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 대학고전총서 8
홍인표 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1992년 7월
평점 :
품절


요즘 인터넷 열강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사서를 언제 한 번 정리하려고 하였는데, 다행히 커리큘럼 안에 들어 있어서 조금이나마 정리를 합니다.

맹자의 믿을 만한 텍스트는 참으로 구하기가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항상 맹자의 텍스트는 2%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나온 홍인표 교수의 '맹자'는 제가 바다 건너 남명 학당에까지 가서 듣고 온 책입니다.

 

이미지가 없어서 조잡하지만 스캔해서 올립니다. 그렇지만 홍인표 교수의 번역은 C급입니다. 안 그래도 논어에 비해 문장 맛이 떨어지는데, 기계적 번역을 하고 있어서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성백효 판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번역은 무난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종무 선생의 번역은 대체로 깔끔하며 독창적입니다. 상세한 해설을 원하시면 홍인표 교수의 책을, 깔끔한 문장 맛을 보시고 싶다면 김종무 선생의 민음사 
판을 권합니다. 이 리뷰는 논술 버전에 맞춰 쓰여졌으니 간혹 냄새가 나긴 날 겁니다.

나의 맹자 읽기


사람은 대저 스스로를 모욕한 이후에라야 남이 자신을 모욕하며, 자신의 일가를 훼손한 이후에야 다른 집안에게 파괴되며, 자국이 스스로를 멸망시킨 이후에라야 적국에게 멸망을 당한다.

서경의 태갑에 이르기를 하늘이 낸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은 피할 수 없다.

夫人必自侮, 然後人侮之; 家必自毁, 而後人毁之; 國必自伐, 而後人伐之. 

太甲曰:  󰡔天作孽, 猶可違; 自作孽, 不可活. 󰡕

- 출처ː 󰡔맹자(孟子)󰡕 「이루장구」 상-8


1. 맹자의 시대

- 맹자의 사상적 위치와 필연성


온 천하는 바야흐로 합종(合綜)과 연횡(連橫)을 놓고 고심하고 있었고, 공격과 정벌전쟁을 능사로 여기고 있었다. 이런 형편에 맹자는 오히려 요순과 삼대 성왕의 덕을 계술, 천명했으니, 유세한 임금들과 부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은퇴하여 만장 등의 제자와 함께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재해석하고 공자의 사상을 계술, 천명하여 『맹자(孟子)』 7편을 지었다.

사마천, 『사기열전』


세운(世運)이 쇠퇴하여 정도가 희미해져 사악한 학설과 포악한 행위가 또 일어나자, 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자가 있고, 자식이 그 아비를 죽이는 자가 있었다. 공자는 걱정하여 『춘추(春秋)』를 지으시니, 『춘추(春秋)』는 천자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나를 아는 것도 아마 오직 춘추에 있을 것이고, 나를 죄책하는 것도 아마 오직 춘추에 있을 것이다’ 하였다.

성왕은 출현하지 않고, 제후는 방자(放恣)하니, 처사(處士)들은 함부로 의론을 제기하여,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언론이 천하에 가득 차서, 천하의 언론은 양주에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에 돌아갔다. 양씨는 나만을 위한다고 주장하니, 이는 임금도 무시한 것이고, 묵씨는 겸애(兼愛)를 주장하니, 이는 부모도 무시한 것이다. 부모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함, 이것이 금수(禽獸)인 것이다.

世衰道微, 邪說暴行有作, 臣弑其君者有之, 子弑其父者有之.

孔子懼, 作春秋. 春秋, 天子之事也. 是故孔子曰:  󰡔知我者其惟春秋乎! 罪我者其惟春秋乎! 󰡕

聖王不作, 諸侯放恣, 處士橫議, 楊朱̖ 墨翟之言盈天下. 天下之言, 不歸楊, 則歸墨. 楊氏爲我, 是無君也; 墨氏兼愛, 是無父也. 無父無君, 是禽獸也.

- 출처ː 󰡔맹자(孟子)󰡕 「등문공장구」 하-9


당시 중국인들은 통일에 대한 의지가 대단하여, 그것이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는 현상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설들은 합종과 연횡, 모략 등 전략적인 방향에 치우쳐 마치 현대의 신자유주의와 패권주의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가 배부른 자를 위한 철학이듯 당시의 학설들도 왕과 지배세력을 위한 철학이라 생각하였다. 그 중에서는 묵적처럼 서민을 위한 철학도 있었으나 맹자는 부모와 자식 간의 고유한 관계를 훼손하는 철학이라 하여 물리친다. 때문에 맹자의 학설은 필연적으로 과거 지향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루(離婁)의 시력, 공수반[公輸子]의 솜씨일지라도, 캠퍼스와 곱자가 없으면 원과 사각형을 그릴 수 없다. 사광(師曠)의 청력일지라도 육률(六律)이 아니면 오음(五音)을 바로잡을 수 없다. 요순의 도일지라도 인정(仁政)이 아니면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릴 수 없다. 임금의 마음이 어질고 또 그렇다고 소문이 난 경우에도 백성에게 그 은택이 돌아가지 않고 후세에 모범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선왕(先王)의 도를 행하지 않은 때문이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어기거나 저버리지 않고, 전통을 따르네”라고 했듯이, 선왕의 법도를 좇다가 잘못된 경우는 아직 없다.

孟子曰:  「離婁之明, 公輸子之巧, 不以規矩, 不能成方員: 師曠之聰, 不以六律, 不能正五音; 堯舜之道, 不以仁政, 不能平治天下.

今有仁心仁聞而民不被其澤, 不可法於後世者, 不行先王之道也.

故曰, 徒善不足以爲政, 徒法不能以自行.

詩云:  󰡔不愆不忘, 率由舊章. 󰡕 遵先王之法而過者, 未之有也.

- 출처ː 󰡔맹자(孟子)󰡕 「이루장구」 하-1


하지만 그것이 제도와 전통을 옹호하지 보수주의인 것은 아니다. 옛 제도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을 현대에 맞게 발전시키자는 것이 맹자 사상의 요지이다.


청컨대, 교외의 논밭은 1/9로 조법을 시행하고, 성중(城中)에서는 1/10로 공법(貢法)을 시행하여 스스로 세금을 내도록 하십시오. 경(卿) 이하는 반드시 규전(圭田 : 수확물로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경작하는 논밭)을 가지게 하되 규전은 오십 무씩, 장정(壯丁)은 이십오 무씩 배당합니다. (그러면 사람이) 죽거나 이사를 가더라도 고향을 떠나지 않습니다. 고향의 농지에서 같은 정전(井田)을 경작하면, 나들이에 서로 친밀하며, 지켜보면서 서로 도와주고, 병이 나면 서로 부축해 주니, 백성들이 친근하고 화목해집니다. 사방 1리에 정전을 실시하면, 한 정전은 구백 무이며, 그 중간이 공전(公田)입니다. 여덟 가구는 모두 사전(私田) 백 무로, 공전을 함께 경작합니다. 공전의 일을 끝낸 뒤에 감히 사전의 일을 합니다. 그럼으로써 (군자와) 야인을 구별합니다.

請野九一而助, 國中什一使自賦.

卿以下必有圭田, 圭田五十畝.

餘夫二十五畝. 

死徙無出鄕, 鄕田同井. 出入相友, 守望相助, 疾病相扶持, 則百姓親睦.

方里而井, 井九百畝, 其中爲公田. 八家皆私百畝, 同養公田. 公事畢, 然後敢治私事, 所以別野人也.

- 출처ː 󰡔맹자(孟子)󰡕 「등문공장구」 상-3


이는 원래의 정전제도를 사회주의적 성격을 띤 경제제도로 변경시킨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개혁의 핵심은 토지개혁이다. 오늘날 말로 하면 부동산 개혁이다. 실제로 위 단락을 제시문으로 해서 오늘날의 부동산 문제나 사유재산 문제에 대해서 논하라는 논제를 출제할 수 있다. 대체로 고대의 토지는 군주와 귀족의 사유재산이었고, 농민은 귀족의 토지를 받아 땅을 부쳐먹는 농노에 불과했다. 하지만 맹자가 주창하는 정전 제도는 농민들에게 사유재산을 부여함으로써 일의 능률을 높이고 그것을 통해 납세토록 하여 국가의 부강에 또한 도움이 되는 것이다. 즉 백성 중심의 경제 제도를 제안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묵자가 평민의 관점에서 옛날 주나라의 제도를 반대한 반면, 맹자는 평민의 관점에서 옛 제도를 재구성한 것이니만큼 의미가 있다.


