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시르와 왈츠를 -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다른만화시리즈 02 다른만화 시리즈 2
데이비드 폴론스키, 아리 폴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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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하루에 한 번씩 읽었던 <바시르와 왈츠를>

예전에 한문 배우러 다닐 때 강독을 담당했던 선생님은 매일 아침마다 삼국유사를 한 페이지씩 본다고 했다. 매번 들고 다니면서 읽는 게 삼국유사이지만, 아침에 읽을 때마다 새로운 관점이 열린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논어나 맹자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생각날 때마다 읽곤 했는데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최근에 좋은 기회가 생겨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을 보았는데 영상미와 음악이 돋보였다. 그래서 책으로 나왔을 때 얼마나 다를까 하여 보았다. 처음에는 영화의 이미지와 책의 이미지가 같기 때문에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는데 몇 번을 더 뒤적거리다 보니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단순히 팔레스타인 학살 사건을 주제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감당해야 할 폭력과 황폐화, 그리고 전쟁 경험으로부터 훨씬 멀리 도망갔는데도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스라엘 퇴역병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전쟁에서 죽는 것과 죽이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전쟁 첫 날이었다. 나는 채 열아홉 살도 되지 않았다. 아직 면도조차 시작할 나이가 아니었다.
우리는 호위를 받으며 한편은 과수원이고, 다른 한편은 바다 길을 끊임없이 총을 쏘며 내달렸다.
누구를 향해 쏘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단지 총을 쏘아댔다. 미친 사람처럼 정신없이.
..........
전차병 : 무엇을 해야 하죠? 당신은 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죠?
장교 : 쏴
전차병 : 네? 
장교 : 나도 몰라. 그냥 쏴.
전차병 : 기도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장교 : 그럼, 총을 쏘면서 기도 해.

- <바시르와 왈츠를> 35~37쪽

전쟁의 모티브가 됐던 사브라ㆍ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의 강렬한 인상 때문에 이 책을 통해서 학살만 기억하기 쉽지만 학살은 맨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 등장할 뿐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학살보다는, 학살로 가기 위한 지난한 과정일 것이다. 그 안에 자신의 존재가 갇혀 있기 떄문이다. 책 안의 심리 실험도 흥미로운 주제였다. 전쟁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기 팔다리를 자르듯이 기억의 못된 부분을 잘라버리는 인간의 코나투스(자기생존본능)가 절절히 흐르는 것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120쪽 남짓에 불과한 데다 만화책이기 때문에 10분 정도면 일독이 가능하다. 하지만 10번 정도 읽어야 작가의 메시지가 하나 둘 잡힌다.


광고불매운동과 바시르 사건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속의 내용에만 천착하는 게 아니라 현실과 갈마들며 살펴보게 된다. 그렇게 하는 독서가 나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리하게 관련을 짓는다는 느낌이 나더라도 일단 시도해 보는 것이다.
사브라ㆍ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정부를 실각시키고 수립한 괴뢰정권의 수장 바시르의 암살 사건에서부터 비롯됐다. 바시르를 따르던 팔랑헤당 당원들은 우리나라 현대사로 따지면 '서북청년단원'(서청)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승만에게 서북청년단이 있듯이 바시르에게는 팔랑헤당이 있었다. 팔렝헤당 당원들이 바시르를 따르는 것은 거의 광적인 추종에 가까웠다.

팔랑헤당 민병대들은 항상 바시르의 사진을 몸에 지니고 다녔어. 바시르 목걸이나 귀걸이. 바시르 시계 그리고 이러저러한 바시르 등을.
바시르는 그들의 우상이었고, 슈퍼스타였지.
그들이 바시르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일종의 에로틱한 것이었어.
그런데 그들의 우상이 왕관을 쓰기 직전에 살해된 거야.
바시르의 죽음에 대한 복수가 끔찍할 것이라는 건 너무나 명백했어.
- <바시르와 왈츠>를 94쪽


이스라엘 군대의 비호를 받으며 사브라ㆍ샤틸라에 도착한 민병대원들은 그러나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이 시기에 레바논 주둔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은 베이루트에서 튀니지로의 퇴로를 확보하는 조약을 체결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미 튀니지로 모든 병력이 피신했고 남은 것은 어린이들과 노약자뿐이었다. 그들이 민병대원들의 처참한 희생량이 되었다. 파악된 것으로만 3,000명이다.

