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과 정복, 학살, 정변, 기아, 약탈로 점철됐지만 그 사이사이에 환상과 마술적 상상력이 숨쉬는 라틴아메리카의 수 천년 역사-. 그 슬픈 역사를 3부작으로 엮어낸 책이다. 저자는 우루과이 출신의 작가 겸 언론인. 그는 군사쿠데타세력에 의해 추방돼 2차례에 걸친 망명생활을 했다. ‘불의 기억’은 두 번째 망명생활 도중 스페인에서 썼다.
역사를 다룬 서사시라고는 하지만 실상 이 작품은 운문이나 산문 어느 쪽으로 딱 잘라 구분할 수 없다. 또한 역사서도 소설도 증언도 연대기도 아니다. 오히려 이 모든 장르가 혼재된 형식이다. 저자는 무려 1000여종의 참고 자료를 섭렵,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연대 순서대로 1000여개의 에피소드로 잘라서 조각그림 맞추기처럼 재생한다.
작가는 “라틴아메리카의 공식 역사는 세탁소에서 방금 찾아온 제복을 입은 영웅들의 나열에 불과하다”며 “사랑이 경멸에 내몰린 땅 아메리카의 기억을 되찾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한다. 또한 맨 마지막에 “지금 저는 바람의 세기에 더러움과 경이의 땅 아메리카에 태어났다는 것에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긍지를 느끼고 있다”고 썼다.
작가의 글쓰기 방식은 낯설게 느껴질 만큼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이다. 첫 대면의 어색함만 넘어선다면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삶과 역사, 한숨과 울음과 희망이 가슴 깊이 울려 퍼질 것이다.
마야문명의 도시 유적이나 앙코르와트, 거석문화로 유명한 남태평양 이스터섬…. 많은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옛 문명의 웅장함이나 신비감을 만끽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 문화유적 속을 한번 더 헤쳐본다. 이제는 그저 유적으로 남게 된 문명사회의 몰락 원인을 찾아보는 것. ‘문명의 붕괴’는 현대 문명의 위기상황을 조목조목 짚으며, 몰락한 문명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을 전해준다.
780여쪽의 분량, 참고 문헌만도 40여쪽에 이른다. 미국 UCLA 지리학 교수이자 대표적인 석학으로 꼽히는 저자의 공력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퓰리처상 수상작인 ‘총·균·쇠’나 ‘제3의 침팬지’, ‘섹스의 진화’ 등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현대 사회가 교훈으로 삼을 만한 주요 몰락한 문명은 5곳. 마야문명과 이스터섬, 미국 남서부의 원주민사회였던 아나사지 문명, 남동폴리네시아의 핏케언섬과 헨더슨섬, 노르웨이령 그린란드다. 이외에도 하라파문명, 북아메리카의 카호키아, 아프리카의 그레이트짐바브웨 등이 있다. 저자는 이들 문명이 어떻게 비극적 종말을 맞게 됐는 지 동서고금의 자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해낸다.
책은 방대한 분량에도 술술 읽힌다. 각종 자료를 소화해낸 저자의 노력 덕에 낯선 문명들의 역사와 문화, 사회상 등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저자는 현대문명이 살아남기위해 해야할 일들을 드러내놓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붕괴과정을 치밀하게 보여줌으로써 현대문명의 생존 방안을 부각시킨다
‘우리는 서양문화 공동체다(Wir sind das Abendlad)’가 이 책의 원래 제목이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7천년의 서양 역사를 살폈다.
지은이 이바르 리스너는 그 역사를 쓰기 위해, 서양사의 주류를 이루는 큰 강이 아니라 주변을 끼고 도는 샛강에 자리 잡았다. 이 책이 지닌 독특한 매력의 정체다.
이집트보다 메소포타미아에 더 주목하고, 예수가 아닌 바울과 마리아의 삶에 더 귀 기울이고, 알렉산더가 아닌 필리포스에 더 애정을 쏟는 일이 그래서 가능했다. 이런 역사 서술은 때로 묘한 ‘스릴’까지 전한다. 스페인의 황금기를 일군 필리페 2세를 슬쩍 지나쳐 그가 죽인 아들 돈 카를로스 왕자를 말한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는 반면,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이 계몽군주의 또다른 전형으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학창 시절 ‘지겹도록’ 공부한 서양사의 많은 주역들이 이 책에서는 ‘조연’에 불과한 것이다. 등장은 하는데 대사가 몇마디 없다. 나폴레옹, 콜럼버스, 볼테르 등 몇 명의 예외도 있지만, 조연들이 꾸며가는 서양의 샛강을 끝내 지배하지는 못한다. 지은이는 그 샛강이 바로 서양이라는 큰 강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의 베네치아, 혁명의 프랑스를 서술하는 대목은 이 책의 백미다. 그 숱한 주역들이 마치 군무(群舞)를 이루듯 속도감있게 명멸한다. 그리고 다시, 샛강에 앉은 어느 주변 인물의 삶에 주목한다. 간혹 역사에 대한 지은이의 보수적 성향이 묻어나는 대목이 있지만,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접하지 못한 한국 독자들로선 기꺼이 포용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