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최초논술극화




어느덧 논술은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화두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논술에 대한 명쾌한 답을 들을 수가 없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논술은 그저 입시용 시험의 한 부분으로 ‘처리’되어버리는 듯하여 답답하기만 하다. 이러한 모습들을 돌이키며 하나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정보전달식이 아니라 ‘대화’와 ‘문학’이라는 소재를 빌려 논술쓰기의 어려움을 긁어주고, 단계별로 논술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길을 찾아보려 한다. 이제 논술의 벽에 처음 부딪치는 학생들은 큰샘이와 그의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큰샘이의 논술일기

1.대한민국 고등학생 큰샘이의 논술실태



큰샘이는 이제 막 고등학교 2학년이 된다. 나름대로 글에는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는 ‘예비 작가’이기도 하다. 백일장에서 받은 수많은 상장들이 그 아이로 하여금 과신(過信)을 불러왔을까. 아무튼 그의 첫 논술문은 아래와 같다.


<논제>현대사회에서 나타난 가족의 문제와 그 사례들을 검토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시오. <500자 내외>


 

바람샘    

 

큰샘이는 너무 많은 말을 하려다 보니, 정작 할 말을 놓치고 있는 것 같구나.

큰샘이     

 

무슨 말씀이신지요?

바람샘    

 논제가 요구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나타난 ‘가족’의 문제이지 ‘현대사회’의 문제가 아니었어. 그런데, 큰샘이는 ‘현대사회’에 너무 많은 말을 하다보니 ‘가족’의 문제와 그 해결책에 대해서 심도 있게 서술을 할 수 없었던 거야.

큰샘이     

 

그래도 ‘가족’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현대사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바람샘    

‘현대사회’는 ‘도입부’로만 처리해도 될 것 같아. 바로 ‘주 문제’인 ‘가족’으로 넘어가야지. ①의 부분을 봐. 전체 글의 반을 차지하지. 서두로서도 이것은 너무 긴 분량인 것 같구나. 글쓰기에 자신이 없거나, 자신감이 지나친 사람은 서두를 길게 달기 마련이란다.

큰샘이     

 

그럼 저는 ‘논제 이해’부터 잘못된 거네요?

바람샘    

옳지. 참 옳은 지적이야. 목표물에 맞게 조준을 해야 명중할 수 있는 것처럼, 논제를 잘 잡아야 올바른 논술이 되는 거야. 그런데 대개의 학생들이 ‘조준’도 하지 않고 그냥 ‘휘두르는’ 경향이 많아. 짧은 시험 시간이 주는 강박관념 때문이지. 하지만 논제를 잘 이해하는 데 제대로 공을 들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거야. 그리고 ②와 같이 연결어가 너무 빈번하게 쓰이면, 글이 산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1시간 수업을 하면서 매번 ‘선생님 질문이 있어요’ 하면서 질문하면 귀찮겠지. 글을 쓰다가 ‘때문에’나 ‘따라서’를 자꾸 쓰면 도대체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곤란하지 않니?

큰샘이     

 

그래도 연결어를 빼버리면 이상하지 않나요?

바람샘    

네가 자신의 글을 잘 알고 있어야지. 하나의 긴 글은 여러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각각의 문장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의미를 가질수록 좋단다. ‘이러한’이 나오면 다시 앞의 글을 확인해야 하지 않니. 이처럼 도움이 되지 않는 연결어는 없음만 못해.

큰샘이     

 

……

바람샘    

일일이 지적하면 끝도 없을 것 같고, 단적인 문제만 이야기하자면 글 전체가 추상적이고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언어사용에서부터 논리에 이르기까지 완결성이 없는 것 같아. 이런 글은 글에 전혀 자신이 없거나, 과신하는 경우 생기지. 너는 너무 자신의 글솜씨를 과신하는 거 아니니? 마치 소설을 쓰듯이 일필휘지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구나. 그러니까 좀 심하게 말하자면 논술의 ‘논’자도 모른다고 해야 할까?

큰샘이     

 

너무 어려워요. 그냥 자신의 생각을 문제에 맞게 쓰면 되지 않나요?

바람샘    

아무래도 논술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구나. 한 가지만 물어보자. 논술이 다른 과목처럼 지루하거나 쓸데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니?