사상적인 면으로 보았을 때, 후세의 학자들이 맹자를 존중하는 것은 그가 공자의 사상을 확충(擴充)하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공자는 성(性)에 관해서 좀처럼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좀더 넓혀 성(性)에 관한 일가를 이루었다. 이는 공자와 맹자 시대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자의 시대는 소탈하고 단순하여, 주로 처세(處世) 이야기가 많았다. 주나라에 대한 충성도도 여전했으며 주나라 천자를 끼고 각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는 형세였다.

하지만 맹자의 시대는 전국시대로 건너오는 전환기로 주(周) 제국에 대한 충성도는 사라지고 없다. 그 대신 강국이 천하를 통합한다는 약육강식의 사고방식이 주를 이뤘으며 그 방법 또한 치밀하고 섬세했다. 맹자의 사상이 매우 정치하고 공격적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2.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논리학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고대의 제왕은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여기서 차마 사람을 해치지 못하는 정치가 있었다.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차마 해치지 못하는 정치를 시행한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마치 손바닥 위에서 물건을 움직이듯 쉬울 것이다. 사람이 다 차마 다른 사람을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까닭은, 이제 어떤 사람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 속으로 빠지려는 것을 보았다면, 누구나 다 놀래고 측은해 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이 마음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고 있기 때문이 아니며, 마을의 친구들에게서 칭찬을 받으려 하기 때문이 아니며, 그 어린아이가 지르는 소리를 듣기 싫어해서(또는 아이를 구하지 못했다고 원망하는 소리를 싫어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이것을 통해서 살펴보건대, 측은한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워하는 마임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시비를 가리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한 마음은 인(仁)의 발단(發端)이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義)의 발단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발단이며,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의 발단이다. 사람이 이 네 가지 발단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마치 그가 사지(四肢)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네 가지 발단을 가지고 있으면서 착한 일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해치는 사람이다. 그 임금이 착한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임금을 해치는 사람이다. 무릇 자신에게 네 가지 발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모두 확충할 줄 안다. 그것은 마치 불이 처음 타 들어가고, 샘이 처음 솟아 흐르는 것 같다. 진실로 그것을 확충할 수 있다면, 넉넉히 사해(四海)를 보전할 수 있지만, 진실로 그것을 확충할 수 없다면 자기 부모조차 제대로 섬길 수 없다.

「人皆有不忍人之心.

先王有不忍人之心, 斯有不忍人之政矣. 以不忍人之心, 行不忍人之政, 治天下可運之掌上.

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 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隱之心.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 非惡其聲而然也.

由是觀之, 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人之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 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 自賊者也; 謂其君不能者, 賊其君者也. 凡有四端於我者, 知皆擴而充之矣, 若火之始然, 泉之始達. 苟能充之, 足以保四海; 苟不充之, 不足以事父母. 」

- 출처ː 󰡔맹자(孟子)󰡕 「공손추장구」 상-6


어린아이가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인의예지의 핵심 원리를 생각해낸 맹자는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 못지않게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철학자이다. 어린아이의 예를 통해 발견한 원리는 바로 인(仁)이다. 인(仁)은 공자 시절부터 유학의 핵심 개념으로 채택되었다. 때문에 인(仁), 의(義), 예(禮), 지(智)가 모두 개별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仁)이라는 개념 안에 파생되어 나온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주의할 사항은 맹자의 성선론은 모든 사람의 성(性)에 선(善)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지, 모든 사람의 성이 모두 선(善)으로 귀결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을 보존하고 확충(擴充)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성인이 되고 어떤 사람은 파렴치한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추가적으로 요청된 개념이 양지(良知 : 사람이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지능), 양능(良能 : 타고난 재능), 야기(夜氣 : 밤 동안에 생기는 선한 기운=평단지기), 평단지기(平旦之氣 : 새벽의 청명한 기운 : 야기)이라는 용어이다. 우리가 양심(良心)이라고 하는 것도 여기서 나타난 개념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이 이렇지 않다는 것을 맹자는 잘 알고 있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은 새벽의 맑은 기운을 쉬이 이기고 낮 동안 저지른 인간의 죄악은 밤이 새도록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은 맹자에게는 명백한 사실이었고 그것을 우산(牛山)이라는 이야기로 표현하였다.


우산의 나무는 일찍이 무성했었다. 그것이 큰 나라의 교외에 있었기 때문에 도끼를 가진 사람들이 이를 찍어대니, 무성하게 자랄 수가 있겠는가? 밤낮으로 자라는 바요, 비 이슬이 적셔주는 바라, 싹과 가지가 돋아남이 없는 것이 아니었으나, 소와 양이 또 들어와서 그것을 뜯어먹었다. 그래서 저와 같이 민둥산이 되었다. 사람이 그 민둥산을 보고 일찍이 재목이 없었다고 여긴다면,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라 하겠으랴?

사람에게 존재하는 것도,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겠으랴? 그 양심(良心)을 방치해 버리는 것은 역시 나무에다가 도끼를 대는 것과 같다. 하루하루 이를 찍어내면, 무성하게 자랄 수 있겠는가? 밤낮으로 길러지는 양심과 새벽의 기운은 그 좋아하고 싫어함이 사람과 서로 근접하다는 것은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대낮에 하는 행위가 또 이것(양심과 새벽기운)을 어지럽히고 없애버린다. 이것을 어지럽히는 일을 반복하면, 밤이 길러지는 기운은 존재할 수 없다. 밤에 길러지는 기운이 존재할 수 없다면, 그는 금수(禽獸)와 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가 금수와 같은 것을 보고서는 일찍이 재질이 없었다고 여기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성정(性情)이겠는가?

그러므로, 만약에 그것을 배양만 잘 한다면 자라지 않는 사물이 없고, 그렇지 못하면 어떤 사물이라도 자라지 못할 것이다.

孟子曰:  「牛山之木嘗美矣, 以其郊於大國也, 斧斤伐之, 可以爲美乎? 是其日夜之所息, 雨露之所潤, 非無萌蘖之生焉, 牛羊又從而牧之, 是以若彼濯濯也. 人見其濯濯也, 以爲未嘗有材焉, 此豈山之性也哉?

雖存乎人者, 豈無仁義之心哉? 其所以放其良心者, 亦猶斧斤之於木也, 旦旦而伐之, 可以爲美乎? 其日夜之所息, 平旦之氣, 其好惡與人相近也者幾希, 則其旦晝之所爲, 有梏亡之矣. 梏之反覆, 則其夜氣不足以存; 夜氣不足以存, 則其違禽獸不遠矣. 人見其禽獸也, 而以爲未嘗有才焉者, 是豈人之情也哉?

故苟得其養, 無物不長; 苟失其養, 無物不消.

- 출처ː 󰡔맹자(孟子)󰡕 「고자장구」 상-8


맹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선한 본성을 잃어버리는 것을 외물(外物)의 유혹과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그의 『윤리학』에서 식욕과 성욕은 사람과 금수가 공유하는 것이고, 사람이 금수와 구별되는 것은 오직 이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고할 수 있는 마음은 인간만이 가진 특성으로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한’ 것이므로 대체(大體)라 할 수 있고, 귀와 눈 등의 감각 기관은 사람과 금수가 공유하는 것이므로 소체(小體)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눈과 귀 등 감각 기관의 자극에 쉽게 지배되기 때문에 성(性)의 본체를 보존하는 사람이 적은 것이다. 이 폐단은 본인에게 한정될 뿐만 아니라 올바른 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가로막고 마비시키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도 이성적인 정신이 발붙일 수 없게 한다.


맹자가 대불승에게 말했다.

“당신은 당신의 왕을 현명하게 하고자 합니까? 내가 당신에게 분명히 말하건대, 여기 초나라 대부가 있는데, 그 아들에게 제나라 말을 가르치려고 하면, 제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가르치게 하겠습니까? 초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가르치게 하겠습니까?”

대불승이 대답했다.

“제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가르치게 하겠습니다.”

맹자가 말했다.

“한 명의 제나라 사람이 그를 가르치고, 여러 초나라 사람이 그를 방해한다면, 비록 매일 종아리를 때린다 하더라도 그에게 제나라 말을 하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를 데리고 제나라의 장악(莊嶽) 거리에다 몇 년만 있게 한다면, 비록 날마다 종아리를 때려서 그가 초나라 말을 하게 하여도 역시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대는 설거주가 착한 선비라고 하니, 그로 하여금 궁중에서 지내게 하여, 궁중에 있는 사람들이 어른이나 어린이, 지위가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 모두 설거주같이 좋은 사람이라면, 왕이 누구와 더불어 착하지 못한 짓을 하겠습니까? 궁중에 있는 사람이 어른과 어린이 지위가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 모두 설거주와 같은 사람이 아니면, 왕이 누구와 더불어 착한 일을 하겠습니까? 한 사람의 설거주가 홀로 송왕을 어찌하겠습니까?”

