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캄보디아 서북부 태국과의 국경을 이루는 당렉산맥. 이 당렉산의 절벽 위에 쁘라삿 쁘레아 비히어라는 발음도 어려운 이름으로 불리는 앙코르시대의 사원하나가 있다.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그런데 그 직후 태국이 이 지역에 특수부대 병력을 급파했고 캄보디아 또한 수비병력을 증원해 군사적 대치가 시작되었다. 왜일까?  원인을 굳이 따지고 든다면 이 지역의 복잡한 식민지 역사까지 올라가야 할 것이다. 현재의 가장 큰 원인을 따져보면 

캄보디아의 집권자 훈센은 베트남괴뢰정부의 수반을 지냈던 정통성과 도덕성을 결여한 인물.
그런 그가 2003년 태국의 여배우가 했다는 "캄보디아가 앙코르와트를 훔쳤다"라고 하는 근거도 없는 말에 주저없이 이를 이용한다. 여배우를 공격하고 반태국 정서를 고무시키며 태국 왕의 초상화를 불태우고... 그야말로 조작된 보도를 빌미로 크메르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해 반태국 폭동으로까지 발전시킨 훈센의 책동은 캄보디아인들 사이에 만연한 반베트남, 반훈센정서를 희석시켰다는 평가를 얻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태국이다. 2008년 8월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을때 태국인들을 선동한 세력은 왕인 푸미폰과 군부에 기대고 있는 민주주의 인민연합인 PAD였다. PAD는 엉뚱하게 탁신계의 현 정권을 영토를 빼앗긴 무능하고 파렴치한 정권으로 매도하고 나선 것. 결국 2003년 프놈펜의 반태국 폭동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정권타도의 도구로 재활용하고 나선 것이다. 독재정권 유지에 눈이 먼 훈센과 군부를 포함한 태국 왕정주의자들의 이 터무니없는 대립조장은 어쩌면 동남아시아에서 태국과 캄보디아(캄보디아를 지원하는 베트남까지) 포함시키는 국제적 분쟁으로 비화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태국
"왕과 왕비, 왕실의 후계자 또는 왕실을 비방, 모독하거나 위협하는 자는 3년에서 1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남한의 국가보안법에 버금가는 태국의 군주보안법(태국 형법 112조)
비방, 모독, 위협과 같은 모호한 법률적용어로 자의적 해석을 위한 모든 길을 열고 있는 이 같은 법으로 유지되는 왕실이란 결국 밖에서 보듯 태국왕실이 국민의 자발적 충성이나 존경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반증일터....
일례로 태국 정보산업부는 2008년 무려 205억의 예산을 들여서 왕실에 대해 부적절한 콘텐즈의 태국 유입을 막기 위한 국가적 인터넷 파이어월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아마도 남한의 MB가 여기서 한 수 배운듯....) 

국왕 푸미폰, 군부, 그리고 PAD(민주주의 인민연합)
2006년 9월 총리인 탁신의 외유를 틈타 쿠데타 주도, 권력교체에 성공하였다. PAD는 방콕의 중산층(결국 태국의 상류층) 계급을 기반으로 대대적인 반탁신시위를 주도한 연합조직으로 탁신의 축출과 왕의 개입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며 방콕에 노란셔츠(왕실의 상징색)의 물결을 만들었다. 심지어 이 진영에는 이런 중산층뿐만 아니라 기회주의적인 언론자본가, 또 태국의 386이라 할 70년대 학생운동세력까지 포진하고 있다. 중산층은 그렇다 치고 70년대 학생운동세력(공산주의운동 세력)까지 친국왕 군부쿠데타에 가담한다는 건 참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민중운동이나 사회운동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태국의 지독한 엘리트주의의 전형이랄까? 

탁신 총리 그리고 탁신지지 시위대인 반독재민주연합전선(UDD)
탁신은 전형적인 대자본가이며 정권을 이용해 부정부패를 일삼는 신자유주의자. 반인권의 상징
그럼에도 2006년과 2008년의  PAD에 의한 탁신의 축출이 태국의 진보적 발전을 10년 이상 역주행시켰다고 평가한 이유는 탁신은 태국 최초로 가난한 자들을 배려한 복지정책을 실현한 이중트랙 정책의 장본인이라는 것. '3바트로 병원에'로 상징되는 탁신의 의료보장체제, 농촌을 대상으로 한 무조건부 자금지원, 농촌의 특산물을 개발하고 유통판매할 수 있도록 한 오톱(OTOP)
탁신이 원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태국사회에서 탁신은 천천히라도 앞을 향해 나아간 태국사회의 요구를 어느정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완전히 무산시켜 버린 것이 국왕과  PAD의 쿠데타. 