큰샘이     

어렵고 난해해서 그렇지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리고 논술은 어쨌든 내 생각을 쓰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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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6-03-08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라서 참 올리기 힘드네여^^;

진주 2006-03-09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샘과 큰샘의 주고받는 대화-글씨가 좀 작게 나와요. 물론 제 컴에서 키워 읽으면 되지만. 서체가 조금 약한 느낌 들어요.

승주나무 2006-03-0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알겠습니다. 명확하게 수정하겠습니다.^^

마태우스 2006-03-18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결어가 많으면 안좋다는 거 저도 동감입니다. 글구... 큰샘이가 쓴 앞부분이 좀 지리멸렬하네요^^ 선생님 말씀대로 너무 많은 말을 하려고 해요

승주나무 2006-03-19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완벽한 동일시로군요. 음.. 좀더 생명력과 재미를 덧붙여야겠어요. 극화인 만큼^^ 제보 기다립니다.
 



큰샘이

이 글의 주인공, 어릴 적부터 동시를 쓰는 습관이 있어 감성적 사고는 발달되어 있으나, 논리적 사고력은 극히 부족한 학생. 학교에서 분기마다 논술을 써서 외주 첨삭을 받는 데, 그때마다 '논술이 아니라 산문이다'는 평을 듣고 침울해 하고 있다.




바람 선생님(승주나무)

정열적인 문학가 기질과 이상적인 낙천가로 큰샘이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하지만, 두 분 선생님과 의견 대립이 항상 있으며, 특히 들꽃 선생과는 사사건건 부딪힌다. 큰샘이가 따르는 성생이다. 한번 필 받으면 무아지경 상태에서 글을 적는 광적인 모습을 가끔 보인다. 트레이닝복이 컨셉이다..


그 외 큰샘이의 친구들(이미지 공사중)

지성이

박지성과 공교롭게 이름이 같다. 매일같이 프리미어리그 게시판에 들어가서 정보를 캐오고 친구들에게 박지성에 관한 소식을 전하는 전령사이다. 호쾌하고 낙천적이나 공부는 하기 싫어한다. 큰샘이와 마음이 통하는 캐릭터로 많은 문제들에서 큰샘이의 대화상대자가 된다.

 

해영이

우등생이며 현실가이다. 어떤 과목이든 적응을 잘 하며, 들꽃 선생님과 죽이 잘 맞는다. 논술 답안을 작성해도 좋은 성적을 받으며 칭찬을 듣지만, 큰샘이의 비판만을 피할 수 없다. 창의적 사고능력이 결여된 대신에 어떻게 논술문을 작성해야 좋은 점수를 받는지 잘 아는 학생이다. 서울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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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6-03-09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어머 재미있겠어요!
저는 걷는 여자 2로 시켜 주세요^^

승주나무 2006-03-09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이벤트 시작했습니다. 퍼날라 주실거죠^^?
 

담백한 표현에 참신한 생각 담자

권영민의 논술이야기 1화.
제이의 논술일기 2편.논술을 처음부터 봐야겠구나

잔뜩 풀죽은 표정의 제이가 찾아왔다.

권부장 : 잘 있었니, 제이야?
제이 : 숙제로 제출했던 논술문 첨삭지도를 받고 오는 길입니다. 온통 빨간 수정펜 첨삭이 가득한데, 좋은 말은 하나도 없어요. 나름대로 글 잘 쓴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 책 읽기에도 공들이는데 논제만 받아들면 스트레스가 쌓여요. 정말이지, 전 논술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아요.
권부장 : 논리적 사고 방법을 깨닫기 전에 글쓰기 요령에만 익숙해진 건 아닐까? 무엇이든 기초부터 다지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단다. 어디, 첨삭문을 좀 보자.


'생각난 대로 적어낸 것은 논술이 아니라 낙서입니다. 논술문의 요건이 적시되도록 글을 풀어가시기 바랍니다.'


중앙샘 : 첨삭지도가 좀 거칠게 표현되긴 했구나, 제이가 주눅 들만도 하네. 하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슷한 실수를 한단다.
권부장 : 논리적 사고를 풀어내는 논술은 그 글을 읽는 상대방, 예를 들면 출제위원을 설득하기 위한 글이라는 걸 늘 기억하렴.
중앙샘 : 많이 볼 것도 없이 첫 문단부터 문제가 있구나. 논제가 뭐였지?
제이 : '과학자가 우선적으로 가치를 두어야 하는 과학과 사회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논하시오'였어요.
중앙샘 : 네가 쓴 논술문 중에 이 부분을 나누어서 보자꾸나.

