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다른만화 시리즈 1
마이크 코노패키 외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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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바마 드라마는 이젠 좀 지겹다."

세계가 한 사람의 영웅을 기다리고 영웅에 의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말을 순진하게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좁게 말하면 제시 잭슨 목사의 말처럼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흑인 민권운동의 지도자들이 40여년 전에 벌인 투쟁의 결실”이며, 넓게 말하면 당파성과 대립을 종식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피부색과 관계없이 선택을 해왔던 미국 유권자들의 승리다. 그리고 민주-공화라는 양대 정당이 수백 년 동안 영락을 거듭하며 이어져온 형국이다. 최근에는 전 정부에 대한 반대표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는 이른바 '반발의 원리'가 주요한 선거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오바마의 당선에 엄청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감상적이다.

오바마의 정신적 계보 - 흑인 민권운동의 두 거목

미국을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 연설문에 주목해야 한다.

#연설1
“저는 케냐 출신 흑인 남성과 캔자스 출신 백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를 키워준 백인 외할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때 패튼 군단에서 복무했고, 할아버지가 바다 건너 전쟁터에 가 있는 동안 백인 외할머니는 폭격기 생산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가장 좋은 학교들을 나왔고, 세계 최빈국 중 한 곳에 산 적도 있습니다. 노예의 피와 노예 소유주의 피를 함께 물려받은 흑인 여성과 결혼해서 이 혈통을 사랑하는 두 딸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피부색의 형제자매, 조카, 삼촌과 사촌들이 3개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사연이 저를 일반적인 후보자들과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 지난 3월18일 필라델피아에서 행한 ‘인종 연설’



#연설2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미국인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저도 아닙니다. 2천 2백만 흑인 중 한 명으로서 미국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민주주의는 본 적도 없습니다. 조지아주 목화 농장에도 결코 민주주의는 없었으며 뉴욕, 디트로이트, 시카고의 빈민가에도 민주주의는 없죠. 우린 민주주의를 본 적이 없고 오로지 위선만을 봤습니다! 우리에게 미국의 꿈은 없었고 체험한 건 악몽뿐입니다
말콤X의 연설, 영화 <말콜 X> 중에서..


▲ 영화 말콤X의 한 장면


오바마에게는 2명의 선구자가 있는데 흑인 민권의 상징인 마틴루터 킹과 다소 과격한 흑인 민족주의를 표방한 말콤 X다. 말콤 엑스는 비폭력적 흑인 인권을 주장한 마틴 루서 킹 2세와 달리 흑인들의 현실과 분노를 그대로 뱉어낸 연설로 흑인 인권운동에서 명성을 쌓는다. 그는 마틴 루서 킹 2세를 '흑인의 탈을 쓴 백인'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를 통해 볼 때 오바마의 정신적 계보는 마틴 루터 킹으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연설1에서 보듯 오바마는 다양한 인종이 결합돼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기 적격이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정체성의 혼란에 시달려야 했다. 외조부모의 집에 머무르던 당시 오바마는 인종문제로 정체성 갈등을 겪었다. 농구에 미쳤고 술과 담배, 마약에도 손을 댔다. 어두운 경험은 말콤 엑스 등 대부분의 흑인 지도자들이 겪는 통과의례인 듯하다. 맬컴 엑스도 당시 하류층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힘겨운 생활과 함께 범죄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21세에 그는 강도죄로 투옥되었으며, 옥중에서 이슬람 신앙에 귀의하게 된다.
오바마가 정치 신인이던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진보적 미국과 보수적 미국이란 없다. 오직 미합중국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명연설은 그래서 무게감이 있다.

만화로 보는 미국인 대해부

연나라로 연나라를 친다. (맹자)
以燕伐燕


연나라가 연이은 실정과 백성에 대한 탄압으로 민심이 들끓고 일대 혼란에 빠졌다. 제나라는 이 틈을 타 연나라를 점령해 버린다. 연나라 사람들은 처음에는 제나라를 '해방군'으로 인식해 시골 촌부들까지 소쿠리에 음식을 담아와 제나라 군사를 환영했을 정도다. 하지만 제나라는 애초부터 연나라의 혼란을 해결하기보다는 제나라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연나라를 제물로 삼은 것뿐이다. 맹자는 이러한 제나라의 행태를 "연나라가 연나라를 친다"는 촌평으로 비판한다.
미국은 낡은 사고와 새로운 사고가 오랫동안 겨뤄왔던 나라다. 낡은 사고는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적인 사고이며, 대내적으로 악덕자본가의 사고방식과 인종차별주의자의 사고방식이다. 


▲ 미국은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고 탐욕적, 인종차별적, 제국주의적 사고를 고수해 왔다. (위에서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2004년 이라크 아부그리브 수용소의 포로 학대사건, 베트남전의 무차별적 네이팜탄 공격, 19세기 J.P.모건, 존 록펠러, 제이 굴드 등 초기 악덕 자본가들에 의해 희생당한 미국의 노동자들.


1898년 7월 17일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쿠바 산티아고에 있는 총독의 궁에는 성조기가 게양됐다. 쿠바전쟁이 끝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스페인의 항복절차에 쿠바인을 참여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스페인 민간정부가 공공업무를 계속 담당하도록 허락했다. (<만화미국사> 61쪽) 이것은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지만 친일파와 일본 관리들을 대거 요직에 등용시킴으로써 우리들의 독립 의지를 완전히 꺾어 놓았고 지금도 친일파가 득세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6.25 전후처리에서도 남한이 당사국 자격을 얻지 못한 것은 미국의 정책 때문이었다. 미군은 어디서나 점령군이어야 했다.
독재정부에 대한 지원도 미국의 전문 분야다.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 등 아메리카의 독재국가는 미국의 지원으로 탄압을 이어갈 수 있는데 이들은 기본적인 언론의 자유조차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언론탄압 실태와 기자 살인 등에 대한 내용은 촘스키의 <여론조작>(에코리브르)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드러난 이야기만으로 미국의 힘을 이해하려 한다면 반쪽짜리 지식밖에 얻지 못한다. 미국인들은 제국주의, 악덕자본, 인종차별에 대해 강력한 저항운동을 벌여 왔다.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지성인 촘스키와 하워드 진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의 잠재력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역사적인 노동운동 사건을 꼽으라면 풀먼 파업을  들 수 있는데 악덕자본이 백인 노동자들을 인디언이나 흑인처럼 천대하던 지역이 바로 풀먼 신도시였다. 유진 빅터 뎁스는 미국철도노동조합의 젊은 지도자로 활약했는데 1893년 경제불황과 공황기에 미국 철도노동조합을 결성했고, 1894년 풀먼사 노동자들과 함께 파업을 주도했다. 풀먼 노동자의 외침이 우리의 실정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1893년 5월에서 9월 사이에 우리의 임금을 다섯 차례나 삭감했습니다. 그래도 집세는 그대로입니다. 그는 고용주로서 우리에게 돈을 지급해놓고 집주인으로서 그 돈을 다시 가져가 버립니다."