孟子謂戴不勝曰:  「子欲子之王之善與? 我明告子. 有楚大夫於此, 欲其子之齊語也, 則使齊人傅諸? 使楚人傅諸? 」 曰:  「使齊人傅之. 」 曰:  「一齊人傅之, 衆楚人咻之, 雖日撻而求其齊也, 不可得矣; 引而置之莊嶽之間數年, 雖日撻而求其楚, 亦不可得矣.

子謂薛居州, 善士也. 使之居於王所. 在於王所者, 長幼卑尊, 皆薛居州也, 王誰與爲不善? 在王所者, 長幼卑尊, 皆非薛居州也, 王誰與爲善? 一薛居州, 獨如宋王何? 」

- 출처ː 󰡔맹자(孟子)󰡕 「등문공장구」 하-6



이에 따르면 맹자나 공자 같은 철학자가 없기 때문에 세상이 혼탁한 것이 아니라 너무 적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일본의 한 네티즌이  독도를 둘러싸고 한국과의 외교마찰을 빚고있는 고이즈미 정권을 강력히 비판한 것에 대해 “일본을 비난하지 말라” “매국노다” “한국이 나쁘다” 등 다른 네티즌들의 비난과 욕설을 받자 재차 반박하며 논란을 벌인 일이 있다. 

“주장할 것은 해야 한다고 하지만 상대방의 사정과 주변 상황, 역사적인 경위를 계산하지 않기에 결과적으로 동북아에 긴장만 고조시키고 있다”며 고이즈미 정권을 비판한 것인데, 이같은 내용의 글에 네티즌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그는 “무서운 것은 (비난 글에는) 상대를 비난하기만 할 뿐 자성의 목소리는 하나도 없다”고 꼬집었고 한다. 사람은 대체로 주위의 사람들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면 비록 그것이 옳은 주장이라 하더라도 쉽게 배척하게 된다. 맹자의 사상이 세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은 전국시대라는 시대적 상황과 어울리지 못하는 점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제대로 된 정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3. 백성 천(天) 따지


천자문 맨 첫머리는 ‘하늘 천 따지’이다. 맹자에게는 하늘이 곧 백성이었고, 천심(天心)은 곧 민심(民心)이었다.


제자 만장(萬章)이 맹자에게 물었다.

“요 임금이 천하를 순에게 주었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아니다. 천자는 천하를 남에게 줄 수 없다.”

“그렇다면 순 임금이 천하를 얻은 것은 누가 주었기 때문입니까?”

“하늘이 주었기 때문이다.”

“하늘이 주었다고 함은 구체적인 언어로 명하셨다는 말씀입니까?”

“아니다. 하늘은 말이 없다. 다만 행위와 정사를 통하여 나타내 보일 따름이다.”

“행위와 정사를 통하여 나타내어 보인다고 함은 무슨 말씀입니까?”

“천자는 어떤 사람을 하늘에 추천할 수는 있어도, 하늘에게 천하를 그에게 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제후는 사람을 천자에게 추천할 수는 있어도, 천자에게 제후의 자리를 그에게 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대부는 사람을 제후에게 추천할 수는 있어도, 제후에게 대부의 자리를 그에게 주라고 가용할 수는 없다. 옛날에 요 임금이 순을 하늘에 추천하자 하늘이 그를 받아들였고, 또 백성들 앞에서 내세우자 백성들도 그를 받아들였다. 따라서 ‘하늘은 말이 없다. 다만 행위와 정사를 통하여 나타내어 보일 다름이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 ‘하늘이 추천하자 하늘이 그를 받아들였고, 또 백성들 앞에 내세우자 백성들도 그를 받아들였다’고 함은 무슨 말씀입니까?”

“그로 하여금 제사를 주관하게 하자 모든 신명들이 흠향했다면 하늘이 그를 받아들인 것이요, 그로 하여금 정사를 주관하게 하자 모든 정사가 다 잘 되어 백성들이 안심했다면 백성들이 그를 받아들인 것이다. 즉 하늘도 (천하통치 임무를) 그에게 부여했고, 백성들도 그에게 부여했다는 말이다. ……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하늘은 우리 백성들 눈을 통해서 보고, 하늘은 우리 백성들 귀를 통해서 듣는다’고 했는데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萬章曰:  「堯以天下與舜, 有諸? 」 孟子曰:  「否. 天子不能以天下與人. 」

「然則舜有天下也, 孰與之? 」 曰:  「天與之. 」

「天與之者, 諄諄然命之乎? 」

曰:  「否. 天不言, 以行與事示之而已矣. 」

曰:  「以行與事示之者如之何? 」

曰:  「天子能薦人於天, 不能使天與之天下; 諸侯能薦人於天子, 不能使天子與之諸侯; 大夫能薦人於諸侯, 不能使諸侯與之大夫. 昔者堯薦舜於天而天受之, 暴之於民而民受之, 故曰: 天不言, 以行與事示之而已矣. 」

曰:  「敢問薦之於天而天受之, 暴之於民而民受之, 如何? 」

曰:  「使之主祭而百神享之, 是天受之; 使之主事而事治, 百姓安之, 是民受之也. 天與之, 人與之, 故曰: 天子不能以天下與人.

……

太誓曰:  󰡔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 , 此之謂也. 」

- 출처ː 󰡔맹자(孟子)󰡕 「만장장구」 상-5


민중 중심의 철학을 논할 때 맹자는 매우 파격적인 주장을 한다. 국가의 주인은 백성이라는 것이다.


백성이 귀중하며, 사직은 그 다음이고, 임금이 가장 가볍다. 따라서 민심을 얻으면 천자가 되고, 천자의 마음을 얻으면 제후가 되고, 제후의 마음을 얻으면 대부가 된다.

현대역 : 국민이 가장 귀하며, 국가는 그 다음이고 대통령이 가장 가볍다. 따라서 표심을 얻으면 대통령이 되고, 대통령의 신임을 얻으면 국무총리가 되고, 국무총리의 마음을 얻으면 장관이 된다.

孟子曰:  「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是故得乎丘民而爲天子, 得乎天子爲諸侯, 得乎諸侯爲大夫.


뿐만 아니라 비록 임금일지라도 잡배와 같은 일을 일삼으면 권좌에서도 물리칠 수 있다고 하였다.


제선왕이 물었다. “탕이 그의 임금인 걸왕을 물리치고, 무왕이 그의 임금인 주왕을 정벌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입니까.” 맹자가 말했다. “역사에 전합니다.”

왕이 물었다.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맹자가 말했다.

“인애(仁愛)의 파괴자가 바로 역적[賊]이고, 도의(道義)의 파괴자가 바로 흉악자[殘]이므로, 역적이자 흉악자는 한 잡배[一夫]일 따름입니다. 주(紂)라는 잡배를 처단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입니다.”

齊宣王問曰:  「湯放桀, 武王伐紂, 有諸? 」 孟子對曰:  「於傳有之. 」

曰:  「臣弑其君可乎? 」

曰:  「賊仁者謂之賊, 賊義者謂之殘, 殘賊之人謂之一夫. 聞誅一夫紂矣, 未聞弑君也. 」


주왕(紂王)은 은나라의 포학한 군주였다고 전해지는데, 주나라 무왕은 은 왕조를 멸하고 주를 죽였다. 맹자는 이것을 ‘시해’라고 볼 수 없다고 여겼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 논어)는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을 임금에게 적용해, “임금이 임급답지 못하면” 신하는 그를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당대에는 매우 파격적인 이론으로 받아들여져 왕조시대인 중국 역사에서 오랫동안 금서(禁書)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이론은 피통치자의 반항의 권리를 긍정하고, 피통치자의 혁명권을 인정한 셈이다. 그후 중국 봉건사회 내에서 통치자에 대한 일정한 견제 역할을 하였고, 혁명 중에는 고무적인 작용을 했다.


4. 맹자의 텍스트에서 담론 찾기


일을 할 때는 지레짐작[正]해서는 아니되며, 마음속으로는 그 일을 잊지 않으며, 조장(助長)해서도 안 된다. 송나라 사람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송나라 사람 중에 자기 밭에 벼싹이 자라지 아니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이를 다 뽑아 올린 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와서 그 집사람에게 말하기를 ‘오늘은 피곤하다. 내가 벼싹을 자라게 도와주었다.’고 하였다. 그의 아들이 뛰어나가서 이를 살펴보니, 벼싹은 이미 말라버렸다. 천하에는 벼싹을 자라게 도와주지 않는 사람이 적을 것이다. 이익이 없다고 하여 버려두는 것은 김을 매지 않는 사람이요, 이를 억지로 자라게 도와주는 것은 싹을 뽑아 올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해를 끼치는 것이다.