 

① <500년 전과 지금 인류가 가진 보편적 상식이 서로 다른 이유는 과학의 발전에 근거한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우주가 4개의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00년 전의 지배적인 패러다임과 대항하며 발전해오는 과정에서 과학은 자연에 대해 좀 더 사실에 가까운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② <그리고 그 지식을 통해 더 효과적인 기술의 발전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영역에서도 발생됐다. 무기류의 발전, 생명윤리에 저촉되는 인간복제의 위험 등이 그 예이다.>

 

중앙샘 : ①만을 보면 고등학생이 아니라 전문가가 쓴 글인 것 같아. 하지만 좋은 논술문이란 어려운 단어를 쓰고,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 방식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란다. 제이의 글은 다소 '현학적'이고 어느 정도 글쓰기 훈련이 된 사람의 '오만함'마저 느껴지는구나.
권부장 : 논술을 쓸 땐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집중해야지, 그 메시지를 '꾸미는데' 집중하면 안된단다.
중앙샘 :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이 논술문을 첨삭하는 선생님도 제이 못지않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야. ②에는 논제와 상관없는 '기술'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 대개 학생들은 '과학'과 '기술'을 혼동하는데 그것은 별개의 개념이야. '자유'와 '권리'만큼이나 그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어.
권부장 : 가장 큰 문제는 제이 자신이 아는 지식을 화려하게 나열하려는 욕심에 있는 게 아닐까? 아직도 제이의 논술은 '논제'와 상당한 거리가 있단다.
제이 : 그러니까 '지식'보다는 솔직담백한 저의 '논리적 생각'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중앙샘 : 옳지! 이제야 좀 이해하는구나. 고등학생의 글은 고등학생다워야 하고, 고등학생만의 참신한 생각이 드러난 논술일수록 채점위원들을 감동시킨단다. 논술 역시 하나의 글이고 감정과 인격이 들어가 있지. 채점위원들은 논술을 쓴 학생의 '논리'뿐만 아니라 '인성'도 중요한 항목으로 생각한단다.
제이 : 잘 알겠어요. 그러고 보니 제가 너무 '어른스러운 글'을 쓰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 제이의 일기

"고등학생은 고등학생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는 말은 내게 참 필요한 말인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내가 가진 지식을 친구들 앞에서 뽐내거나 사람들을 가르치려 들었던 것 같다. 권부장님과 중앙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나서 내 글을 다시 보니, 나의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만 가득했다. 첨삭 선생님의 지적을 원망할 것은 하나도 없을 것 같다. 어쨌든 논술도 '나의 이야기'니까.

2006.03.07 11:00 입력

링크주소 : http://brand.joins.com/200603/07/200603071100235773l000l800l8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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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6-03-07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전에는 지방지라고 하시더만, 중앙일보셨군요! 논술을 지도하려면 보통 내공 가지고는 안되는데, 님의 정체가 정말 궁금해지네요! 알라딘엔 정말 별의별 고수가 다 있어요

승주나무 2006-03-07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 님 // 처음 뵙습니다. '지방지'가 아니라 '지역지'라고 했던 것 같은데요^^
본지는 아니고, 프리미엄 강남 섹션입니다.

마늘빵 2006-03-07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내공이 장난 아니세요. 20대라시면서. 중앙일보에 논술 지도를 하시려면 대단하신건데. 한수 지도 부탁드려욤.

승주나무 2006-03-07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 님//아니에요. 제 실력으로 어떻게 중앙일보에 입성할 수 있었겠어요. 다행히 우리 회사가 중앙일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다가, 지면이 있어서 기획하고 넣어 본 건데. 선택이 된 거죠.
다만 즐거운 것은, 애초에 중앙일보에서 'top 기사'로 다루려던 건 아니었는데, '콘텐츠'가 재밌다고 탑으로 올렸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공동기획이 된 거구요. 암튼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아요^^

2006-03-07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6-03-08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 님//제가 한 방 먹었군요^^ '안녕하십니까'를 쓸 걸 그랬습니다. 암튼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승주나무입니다.

비록 회사 이름으로 나가는 거지만, 중앙일보와 공동으로 '논술극화'를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2월 28일에 첫 회가 나갔구요. 오늘 2회가 나갔습니다.

중앙일보 프리미엄지 강남섹션을 보시는 분들은 원고를 보았을 텐데요,

다른 분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여기에 원고를 올립니다.

