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껍질 속의 우주 까치글방 187
스티븐 호킹 지음, 김동광 옮김 / 까치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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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껍질 속의 우주>는 풍부한 도판들을 곁들여 우리의 우주를 지배하는 원리를 일반인들의 용어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책을 소개하고 있지만, 반은 맞고 나머지 반은 틀리다. 아니 '거짓말이야'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어려웠다. 그나마 컴퓨터 그래픽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컬러 도판이 있었기에 마지막장까지 읽어는 볼 수 있었다. 이것도 상대성 이론에 적용해야 할 문제인가? 스티븐 호킹 박사의 설명은 간단, 명료, 명쾌하였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렇지 않을 수 있다(?). 200여 페이지에 불과한 분량에 그림이 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 책은 최신 천체물리학의 이론들을 담았기에 일반인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어려움을 느끼는 근본적 이유는 바로 경험의 부재에 있다. 쿼크같은 미시세계에서의 입자의 운동서부터 거시세계인 우주의 시작과 끝, 그리고 시간과 공간, 차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하고, 볼 수 없었던 이질적인 현상과 원리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매우 힘든 것이다. 감각에 의존하는 인간의 사고체계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있는 수많은 컬러 도판들의 역할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림에 담아야 할 이론과 원리, 수학적 모델의 정확성과 명료성은 부족했던 감각적 경험을 보완할 수 있게 한다. 그런면에서 이 책의 도판은 아주 기발하고 뛰어났다. 허시간, 차원, 시공간 같은 것들은 그림만 봐도 흥미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을 대표하지는 않지만, 오로지 '지적 호기심' 하나 믿고 이 책에 도전했던 본인이 느끼기에는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분량이 말해주듯이 함축적인 내용, 이해하기 힘든 용어, 어색한 문장들이 주는 난해함은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도 힘들게 한다. P-브레인, M-이론, 초대칭이론, 초끈이론, 초중력이론, 양자이론 등은 알듯 하면서도 자신있게 설명할 수는 없다. 깊이는 없으며 구체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쉽지 않은 모호한 상태가 내 머리속에서 양자이론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작용하는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물음표만 늘었다. 다른 책을 찾게 한다. 인간이 다가설 수 없을 것 같은 우주의 원리를 한권으로 끝낼 수 없음은 당연하다.

불가지론이 옳다고 해도 인간의 욕구는 잠재울 수 없을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세계,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향하여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다하는 과학자들의 위대한 지성과 의지가 담겨 있기에 아름다운 책이다. 우주, 시간과 공간을 의식하지 않고 살던 사람에게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계기가 분명히 될 것이다.

'나는 호두껍질 속에 갇혀 자신을 무한 공간의 제왕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악몽만 꾸지 않는다면...' -세익스피어 햄릿 2막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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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판토 해전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4
시오노 나나미 지음, 최은석 옮김 / 한길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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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들에게는 커다란 고통이겠지만, 역사적인 사건 중에서 전쟁만큼 흥미로운 것은 없을 것 같다. 세력과 세력의 충돌, 다양한 인물들이 벌이는 전략과 전술, 그리고 외교. 전력을 다하여 벌이는 치열한 생존 게임이 남긴 것은 과연 무엇일까? 어이없게도 이 책에서 다루는 레파톤 해전은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쇠락을 안긴다.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세력확장으로 기세가 드높던 투르크는 레파톤 해전의 패배 이후로 서서히 몰락하고, 승자인 베네치아 또한 전쟁으로 인한 국력상실로 쇠퇴하게 된다. 지중해를 호령하던 스페인은 그 후에 영국에 무적함대의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이들 국가의 쇠락으로 지중해 시대는 막을 내리고, 대서양으로 그 중심이 바뀌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책은 '피 흘리는 정치'인 전쟁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인 '정치'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강대국 사이에서 자신의 존립을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정치와 외교로 풀어나가는 베네치아를 보고 있으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스페인과 투르크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상실한 베네치아의 외교정책 실패를 꼬집는 대사 바르바로의 연설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국가의 안정과 영속은 군사력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외국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평가와 외국에 대한 의연한 태도에 의지할 때도 많은 것입니다.' 강하다고 군사력으로 해결하려 드는 것, 약소국이라고 저자세로만 일관하는 것, 모두 쇠락을 이끄는 지름길인 것이다. 한국의 외교정책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미국의 일방주의, 철저한 복종으로 충성을 다하는 '아름다운 우방국' 한국. 결과는 분명히 좋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읽다보면 픽션이 너무 많아서 재미있기도 하지만, 어디까지가 진실인가?라는 의구심이 들때도 있다. 사료와 회화를 충분히 검토하여 그림 그리듯이 전투장면을 묘사한 것은 높이 평가하고, 재미 또한 있었다. 도시를 직접 걸어다니며 얻은 정보들을 책 안에 담은 것도 매우 높이 평가하지만, 책에 인공 조미료 맛이 너무 나서 오히려 구수한 역사책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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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스섬 공방전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5
시오노 나나미 지음, 최은석 옮김 / 한길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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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해의 진주, 장미꽃 피는 옛 섬 로도스. 연중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기후의 혜택과 달리 이 섬은 끊임 없이 그 주인이 바뀌는 역사를 겪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역사적 유적이 있다. 그 중에서도 성 요한 기사단의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데, '로도스섬 공방전'은 마지막 남은 성 요한 기사단과 투르크간의 전쟁사를 논픽션과 픽션을 섞어서 옛 유적을 발굴하듯이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투르크에 의한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에 십자군의 존재 이유가 퇴색하였다. 독일 기사단은 돌아가고, 성당 기사단은 해체되었으며 마지막으로 남은 성 요한 기사단은 로도스 섬에 정착하게 된다. 백령도에 있는 해병대의 지역적 의미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기사단은 최전방에서 해적질과 의료활동으로 연명하다가 결국에는 대포와 공성전술에 밀려서 항복한다. 기사단의 몰락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역사란 단순히 현상과 사건만을 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의미를 찾아내고 해석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기사단의 몰락은 전쟁의 전술적, 기술적 변화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립형태에 대한 하나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자립적 귀족들이 왕에게 복속되어 영토형 대국으로 가는 과도기의 마지막 몰락 계급이 그들인 것이다. 그들의 이슬람에 대한 투쟁은 새롭게 부상하는 변화와 계급에 대한 투쟁이였으며, 패배로 이어졌다. 십자군 원정 실패와 투르크의 확장이 주는 영향이 매우 컸음이 틀림이 없는 것 같다.