'뒷북 학살'이라는 건 시공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패턴이다. 우리 속담에도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라는 말이 있듯 제주 4.3 때도 무장대원들에게 습격을 당한 토벌대들은 무장대 색출을 핑계로 무고한 양민을 대량 학살했다.

조중동도 이에 비유할 수 있다. 2008년 5월 100만 인파가 분노의 촛불을 들었을 때 조중동은 대표적인 심판대상이었다. 시민들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조중동에 광고하는 기업에 대해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개씩 광고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본 조중동은 '희생량'이 필요했고 그것이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라는 카페다. 사실 그들은 조중동이 받았던 충격과 크게 관련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카페 개설자와 도우미들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국가기관인 검찰과 공모해 탄압을 가했다.

검찰은 공소사실에 'ㅎㅎㅎ'라는 댓글을 달았다는 사실을 적시했고, 카페 메인화면에 태극기를 그려넣은 넣었다. 참 궁색하다. 검찰은 본보기를 보여줘야 한다면서 24인 대부분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언론운동을 '살인'(초범)과 같이 보는 검찰의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서로 격렬히 싸우다 많은 전사자를 낸 전쟁보다 더 처참한 것은 전쟁이 끝난 후 패잔병들에게 학살을 당하는 상황이다. 조중동과 검찰의 뭇매를 맞고 죄인 취급을 당한 언론시민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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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클 모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로라 데이 지음, 채인영 옮김 / 허원미디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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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드래곤볼에서 유일하게 기억나는 장면 

 


어린 시절 재미있게 보던 만화 중에서 <드래곤볼>이라는 게 있다.

드래곤볼에서는 손오공이라는 캐릭터가 여러 괴물들과 싸우면서 성장하는 장면이 나와 있다.

폭력물로 분류되지만 내 또래(30세)의 사람들이라면 아주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이 만화는 흥미진진한 것을 빼놓고는 별로 기억할 만한 게 없는데 '원기옥 이야기'는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

'원기옥'이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기(氣)를 모아서 뭉친 공의 이름이다.

셀이라는 슈퍼파워 괴물과 싸울 때 지친 손오공이 손을 들고 힘을 모았는데,

모든 생명체들이 손을 뻗침으로써 힘을 모아 괴물을 이길 수 있었다. 

 
원기옥 이야기를 안 지 15년이 훨씬 넘은 지금에 와서 이것을 다시 떠올린 이유는 로라 데이라는 과학자 때문이다.

로라 데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이며 CEO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20년 넘게 직관과 영감을 계발시키고 실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가르치는 일을 해 왔다.

브래드 피트, 니콜 키드먼, 데미 무어가 그의 동료이며 그 외에 노벨상을 탄 과학자 제임스 왓슨과 영혼의 의사 디팍 초프라와 함께 세상에 비전을 보여주는 일을 하고 있다. 

국내에 번역된 <서클, 모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허원미디어)에서는 '마술 지팡이'라고 표현했다.

인간의 의지력은 마술 지팡이와 같다. 그러나 그 의지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의지력은 우리의 안과 밖에 존재하고 있는 에너지를 끌어모아 마술 지팡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강력하게 힘을 몰아준다. 진정 자신이 원하는 꿈을 찾아내고 그것에 몰두하는 것-의지-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내적 자원이다. - 책 38쪽

 

절박한 것에 대해 관심 없었던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다

손오공이 쓰는 기술 중에서 원기옥도 둥글고 에네르기파도 둥글지만 두 개의 힘은 엄청나게 다르다. 에네르기파는 항상 쓸 수 있는 것이지만, 원기옥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만 쓴다. 그만큼 에너지가 많이 빠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점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절박하게 무엇인가를 추구하면서 살기보다는 타성에 젖어서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인생이 재미가 없어지면 타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말이 될 것이다. 

