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샘이의 논술일기

5. 요약은 그냥 줄이면 되는 거 아닌가요.


바람샘이 교실 앞에 도달했을 때, 고함소리가 오가는 것을 들었다. 문을 열었을 때 세 친구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지성이는 씩씩거리기까지 했다. 바람샘은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얘들아. 왜 그렇게 싸우니?"

“해원이는 고집불통이에요?”

지성이가 감정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무슨? 너희들이야말로 고집불이지.”

해원이는 지금이라도 당장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기세다.

“어찌된 영문인지 내게 좀 말해보려무나.”

바람샘은 차분한 어조로 친구들을 설득하면서 대화를 이끌어내려고 하였다.


요약에 대한 오해


“오늘 배울 부분이 요약에 관한 거잖아요. 요약이 뭐에요. 한마디로 긴 글을 짧게 줄인다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해원이는 ‘단순히 줄이기만 하는 것은 요약이 아니다’고 우기는 거에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새로운 글을 하나 쓰고 말지, 뭐 하러 요약을 하나요? ‘요약은 요약일 뿐인 거에요.”

지성이가 장단 일장을 늘어놓았다.

“큰샘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바람샘은 사건의 전모를 다 알아차린 듯이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큰샘이에게 물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해원이 말처럼 요약이 제시문과 ‘다른’ 글이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의문이에요. 그렇다면 제시문과 요약문의 연관성은 없어지는 거잖아요.”

큰샘이는 지성이처럼 해원이의 주장에 반대하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큰샘이도 요약에 대한 개념파악은 아직 안 되고 있다는 것을 바람샘은 깨달았다.

“얘들아 잘 들어보렴. 요약이 단순히 줄이기만 하는 거라면 왜 시험문제로 내겠니. 글자 줄이기는 초등학생도 할 줄 안단다. 최소한 요약문에서는 요약한 이의 언어로 표현돼 있어야 하는 거야.”

“그 ‘언어’라는 것은 제시문의 ‘언어’와는 다른 건가요?”

큰샘이가 궁금한 듯 물었다.

“예컨대 지성이와 큰샘이는 매우 친한 친구지. 그런데 어느 날 지성이가 큰샘이의 말도 대놓고 무시하고, 말꼬투리마다 딴지를 건다고 하자. 그러면 너는 이 상황을 어떻게 표현하겠니?”

“‘지성이가 내게 뭔가 화가 잔뜩 난 모양이다’ 하고 생각할 거에요.”

“그래, 그게 바로 ‘요약’이란다. 지성이의 행동을 하나하나 묘사하지 않고, 지성이가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너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게 ‘요약’인 거지.”

바람샘은 지성이와 큰샘이의 궁금한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내가 뭘 어쨌다고…….”

지성이는 자신을 예로 든 것이 썩 달갑지 않다는 듯 얼버무렸다.

“지성이 네가 자꾸 성질을 부려서 그런 거 아냐!”

큰샘이가 지성이를 잔뜩 놀려준다. 지성이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요약문도 하나의 완결된 글이다


“지성아, 안 좋은 예를 들어서 화 많이 났니?”

바람샘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성격이 좀 급한 것 같아요.”

지성이는 자책 반 실망 반의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그게 지성이의 매력이잖니. 안 그러니 얘들아?”

친구들은 입가에 웃음을 보이며 말없이 끄덕였다. 바람샘의 윙크 암호를 보면서.

“요약 자체도 하나의 완결된 글이므로 주장과 근거, 인과관계 등이 분명하게 표현되어야 해. 한마디로 ‘새로운 문장’이 나와야 하는 거야. 이것을 ‘재구성’이라고 하지.”

“그러니까 제시문을 토대로 요약문을 작성하지만, 요약문 자체는 제시문과 떼어놔도 좋을 만큼 독립된 글이라는 뜻인가요?”

“음, 해원이가 잘 지적했구나. 엄격히 말하면 요약문과 제시문은 별개의 글이지.”

“그리고 그리고 나의 ‘언어’로 표현된 요약문을 통해 논술 채점위원들에게 제가 제시문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겠네요.”

“그래! 큰샘아. 궁극에 가서는 그렇게 해야겠지.”

“그러니까 전술이해력이 바탕이 되어야 창의적인 플레이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이군요.”

“???”