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 無若宋人然: 宋人有閔其苗之不長而揠之者, 芒芒然歸. 謂其人曰:  󰡔今日病矣, 予助苗長矣. 󰡕 其子趨而往視之, 苗則槁矣. 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 以爲無益而舍之者, 不耘苗者也; 助之長者, 揠苗者也. 非徒無益, 而又害之. 」

- 출처ː 󰡔맹자(孟子)󰡕 「공손추장구」 상-2

☞ 조장이 왜 안 좋은가?

한 농부의 논밭이 수해를 만나 배추밭이 다 잠겨버린 일이 있었다. 나중에 물이 빠지고 보니 배추들이 거의 다 널브러져 썩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기계가 갈지 못한 구석에 심은 배추들만은 멀쩡하게 썩지 않고 있었다. 그걸 농부는 땅 갈기와 풀 뽑기 등의 작위적 행위가 토양생태계를 파괴하여 작물의 생존력을 약하게 만든다는 원리를 깨우치게 되었다. 즉 갈지 않은 땅에는 순환이 있고 숨통이 열려 있어 물이 차 있어도 땅속에서 숨을 쉰 것이다. 단지 기계로 간 땅이 이러한데, 화학 농약을 잔뜩 뿌린 토양은 어떨까.

조장 중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그 결과가 보이는 것도 있고, 긴 시간이 지나서야 그 결과가 보이는 것이 있다. FTA 같은 것이 그것이다. 단기간의 경제 성장을 위해서 식량 안보를 팽개치고 영화 산업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 당국의 방침이다. 이는 조장 중에서도 막대한 조장이다. 식량과 문화는 경제 논리로 어찌하지 못하는 것인데, 실적을 앞세워 지켜야할 것들을 팽개치는 결과는 추후에 부메랑처럼 나타날 것이다.


사람들 역시 누가 부자가 되고 귀하게 되려고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유독히 부자가 되고 귀하게 되려는 사람 중에서 개인적으로 독차지함이 있었다. 옛날에 시장을 이룸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써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물건을 바꾸었고, 담당관원은 이를 관리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비열한 사나이가 반드시 높은 언덕을 찾아서 여기에 올라가 좌우를 바라보면서 시장의 이익을 싹 거두어 갔다. 사람들이 다 이를 비열하다고 여겼으므로, 이를 따라서 세금을 징수하였다. 상인의 세금을 징수함은 바로 이 비열한 사나이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人亦孰不欲富貴? 而獨於富貴之中, 有私龍斷焉. 󰡕

古之爲市也, 以其所有易其所無者, 有司者治之耳. 有賤丈夫焉, 必求龍斷而登之, 以左右望而罔市利. 人皆以爲賤, 故從而征之. 征商, 自此賤丈夫始矣.

- 출처ː 󰡔맹자(孟子)󰡕 「공손추장구」 하-10

(이 글의 관점을 토대로 오늘날 이와 비슷한 사례를 들어 서술한다면)

☞ 론스타가 법률의 허점을 이용해 등록세 수백억원을 가로챈 점, 건설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직위를 이용해 좋은 땅을 사들이고 막대한 수익을 얻는 일.

배임죄(背任罪) : 형법에서, 다른 사람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그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얻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하여 임무를 맡긴 본인에게 손해를 입힘으로써 성립하는 범죄.



화살 만드는 사람이 어찌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어질지 않으랴마는,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을 상해하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갑옷을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을 손상할까 두려워한다. 무당이나 목수(관을 만드는)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직업의 선택은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어진 곳에 사는 것이 좋다. 거처를 선택하여, 어질지 못한 곳에 산다면,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 대저 어짊이란 하늘의 존귀한 직위이고, 사람의 안전한 주택이다. 아무도 이를 막지 못하며 예의도 없고 의리도 없다면, 사람의 노예가 된다.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고서 노예됨을 부끄럽게 여기면, 이는 활을 만드는 사람이 활 만드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화살 만드는 사람이 화살 만드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과 같다. 만약에 이를 부끄러워한다면, 어진 행동을 하는 것만 같지 않다. 어짊은 행하는 사람은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화살을 쏘는 사람은 자기를 바로 한 후에 화살을 쏜다. 쏘아서 과녁을 맞추지 못해도,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반대로 자기에게서 그 원인을 찾을 뿐이다.

孟子曰:  「矢人豈不仁於函人哉? 矢人唯恐不傷人, 函人唯恐傷人. 巫匠亦然, 故術不可不愼也.

孔子曰: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智? 󰡕 夫仁, 天之尊爵也, 人之安宅也. 莫之禦而不仁, 是不智也.

不仁̖ 不智̖ 無禮̖ 無義, 人役也. 人役而恥爲役, 由弓人而恥爲弓, 矢人而恥爲矢也.

如恥之, 莫如爲仁.

仁者如射, 射者正己而後發. 發而不中, 不怨勝己者, 反求諸己而已矣. 」

- 출처ː 󰡔맹자(孟子)󰡕 「공손추장구」 상-7

☞ 직업관과 관련해서 위의 입장을 비판하시오.

직업을 신중히 선택해야 하는 것은 옳은 말이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애꿎은 피해를 주거나 법률에 저해되지 않는 한 위의 직업관에는 동의할 수 없다. 화살을 만드는 사람이 화살을 만들지 않는다면 적국의 화살이 우리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직업이라는 것은 대상과 목표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회사나 사회, 국가에 기여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직업을 선택하는 중요한 척도는 ‘환경’이 아니라 ‘신념’이다. 비록 경찰은 사람들을 감시하고, 검찰은 사람들을 구속시키지만 그의 일로 인해 피해를 보는 대상과 혜택을 보는 대상의 구분이 분명하다. 군인의 총구가 향하는 방향이 분명한 것처럼, 땅에 씨를 뿌리는 농민의 희망 또한 분명하다.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 ‘참여’한다는 의미이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비록 어딘가에는 피해가 되더라도 그것이 향하는 바는 세상의 이로움이다. 다만 그 사람의 직업관과 신념이 상식적으로 수용되어야 한다.



천시(天時)는 지리(地理)만 같지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같지 못하다. 주위 3리의 내성과 7리의 외곽을 포위하고 공격하여도 승리를 못한다. 포위를 하고 공격을 한다면 반드시 천시를 얻은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도 승리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천시가 지리만 같지 못해서다. 성벽이 높지 않은 것이 아니고 성을 둘러싼 냇물이 깊지 아니한 것도 아니며, 병기와 갑옷이 견고하고 예리하지 않음이 아니고 양식이 많지 않음이 아니건만, 이것들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바로 지리가 인화만 같지 못해서다.

그러므로 ‘백성들을 나라 안에서 살 구역을 삼을 때는 봉해진 강토의 경계로 하지 않고, 국방을 공고히 함에는 산이나 내가 험준함으로 하지 않고, 천하에 위세를 보일 때는 병기나 갑옷의 유리함으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도(正道)를 얻은 사람은 도와주는 사람이 많고, 정도를 잃은 사람은 도와주는 사람이 적다. 도와주는 사람이 적은 것이 극단에 이르면, 친척도 배반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것이 극단에 이르면, 천하의 사람이 귀순한다. 천하 사람이 귀순한 바로써 친척이 배반한 바를 공격하므로, 군자는 혹은 전쟁을 하지 않거니와, 만약에 전쟁을 한다면 반드시 승리한다.

孟子曰:  「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三里之城, 七里之郭, 環而攻之而不勝. 夫環而攻之, 必有得天時者矣; 然而不勝者, 是天時不如地利也.

城非不高也, 池非不深也, 兵革非不堅利也, 米粟非不多也; 委而去之, 是地利不如人和也.

故曰: 域民不以封疆之界, 固國不以山谿之險, 威天下不以兵革之利. 得道者多助, 失道者寡助. 寡助之至, 親戚畔之; 多助之至, 天下順之.

以天下之所順, 攻親戚之所畔; 故君子有不戰, 戰必勝矣. 」

- 출처ː 󰡔맹자(孟子)󰡕 「공손추장구」 하-1

☞ 위 그을 우리나라의 경제․사회 등 전반적인 경쟁력과 관련해서 서술하시오.

