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케스트라 - 리처드 용재 오닐과 함께한 1년의 기적
이보영 지음 / 이담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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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XX, 다문화 주제에."

'다문화'에 대해서 보통 사람 만큼만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얼마 전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다문화'라는 말이 비속어로 쓰인다고 한다. "이 XX, 다문화 주제에!"라는 말 속에는 사용되는 '다문화'는 조롱과 멸시, 인종차별을 상징한다. 

마치 '민주화'라는 용어가 멸시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이 언어도 폭력의 수단으로 자리잡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하나의 언어, 그것도 숭고한 가치가 담긴 언어가 폭력의 수단이 되고 상처를 주는 말로 전락한다면 그 잘못은 누구에게 있을까? 말을 악용하는 사람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언중들이 말이 병들도록 방치했을 때 언어가 병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다문화'를 욕설로 사용하는 사람은 이 말이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 수 있다. 다문화는 중요한 사회적 현상이 된 만큼,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기도 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에 따르면 다문화 결혼이 줄고 이혼은 늘었다. 2007년 8294건이던 국제이혼 건수는 지난해 1만887건으로 급증했다. 이미 2011년 우리나라 이혼부부 10쌍 중 1쌍 이상이 다문화 가정이다. 

지인을 통해서 다문화 가족의 현실을 듣게 되었다. 아프리카 내전을 피해 한국으로 피신한 엄마와 아이가 적지 않은데 가족이 위태로울 정도로 소원해졌다고 한다. 아이들은 한국말을 자기 나라 말보다 더 잘 하는데,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부모님들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아이들은 한국말도, 모국어도 제대로 구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한국이 외국인에 대해서 썩 성숙한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상적인 인종차별이 존재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차별을 당하고,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아이들과의 관계도 악화되기 때문에 무척 안타까웠다. 

어떤 변화든 사회적 인식이 성숙했을 때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는 오히려 변화 이전보다 더 상황이 악화된다. '다문화'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문제의 중요성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혼자 냉가슴을 앓고 있을 때 생각지도 못한 책이 한 권 도착했다.

<안녕?! 오케스트라>(이담북스)는 2012년 MBC 대기획 프로젝트의 제목인 프로그램과 같은 제목의 책이다. 열 개의 나라에서 찾아온 9~14세의 아이들로 구성한 오케스트라의 좌충우돌 스토리다. 

이 책은 재기발랄하며 성숙하다. 총천연색 아이들의 색깔을 잘 살려내 독자들에게 소개하니 작위적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기분 좋아지는 장면은 '릿타'라는 아이가 자연의 박자를 세는 장면이다. "물소리는 제가 들어서 세어 봤는데 네 박자 같아요. 바람이 나뭇잎에 붙어서 나는 소리는 세 박자. 그런 느낌이에요"라는 표현을 아이들에게 듣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기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재기발랄하다. 상처란 위대함의 발판이 되며 상처와 상처가 만나 위로가 되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냈다. 그래서 성숙하다. 재기발랄하고 성숙한 이야기가 모여서 조화를 이룬 음악 소리가 나는 책이 <안녕?! 오케스트라>다. 

"넘 감동!을 준 책!"

<안녕?! 오케스트라>를 함께 읽은 네티즌들은 격한 감격을 표현했다. 양희경씨는 "넘 감동!을 준 책! 단숨에 쭈우욱! 여러번 울컥! 울먹! 주루룩 했습니다"라며 느낌표를 무려 다섯 개를 달았다. 격한 감동이 전해졌다. 조향미씨는 책을 받자마자 펼쳤는데 기분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아예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찾아서 다시 듣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마태호씨도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김영헌씨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자신이 따뜻해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민규씨는 '예쁘다'는 말로 이 책을 정리했지만, 그 중에서도 오디션 과정이 가장 예뻤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현악기를 쥘 수 있는 팔 길이가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선발되었다. 오디션의 탈락 여부가 음악적 재능도 열정도 아닌, 최소한의 신체적 조건이었던 셈이다." - <안녕?! 오케스트라> 31쪽