지성이의 ‘축구 언어’에 다들 말문이 말혀 있었는데, 특히 해원이는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지성이는 굉장히 창의적인 언어를 구사한단다 애들아. 축구에서는 ‘전술’이라는 게 있는데 전쟁의 ‘작전’과 같은 개념이지. 이기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야. 하지만 선수가 전술을 확실히 이해하고 난 바탕 위에서 ‘득점’의 기회를 맞을 수 있단다. 여기서의 전술은 논술의 ‘제시문’이라고 할 수 있고, 창의적인 플레이는 ‘창의적인 요약’이라고 할 수 있지. 지성이의 비유가 매우 훌륭했다.”

지성이는 바람샘의 칭찬에 단번에 기가 살았다. 바람샘은 지성이를 가르치기 위해 ‘축구’에 취미를 붙이고, 축구 관련 글들을 찾아다녔기 때문에 지성이의 ‘창의적인 표현’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약은 단순 요약에 머무르지 않는다


“앞서 우리가 이야기했던 요약의 특징들을 이해했다면, 요약이 ‘요약’만으로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도 알겠지? 출제되는 문제들을 보아도 ‘단순 요약’을 요구하는 것은 거의 없거든. 제시문을 요약하고 이에 대해 “비판하라”든가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의미를 밝히라”는 등의 응용 문제가 출제되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요약’이 바탕이 되어야 함은 자명한 이야기 아닐까.”

“그러고 보니 단순 요약을 묻는 문제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큰샘이가 대답했다.


요약하기 tip-1(단문부터 차근차근)


“선생님, 그러면 요약하기는 어떻게 연습해야 하나요?”

바람샘의 칭찬을 들어 잔뜩 신이 난 지성이가 먼저 물었다.

“지성이가 요약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처음부터 전체의 문장을 한꺼번에 요약하려고 하기 때문이야. 요약하기 연습도 단계가 있어. 단계별로 올라가면 요약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단다.”

“그럼 저는 맨 첫 단계부터 해야겠네요.”

“그래. 그런 자세가 좋은 거야. 천리 길도 첫걸음부터 떼야 맞지. 먼저 제시문을 문단 단위로 끊고 번호를 매겨 보는 거야. 그리고 번호마다 각각 짧은 글로 요약을 한단다.”

“너무 복잡한데요. 그러니까 긴 글을 짧은 단위로 나눈 다음 하나씩 요약하라는 말인가요.”

“잘 이해했구나. 그런데 짧은 요약이 완결된 문장일 필요는 없어.  명사나 키워드 단위로 표시했다가 마지막에 문장으로 정리하면 된단다. 그것이 익숙해지면 점점 큰 단위로 나누다가 마침내 글 전체를 통째로 요약할 수 있는 거지.”

“통째로 요약하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릴 것 같아요.”

“너희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 게으름피지 않고 열심히 하면 그만큼 시간은 단축되는 거 아니겠니?”


요약하기 tip-2(여러 번 요약해보기)


“똑같은 책을 두 번 읽은 적 있니?”

바람샘이 큰샘이에게 물었다.

“예. 어릴 적 동화책을 읽었을 때 재미있어서 여러 번 읽어 봤고요. 최근에는 어려운 책을 두 번 읽었던 적이 있어요.”

“그래, 읽을 때마다 같은 느낌이 들었니?”

“아니요. 읽을 때마다 새로워요. 내가 이 책을 읽었었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새로울 때도 있고요, 어떤 때는 읽으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을 발견하기도 해요. 그런데 선생님. 이것이 요약하기와 관련이 있나요?”

“물론 관련이 있지. 쓰는 것도 마찬가지란다. 어제 쓸 때 다르고, 오늘 쓸 때 다르단다. 하나의 제시문을 여러 번 요약할 수도 있고, 요약문을 다시 요약할 수도 있지.”

“요약문을 요약하고, 또 그 요약문을 요약하면 글자가 모두 없어지겠군요.”

지성이가 끼어들어 재치 있는 농담을 던졌다.

“하하하. 그렇지는 않단다. 중심 문장과 키워드는 항상 따라가게 되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줄이지 못할 때까지 요약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여러 번 요약하는 이유가 뭐죠?”

