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경제사상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자본주의는 정당한가, 그리고 자본주의는 위기인가 등을 탐색케 하는 책이다. 볼테르에서 헤겔, 마르크스, 케인스를 거쳐 하예크까지 총 16명의 사상가를 통해 자본주의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매혹’은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돈과 시장이라는 자본주의적 현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해석됐는지, 그리고 이 현상이 인간의 다른 사회 영역에 미친 파급 효과가 어떠했는지를 먼저 살펴본다. 우리에게 자본주의가 진지한 고찰의 대상이 된 적은 별로 없다.
다만 다른 나라에서처럼 자본주의가 낳은 이기심이나 탐욕·착취 등 인간의 심성은 거부감을 불러일으켰고, 사회악의 근원으로 지탄받기도 했다.
책 속 사상가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자본주의의 매력을 소개하거나 또는 비판한다. 볼테르는 고결한 품성을 가진 상인이 필요하다고 보며, 유스투스 뮈저는 시장이 지역사회나 국가의 문화를 파괴한다고 역설한다. 마르크스는 살과 피를 착취하는 사회라고 비판하고, 매듀 아널드는 문화와 교육의 힘으로 속물주의를 몰아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베버나 지멜, 좀바르트는 합리성을 근간으로 하는 공동체와 개인주의가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책에는 슘페터가 말한 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혁신론과 케인스, 마르쿠제의 복지자본주의와 허위 욕구, 하예크의 신자유주의의 개화까지 방대한 자료가 담겼다.
사상가들은 자본주의와 인간의 심성에 대해 시장 경제가 인간을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게 만들었다고 본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형체를 갖춘 근대적 인간이 종교적 가치에 매달리던 중세적 인간보다는 더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자본주의와 평등의 관계는 민주주의가 평등사상을 전파한 것과는 반대로, 자본주의가 진전됨에 따라 자본주의의 추동력은 소수 창조적 엘리트에서 나온다고 본다. 슘페터는 이들의 동기 부여는 바로 창조와 성취의 기쁨, 자신의 열광과 천재성을 발휘하는 기쁨, 혹은 남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의지라고 본다.
독자들은 내로라하는 경제사상가들의 다채로운 견해 등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이 책은 20년 넘게 악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쳐온 저자(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가 10여년에 걸쳐 집필을 완성한 대작이다. 고대에서 원시 기독교까지 악마의 모습을 담은 ‘데블’과 초기 기독교에 나타난 악마에 관한 ‘사탄’, 중세의 악마인 ‘루시퍼’, 근대 세계의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 등 4권으로 구성돼, 번역본으로는 1,700여쪽이 넘는다. 저자는 책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 신학과 철학, 문학, 미술, 대중문화 등에 이르기까지 악과 악마의 개념을 폭넓게 추적했다. 그야말로 악과 악마에 대한 종합 대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악마의 개념을 가장 크게 확대재생산하는 데 기여한 것은 종교다. 수메르나 이집트의 고대종교, 힌두교, 불교 등에서도 악마의 모습을 찾지만 역시 저자가 속한 서양의 종교인 기독교에서 기인한 악마의 개념에 상당 분량이 할애된다. 중세 서양의 마녀사냥에서도 드러나듯 다른 종교보다 특히 기독교는 악마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최근 우리 축구대표팀의 공식 응원단인 ‘붉은악마’의 명칭에 대해 다른 종교보다 교회가 강하게 반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세 때 극심했던 악마에 대한 공포는 종교개혁, 과학과 이성의 발전이 이뤄지면서 주춤하게 된다. 그러나 악마는 19세기 들어 특권층에 대한 반항의 상징이자 인간의 타락과 어리석음을 야유하는 메타포가 되더니 20세기 이후에는 세계대전과 대량학살 등을 통해 새로운 공포로 인류에게 다가오고 있는 실정이다.
전세계의 지하 곳곳에 숨어있는 TNT 1백40억t 규모의 핵무기도 새로운 악마에 해당된다. 결국 악마는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의 본질이라는 얘기다.
이 책은 우리 주변에 아직도 살아 숨쉬는 헌책방들을 직접 찾아 남긴 순례기다. 2004년 5월부터 2005년 4월까지 1년간 돌아본 60 여곳의 헌책방에서 만난 사람들과 책의 이야기다. 헌책과 그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이들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라고도 할 수 있 겠다.
저자는 900여쪽에 달하는 이 책을 통해 헌책방에서 만나 소중한 친구가 된 700여권의 헌책을 소개했다. 그의 시선은 단행본뿐 아 니라 도록, 잡지 등에까지 미치고, 조선일보 노보 등의 자료 모 음집도 꼼꼼히 살핀다. 그가 이런 책들을 소개한 것은 다른 이에 게 권하고 싶어서가 아니고 그저 헌책을 ‘힘껏 껴안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서이다. 다른 사람은 또 자신 의 방법과 취향대로 헌책을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언론사 서평담당 기자들이 글을 만드는 재주는 있어도 ‘사람다운 이야기와 아름다운 마음으로 보듬고 가꾸는 몸가짐은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저자가 헌책과 헌책방 사람들 의 이야기를 다루는 자세는 그가 기자들에게 요구하는 것과 똑같 다. 책 뒤에 붙은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헌책방 목록은 ‘노작( 努作)’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