절실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절실한 마음을 먹으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없다. 절실하게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 있다면 어딘가에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잠을 자면서도 그 생각을 하고 모든 관심이 그 쪽으로 집중되고 그 일에 미칠 수 있다면 되지 않을 일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로라 데이는 그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존재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 일은 이미 나만의 것이 아닌 셈이다. 이 말에 따르면 내가 그 일에 대해서 내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아버린다면 세상의 모든 것과 통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한 번 하다가 말아버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상 모든 일에는 마찰력이 있어서 뭔가 하려고 하면 저항하는 힘이 있지만, 그 속에는 그 일을 도우려는 힘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 로라 데이의 생각이다.

더 놀라운 것은 내가 절박하게 살려는 의지도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절박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절실한지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나름 절박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대체로 생각하는 것을 내가 반복해서 생각할 뿐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까지 에네르기파만 주로 쏘았지, 진정한 의미의 원기옥을 쏘지는 못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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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9-02-11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승주나무님 저도 드래곤볼 진짜 좋아했어요 ㅎㅎ 저는 만화책만 봤어서 저 장면이 낯설어요 >.<

승주나무 2009-02-12 17:24   좋아요 0 | URL
아핫~ 그렇군요.
저는 티비 돌리다가 손오공만 나오면 멈추고 한 시간은 보는 못된(?) 버릇이 있습니다.^^

뷰리풀말미잘 2009-02-11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셀을 날려버린건 손오공과 손오반의 더블 에네르기파란 말입니다아아..

승주나무 2009-02-12 17:2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 손오공이 드는 것은 셀이 아니라 '프리더'인 모양이네요^^
프리더도 처음 나올 때는 정말 무서운 친구였는데..어쩌다가 저렇게 됐는지~~
나 지금 누구랑 대화하니 ㅋㅋ

일달 2012-02-28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짤을 퍼 갈께요!! :-)
 
두뇌월드 큐 1 - 잠재능력 Q의 세계로!, MBC 계발 학습 만화 두뇌월드 큐 1
이수겸 글, 비타컴 그림 / 꿈소담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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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만화 하면 만화천자문처럼 이미 있는 정보에 흥미를 덧붙여 주로 어린이층인 독자가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장르였다.
대안교육 전문가인 이양호 씨는 학습만화에 대해서 "학습만화는 쉽게 교과목을 접할 수 있게 해주고 주요 구절들을 쉽게 외울 수 있게 해주지만, 논리적인 연결이나 문장이해력을 갖도록 돕지는 못합니다."라고 우려했다. 햄버거를 먹으면 배는 부를지언정 몸에 그다지 유익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학습보조제로서의 학습만화는 한계가 분명하다. 하지만 이미 있는 정보를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만화를 통해서 새롭게 전달하고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학습만화는 어떨까?
<두뇌월드 큐>(꿈소담이)는 상상력이 넘치는 학습만화다. 잠재능력 Q를 통해 아이의 재능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자신의 적성까지 알아볼 수 있게 그렸다. 

 

 

▲  스포츠Q, 로직Q, 뮤직Q, 스페이스Q, 랭귀지Q, 센서티브Q, 오토매틱Q 등 수많은 Q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뇌를 이룬다는 설정은 신기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Q와 함께 두뇌월드에 빠진 주인공 우주와 아라는 우주의 두뇌월드인 창의력 월드, 감성지능 월드, 성공지능 월드, 다중지능 월드에서 다양한 Q와 네가로를 만나게 된다. Q가 활성화될수록 자신의 재능과 적성도 계발되며, 네가로가 활성화될수록 반대로 되는 설정은 무척 사실적이다. 여러 가지 유혹에 못 이겨서 반드시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겪는 상황이다. 컴퓨터게임이나 콜라, 햄버거에 찌들어 있는 어린이와 축구, 뜨개질, 박물관 방문, 농촌체험 등 건강한 체험을 즐겨 하는 어린이를 비교해 보면 큐와 네가로를 잘 이해할 수 있다. 