이민규씨는 "정말 생각만해도 흐믓한 오디션이 저에게 감동을 주고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네요"라는 말로 코멘트를 마무리했다. 나는 특히 <반짝 반짝 작은 별>이라는 자장가를 여러 나라 말로 들려주는 모습이 특히 감동적이었다. 연주회에서 아이들의 연주를 듣는 부모님이 되는 상상을 해봤다. 이 책을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오케스트라 단원인 콩고 출신 다니엘을 직접 가르쳤던 선생님도 댓글 놀이에 참여한 것이다.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 제가 한글을 가르쳤던 콩고 여성의 아이(다니엘)이 나와서 감회가 새롭더군요!!"(박진숙씨)

<안녕?!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큰 울림을 준 부분은 바로 다니엘이 남긴 말이었다. 다니엘의 말을 접하고 슬펐다. 어른보다 더 조숙한 생각이 담긴 말을 엄숙하게 하는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진짜 싫고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는 것은 욕, 놀림, 차별입니다. 첫째, 욕이 없는 세상. 둘째, 놀림이 없는 세상. 셋째, 차별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다니엘) ㅡ 같은 책, 54쪽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에 태어났다면 상처 입었을 것

<안녕?! 오케스트라>에 그려진 다문화 아이들의 현실을 처음 접하고 놀란 독자들도 많았다. 권기성씨는 "아이들의 면면을 보면서 아이들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으로 인해 소외되고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충격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마태호씨는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성장과정을 오케스트라의 아이들에 비유해 독특하게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케냐 출신의 유학생이 한국 여성과 결혼 후에 아이를 낳고, 이후에 케냐 출신의 유학생은 이혼을 하고 케냐로 돌아갔을때, 그 아이가 40대에 한국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아마 그 아이는 한국에서 자라면서 인터냇 댓글들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태호 씨)

다니엘의 선생님 박진숙씨는 "욕없는 세상, 놀림없는 세상, 차별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가슴에 와 꽂히더군요"라고 말했다. 책의 후반부에는 방송이 나가고 나서의 반응들이 나와 있었는데, 우는 장면을 재차 편집해서 다시 놀림의 도구로 이용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소개돼 있었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또 다시 막막해졌다. 

<안녕?! 오케스트라>의 독서를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이 책의 강점을 생각해 보았다. 가장 좋았던 것은 무엇보다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다문화 문제의 중요성도 역설하지 않는다. 차분히 오케스트라 이야기를 하고 연주를 할 뿐이다. 

아이들이 받았던 폭력과 차별을 비판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무서운 것은 긍정이다. 남들과 다르게 태어난 나의 모습을 긍정하고, 내가 받은 상처 또한 긍정한다. 이 모든 것을 긍정의 에너지로 만들어 돌려준다. 용재 오닐의 철학은 놀라웠고, 아이들은 그런 용재 오닐의 모습을 이해했다. 나도 그렇다. 

"제게 일어났던 모든 안 좋은 과거를 지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전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안 지울 겁니다. 아이들이 겪은 고난을 들여다보면 모두 부정적인 것들이에요. 하지만 부정적인 일들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게 음악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이 음악의 힘입니다."(용재 오닐) ㅡ 같은 책,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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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 삼국지 1 - 도원에서 천하를 꿈꾸다 여류 삼국지 1
양선희 엮음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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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쓴 삼국지