"그 거리의 끝에 두 명의 악당이 버티고 있다. 두 명의 악당을 모두 처단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역사란 언제 어느 때에도 그런 식으로 충동적으로, 유아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지금 태국이 필요한 것은 악당 중에 늙은 악당을 때려눕히는 일이다. 늙은 악당을 없애지 못한다면 젊은 악당을 때려눕힐 기회 또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미얀마 
미얀마의 군사독재정권은 비슷한 군사독재를 겪어온 우리의 입장에서도 으악 할만큼 말종의 군부독재정권이다. 1985년 싹트기 시작한 민주화시위가 1988년에 이르러 8월 8일의 항쟁으로 발전했을 때 이들은 3천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피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1990년 5월 총선은 민족민주동맹이 압도적 의석수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 대신 당선된 의원들을 투옥하고 민주화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서는 것으로 총선을 약속한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했다 2007년 승려들이 주도한 민주화 시위 역시 유혈진압으로 무산되었으면 군정은 여전히 철권을 행사하고 있다.   

태풍 나르기스가 휩쓸고간 미얀마에서 미얀마 군부가 미국과 유럽의 구호물자를 거부하면서 한때 이 나라는 다시 한 번 비인권국가로 외신을 달구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의 미얀마에서의 인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대로 고쳐 쓰면 그것은 인권이 아니라 '이익'이다. 세계 10위의 천연가스 매장량, 광물과 목재등...거기다 군사적 경제적 가치가 뛰어난 인근의 말라카 해협,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항로를 보장받기 위해서도 서방에게는 미얀마에 친서방국가가 들어서야 한다는 제국주의적 이익도 존재한다.
하지만 미얀마정권은 남한, 태국, 특히 중국 덕분에 미국과 유럽없이도 세계화 시대,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은덕으로 알아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런 미얀마정권에게 미국의 미군함을 통한 구호물자 수송, 일방적인 공중투하방식은 미얀마군부에게는 협박일뿐이다.
이런 미얀마에서 아웅 산 수치와 NLD가 미얀마에 대한 경제봉쇄를 줄기차게 주장하며 그것이 미얀마 정권에 타격을 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판단착오일 뿐이다. 서방의 경제봉쇄는 천연자원에 의존하고 있는 말종의 군정에게 아무런 타격도 미치지 못하고 오직 민중들의 고통만을 배가시키고 있을 뿐이다. 더 심각한 것은 봉쇄로 인해 심화되고 있는 군사적 탄압과 경제적 빈곤, 정보의 폐쇄가 민중적 역량의 조직과 발전에도 또한 장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미얀마 군정의 종식은 미얀마 민중이 스스로를 조직할 수 있을 때 도래할 것이다. 서방의 봉쇄에 대한 NLD의 맹목적 지지는 그 길을 가로막고 있다. 

네팔
2001년 왕정살인극으로 유명해진 네팔.
그리고 2006년 11월 10년간 무장투쟁을 벌이던 네팔공산당(M)이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었고 정부구성에 참여했으며 제헌의회 선거에 참여해 승리했다. 평화협정은 네팔정부군과 인민해방군의 무장해제와 적대행위 금지, 왕정폐지, 공화국으로의 이행, 해방구의 인민정부 해산, 과도헌법과 과도정부의 구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네팔은 그 협정을 이행 중이다.
21세기의 드문 공산주의자인 이들 네팔공산당은 새로운 노선을 실험 중이다. 20세기 공산주의의 파탄은 민주주의 파탄에 따른 필연적인 귀결이며 참된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의 부패를 방지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21세기 민주주의는 바로 그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공산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으로 '다당제' - 선언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 다당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선거에 참여했다.
선거에서 네팔공산당은 일정한 의석을 확보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이제 남은 것은 10년간 그들과 같이 싸우고 그들을 지지해줬던 농민들의 가장 큰 요구 토지개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네팔공산당이 선택한 다당제와 의회민주주의가 이 농민의 토지개혁요구를 어느 정도 성취할 수 있을것인지가 이 당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노선의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을것이다.
새로운 21세기 공산주의의 실현? 아니면 의회민주주의의 함정에 빠져 고사할것인가?
네팔에 눈을 집중시켜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티베트
달라이 라마의 나라???
서구의 맹목적인 달라이 라마 신봉자들의 믿음과 달리 이전의 티베트는 90퍼센트의 인구를 차지했던 농노들을 한줌의 라마승과 봉건귀족(지주)들이 지배하는 끔찍한 봉건적 노예사회였다. 1949년의 중국혁명은 10년만에 티베트를 봉건적 노예제로부터 해방시켰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등장은 티베트인들의 종교와 민족감정을 자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더 나은 세상을 약속했다.
그리고 인도 다람살라의 티베트 망명정부. 1959년 달라이 라마의 망명과 함께 구성된 정부이다. 달라이 라마가 수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귀족세력이 의회와 내각을 차지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의 신권정치을 인정하는 시대착오적 조항들로 채워진 헌법을 갖고 있다. 망명 이후 망명정부는 미국 CIA의 원조아래 국경지방에서의 무장투쟁을 지속했으나 문제는 티베트 국내의 민중들이 여기에 화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과연 중국의 탄압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망명정부를 구성하는 구세력의  봉건적 착취를 티베트의 민중들이 기억해서였을까? 1970년데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를 기점으로 한 해빙무드는 망명정부에게는 악몽이었다. 이 시기부터 달라이 라마는 다른 길을 찾게 된다. 즉 대답없는 티베트가 아니라 서방에서 구원의 손실을 찾기 시작한 것. 이 시기부터 본격화된 달라이 라마의 해외순방이 바로 그것이다.  달라이 라마의 이 작전은 너무나도 크게 성공했다.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신비주의를 고무시키며 달라이라마는 신비주의적 라마교와 샹그리라, 반공, 마하트마 간디의 이미지를 차례로 덮어쓸 수 있게 된 것. 

