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진/우맘 > 바람돌이님 지붕이요.



글씨 색깔, 모양, 같은 건 쉽게 바꿀 수 있으니 요청사항 있음 말씀하셔요.^^
그리고 요건 보너스....



서재이미지로 요걸 쓰시는 건 어떨까요? ㅋㅋㅋ 책 먹는 바람돌이...처음 이 이미지를 본 순간, 너무 딱 맞아떨어져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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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5-05-25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쥑입니다요!!!! (지가 해 놓고 쥑인다네...공주병? ^^;;)
 
 전출처 : 히피드림~ > 어느 혁명가의 피로 쓰여진 역사
김원봉연구 - 한국현대인물연구 2 한국현대인물연구 2
염인호 지음 / 창비 / 1993년 1월
평점 :
품절


<알라딘에 있는 김원봉 관련 서적들>

 김약산은 고전적인 유형의 테러리스트로, 냉정하고 두려움을 모르며 개인주의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상해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과는 아주 달랐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 잘 어울려 다녔지만 김약산은 언제나 조용하였고 스포츠를 즐기지도 않았다. 그는 거의 말이 없고 웃는 법이 없었으며 도서관에서 독서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을 좋아했으며 톨스토이의 글도 모조리 읽었다. 그는 여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가씨들은 그를 멀리서 동경하였다. 그가 빼어난 미남이고 로맨틱한 용모를 가졌기 때문이다.

ㅡ 김 산, 님 웨일즈,<아리랑>, p107, 동녘, 1984

 우리 시대 '잊혀진 혁명가'의 한 사람인 약산 김원봉은 일제 시대를 통틀어 항일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그는 1919년 창설된 의열단의 의백이었으며, 1935년 좌, 우가 연합하여 통일민족전선의 표상으로 결성된 민족혁명당의 총서기였다. 후에 중일전쟁이 터지고 1938년 무한에서 창설된 조선의용대의 대장이었으며 의용대를 북상시키고 홀로 임시정부에 남아서 임정군무부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임정에서 주석 김구 다음으로 제 2인자의 자리를 굳혔으며 보수적인 임정개조를 위해 험난하고 아무 소득없는 투쟁을 계속했다. 광복후 환국한 김원봉은 육군사관학교 초대교장을 지냈으며 좌파 계열의 단체가 모두 참여한 민주주의 민족전선의 의장을 맡았다. 또한 의열단과 민족혁명당을 잇는 인민공화당의 총서기를 지냈다. 후에 미군정과 친일파의 득세로 남한의 정국이 혼란한 가운데 그는 남북연석회의참가를 위해 38선을 건넜다. 회담이 끝난 후에도 그는 계속 북한정권에 머물며 국가검열상을 지냈지만 58년 반당종파 사건에 휘말려 예순의 나이에 숙청당했다.(그의 최후는 확실하지 않지만  숙청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상이 매우 개략적으로 살펴본 혁명가 김원봉의 생애이다. 이 책은 92년에 출판된 책이지만 당시에는 매우 진보적이고 독보적인 자료로서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의 생애를 세밀하게 복원해 내었다. 1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읽어도 요즘의 연구성과와 큰 차이가 없지만 지은이인 염인호가 최근에 낸 책인 <조선의용군의 독립운동>과 비교해 읽어보면 그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는 매우 성실한 학자임을 깨닫게 만든다.

 1935년 김원봉의 주도아래 재중국 독립운동자 사이에서 좌우를 아우르는 민족혁명당이 창당되었다. 민혁당은 좌파계열의 모든 단체는 물론 임시정부의 한독당까지 참여한 좌우연합의 상징이었다. 이때 약산은 부지런히 독립운동가들과 접촉하며 서로 대동단결할 것을 끊임없이 강조했다고 한다. 이때 김구는 임정에서 나와서 한국국민당을 만드는 등 독자적인 행보를 걸었다. 이에 약산은 김구를 찾아가 민혁당에 가입할 것을 설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구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김구는 자신의 [백범일지]에서 밝히는 것처럼 공산주의자인 김원봉과 같이 일할 수 없어서 거절했다고 했지만, 실은 중국에서의 판도가 자신이 아닌 김원봉에 의해 주도되는 것에 불쾌감을 느꼈다. 또 김원봉 밑에서 일할 수는 없다는 치졸한 의식이 발로하여 민혁당 가입을 완강히 거부한 것이었다.