 


▲ 어린이의 두뇌 잠재력을 뜻하는 Q와 잠재력을 방해하는 외부 조건을 네가로로 묘사한 점은 무척 사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을 아이들에게 전달시켜줄 수도 있다는 우려는 남는다. 한국이 만약 위기에 빠져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열심히 일한 탓도 있다. 매일 쉬지도 않고 일하며 게으름을 피거나 자기 시간을 가지는 것을 죄악시하는 풍조는 우리들이 '시민'으로 태어나는 것을 방해해 왔다. 스위스에서는 일 주일에 이틀 일하고 5일 쉬는 시스템도 정착돼 있고 다양한 재택 근무 방식도 많이 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선진국들은 일하는 것보다 놀고 쉬는 것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만, 언제나 여유 있는 생활 속에서 경쟁력 있는 상품들을 만들어 낸다. 별 관계 없는 이야기 같지만 두뇌월드 큐에서 설정한 성실과 게으름의 이분법은 좀 더 성숙한 인식에 이르러서는 별로 상충될 것이 없다. 열심히 일을 하다가 한동안은 잔뜩 게으름을 피는 것도 정신건강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네가로를 너무 밉게만 볼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두뇌월드 큐>는 아이들의 잠재력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에 이분법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운동을 잘 하는 애들에게 많이 있는 스포츠Q, 논리적이며 분석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로직Q, 음악적인 재능을 담당하는 뮤직Q, 미술 같은 예능을 담당하는 스페이스Q, 언어를 담당하는 랭귀지Q, 정서를 담당하는 센서티브Q, 장난감이나 기계 같은 것을 만지작거리면 좋아지는 오토매틱Q. 이 수많은 Q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무척 신기하고 놀라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 Q들이 모여서 '뇌'를 재현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책 제목이 <두뇌월드 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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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 발도로프와 한의학이 만난 학교 1
이양호 지음 / 글숲산책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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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척이나 사람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이양호 씨는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교육의 대도를 걸었던 사람처럼 인터뷰 하는 내내 여유와 확신이 몸에 배어 있었다. 심광체반(心廣體胖 : 마음이 너그러워서 몸에 살이 오름)이라는 사자성어(대학)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

"10여 년 전부터 대안학교에 대한 절실한 요청이 있었고 몇몇은 자리를 잡은 듯합니다. 하지만 한국교육의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대안학교들은 최초의 취지를 지켜나가는 데 대해서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 독일 발도로프 대안학교에서 수학해 10년 넘게 대안학교에 대해서 고민해 온 이양호 씨를 만났다. 12월3일 홍대 주변 민들레영토에서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글숲산책, 이하 '공도인')과 <백설공주는 공주가 아니다?!>(이하 '백설공주는..> 단 두 권에 반해서 인터뷰에 함께 따라나선 독자 1명과 함께였다.
이양호 씨의 두 번째 출간작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글숲산책)에서는 우리가 소홀히 다뤘던 '도덕성'이라는 개념을 교육철학의 밑바탕으로 삼았고 고전과 토박이말도 주요한 개념으로 넣었다. 특히 심청전과 오이디푸스를 독특하게 해석한 것이 일품이며, 대안학교의 실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 것도 특색이다.

황색 점퍼 차림에 맑은 눈을 하고 나타난 이양호 씨는 드디어 자신이 생각한 교육철학 방법론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된 데 대해서 잔뜩 고무된 모습이었다. 국민일보와 부산일보 등 중소형 언론사에 소개되기는 했지만, 메이저 신문에서 자신의 책을 다뤄주지 못한 점을 아쉬워 하기도 했다.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이름, '도덕'을 너무 잘못 알고 있었다. 