그렇다면 최근 티베트내에서의 잇단 시위와 유혈사태는 어찌 된 것일까? 유혈사태를 빚은 티베트사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것이 중국정부(공산당)에 대한 중국 인민의 저항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문제를 해외 망명세력과 중국공산당의 대결로 보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오늘 날 티베트의 티베트인들은 현재 중국의 통치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이른바 시장개방 이후 개발의 미명아래 티베트 지역의 풍부한 광물과 가스, 삼림, 수자원 등을 수탈하는 대신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인들에게 돌려준 것은 빈곤과 차별이었다. 고작 4%의 외지인 한족 인구가 95%의 토착 티베트인들을 식민통치를 방불케 할 만큼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변화가 티베트인들의 저항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티베트 민중들의 저항이 어떤 식으로 귀결될 것인가? 망명정부의 달라이라마를 비롯한 구세력들이 어디까지 이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할 것인가? 티베트 민중들의 투쟁의 길은 참으로 어렵고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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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를 얘기하자면 수하르토로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의 공적, 도살자 -공산당의 쿠데타를 빌미로 미국의 지원하에 집권한 이래 32년에 걸쳐 아체, 동티모르, 파푸아, 탄중피낭 등 인도네시아 전역을 학살의 피로 물들였다. 그럼에도 그의 아주 평온한 죽음(세상은 얼마나 불공평한가)앞에 인도네시아인들은 정치적 사면을 얘기한다. 결국 여전히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 패거리들의 나라다. 

인도네시아는 742개 종류의 다른 언어 또는 방언을 사용하는 300여 종족으로 이루어져있다.
네덜란드에서 독립할 당시 수카르노는 '다양성의 통합'이라는 모토 아래 '인도네시아'라는 새로운 국민국가의 건설을 주창했다. 그리고 그 구호는 어느 곳보다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어쩌면 종족과 언어, 문화, 종교, 역사의 차이가 국민국가와 같은 더 큰 단위를 지향하는 통합의 과정에 결정적인 장애물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인도네시아에 아체와 자유파푸아운동처럼 종족 또는 지역간 갈등이 엄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의 근원은 종교, 지역의 차이가 아니라 유전, 천연가스, 금과 구리와 같은 천연자원의 존재와 이 자원을 둘러싼 부정과 부패, 독점적 수탈이다. 수하르토 시절 군부는 다국적 석유 메이저들과 결탁해 아체의 유전과 가스 광산지대에 대한 무분별한 개발에 나섰고 그 경제적 이익을 독식했다. 

오늘의 인도네시아를 보여주는 사건 하나
2001년 2월 중부 칼리만탄의 항구도시인 삼핏에서 이주민인 마두라족에 대한 다약족의 대대적인 무차별 학살이 벌어졌다. 목재산업을 위해 무분별한 벌목이 벌어지면서 다약 원주민들은 숲과 땅을 잃었으며 심한 박탈감에 빠졌다. 마두라족은 이런 벌목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주해온 빈곤층이었고.... 그러면 왜 같은 어려운 처지의 마두라족이 다약족의 표적이 되었을까?
이 책에서 마두라 이주민 학살의 주범은 칼리만탄에서의 지역 패권을 겨냥한 다약 지식인들을 지목한다. 19세기 말 고등교육을 받기 시작한 원주민 출신의 도시 중간계급들은 수하르토의 집권하에서는 군부독재와 야합해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권을 취하는 편을 택했다. 그런데 수하르토의 퇴진 이후 정치적 진공상태에서 이들은 이권에 뛰어들어 불법벌목, 금광개발, 습지 개발 등에 개입했다. 그리고 중앙정부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치권을 강화하기로 했고 그 수단으로 마두라 이주민에 대한 인종학살이 이루어졌다. 2001년 이들은 중앙정부에 마두라 이주민들을 분쟁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그 책임을 물었다. 중앙정부는 무력했고 이들 다약 엘리트 그룹은 그들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했다. 인종주의는 신기루와 같다. 존재하지 않지만 필요한 자들이 엮어 만들어 다중을 현혹시킨다.  