우리나라는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자연환경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매년 석유를 수입하는 데만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고, 이것이 국가경쟁력의 주요 변수가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풍부한 인적자원이 있어 세계 여러 나라의 주요한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의 인적자원은 자국의 인적자원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외국인 근로자가 내한해 일을 하고 있고, 우리 역시 많은 나라로 이민가서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광복 이후 일본에서, 미국에서 핍박받으며 살았던 경험을 오늘날의 외국인 근로자에게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으며, 오랜 순혈주의와 단일민족 감정은 혼혈인 등 소수 계층에게 폭력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이들을 끌어안고 경쟁력을 키우는 방법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들 대신 3D 업종에서 땀을 흘리고 있으며, 혼혈인들도 우리의 자식이므로 인적자원으로 부족함이 없다.

우리 세계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적자원의 개념을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우리와 관계된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확장할 필요가 있다.


(맹자의 제자) 진대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제후들을 만나지 않은 것은 다소 편협한 사고가 아닌가 합니다. 이제라도 한 번 이들을 만나보시면, 크게는 왕업을 성취할 수 있고, 작게는 패업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록에는 ‘한 자를 굽혀서 여덟 자를 곧게 한다.’ 하였습니다. 아마도 해볼 만한 것 아닐까요.”

맹자가 말했다.

“옛날 제경공이 사냥을 할 때, 우인(虞人 : 경험이 많고 능숙한 사냥꾼)을 오색 깃털의 깃대로 부르자 오지 아니하니 그를 죽이려고 했다. 지사(志士)는 시궁창에 빠질지라도 피하지 않고, 용사(勇士)는 머리를 잃어도 피하지 않는다. 공자는 여기서 어떤 의미를 취하셨을까? 자기를 불러야 할 방법으로 부르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신 것이다. 제후들의 부름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간다면 어떠하겠는가? 또한 ‘한 자를 굽혀서 여덟 자를 곧게 한다.’라고 한 것은 이익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만약 이익을 가지고 따진다면, 여덟 자를 굽혀서 한 자를 곧게 하여 이익이 된다면, 역시 하겠는가.

옛날 조간자(趙簡子)가 왕량(王良)으로 하여금 자신이 총애하는 사람 해(奚)와 함께 전차를 몰아 사냥을 하도록 하였는데, 하루 종일 한 마리의 새도 잡지 못하였다. 총신(해)은 돌아와 이렇게 보고하였다. ‘천하에 엉터리 사냥꾼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사실을 왕량에게 고했다. 왕량은 ‘다시 한번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고, 떼를 슨 후에야 다시 사냥하게 되었는데, 하루아침에 열 마리 새를 잡았다. 총신이 돌아와 다시 보고하기를, ‘천하의 뛰어난 사냥꾼입니다.’ 하였다. 조간자가 ‘내가 직접 너와 사냥해야겠다.’ 하고 왕량에게 말하니 왕량은 허락하지 않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그를 위해 나의 말모는 규칙을 지키면 하루종일 한 마리도 못 잡다가, 그를 위해 편법으로 전차를 몰아 새들을 사냥하면, 하루아침에 열 마리나 잡았습니다. 『시경』에는,

‘말 달리는 규칙을 잃지 않아, 화살을 쏘면 정확히 맞는다.’라 하였습니다. 나는 소인과 함께 말몰이를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니 사양하겠습니다.‘라 하였다.

비록 말을 모는 사람이라도 (자기 규칙을 어기고) 사냥하는 사람과 자리를 함께 하기를 부끄러워하고, 자리를 함께 하면 금수를 잡아 산더미처럼 쌓아올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만약 도리를 그르쳐서 그 사람들을 따른다면 어떠하겠는가. 그대는 옳지 않다. 자기를 굽히는 사람이 다른 사람 치고 다른 사람을 곧게 한 적은 이제까지 한번도 없었다.”

陳代曰:  「不見諸侯, 宜若小然; 今一見之, 大則以王, 小則以霸. 且志曰:  󰡔枉尺而直尋󰡕 , 宜若可爲也. 」

孟子曰:  「昔齊景公田, 招虞人以旌, 不至, 將殺之. 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 孔子奚取焉? 取非其招不往也, 如不待其招而往, 何哉?

且夫枉尺而直尋者, 以利言也. 如以利, 則枉尋直尺而利, 亦可爲與?

昔者趙簡子使王良與嬖奚乘, 終日而不獲一禽. 嬖奚反命曰:  󰡔天下之賤工也. 󰡕 或以告王良. 良曰:  󰡔請復之. 󰡕 彊而後可, 一朝而獲十禽. 嬖奚反命曰:  󰡔天下之良工也. 󰡕 簡子曰:  󰡔我使掌與女乘. 󰡕 謂王良. 良不可, 曰:  󰡔吾爲之範我馳驅, 終日不獲一; 爲之詭遇, 一朝而獲十. 詩云:  「不失其馳, 舍矢如破. 」 我不貫與小人乘, 請辭. 󰡕

御者且羞與射者比. 比而得禽獸, 雖若丘陵, 弗爲也. 如枉道而從彼, 何也? 且子過矣, 枉己者, 未有能直人者也. 」

- 출처ː 󰡔맹자(孟子)󰡕 「등문공장구」 하-1

☞ 원칙을 강조하는 방식의 장단점을 각각 서술하시오.


제나라에 어떤 남자가 아내와 첩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 남편은 외출을 하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실컷 먹고 돌아왔다. 그의 아내가 음식을 준 사람이 누군지 물으면, 다들 부귀한 사람이었다. 그의 아내가 그의 첩에게 말했다. “남편이 외출을 하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실컷 먹은 뒤에 돌아와 그 음식을 준 사람을 물으면, 다들 부귀한 사람들이었는데, 일찍이 뚜렷한 사람이 집에 방문한 일이 없었으니 내가 남편이 가는 곳을 엿보려고 하네.”

일찍 일어나서, 비스듬히 남편이 가는 데를 따라가니,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녔으나, 아무도 그와 더불어 서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내 동쪽 성곽 분묘(墳墓) 사이의 제사지내는 사람에게 가서, 그들의 먹고 남은 음식을 빌어먹고, 부족하면 또 둘러보고 다른 곳으로 갔다. 이것이 그가 실컷 먹고 만족하는 방법이다.

그의 아내가 돌아와서 그의 첩에게 말했다. “남편이란 우리가 우러러보며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다. 지금, 이 같은 꼴이라니!” 하고는 그 첩과 더불어 그 남편을 원망하면서 서로 뜰 가운데서 울고 있는데, 남편은 이 사정도 모르고 으스대며 아내와 첩에게 교만을 부렸다.

군자의 입장에서 이를 본다면, 사람이 부귀와 영달을 추구하는 방법 중 그 아내와 첩을 수치스럽게 하거나 서로 복받쳐 울지 않게끔 하는 것은 매우 드물 것이다.

齊人有一妻一妾而處室者, 其良人出, 則必饜酒肉而後反. 其妻問所與飮食者, 則盡富貴也. 其妻告其妾曰:  「良人出, 則必饜酒肉而後反; 問其與飮食者, 盡富貴也, 而未嘗有顯者來, 吾將吳良人之所之也. 」 蚤起, 施從良人之所之, 吳國中無與立談者. 卒之東郭墦閒, 之祭者, 乞其餘; 不足, 又顧而之他, 此其爲饜足之道也. 其妻歸, 告其妾曰:  「良人者, 所仰望而終身也. 今若此. 」 與其妾訕其良人, 而相泣於中庭. 而良人未之知也, 施施從外來, 驕其妻妾.

由君子觀之, 則人之所以求富貴利達者, 其妻妾不羞也, 而不相泣者, 幾希矣.

- 출처ː 󰡔맹자(孟子)󰡕 「이루장구」 하-33

☞ 부귀와 영달을 도모하려는 사람이 위와 같은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5. 다양한 출전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의 출전


양혜왕이 말했다.

“과인(寡人)은 나라에 대하여 온 마음을 다 바쳤을 뿐입니다. 황하(黃河) 내륙이 흉년이 들면, 백성들을 황하 동편으로 이동시키고, 곡식을 황하 내륙으로 이동하였습니다. 황하 동편이 흉년이 들어도 같은 방법을 썼습니다. 이웃 나라의 정치를 살펴보건대, 과인처럼 마음 쓰는 것도 없는데, 이웃 나라의 백성이 더 적어지지 아니하고, 과인의 백성이 더 많아지지도 아니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맹자가 답했다.