 
나도 교육의 중요성과 한국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적잖은 시간 고민했고 3년간 논술을 가르치며 새로운 교육대안을 고민해보았지만, 이양호 씨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논의된 대안교육에 대한 고민에서 적어도 한두 발자국 정도는 더 나아간 듯 보였다. 이 씨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안학교는 처음에는 자연과 하나된 인성교육, 전인교육, 건전한 민주시민을 위한 교육이라는 취지에서 출발하였다.


"공부와 도덕성을 서로 짝지으셨는데, 요즘 누가 도덕성 생각하면서 공부합니까. 다들 성공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거 아닌가요?"


처음에는 좀 짓궂은 질문으로 화두를 떼었다. 어설프게 꺼낸 우문에 대해 가차없이 현답이 돌아온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이란 그야말로 도덕책에서 보았던 '예의범절'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동양의 지혜에 따르면 도(道)는 '우주의 바른 길'을 뜻하며 덕(德)은 '바른 길을 수없이 실천해서 내 몸에 쌓이게 된 것'을 말합니다. 도덕은 그야말로 우주적인 개념이죠. 서양으로 가 볼까요. 서양에서는 자유와 평등을 떠나서는 도덕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선조들은 별자리를 진지하게 관찰했습니다. 별자리에 박힌 별들은 서로 침범하는 법이 없고 질서를 따르거든요. 웅숭깊은 '보편성'이 내재된 개념이 바로 도덕성입니다."

나의 '부도덕'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맹자>라는 책의 첫머리에서 "선생께서 먼 길을 마다않고 우리 나라에 찾아와 주셨으니 우리에게 어떤 이로운 가르침을 주시겠습니까?"라고 했다가 맹자로부터 "왕께서는 어찌 사사로운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인과 의가 있을 따름입니다."라고 대번에 야단맞은 양혜왕이 된 기분이었다. 자세를 바로잡고 대안교육 10년의 흐름과 교육현실, 새로운 대안학교에 대한 밑바탕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이양호 씨는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 <백설공주는 공주가 아니다?!>는 두 권의 책을 통해서 도덕성, 토박이말, 고전읽기는 교육철학의 주춧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차등수업료제도'에서부터 대안교육은 시작한다


"신문에 보니까 대안학교 관계자가 “대안학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강남 학부모 사이에서는 ‘1순위 유학, 2순위 특목고, 3순위 (서울대 신입생을 배출한) 대안학교’라는 말도 나돈다”(시사IN 61호)고 할 정도로 대안학교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안학교가 자라온 흐름을 일괄해 주신다면?"
- 대안학교가 우리나라에 시도된 지 10년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우학교나 간디학교 등 유명한 대안학교가 있죠. 하지만 대체로 대안학교는 귀족학교라는 선입견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민족사관 고등학교나 외고 같은 특목고를 대안학교로 잘못 아시는 분들도 많지요. 그리고 어떻게 말이 돌아다니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원에 50만원 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해도 대안학교에 50만원 내면 엄청나게 부풀려져 현재의 선입견을 키운 것 같습니다. 그것은 대안학교도 대안학교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잡아나가지 못한 것도 중요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2006년 12월 교육인적자원부가 펴낸 <대안교육백서>에 따르면 대안 고등학교 졸업생 85%가 대학에 진학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께서 대안학교를 만드시려고 하는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 대안교육은 현재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교과목을 인정하는 속에서 만드는 방법(인가 대안교육시설)과 교과목 자체를 부정하면서 만드는 대안 교육(비인가 대안교육시설)이 있습니다. (인가를 받으려면 40억원 규모의 시설을 갖추고 국민공통 교육과정을 50% 이상 이수하며 교원자격증을 가진 교사를 선발해야 한다.) 저는 지금 있는 대안학교에 대해서 비판하가보다는 하나를 더 보태고 싶습니다.  