▲ 1893년 풀먼사 파업 당시 사람의 논물로 목욕을 하는 해골들의 춤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한 세기 뒤 이 현상은 '바닥을 향한 경주(국가나 기업 간의 과다경쟁이 빈곤층을 만든다는 이론)이라고 달리 부르게 되었고, 월마트의 사업모델이 되기도 했다. (만화 미국사, 32쪽)


노동자운동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반전운동의 메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반전운동이 벌어진 나라다. 다만 제국주의적 행태 속에 감춰졌을 뿐이다. 일본이 자민당의 나라라는 오해를 사는 것과 같다. 일본 역시 시민운동이 활성화된 나라이며 풀뿌리네트워크가 만만치 않다. 선진국은 이와 같이 양식 있는 시민들에 의해 견딜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는 1차 세계대전에서 징집반대연맹을 조직한 엠마 골드만의 일화가 담긴 만화 한 컷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그는 징집법 위반으로 2년 형을 받고 미주리 주 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재판에서 그녀의 유일한 변호 수단은 감동적인 연설뿐이었다.

"국민을 군사적으로 예속한 상태에서 잉태된 민주주의는 결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독재정치입니다."


▲ 이 그림은 수감 2년 후 감옥으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를 하워드 진이 상상해서 삽입시킨 대목이다. 하워드 진은 '엠마'라는 제목으로 그녀에 대한 희곡을 쓰기도 했다.


미국인을 알아야 하는 이유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여느 대통령과 다른 이유는 '국민과 가장 가까운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 속성, 즉 제국주의적 속성과 이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민권운동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오바마는 미국의 이전 정책기조에서 큰 틀의 변화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미국인의 의향을 지속적으로 살펴서 정책을 실현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인의 의지가 사실상 오바마의 의지가 될 확률이 높다.

우리의 경우 한미FTA에서 방점으로 보아야 할 것은 '미국 노동자'이다. 만약 FTA를 통해 미국민들의 손해가 예상된다면 오바마는 이를 없던 일로 하거나, 미국 노동자의 이익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급 선회할 확률이 높다.

지금까지 미국의 국익은 한국의 국익과 마찬가지로 '추상적 이익'에 머무른 반면, 오바마가 말하는 미국의 이익은 '미국인의 이익'에 가까울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오바마가 노무현의 길을 걸을 수도 있지만, 노무현에 비해 민권운동의 뿌리가 매우 깊은 오바마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슬기롭게 대통령직을 수행하리라고 본다. 
미국인, 미국 노동자들은 한국인, 한국 노동자들과 매우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시민과 한국 시민, 전 세계 시민들이 네트워크를 이루는 것만큼 강력한 힘은 없다.

이명박을 통한 FTA는 한국 노동자와 서민들의 이익을 절대로 대표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 노동자와 시민들이 협의할 수 있다면 미국 노동자의 입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에 얼마든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하워드진의 미국 민중사라는 책이 국내에서도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만화 미국사>는 미국의 '반대쪽 에너지'를 알기에 손색이 없다. 궁금한 내용은 추가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지만, 기본적인 뼈대는 이 책이 어느 정도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나에게 한 가지 교훈을 주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 한 쪽만 알아서는 곤란하다. 두 가지를 모두 알아야 한다."


<참고한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1050250015&code=97020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1111824005&code=21010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1051825085&code=9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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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1-19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워드진의 만화 미국사라고요? 이렇게 흥분될때가.... 이거 수업자료로 최고겠어요. 담아갑니다. ^^

승주나무 2008-11-21 16:02   좋아요 0 | URL
수업자료로도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좌파적출 바람'은 조심하세요^^

마노아 2008-11-19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주문했는데 아직 안 도착했어요. 미국 민중사 읽기 전의 워밍업이라고 생각하려고요.

승주나무 2008-11-21 16:03   좋아요 0 | URL
네~ 미국 민중사는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기 위한 워밍업이고, 이 책은 미국 민중사를 읽기 위한 워밍업인 것 같아요^^
 
세계 철학사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 지음, 박민수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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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듀런트라는 미국 철학자의 <철학 이야기>(문예출판사)를 통해 나는 철학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책을 한 권 집으면 다음 권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는 말처럼 철학의 매력(사실은 듀런트의 문장)에 이끌린 나는 그 어렵다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잡고 읽었다. 좋은 구절을 정서하면서 여름방학 두 달을 다 보냈다. '마녀의 빗자루 효과'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됐는데, 에티카 5장을 다 읽을 쯤에는 뽕 맞은 것처럼 몸이 붕 뜨는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도서관 한가운데에서 뽕 맞은 상태가 된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때부터 나는 틈만 나면 스피노자, 스피노자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이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는지 철학과의 교수는 나에게 의미심장한 조언을 해준다.

"승주야. 특정 철학자의 저서를 통해 철학 전체를 관망하는 것은 좋지 않다. 철학사 전체를 통해 흐름을 조망하고 특정 철학자로 다가가는 것이 좋겠구나."