독립운동사를 살펴볼때 이것은 저마다 자신이 지도자가 되지 않으면 어떤 단체에도 속하려 들지 않는 한국인들의 치졸한 습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국인들은 두 셋만 모여도 무리를 짓고 당을 이뤄 '정치단체'를 만든다며 중국인들이나 일본인들이 비웃고 비판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실제로도 내가 400페이지가 좀 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온 독립운동, 정치단체는 100개 가까이는 되는 것 같았다. 조선인들은 곧잘 단체를 만들긴 하지만 대개 단명하고 거의 아무일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에 비하면 김원봉이 만든 위 단체들의 활동은 우리의 독립운동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후 김원봉과 김구는 필생의 숙적이자 라이벌이 되었다. 오늘날 김구는 우리에게 대한민국의 법통을 이어준 임정의 주석이자 뛰어난 인격자로 알려져 있지만 여러 저작들을 통해 내가 알게된 김구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면 또한 간과할 수 없이 많은 인물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원류를 임정에서만 찾고 그 밖의 독립운동단체는 모두 부정하는 통에(북한에서도 마찬가지로 김일성 휘하의 만주빨치산부대에서만 독립운동과 인공의 정통성을 찾는다) 그 임정의 지도자였던 김구만을 미화하고 떠받들다 보니 김구의 진면목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이었다.

 어쨌든 김구는 김원봉이 하는 일에는 모두 완강히 반대만 하였고 '민족대동단결'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공산주의와의 모든 종류의 연합을 거부하였다. 한가지 일화를 소개하자면, 1942년 조선의용군의 젊은 천재 '김학무'는 황하를 건너 공산당지구로 들어가 팔로군과 연합한 조선의용군의 정치지도원이었다. 당시 연안 팔로군의 포병학교 교장이자 포병사령관이었던 조선인 무정장군은 중국공산당상부의 밀명을 받아 독자적인 조선인부대 의용군을 중공의 휘하에 두려고 당시 의용군의 실력자였던 최창익과 김두봉 등을 핍박하고 갖은 모략으로 의용군탈취를 기도하고 있었다. 이에 의용군의 사분오열을 걱정한 김학무는 당시 연안에서 중경까지의 만리길을 마다 않고 김구를 찾아갔다. 그는 김구에게 분열에 빠진 의용군을 지도해 줄 것을  부탁하였지만 김구는 그 모든 요구를 묵살했고 결국 재중국의 유일한 조선인부대 조선의용군은 중국공산당의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다.  해방전의 이러한 김구의 태도에 비한다면 해방후 그가 그토록 남북연합을 강조한 것은 이상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왜 좀 더 일찍 태도를 바꾸고 좌파와의 연합을 서두르지 않았는지 그저 답답할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실로 나는 많은 것들을 알게되고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느낀 감정은 '안타까움'이었다. 왜 그 지독하고 위험했던 항일시기를 견뎌내었던 혁명가들이 해방후 같은 민족끼리 싸우는 틈바구니에서 어처구니 없이 죽어갔는지 나는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의열단의 의백으로서 늘 일경의 체포대상 1호였던 김원봉은 27년 간의 피나는 항일기간 동안 단 한번도 일경에 피체된 적이 없었다. (그는 그만큼 신출귀몰하였고 같은 의열단원들끼리도 그가 당장 오늘밤 어디서 자는지를 아무도 알지못했다고) 하지만 그는 해방정국에서 친일파악질경찰 노덕술에게 잡혀서 뺨까지 맞았으며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김구의 사주를 받고 한밤중 들이닥친 김두한에게 큰 곤욕을 치루고 친구를 찾아가 3일 밤낮을 운뒤 머리를 삭발하고 38선을 건너기도 했다. 정통의 극좌파 공산주의자(박헌영, 김산류의)가 아닌 언제나 민족의 화합과 민중의 이익에 헌신한 진보적 민족주의자인 그에게 해방후의 분열상황과 그로 인한 테러위협은 그로 하여금 북행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만든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민족의 큰별과도 같았으며 해방직후 김구나 이승만보다도 대중의 지지를 더 받았던 여운형은 20여 차례의 테러위협 끝에 결국은 한 극우 청년에게 피살되었다. 김구 또한 1932년의 윤봉길의거를 뒤에서 조종했다는 혐의를 받고 악에받친 일경에게 쫓겨다닐때도 그에게 호의를 품고 있던 중국친구들의 도움으로 피신할 수 있었지만 해방정국에서 같은 민족에게 쓸쓸히 살해된 것이다.