“왕은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을 비유로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둥둥 북을 치자 창칼이 맞붙어 싸우다가, 갑옷을 버리고 무기를 이끌고 달아날 때, 어느 사람은 백 발짝 뒤에서 머물고, 어느 사람은 오십 발짝 뒤에서 머물러서는, 오십 발짝으로 백 발짝을 비웃는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양혜왕) “ 그럴 수 없습니다. 다만 백 발짝은 안 되었지만, 이 역시 도망친 것입니다.”

“왕이 이를 아신다면, 백성들이 이웃 나라보다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농사철을 어기지 아니하면, 곡식을 다 먹을 수 없고, 초촘한 그물을 웅덩이와 못에 넣지 않는다면, 재목을 다 사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곡식과 물고기를 다 먹을 수 없고, 재목을 다 쓸 수 없다면, 이야말로 백성들로 하여금 산 자를 길러 내고 죽은 자를 보내는 데 유감이 없다면, 왕도(王道)의 시작입니다.

梁惠王曰:  「寡人之於國也, 盡心焉耳矣. 河內凶, 則移其民於河東, 移其粟於河內. 河東凶亦然. 察鄰國之政, 無如寡人之用心者. 鄰國之民不加少, 寡人之民不加多, 何也? 」

孟子對曰:  「王好戰, 請以戰喩. 塡然鼓之, 兵刃旣接, 棄甲曳兵而走. 或百步而後止, 或五十步而後止. 以五十步笑百步, 則何如? 」 曰:  「不可, 直不百步耳, 是亦走也. 」 曰:  「王如知此, 則無望民之多於鄰國也.

不違農時, 穀不可勝食也; 數罟不入洿池, 魚鼈不可勝食也; 斧斤以時入山林, 材木不可勝用也. 穀與魚鼈不可勝食, 材木不可勝用, 是使民養生喪死無憾也. 養生喪死無憾, 王道之始也.



학교(學校)의 출전

設爲庠序學校以敎之: 庠者, 養也; 校者, 敎也; 序者, 射也. 夏曰校, 殷曰序, 周曰庠, 學則三代共之, 皆所以明人倫也. 人倫明於上, 小民親於下.

- 출처ː 󰡔맹자(孟子)󰡕 「등문공장구」 상-1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출전

청컨대, 교외의 논밭은 1/9로 조법을 시행하고, 성중(城中)에서는 1/10로 공법(貢法)을 시행하여 스스로 세금을 내도록 하십시오. 경(卿) 이하는 반드시 규전(圭田 : 수확물로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경작하는 논밭)을 가지게 하되 규전은 오십 무씩, 장정(壯丁)은 이십오 무씩 배당합니다. (그러면 사람이) 죽거나 이사를 가더라도 고향을 떠나지 않습니다. 고향의 농지에서 같은 정전(井田)을 경작하면, 나들이에 서로 친밀하며, 지켜보면서 서로 도와주고, 병이 나면 서로 부축해 주니, 백성들이 친근하고 화목해집니다. 사방 1리에 정전을 실시하면, 한 정전은 구백 무이며, 그 중간이 공전(公田)입니다. 여덟 가구는 모두 사전(私田) 백 무로, 공전을 함께 경작합니다. 공전의 일을 끝낸 뒤에 감히 사전의 일을 합니다. 그럼으로써 (군자와) 야인을 구별합니다.

請野九一而助, 國中什一使自賦.

卿以下必有圭田, 圭田五十畝.

餘夫二十五畝. 

死徙無出鄕, 鄕田同井. 出入相友, 守望相助, 疾病相扶持, 則百姓親睦.

方里而井, 井九百畝, 其中爲公田. 八家皆私百畝, 同養公田. 公事畢, 然後敢治私事, 所以別野人也.

此其大略也. 若夫潤澤之, 則在君與子矣. 」

- 출처ː 󰡔맹자(孟子)󰡕 「등문공장구」 상-3


대장부(大丈夫)의 출전


“공손연과 장의(전국시대의 유세가)가 어찌 대장부라 아니할 수 있는가? 한번 노하여 제후가 두려워하였고, 편안히 지내니 천하는 전쟁이 종식(終熄)되었습니다.”

맹자 : “이것이 어찌 대장부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예(禮)를 배우지 아니했습니까? 사내가 관을 쓰는 것은 아버지가 이를 가르쳐 주고, 여자가 시집가는 것은 어머니가 이를 가르쳐줍니다. 문 앞까지는 보내고는 주의하기를 ‘네 시집에 가서는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조심하여, 남편을 거슬리지 말아라.’ 합니다. 순종(順從)을 정도로 삼는 것은 아낙네의 도리입니다.

천하라는 넓은 거처에 살고, 천하의 올바른 자리에 서고, 천하의 큰 도리를 행하고,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더불어 함께 해나가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리를 행하며, 부귀도 그의 마음을 음탕하게 할 수 없고, 빈천도 그의 마음을 이동할 수 없으며, 위세나 무력도 그 마음을 굽히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대장부라고 하는 것입니다.“

景春曰:  「公孫衍̖ 張儀豈不誠大丈夫哉? 一怒而諸侯懼, 安居而天下熄. 」

孟子曰:  「是焉得爲大丈夫乎? 子未學禮乎? 丈夫之冠也, 父命之; 女子之嫁也, 母命之, 往送之門, 戒之曰:  󰡔往之女家, 必敬必戒, 無違夫子! 󰡕 以順爲正者, 妾婦之道也.

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得志與民由之, 不得志獨行其道. 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此之謂大丈夫. 」

- 출처ː 󰡔맹자(孟子)󰡕 「등문공장구」 하-2


자포자기(自暴自棄)의 출전


자신을 해치는 사람은 더불어 말할 수 없고,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은 더불어 어떤 일을 할 수 없다. 말을 하여 예의를 비난하면, 이를 자신을 해친다 하고, 나 자신은 인의(仁義)를 행할 수 없다면, 이를 자신을 포기한다고 한다. 어짊이란 사람의 편안한 집이며, 의로움이란 사람의 올바른 길이다. 편안히 살 집을 비워 놓고 살지 않으며, 올바른 길을 버리고 가지 아니하니, 슬프도다!

孟子曰:  「自暴者, 不可與有言也; 自棄者, 不可與有爲也. 言非禮義, 謂之自暴也; 吾身不能居仁由義, 謂之自棄也.

仁, 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

曠安宅而弗居, 舍正路而不由, 哀哉! 」

- 출처ː 󰡔맹자(孟子)󰡕 「이루장구」 상-10


선각자(先覺者)의 출전


하늘이 이 백성을 생육하심에 선지자(先知者)로 하여금 후지자(後知者)를 깨우치게 하고, 선각자(先覺者)로 하여금 후각자(後覺者)를 깨우치게 한다. 내가 백성들의 선각자니, 나는 장차 이 도리로 이 백성들을 깨우치려고 한다. 내가 이들을 깨우치지 아니하면 누가 개우치겠는가?

천하의 백성을 생각하여 한 사내와 한 아낙이 요순의 은택을 입지 아니하면, 마치 자기가 밀어서 그들을 물구렁텅이로 들어가게 한 듯이 하였다. 그는 이와 같이 스스로 천하의 중책을 맡았다.

天之生此民也, 使先知覺後知, 使先覺覺後覺也. 予, 天民之先覺者也; 予將以斯道覺斯民也. 非予覺之, 而誰也? 󰡕

思天下之民匹夫匹婦有不被堯舜之澤者, 若己推而內之溝中. 其自任以天下之重如此,

- 출처ː 󰡔맹자(孟子)󰡕 「만장장구」 상-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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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라주미힌 > ‘기초과학’ 서강대+‘의학’ 가톨릭대…‘자발적 통합’추진된다

 

서강대와 가톨릭대가 주요 사립대 간의 자발적인 첫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인문사회·기초과학이 강한 서강대와 의과대학을 보유한 가톨릭대가 통합하면 고착화된 대학서열 구조를 깨는 거대 규모의 명문대학으로 탄생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대학간 인수·합병(M&A)을 촉발시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학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강대와 가톨릭대는 25일 지난해 10월부터 양교가 통합을 위한 실무협상을 시작해 이미 3차례 만나 심도있게 논의했다고 밝혔다. 서강대는 김순기 기획처장이,가톨릭대는 남궁성은 의무부총장이 실무협상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교는 실무협상에서 구체적인 안을 마련한 뒤 각 대학의 학교법인에 이를 보고할 예정이다. 양교 학교법인의 협상에서 통합 여부가 최종 결정나게 된다.

두 대학이 통합에 성공한다면 주요 사립대 간의 자발적인 첫 통합사례로 기록된다.