나는 당장 이 말을 시행에 옮겼다. 철학사 중에서 읽을 만한 책을 선배에게 물어서 '러셀'의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를 찾아낸다. 러셀은 이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철학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철학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은 러셀뿐이 아니다. 베르그송도 철학자이면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서양철학사>는 러셀의 재기발랄한 문장으로 오감을 자극한다. 다만 나는 그때 <스피노자>라는 유럽의 합리론에 귀의해 있었기 때문에, 라이벌인 영국 경험론의 계보를 갖고 있는 러셀의 서술 방식이 유감스러웠다. 특히 스피노자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그의 철학과는 무관하게 철학자로서의 삶의 자세는 위대한 철학자들의 존경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 말은 사실 철학보다 철학 외적으로 스피노자를 깎아내리는 것에 다름아니었다.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기는 하지만 대중적인 책이다. S.P.램프레히트의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는 정리가 무척 잘 돼 있다. 철학에 관심이 많은 비전공 철학도에게 철학사의 핵심 요소를 가장 깔끔하게 설명해줄 것이다. 분량도 한권으로 깔끔하다. 만약 철학의 내부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코플스톤의 철학사 시리즈를 추천하고 싶다. 지금은 절판돼 아쉽지만 <그리스 로마 철학사>와 <중세철학사>, <대륙합리론>, <영국경험론>, <현대철학사> 등 시대별로 이루어진 시리즈는 전공 철학도들에게 필수 도서로 추천되곤 했다. 코플스톤처럼 독하게는 아니지만 철학교수들이 사랑하는 철학책은 요한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상,하)이다. 나도 상권을 읽고 부분 부분 참조하긴 했지만, 철학의 내면과 상황적 필연성을 개연성 있게 잘 연결시킨 점이 만족스럽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책들은 서양철학사에 머물러 있으며 <세계철학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실정이다. 중국의 철학은 풍우란의 <중국철학사>(상,하)(까치), 인도의 철학은 라다 크리슈난의 <인도철학사>(1,2,3,4)(한길그레이트북스)를 보면 된다.

이제야 본서를 소개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광고 카피 때문에 조금은 주저했던 것도 사실이다.

철학의 본고장 독일에서 출간되어 60만부 이상이 팔렸고,
전 세계 20개국에서 번역된 세계 최고의 철학사!
1950년 초판 출간 후, 끊임없는 개정과 증보를 거듭해 1999년 17번째로 개정된 최종 결정판의 완역 출간!

이 책은 현재적 가치에 충실하며 사실은 영원한 질문의 다른 표정인 현재적 질문을 끝까지 놓지 않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믿어도 좋은가?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던 세 가지 원칙은 책의 어떤 면을 펼치더라도 위배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내게 매우 만족감을 주었던 이유는 두 가지다.

1. 처음으로 만난 '세계철학사'다.
2. 강의 방식을 훌륭하게 탈피했다.

철학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철학사'를 한 권에 담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것이다.
대체로 서양철학사, 중국철학사, 인도철학사 이런 식으로 단행본을 나누게 되는데, <세계 철학사>는 인도철학, 중국철학, 서양철학을 모두 소개하고 있다. 1,200페이지라는 분량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평생을 놓고 사유하며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철학사에서 아쉬웠던 점은 똑똑한 선생이 나타나 강의를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세계 철학사>는 처음으로 책에서 나와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말을 걸어준다는 것은 상황을 교과서처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철학자나 그 상황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를 따져 준다는 말이다. 1,200쪽을 단숨에 읽을 수는 없지만, 밤에 잠자기 전에 고요한 기분으로 오래 두고 읽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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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8-11-14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힐쉬르베르거, 렘프레히트 등등의 책들이 책상 앞에서 노려보고 있네요.. 이 책들 언제나 제대로 읽어볼지 졸업 전에는 해야될텐데ㅠ 소개시켜주신 세계철학사도 나중에 한번 펴볼게요 감사합니다.

승주나무 2008-11-14 22:14   좋아요 0 | URL
오~ 바라 님~ 이미지가 엄청 길어서 아래가 많이 남네요. 철학도이신가 봐요, 반갑습니다. 힐쉬르베르거와 램프레히트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후자를 추천합니다. 후자를 먼저 읽고 전자를 읽으면 더 좋을 듯합니다.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 장하준의 경제 정책 매뉴얼
장하준.아일린 그레이블 지음, 이종태.황해선 옮김 / 부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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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는 국가정책의 틀 안에서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지론을 설파하며 신자유주의자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데, 최근 출간한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부키)에서는 신자유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주장과 논거를 일일이 기각하는 반대논거를 들고 있다. 그야말로 신자유주의를 대해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글에서는 장하준이 예시한 신자유주의 진영의 논거와 신문기사를 통한 정부의 입장을 대비하고 이에 대한 장하준의 논박을 소개할 것이다. 그 첫 번째 주제로 자유무역주의와 민영화에 대해서 알아본다. - 리뷰어 주
 

세계 금융위기로 시작된 신 브레튼우즈 화두와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 등으로 신자유주의의 근본적인 궤도 수정이 요청되고 있다. 최근의 논의는 '자유'와 '통제' 사이에 방점이 찍혀 있는데, 요점은 국경을 허물고 시장이 통합되는 추세에서 투기자본의 횡행과 고위험을 막기 위해 위험통제의 기구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것이 '슈퍼 IMF'로 불리는 신 브레튼우즈 논의다. 세계 2차대전으로 공황을 경험했던 나라들이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을 성사시켰듯이, 이에 준하는 강력한 시스템이 등장할 채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광범위한 공감대를 얻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시장의 위험성이 커지면 그 고통은 가난하고 약한 자들이 지고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약자들을 위험으로부터 구출해야 한다는 논의가 미국 대선을 뜨겁게 달구며 젊은 오바마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중산층, 서민들에게는 '감세정책'을 고수익자들에게는 '증세정책'을 펼치겠다는 공약과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시행하겠다는 공약으로 미국인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한국의 주류는 아직도 신자유주의를 숭앙하며 정책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다. 


산업정책은 실패했으니 자유무역으로 가야 한다?