해원이는 여러 번 요약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은지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한 번 요약한 문장이 완벽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야. 너희들이 요약했던 글들을 비교해보면서 잘못된 점을 고쳐나가면 군더더기가 없으면서도 핵심을 짚는 ‘완벽한 요약문’을 작성할 수 있을 거야. 지성이는 단문 중심의 요약을 한 번 해보고, 해원이는 하나의 글을 여러 번 요약해보렴. 그리고 큰샘이는 요약한 문장을 다시 요약하는 연습을 해보렴.”

지성이는 처음부터 한꺼번에 요약하는 습관을 들여서인지 요약문이 탄탄하지 않았다. 해원이는 창의력이 약간 부족기 때문에 바람샘은 여러 번 요약기를 통해 자기 글의 특징들을 찾아나가기를 바랐다. 바람샘은 친구들의 저마다 다른 특성을 감안해 다른 방법으로 요약 연습을 할 것을 주문했다.


큰샘이의 일기

 

요약이 논술에서 이렇게 중요한 것인지는 오늘 처음 알았다. 그런데 이제까지 왜 요약을 단순히 ‘글자 수 줄이기’로 알고 있었을까.

“요약은 제시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대로, 마치 계단을 밟아나가듯 ‘차근차근’ ‘요약하기 훈련’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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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2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6-03-2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 님//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3조 3천억.. 폭력 치고는 너무 약한데?
누가 책정한 거지? 건실한 가정의 구성원이 책정했나?
단가를 너무 낮게 잡은 게 분명해..

‘가정내 음주폭력’ 환산비용 한해 3조3천억
입력: 2006년 03월 19일 18:19:06 : 2 : 0
 
음주로 인한 가정폭력 피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3조2천9백7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19일 전국의 성인 1,000명을 상대로 WTA(Willingness to accept·가정폭력에 대해 보상받을 경우 수용할 수 있는 금액)를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WTA 방식은 ‘댁의 가정 내에서 폭력이 발생해 보상을 받을(할) 경우 1년에 얼마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통해 각각의 폭력 행위에 대한 보상액을 산정한 뒤, 전국의 가정내 음주 폭력 발생률 등을 대입해 비용을 산출하는 것. 폭력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물건 던지기, 밀치기, 뺨 때리기, 정신적 모멸감 주기, 발로 차기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됐다.

조사결과 음주로 인한 가정폭력 비용은 40대 가장이 있는 가정에서 가장 많아 전체 금액의 절반에 육박하는 1조5천2백29억원으로 집계됐다. 다음으로 ▲30대(1조1천2백74억원) ▲50대(4천2백20억원) ▲20대(1천2백1억원) ▲60~65세(1천52억원) 등의 순이었다.

아울러 음주와 가정폭력은 밀접히 연관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비음주자가 가정폭력을 일으키는 가능성(위험도)을 1.0로 잡았을 때 1주일에 소주 1병을 3~4일 마시는 상습 음주자가 가정폭력을 일으킬 위험도는 2.883로 3배 가까이 높았다. 반면 소주 1병씩 1주일에 1~2일 술을 마시는 음주자는 가정폭력 위험도가 1.025로 비음주자와 큰 차이가 없었다.

〈김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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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항상 할아버지 할어니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다가, 오늘은 내 앞에서 임산부 아주머니가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자리를 양보했다. 

보통 할아버지들은 고맙다는 표정을 짓지만, 당연하다는 듯 앉으시는 분들도 꽤 많다. 이 분은 굉장히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주 고마워했다. 내가 미안할 정도로.

임산부는 앉아있기도 힘들어 보였다. 내가 만약 아래와 같은 글을 읽지 않았다면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땅의 '노약자'에는 '노자'와 '약자'로 나누어야 하고, '약자'에게도 배려를 해야 한다는 소설가의 주장은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 '임산부석'이라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임산부 아주머니들.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우리 사회가 좀더 커서 당신들을 배려할 수 있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기다려 주세요.


[낮은 목소리로] 임산부, 노약자석 앉아도 될까
입력: 2006년 01월 06일 18:01:11 : 49 : 2
 
임신 7개월에 접어든 이후 출근을 위해 지하철을 기다릴 때마다 마음이 비장하다. 노약자석에 빈자리가 있다면 앉을 것인가, 말 것인가. 괜히 앉았다가 아침 댓바람부터 욕이나 먹는 건 아닐까. 두렵고 긴장된다. 좌석 이름은 분명히 ‘노약자, 장애인, 임산부 전용석’이지만 그 자리에 임산부가 앉으면 시선이 곱지 않다. 배가 불러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요즘처럼 옷을 두껍게 입는 겨울에는 살이 찐 건지, 임신을 한 건지 어지간한 만삭이 아니고서야 앉은 모습으로 구별도 힘들다. 한 후배는 8개월 즈음에 부른 배를 부여잡고 앉았다가 웬 어르신에게 머리를 쥐어박혔다.

