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신나게 놀다 보면 소리도 좀 지르고 아이를 거꾸로 세워놓기도 하는데, 그러면 잔소리를 듣습니다. 


"땀 뺴면서 놀아주는 게 능사냐?!"


아이들과 병원놀이를 하는데 환자 흉내를 낸다고 소리를 질렀더니 이번에는 야단을 칩니다.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좋은 소리도 못 듣고.."


가끔 속이 상해서 아기 엄마랑 다투기도 합니다. 아기 엄마는 아이들과 책 읽거나 조용하게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면 노는 것 같지 않아서 의견이 엇갈립니다. 아이 키우는 아빠들은 이런 고민 한번쯤 해보셨죠? 정말 아기 엄마 말대로 얌전하게 놀아주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아빠 마음대로 노는 것이 좋은지.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청각이 발달하기 떄문에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알아봅니다. 엄마의 몸냄새만 맡아도 엄마를 알아본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빠 역시 아기가 매우 어릴 때부터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감정코치 전문가인 존 가트맨 박사의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에 따르면 실험 결과 아버지와 많은 접촉을 가진 5개월 된 남자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거부감을 덜 느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아빠와 같이 한 시간이 많은 두 살짜리가 낯선 사람과 함께 있어도 덜 운다는 또 다른 실험 결과도 소개했습니다. 





아빠의 존재감은 점점 커질 뿐만 아니라 매우 어렸을 때부터 영향을 미치는 셈이죠. 이번에는 격하게 노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호주 뉴캐슬 대학 ‘아빠와 가족 연구 프로그램’의 리차드 플레처 연구원은 아빠의 과하다 싶은 놀이가 자녀의 정서에 미치는 정도를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는데요. 30개월~5세 아이를 둔 30 가정을 대상으로 ‘아빠 양말 빨리 벗기기’ 등 과격한 놀이가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한 결과 과격한 놀이는 아이의 신체 발달뿐 아니라 감정과 생각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아빠와 더불어 과격한 놀이를 하면 성공했을 때 성취감의 큰 것이 장점인데, 아빠와 부대끼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기보다 ‘거대한’ 상대를 물리쳤다는 큰 성취감을 쉽게 맛보고 성취감을 느끼면 자아 존중감이 길러지고, 자아존중감이 커지면 경쟁력이 아주 높아진다고 합니다. 연구를 수행한 연구원은 “아빠와 과격한 놀이를 시켜보면 아이들은 이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며 “이런 과정 자체가 2~5세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 매우 좋은 효과를 낳는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소개한 감정전문가 존 가트맨 박사 역시 아버지들은 아기의 호감을 자극하기 위해 경쾌한 소리를 내거나 탁탁 흥분시키는 활동을 하며 아이의 정서를 강하게 자극하고 기어 올라가기, 뛰기, 간지럼 태우기 같은 접촉은 아이들로 하여금 육체적인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많은 아동심리학자들은  시끄럽고 육체적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놀이가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아버지가 무시무시한 곰 흉내를 내는 것, 깔깔거리고 웃는 아이를 쫓아다니는 것, 아이를 거꾸로 물구나무서기를 시켜서 안고 돌아다니는 비행기놀이등은 아이에게 활동적이고 긍정적인 감정을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게임을 중단할 때("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아이들은 어떻게 한창 신났던 상태에서 평상심으로 돌아가는지 배우게 됩니다. 


엄마들은 주로 유효성이 증명된 '까꿍놀이'나 손뼉 치기, 책 읽기, 블록 놀이, 퍼즐게임 같은 놀이를 하는 반면 아버지들은 종종 특별하고 신기한 게임으로 아이들을 유도하는데,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신기하고 새로운 놀이에 흥미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놀이는 부부 간에 갈등을 가져올 수 있으니 시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예컨대 자기 직전에 격한 운동을 한다든지, 아기 엄마가 애써 목욕을 시킨 직후에 격한 놀이를 하는 것은 삼가야겠죠. 


어쨌든 아이들과 놀아주려고 애를 쓰는 아빠들은 격한 놀이에 잔소리하는 아기 엄마들에게 위의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면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놀아주는 아빠'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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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11-2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이들과 격하게 안놀아 준다고 뭐라고 하네요.