한승수 총리는 11월 9일 SBS 시사프로그램인 `선데이 뉴스플러스'에 출연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채택 전망과 관련, "과거 1930년대 대공항 당시 각국은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노력했지만 모든 나라가 손해를 봤다""그래서 무역과 투자를 늘려야 하며, 자유무역적인 정책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8-11-09, 연합뉴스)

이는 장하준이 예시한 신자유주의 진영의 지론과 토시 하나 다르지 않다.

1930년대에는 각국 정부들이 다양한 관세 장벽을 서로에게 부과하는가 하면, '나부터 살고 보자beggar-the-neighbor'는 식의 정책까지 펼치면서 자국 산업의 성장과 안정을 추구했으나 이는 부질없는 시도에 불과했다.
- 신자유주의적 관점 예시,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18~19쪽


장하준에 의하면 이는 단선전인 편견에 불과하다. 산업화 국가는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중앙은행이나 효과적인 금융 규제가 없는 탓에 끊임없는 금융 불안을 겪어야 했으나 효과적인 금융 규제를 통해 2차 세계 대전 이후 금융 부문의 안정과 그에 따른 성장을 실현하게 되었다. (23쪽)
산업국가(이른바 선진국)들은 규제 정책을 통해 경제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데, 예컨대 18세기의 영국은 수입 규제와 수출 진흥 정책을 통해 당대 최고의 산업 국가였던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위협하였다(21쪽) 미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보호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국가였는데, 19세기 중반부터 2차 세계 대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보호주의적인 정책을 펼치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었다. 또한 유치 산업 보호정책의 지적인 모국으로서 독일과 일본이 이를 적극 수용해 성공을 거뒀을 정도였다. (22쪽)

이런 논의를 통해 볼 때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적 흐름과 시대의 문맥을 읽기보다는 특정한 시대나 상황을 단순히 인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논거로 활용했을 뿐다. 장하준은 그의 책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논의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예외적인 사례들을 일반적인 사례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승수 총리가 이를 토시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옮긴 셈이다.

자유무역을 통해 선(先) 성장 후(後) 분배를 이룬다는 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오래된 주장인데, MB정부와 노무현 정부 역시 FTA 등 전폭적인 개방과 자유무역을 통해서 파이를 키운 뒤 이를 분배하는 정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자들도 노동자들의 생활수준 감소나 특정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원 축소와 실업률 증가, 이로 인한 삶의 근거지 상실 등의 문제를 인정하지만 단기적인 조정 비용으로 치부한다. 그래서 FTA를 통해 농산업이 재앙을 맞는다는 사실을 뻔히 보고 있음에도 아무런 대책 없이 이를 강행하려 한다. 장하준에 의하면 불평등과 빈곤 확산은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오랫동안 지속되고 대다수 국민에게 고통이 미친다는 사실이 실증적으로 입증되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정부가 돈 안 되는 것을 과감해 쳐버리고 파이를 늘렸다고 하더라도 이미 정부 부문의 대규모 민영화와 기업하기 좋은 정책 등으로 인해 조세 기반이 상당히 무너진 상태에서 무슨 재정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보위할 수 있을 것인가. 때문에 장하준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자유무역 옹호론은 그럴 듯하지만 허약하기 짝이 없는 주장들이라고 비판했다. (33쪽)

 
▲ 이명박 정부의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를 거의 종교적인 차원으로 신봉하고 있지만, 설득력 있는 설명은 하지 못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명박 대통령, 한승수 국무총리, 곽승준 전 정책기획수석. 
 

신자유주의의 아이콘 '민영화'

 
신자유주의가 가장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분야는 '민영화'이다. 민영화는 순수히 시장에 의해 지배를 받으며 경영 성과 등을 지속적으로 감시받기 때문에 효율성이 증대된다는 입장이다. 민영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신자유주의자들은 '국영기업'을 부패와 비효율의 상징으로 매도한다. 즉, 국영 기업 운영은 부족한 예산 자원을 낭비하는 값비싼 시도이며, 국영 기업의 경영자는 실적에 대한 압력을 전혀 받지 않으며, 고용된 경영자이기 때문에 기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동기도 없으며, 심지어 능력을 향상시킬 동기조차 없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다. 경영에 대한 압력이 없기 때문에 경영자는 방만경영을 일삼고 관료들은 부패한다는 것도 신자유주의자들의 주된 비판점이다. 

"아시아 3위 경제인 한국 경제를 감세, 규제완화, 민영화를 통해 변화시키고 글로벌 시장 불안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을 7%로 높이겠다" - (2008-03-03, 청와대 뉴스, Financial Times에서 이명박 대통령 언급 인용)

MB노믹스의 핵심은 `작은 정부` `공공개혁` `규제 완화`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추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국민이 현 정권에 바라는 것이고 현 정권이 가장 잘하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이 산업은행 민영화, 신보ㆍ기보 통합, 주공ㆍ토공 통합이었다. (2008-11-02, 매일경제신문, 곽승준 전 국정기획수석 인터뷰)

 
이명박 대통령은 '효율성'의 관점에서 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MB 정부의 브레인으로 통하는 곽승준(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개혁'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공공부문의 비효율과 부실, 부패를 기정사실화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제기하는 민영화의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장하준에 의하면 민간 부문의 인센티브, 보상, 감독 체계 등이 국영 기업보다 낫다는 신자유주의적 관점은 근거가 없다. 실질적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민간 기업의 경영자는 기업의 현재 주가를 극대화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것은 경영 목표나 기업의 장기적 이익 또는 국가경제 전반에 도움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주가 극대화를 위해 대규모 인원 감축을 하면 실업률이 올라가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초래하며, 당장 이익이 나지 않는 장기적인 투자 부문을 폐기함으로써 기업의 잠재적 성장가능성과 기업가치를 떨어뜨릴 공산이 크다. 특히 경영자가 스톡옵션으로 보상을 받는 경우는 기업의 장기적인 이익보다 경영자 개인의 스톡옵션을 위해 눈에 보이는 '지표'만 관리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117쪽)

'감시'에 있어서도 맹점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다양하게 분포된 수많은 주주들이 민간 기업의 경영 실적을 제대로 감시하기는 사실 거의 불가능한데, 이는 주주들이 상대적으로 작은 지분을 갖고 있어서다. 실제로 감시하기 쉬운 시스템은 민간 기업이 아니라 국영 기업인데, 만약 국영 기업이 방만하게 운영될 경우 납세자인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므로 국민 대중은 최소한 민간 기업의 주주들만큼은 국영 기업의 경영자를 징계할 인센티브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영기업은 중앙 집중적 구조로 되어 있어서 정부기관이 경영 감시를 쉽게 할 수 있다. (118쪽)

장하준은 이명박 대통령과 곽승준 전 국정기획수석의 논리를 한 문장으로 논박하고 있다.

