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는 신앙의 시대이자 위조의 시대였다. 중세인들에게 위조는 죄악이 아니라 믿음을 이해시키는 도구였다. 당시의 위조 방식과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메로빙거 왕조와 관련된 문헌 중 절반, 카를 대제에 관한 원전 서류 가운데 3분의1 정도가 가짜다. 교황의 교서, 수도원의 권리를 입증하는 문서의 상당수도 위조된 것이다. 신화와 유물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날조된 성인의 뼈와 옷조각 등이 만들어지고 거래됐다.
이런 심리는 현대인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현대인들도 중세인들처럼 믿기 위한 도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움베르트 에코는 그 도구를 ‘극사실주의’라고 말한다. 현대인은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모든 것을 똑같이 복제한다. 사람 같은 밀랍인형, 진짜 뺨치는 모조품이 전시된 박물관, 디즈니랜드가 제공하는 꿈의 모사품…. 에코는 현대의 이미지·기호 중심의 삶과 중세적 사고의 간극이 아주 작음을 보여준다.
‘포스트 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에는 ‘새로운 중세’라고 할 수 있는 현대 문화에 관한 에세이가 수록돼 있다. 에코는 세계의 여러 증상을 해부하고 영화와 유행가, 베스트셀러, 전람회 카탈로그 같은 여러 텍스트의 이면에 가려 있는 현실을 살펴본다.
《권력과 언론》(열대림)은 현재의 우리 언론들에 부족한 ‘그 무엇’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책이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대포’로 불리는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 이 책은 이 주간지의 창간인이자 발행인인 루돌프 아우크슈타인의 시사평론과 저명인사와의 대담, 강연, 그리고 슈피겔이 권력과 투쟁해온 역사를 통해 참 언론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준다.
사상의 자유라는 주제를 서양사 속에서 일관되게 추적하고,그 당위성과 사회적 효용에 대한 논증을 시도한 고전적 저작.
리영희 선생은 “군인 독재의 포악한 시대에 나의 지적 활동을 지탱해준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시기적으로 대략 5세기부터 17세기 후반까지, 지리적으로는 인도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뿐 아니라 스페인과 모로코,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꽃을 피운 이슬람 예술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책이다.
이슬람이라고 하면 언뜻 떠오르는 대(大)모스크들의 웅장한 모습, 아라베스크 무늬로 대변되는 기하학적인 장식 문양과 화려한 카펫, 나름대로의 독창적 경지를 창조했던 도자기와 공예술, 채색 사본의 발전과 서예의 발달까지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이슬람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며 '중세의 중동', '아라비안 나이트:자매편' 등의 저서를 펴내기도 한 저자 로버트 어윈에 따르면 현재 이슬람 종교건축 양식에서 한결같이 등장하는 미나레트(minaret.뾰족탑)는 최초의 모스크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초기의 많은 미나레트를 보면 예배시간을 알리려는 용도로 설계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저자는 실제로 모스크와 연관이 없는 미나레트도 있다면서 바다와 사막을 건너는 여행자를 위한 등대나 군사시설인 망루로 사용하거나 이슬람 교도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기념탑으로 건설된 사례도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또 예언자 무하마드의 가르침에 따라 이슬람 초기 수세기 동안 화려한 무덤을 세우는 것이 용인되지 않았지만 10세기 이후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과시하기 위해 장엄한 무덤들을 짓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달초 서거한 사우디 아라비아 파드 국왕의 유해를 화려한 국장절차를 생략하고 일반인들이 묻히는 리야드 시내의 공공묘지에 안장한 것도 이슬람의 초기 정신을 따랐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동서 교역을 잇는 교량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15세기말 비단 두루마리에 중국산 청화백자를 운송하는 장면과 결혼식 풍경을 그려넣은 그림에서는 중국 산수화의 영향이 확인된다.
함께 실린 200여 개의 화려한 도판과 사진, 자료들은 이슬람 미술의 색채를 보다 잘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