승주나무 2012-11-21 13:36   좋아요 0 | URL
saint236 님//저랑 반대네요. 저는 격하게 놀아준다고 ㅎㅎ
 

절대적 지지를 받는 학습법, '복습'




예습이 중요할까 복습이 중요할까? 절대다수의 학부모들이 '복습'을 중요하다고 꼽았다. 독서 커뮤니티 페이스북 소셜북스에 "예습이 중요할까요? 복습이 중요할까요?"라는 질문에 댓글을 단 14명이 모두 '복습'의 중요성을 꼽았다.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 박사의 실험, 즉 '에빙하우스 망각곡선'을 근거로 제시한 분도 있었다. 즉 한달이 지나면 20%만 남는다는 것이다. 망각곡선을 뚫기 위해서는 반복된 복습이 주효하다는 결론이다. 


공부에 관한 책을 쓴 저자들도 비슷한 생각이다. <너, 진짜 공부해봤니>를 쓴 이용훈 씨는 "배웠으면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 공부(복습)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고, <엄마가 알아야 아이가 산다>의 전위성 씨 또한 "선행학습보다는 개념 중심, 보충ㆍ심화 중심, 복습 중심으로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뇌(복습) < 잠재뇌(예습)



뇌 전문가들은 뇌의 효율성에 비중을 두고 논리를 전개한다. <아이의 뇌 부모가 결정한다>를 쓴 일본의 뇌 전문가 호사와 다카시 박사는 현재뇌와 잠재뇌를 가지고 설명한다. 뇌 속에는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이른바 현재뇌라는 부분은 극히 한정돼 있다. 때문에 현재뇌를 통해서 배웠던 부분은 급격히 사라진다. 그것은 현재뇌가 새로운 현재와 교감하는 과정에서 연결되지 못한 정보를 배출해 버리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평소 우리가 의식할 수 없는 '잠재뇌'의 움직임은 현재뇌의 몇 배에 이른다. 들어오는 정보 자체가 달라진다. '대충 훑어봐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꼭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은 현재뇌 수준에서의 생각이다. 실제로 복습의 중요성을 제기한 네티즌들은 '현재뇌' 중심의 사고를 보여주고 있었다. 


잠재뇌는 대충 훑어보기만 해도 내용이 확실히 머릿속에 새겨놓는다고 한다. 다음 날 배울 부분을 미리 살펴보거나 훑어보면 정확히 이해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다음날 수업에서 선생님께 그 부분을 설명들으면 이해력이 더 높아진다. 수업의 이해력이 높아지면 공부에도 흥미를 느끼게 되고, 수업 시간에 한눈을 팔거나 딴 짓을 하지도 않게 된다.


우리가 예습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은 '선행학습' 때문이다. 선행학습이 학습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여러 가지 연구와 실험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서울시내 초중고생 5,000여 명을 대상으로 선행학습이 성적에 미치는 효과를 연구를 1년 넘게 진행했는데, 개발원은 "학교 진도를 한 달 이상 앞질러 공부하는 '선행학습'이 성적 향상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은 실증적 증거와 일치하지 않고 주관적 판단일 뿐이다. 선행학습이 성적의 상승을 가져왔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비과외 집단이 장기적을(중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볼 때 학업성적이 더 좋아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결론을 맺었다. 


어떻게 해서 선행학습이 예습과 유사한 것으로 인지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예습에 대한 오해가 일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습의 사전적 의미는 "앞으로 배울 것을 미리 익힘"의 뜻이다. 즉 시간의 흐름이 있다. 언제 배울지 모를 것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곧 배우게 될 것을 익힌다. 사춘기 전후의 아이들은 뇌 용량이 크지 않기 때문에 내일이나 모레 같은 짧은 시간 안에 배울 것을 미리 보는 것을 예습으로 보는 것이 옳은 접근이다. 아이의 뇌가 감당할 수 없는 시간을 염두에 두고 배우는 것은 명백한 선행학습으로 예습과는 전혀 상관 없으며 아이들의 학습에 오히려 피해를 입힌다는 것이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해서 입증되었다. 


요컨대 복습을 통해 현재뇌를 자극하고, 예습을 통해 잠재뇌를 자극하는 방식을 함께 사용한다면 학습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아래의 순서를 따르는 학습방법을 권할 수 있다. 


1. (1~2일 전 배울 내용을) 미리 학습(잠재뇌 사용) → 2. 선생님께 배우며 이해력 향상(현재뇌 사용) → 3. 적절한 복습을 통해서 장기기억에 저장





※ 더 많은 글을 보시려면 소셜북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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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theme 2012-11-21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죠? 그래도 전 복습 지지자랍니다.
요즘처럼 애들이 바쁘면 예습, 복습을 다하기가 힘들 것 같아서요.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복습에 한표를 던집니다.