상당수 국가는 재정 수입을 늘리는 수단으로 민영화를 도입한다. 그러나 여러 연구에 따르면 민영화가 생각만큼 정부 예산에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국영 기업은 외국 투자자나 국내 내부자(insiders)'에게 헐값으로 팔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거래는 상당한 부패를 동반하기도 한다. - 123~124쪽

민영화가 오히려 부패를 부추길 수 있다는 사실은 경험으로 알 수 있는데, 재정부와 국세청, 법률사무소 김앤장 등 정부와 사기업이 대대적인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론스타의 사례나, 이명박 대통령의 친인척이 연계되어 있어 특혜 논란이 일고 있는 '인천공항 맥쿼리 펀드 매각설' 등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민영화는 정부 소유의 기업을 민간에 판다는 말인데, 매매 주체에 따라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마련이다. 즉 정부 쪽에서는 수익성이 가장 떨어지는 국영 기업을 매각하고 싶겠지만, 민간 부문에서는 가장 수익성이 높은 국영 기업을 매입할 것이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국영기업을 누가 거들떠 보겠는가. 정부가 민간기업의 입맛에 맞게끔 상당한 자금을 투자했을 때는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다. 국영 기업이 수익성이 높아진다면 이 기업을 매각할 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수익을 잘 내는 국영기업을 정부가 소유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영화를 시킨다는 것은 정부와 기업 간의 커넥션이 있다는 오해를 증폭시킬 우려가 크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영 기업을 외국의 민간 업체에게 팔 때이다. 이 때는 자원에 대한 권리가 외국계 기업으로 넘어간다는 뜻이므로 이용자들이 상당한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외국계 기업에서 이용가격을 갑자기 두 배로 높인다고 했을 때 정부로서는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장하준은 국영기업을 민영화시킬 때 단지 매각에 따르는 이익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분배와 정치적ㆍ사회적 비용 등 다양한 비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하고 있다. 전기나 수도 등 필요불가결한 자원을 국민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고 있다면, 이 공급활동에 따르는 손실을 단순히 손익계산서에 따라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휴대폰 보급이 일반화된 오늘날에도 일정한 거리에 따라 의무적으로 공중전화를 설치하고 이를 이동통신사에 부담하게 하고 있는데, 손익계산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는 불필요한 비용의 발생이므로 당장 공중전화를 뽑아버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정말 급하게 전화를 이용해야 하는 이용자는 전화를 쓸 수 없게 된다. 장하준은 '민영화'를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놓기보다는 조직의 개혁이나 인센티브 체계, 감독 시스템의 개선작업을 통해 효율성과 생산성 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영화에 대한 장하준의 주장을 종합하면, 단순히 민영화가 좋거나 나쁘다는 판단을 넘어서 민영화가 의미하는 것에 대해서 폭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민영화는 경제적 효율성과 국민에 대한 서비스의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가 '공공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중인 민영화 정책은 국영기업에 대한 지나친 폄하와 매각 수익 등 단순지표에 치우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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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11-10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영화를 폭넓게 이해한다. 참 좋은 말이지만요, 누가 이해하느냐... 저 위에 눈 버린 인간은 아닌 거죠. 자기 인간 심어놓는 이런 짓거리는 어디서나 결과가 더럽죠.

승주나무 2008-11-11 10:10   좋아요 0 | URL
이론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저의 모습이 한심스럽기는 합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상황에서는 촛불을 들고 나가도 계란으로 바위치기뿐이란 사실만 확인할 뿐이죠.. 하지만 권불십년이라고 했습니다. 막연한 미래라도 준비하려 합니다^^;
 
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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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에 책 사느라고 차비가 떨어지면 부모님으로부터 '책 타고 학교가라'는 면박을 한번쯤 당해본 독자들이 있다. 도서포털 리더스가이드(www.readersguide.co.kr) 리뷰어들은 책을 타고 학교에도 가고 별나라에도 가고 못 가는 곳 없지만, 유독 이 책에서만큼은 책을 놓고 떠나고 싶은 욕구를 감추지 못했다. 서명숙의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 여행>(북하우스)이다. 북하우스와 리더스가이드가 함께 준비한 '서명숙 작가와의 미니간담회'를 앞두고 참석을 신청한 리뷰어들의 리뷰를 분석하여 제주올레를 책으로 걷는 10가지 맛을 뽑아냈다. 책과 글로나마 '제주 올레'를 소개하지만, 그나마 맛보기로 삼았으면 한다. - 리뷰어 주

1. '걷기'와 '제대로 걷기'는 다르다

'걷기'는 두 발이 멀쩡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대로 걷기'를 할 만큼 축복받은 사람은 많지 않다.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파란흙) 용기를 내서 가까운 곳부터 걷기를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대개는 "아스팔트를 걸어야 했기에,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에 대한 두려움과 소음 그리고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는 걷기 여행의 기쁨을 반감"시켰다.(이환) 좀 더 아름답고 안전한 길에 목말라 하는 사람이라면 제주 올레 서명숙 대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도 좋겠다.