지난 가을 어르신 모임을 취재할 기회가 생겼다. 대화중에 무심히 노약자석에 앉는 임산부에 대해 여쭤보았다. 단박에 ‘싸가지’라는 표현이 튀어나왔다. 좌석 표시를 ‘경로석’으로 바꿔야 하며 ‘임신 따위’ 했답시고 젊은 것들이 앉아서는 안 된다며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어르신들 눈총에 주눅들어-

그런데 심보 고약한 나는 그날 이후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전용좌석이 비면 반드시 앉아서 간다. 고약한 입덧으로 한여름에 마스크 쓰고, 10㎏씩 쭉쭉 빠지느라 서 있을 기운이 없어 출입문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도 넘보지 못했던 자리다. 하지만 이제 오기가 생긴다. 내가 나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무겁기도 하지만,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괜히 이리저리 밀리다가 배라도 부딪치면 큰 일이다.

좁다고, 불편하다고 사정없이 배를 밀쳐놓고도 왜 바쁜 시간에 부른 배로 나와서 불편하게 하느냐며 오히려 짜증내는 사람들도 있다. 자기들이 아무렇게나 밀친 게 사람 배가 아니라 거추장스러운 가방쯤인 줄 아는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또한 알고 있다. 이 글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우습게 읽힐지. 남들 다 하는 임신 혼자서 위세 떤다고 혀를 차는 소리도 들린다. 저래서 여자는 안 된다고 할 것이다. 혼자만 애 낳느냐, 임신이 벼슬이냐 하는 말, 나도 누군가에게 했고, 누군가로부터 나도 들었다. 임신 중 상사의 폭언과 질책에 분개하면서도 임신으로 인해 떨어지는 내 노동력에 내가 절망하고, 다른 동료의 임신 사실에 괜히 긴장하게 되는 이중성도 괴롭다. 그래서 비장하게 앉아 놓고도 문이 열릴 때마다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아무래도 그 자리는 경로석이 맞는 것 같다.

자리 하나 가지고도 이러니 저출산 대안이니 모자보건법이니 하는 각종 임신출산관련 법규가 다 우습다. 출산이 코앞에 이르도록 그 많은 대안과 법규의 도움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고, 앞으로 상정될 법안에 힘입어 둘째를 가져야겠다는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지원책은 셋째부터 적용된다던가. 그렇다고 셋째 이후부터는 평생보장을 받는 정도도 아니다. 몇 푼 깎아 주는 혜택 받으려면 몇 곱의 돈을 더 벌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벌어야 할 의무를 면해줄 수 없는 정도의 지원이라면 차라리 내가 임신출산에 관계없이 당당하게 일이나 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자본주의 사회는 맞벌이를 하라고 하시는데, 임신을 하면 이게 너무 힘들어진다. 스스로의 건강 상태 때문이든, 주위의 압력 때문이든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진다. 직장에 다니는 아버지는 ‘어느 날 집에 가니 둘째가 있더라’는 농담이 가능한데, 직장에 다니는 어머니는 임신 육아 과정에 대해 한결같이 ‘이를 악물고 버텼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 버팀에는 그 자신의 사회적 인격에 대한 모욕을 참아냈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눈치와 모욕’ 언제 벗어날지-

저출산에 관한 정부 지원책이 발표될 때마다 두 아이를 둔 큰언니가 늘 하는 말이 있다. “기왕 가진 애들이나 포기하지 않고 낳아 기르게 해 주지.” 두 아이 모두 저체중아로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던지라 엄청난 병원비 앞에 포기하고 도망가는 부모들을 더러 본 모양이다. 한 명이라도 더 낳자는 대책도 필요하겠지만, 기왕 태어난 생명이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마음 써 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아울러 생명을 잉태했다는 이유로 축하와 눈치와 모욕을 동시에 받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좀 개선된다면 출산율 증가에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경향신문 칼럼, '낮은 목소리로', 한지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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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6-03-20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굉장히 충격적이어서 불쑥 댓글을 달아요. 저 칼럼이 아니라, 승주나무님의 글이요. 나이 많은 할아버지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임산부가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군요... 그 사실을 처음 깨달아서 너무너무 놀랐어요.