말레이시아
부미푸트라=말레이계 무슬림의 나라.
말레이시아에서 부미푸트라는 교육과 공공기관 취업, 자본취득 등 모든 분야에서 제도적인 우대를 보장받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부미푸트라가 아닌 이들은? 중국계와 인도계, 그리고 이슬람이 아닌 말레이인.
네덜란드 식민주의가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인 이주민들을 원주민들과의 사이에 두고 식민통치의 중간 계급으로 삼은 것과 달리 술탄군주제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은 말레이시아의 영국 제국주의는 중국인과 인도인을 식민통치기구에 중요하게 배치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말레이시아의 공산당은 중국계가 차지하고 있다. 가장 최하에 있는 이들이므로...
영국은 말레이시아의 좌익을 초토화시킨 1957년에야 말레이시아를 독립시켰다. 1946년 창당한 반공우익정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 이른바 암노에게 권력을 안겨준것.
술탄 왕족 출신이 장악한 암노는 말레이계의 주도권과 기득권을 주창했으며 비말레이계의 참여조차 허용하지 않는 일종의 인종정당이었다. 
영국의 식민지 인종분할 지배 정책 - 영국은 공산주의 운동을 중국인의 운동으로 호도함으로써 말레이계의 경계심을 심화시켰다. 또한 술탄 군주제를 존속시키고 암노와 같은 반봉건적 정치세력을 육성해 전면에 내세우고 지배세력화 했지만 우세한 인종주으로, 저항없이 말레이계 대다수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중국계와 인도계는 단지 부르조아계급의 포섭만으로 불만을 희석화 시킬 수 있었다. 결국 인종주의는 말레이시아의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 이데올로기였다.
오랜 기간 전혀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인종주의적 구도에 금이 가기 시작함을 보여주는 사건, 2008년 총선 - 암노의 인종주의 정책, 특히 부미푸트라정책을 반대하는 정당들의 약진을 보여준다. 말레이시아는 과연 인종주의를 청산할 수 있을까? 두고 볼일이다. 

필리핀 
450년 동안의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 치하에서 해방되어 독립을 손에 넣은 지 60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지만 필리핀의 최대 현안은 지금도 토지개혁이다. 지주를 중심으로 한 식민지 시대의 엘리트 계급이 외세에 의존해 여전히 상층계급을 이루고 있으면서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현실, 무력과 공포가 지배하고 있는 현실은 필리핀의 현재와 미래를 불안과 분노 안에 가두고 있다. 필리핀 공산당과 신인민군이 여하튼 40년동안 입지를 상실하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부 루손 신인민군 최고정치위원이라는 60대의 여성은 말한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세상은 단순한 세상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고,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가족들이 몸을 누일 집이 있는 그런 세상이지요. 그게 뭐 대단한가요. 꿈이랄 것도 없지요. 필리핀의 다음 세대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갈겁니다." - 아 정말 이 대단치 않은 소망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 되어버린 세상인지... 
필리핀의 이멜다는 마르코스 사후 1991년 필리핀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그녀의 구두를 모아 박물관을 열었고 대통령선거에서 출마하고 하원의원에 당선도 되었으며 그녀의 아들은 주지사에 딸은 시장이 되었다. 요컨대 전 세계를 열광케 했던 피풀파워이후의 필리핀은 불행히도 변한게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필리핀 정치는 250개 가문이 지배하는 패밀리 비즈니스이다. 가문 대부분은 스페인과 미국 식민지 통치 아래 부를 누려 온 이른바 하시엔테로스, 즉 대지주 가문이다. 베니그노 아키노, 코라손 아키노, 마르코스, 이멜다, 현재의 대통령 아로요까지 이들이 모두 대지주가문 출신이다. 이들 가문은 대통령 자리뿐만 아니라 중앙의회와 지방의회, 관료 군부할 것 없이 모두 이들 가문이 장악하고 있다. 필리핀은 공화국이지만 사실은 귀족 계급이 지배하는 봉건사회와 다를 바 없다.  
인구의 80퍼센트인 6천9백만명이 하루 2달러 이하로 생활해야 하는 빈곤층에 속하며 60퍼센트가 1달러 이하인 절대빈곤층에 속하는 필리핀의 오늘은 이 극악한 봉건적 지배체제의 온존이 빚은 결과이다.  