삼국지는 누구나 아는 작품이고, 대부분은 읽었던 작품이지만 나이가 들면 언젠가 헤어져야 하는 '전자오락실' 같은 느낌이다. 나도 꽤 많은 삼국지를 읽었다고 자부하는데, 언제부턴가 사마천의 사기가 삼국지보다 더 재미 있었다. 유명한 작가의 삼국지가 출간될 때마다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게 펼쳐보긴 하지만 역시 마음속에는 '삼국지를 읽기에 난 너무 커버렸어.' 하는 생각이 강해질 뿐이었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다시 쓴 삼국지'를 읽었을 때 막연하게 생각했던 그 '불만'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기자 생활을 23년째 하고 있는 양선희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수 년에 걸쳐 '편작'한 <여류 삼국지>를 읽고 삼국지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여류(余流)란 편작자가 스스로가 붙인 이름으로 "스스로 삶의 방식을 탐구하고 방향을 세우고 그대로 살아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여류 삼국지는 '내 스타일의 삼국지'라는 뜻이다. '여류 삼국지'라는 제목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는 삼국지를 네 것으로 만들었나?" 나는 삼국지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서도 내 방식으로 읽기보다는 정사에 기대고 문학작품에 기대고, 유명 작가에게 기대고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지의 인물들은 나의 유비가 아니라 누군가의 유비였고, 조조 역시 다른 사람의 해석을 그냥 받아들였다. 이것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여류 삼국지>를 읽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상에 갇혀서 삼국지를 그저 그런 작품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삼국지가 나의 것이 된다는 말이 무엇인가? 삼국지 속의 등장인물과 편견 없이 만나고 그 인물이 되어보는 것이다. 내가 특히 삼국지를 멀리하게 된 까닭은 '유비' 때문인데, 촉한정통론으로 그려진 유비의 모습은 어릴 적에는 반공사상과 맞물리면서 영웅적인 지도자로 맹신했고 반공 이데올로기가 유치하게 느껴질 즈음 유비는 가식적인 인물이 되어 있었다. 양선희 작가가 편작한 <여류 삼국지>에서 유비는 처세를 위해서 자기 속마음을 숨기고 명분을 이용할 줄 아는 인물로 그려져 있었다. 다양한 영웅들이 들고 일어섰지만 유비는 브랜드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현덕은 명문호족도 아니고, 도적 떼로 출발하는 군벌도 아닌 그야말로 기성세대에서 찾을 수 없는 충의와 위민이라는 신개념 의군을 창설할 뜻을 내비친다. ㅡ <여류 삼국지> 1권 42쪽


유비는 끊어진 유씨 가문의 뒤를 잇는 의로운 왕족에 머무르지 않고 난세에 세상을 호령할 야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출세의 야욕을 가지고 있는 당대의 평범한 장부'라는 묘사는 인물의 현실감을 준다. 그리고 '가문의 몰락을 방어하는 왕족'은 유비의 포지셔닝이지만 개인적 야욕과 명분이 분리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유비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가 생긴 까닭은 뜨거운 피가 흐르는 유기체로 보지 않고, 신화 내지는 화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황건적에 대한 접근 역시 리얼리즘에 입각해서 썼다. 장정일은 아예 황건적을 중심으로 삼국지를 서술할 정도로 대중의 분노는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황건적(黃巾賊)이 아니라 황건기의(黃巾起義)다. 양선희는 이 장면에서 균형감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장각은 군 전체가 알아주는 수재였으나 한나라 말기 타락한 등용제도 탓에 벼슬에 오르지 못한 울분에 찬 인재였다. ㅡ 위의 책 32쪽


<여류 삼국지>를 쓰기 위해 작가는 그 동안의 소개된 모든 삼국지를 검토하고 정사의 기록을 살펴 논리적 모순과 과도한 관념을 벗겨냈다. 이 덕분에 인물과 인물의 행동은 논리적 개연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사건의 전개 역시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었다. 때문에 '벤처기업'이니 하는 현대식 용어를 편작자는 맘껏 썼지만 삼국지 작품과 인물들을 침해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고고학자가 현대의 공법을 이용해 당시의 유물을 재현하고 정확히 설명한 느낌이 들어서 드디어 나도 삼국지를 재평가할 기회를 얻었다. 