 


▲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대안교육 특성화학교 수는 160개에 이르며 학생수도 6,000명에 가깝다. 현재 인하대와 성공회대 등 대학교에서도 대안학교 이수자에 대한 특별전형을 실시하는 등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대안학교 모델을 세우신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구체적으로 다른 대안학교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 발도로프 대안학교의 제도 중에서 '차등수업료 제도'가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이 제도가 '의료보험제도'처럼 자리를 잡았습니다. 가정의 수입 내역이 파악되고 이에 따라서 수업료가 차등적으로 제시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산내역을 공개하는 걸 상당히 꺼려 하니까 이것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겠지요. 100만원 버는 가정과 1,000만원 버는 가정이 똑같이 50만원을 내는 것은 비교육적인 일이죠. 돈이 있는 분들은 조금 더 내고 돈이 부족한 사람들은 도움을 얻는 방식을 만들고, 입학 희망 가정을 설득해서 타협을 이뤄낼 생각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취지가 있습니다. 우선 돈이 없는 사람들도 공평하게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자는 차원입니다.


"'차등수업료 제도'를 들었을 때 '기여입학제'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입학금을 내는 정도에 따라서 학부모나 학생들이 지분을 행사하려는 경향이 강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듭니다."
- 그런 문제가 처음에 터질 거라는 사실을 모든 선생님들이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어떻게 바꿔나갈지 해결방법을 모색하려 합니다. 그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중학생만 되도 컴퓨터 게임 중독 등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너무 오랫동안 길이 들여 있어서 이것을 바꾸기가 굉장히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로 낮춰서 기숙사까지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기숙사라는 점이 또 걱정이 될 수 있지만, 생활 전반에 걸쳐서 교육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기숙사와 함께 운용하지 않으면 교육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초등 대안학교에 기숙사를 운영하는 방안에 대해서 공감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어떤 공기 속에서 생활하는가가 교육에서는 가장 중요합니다. 학교에 갔다가 집에 가면 또 비교육적인 환경, 예컨대 컴퓨터 게임이나 폭력적인 영화, 어른들의 부동산 이야기 등 동심을 왜곡하는 신호가 너무 많습니다. 전반적으로 아이들에게 대안교육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라야 아이들의 사고가 자라고, 부모들도 이런 사회적 공기 속에서 (차등수업료를 내는 데 대해서) 큰 저항감 없이 교육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공적인 것, 보편성을 알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원론적인 지점에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교육과 이제까지의 교육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인가요?"
- 기자님은 현재 우리 시대의 얼굴이 무엇인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법률사무소 김앤장'입니다. 최고의 성적으로 좋은 학교를 나와서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변호사이고, 그들 중에서 가장 상위에 있는 단체가 바로 김앤장이지요. 김앤장 현상은 두 가지 문제점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민사고나 대원외고와 같이 이른바 귀족 학교를 생각해 보십시오. 입학에서부터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공적인 것'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이러한 공기 속에서 그들이 갑자기 '공적인 인간'이 될 수 있을까요? 그야말로 '사적인 영광'일 뿐이죠. 그리고 공적인 인간이 되지 못한 사람은 '우월감'에 빠질 위험이 큽니다. 우월감이란 이타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무척 위험한 것이죠.