베트남
지난 10년간 베트남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도이모이(개혁, 개방)정책.
그러나 그 이득은 한줌의 무리들에게 독점되었다. 일당독재와 무력에 기반한 철권통치는 요동조차 허용되지 않았고 민주주의는 세계 최악이다. 그 핵심에 베트남 공산당이 있다.
베트남에서 식민지 독립전쟁 특히 미국과의 전쟁은 베트남 공산당의 정통성의 뿌리였으며 전후 체제유지의 근간이었다. 특히 호치민 사후 그를 대신할만한 인물이 부재한 가운데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했던 집권세력에게 전쟁은 이데올로기적으로 호치민의 우상화와 함께 체제의 정통성을 지킬 중요한 버팀목이었다.
전쟁 이후 중소분쟁의 와중에서 소련의 편에 섰던 베트남은 중국과의 불화와 전쟁, 캄보디아 침공과 등 끊임없는 전쟁으로 각을 세웠다. 그 결과 베트남의 대내적 지배체제는 강화되었지만 전후 사회주의 국가건설은 도외시되었고, 그 대신 독재의 강화와 민주주의의 약화, 경제의 피폐화 과정에서 인민의 고통은 배가되어야 했다. 그리고 오늘날 도이모이는 스탈린주의적 개인 숭배 사회주의 체제의 베트남 인민을 천민적 강탈자본주의의 지옥으로 빠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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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5-18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돌아왔어요... 바람돌이가... ^^
댓글이... 뭥미? ㅠㅜ

바람돌이 2009-05-18 22:16   좋아요 0 | URL
정말 댓글이 뭥미???? ㅎㅎ 돌아오긴 뭘 돌아와요? ㅎㅎ

글샘 2009-05-20 14:02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가 책먹고 있는 그림이요. ㅋ

바람돌이 2009-05-22 23:48   좋아요 0 | URL
아 서재 이미지 바람돌이...
제가 이렇게 아주 가끔이지만 띨하게 못알아 들을때가 있어요. ㅎㅎ

노이에자이트 2009-05-19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록 대동아 전쟁>에서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은 네덜란드에 맞서 독립운동을 하려는 일리안자야의 아체족들과 접촉했다는 것을 읽고 정말 놀랐어요.그 옛날에 그 밀림 속으로...
<일제하의 동남아시아>(한국외국어대 출판부)도 괜찮아요.
다약족과 마두라족의 갈등을 보니 정말 착잡하네요.

바람돌이 2009-05-22 23:50   좋아요 0 | URL
실록 대동아전쟁? 옛날 우리집에 있었던 것 같은데?? 무지 오래된 책 아닌가요? 하여튼 이런 책 인용하는 노이에님보면 정말 너무 대단하다는 감탄밖에는... ^^ 동남아시아에서 일본의 역할은 워낙에 복합적이라 함부로 뭐라 못하겠어요. 역시 공부해야겠죠? ^^

노이에자이트 2009-05-23 00:28   좋아요 0 | URL
그 책 좋아요.10권 짜리.제가 헌책방에서 구한 뒤로 광주에선 안 나오더라구요.
동남아 현대사 공부하려면 결국 영,불,화란 제국주의와 일본제국주의의 충돌을 공부할 수 밖에 없지요.바람돌이 님 정도면 도전해볼 만한 분야입니다.

바람돌이 2009-05-23 01:30   좋아요 0 | URL
노이에님이 권하는 책은 알라딘 검색에 안뜬다는 단점이... ㅎㅎ
칭찬은 감사하지만 제가 괜히 잡식성이겠어요? 공부도 어찌나 얕은지 하나를 지긋이 오래 붙들고 못한답니다. 늘 이것 저것 얕게 얕게 훑고 다니는게 천성인지라.... 아마도 동남아역사도 여기저기서 이렇게 찔끔거리고 보는게 다겠죠..ㅠ.ㅠ
 

해마다 찾아오는 5월 18일 

어떤 식으로 바빠도 이 날만큼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뭐 그렇다고 딱히 기념할 만한 일이나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이 날에 부끄럽지 않을만큼 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소리내어 적어도 잊지는 않고 있음을 알려야 할 듯한 기분이 드는 날입니다. 

1980년의 광주시민 여러분 

올해도 또 이 날이 돌아왔습니다. 

잊지는 못했으나 그럼에도 늘 부끄러운 날입니다.  

제대로 못살아서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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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9-05-18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TV에서 특집 방송한 거 봤는데도 아무 생각없었던 제가 참 바보같군요...

바람돌이 2009-05-18 16:31   좋아요 0 | URL
그러라고 쓴 글이 아니에요
그저 똑같이 부끄럽고 바보같이 느껴지는 제게 쓴 글일뿐입니다.

마노아 2009-05-18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물으니 한 목소리로 5.18이라고 대답하는데 좀 뭉클했어요. 강풀의 26년은 영화 29년으로 개봉한다고 하던데, 5월에 맞추지는 못했나봐요. 꼭 상업성을 위해서라기 보다 좀 더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위해선 이 시즌에 개봉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영화 제목을 확정지었으니 금년 안에는 하겠지만요.