다시 읽은 삼국지


삼국지를 다시 읽으며 다시금 느끼게 된 것은 현재의 눈으로 삼국지를 살펴보며 지속적으로 영감을 얻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관념이나 문헌에 치우치지 않고 중심만 잡을 수 있다면 삼국지는 별 볼 일 없던 시절부터 힘을 얻고 세를 불리는 시절까지 한 인물이나 세력의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성장 과정에서 겪는 일과 이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을 나와 대비시킬 수 있다. 예컨대 절세의 미인 '초선'을 이용해 여포와 동탁을 이간질해 겨우 기회를 잡은 사도 왕윤은 허무하게 기회를 놓쳐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고 백성들을 끔찍한 불구덩이에 빠뜨린다. 역적 동탁과 개인적인 인연으로 슬픔을 표시한 기재 채옹을 죽인 점과 이각과 곽사가 표문으로 사죄했을 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몰아친 점은 뼈아픈 패착이다. 천금 같은 기회를 얻었을 때 사람들은 흥분하기 쉽고 벌써 일이 이뤄진 것처럼 안절부절하다가 기회를 잃곤 한다.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취해야 할 최선의 조치만 취한 사람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지금 내 앞에 순식간에 기회가 나타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나는 사도 왕윤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있을까? 유비가 서주를 단념한 일이 떠오른다. 유비는 서주 자사 도겸이 여러 번 간청해도 취하지 않고 도겸이 임종에 이르러서야 마지못해 임시로 받는둥 하더니 곧바로 여포에게 서주를 넘긴다. 불만이 가득한 형제들을 설득하는 유비의 말 속에는 기회에 대한 바른 자세가 엿보인다. 


"몸을 굽히고, 분수를 지키며, 하늘이 주신 때를 기다려야 한다. 감정에 휘말려 헛되이 목숨을 걸고 일을 도모하면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이다. 살아남아야만 하늘도 기회를 주실 수 있다. 때를 기다리자꾸나." ㅡ 위의 책, 375쪽


축구 경기를 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에 기회가 넘어오는 경우가 있고, 기회가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 공이 굴절되어 왔을 때 허둥대지 않고 우리 편에게 연결해 공격을 할 수 있도록 나의 역할을 다하는 사람은 기회를 잃지 않는다. 유비는 약할 때를 알았으니 강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희노애락은 반복되지만 여기에 임하는 자세는 한결같다. 고대의 영윤(令尹)이라는 인물은 세 번 재상의 벼슬에 올랐는데, 벼슬을 할 때도 기뻐하는 기색이 없고 벼슬에서 물러날 때도 슬퍼하는 기색이 없었다고 한다. 그저 자기 일을 꿋꿋하게 할 뿐이다. 이런 독해가 가능한 이유는 역시 편작자의 의도에 있다. 인물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일'을 중심에 두며 독자가 하고 있는 일과 삼국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갈마들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사도 왕윤이 기회를 얻었을 때의 사례와 유비가 기회를 얻었을 때의 일을 비교할 수 있게 하고 인물들의 행동과 이에 따른 결과들을 비교할 수 있도록 안배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두 가지 일을 떠올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한다면 좀 더 직접적인 편작자의 목소리를 들어 보자. 이각과 곽사의 일을 이야기하며 편작자는 동탁과 여포의 일을 직접 거론한다. 


양표는 자신이, 왕윤이 성공한 계책을 실행한다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당시는 동탁 한 사람만이 강력했으므로 약자들이 힘을 모아 꼼수로 이길 수 있었다. 하나 이각과 곽사는 엇비슷한 권력과 무력을 가진 자들이다. 둘이 맞붙으면, 고래 싸움에 새우등은 엄청나게 터져 나가게 돼 있다. 지금은 바로 황제도 왕새우 정도였다. ㅡ 위의 책 327쪽


하나의 일을 겪은 시점과 상황, 그리고 사람 등만 다를 뿐 이치는 같기 때문에 여류 삼국지의 사건들은 같은 선상에서 비교될 수 있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이제까지 읽었던 삼국지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없었던 까닭은 사건에 대한 다각적이고 치열한 분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류 삼국지>를 읽는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나는 '삼국지' 읽기에 다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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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창비시선 357
함민복 지음 / 창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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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한 열등감 고백