승주나무 2012-11-21 00:48   좋아요 0 | URL
antitheme 님//오랜만입니다. 저도 복습 지지자입니다. 이 글의 요지는 "예습 우습게 알지 마라"입니다. 복습과 예습 비율을 8:2 정도만 유지해도 좋겠죠. 예습을 0으로 만들지만 않으면 됩니다^^

야클 2012-11-21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드디어 승주나무님도 슬슬 교육에 관심이 가는 때가 되었군요. 저도 요즘엔 유치원 뉴스만 나오면 관심이 갑니다. 아직 수능 관련 뉴스는 먼 달나라 얘기지만요. ^^

승주나무 2012-11-21 10:57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아무래도 아기들을 키우다 보니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야클 님 오랜만입니다. 잘하면 1월에 책이 나오는데, 그때 제대로 신고하겠습니다~~

울보 2012-11-2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예습 복습을 실천하려는 엄마중에 한사람, 그런데 너무 힘드네요,아이도 힘들고 시키는 엄마도 힘들고 스스로 공부할 나이가 된다면 지금도 스스로 해야 하는데 엄마는 조금 편해지려나,,

승주나무 2012-11-21 14:06   좋아요 0 | URL
울보 님//실천이 가장 힘들죠.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 책의 재미만 주려고 하는데, 공부와 책에 대해서 전향적으로 생각하고 새롭고 재미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고생 많으십니다^^
 
살아야 하는 이유 - 불안과 좌절을 넘어서는 생각의 힘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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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 선생에게 배우고 싶은 '태도'


푹 패인 눈에 말쑥한 밤색 양복을 걸친 신사는  지적이고 과묵해 보였다. 로댕의 작품보다 더 고민이 많은 듯한 얼굴의 강상중 선생을 11월 5일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처음 만났다. <살아야 하는 이유>(사계절)를 소개하기 위해 출판사가 마련한 기자 회견장에서였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는 거지만 내가 강상중 선생의 귀한 책들을 놓쳤다는 생각을 하니 속이 쓰렸다. 그래서 앉은 자리에서 3권(내셔널리즘, 고민하는 힘, 살아야 하는 이유)을 내리 다 읽었다. 일본에서 100만부 이사 팔렸다는 <고민하는 힘>. 출판사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의 출판시장은 잡지가 6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단행본의 비중이 크지 않은데, 그런데도 100만부가 팔렸다는 것은 국내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200만부 팔린 것과 같은 충격이라고 귀띔해주었다. 


재일교포 2세, 경계인으로서 한국과 일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특히 어린 시절부터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했다던 선생은 삶과 진지함을 운명적으로 타고났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내가 특히 강상중 선생을 만나고 싶었던 까닭은 <살아야 하는 이유>에서 그가 결론처럼 강조한 '삶의 태도'를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의 말미에 빅토르 에밀 프랑클의 예화가 하나 소개돼 있는데, 프랑클 박사가 보살핀 환자 중에서 임종이 임박한 한 환자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죽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프랑클 박사에게 "밤중에 일어나지 않으실 수 있게 지금 모르핀을 놔주세요"라고 말한다. 프랑클 박사는 "비할 데없이 아름다운 업적"이라는 칭송을 보낸다. (책 176쪽) 그러고 보니 소크라테스도 임종을 할 때 이웃에게 진 닭을 대신 갚아달라고 말하고, 슬퍼하는 제자들을 설득하려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모습도 떠올랐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선행 사례를 볼 때마다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티 안 나는 행동을 왜 이다지도 중요하게 생각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강상중 선생의 태도를 확인하고 싶었다. 