첫 회는 홈페이지에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관계로 스캐너로 복사해서 올려야 할 것 같고

일단 인터넷에 소개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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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3-07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것도 하시네요. 대단해요.

승주나무 2006-03-07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 님// 힝. 부끄럽사와요^^

마늘빵 2006-03-07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님의 연세가 궁금해졌어요.

승주나무 2006-03-07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파릇파릇한 이십대입니다^^

아영엄마 2006-03-07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승주나무님이 이십대이셨어요?? @@

승주나무 2006-03-07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 님// 안녕하세요? 예, 이십 대의 생기발랄한 문체가 돋보이지 않던가요(퍼퍼퍽!!)
유통기한은 올해까지입니다^^

승주나무 2006-03-08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뽀뽀님 // 예, 98년 한메일 처음 나왔을 때 만들었습니다. 문학동아리에 있어서 '다작'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했는데, 지금도 안 어색합니다^^
 
 전출처 : 딸기 > 만평 파문, 총정리.

전세계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의 이른바 ‘무하마드 만평시위’에 대한 뉴스가 한동안 시끄럽게 외신을 장식했다. 이슬람권의 중심인 아랍국들에선 시위가 어느 정도 사그러들었지만 파키스탄과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는 무슬림들의 항의시위와 유혈충돌이 그치지 않고 있다. 석달 가까이 계속된 시위로 곳곳에서 사망자가 속출했고, 결국 최대 피해자는 유럽인들이 아닌 무슬림들이 되고 있다.

만평, 항의, 폭력, 유혈사태. ‘비무슬림’의 시각에서 보기에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격렬한 만평 시위는 왜 일어난 것일까. 무슬림들은 ‘별것도 아닌’ 신문 만화에 어째서 그렇게 거세게 항의하고 나선 것일까.


# ‘표현의 자유’와 센세이셔널리즘을 오간 언론들

이 사건을 바로 보는 첫걸음은 원인이 된 만화들을 보는 것이다. 만평 파문을 촉발한 것은 덴마크 일간지 율란츠포스텐이다. 신문에는 무함마드를 테러범으로 암시한 그림을 비롯해 만화 12점이 실렸다.

‘어째서 기분나빠하는지’를 알려면 과연 이것들이 ‘어떤 그림들인지’를 알아야 한다. 한국의 무슬림 인구가 10만 명에 이르지만(한국이슬람중앙회 통계) 한국 사회에서 무슬림들의 발언권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 한국의 일부 언론은 무하마드 만평을 거리낌 없이 지면과 화면에 내보냈지만, 국내 언론에 공개된 만평은 문제가 된 12점 가운데 가장 ‘덜 모욕적인’ 무하마드의 얼굴 그림 정도였다(‘덜 모욕적인’ 것이었다고는 하지만 무하마드의 머리에 폭탄 모양의 터번을 얹었다는 것만으로도 무슬림들이 불쾌하게 여기기에는 충분했다).

이슬람에서 예언자 무하마드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 자체가 신성모독이라는 사실은 이미 여러 언론에서 짚었다. 그러나 엄격한 신성모독 기준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12점의 만평들은 노골적으로 이슬람을 모독하기 위해 그려진 것이라는 혐의가 짙다.

“이제 테러는 그만해, 너희들에게 줄 처녀가 모자라잖아.”

서방에 맞선 무자히딘(전사)들에게 예언자 무하마드가 “처녀가 모자란다”고 말하는 내용을 그려놓고서 “모독할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니, 무슬림들에게 그런 해명이 받아들여질 리는 없지 않은가. ‘처녀들’은 꾸란(코란)에서 천국을 묘사할 때 명시돼 있기 때문에 그것조차도 유럽인들의 횡포로 볼 수만은 없겠지만,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경전을 악용해 서방에 맞선 모든 투쟁을 희화화하는데에 동의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 만화들을 앞다퉈 실은 뒤 유럽 언론들은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물론 유럽 전체가 ‘표현의 자유’ 옹호론자들로 뒤덮여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표현의 자유’는 정치적, 사회적 혹은 윤리적인 이유로 종종 제한을 받아왔으며 ‘무제한적인 표현의 자유’가 용인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만평 항의시위가 한창이던 2월20일 오스트리아 법원은 나치 옹호론자였던 영국 역사학자 데이비드 어빙(67)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어빙은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부정하는 것을 범죄행위로 규정한 법에 따라 지난해 체포됐다. 법정에서 어빙은 자신의 견해가 잘못됐음을 시인했지만, 재판부는 ‘잘못을 시인하는 태도가 진실해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 뒤 오스트리아 학계에서는 학자들이 다양한 관점과 학설을 제시할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는 반발이 터져나왔다.