"(내가 생각한 길은) 실용적 목적을 지닌 길이 아니다. 그저 그곳에서 놀멍, 쉬멍, 걸으멍 하는 길이다. 지친 영혼에게 세상의 짐을 잠시 부려놓도록 위안과 안식을 주는 길이다. 푸른 하늘과 바다, 싱그러운 바람이 함께 하는 길이다."(제주 걷기 여행, 39쪽)


2. 역사가 서려 있는 푸르고 아픈 땅, 제주

제주 올레는 단지 '제주'다.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날빛에 반짝이는 제주 올레의 묵직한 풍광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 옛날의 제주는 유배의 땅이었다. 뿐만 아니라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좌절과 아픔도 겪었다. 지금의 제주는 육지 사람들의 관광과 소유의 대상으로 비치는 것도 사실이다. (낙서가) 때문에 현지인의 심정으로 바라보면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이 '역설적'이기 그지 없다. 리뷰어 '낙서가'는 정호승의 시 한 구절을 제주 올레에 부쳤다.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내가 사랑하는 사람)


3.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다.

제주에 대해 한 가지 단어를 떠올리라면 '광광지'나 '관광'을 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학창시절의 수학여행이거나(낙서가) 렌트카를 빌려 타고 말 그대로 '주마간산'으로 달리는 게(감은빛) 일반적이다. '여행(旅行)'이란 말은 매우 오래된 글자인데, 춘추전국 시절 세 치 혀 하나로 전국을 주유하며 왕을 설득해 자신의 이상을 펼치는 유세가를 떠올리면 여행이라는 의미가 쉽게 들어온다. 목적지로 가기도 전에 산적을 만나서 빈털터리가 되거나 목숨을 빼앗기기도 하고, 그렇게 고생해서 찾아가 보람도 없이 쫓겨나는 경우도 다반사다. 때문에 여행이란 몹시 번거롭고 고단한 일이다. 이 본래의 의미가 '제주 걷기 여행'에는 담겨 있다. 튼튼한 두 발로 힘들게 걷다가 지쳐서 돌출된 바위턱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을 때 바라본 풍광, 이것이 제주 올레를 가장 잘 표현한 순간일 것이다. 우리가 '산티아고 여행'을 '관광'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4. '간세다리 정신' 벌써 잊었어?

시사IN의 전 편집국장인 문정우 씨는 제주올레를 걷고 나서 아들과 함께 동네 걷기를 하다가 아들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 평소처럼 과속을 하는 아버지를 보고 "아빠 '간세다리 정신' 벌써 잊은 거야?" 하는 통에 몹시도 민망했다는 후문이다. 리뷰어들도 문정우 씨처럼 '병'을 앓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나는 이미 '빨리, 빨리' 병에 걸려있었다. 무엇이든 빨리해야 하고, 남들보다 앞서 가야하며, 결과를 기다리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조급병에 걸린 것이다.(poison)

'간세다리'란 나무늘보 같은 게으름뱅이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라고 한다. 속도가 주는 오만함과 위협을 생각하면서 걷는 길은 '아스팔트'가 아니라 천연의 '흙길'이다. 흙에서 나고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이 걷기에는 안성맞춤인데, <제주 걷기 여행>을 읽을 때도 '간세다리 정신'을 잊지 말라는 리뷰어의 충고는 새겨들을 만하다.

"책을 천천히 그야말로 놀멍 쉬멍 읽었다. '간세다리'가 되어 읽어야지 이 책이 맛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누워 읽다가, 쭈그리고 앉아 읽다가, 엎드려 읽다가, 화장실 변기에 앉아 읽다가, 지하철에서도 읽었다. 이맛살 찌푸려가며 앞뒤 맞춰 읽어야 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순서대로 꼭 읽을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편안한 책이다." (파란흙)


5. 제주의 '산티아고'를 그리며

저자 서명숙은 나이 50줄에 800킬로미터 산티아고 도보순례에 도전한다. 물론 주위에서 다 뜯어말렸지만, 막무가내로 탈출에 성공한다. 그렇게 23년의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홀로 떠난 산티아고 길에서 자주 떠올렸고 돌아오면서 올레 길을 만들고자 마음을 먹었고 실천에 옮기어 현재는 여덞 코스 105킬로미터의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red7370)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을 산티아고 로망, 하지만 직접 그 길을 걸어본 사람은 훨씬 적다. 하지만 산티아고 로망은 더 이상 가슴 속에서만 자맥질하지 않는다. 제주 올레 서명숙 대장의 노력 덕분에 그들은 "이제는 산티아고의 길보다는 제주올레를 먼저 찾게 될" 테니까.(롤러코스터)


▲ 구릿빛으로 검게 그을른 데다 소녀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왼쪽의 아줌마가 바로 서명숙.

6. '서명숙'을 모르고서 '제주 올레'를 논하지 말라.

제주 올레를 기획하고 한땀한땀 일군 올레 대장 서명숙을 알면 제주 올레를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인생부터가 드라마틱하다.
<시사저널> 창간멤버 서명숙은 1989년 6월부터 2003년 4월까지 15년 동안 정치부 기자·정치부장·취재1부장·편집장을 거쳐 2005년 오마이뉴스 편집국 국장을 역임하는 등 23년 동안이나 기자 생활을 하면서 광화문에서 '놀았다'. 섬의 정기를 머금고 태어났지만 아스팔트 길게 뻗은 도시에서, 그것도 세상사에 가장 민첩하게 반응하는 기자 생활을 20여 년이나 하다가 이를 단호히 버리고 다시 '느림'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까칠한 기자들을 호령하는 편집장 역할을 하며 '여성'보다는 '남성'의 삶에 익숙한 그가 '여성'으로 돌아왔다. 50줄에 그가 얻은 두 개의 키워드는 '느림'과 '여성'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수십 년 동안 지나온 '속도'와 '남성'의 여정이다.