기자회견은 강상중 선생이 책을 집필한 경위에 대한 설명을 20분 정도 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강상중 선생이 일본어로 이야기하면 동시통역이 통역으로 끊어서 소개했다. 한국어로 하는 질문이 잘 안 들릴 텐데도 말을 알아들으려고 시선을 맞추고 경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올해는 질문이 참 많이 나왔고 대부분 중요한 질문이었다며 무척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을 하며 테이블마다 찾아가 기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모습은 기자회견의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모습을 카메라로 잡을 수 없어서 아쉽다. 그리고 강연의 내용 중에 내가 눈여겨 본 태도는 '경계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한국과 일본에 대한 깊은 애정이었다. 한일관계가 악화될수록 선생의 가슴도 찢어지게 아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교수'라는 직함 대신 '선생'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은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태도에 존경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강상중 선생이 쏟아낸 고민들은 이론만으로는 건져내지 못한다. 마치 왼발과 오른발이 보폭을 맞추어 걷듯 치열한 지적 작업이 일보 전진하면, 밑바닥 현장을 두루두루 둘러보며 직접 확인하는 작업이 호응하는 식이다. 3.11 후쿠시마 대지진이 벌어지고 일주일만에 선생은 방사능이 상당히 깊었던 현장 곳곳을 둘러봤다고 했다. 선생은 "2만명 이상이 죽은 현장을 밟아보면서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얻었다"고 말했다. 특히 후쿠시마 현 사람들에게 들은 말 중에서 아직도 가슴을 후벼파는 것은 "이런 사태를 만났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말이었다. IMF가 터졌을 때도 선생은 한국에 있었고, 아르헨티나 부도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선생은 9.11 현장이 아니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었다고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거주하던 중산층이 했던 말 "이것은 부드러운 제노사이드(인종청소)다"이 특히 가슴아팠다고 말했다. 현장파 지식인에게 특히 배울 것은 '현장'이 아니다. 그의 이론이다. 현장에 굳건한 기반을 둔 탄탄한 이론과 그것을 다루는 태도다. 내가 강상중 선생의 책 세 권을 내리 읽은 까닭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의 글과 말에 담겨 있는 함의


"한국은 점점 일본과 닮아가고 있어요."


강상중 선생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한 이 말에는 <살아야 하는 이유>의 존재이유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사랑하는 아들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려 2만명의 일본인을 숨지게 한 대지진이라는 고통스러운 사건이 관통한 기록이다. 전작인 <고민하는 힘>에 등장하는 막스 베버, 나쓰메 소세키, 빅토르 에밀 플랑크, 윌리엄 제임스는 예고편(고민하는 힘)에 이은 본편(살아야 하는 이유)에 등장하는 것처럼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200쪽 남짓의 책이지만 체계와 완성도 면에서 꽉 차 있다는 느낌을 준다. 마치 강상중 선생이 이 책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이 핵심인물을 등장시키지 않겠다고 작정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가 강상중 선생의 책에 왜 이렇게 비중 있게 다뤄졌는지 궁금해하는 독자는 <고민하는 힘>에서 선생이 해명한 부분을 소개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선생에 따르면 "막스 베버는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나쓰메 소세키는 '문학'을 통해 '근대'라는 것이 인간의 상황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가르쳐 준다. 게다가 당시가 제국주의 전쟁의 극단을 보여준다면, 현재는 다만 옷을 바꿔 입었을 뿐인 '글로벌 머니'가 폭주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버와 소세키의 말은 놀라운 치료제가 된다. 


강상중 선생의 <살아야 하는 이유>는 확실히 죽음과 관련이 있다. 앞서 소개한 두 가지 슬픈 죽음 이외에도 '자살'이라는 한일 양국의 깊은 고민이 주제다. 강상중 선생의 말을 들어보자. 


"1년에 일본에서 자살하는 사람의 수는 3만이다. 지난 15년간 줄곧 그 숫자였기 떄문에 45만명이 세상을 떠났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까지 보자면 여기에 10을 곱하면, 그의 가족들까지 헤아리면 여기에 10을 곱하면 된다. 즉 일본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주변에 절박한 사람을 끌어안고 있는 셈이다."(11.5 기자회견 중에서)


세계의 자살률 공식 통계인 10만명당 자살률은 우리나라가 일본을 이미 누르고 1위다. (일본 10만명당 21.2명 자살, 한국 10만명당 33.5명 자살) 2010년 한 해 1만5566명, 하루 42.6명(2010년 통계) 그런데도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살의 수치 너머를 보지 못하고 있다. <살아야 하는 이유>는 왜 이렇게 많은 자살자들이 발생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자살에 이르는지, 현실세계의 자본과 권력 그리고 사회시스템은 어떤 방식으로 자살자들을 떠밀고 있는지를 깊이 있게 분석한다. 


3.11 대지진이 책의 주요한 사건으로 등장해야 하는 까닭도 자명하다. 강상중 선생은 "(3.11대지진이 1945년 8월 15일 종전과 비견할 만한 사건이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이번 대지진은 일본 국민들을 세뇌시켰던 과학이라는 종교와 오만한 특권의식, 이들에게 억눌린 덩어리 세대(다이롄은 '덩어리'의 일본어)와 말단 세대가 보여준 프리터, 니트 등의 병리현상의 완결판이기도 하다. 강상중 선생은 이 현상의 근저에 있는 두 가지 키워드로 "돈, 내셔널리즘"을 꼽았다. 