시를 읽고 리뷰를 시처럼 쓰고 싶었다. 오랜 독서 여정 끝에 시를 읽고 싶은 욕구가 유독 강한 시기를 만났다. 대학 시절 한 선배가 "너는 운문 스타일이 아니라 산문 스타일인 것 같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 뜻을 알아챘다. '산문 정신'이라는 말처럼 산문은 현실에 대해서 필요한 말은 반드시 한다는 정신이다. 듣는 이로 하여금 불편하게 만드는 자유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수영 시인이, 외국에서는 조지 오웰이 산문 정신을 대표한다. 이에 대비한 '운문 정신'이라는 게 있다면 '자유에 대한 자유'가 아닐까? 객관성, 자유 정신이라는 틀조차도 파괴하고 문법체계도 넘어서는 자유정신은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어떤 사물을 틀 없이 바라보는 모습을 견디지 못해 나는 시에서 멀어졌다. 시를 쓸 생각도, 시를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를 '파괴의 학교' 삼아 듣고 배우지 않으면 내 주변에 현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내가 쓰는 언어들이 현실에 우뚝 서 있을 수 있을까? 함민복 시인의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창비시선 357)을 보면서 내가 시에 접근하지 못했던 또 한 가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명함의 명함은 존재의 어려움'(명함) '서정성이 가장 짙은 거울'(달) 같은 추상어와 관념의 언어를 시어에 포함시키지 않는 고정관념을 들켜 버렸다. 마음속에 시에 어울리는 단어를 솎아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자 동양의 오래된 시 <대학>(大學)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조상들이 학교를 만들고 운영한 취지는 지도자 된 자가 몸소 행하고 성찰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고 그 나머지를 학교 과목으로 여기며, 대중들이 저잣거리에서 쓰는 용어를 벗어나지 않는 것에 있다."(<대학> 서문)

한마디로 시에 쓰지 않을 말은 없으며, 중요한 것은 그 모습과 현상에 대한 집중력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시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하는 까닭이다. 

함민복의 시는 '참여시'인가

대학 시절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참여시 논쟁'이라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논쟁은 시인 김수영이 '사상계'에 발표한 '난해의 장막'이라는 제목의 1964년 시 연평에서 '시인의 양심을 저버린 채 기술만을 구사하는 시를 주지적이고 현대적인 시라고 하는 것은 사기'라 질타하면서 촉발됐지만, 박노해·백무산·김남주 등의 시인들이 작품의 세계를 '직접적인 현실'로 설정하면서 대학생이던 나는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 이후에 순수시에 많이 길들여졌다. 그렇게 잠자던 '참여시'의 영혼이 함민복 시인을 통해서 깨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물이 법(法)이었는데
법이 물이라 하네


물을 보고 삶을 배워왔거늘
티끌 중생이 물을 가르치려 하네


흐르는 물의 힘을 빌리는 것과
물을 가둬 실용화하는 것은 사뭇 다르네


무용(無用)의 용(用)을 모르고
괴물강산 만든다 하니


물소리가 어찌 들을 건가
새봄의 피 흐려지겠네(<대운하 망상> 전문)


나는 최근의 한국문학이 격변기이면서 침체기이면서 동시에 전성기라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아주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참여'의 관점에서 보면 세 가지 흐름이 보이는데, 함민복 시인의 '참여시'가 한 줄기, 희망버스를 기획한 송경동 시인과 <의자놀이>를 쓴 공지영의 '참여'가 한 줄기, 이도 저도 되지 않는 흐름이 또 한 줄기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2008년 촛불이 터졌을 때 작가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져 버렸다. 시대정신을 이끌고 존경을 받는 작가보다는 '글 쓰는 샐러리맨'이라는 실망감이 커졌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함민복이라는 시인과 한국 작가들이 어떤 문학으로 현실과 대결하고 있는지 깊고 넓게 보지 않은 무지의 소치라고 할 수 있다. 그저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로서 가지게 된 오해일 수도 있다. 함민복 시인을 만나서 특히 반가운 까닭은 '시와 현실을 둘 다 잃지 않은 시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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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 개정판 틱낫한 스님 대표 컬렉션 1
틱낫한 지음, 최수민 옮김 / 명진출판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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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애씨는 여러 가지로 잔뜩 화가 난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다. 박정민씨는 이 책을 읽기 얼마 전 잠투정하는 아이들에게 화를 냈다. 김경훈씨는 이 책을 읽고 친구와 싸우고 나서 1년 넘게 말 한 마디도 섞지 않았던 일이 생각났다고 한다. 구유리씨는 10년 전에 읽었던 이 책을 다시 한 번 펼쳤다. 

틱낫한 스님의 <화>(명진출판사)를 읽은 20여 명의 사정은 저마다 다채로웠다. 나도 이 책을 읽을 당시 화나는 일이 많았다. 어떤 책을 읽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 읽느냐도 중요하다. 갑자기 스피노자의 말이 생각난다. 