바람돌이 2009-05-18 16:32   좋아요 0 | URL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그런 대답을요. 의외네요. 강풀의 영화 기대해도 될까요?

글샘 2009-05-18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어느 나라나 없는 사람들 살긴 참 힘든 것 같지요.
돈이 많아지면, 마음도 너그럽게 변할 텐데요... 황석영처럼...
저도 오늘을 기억하고 있지만,
이맘때면 늘 명치끝에 체한 것처럼 답답한 기가 느껴지지만...
아, 다시 5.18이란 말밖엔...

바람돌이 2009-05-18 16:40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근데 그 답답함도 사라지면 무엇이 남을까요?

꿈꾸는섬 2009-05-18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잊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아이들이랑 부대끼다보면 또 잊고 또 생각하다가 또 잊게 되더라구요. 우리 모두 잊어선 안되겠죠. 그리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한다는 말 저도 동감요.^^
 

책 좀 그만 사보려고 열심히 노력중
원래 목적은 이미 산 책이나 다 보자란 것인데...
그게 참 요즘은 왜 또 그리 바쁜지....ㅠ.ㅠ
책 읽는 속도는 안 사는 만큼 더뎌지고 새 책의 유혹은 여전하고... 

 

유재현씨 이번엔 미국이다.
지난 2월에 출간된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를 지금 보고 있는데 벌써 다음 책이 나왔다.
유재현씨 책이야 늘 나오면 일단은 무조건 사고 보지만 출간 간격이 왜 이리 빠른거야....ㅠ.ㅠ 

 유재현씨가 보는 미국은 어떤 나라일지 궁금해 죽겠구만....  

 

  

 

 

알라딘 서재에서도 그렇지만 글 잘 쓰는 사람들 참 많다.
읽다보면 부럽긴 하지만 뭐 그렇다고 내가 따라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안든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잡으려고 하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을 신조로 한달까? ㅎㅎ 책 읽는게 재밌지 그 책 읽고 글 쓰는게 재밌지는 않은지라 그토록 많은 글쓰기 책이 나와도 한권도 안 읽고 꿋꿋이 버티고 있다.  

근데 요 책은 소개글읽다가 음악이나 미술은 기초 연습을 그렇게 하면서 글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오만한지에 대해 질타하는 부분을 읽고는 아 꼭 나를 나무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로쟈님 서재에서 업어온책이다.
저자인 강명관씨 책은 어떤 책은 참 좋고 어떤 책은 좀 더 잘 쓸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좀 기복이 있는 분이다. (뭐 내가 느낀 바일뿐이지만...)
사실 열녀의 탄생을 이야기하자면 간단하게 몇줄로도 할 수 있는 얘기지만 그 이야기를 이 엄청난 분량으로 어떻게 다 추적해냈을지가 궁금.... 

얼마전에 요부분을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하면서 아직도 우리사회에 남아있는 성리학적 세계관의 예를 물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답 - 우리 집은요. 명절때 남동생하고 나하고 용돈을 차별해서 줘요. 남동생을 더 많이 줘요. 짜증나 죽겠어요. 아직도 이런 집이 있다는 사실에 나도 경악!! ^^ 

 

 

스페인 내전에 대한 본격적인 책이 나왔다.
어쩌면 이렇게 분량이나 가격이나 묵직해주시는지....^^;; 

스페인의 공화진영이 소련의 지원과 세계여론의 열렬한 지원속에서도 왜 실패했는지를 명확하게 해명해준다는데 진짤까?  

 

 

 

 

유재현씨가 본 쿠바와 하영식씨가 본 쿠바는 어떻게 다를까
오늘의 남미는 굉장히 역동적으로 보이는데 실제 모습은 어떨까
요즘은 천편일률적인 감상문식의 여행기가 판을 치는데 가끔 이런 진지한 여행기가 나와주는게 고맙다.  

남미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기행같은 책은 언제쯤 나올까? 

 

 

 

어쩌다 보니 분량도 가격도 다들 참 무거워주시는 책들이다.
가격은 정말 갈수록 무거워지시누만...
5월은 있는 책 읽는 달 달달 하면서 주문을 외고 있다.
6월에 내가 이 책들 다 산다 또는 안산다에 내기 거실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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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9-05-18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지름돌이님 또 이렇게 ㅠㅠ
유재현씨 책 또 나왔네요. 특히 미국이라니 꼭 사봐야겠어요. 근데 책값???? 우왕 ㅠㅠㅠ
남미인권기행도 묵직하게 담아갑니다.

바람돌이 2009-05-18 01:55   좋아요 0 | URL
키티님 한국들어왔다가 나가실때 책 보따리만 한짐 아닐까요? ^^

하양물감 2009-05-18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들이 묵직하네요...(^^) 이런 책들은 지름신 강령도 괜찮지 않나요...