 이밖에도 남로당의 김삼룡, 이주하, 이현상, 이관술 같은 탁월한 민중의 지도자들까지도 일제시대의 혹독한 감옥에서도 살아남았건만 해방 후 같은 민족에 의해서 쓸쓸히 죽어갔다. 왜 우리는 화합하지 못하고, 통일 또한 이뤄내지 못했는가... 통일을 위해 죄악적인 전쟁까지 일으켰지만 결국은 각자의 밥그릇을 보존키 위해 상대의 영역을 인정해주는 선에서 더러운 타협을 보고야 말았다. 그 틈바구니에서 언제나 헐벗은 민중을 안타까이 여기고 민족의 좌우연합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김원봉같은 이가 비참한 최후를 맞고야 말았다.

 이 책에서 제시해주는 바에 따라 김원봉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매우 현실적인 정치감각을 가진 실리적인 진보주의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시대 백 아니면 흑, 공산주의 아니면 민족주의 하는 식의 극단적인 구분틀로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 그의 사상이다. 1927년 당시 장개석의 4.12 쿠데타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김원봉은 같은해 8월 1일 강서성 남창봉기에 참여한다. 그 유명한 남창봉기는 하룡이 일으키고 그 하룡부대를 진압하라고 파견된 주덕군이 이에 호응하였지만 결국 공산당 역사상 가장 뼈아픈 학살의 현장이 되고 만다. 이때 하룡군에 있었던 김원봉은 극적으로 또 한번 살아남게 되었지만 그를 따라나선 의열단원들은 거개가 희생당하고 말았다. 이때의 패배에서 김원봉은 남의 나라 혁명에 조선혁명자들이 희생되어서는 안된다는 뼈아픈 진실을 깨달았으며 의열단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진 무거운 중책도 실감하게 된다.

 이어 그는 해방을 맞아 중국을 떠날때까지 중국의 혁명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좌와 우의 한 중간에서 필요에 따라 장개석을 이용하기도 하고 중공을 이용하기도 하며 독립운동을 꾸려나갔다. 이는 같은 시기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을 설득하여 중국공산당 조선인지부에 가입시키던 김산(장지학)의 부끄러운 행보와는 확연히 비교되는 것이었다.( 이제와서 밝혀진 장지학의 행보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입각한 철저한 극좌파의 그것이었으며 실제로 조선의 독립운동에 그가 관여한 바는 매우 미미한 것으로 밝혀졌다) 남의 나라 땅에서 한 명의 사회주의자로 독립운동을 하며 코민테른(소련)이나 중국 공산당과 연계를 갖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김원봉은 그것을 해내었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아닌 민족의 독립과 혁명에의 길을 올곧게 걸어간 비정통의 공산주의자로 남았다.

 나는 얼마전 KBS의 [영상실록]과 [인물현대사]라는 프로에서 낡은 흑백필름 속의 김원봉을 보았다. 1947년의 한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대중연설회였는데 화면 속의 김원봉은 정말 멋있었다. 카메라가 다가오자 자기 연설차례를 기다리며 앉아있던 박헌영과 여운형은 멋적어하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에 바빴다.(그 시절에도 마찬가지로 카메라는 쑥스러운 것이었나 보다) 하지만 말쑥한 양복차림의 김원봉은 담배 연기를 뿜어 올리며 카메라의 렌즈를 큰 눈으로 날카롭게 응시하였다. 그 눈은 근 30여 년을 항일혁명가로 살아온 한 양심적 선각자의 정직한 눈빛 그 자체였다. 세파에 휘둘리지 않고 미국과 소련같은 강대국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민족의 변혁과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애쓰는 정직한 '직업적 혁명가'(그는 언제나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의 고단하지만 좌절하지 않는 눈빛이었다.

 나는 오래도록 그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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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날개 > [퍼온글] [알아서남주자]디카족을 위한 프로그램 10선

NO.1 (Digital Camera Enhancer)
 

 
디카로 어두운 곳에서 사물이나 인물을 찍으면 이미지가 뚜렷하지 않게 나온다.
심하면 점이 박혀있는 것처럼 거칠다. 이것 을 '노이즈' 현상이라고 한다.
디카의 LCD로 보면 노이즈를 알아보기 어렵지만 모니터에서는 바로 나타난다.
디씨 인핸서(DC Enhancer)는 노이즈를 없애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어두운 실내에서 찍을 때 생기는 노이즈를 부드럽게 바꾼 다.
노이즈뿐만 아니라 화이트밸런스, 색조절도 한다.
노이즈가 있는 사진을 불러온 다음 밑에 있는 대화상자 막대를 움직이면 왼 쪽
사진이 오른쪽에 있는 사진으로 바뀐다.
미리보기가 되기 때문에 맘껏 조절해보고 좋은 사진을 골라 저장한다. 