2부는 3부작의 중간 단계라서 그런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다만 흥미로운 부분들은 튜튼 기사단, 성당 기사단, 성 요한 기사단에 대한 정보와 지중해 섬의 역사(몰타, 로도스), 공성 전술, 축성 같은 부가적인 것들이었다. 이 책에서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시오노 나나미의 편향된 시각이 곳곳에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그녀의 저서에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고, 역사는 쓰는 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만, 조금은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읽는 사람의 이성적 판단에 맡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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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플 함락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20
시오노 나나미 지음, 최은석 옮김 / 한길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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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이 투르크에 함락됨으로써 1100년을 지켜온 비잔틴 제국이 쇠망하게 된다. 그리스, 로마, 오리엔트 문명이 어우러져 경제, 문화, 예술, 종교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도시의 최후는 역사의 냉정함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아쉬움을 남긴다. 도전과 응전의 역사가 말해 주듯이 흥망의 운명을 결정 짓는 요소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 전쟁 3부작 중 첫번째로 소개되는 콘스탄티노플 함락이 주는 메세지는 이렇듯 간단하고도 명확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이 전하는 흥미로운 부분은 서구의 분열과 미온적 지원, 투르크의 견제로 인하여 육지의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비잔틴의 시대적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적 혼란과 전쟁 속에서 겪는 개인의 갈등과 노력, 이해관계, 야망에 있다. 제노바와 베네치아 상인들 간의 미묘한 경쟁과 갈등, 그리스 정교회 주교와 로마 카톨릭 주교간의 정치적, 문화적 대립구도, 용병으로써 참여하는 타국의 전쟁에서의 포지션, 지중해를 장악하여 제 2의 전성기를 꿈꾸는 투르크의 술탄 등 개인을 살펴봄으로써 하나의 커다란 역사적 흐름을 이해시키는 구성이 매혹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역사이야기로 만들었다. 픽션과 논픽션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섬세한 고증과 다양한 사료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장식한다. 특히 인상깊은 것은 삼중성벽으로 유명한 요새 콘스탄티노플의 전경 묘사와 제노바, 베네치아 상인들에 대한 세세한 설명, 콘스탄티노플 공성 전술 등은 저자가 들인 노력이 느껴질 정도이다.

승자의 논리, 애국적 민족주의에 의해, 때로는 정치적 술수로 체워져 있는 역사들이 있지만, 이 책은 사람을 담아 그 시대를 이해시킨다. 역사가가 아닌 피부로 경험한 생생한 역사의 장면들을 스크린처럼 펼쳐 놓는다. 시선의 다양함은 보다 진실된 역사의 창을 열어 보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역사적 지식은 현재를 읽는 기본이 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스와 터키의 분쟁, 발칸반도의 민족적, 종교적인 문제들은 이러한 역사에 대한 이해없이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세와 근세를 가르고,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활동 범위를 확장시키는 동기가 된 투르크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문명과 역사를 이해하는데 재미까지 더하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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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과 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3 (양장본)
전경린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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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가 기도를 타고 흘러들어 갈 때의 피비린내 그리고 쓰라림. 흘러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아니기를, 보이지 않게 감추려고 고통의 향이 진동하는 삶 앞에 '여자'는 서 있다. 권위로부터의 해방, 금기로부터의 자유, 운명을 향하여 꽂은 롱기누스의 창은 '여자'의 가슴으로 뿌리를 내리고 죽어간다. 이 아찔한 순간은 감각의 언어에 의해 새겨지고, 정념의 정염으로 타오른다. 거울에 비춰진 자아의 분열이 현실의 이름을 더럽히고, 운명의 질시를 소원하여 가시밭이 되었지만, 벗겨진 발에 고인 피는 한 인간의 영혼을 씻어내리고 고결한 사리로 승화한다.

각 단편들은 아픔을 가진다. 그 아픔은 단편들을 잇게 하는 매개체가 되고, 그것이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여자. 존재가 가지는 의미, 인간으로써 가지는 기본적인 욕망이 서서히 무너졌을 때의 그 고독과 마지막 자존심이 서슬이 퍼런 칼날이 되어 쿡쿡 찌른다. 그리고 빈손의 무게 만큼이나 가볍던 삶들이었지만, 진한 고통의 향의 무게는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 그러나 악몽처럼 집요하게 다가오는 것들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힘은 고통에 바로 중독되어 마법처럼 잊어버리는 것뿐. 그것이 고통의 사랑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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