바람돌이 2009-05-18 10:06   좋아요 0 | URL
문제는 이렇게 묵직한 책을 사놓고 안보는게 한보따리라는거죠. ㅠ.ㅠ

프레이야 2009-05-1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재현의 여행기는 믿음이 간다는 님의 글귀를 본 기억이 나요.
이 책들도 일단 담아둡니다. 정말 묵직해 보여요.^^

바람돌이 2009-05-18 10:07   좋아요 0 | URL
저는 유재현씨의 왕팬인데요. 일단 나오면 무조건 사요. ^^

BRINY 2009-05-18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녀구분없이 첫째라고 늘 동생들보다 명절때 용돈을 많이 챙겼답니다 ^^;;
그나저나 전 요즘 정신줄 놓고다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세권을 어디다 흘리고 온 거 같아요. 앞반 국사샘에게 빌려드렸다 받아서는 어디다 뒀는지 집에도 학교에도 없어서 완전 우울해요

바람돌이 2009-05-18 10:07   좋아요 0 | URL
저도 첫째라고 늘 용돈을 많이 받아 챙긴쪽이랍니다. ㅎㅎ
근데 아직도 나이차이가 아니라 남녀별로 용돈에 차별을 주는 집이 꽤 많더라구요. 아이들 성질날만하죠? ^^

하늘바람 2009-05-18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 공작소는 저도 탐나요. 님은 글 잘쓰시잖아요. 님 글보고 항상 재미있어라 하는데요.

바람돌이 2009-05-18 22:18   좋아요 0 | URL
하하~~ 바로 이런 댓글을 기다렸다고요. ㅎㅎ
잘쓴다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라고 늘 위안을 삼습니다만 그래도 아무리 봐도 잘 쓰는 사람도 있잖아요. ^^

마냐 2009-05-1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그림의 떡이라는 주문을 외어야할 듯

바람돌이 2009-05-18 22:19   좋아요 0 | URL
주문을 왼다고 그게 되면 지름신일까요? ㅎㅎ

아롱이 2009-05-18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쓰기 공작소 사서 읽고 있는데, 소설처럼 술술 읽히네요. 사서 보시면 후회 없을 듯. 전 그 책 읽다보니 글쓰고 싶은 욕망이 차 올라, 리뷰 쓸까 생각 중입니다~

바람돌이 2009-05-18 22:20   좋아요 0 | URL
아 읽다보면 글쓰고 싶은 욕망이 차오른다... 아 정말 이런 부추김이라니말입니다.... ^^

꿈꾸는섬 2009-05-18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지름신이 강령하신듯, 바람돌이님 서재에 왔다가 덩달아 지름신이 내려올까 걱정되네요.ㅎㅎ

바람돌이 2009-05-22 23:50   좋아요 0 | URL
이 동네는 원래 지름신 강령 부추기는 동네잖아요? ^^

세실 2009-05-19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다에 한표~~~
저두 요즘 책 열심히 사고 있습니다. 도서관 가는거 쉽지 않네요.
아 도서관이 그리워라~~~

바람돌이 2009-05-22 23:51   좋아요 0 | URL
아직 안사고 있습니다. 내일 주말에 사려고... 모 카드 회사를 통해 접속하면 주말에 할인율이 커지더라구요. ㅎㅎ

2009-05-19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22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승의 날이다.
이제는 제발 스승의 날 좀 없어져줬으면 좋겠다 내지는 아예 2월로 옮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스승의 날 학교 풍경은 중학교는 여전히 엄마가 챙겨준 선물꾸러미를 들고 오는 아이들이 꽤 있다.
집으로 편지도 보내고 문자도 보내고 해도 별 소용없다. 아니 소용없지는 않게 갯수나 선물의 액수는 좀 줄어드는 편이지만 그래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런 선물을 아침에 받아들때의 느낌은 그냥 좀 난감하다.
모두 돌려보냈으면 좋겠지만 액수로 쳤을 때 1-2만원대의 선물들 또는 직접 만들어보내는 정성이 가득 담긴 것들 - 이걸 돌려보내면 오히려 학부모님들이 많이 속상해 할 것 같은 선물들, 그리고 그 틈에 끼어있는 제법 고가의 선물들
지나친 고가는 물론 돌려보내지만 어정쩡한 선물들은 이래 저래 고민만 쌓이다가 결국 받고야 말게 된다. 결국 학부모에게는 부담의 날이다. 

교실의 풍경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고?
글쎄다.
내가 느끼는 풍경은 그저 아이들은 이 날을 핑계삼아 하루 잘 놀아보자는 행사로 바뀐지 오래다.
개중에는 아닌 아이들도 물론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다고 본다.
내가 만난 교사들 중에 스승의 날 좋아하는 사람 거의 못봤다.
다들 도대체 왜 안 없애냐? 내지는 정 아니면 2월로 옮기자라는 생각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안 바뀌는 이유는 뭔지 참.... 