기존 대학 통폐합은 사립대학의 경우 같은 재단내에서 규모가 작은 대학끼리 합치거나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의 통합 위주로 이뤄졌다. 국·공립대학의 통폐합은 교육부가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한 상태에서 각 대학의 자율적 결정에 따라 이뤄졌다.

두 대학은 강점분야가 서로 다른 만큼 통합으로 윈윈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데다,가톨릭대는 1994년 9월 당시 성심여대와 통합을 이룬 전례가 있어 통합의 가능성은 더욱 높다.

서강대 관계자는 “학교발전을 위해서는 가톨릭대와의 통합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으며 가톨릭대 관계자도 “서강대와 원칙적으로 통합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행 사립학교법상 하나의 학교법인이 사립학교를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통합할 경우 서강대를 운영하고 있는 예수회나 가톨릭대의 천주교 서울대교구 중 하나는 학교 운영에서 손을 떼야 해 난관이 예상된다. 또 두 대학 학교법인 내부 또는 동창회·총학생회 등의 통합 반대 움직임이 조직적으로 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간 치열한 경쟁 가열 속 ‘생존 위한 필수’…거대규모 대학 출현으로 기존 대학서열 변화 전망

서강대와 가톨릭대의 통합 추진은 기존 한국 대학체제에 본질적 변화를 촉진시키는 촉매제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두 대학의 통합노력은 대학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다른 사립대학들도 통합이나 재단간 인수·합병(M&A)을 통해 역량강화나 구조개혁에 나설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교섭 진행=서강대와 가톨릭대 관계자 모두 "특정대학이 먼저 교섭을 제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통합협상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양교 모두 처한 환경은 다르지만 통합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양교는 각자 역량을 강화시키는 데에는 대규모 시간과 돈이 투입된다고 판단,빠른 시간에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통합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학교법인은 다르지만 모두 가톨릭계 재단이라는 동질성도 갖고 있다.

서강대 관계자는 "통합대학 이름을 서강대,가톨릭대 중 어느 것으로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기득권을 포기하고 협상하고 있다"며 "양측이 신뢰를 갖고 있어 협상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시너지 효과= 양교의 통합은 '인문사회·기초과학+의학'의 결합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서강대는 서울대,연·고대의 두터운 벽을 깨기 위해서는 의과대학이 필요했다. 또 학교의 명성에 비해 규모가 작아 '서강고등학교'라는 오명을 들었던 서강대는 통합을 통해 거대 규모의 대학으로 발돋움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가톨릭대 역시 명문 의과대학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밖의 전공에서는 특성화된 강점 분야가 없었기 때문에 중위권 대학으로 분류돼왔다. 그러나 서강대와의 통합으로 명문 종합대학으로 도약할 전기를 맞이했다.

거대 규모의 대학 출현으로 서울대,연·고대 순으로 고착화됐던 기존 대학서열 구조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또 통합대학이 서로의 강점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의과대학이나 경영대학 등을 중점 육성한다면 특성화된 연구중심대학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크다.

◇대학 통합 실태=정부는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통폐합을 유도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부산대와 밀양대,강원대와 삼척대 등 10개 국립대학이 5개로 합쳐졌고 고려중앙학원의 고려대와 고려대 병설보건대,가천학원의 가천의대와 가천길대 등 10개 사립대가 5개로 통합됐다. 교육부는 '통폐합은 대학간 자율결정'이라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지만 통폐합 등을 통해 구조개혁에 성공한 대학들에 대해서는 각종 행정·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 사실상 통합을 권장하고 있다.

이번 서강대와 가톨릭대의 통합은 다른 재단간 통합이라는 점에서 기존 대학의 통폐합과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재단이 다른 사립대학들이 통폐합이나 M&A를 시도할 것으로 보여져 향후 기존 대학체제에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통합절차 어떻게 되나

서강대와 가톨릭대가 통합에 합의하더라도 통합대학의 탄생까지는 여러 법적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먼저 양교의 재단이 다르기 때문에 재단통합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하나의 재단이 사립학교를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서강대를 운영하고 있는 예수회나 가톨릭대를 운영하고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중 하나가 학교법인이 돼야 한다. 재단통합이 이뤄지면 교육부장관으로부터 통합대학 승인을 받아야 실질적인 학교통합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학교 운영권을 둘러싸고 양 학교법인 간의 치열한 쟁탈전이 예상된다. 또 학교법인 내 통합 반대세력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양교의 통합협상이 비밀리에 추진되고 있는 것은 반대세력의 조직화된 움직임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양교의 총학생회나 총동창회의 움직임도 변수다. 서강대 총학생회는 "학생들 모르게 통합협상이 이뤄지는 것은 큰 문제"라면서 "등록금도 올라갈 것이고 학교간 학칙이나 내규가 서로 달라 학생들의 혼란을 야기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가톨릭대는 아직 총학생회가 꾸려지지 않았지만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또 졸업동문들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여부도 통합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부는 서강대와 가톨릭대의 통합 움직임에 대해 "두 대학들의 자발적 결정이므로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두 대학의 통합논의가 다른 대학들의 구조조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싫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교육부는 통합대학이 정원감축 등 구조개혁에 나설 경우 다른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행정·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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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피 님께 댓글을 달고 났더니,

나도 갑자기 헷갈린다. 그래서 한 번 모아서 특집으로다가^^




아니 김 과장님, 제가 그런 것까지 일일히 챙겨야 합니까.

동윤아! 먹고 난 자리는 깔끔히 청소해야지.

아, 빽빽히 들어선 서울의 건물들.


글을 쓰다 보면 '-이'를 써야 할지 '-히'를 써야 할지 헛갈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저도 쓰면서 시험에 들 때가 참 많았는데요. 그래서 어떤 원칙이 있나 하고 여기저기 살펴봤습니다만, 딱히 원칙은 없고 그냥 '각개전투'를 해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대처하는 방법이라곤, 쓰면서 국어사전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이시옷도 그런 류의 친구라고 할 수 있는데, 그나마 사이시옷은 입장할 분위기를 봐가면서 끼어들기 때문에 대충 찍을 수 있는데, 이놈의 '-이'와 '-히'는 가늠하기 힘들더라구요.

혹시 좋은 구별법을 알고 계신 분은 고견을 기다립니다.

틈틈이 모았던 것들을 올립니다.

한글맞춤법 제3절 접미사가 붙어서 된 말
19항
: ......'-이'나 '-히'가 붙어서 부사로 된 것은 그 어간의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

3. '-이'가 붙어서 부사로 된 것
같이, 굳이, 길이, 높이, 많이, 실없이, 좋이, 짓궂이

4. '-히'가 붙어서 부사로 된 것
밝히, 익히, 작히


제25항 : '-하다'가 붙는 어근에 '-히'나 '-이'가 붙어서 부사가 되거나, 부사가 '-이'가 붙어서 뜻을 더하는 경우에는, 그 어근이나 부사의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

1. '-하다'가 붙는 어근에 '-히'나 '-이'가 붙는 경우
급히, 꾸준히, 도저히, 딱히, 어렴풋이, 깨끗이

2. 부사에 '-이'가 붙어서 역시 부사가 되는 경우
곰곰이, 더욱이, 생긋이, 오뚝이, 일찍이, 해죽이

■ 제6장 그 밖의 것
제51항
부사의 끝음절이(14) 분명히 '이'로만 나는 것은 '- 이'로 적고, '히'로만 나거나 '이'나 '히'로 나는 것은 '- 히'로 적는다.

1. '이'로만 나는 것 
가붓이 깨끗이 나붓이 느긋이 둥긋이
따뜻이 반듯이 버젓이 산뜻이 의젓이
가까이 고이 날카로이 대수로이 번거로이
많이 적이 헛되이  
겹겹이 번번이 일일이 집집이 틈틈이
 
2. '히'로만 나는 것 
극히 급히 딱히 속히 작히
족히 특히 엄격히 정확히 
 
3. '이, 히'로 나는 것 
솔직히 가만히 간편히 나른히 무단히
각별히 소홀히 쓸쓸히 정결히 과감히
꼼꼼히 심히 열심히 급급히 답답히
섭섭히 공평히 능히 당당히 분명히
상당히 조용히 간소히 고요히 도저히 

헛갈리는 '-이' 친구들 : 일일이, 깨끗이, 깔끔이, 떳떳이, 틈틈이, 빽빽이, 고즈넉이, 번번이, 뚜렷이, 샅샅이, 아스라이, 널찍이, 곰곰이, 간간이

헷갈리는 '-히' 친구들 : 조용히, 솔직히, 적절히, 꼼꼼히

여기 없는 글자를 알고 계신 분은 팍팍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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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18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자료네요 가져갈게요

글샘 2006-04-18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히 '이'로만 나는 것은 '- 이'로 적고, '히'로만 나거나 '이'나 '히'로 나는 것은 '- 히'로 적는다.
이런 것을 <-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전을 찾아보는 것이 유일한 수일 것입니다.