승주나무 2006-03-20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냐오 님// 안녕하세요. 저도 처음에는 충격적이었답니다. 임산부들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라주미힌 2006-03-20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백발 노인과 임산부에게는 양보하는데...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나보군요... 흠.

가넷 2006-03-20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황당하네요. 임산부가 얼마나 힘든데....

진주 2006-03-20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들이여, 세상이 바뀔 때까지 아이를 낳지 말자!!

진주 2006-03-20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의 저출산 때문에 걱정이라구요?
아직도 멀었습니다. 출산율 더 낮아져야 이 나라가 정신 차릴 거 같은데요?
어머니를 희생양으로 생각하는 건 전근대적 사고방식이에요.

딸기 2006-03-20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충격... 임신부가 당연히 노약자석에 앉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승주나무 2006-03-20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이 글을 읽고 부끄러웠는데, 올리고 나니 더 부끄러운 생각이 드네요.
솔직히 지하철 좌석에 앉고 가면서 사정권(?) 안에서 임신부를 본 것은 처음이에요. 그것이 처음인 이유는 이 글을 읽기 전에는 임신부에게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라주미힌 님//월드컵석달전 딸기 님// 제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답니다. 부끄럽게도..
담뽀뽀 님//젊은 남자들도 양보 안 하면 얄미울 테죠. 얼마나 얄미우셨을까. 그런데 '누나'라니, 남성분이셨군요^^알라딘에서는 성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아서.
Yaro 님//황당한 어르신들 의외로 많답니다. 오늘도 빈 칸에 쏙 끼어들고, 다 내리는데 밀치면서 내리고.. 어르신들이 좀 가르침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진주 님//어머니는 아주 오래전부터 희생양이셨고, 희생양을 자처하셨던 것 같습니다. 요번에 '정체성과 사랑'을 주제로 논제를 주었더니 한 기특한 학생이 '여성의 중년 우울증'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더군요.진주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 녀석이 자꾸 생각나네요.

글고, 잠깐 맞춤말!!
임산부가 맞을까요, 임신부가 맞을까요?
임산부(姙産婦) : 임부와 산부를 아울러 이르는 말.
임신부(姙娠婦) : 임부
이므로, 명확하게 부르기 위해서는 임신부라고 해야 합니다. 임부는 애가 아직 집에 있을 때의 어머니를 말하고, 산부는 애와 함께 가장 힘든 줄다리기를 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하더군요.
우리 말에서 이런 것 많은 것 같아요.
보부-상(褓負商)은 봇짐장수(褓商)와 등짐장수(負商)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하더군요. 하하.. 그냥 분위기 환기하려구요^^;;;;;


주리 2006-03-21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임신부/임산부 물어보려고 했는데,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가신 승주나무님! 꽈당- 대단하셔요~
 

미국에서도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의 학력차가 크게 벌어져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데 우리는 거기다가 되도 않은 남성 우월주의, 기업들은 일단 여자라서 떨어뜨리는 '머스미즘'(아하! 재밌는 말이당^^)이 만연해 있어요. 학교에 남자 선생님이 없으면 애들 인성에도 좋지 않을 텐데. 남자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음양불일치라고 할까요, 편향이라고 할까요. 딸 많은 외아들 집안에 아들녀석이 여성스러워지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암튼 우리 예비 여교사님들 정말 열심히 공부하십니다. 예비 남교사님들도 분발하시고, 제발 지원좀 하세요^^


‘남자교사 0’