"말씀을 들어보니 선생님께서는 '공교육' 중심의 대안을 짜고 계신 듯합니다. 요즘 들어 '수월성 교육'과 '경쟁 시스템'이라는 말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의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공교육 평준화 정책을 '하향 평준화'라고 폄하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국제 올림피아드 같은 엘리트 시험에서 최고 등수를 올리는 학생들이 공교육 때문에 바보가 된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데요."
-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주장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은 공교육과 사교육, 수월성 교육 등 모든 교육 주체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면 재미교포 김승기씨가 최근 쓴 박사논문 '한인 명문대생 연구'에 따르면 1985∼2007년 하버드대 등 미국의 14개 명문대에 입학한 한인 학생 1400명 가운데 56%인 784명만 졸업하고, 44%의 학생이 중간에 자퇴했다고 합니다. 미국 학생 34%, 유대인 12.5%, 인도 21.5%, 중국 25%에 비해 한국 학생들의 중도 탈락률이 매우 높죠. 이 수치는 우리나라 교육이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돼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수월성 교육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올림피아드'를 거론하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엘리트에 대한 데이터일 뿐입니다. 올림피아드보다 OECD 공식 학력 테스트인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만 15세 학생들의 읽기, 수학, 과학적 소양 수준 파악 및 소양 수준에 영향을 주는 배경을 분석하여 각국 교육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시험. 3년에 한 번 OECD가 실시하며 2006년 현재 57개국 40만명의 학생이 참여했으며 우리나라는 154개 학교에서 5,000명이 참여했다.)가 좀더 확실한 자료입니다. 보통 아이들이 보기 때문에 대한민국 학생들의 평균실력을 가늠하는 이 시험에서 우리나라는 OECD 평균을 훨씬 뛰어넘고 있습니다.(2006년 기준) 문제는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실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데 이것은 중고등학교 교육과정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 2006년 실시된 OECD PISA의 시험 결과. 우리나라는 OECD 평균에서도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PISA는 올림피아드와 달리 '보통 학생'의 시험 결과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교육정책을 짜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선생님이 최근 출간한 <공도인>(글숲산책)에 보면 유난히 '도덕성', '보편성', '자유'라는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교육 모델에서부터 강조하신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 그것은 우리의 교육철학이 따로 없고 바탕 역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춧돌이 바로 서야 집을 지을 수 있듯이 공부를 가르칠 때도 '바탕'이 제대로 심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학'을 가지고 예를 들어 본다면, 우리들은 수학공부를 하면서 지혜를 얻는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수학이란 지극히 기능적인 과목으로 한정하는 것이죠. 하지만 서양의 문명에서 수학 공부는 자아를 성찰하고 수련하는 대표적인 분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플라톤, 피타고라스, 러셀, 데카르트 등 서양의 철학자들을 생각해 보면 모두 수학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저서(국가 정체)를 읽어 보면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고,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 다음이고,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주요한 방식이 바로 수학이었습니다. '창의력'에 대해서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현재 우리가 말하는 '창의력'이란 그저 욕망의 분출일 뿐 제대로 된 창의력이 아닙니다. 새로운 것이 다 창의력은 아니죠. 이전에 없던 것에 하나를 보태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산물들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즉 보편성을 가지고 있어야 바로 '창의력'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죠. 역설적인 말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창의적인 인간에 이르기 위해서는 '고전'을 배워야 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질문을 드립니다. <공도인>이나 <백설공주는..>에 보면 고전에 대한 독특한 해석과 특히 '토박이말'의 사용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만의 소신이 있을 듯합니다"
- 고전은 그 시대마다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백설공주는..>에서 독일의 자랑 그림형제의 동화 원문으로 우리 고전의 시각에서 해석했습니다. 구전해 내려오는 작품들은 어떤 식이든 상징과 시대정신이 있기 마련입니다. <공도인>에서는 '심청전'을 분석했고, 서양 고전으로는 '오이디푸스'를 분석했습니다. 단지 고전을 읽는 것보다는 하나의 고전을 잡고 여러 가지 관점으로 뜯어보고 오늘날의 현실과 갈마들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토박이말을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주체성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속에는 한자어와 많은 외래어가 들어와 있습니다. 토박이말을 버리고 다른 말을 쓰면 단절이 일어납니다. 예컨대 '모순'(矛盾)이라는 한자어를 아는 사람은 그것을 모르는 사람을 은연중에 낮추어 보게 됩니다. 그것이 첫 번째 문제이며, 우리들의 사유를 오롯이 담아낼 건강한 그릇이 바로 토박이말이라는 점은 많은 철학자들이 강조했던 점입니다. 예컨대 서양에서는 '존재'라는 단어를 가지고 무수히 많은 책을 만들었다면, 우리도 역시 '있음'이라는 말을 써서 철학을 풍부하게 해야 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토박이말을 저의 책에 계속 활용하는 것입니다. 토박이말과 고전, 도덕은 저의 교육철학을 이루는 밑바탕이 됩니다. 