3.11대지진이 벌어지고 나서 한국에서 도움의 손길이 많았고, 당시 언론에서는 '연대'라는 말이 심심찮게 등장해 선생은 한일관계가 전향적으로 진전되는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가고 있다. 비극적인 사건이 사람을 바꿔놓지는 않는다. 비극적인 사건을 통한 반성과 이를 통한 태도의 변화가 전향적인 관계를 만든다. 선생은 1923년 관동대지진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 당시 7천명이 넘는 한반도 출신자들이 학살을 당했다고 한다. 



 

▲ 강상중 선생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 모습


▲ 시간과 여유가 조금 더 되는 독자는 전작 <고민하는 힘>과 <내셔널리즘>을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 동시통역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 평소 선생이 해왔을 진지한 성찰이 주름을 통해 보인다




'거듭 나기'를 위해서


강상중 선생은 <내셔널리즘>이라는 책에서 보이듯, 일본의 내서널리즘에 대해서 오랫동안 추적하고 연구한 학자다.  시민의 자연적인 협의가 아니라 엘리트의 관념에 따라서 추동되는 게 내셔널리즘의 본질인데, 3.11대지진에 대한 선생의 설명에서도 내셔널리즘의 그림자가 쉽게 보인다. 선생은 3.11 대지진이 1년 남짓 지난 시점에 일본의 미디어는 '재해'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고, '연대'라는 말은 입에 꺼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자연재해를 통해서 일본의 시민들과 한국ㆍ일본의 시민들이 풀뿌리 연대를 이뤄내는 장면은 일본 엘리트가 보기에 악몽 그 자체였을 거라는 생각은 자연스럽다. 


강상중 선생은 두 가지 예화로서 내셔널리즘과 돈에 대해서 깊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도쿄도의 전 지사였던 '이시하라'가 장애인 전문 병원을 방문하고 "이 사람들은 아직도 살 가치가 있나요?"라고 남긴 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분개했다. "이런 사람이 일본 심장의 수장이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고도 덧붙였다. 내셔널리즘은 일본 엘리트의 자의적인 관념 그 이상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정치는 당대의 가장 힘없고 약한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라는 동양의 오랜 정치관으로 볼 때, 일본의 정치인들이 정치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돈을 상징하는 장면은 더욱 충격적이다. 선생은 일본의 위 전문의가 수입이 좋다는 이유로 정신병 전문의로 간판을 바꿔 영업하는 현상이 보고된 내용을 소개하며 한국의 상황은 어떠냐고 물었다. 직업 중에서도 가장 자긍심 넘치는 의사라는 직업이 한낱 돈에 따라서 갈대처럼 흔들리는 슬픈 장면이다. 


마지막으로 '거듭 나기'에 대한 소개를 덧붙이고 싶다. 이미 소개한 대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단지 희망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강상중 선생이 원하는 것은 '이해'이다. 르네상스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감정과 고통 등 외부 자극을 상대하기에 인간은 너무나 무력하다고 말하면서, 이것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이해'를 시도하는 순간 고통의 반은 이미 사라진다고 역설했다. 


<살아야 하는 이유>에서는 자살로 몰린 상황과 자살 선택이 한갓 개인의 처지가 아니라 사회구조가 의도적으로 밀어내거나 또는 막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것을 간단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책에는 다양한 방법들이 분석돼 있다. 공교롭게도 강상중 선생이 주요하게 다룬 막스 베버(정신병 경력), 제임스(정신병 경력), 소세키(극심한 위궤양), 프랑클(아우슈비츠 생존 경험) 들은 거듭나기의 상징적 인물들이다. 고통스러운 경험은 거듭나기 위한 절호의 기회이나, 고통을 다루는 태도에 따라서 전혀 다른 양상으로 튕겨나갈 수 있다. 


행복을 누리는 시대는 끝났다. 강상중 선생이 말하는 지금 시대는 불행과 고통을 이해하고 그것을 너머서는 시대다.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면 악순환이 반복된다. 강상중 선생의 말을 들으며 일본은 지금 악순환으로 향해 달려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순간 일전에 했던 한마디가 생각나 소름이 돋았다!


"한국은 점점 일본과 닮아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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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한비자 관련 서적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한비자는 어떤 목표나 결과를 달성하기에는 기가 막히게 잘 드러맞는다. 경영전략이나 인사 업무를 할 때 한비자는 놀라운 혜안을 제공해 준다. 노자 역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사물을 관조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언제나 매력적인 책으로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책의 정확한 위치와 쓰임을 알 때 더 많은 성찰을 줄 수 있다. 