7. '속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다

News는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대중에게 전달해야 한다. News 간에 경쟁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News의 생산자인 기자는 소비자 보다 항상 빠르게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당연히 기자는 다른 직업보다 빠름이 생명이다. 그리고 빠름은 바로 자본주의의 생명이 아니던가.
단위 시간당 생산성, 시속 몇 킬로미터 등 빠른 움직임은 이 시대의 복음처럼 우리의 삶의 가치를 지배하고 있다. 느리다는 것은 어쩌면 죄악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환)

걷기와 뛰기의 차이. 뛰면 걷는 것보다 '많은 곳'을 볼 수 있지만, 걸으면 뛰는 것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은 석기시대의 걷는 생활에 적응되어 있기에(이환) 빠른 삶은 왠지 낯설고 빠름에서 오는 편리함보다는 빠름을 위해 들이는 비용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독서와 여행의 공통점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면 돌아오는 것을 기약할 수 없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고향을 엄마 뱃속을 외면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8. '제주어'를 만나는 재미

<제주 걷기 여행>에서는 제주어(사투리)와 표준어가 병기돼 있는데, 덕분에 리뷰어들은 제주어를 만나는 즐거움을 누렸다. 제주 출신 친구가 엄마나 친구와 통화하는 소리를 듣고 충격에 빠지는 이유는 제주어가 외국어처럼 매우 생소하기 때문이다. '간세다리'라는 말부터가 그렇다. 리뷰어 오로지 관객은 '무엇보다 제주어로 쓰여진 글과 해석, 제주단어의 풀이가 몹시 인상적'이었다고 썼다.
리뷰어 '롤러코스터'도 어렵게 한 단어를 익혀서 써먹는 데 성공했다.

"겅허민(그러면), 떠나기만 하면 되는 것?"

9. '제주 올레'를 위협하는 인스턴트 관광지

제주 올렛길을 연결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명당자리마다 들어앉은 '관광지'다. 특히 제주 올레의 가장 중요한 길목 중의 하나인 '섭지코지'는 '보광'이라는 회사가 지은 대규모 관광단지가 동강내 버렸다.

제주를 갔을 때, 섭지코지의 불행을 목격했다. 대규모 관광단지를 짓는 듯 온통 공사 중이어서 차도 막히고 경관도 훼손되어 있었다. 거기에 무슨 드라마의 세트장인지가 경관을 훼손하면서 버젓이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영업을 하고 있어서 씁쓸했는데, 뭔가 더 어마어마한 게 지어지는 모양을 보니 다음부터 섭지코지는 절대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감은빛)

이외에도 제주를 위협하는 대형 괴물들은 속속 태어나고 있다. 하지만 대형 괴물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어디 제주뿐이랴.

제주는 '여성'의 섬이다. 모든 자연 경관과 사람들의 마음이 섬세하고 온화하다. 하지만 제주를 방문해서 '여성'의 이미지를 찾기는 매우 힘이 든데, 그것은 남성적인 힘에 지배를 많이 당해서 '보이는 부분'은 이미 남성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탑동 부근에 이마트가 생겨난 이후로 제주 동문시장과 재래시장 등 상권이 거의 붕괴되었는데, 얼마 전 신제주에 이마트 2호점이 생겼고 롯데마트도 생겼다. 성산일출봉의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는 신양리 해수욕장에는 삼성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보광이라는 회사에서 대규모 호텔단지를 조성해서 순식간에 '인스턴트 관광지'가 되고 말았다. 이 외에도 제주는 '패키지'라는 치밀한 괴물에 산채로 잡혀 여성성은 아주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승주나무)

제주올레가 제주의 숨은 혈맥을 이어 피가 통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0. '제주 올렛길'이 자꾸 자란다.

<제주 걷기 여행>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명숙의 본문과 무적전설의 별책부록이다. 별책부록에는 제주 올레를 여행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들이 세심하게 담겨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책 본문에서는 올레길 6코스까지 밖에 안 나오지만, 무적전설의 별책부록에는 7코스까지 나온다."(감은빛) 본문이 편집 작업에 들어가 있는 동안 7코스가 개발되었고, 편집 막바지에 작업했을 별책부록에는 그 내용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길이도 늘어나고 있다. 현재 7개 코스 101.1 킬로미터에 달하는데, 2008년10월30일자 신문에 보니 10코스까지 200 킬로미터로 길이가 추가되었다고 전한다. 거기다 내년 초 12코스까지 만들어질 것이고, 11박12일의 일정으로 전 세계 도보여행자들과 함께 '제주 걷기 축제'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제주 올렛길이 자꾸 자라나는 것이다.
책을 사면 올렛길이 늘어나고, 친구들과 함께 올렛길을 밟거나 올렛길을 여기저기 소문내고 다니면 역시 올렛길이 신이 나서 늘어난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제주 사람이지만, 올렛길이 더욱 쑥쑥 자라나서 대규모 관광단지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인간과 자연의 길'이 태어나기를 바라고, 산티아고보다 더 아름답고 편안한 제주올레 완결판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 여행>은 오랜 세월 감정의 앙금이 쌓인 동생과의 재회 과정과 서명숙의 유년을 살지게 했던 '길'이 주는 성찰적 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림들에 대한 회상이 저널리스트의 대중적인 문체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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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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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위기에서 '고전'을 펼쳐야 하는 이유

셰계 금융위기로 촉발된 한국경제의 위기조짐을 두고 혹자는 제2의 IMF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번 위기는 단지 규모만의 위기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물신주의에 묻혀 있던 인간의 가치와 삶의 방식 등 근본적인 반성을 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이에 맞춰 CEO들의 인문학강좌 열풍이 언론에 소개돼 화제다. 금융위기의 한복판에서 위태로운 처지에 몰린 증권회사의 한 간부는 "월가의 금융위기가 우리나라에도 곧 닥치겠지만 10년 전 외환위기때와는 다르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수강신청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시사IN 58호)
하지만 '근본적인 반성'이라는 것은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우리들은 자신의 앞가림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에 맘 편히 앉아서 사유하기가 쉽지 않다. 깊이 사유하고 반성하기 위해서는 선각자의 가르침이나 고전의 진수에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사색적 생활이라는 오랜 전통을 이어오고 있었던 민족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사유의 밑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고전 읽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떤 고전을 읽어야 할지에서부터 생각이 막히지만, 나는 셰익스피어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불안정하고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운명과 감정을 낱낱이 드러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굳건한 지위는 협잡군은 얕은 속임수 앞에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복수의 감정은 또다른 비극을 불러온다. 진정어린 사랑과 곧은 충성심도 머뭇거림과 편견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셰익스피어의 불행한 인물들은 우리들의 삶을 지나칠 정도로 명명백백히 고발한다. 불편할 정도로.


