 ‘일본색’을 벗은 ‘한국적 미’가 돋보이는 제품도 많다.

개미마당이 지난해 6월 특허를 받은 ‘독도화투’는 기존 화투의 틀을 따르면서 내용을 뒤집은 게 특징. 1월 패에는 독도의 철새인 황로와 해송이 들어있고 2월 패는 일본을 상징하는 매화와 꾀꼬리 대신 동백꽃과 되새가 등장한다. 쌍피 2장에는 조선 후기 울릉도와 독도가 표시된 팔도 총도가 그려져 있다.

2004년 특허를 받은 ‘개벽 화투’는 8광의 달을 태극기로 바꾸고 황진이·진달래·까치 등 ‘한국적 미’가 녹아 있다. 1월부터 12월까지 패에 쥐·소·개 등 12지신을 형상화한 ‘12지 화투’도 인기를 끌고 있다.

〈오승주기자 fair@kyunghyang.com

※ 오승주 기자는 '승주나무'와 이름과 성이 같은 경향신문의 기자이며, 본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이런 글은 처음 적어보네^^

화투들 귀엽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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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은 '이'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말씀드린 다음에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이빨'이 의미폭이 넓어 '이'나 '치아'만으로는 담아내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무턱대고 '이빨'을 쓰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속어로 '이빨'은 말 잘하는 소위 '인문쟁이'를 일컫는 말도 됩니다.

그 '이빨' 중에 가장 위대한 이빨은 '맹자'였다고도 하지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가 '이빨'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나 '치아'의 인지도가 너무 낮기 때문은 아닌가 합니다.

익숙하게 사용하면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빨'이라는 의미에 '패러디'까지 더해서 사용하려면,

당당한 표준어인 '잇바디'를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잇바디'는 이가 죽 박혀 있는 열(列)의 생김새, 즉 '치열'(齒列)을 의미하는데

재미있게도 '이+(사이시옷)+body'라고도 부를 수 있겠군요.

게다가 '이빨'과 '잇바디'의 어감이 또 비슷하지 않습니까.

또 표준어이며, 사람에게 사용하기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이'의 친척이기 때문이지요)

'잇바디'를 사용할 것을 권합니다.

마태님처럼 유머러스하신 분들은 가운데 'ㅂ'발음을 강하게 하셔서

'이빠디, 이빠리'라고 하셔도 좋구요, '이빨'에 'y'만 붙이면 '이빨이, 이빠리'가 되니까,

'바리(body)'의 멋진 원음이 되지 않겠습니까?

언어사용을 '표준어'의 틀에서 사용하려는 것은 어찌 보면 완고해 보이기도 하지만,

표준어의 경계에서 '줄타기 놀이'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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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2-25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감사합니다. 퍼갈께요^^ 이제사 봤답니다

승주나무 2006-02-27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군요. 사실 오늘 좋은 소식과 동시에 씁쓸한 소식이 있어요. J일보 지역 섹션에 제 글이 연재된다는 사실을 들었고(지난 번에 당한 것이 있어서 발표는 안하지만서두^^) 씁쓸한 소식은 제 이름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권영민이라는 비평가가 운영하는 공간에 우리 회사 '자료제공'으로 올라간다는 사실이죠. 스토리셀러 아시죠.. 이현세 사단에 있는 이름 없는 스토리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