만약 한비자나 노자가 처음으로 접해 보는 동양고전이라면 커다란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한비자나 노자는 기본적으로 기존의 사고방식에 대한 대안이거나 파격, 즉 비판서로서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이 책들의 역사성이다. 


기존의 사고방식이란 유가를 말한다. 먼저 문제가 되는 노자의 경우 "공자가 찾아가서 예를 물었다"는 사마천 사기의 내용 때문에 유가보다 앞선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공자의 <논어>보다 <노자>가 시기적으로 뒤에 있을 뿐만 아니라 유학의 유구한 전통에 비해서는 너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학은    B.C.2288년, 즉 지금으로부터 3,300년 전 요임금 시기부터 시작하는 반면, 노자는 공자의 생몰연대인  B.C.552~479년 이후부터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북아의 인간은 유전적으로 유가의 피를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양인의 존재와 행동은 유가가 규정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바탕 위에 노자와 한비자가 있다. 


한비자의 사상을 받아들여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는 서쪽의 변방에 있던 나라로 중원의 중국인으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유가의 사고방식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한비자는 중국 가운데라고 할 수 있는 한(韓)나라에서 유세하였으나 개혁적 성향은 보수적인 유가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결국 한비자의 책을 눈여겨 본 진시황이 한비자의 사상을 철저히 받아들이고 진나라가 가혹하게 적용한 끝에 극단적인 효율성을 무기로 전국시대를 통일할 수 있었다. 


결국 한비자는 유가의 기반 위에 개혁을 이뤄냈다고 할 수 있다. 한비자를 읽을 때 이런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면 큰 도움이 된다. 결국 유가에 대한 반론으로서 법가를 주창한 것이다. 


동양인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유가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유가의 유전자가 몸에서 빠져나가려면 적어도 수백 년은 지나야 한다. 법가나 노장을 존재와 행위의 언어로 규정하는 순간 원인 불명의 상태가 된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가를 원류로 하고 한비자와 노장 등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학습했다. 다산 정약용도 마찬가지였다. 


즉 유가로 발제를 삼고, 노자를 통해 유가의 고정관념과 맹신이 어떤 부분인지 가려내고, 한비자를 통해 유가의 비효율적인 부분을 가려낸다. 한비자 본인 역시 자신의 책이 정도를 벗어났다고 고백했다. 잔인한 전국시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극약처방이 필요했다는 게 그의 해명이었다. 


마지막으로 특정 사상가에게 몰입하는 경우 그 사상가의 관점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성향을 가질 위험이 있다. 나는 1998년 스피노자의 <에티카>로 철학공부를 시작했다. 스피노자로 모든 현상이 설명이 된다고 믿어 5년 넘게 스피노자에 빠져들었다. 철학과 은사님이 "전체 철학사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스피노자가 가지고 있는 위치를 조망하는 게 좋다"는 조언을 해주셔서 철학사를 10권 가까이 읽었다. 그 결과 스피노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서당을 다니면서는 주자에 빠지게 되었는데, 주자로부터 자유롭게 되기까지는 10년 정도의 세월이 걸렸다. 노자와 장자, 사마천 등을 보면서 주자의 한계를 알게 되자 자연스럽게 주자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었다. 어떤 특정한 사상가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그 폐해는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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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가방 2012-11-22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스피노자에게서 자유로워지셨다는 거에요? ㅎㅎ
저 군대 가기 전까지만 해도 한참 스피노자에 푹 빠져계셨었는데.. ^^

승주나무 2012-11-22 18:42   좋아요 0 | URL
네.. 지금은 매슬로에 푹... 여기서도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ㅎㅎ
 



진짜 오랜만에 쓰는 페이퍼입니다. 


2002년부터 거의 10년 동안 시간을 바친 알라딘. 

변화하는 추세에 따라가다 보니 트위터도 하고 페이스북도 하면서 방치를 좀 해두었죠. 

그래도 서재 이웃들이 보고 싶어서 다시 방 정리를 합니다. 


페이스북에서 3년 동안 썼던 글들을 핀터레스트라는 SNS 안에 고스란히 표현해봤습니다. 


주소 : http://pinterest.com/socialbooks/


책 좋아하시는 분들이니 책표지 이미지나 재밌는 이미지 보면서 같이 이야기 나눠도 좋을 것 같아요. 

다들 잘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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