그런데 오늘 글샘님 글 읽다보니 그래 스승의 날이 좋은 이유도 딱 하나 있기는 하더라...
이 날이 아니면 굳이 연락하지 않을 아이들이 덕분에 생각하고 전화를 하거나 찾아와 소식을 전해준다는 것. (아 제발 직전해에 담임해 떼거지로 반창회하려고 몰려오는 녀석들은 빼자...ㅠ.ㅠ)

오늘 찾아온 아이들
오래전 첫 담임했던 녀석이 이번에 임용고시에 합격해 교사가 되었다며 찾아왔다.
진짜 열악한 지역의 열악한 환경속에서 공부했던 아이들인데.....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교사가 된지 겨우 2개월이 지났는데 많이 힘들단다.
힘들어 죽겠는데 모두들 잘하는데 혼자만 너무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하단다.
신규때는 누구나 그렇다며 내가 신규때의 경험들 -그니까 녀석을 담임했을때의 기억들-을 되살려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래도 선생님하고 이야기 하니까 답답하던게 좀 풀리는 것 같아요라며 웃으며 헤어졌다. 

그리고 또 지금 고2가 된 아이 하나
녀석은 중1때 내가 담임했었는데 정말 1년 내내 힘이 많이 들게 했던 아이였다.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해 왕따였고 그에 대한 피해의식도 정말 많은 아이라 하루에 한 번씩 교무실에 내려와 선생님 누가 괴롭혀요. 누가 나에게 욕했어요하면서 울곤했었다.
약간은 애정결핍도 있었고....
다행히도 1년뒤에는 그런대로 안정을 찾아 친구도 생기고 하더니 더 다행인건 2,3학년때 다정한 선생님들을 만나 배려속에서 많이 안정되어간 아이다.
지금은 꿈도 가지게 되고 옛날에 얘가 언제 왕따였고 소심쟁이였나 싶게 너무 너무 활발하고 자신감도 많아지고 밝은 모습이다.
옛날엔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라며 웃는 녀석이 참 예뻐보인다. 

아 그리고 아직도 진행형인 내 숙제인 녀석
작년에 우리 반이었다가 전학간 녀석과 출석미달로 짤린 녀석이 오늘 같이 찾아왔다.
2년이나 이 녀석 담임을 했지만 결국 내가 끝까지 끌어안을 수는 없었던 결국은 내가 먼저 손을 놓아버리고 만 녀석이다.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는 내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게 만들었던....
오늘도 내가 무슨 얘기를 해줄까?
제발 복학해서 중학교는 졸업하자는 부탁밖에는...
그래도 선생님이라고 찾아와주는 것만으로 고맙다고 할까? 

그래도 이런 아이들덕분에 스승의 날이 잠시 고마울때가 있다.
그니까 없애기보다는 2월말로 옮기면 되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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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5-16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중학교는 아직도 선물도 있고, 떼로 몰려오기도 하는군요.
그래도 고딩들은 객지나간 녀석들도 많고, 군대도 가고... ㅋㅋ 뭣보다 선물이 없어서 좋습니다. 연락오는 애들만 만나면 되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저도 2월 말로 옮기면 좋겠어요.

바람돌이 2009-05-17 22:57   좋아요 0 | URL
정말로 그저 감사를 표한다라는 뜻에도 맞게 2월이 좋겠죠? 학교선생님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던데 왜 안바뀔까요? 누군가 문제제기를 하지 않아서 그런걸까요? 전에 이런 얘기가 심심찮게 나왔던 것 같은데...

순오기 2009-05-18 02:45   좋아요 0 | URL
5.15일은 세종대왕 생일이라고 스승의 날로 정했다니까 2월에 누구 훌륭하신 분 생일이 있나 살펴보세요. 그리고 그분 생일로 변경하자면 들어줄지도...^^ 저도 한해를 마치며 감사하는 게 좋아요.

바람돌이 2009-05-18 10:08   좋아요 0 | URL
세종대왕의 포스에 필적할 만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ㅎㅎ

프레이야 2009-05-16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월말로 옮기는 것, 좋은 아이디어네요.
이번엔 저도 안 하긴 마음 쓰이고 해서 아주 작은 것(빵)으로 몇 분에게
보냈어요. 그저 제 마음인데 감사문자 주시니 오히려 송구스럽더군요.
초등생은 학원선생님들도 여럿 계시니까요..

바람돌이 2009-05-17 22:58   좋아요 0 | URL
저도 알라딘지기님께 구입한 비누로 소박하게 아이들 선생님께 보내긴 했어요. 제가 받는 입장이기도 하고 보내는 입장이기도 하니 그게 참 기분이 그래요. 저는 가져오지 말라 하고 정작 저는 작은거라도 고마운 마음의 표현은 하고 싶고.... 모순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