Down
 

NO.2 (ColorCastFX)
 

디카의 단골 사진은 하늘이다. 시원한 하늘을 디카로 찍었다.
"어? 왜 이렇게 틀리지?" 하늘이 칙칙해 보인다. 어두운 부분은 더 그렇다.
디카로 하늘을 찍으면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카메라 회사에 따라 차이가 심하다.
같은 회사의 제품은 그나마 비슷하 게 나온다. 이땐 컬러캐스트 에프엑스(ColorCast FX) 프로그램을 써서 자연스럽게 만들자.
왼쪽 밑에 있는 프리셋에서 내가 가 지고 있는 디카를 선택한다.
오른쪽 사진이 원래색으로 나올 때까지 ColorCast Fix 막대를 움직인다.
Down
 

NO.3 (CleanSkinFX)
 

 
클린스킨은 거친 피부를 부드러운 피부로 바꾸는 프로그램이다.
클릭 한번으로 기미, 주근깨, 잡티가 없는 피부 미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디카로 인물을 찍으면 땀구멍까지 선명하게 나온다.
사진이 잘 나오는 것까지는 좋은데 너무 선명하면 화를 내는 사람 도 생긴다.
특히 피부를 생명처럼 여기는 여자친구는 더욱! 클린스킨은 이런 경우 쓰기 딱 좋다.
왼쪽이 원본이고 오른쪽은 효과 를 준 사진이다.
200만 화소의 이미지에서 효과가 나오는데 약 2분 정도 걸린다.
조금 느린 편이지만 결과는 확실하다.
프로그램 을 쓰기 전에 ColorCast FX를 쓰면 더 좋다.
대화상자에 있는 Enhance Pink에 체크하면 생기있는 피부색을 얻는다.
Down
 

NO.4 (HotPixels Eliminator)
 

 
디카로 밤하늘을 찍으면 별은 아닌데 이상한 점이 나온다.
셔터속도를 길게해서 찍으면 점이 더 많다. 이게 바로 CCD 노이즈다.
CCD 노이즈는 빛을 받아들이는 CCD의 한계 때문에 나타나는데 요즘 나오는
디카는 'Low Noise' 기능과 CMYK 방식으로 빛을 읽어
(일반적으로 RGB 방식으로 읽는다)노이즈를 줄였다고 하지만 가끔씩 나타난다.
 
이럴때 핫픽셀을 쓰면 걱정할 것 없다.
핫픽셀은 검은 하늘에서 보이는 하얀점을 눈깜짝할 사이에 없앤다.
밑에 있는 'Dark Night Shots' 체크창은 파란색 노이즈를 없애는데 좋다.
 
Down
 

NO.5 (BlackFrame NR)
 

 
블랙프레임은 핫픽셀처럼 노이즈를 없애는 프로그램이지만 방식이 좀 다르다.
노이즈가 있는 사진에 까만색 종이를 한장 덧대 어 구멍난 것처럼 보이는
노이즈를 메꾸는 방식이다.
원본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카메라 뚜껑을 닫고 다시 찍는다.
원본 사진과 뚜껑을 닫고 찍은 사진을 프로그램에서 작업한다.
과정은 좀 복잡하지만 노이즈를 없애는 방식중에서 효과가 최고다.
 
Down
 

NO.6 (FilterSIM)


 
동틀 무렵 사진을 찍으면 사진이 파랗게 나온다.
반대로 해질녘에 사진이 노랗다.
우리 눈에는 아침, 낮, 해질 무렵의 빛이 모두 같아 보인다.
하지만 빛은 고유의 색온도가 있다. 색온도에 따라 사진이 다르게 나온다.
디카는 색온도를 화이트밸런스에서 맞출 수 있다.
형광등 아이콘, 텅스텐 아이콘, 태양 아이콘에 각각 맞춰 고르면 사진이 잘 나온다.
일일이 빛에 맞게 아이콘을 바꾸기 귀찮다면 오토 화이트밸런스에 맞추고 찍는다.
 