하루(春) 2006-04-18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ː간―이(間間―)가 빠진 듯하여 추가해주세요.

승주나무 2006-04-18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 님//좋은 자료로 봐주셔서 감사^^
글샘 님//일일이 구분하는 것이 매우 힘들어서 혹시 원칙이 없나 했습니다만, 역시 한땀한땀 찾아보는 데서 우리말의 묘미가^^
하루 님// 감사합니다. 추가하겠습니다^^
 

제가 구독하는 유일한 매체인 신문을 읽으며 기자와 필담도 나누고 있습니다. 사진기자 한 분은 주로 블로그에서 댓글로 나누고, 한분은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합니다.

다른 신문은 상세하게 안 봐서 모르겠는데, 이 신문은 기회기사가 맛이 있더라고요. 시리즈가 끝날 즈음 해서 메일을 보냈더니 답장이 왔네요.



안녕하세요.

경향의 꾸준한 독자 오승주라고 합니다.

한중망(閒中忙)으로 정신없이 지내고 있었는데, 댓글을 보아서 반가웠어요.

요즘 지방선거를 맞이해서 기획기사를 보고 있는데요,

꼭 필요한 문제제기를 해준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다만 그것이 '후보자'나 '당정'의 측면만 부각되는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유권자가 그들의 '정치 상술'에 호응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아귀가 맞지 않아

쏙 들어가겠지만, 유권자도 그들의 '개발 공약'에 현혹하고 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곧 우리 국민, 시민들의 정치적 성숙도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인 것 같은데요.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이 다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일례로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 복원공사를 한 이후에 지지율이 상승한 점이라든지,

그와 비슷한 개발 공약의 '약발'이 먹히는 점 등을 수치로 표현하여

우리 사회의 정치의식을 환기시키는 역할로서 기획은 한 측면을 배려하셨으면 어떨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니면 이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 선겨결과와 이 기획기사를 비교한 '후속기사'를

보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삼국지에서 간웅 조조가 툭하면 하던 말이 있었습니다

"그대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같소이다."

경향의 기획을 보면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도 위와 같소이다^^


메일을 오늘에서야 봤네요.
 
개발 공약이 실제로 시민들에게 먹히는 상황을 수치로 보여주는 것은
정말 괜찮은 지적인데요.
 
그렇게 기사에 반영했더라면 기사가 더 풍부해졌을 것 같습니다.
 
지방선거 관련 후속은 선거가 다가오면서
정치부와 사회부 등에서 이어가야 할 것 같은데
 
상황을 봐서 저희가 썼던 기사와 연결되는 점이 있으면
적극 제안해 볼께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의견 주셔서 감사하고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영주 올림


아래는 문제의 기획기사입니다.

1부 : ttp://blog.khan.co.kr/97dajak/5052118
2부 : http://blog.khan.co.kr/97dajak/5052160
3부 : http://blog.khan.co.kr/97dajak/5061444
4부 : http://blog.khan.co.kr/97dajak/5062353
5부 : http://blog.khan.co.kr/97dajak/5062393
6부 : http://blog.khan.co.kr/97dajak/5062426
마무리 좌담 : http://blog.khan.co.kr/97dajak/506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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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매니페스토 선거가 되어야


오는 5월31일 실시되는 지방선거의 최대의 화두로 매니페스토(Manifesto)가 등장하고 있다.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는 물론 정당, 언론, 그리고 유권자 모두 이번 지방선거에 매니페스토가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2000년 총선때 낙천·낙선운동에 버금가는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연일 주요 언론들이 지방선거와 관련된 매니페스토 운동의 전개 과정을 앞 다투어 보도하고 있으며, 후보자나 정당들은 매니페스토 작성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또한 학계와 시민단체들은 선거 전후에 걸쳐 매니페스토에 대한 평가를 위한 지표 개발에 분주하다. 지금까지 한국 선거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현상이다.

우리 나라에 매니페스토가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불과 2개월 보름도 되지 않는다. 지난 2월1일 필자를 비롯하여 일부 시민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531스마트(SMART)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추진본부’를 결성, 발족한 이후 매니페스토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매니페스토 열풍이 전국에 확산되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16일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등 주요 정당 대표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매니페스토추진본부와 매니페스토 협약식을 가진 이후 최근 각 지역에서 지역단위의 매니페스토 평가단이 조직, 후보들과 협약식이 거행되고 있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 후보자들을 위한 매니페스토 아카데미가 열려 선거운동에 바쁜 후보자들도 시간을 쪼개 수강하고 있다.

매니페스토는 헛된 空約이 아닌 실천가능한 공약

그러면 왜 정치권이나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에 적용될 일명 ‘참공약 선택하기’로 지칭되고 있는 매니페스토를 주목하는 것인가. 도대체 매니페스토는 무엇이기에 정치권이 긴장하고 있는가. 매니페스토는 선거 시 후보자나 정당에 의하여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선거공약으로 영국에서 1834년부터 사용되고 있다. 일본은 2003년 선거 때부터 실시하고 있다.

매니페스토는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정당이나 후보자가 선거 후 정권을 담당하거나 당선되었을 경우, 반드시 입법화 또는 실천하겠다고 약속한 정책 개요를 공식적으로 문서화하여 선거 기간 중에 공표하는 국민에 대한 서약서이다.

이런 매니페스토가 일반 공약과 다른 점은 선거 공약의 목표치를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내세우며, 또한 실현을 위한 재정적 근거와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선거공약에 기간, 목표, 공정, 재원 나아가 우선순위라는 구체적 계약을 담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 1997년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이 발표한 매니페스토는 "노동당과 국민과의 계약(Contract)"이란 제하의 10대 비전이 제시되어 있으며,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시책이 기한, 목표, 재원, 우선순위 등이 기술되어 있다.

이를 청년실업대책과 관련하여 영국과 한국에서 각기 선거 시 발표한 공약을 비교하면 더욱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한국은 청년실업을 해소책으로 ‘공기업에 청년 채용 적극 권장’이라는 추상적인 내용이지만, 영국은 “25세 이하 25만명 청년고용‘으로 구체적 수치까지 포함하고 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4년 동안 28만명을 고용, 공약을 지켜 재집권에 성공하였다.

매니페스토를 정치문화 선진화 계기로 삼아야

이번 시민단체에서 전개하는 매니페스토 운동은 스마트(SMART) 매니페스토이다. 즉 SMART의 S는 구체적(Specific), M은 측정가능하며 (Measurable), A는 달성가능하며 (Achievable), R은 정책이 타당하며 (Relevant), T는 시간계획이 포함된(Timed) 것을 의미하고 있으며, 이를 평가지표로 삼을 것이다.

지난 3월3일 전윤철 감사원장은 앞으로 업무평가 시 매니페스토의 평가지표인 SMART 지표에 따른 감사를 하겠다고 발표하여 공직사회에도 매니페스토 바람이 불 것이다. 벌써 앞으로 있을 농협조합장 선거, 교육감 선거는 물론 대학 총장선거에서도 매니페스토를 작성하겠다고 하니 한국사회에 매니페스토가 미칠 영향을 대단할 것 같다.

우리는 지금까지 선거때만 되면 정책보다는 혈연(血緣), 지연(地緣), 학연(學緣), 금연(金緣)에 의하여 투표함으로 자질 부족한 대표가 선출된 사례가 많다.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이 보았다. 이번 지방선거가 매니페스토에 의한 정책선거가 실시된다면 내년 12월 대통령 선거는 감성적 이미지 선거가 아닌 매니페스토에 의한 정책선거의 뜨거운 경연장이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이번 선거가 매니페스토에 의한 정책선거가 정착되도록 정치권이나 유권자들은 최선을 다 해야 될 것이다. 후보자는 유권자가 신뢰할 수 있는 매니페스토 작성을, 유권자는 후보자가 작성한 매니페스토를 꼼꼼하게 따지는 깐깐한 투표 행태를 보여주어야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매니페스토는 선거문화 변화는 물론 우리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대충대충’ ‘적당히’의 생활의식도 변화시킬 것이다.

 

글쓴이 / 김영래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 한국정치학회장 역임
· 한국NGO학회장 역임
· 현재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민운동정보센터 이사장
         매니페스토 정책선거추진본부 상임대표
· 저서 : <한국정치,어떻게 볼 것인가>(2003)
           <매니페스토와 지방선거>(2006)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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