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오님 답사는 잘 갔다오신 것 같네요. 많이 힘드시죠...

나이가 들수록 할때는 잘 모르겠는데 막상 다녀오고 나면 회복기가 길더라구요. 특히 전국 모임 답사처럼 강행군일때는....

클리오님이 보내주신 책

 바로 요 책 말예요. 받기는 벌써 받았죠. 하지만 님이 안계신걸 아니 감사 인사도 그냥 갔다오시면 해야지 하고 기다리면서 다 읽어버렸네요. 이 글 쓰고 리뷰도 올려야지요.

 처음에는 그냥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서 몇장 뒤적이다가 요즘의 제 상황과 맞물려서 그냥 순식간에 읽어지던군요. 재밌었어요. 클리오님 아니였으면 지금까지 그냥 읽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을텐데 님 덕분에 지금 저에게 꼭 필요한 책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그나 저나 우린 참 희안한 인연인것 같군요. 두 집 합쳐 4명의 전공이 같은 건 그러려니 했습니다. 이 동네가 워낙 과커플이 많은 동네인지라...(다른 동네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제가 나온 학교의 우리 과는 학생 숫자도 정말 적으면서 과커플을 무더기로 양산했거든요.)

그리고 님과 저의 성씨가 같은 걸 보고 또 참 공통점이 많구나 약간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성씨가 또 아주 희귀성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결정타....  세상에 사는 아파트 동과 호수까지 같다니.... 알라딘에서 이렇게 모든게 같은 두 사람이 만날 확률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요?

우리 혹시 전생에 부부는 아니였을지.... 전생에 사이가 너무 안좋아서 이생에서는 인류의 평화를 위해 떼놓았다거나, 아니면 사이가 너무 좋아 견우 직녀처럼 신의 질투로 떨어졌다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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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5-08-18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아니... 민망하여라... 마태님이 보시면 왜 본인 책을 보냈냐고 황당해하시겠군요... ^^;;; 책 재밌게 잘 보셨죠? 저도 순식간에 읽어버렸거든요... 하기야 님께서는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더욱 많은 생각이 드셨겠어요... 제가 쓴 '인연설'도 정말 신기하죠?? ^^ 전생에 부부였다가 인터넷에서 만난 인연이라... 이왕이면 사이가 좋았던 쪽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더 잘 지내요... 흐흐.... 좋아해주셔서 제가 더욱 좋습니다... ^^

클리오 2005-08-18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번 답사는 다녀오고 나서 전부다 비실거리며 뻗었다고 합니다.. 부산 모임에서는 오세운 샘의 터프함에 "불친절한 세운씨"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고 하고, 홍 모 샘께서는 경국대전을 읽는다는 김모 회장님에게 애정표현을 아주 찐하게 했다는... ^^;

바람돌이 2005-08-19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더운 여름에 서울거리를 활보한다는 것,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다들 뻗는게 당연하지 않을까...홍모샘이라면 누군지 알겠네요. 우리한테는 홍언니라는 명칭으로 주로 불리는...대충 상황이 짐작이 갑니다. 흐흐 ^^ 근데 그 김모회장님은 언제나 느끼는거지만 참 별별 책을 다 읽으십니다. 오세운 샘 역시 기억나네요. 다들 보고싶은 사람들입니다.
 



경천사지 석탑이 복원됐다. 10월에 개관할 국립 중앙박물관 '역사의 길'에 기나긴 복원의 과정을 거쳐서 며칠전 삐까한 복원식과 함께 텔레비전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픔도 많고 어처구니 없는 일도 많았던 탑이다. 근데 이 착잡한 기분은 뭘까?

이 탑은 국보라는 이름에 걸맞게-아니 넘칠정도로 -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운 탑이다. 탑 전체의 균형이나 모습의 아름다움은 말할것도 없고 그 세부조각에 가면 넋을 잃을 정도다.