표현의 자유를 무제한적으로 인정해줄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해를 미치는 견해’를 발표하는 것에 제약을 가할 것인가. 각각의 주장은 나름의 논거를 갖고 있고, 제각기 타당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유럽(내지는 서방)의 태도가 무슬림들에게 극히 이중적으로 비친다는 사실이다. 홀로코스트를 부인할 자유는 없지만 무슬림들을 모독할 자유는 있다? 미국에 미운털 박힌 이란의 한 관영 언론이 ‘홀로코스트 만평’을 공모하겠다고 나선 것은 유럽의 이중 잣대를 비꼬기 위한 것이었지만, 서방(그리고 한국)의 몇몇 언론들은 이란을 우습게 묘사하는 데에 급급했다. 이란의 행동에 이스라엘은 ‘이란 폭격론’까지 주장했다.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은 이슬람권이 미국과 서방을 미워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국 언론들이 무하마드 만평을 경쟁적으로 싣는 가운데서도 영국의 가디언 같은 좌파 언론과 미국 워싱턴 포스트 등은 그림을 싣지 않았다. 이 신문들이 내세운 입장은 “다만 도발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만평을 싣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만평을 싣는 언론들의 행위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센세이셔널리즘에 치우쳐 있음을 지적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만평을 게재한 유럽 언론들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면서 신문판매고가 급증하는 상업적 효과를 거뒀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유럽 언론들은 무하마드 만평을 놓고 ‘표현의 자유’와 센세이셔널리즘 사이에서 줄타기를 벌인 셈이다.


# 뿌리깊은 이슬람 차별과 ‘이주민 몰아내기’

앞서 한국의 무슬림 수가 10만 명이라고 했지만 그 중 70%는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들이다. 유럽도 상황은 비슷하다. 2대, 3대 째 유럽에서 거주해온 무슬림 주민들도 있지만 1970년대 이후 건너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덴마크의 경우 인구의 3%인 17만 명이 무슬림인데 아랍계 이주민은 오히려 적고 터키와 파키스탄, 북아프리카, 이란 등지에서 온 노동자들이 많다.

이슬람에 대한 서방의 적대적인 인식의 뿌리를 찾기 위해 십자군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다. 무슬림 주민들이 율란츠포스텐의 만평에 격분한 이유는 ‘표현의 자유’ 이면에 있는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때문이기도 하다.

덴마크의 경우 국민들의 종교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돼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종교가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입헌군주국인 덴마크는 루터파 복음주의를 국교로 규정해놓고 있다. 이밖에 기독교의 다른 종파나 유대교는 헌법상 지위를 보장받는다. 그러나 무슬림은 그렇지 못하며, 교회가 정부 산하 기구의 하나이기 때문에 출생·사망신고를 교회에서 해야 한다. 파키스탄 출신으로 덴마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코미디언은 지난달 5일자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이 나라에선 개도 매장지가 있는데 무슬림에겐 이슬람식 매장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썼다.

이런 차별의 일선에 서있는 것이 바로 만평들을 게재한 율란츠포스텐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만평 파문은 유럽의 우파 신문들이 ‘몰고간’ 기색이 역력하다. 율란츠포스텐은 덴마크의 대표적인 우파 기독교 신문이고, 이슬람 문제가 아니더라도 도발적인 보도로 수차례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고 한다. 만평 게재에 항의하는 이들은 특히 덴마크에서 2001년11월 우파 정권(이 정권의 총리는 만평 파문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누차 말했었다)이 집권한 이래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 전반의 적대감이 커졌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율란츠포스텐 같은 우파 언론들의 부추김이 있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만평들을 실으면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던 프랑스수아르라는 신문은 발행부수 4만5000부의 작은 매체인데, 역시 센세이셔널리즘으로 벌이를 해온 우파 대중지로 알려졌다.