▲ 햄릿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미쳐버린 오필리아가 물속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이것은 4막 7장에 나오는 장면이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그림 


배신, 맹목적 복수심, 광기의 이름은 '햄릿'

삼촌(클로디어스 왕)의 존속 시해로 허무하게 아버지를 잃게 된 햄릿은 아버지 유령에 의해 사건의 전모를 알아차리고 살인사건과 동일한 설정의 연극 초연에서 삼촌 왕이 당황하는 것을 보고 실상을 모조리 알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배신과 분노는 삼촌의 그것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맙소사, 하느님은 최상의 코미디 작가지! 사람이 유쾌하지 않을 수가 있나? 봐, 내 어머니가 얼마나 명랑해 보이는지, 아버지가 죽은 지 두 시간도 안 돼서 말야.
- <햄릿>(아침이슬), 100쪽

동양적으로 표현하자면 '남편에 대한 탈상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 거트루드 왕비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지만 "네 영혼이 네 어머니께 어떤 벌도 획책하지 말 것. 그녀는 하늘에 맡길 것"(햄릿, 45쪽)라는 아버지 유령의 충고 때문가 햄릿으로 하여금 불 같은 증오를 표현하는 것을 막아세웠다. 햄릿이 왕비의 내실에 숨어 염탐하던 클로디어스의 충복이자 햄릿의 연인 오필리아의 아버지 폴로니어스를 죽인 사건이 있고부터 국면은 급격히 악화되고 운명의 잔인한 장난이 시작된다.

맹목적 복수심에 사로잡힌 햄릿을 열렬히 사랑했던 오필리아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상처를 입게 되고 사랑과 가족을 잃은 슬픔에 자살하고 만다. 이로 인해 오필리아의 오빠이자 폴로니어스의 아들인 레어트스의 복수심은 극에 달하고 클로디어스 왕은 이를 이용해 햄릿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햄릿>에서 가장 슬픈 대목은 햄릿의 맹목적인 복수심이 불러낸 또다른 살인과 복수, 사랑의 좌절이다. 가혹한 운명의 장난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레어트스와 햄릿, 클로디어스 왕, 거트루드 왕비가 모두 죽고 나서야 종국에 다다른다. 이 모두 삼촌인 클로디어스 왕이 불러낸 비극이지만, 사실 아버지 왕의 죽음은 이들의 가혹한 운명에 비하면 사소하기까지 하다.



▲ 햄릿의 맹목적 복수심은 또다른 불행한 복수심을 낳았다. 아버지 왕을 잃은 햄릿으로 인해 사랑하는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은 레어트스가 결투하는 장면.


맹목적 신념, 절망 앞에 사라지는 삶의 가치

<햄릿>의 상황은 우리네 인생사에서 똑같이 재현될 수는 없겠지만, 그 이치만은 고스란히 다가온다. 경제성장이라는 맹목적 목표에 사로잡혀 결코 버려서는 안 되는 삶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을 '사소한 희생량'으로 치부해버렸던 근래의 모습이나,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맹목적 공격은 옳은 주장도 쉽게 묵살해 버린다. 미군정, 독재 시절에 이미 사라졌어야 할 색깔론은 2008년 대한민국에서 더욱 찬란한 색깔옷으로 갈아입고 '좌파척결'이라는 치맛자락을 휘두른다.
당당한 사회의 일원인 시민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는 패배감에 젖어 있고, 삶을 포기한 극단적인 선택인 자살사례는 너무 흔해서 뉴스에도 소개되지 않는다. 

<햄릿>이 절박한 우리 삶의 단면에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것은 좌절과 불행에 대한 카타르시스에 머무르지 않는다. <햄릿>에서 보이는 불행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아버지 왕의 불행을 첫 번째 불행이라고 한다면, 복수에 사로잡힌 햄릿이 불러낸 불행은 두 번째 불행이다. 첫 번째 불행은 피할 수 없었지만, 두 번째 불행은 피할 수 있었다. 이것이 <햄릿> 비극의 핵심이다. 어려운 경제상황, 말도 안 되는 정치적 탄압, 날마다 나를 괴롭히는 좌절과 공포는 피하기 어려운 불행일 수도 있지만, 이후에 만나게 되는 자살과 패배감 등의 불행은 피할 수 있는 불행이다. 누구나 불우한 순간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다음의 불행을 자초하느냐 마느냐는 순전히 본인의 몫으로 남는다.


▲ 이번에 새로 번역된 김정환의 <셰익스피어> 작품 5편은 번역자가 오랫동안 숙원했던 작업으로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집필의도와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온전히 드러내 보인 것 같다. 실제로 번역 문장 한줄 한줄에 번역자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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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10-27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인문학 강좌... 가격 보셨나염? 1200만원... 헐~~~~~~
요즘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읽고있는데, 데이비드덴비란 영화비평가가 콜럼비아 대학에 가서 청강하는 이야깁니다. 무료 청강과 1200 만원의 간극이란...

승주나무 2008-10-30 11:3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게 비싼 거였군요.
하기야 그런 분들은 1억원이라도 내셔야 프로그램도 좋아지고,
사회에도 도움이 되겠죠.. 모처럼 의미 있는 데 돈 쓰는 기분 아닙니까^^

드팀전 2008-10-29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사in> 기사를 봤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해악은 돈을 벌기 위해서 철학을 하는 자들이다.' 라는 말이 있더군요.CEO들이 그렇게 되질 않길 나이브하게 기대해봅니다. <햄릿>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는 정신분석학적 비평들이 흥미롭더군요. 오랫동안 무대 위에서 연출되고 또는 텍스트로 해석되었으니까 이런 다양함이 <햄릿>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승주나무 2008-10-30 11:4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햄릿을 그냥 콤플렉스 수준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는데, 원전을 살펴보니 햄릿의 인간상에는 분석할 수 있는 요소가 매우 많았습니다.

햄릿의 직관과 고뇌에 대해서만 살펴보려고 해도~~ 어휴~~
이번에 운 좋게 뮤지컬 햄릿에 당첨됐는데.. 후기를 곧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