입력: 2006년 03월 16일 19:26:39 : 9 : 3
 
‘나는 교사이다. 아이의 입에서 질문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에 나는 태어났다. 난 아테네의 청년들에게 새로운 사상을 발견하도록 자극하던 소크라테스이다. 난 헬렌 켈러의 내민 손바닥에 우주의 비밀을 두들겨주던 앤 설리번이다. 난 하루종일 보물찾기를 하는 사람과 같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헬렌 켈러는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란 글을 남겼다. 그는 죽기 전에 3일 동안만 눈을 뜰 수 있다면 우선 설리번 선생님을 보고 싶다고 했다. 설리번의 인자한 얼굴, 아리따운 몸가짐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싶다는 것이다. 여선생 설리번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 헬렌 켈러의 캄캄한 영혼을 비추는 사랑의 빛이었나보다. 아이의 교육에 남녀의 구별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근래 우리 사회에서는 교사의 성비 불균형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교단의 여성화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여교사 비율은 초등학교 71%, 중·고교 49.5%. 올들어 신규채용된 초·중등교사 중 여자는 79.1%에 달했다. 중·고교의 남녀교사 비율도 역전될 것이고, 교단의 여초(女超) 현상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교육은 남녀교사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우려를 낳고 있다. IMF 외환위기는 우리 사회의 직업관에 일대 변화를 몰고 왔다. 신분이 보장되는 안정적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급상승한 것이다. 교직에 대한 선호도도 마찬가지다. 여교사는 일찍부터 여학생들이 선호하는 인기직업이자 안정된 직장이다. 여교사는 총각들이 가장 선호하는 ‘1등 신부감’으로 꼽힌다. 교직을 희망하는 남학생들도 크게 늘고 있다.

이같은 가운데 남자 평교사가 한 명도 없는 학교가 등장했다고 한다. 충북 청주시 봉덕초등학교는 일반교사 23명이 모두 여자라는 것이다. 여교사들이 교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렇지만 교사 성비의 불균형 심화는 교육계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취업난과 고용 불안정이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경향신문, 이연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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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3-20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고등학교는 전부 남자선생만 있었어요. 숨이 막혔지요. 그땐 여자교사가 없어서 문제라는 기사를 본 적이 없었는데..... 그래도 대학에 가면 남자선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전체적으로 보면 남녀교사가 조화를 이루는 게 아닐까 싶어요^^
 

큰샘이의 논술일기


4. 큰샘이는 제시문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하구나


큰샘이는 제시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학생이다. 대부분의 친구들처럼 제시문을 무시한 채 논술문을 작성하기도 하고, 아예 제시문을 그대로 원용(援用)하는 등의 우를 범하고 있다.

바람샘은 큰샘이가 작성한 논술문과 제시문을 토대로 잘못된 점들을 지적해주려 한다.


논제 : 다음 제시문을 참고하여 ‘갈등의 의의'에 대해 서술하시오.

조선 중기에 이르러 향촌에 기반을 둔 사림(士林)이 중앙 정계에 대거 진출하여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사림 세력은 강력한 훈구 세력과 대결할 때는 단결하였으나 훈구 세력이 무너진 뒤에는 자체 분열하여 학연과 지연을 바탕으로 붕당을 형성하였고, 붕당 간에 치열한 정권 다툼이 벌어졌다. 소위 당쟁(黨爭)이라고 불리는 붕당 간의 권력 투쟁은 여러 차례의 사화(士禍)와 같은 정치적 혼란과 폐해를 낳았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붕당 경쟁을 다르게 볼 수는 없을까? 구양수(歐陽脩)는, 사사로운 이익 때문에 붕당을 이루는 소인과는 달리 군자는 도를 추구하기 위하여 붕당을 이룬다고 하였다. 본래 붕당이란 성리학에서 늘 강조하는 바와 같이, 자신의 덕을 닦은 연후에 사람을 다스리라고 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공도(公道)를 실현하려는 정치집단이었다. 왕권의 전횡을 막고 신진 세력의 등용과 정치권력의 상호 견제 기능을 담당하였던 붕당정치는, 한정된 관직을 놓고 경쟁하던 당시의 현실에서 의미 있는 정치 형태였다. 그래서 윤휴(尹鑴)는 “붕당은 족히 천하를 어지럽게 하지만, 붕당을 싫어하여 없애버리면 천하를 망하게 하는데 이른다”고 하였다. 양반계급이 추구하는 권력, 지위, 명예 등 한정된 가치의 재분배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해결 방법으로 붕당정치는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

- 김상봉, 『학벌사회』 중에서


큰샘이의 논술문

① 조선 시대 붕당들 사이에는 한정된 관직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권력 다툼이 있었다. 이는 정치적 혼란과 폐해를 야기했다. 그러나 붕당 정치는 왕권의 전횡을 막고 신진 세력의 등용과 정치권력의 상호 견제 기능을 수행했다. 따라서 붕당 정치는 제한된 가치를 놓고 생겨난 양반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했다는 의의가 있다. 이는 갈등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경우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경우에 따라서 심각한 사회적 폐단을 가져오기도 하는 갈등은 ②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③ 그러나 우리는 여러 가지 갈등 중에서 폭력과 차별을 수반하는 전쟁과 같은 극단적 갈등은 자제해야 한다.