하지만 이 탑의 건립과정은 그렇게 유쾌하지 않다. 한 때 우리가 한세기 동안이나 몽고의 지배를 받았던 시절, 그 식민문화의 소산이다. 고려의 한 친원파 귀족이 몽고의 실력자에게 아부하기 위해 개인용 사찰을 지어바쳤고, 그것이 경천사라는 절이다. 이후 원나라에서 직접 설계를 하고 조각가들을 데려와 만든 완벽한 수입품이 바로 이 탑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이걸 그대로 본떠서 만든 원각사 10층석탑외에는 계보도 전통도 찾아볼 수없는 유일한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는 밀반출에 의해 일본 도쿄로 옮겨졌었고, 이후 베델 등을 비롯한 사람들의 노력으로 다시 돌려보내졌으나 제자리를 잃고 경복궁 앞뜰에 세워지게 되었다. 섬세한 조각을 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니 이 과정에서 이 탑이 겪은 수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을 수 밖에.... 그 후에도 서울의 공해에 찌들려 탑의 마모가 너무 심해지자 새 박물관 건립계획과 함께 대대적인 복원 작업에 들어가 이제 국립중앙박물과 내부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문화재의 보존이란 참 어려운 문제다. 망가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것이냐? 아니면 보존 자체를 위해 박제화라는 길을 택할 것이냐? 제자리에 서있지 못하는 유물은 - 그 역사적 의미를 상실하고 그냥 미술품으로서만 존재하게 된다. 경천사 석탑 역시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경탄을 오래도록 사게 되겠지만, 이 탑의 역사적 의미를 같이 생각해주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이 탑을 보고 원의 지배와 그에 기생하던 고려귀족들의 횡포에 아파하던 고려의 사람들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은 있을까?

또 하나 이 탑에 얽힌 웃기는 이야기

1995년 김영삼 정부는 역사를 바로세운다는 명목하에 조선 총독부 건물을 다시 회복하지도 못하게 철거해렸다. 그 철거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정권의 이벤트를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근데 웃기는건 처음 중앙박물관 건립지침에 박물관 메인 로비에 이 경천사지 석탑을 놓기로 했다는 거다. 식민역사청산을 위해 박물관으로 쓰이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한 마당에 또다른 식민문화의 소산을 박물관의 얼굴로 사용하겠다? 다행히 내부의 이의제기로 그 계획은 철회되고 지금 역사의 길이라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참 이래 저래 사연많은 탑이다.

   -본문의 내용중  경천사 탑의 건립과정과 중앙박물관 건립계획부분은 김봉렬씨의 책 '시대를 담는 그릇'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바로 이 책인데요. 한국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좋은 책인데 아쉽게도 절판이네요. 저에게는 재간해야할 책 1순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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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넘어 2005-08-13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들 것도 아니면서 버젓이 루브르니 대영이니 하는 박물관에 진열하는 양놈들 보면 그래도 양호하지 않나 싶으면서도 좀 찜찜하죠. 사진이 무척 크군요. 내려받아 가겠습니다.^^*

조선인 2005-08-13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퍼갈께요.
그리고 좋은 책 권해주시면서 절판소식까지 전해주시다니 정말 너무해요. ㅠ.ㅠ

로드무비 2005-08-13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너무하시네요.
(뭐 저는 그냥 조선인님 따라해봤습니다. 멋있어 보여서요.^^)
추천 필!^^

바람돌이 2005-08-13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인촌님/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에서 퍼온것입니다.
조선인님, 로드무비님 / 에고에고~~~ 죄송해요. 이 책이 모두 3권으로 된 시리즈인데 나머지도 다 품절이네요. 진짜 좋은 책인데..

숨은아이 2005-08-1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따라와서 추천...

파란여우 2005-08-13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겨레의 수난사와 연결고리로 맞물린 탑이지요.
수난을 당한 탑이 어디 이거 하나뿐이랍니까...돌아오지 못하고
일본땅 어느 졸부의 정원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도 있지요.
더 가관인 것은 우리정부의 문화재 안목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시멘트에 환장한 박정희 정권이 가장 코메디라고 여겨요

히피드림~ 2005-08-13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님의 친절한 설명 잘 듣고 갑니다. 경천사지 석탑에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네요. 어쨌건 복원작업 자체는 뜻깊은 일인것 같아요. 그래야 앞으로도 소중한 유산을 후대에 물려줄 수 있을테니까요.^^ 사진도 참 멋집니다.

바람돌이 2005-08-13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감사 감사 ^^
파란여우님/저도 박정희 정권의 그 시멘트 사랑과 미색 페인트 사랑은 코메디 맞다고 봐요. 근데 그런 코메디가 낳은 결과가 너무 처참해서 슬플 뿐이죠...그쵸?
punk님 /맞아요 복원은 해야죠. 문화재를 어떻게 둬야 가장 잘 보존하는 것인가 무척 어려운 문제예요. 이렇게 공해가 심하다가는 언젠가 모든 문화재가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는 건 아닌지....
 
 전출처 : 조선인 > 사이버테러를 당했을 경우

가장 중요한 건 증거 확보.
화면 자체를 캡처한 그림파일은 내가 조작했을 가능성이 가장 낮으므로
XXX가 발뺌을 못 하도록 막을 수 있다.
글만이라도 갈무리해두면 도움이 된다.
어제의 경우 매너리스트님께서 둘 다 해두셨다니 무척 고마운 일이다.