"음악은 우울한 사람에게는 좋고, 슬픈 사람에게는 나쁘며, 귀머거리에게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에티카)


▲  틱낫한의 <화>를 읽고 댓글놀이한 흔적들



틱낫한의 <화>는 화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함께 이 책을 읽은 구유리씨도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만 '화'가 생겨나는 과정을 차분히 살펴보고 싶은 사람은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틱낫한 스님은 '힐링' 코드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출판 시장을 강타한(지금도 강타하고 있는)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등의 힐링 서적들을 읽고 도움을 받은 독자라면 마땅히 틱낫한 스님 앞에 묵상하라!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내가 <화>를 잡고 읽은 이유는 화가 무엇에 쓰는 물건이고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화'는 '속도'와 관련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만물은 당연히 만물로부터 만들어지지만 단지 빠르고 늦음과 어려움과 쉬움이 다를 뿐이다. 예컨대 서로 맞대어 있는 것은 빠르게 변모할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것은 늦게 변모할 것이다."(생성과 소멸)

틱낫한 스님이 화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제안한 것들의 공통점은 '느림'이다. 의식적으로 호흡하기, 의식적으로 걷기, 그윽한 마음으로 감싸안기, 화를 이해하고 그 속에 있는 고통을 들여다보기, 화를 내고 있는 사람을 연민하기. 마치 고요한 산숲에 숨어 있는 사찰과 같다. 역시 불교는 느림의 종교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현대인들의 일상적인 속도를 가지고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방식이다. 마치 차를 몰고 가다가 갑자기 스쿨 존을 만났을 때 브레이크를 밟으며 의식적으로 속도를 낮추듯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화>가 이야기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다. 그런데 왜 이 짓을 해야 하는가? 틱낫한 스님은 자유롭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화가 나를 잡아먹어 버리거나 '화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자유인이 아닌 사람은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55쪽)

<화>를 읽을 때 도움이 될 만한 TIP

당장 화가 난 사람에게는 충분히 설명을 했으니, 이번에는 책을 즐기는 독서가에게 주의사항을 일러두고 싶다. <화>는 스님, 그것도 엄청 유명한 스님이 쓴 '교리서'의 일종이다. '에세이'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교리서라는 게 무엇인가? 계몽할 목적으로 쓴 글이다. 그래서 '가르치려 드는 글'에 유난히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분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교리를 정해 놓고 거기에 살을 채워 나가는 게 <화>의 골자다. 거기다 <화>는 에세이와 자기계발서, 힐링 서적의 특징을 배합해 독특한 연출력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교리서는 교리서다. 우선 '명상과 호흡, 걷기 반복' 등과 같은 실천적 방법을 '반복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지루할 수 있다. 또 사례가 나오는 부분은 '팩트'지만, 현상에 대한 인문학자의 관찰이라기보다는 교리에 맞는 사례를 소환한 느낌이다. 지적인 즐거움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줄 알고 쓸까 말까 망설였는데, 함께 읽은 오일수씨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큰 감동이나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별로 없었는데요. 명상과 마음챙김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어봤는데 방법들이 거의 대동소이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만 화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든 비유는 기가 막힐 정도로 놀라웠다. 특히 화를 '아기'에 비유하고 화난 사람을 '엄마'에 비유해 아기가 울면 엄마가 모든 일을 멈추고 달려가 안는 것처럼 화를 아기처럼 안으라는 말은 가슴에 깊이 남았다. 그리고 '선풍기 비유'도 절묘했다. 선풍기를 끄면 날개가 한동안 돌아가다가 비로소 멈추는 것처럼 화 역시 당장 멈출 수는 없으니 '연착륙'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어디서 써먹기 좋은 말들이 많이 담겨 있다. 

이 밖에 함께 읽은 분들이 제안한 팁(TIP)들을 소개할까 한다. 김경훈씨는 곁에 두고 틈틈이, 특히 화날 때마다 거울을 보듯이 꺼내서 읽으면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틱낫한 스님도 화가 났을 때 거울을 보라고 말했다. 김은식씨는 화를 품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틱낫한 스님의 말에 덧붙여 "그러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상과 거리를 두고, 내 마음과 거리를 두어야 자세히 보이기 때문이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매몰되지 않고 깨어있다는 말이니까. 원정은씨는 '농부'에 비유했다. 