 
인터뷰는 3시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나름대로 교육계에 몸담고 있었거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먹먹해짐을 느꼈다. 교육의 현주소를 보면서 개탄하고 바꿔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면서도 제대로 된 교육철학을 세우지 못하고, 대세의 흐름에 정처없이 흘러갔던 그 동안의 세월이 반추되는 듯했다. 대안학교에 뜻을 함께 하는 한의사 분과 지금 대안학교의 밑작업을 하고 있다는 이양호 씨는 자신의 뜻을 읽고 손을 맞잡아줄 사람들에게 절박한 메시지를 보내는 심정으로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그의 탄탄한 교육철학이 제대로 된 날개를 얻어 비상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했습니다.
링크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27716&PAGE_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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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네 장 담그기 우리문화그림책 온고지신 6
이규희 글, 신민재 그림 / 책읽는곰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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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항상 가을만 되면 작은마루에서 찌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작은마루하고 방하고 문으로 막아놓은 것이 아니라서 집안 전체에 메주 냄새가 났다.
처음에는 냄새가 얼마나 독하던지 일부러 늦게까지 놀다가 저녁에야 집에 들어가는 때도 있었다.
"꼭 이런 데다 널어야 하나?"
하면서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메주를 발로 차면서 화풀이를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자주 맡다 보니 향긋하고 달싸름한 냄새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당시 한약을 자주 먹어서 왠만큼 독한 냄새에도 어느 정도 길들여져 있던 나는
메주의 특이한 냄새를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 건넌방에서 자고 있는 메주가 잘 지내는지 보려고 방문을 여는 순간 가을이는 코를 찌르는 냄새에 깜짝 놀라 "할머니, 어떡해요. 메주가 썩었나 봐요. 곰팡이도 나고 아주 못생겨졌어요!"라고 달려간다. 그런데 할머니는 웃으시며 그게 우리 몸에 아주 좋은 곰팡이꽃인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말했다. (<가을이네 장 담그기> 중 일부)

선량하고 덕 많은 가을이네 부모님과 할머니가 장을 담그는 이야기가 제데로 익은 된장맛으로 그려져 있다.
'책읽는곰' 출판사의 다른 책에 비해 수채화풍으로 넉넉하게 그린 게 특히 인상적이다.
나는 그림에 된장을 묻힌 줄 알았다.
<책읽는곰> 책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지만,
어린 아이가 주인공이고 그 안에서 참여하면서 실생활의 지혜를 많이 배울 수 있다.
작위적인 부분이 없는 것이 책곰 책의 장점인 것 같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주인공이 하는 역할이나 느끼는 바가 분명하게 그려져 있다. 

여문 콩을 골라내는 일을 할 때는 할머니를 돕기도 하고, 
콩으로 메주의 형틀을 만들 때도 역시 쪼물락 쪼물락 잘도 만든다.
메주를 볏짚으로 묶어 처마 끝에 매달아놓을 때도 메주 두 개를 짊어지고 아버지를 돕는다.
이런 장면들이 책의 현장감을 높여주고,
책을 읽는 어린이 독자로 하여금 직접 체험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아닌가 싶다.
나는 나이 찬 어른이 되었지만,
가끔 아무도 몰래 동심 속으로 다녀올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이 그림책 때문이다.




▲ <온고지신> 우리문화 시리즈 그림책의 맨 뒤에는 관련자료를 대화체로 엮어서 알기 쉽게 풀이해 놓았다. 처음에는 자료첨부 수준이었던 것 같은데, 문체가 조금씩 발랄해지는 것을 느낀다. 시리즈 10권 정도 가면 참 볼 만한 문장이 나올 듯하다. (이 멘트는 출판사 압박용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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