필터 심(Filter SIM)은 필름 카메라에서 이용하는 필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제품이다.
필름카메라에서 색온도를 맞추려면 렌즈 앞에 필터를 댄다.
필름 카메라에서 색온도를 정확히 맞추려면 몇십장의 필터도 모자란다.
값은 한 장에 2~3만원 정도로 만만치 않다.
하지만 필터 심 프로그램은 코닥에서 나오는 90여개의 필터가 들어 있는 공짜 프로그램다.
 
쉽게 여러 효과를 연출할 수 있다. 특히 사진 색깔을 바꿀 때 그만이다.
프로그램에 있는 필터 번호는 모두 시중에서 파는 코닥 필터의 번호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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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7 (B/Works)


 
컬러사진을 흑백으로 만드는 방법은 많다.
모니터의 RGB 단계를 그레이스케일로 바꾸면 된다.
웬만한 프로그램에는 다 있다. 비웍스(B/Works)는 사진을 단순히 흑백으로 바꾸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사진을 갈색으로 바꾸고 구름을 더욱 짙게 만든다.
하늘 이 마치 그을린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여러가지 효과를 주려면 대화상자를 열어 필터를 선택한다. 필터의 개수는 모두 16 개.
그 중에는 노이즈를 일부러 만드는 필터도 있다.  

밝고 어두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진을 골라 작업하는 게 좋다.
그래야 사진이 드라마틱하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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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8 (RGB Lights)
 

 
광고 사진 작가의 작품을 보면 이걸 어떻게 찍었을까 궁금해진다.
무척 어려울 것 같다.
디카와 RGB 라이트 프로그램 하나로 분 위기 있는 사진에 도전해 보자.
전문 사진가도 부럽지 않은 나만의 사진이 나온다.
 
RGB 라이트를 쓰려면 똑같은 사진이 3장 필요하다.
3장의 사진을 찍을 땐 디카의 제품의 자리가 움직이지 않도록 한다.
조명은 집에 있는 스탠드 하나면 된다.
 
조명 위치만 바뀌 사진을 찍고 RGB 라이트를 열어 처음에 찍은 사진을 불러온다.
그림자의 위치를 보고 2번과 3번 순서를 정한 다.
3장의 사진은 붉은색, 녹색, 파란색으로 바뀐다.
색과 그림자의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래에 있는 Swap 버튼을 눌러 바꾼다.
오른쪽 밑에 있는 Make 버튼을 누르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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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9 (Oscar's JPEG Thumb-Maker)
 

 
동호회 정기 촬영을 갔다오면 찍은 사진의 수가 장난이 아니다.
좋은 사진 골라서 동호회 게시판에 얼른 올려야 하는데...
초보시 절엔 찍은 사진마다 가로, 세로 돌려가며 리사이즈 했다.
마우스와 키보드에 '손품'을 팔며 100장 정도 수정을 하다보면
팔, 어 깨, 목 안쑤신데가 없다.
 
JPEG 섬 메이커(JPEG Thumb-Maker)는 '발품' 팔아 찍은 사진을 리사이즈하려고
다시 고생하는 디카족에게 딱 좋은 프로그 램이다.
폴더 안에 있는 사진을 한꺼번에 리사이즈하는 프로그램이다.
사진 크기를 정해주면 프로그램이 알아서 다 바꿔준다.
단 순히 크기만 바꾸지 않는다.
옵션 상자를 체크하면 JPEG 압축률, 이미지를 선명하게 하는 샤픈(Sharpen),
자동 밝기 조절도 한 꺼번에 한다.
사진을 한꺼번에 바꾸는 기능은 최고다. 비슷비슷한 사진을 바꿀 때 쓰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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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0 (Oscar's File Renamer)
 

 
100장이나 되는 사진의 이름을 바꾸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보통 오른쪽 마우스 버튼 → 이름바꾸기 → 키보드로 이름을 적 는다.
잘하는 사람은 파일을 선택하고 F2키를 눌러 이름을 바꾼다.
한꺼번에 바꿀 수 없을까?
파일 리네이머는 텍스트 에디터처 럼 사진 파일 이름을 순식간에 바꾼다.
먼저 파일 이름을 바꿀 폴더를 선택한다.
리네이머 왼쪽창은 원래 파일 이름이고 오른쪽 창 파일 이름은 바뀔 파일 이름이다.
 