덴마크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백인 원주민과 무슬림 이주민들 간의 불화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재작년 무슬림 광신도가 테오 반 고흐라는 영화감독을 살해한 뒤 기독교도들의 반격으로 대대적인 ‘모스크(이슬람사원) 파괴’가 벌어졌다. 지난해 영국 런던에서 발생한 7·7테러와 프랑스 파리 소요사태에서 보이듯 유럽 내 무슬림 차별은 이미 심각한 상태다. ‘백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무슬림들’에 대한 적대감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그것을 상업주의 언론이 돈벌이에 이용하려 하면서 만평 사태가 불거져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유럽 자체의 문제점 뿐 아니라 이슬람권 전역의 반미 감정이 반(反)서방·반기독교 감정으로 확산되면서 폭력사태로 치달은 측면도 물론 무시할 수는 없다.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으로 이슬람권에서 반미 감정이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 만평 파문에서 미국은 한 발 비껴서 있었으며 당사국이 아니었지만, 무슬림들의 분노는 결국 미국을 향해 갔다. 인도네시아 미국대사관이 공격을 받았고,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는 미군 기지 앞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3월4일 부시대통령의 파키스탄 방문 때에도 격렬한 시위가 계속됐다.


# 이슬람 세계 내부의 요인들

앞서 무슬림들이 무하마드 만평에 격렬한 반응을 보인 이유들을 나열했지만, 이슬람권 내부의 문제도 간과할 수는 없다. 자신들의 종교를 모독한 데 대한 이슬람권의 대응은 성숙하지 못했고 폭력적이었다. 일본에서 혐(嫌)한류 만화가 출간됐다고 해서 한국인들이 일본 기업 건물을 부수거나 서로 죽고 죽이진 않는다. 만평 사태는 분명히 이슬람권의 전근대성과 고질적인 모순들을 반영하고 있다.

만평을 놓고 두드러지게 독설을 내뱉었던 것은 이란이었고,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라크 등 이슬람권 전역에서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그러나 가장 극렬한 반응을 보인 곳, 아직까지 시위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곳은 파키스탄이다. 파키스탄은 인구로 보아서는 인도네시아에 이어 2위 규모의 이슬람국가이지만 이슬람권에서는 ‘변방’에 속한다.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만평 폭력시위가 지역 내 억압구조와 관련돼 있음을 시사한다.

파키스탄은 아프간전쟁 때 미군 기지였고 지금도 알 카에다 체포 작전이 전개되고 있다. 부시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파키스탄 정부군은 대대적인 탈레반 공격작전을 벌였으며 4일에는 아프간 접경지대에서 정부군이 ‘탈레반 잔당’ 56명을 사살했다.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아프간 전쟁 때 기지사용을 허용하면서 미국으로부터 30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받았다. 하지만 국민들에게는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으며 무샤라프 정권은 이슬람 세력을 계속 탄압하고 있다. 미군과 정부군의 `탈레반 제거작전'으로 민간인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 파키스탄에서 가장 격렬한 시위가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만평 항의시위가 유혈극으로 번져 기독교·무슬림 주민 간 학살에 가까운 참사가 일어난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는 독재정권이 종교 갈등을 부추기며 국민들을 억압해왔던 곳이다. 사니 아바차를 비롯한 독재자들은 남부 기독교도들과 북부 무슬림들을 이간질시키며 정권을 유지했다. 아바차 정권이 무너지고 올루세군 오바산조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권이 들어섰지만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만평 사태가 일어난 뒤 덴마크 대사관 방화사건이 벌어진 레바논은 1980년대 기독교 세력과 무슬림 세력이 내전을 벌였던 곳이다. 독재정권의 압제를 받아온 이슬람 국가들에서 국민들은 선거와 같은 절차적 민주주의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역사의 교훈으로 새겨 왔다. 이런 나라들에서 증오의 화살이 독재정권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해준 미국과 서방을 향하게 되고 폭동에 가까운 대중 시위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

한국 사회는 어떤가. 이슬람이라는 특정 종교에 대한 탄압이라든가, 이슬람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여태까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수치상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무슬림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유럽이나 마찬가지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측면에서는 유럽보다 낫다고는 자신하기 힘들 것 같다. 한국의 언론이 유럽의 상업주의 언론보다 낫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듯하다.

표현의 자유, 이주 노동자, 종교 갈등,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해 한국 사회는 격렬한 논쟁에 부딪친 적도 없고 해법을 찾기 위해 사회 전체가 공동의 노력을 기울인 경험도 적다. 유럽에서 벌어진 문제들에 대해 한국인들도 ‘우리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고민을 해볼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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