"농부는 이미 수련자인 것 같아요. 늘 만지는 흙과 생명체들이 화를 흡수할 것 같아요. 너무 힘들 때 자연으로 나가면 누그러지는 경험을 누구나 하잖아요. 자연을 가까이 하는 삶도 화를 다스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박정민씨는 콕 집어서 한구절을 부적처럼 사용하라고 제안했다. "화를 내는 것도 하나의 습관"이라는 구절이다. 화가 나는 시점에 이 구절을 복기하고 부적처럼 마음 어딘가에 붙여 놓는다면 화가 커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도 얼마 전 아내와 크게 싸운 일이 있었는데, <화>의 내용을 바탕으로 복기를 해보았다. 왜 화가 커졌을까? 정답은 '레이스'에 있었다. '레이스'란 도박에서 상대방이 돈을 걸었을 때 판을 키우기 위해서 두 배로 더 베팅하는 행동을 말한다. 아내가 화를 냈을 때 내가 만약 화를 받고 화를 키우지 않는다면 화가 커지는 일은 없다. 그래서 나는 똑같은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고 무작정 밖으로 나가서 산책을 했다. 정말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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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허황될지 모르지만 오랜 연구의 대상이 바로 시간을 뛰어넘고 살기였다. 지금까지 정리된 것은 다음과 같다.

1. 인생을 80이라고 한다면 그보다 100배 정도 되는 시간을 탐험하면 나의 1초의 농도가 짙어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역사적인 1초를 살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책에서 시간을 버는 게 가장 빠르다.

2. 물리적인 24시간과 무관하게 잘 지내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어떤 경험과 감각을 시간 위에 올려놓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24시간을 누릴 수 있다.

3.사람이 평생 동안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시간에 대한 사용 권한이다. 만약 시간 사용을 반납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반납 기한을 정해야 한다. 무턱대고 시간의 사용권을 양도해 버리면 결국 0이 되어 돌아온다.

4. 만화 드래곤볼에는 ‘시간과 공간의 방’이 나오는데, 거기서의 1년은 밖에서의 하루와 같다. 죽음을 임박해 두거나 극적인 순간에는 누구나 시간과 공간의 방 경험을 한다. 훈련을 하면 일상에서 그 방을 불러낼 수 있다. 다만, 자신이 살고 있는 시간에 대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현대인은 자신들이 매달려 있는 시간에 대한 집중력이 상당히 떨어져 있다. 먹기 위해 사는 것과 같이, 단지 시간을 죽이기 위해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5. 나누는 시간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수록 시간에 대한 감각과 집중력이 길러진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과 함께 경기장에 함께 가서 응원을 하거나 함께 놀이를 하면 영원한 순간을 공동으로 소유한 셈이 된다. 그 순간은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환기된다. 그 때 비로소 헛되이 보내는 시간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6. 화학에서 ‘들뜬 상태’라는 용어가 있는데 자신의 짝을 기다리는 결여의 상황이다. 미디어는 현대인을 세뇌시켜 만족을 모르고 항상 배고프고 내몰린 감정을 느끼도록 부추긴다. 우선 자신을 이유 없이 조급하도록 하는 공기를 느끼고 이를 걷어내면 지금까지 나의 손을 잡았던 시간의 아름다운 얼굴을 비로소 볼 수 있게 된다.

7. 당신이 연출가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일정한 시간 안에 담을 수 있는 재료는 무궁무진하고, 자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쓸만한 재료도 차고 넘친다. 시간 안에 이런 게 많이 섞여 있을수록 생생해진다. 우리가 기대고 있는 시간은 지구의 모든 생명이 똑같이 가졌던 속도다. 눈을 감고 수많은 시간의 연출자들을 느껴 보라. 기록된 자들은 마냥 평범하게 시간을 떠나보내진 않았다. 시간이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원한 사랑의 기억을 남겨두려고 인생을 걸었다. 그 열정을 느끼라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시간을 함께 만드는 공동 연출가로서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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