아울러 사이버테러를 신고하고자 하오니 개인회원정보나 접속로그 등을 삭제하지 말아달라고
사이트 운영자에게 요청해두어야 한다.
어제처럼 XXX가 회원탈퇴를 해버리면, 시스템이 관련 기록을 자동으로 삭제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지기님께 오즈마님이 신고를 해뒀으니 지기님이 빨리 대처해주시길 바랄 뿐이다.

그 다음으로는 바로 신고.
경찰청도 있고, 검찰청도 있는데,
검찰청의 경우 주로 형사사건이나 국제범죄를 다루므로 경찰청 신고가 훨씬 빠르다.

http://ctrc.go.kr/center/center2.jsp

범죄신고하기를 눌러 실명확인을 한 뒤, 1:1게시판과 비슷한 유형의 신고절차에 따라 신고하면 된다.
이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이메일과 핸드폰번호
신고결과는 일차적으로 이메일로 통보되기 때문에 정확한 이메일 주소를 남기지 않으면 낭패이다.

보통 신고를 하고 나면 2-3일 내에 메일이 온다.
사건접수가 되었으니, 관련 자료가 있으면 첨부해달라는 것.
이 때 미리 남겨둔 증거를 메일로 회신을 보내는 한편,
사이트 운영자의 직통 연락처를 알려주면 일 처리가 빨라진다.

다시 2-3일을 기다리면 메일 또는 전화가 온다.
메일이 오는 건 운이 나쁜 경우일 때가 많다.
XXX가 실명을 쓴 게 아니라 추적이 어렵다,
혹은 IP추적결과 국내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즉 사건조사를 진행하기 어렵다 라는 답변이니, 내가 신고한 사건은 흐지부지되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전화가 오는 경우 XXX의 신변을 파악했으니, 언제 경찰서에 나와서 대질하자는 경우일 때가 많다.
XXX의 경우 모욕죄가 적용되는 민사사건이니 일단 만나보고 고소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익명성을 믿고 지랄하던 XXX는 이 시점이 되면 대개 깨갱하기 시작하여
'내가 술먹고 실수를 했다 내지는 내가 잠깐 이성을 잃었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등등 싹싹 빈다.

웬만해서 이 시점에서 사과를 받는 것으로 끝난다.
물론 고소를 진행할 경우 피해보상금을 받을 수도 있지만 이건 참 길고 지루한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럼 고작 사과나 받자고 신고하는 게 오히려 악몽을 질질 끄는 것일까?
쿨하게 무시하는 게 멋지긴 하다.
하지만 만의 하나  XXX가 나나 내 주변에게 또 사이버테러를 하면?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도록 XXX의 정체를 까발리는 게 대단히 중요하므로 난 적극 신고를 하는 편이다.

어제밤 자다말고 컴퓨터를 켜놓은 게 마음에 걸려 일어났었다.
잠깐 브리핑을 둘러봐야지 했다가 너무 깜짝 놀랐고, 너무 화가 났다.
분이 삭지 않아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고 새벽 4시까지 서성이다 술까지 마셨다.
덕분에 지금도 머리가 아프고, 기분도 최악이다.
다행히 오늘 아침 전화로 들은 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통통 튄다.
언니가 얼른 신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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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히피드림~ > 음악듣기) 인터내셔널가(internationale)

 요즘 김학철의 <항전별곡>을 읽고 있는 중이다. 김학철은 지난 2001년 작고한 연변의 동포작가로서, 항일시기 중국과 연합하여 싸운 조선의용군의 (현존하는) "마지막 분대장" 으로도 국내에 익히 알려져 있는 분이다. 그는 1930년대~ 해방시기까지의 자신의 항일경험과 그 이후, 북한의 김일성 독재에 실망하여 중국으로 망명, 57년의 반우파 투쟁, 66년부터 시작되어 그 이후 10년 간 진행된 문화혁명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현대사의 굴곡과 아픔을 몸소 겪어온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만한 분이다.