“해원아, 큰샘이가 작성한 논술문을 보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보거라.”

큰샘이의 논술문인데 바람샘은 뜬금없이 해원이에게 묻는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초점이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갈등의 의의'를 설명하는 부분도 보이지 않는 것 같고요.”

해원이는 당황한 듯 힘없이 대답한다.

“맞는 말이야. 큰샘이의 논술문에는 크게 두 가지 잘못된 점이 있구나. 하나는 제시문과 너무 가까이 있어서 탈이고, 하나는 제시문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탈이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잘 이해가 안 돼요.”

큰샘이는 라이벌인 해원이에게 지적을 당한 것이 내심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한다.

“네가 수업 빠지고 농땡이 부리니까 논술실력이 형편없어진 거야.”

지성이가 놀리듯 이야기한다.

“하하하. 지성이 녀석, 오래도 우려먹는군. 그럼 한번 자세히 따져보자꾸나. 먼저 ①의 부분을 보렴. 제시문의 첫 단락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지.”

“그건 ‘요약'을 한 건데요?”

큰샘이는 바람샘의 지적에 항변한다.

“제시문의 단락을 그대로 쓰는 것은 ‘요약'이라고 할 수 없단다. 단순히 글자 수를 줄인 것밖에는 안 되지. 네가 제시문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니?”

“선생님, 그렇다면 제시문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성이 역시 제시문이 가장 난관이기 때문에 말을 끊고 대뜸 묻는다.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언어로 써야지. 차라리 ①에서 붕당의 긍정적 의미를 강조해서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균형과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데 “‘붕당제'는 상호 견제와 인재 등용을 통해 정치의 균형과 발전을 꾀하였다”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이렇게 쓰면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잘못'을 극복할 수 있단다.”

“자신에게 맞게 다시 풀어서 서술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래 해원아. 잘 이해하고 있구나. 그리고 ②처럼 두루뭉술한 단어는 좋지 않단다. 구체적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못해. ③은 큰샘이가 알다시피 ‘동문서답'이지. 이건 ‘갈등의 의의'보다는 ‘갈등의 주의사항'인 것 같구나. 결과적으로 가장 핵심적인 주제인 ‘의의'는 빠뜨리고 말았어.”

“갈등의 양면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큰샘이는 해원이에게 또 지적을 당하자 지지 않겠다는 듯 맞선다.

“일단 논제에서 ‘의의'를 요구했으면 ‘의의'를 쓰고, ‘양면성'을 요구하면 ‘양면성'에 대해 쓰도록 해라. 갈등의 의의 역시 ‘긍정적'이라는 평가 외에 더 나아가지 못했어. 왜 긍정적인지 독자를 납득시켜야지. 정치란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엉킨 사안이므로 갈등을 통해 타협에 이를 수 있다면 이는 갈등의 긍정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지.”

“그러네요. 그러면 갈등은 타협의 필수 조건이군요.”

큰샘이는 이제까지 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보았던 사실을 깨달으며 선생님께 묻는다.

“필수조건은 아니지. ‘대화'가 필수조건이야. 뉴스를 봐라, 대화가 없으니 정치권에서도 막말이 오가고 몸싸움으로 일관하고 있지 않니. 제이는 논술문을 쓰기 전에 ‘제시문'을 꼼꼼히 읽도록 해라. 두 번, 세 번 읽는 사이에 제시문에 대한 접근 방향이 잡힐 게다. 지금 너에게는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구나.”

바람샘은 아이들에게 고정적인 사고방식이 굳어지지 않도록 무던히도 애를 쓴다.

“예. 선생님 말씀대로 당분간은 제시문에 대한 훈련을 집중적으로 해볼게요.”

큰샘이는 일단 이렇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논술쓰기나 사고방식 모두 미흡한 것이 너무 많아서 한편으로는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막막하기도 했다.






링크
http://www.estudycare.com/board/view.asp?ID=4&TableName=uni_21&page=1&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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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3-18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윽, 전 큰샘이가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