제조사마다 디카로 찍은 사진에는 고유의 파일이름이 있다.
예를 들면 후지는 DSCF XXXX. 산요는 Sany XXXX 라고 표시된다.
이처럼 파일 이름이 반복되기 때문에 편하게 관리하려면 각각 다른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
리네이머에서 제일 눈에 띄 는 것은 매크로 기능이다.
이것은 사용자가 파일명을 바꾸는 과정을 저장한다.
저장한 매크로는 필요할 때 불러와서 다시 쓸 수 있다.
 
Down
 

- 월간 "디카디카"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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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도서관에 들렀다.

빌린 책 반납도 하고 새 책도 빌리고...

우리 동네 도서관은 좀 작은 편이라 도서 신청하면 짧게는 3주 정도 길면 한 두달 정도 걸린다. 그래도 사달라는 책은 다 사준다.(정말 도서관이 이리 좋은 줄 옛날에는 왜 몰랐을까?)

마침 오늘 또 신간이 들어왔다. 홈페이지에는 아무 말도 없었는데.... 이 도서관은 신간 들어오는 날짜를 알 수 가 없다.

그래서 오늘처럼 갔는데 딱 신간 들어오는 날과 마주치면 무지 즐겁다.

책장에 들어있는 책이 모두 다 내것인 것만 같아서...

내가 신청했던 바람의 그림자가 아무도 안 채가고 서가에 곱게 꼽혀있다.

바람의 그림자 1, 2, 미실 이렇게 3권을 빌리도 도서관을 나선다.

음~~ 새 책 냄새

사람에 따라서는 헌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더라마는 나는 무조건 새 책이 좋다.  새 책의 잉크 냄새도 좋다. 그리고 아직 습기가 묻지 않아 눅눅한 냄새가 나지 앟는 것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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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5-25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그런 도서관이 있다니.. 부러워요..;;;

바람돌이 2005-05-28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도 찾아보세요. 제가 가는데가 시립도서관인데 주변에 잘 찾아보면 생각보다 도서관이 꽤 많더라구요.
세금 꼬박꼬박 내면서 국가에서 주는 복지혜택 누리는 것도 별로 없는데 이거라도 챙겨야죠.^^
 

 

681422

오늘 하루 내 서재를 방문하신 분 68분.... 세상에나....

날고 기는 알라디너들이야 이 정도 숫자에 코웃음 치겠지만 나는 입이 딱 벌어진다.

알라딘 오늘 버그 먹은 것 아냐?

숫자 뻥튀기 하는 버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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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5-21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01424

뻥튀기버그가 아니라 숫자로봇이 서재 방문한 겁니다^^


바람돌이 2005-05-21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그럼 혹시 물만두님이 숫자 로봇? ^^;;
갑자기 김새는군요.
아니지 이렇게라도 숫자를 올려주는 숫자로봇에게 감사해야 하나? ^^
즐거운 주말 되세요.

물만두 2005-05-21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나 방문하지 않아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날개 2005-05-21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71441

안녕하세요, 바람돌이님..^^ 제가 방문해서 그런가 봅니다.. 아침부터 왔다갔다 했더니..ㅎㅎ


바람돌이 2005-05-21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날개님 안녕하세요.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여러번 뵌 것 같은데....
이렇게 인사까지...
반가워요. 요즘 알라딘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늘 즐겁답니다.

울보 2005-05-21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01444

안녕하세요,

바람돌이님

우연히 다른 서재에서 님의 이름을 듣고 너무 친숙해서 놀어왔습니다,

인사드리지요,


클리오 2005-05-2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굉장해요.... 저도 이 숫자는 숫자로봇이 방문하지 않는 한 나오지 않는답니다. 오늘 더 올 수도 있겠는데요? ^^ 좋은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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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5-05-22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 아 안녕하세요. 저도 다른 서재에서 늘 님의 글을 보곤 했는데.... 가끔 서재도 들락날락했지요. 사진의 아이가 류 맞지요. 이렇게 먼저 인사를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클리오님/ 숫자로봇의 힘은 막강하군요. 얼떨떨할 따름입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저는요. 글쎄요. 내일 또 시할머님 생신이라 어버이날, 시어머님 생신에 이어 3주 연속 시집행차랍니다. 저희 시집 대식구라 만만찮은 하루가 될 것 같네요.

클리오 2005-05-2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시댁과 멀리 살고, 몇 번 안가는 제가 무지 행복해집니다.. ㅎㅎ

바람돌이 2005-05-22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나 말예요 클리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