 특히 그는 자신과 동료들의 항일투쟁을 증언하는 수 많은 글들을 썼는데 이 <항전별곡>도 그 중 하나이다. 내가 요즘 읽는 부분은 신사군(新4軍,중국공산당의 군대)에 연락차 갔다가 그곳의 환영회에서 중공당원들과 더불어 인터내셔널가를 목청높여 부르고 매우 감격하여 가슴이 벅차올랐다는 에피소드 부분이다. 실제로 김산의 <아리랑>에도 광주봉기에 참여한 김산이 동료들과 인터내셔널가를 불렀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 시절, 국민당의 백색테러때문에 백구(국민당지역)에서는 감히 함부로 부를 수 없었던 노래가 '인터내셔널가' 였다. 김산이나 김학철 모두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상해나 천진, 북경같은 국민당 지구의 대도시 지하공작자들이었으니 잡혀가려고 미치지 않은 이상에는 인터내셔널가를 마음놓고 소리높여 불러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극적으로 국공합작이 성사되고 국민당이 더이상 공산당을 '홍비'라고 부르며 핍박하지 않게 되자, 이들은 소비에트 내에서 마음껏 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갑자기 이 노래가 궁금해진 나는 책을 덮어놓고 노래를 찾아보았다.

http://www.hymn.ru/internationale/index-en.html

 위의 사이트에 접속해 보면 각 나라의 다양한 인터내셔널가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나는 그중 우리나라 것과 북한의 것, 중국의 것을 들어보았다. 가사는 잘 모르겠지만;; 곡이 매우 웅장하고 씩씩한 기상이 넘쳐흐르는 지라, 김학철 선생이 느꼈을 그 감격과 감동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인터내셔널가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만들어졌으며, 러시아혁명의 성공이후, 소련의 국가가 되었다. 요즘도 노동절(5월 1일)이 되면 전세계 노동자들에 의해 애창되는 곡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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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5-08-10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펑크님에게 가서 잘 듣고 왔습니다. 울컥, 자꾸 손이 올라간다는...

바람돌이 2005-08-10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바람님! ^^

돌바람 2005-08-10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락! 하실라고 그러셨죠. 얼른 도망가야쥐 휘리릭~~
 
 전출처 : 느티나무 > 부산의 작은 서점 한국 인문학 강타

   "감격했습니다. 제가 외쳐 온 '(교육)혁명'이 여기서 이뤄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장장 3시간 동안 50여명이 꽉 들어차 콩나물시루처럼 돼버린 공부방에서, 쉬는 시간 한번 없이 강연과 대담을 진행한 강수돌('나부터 교육혁명'의 저자·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지난 6일 부산 수영구 남천동 인디고서원에 딸린 공부방에서 이 서원의 대화·토론 프로그램인 '제8회 주제와 변주' 행사가 열렸다. 장소가 좁아 주최측은 몇달 전부터 참가인원을 50명으로 제한했고, 그것도 초청된 저자의 책을 읽고 한 페이지짜리 독서소감을 제출하지 않으면 입장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번 행사 역시 만원이었고 복도까지 들어찼다.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인 인디고서원은 지난해 8월 문을 열었다. 이번 달로 개원 1년을 맞았다. 전국 최초이자 유일한 청소년 인문학 전용 서점인 인디고서원을 1년 동안 이끌어 온 허아람(34) 대표는 "서원을 연 뒤 많은 일이 있었고 아주 바쁘게 보내고 있다"며 "1주년을 맞는 28일을 전후해 기념행사를 다채롭게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3평 남짓한 인디고서원은 더 이상 부산의 작은 서점이 아니다. 단 1년 만에 전국에 널리 알려진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면모를 잘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가 '주제와 변주'다.

   '주제와 변주'는 뜻깊은 인문·예술 책을 펴낸 저자를 초청해 서원의 회원 등 청중들이 토론형식으로 진행하는 행사. 매달 한번 꼴로 지금까지 8회 열린 이 행사에는 철학자 이왕주(부산대 교수) 김용석(영산대 교수), 미학자이자 시사평론가 진중권, 동물학자 최재천(서울대 교수), 역사학자 한홍구(성공회대 교수), 박정대 시인, 영문학자 장영희(서강대 교수), 그리고 노동경제학자이자 생태·교육운동가인 강수돌(고려대 교수)씨 등이 다녀갔다.

   자기 분야에서 내로라 하는 이들은 인디고서원의 취지를 듣고 바쁜 일정을 쪼개 이 작은 서점을 방문했다. 그런데 막상 행사가 시작되면 청소년 청중과 토론자들의 날카롭고 수준 높은 질문에 혀를 내두르기 일쑤였다. 이왕주 교수는 "청소년들의 독서 수준과 논리, 진지함이 놀랄 만큼 훌륭해 처음에는 당황했다"며 "제도권 교육에서 산산이 부서진 희망을 발견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1주년을 맞은 인디고서원의 행보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제신문>조봉권기자

   부산의 인디고서원의 인터넷주소는 http://www.indigoground.net 입니다. 방금 놀러갔더니 아주 예쁘네요. 남천동에 있다고 하죠? 한 번 가 본다 가 본다 하면서도 아직 못 가본 곳입니다. 저도 이런 꿈이라도 꾸며 살아야겠어요. 멋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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