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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로 소풍간 아이들
'나는야 오월의 주인공' 된
광주살레시오고등학교 1학년5반 아이들
1980년 5월21일 피흘려 쓰러져가는 동지들을 구하려 기독교 병원에서 헌혈하고 나오다가 무자비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함
-박금희의 묘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이것은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21년전 5월 이 도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2001년 5월4일,
묘비 앞에 선 아이들은 숙연하다.
소풍을 5.18묘지로 가자는 의견이 학급회의에서 나왔을 때 처음엔 반대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소풍은 소풍다워야지 하는 '반대파'들을 투표로 '제압하고' 나왔단다.(이 부분에서 저마다 공을 내세운다.)
광주살레시오고등학교 1학년 5반(담임 강인성선생님) 봄소풍이다.
소풍 준비물은 걸레. 묘비와 묘석을 닦자는 거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니다. 기왕 가는 거라면 공부를 철저히 하고 가자 하고 조별로 5.18공부를 하다 보니 절로 기특한 생각이 떠올랐단다. 이 아이들의 5.18묘지 소풍을 돕기 위해 5.18시민봉사단 '오월의 빛' 김효석회장(40)이 '선생님'
으로 나섰다.
![](http://www.jeonlado.com/gallery/files/gallery/public/439_05261_2-c-010504_main9.jpg)
"손옥례는 왼쪽 젖가슴이 도려진 채 잔인하게 죽었습니다"
열아홉살 꽃다운 나이에 죽어간 그이의 무덤 앞을 지나는 발걸음이 무겁다.
당시 전남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의 부인이었다는 최미애의 묘 앞에서 선생님은 얘기할 게 많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문밖에 나섰다가 무참하게 죽어간 그녀는 임신 8개월이었다고, 허공에 대고 쏘았다고 하는 공수부대의 총구가 사실은 그녀의 머리를 정조준하고 있었다고, 그이가 죽었는데 뱃속의 아이는 두 시간이나 살아있었다고.
그 말을 하는 무덤가에 노래 들린다.
'너는 왜 차가운, 차가운 땅에 누워 저기 흐르는 하얀 구름들만 바라보고 있는지...'
당시 대동고 3년이었던 전영진은 내 친구였다고 선생님은 담담하게 말한다. ('오월의 빛' 김효석회장은 5.18 당시 대동고 3년으로 '시민군'이었다.)
그리고 여기 누워있는 당시 신의여고생 박현숙은 얼마나 시신이 많았던지 미처 묻지 못하고 썩어가는 주검들을 보다 못해 친구들과 관을 구하러 갔다가 버스 안에서 죽었다고.
그때 공수부대가 집중사격했던 미니버스에 탔던 11명 중 1명만이 살아남아 그날 주남마을 학살을 증언했다고...
그렇게 한 여학생이 죽어갔다.
아이들은 그 무섭고 끔찍한 날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덤들 사이에 있다.
"내 등에 계엄군이 '총기소지 Y폭도'라고 빨간 매직으로 글씨를 써서 집중구타를 당했어요. 그 때문에 왼쪽무릎을 사용하지 못했고 그로 인한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피해를 입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가 한 사람의 생애와 그 가족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선생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구금중 '내가 죽어 많은 사람들을 살려야겠다'며 화장실 벽에 머리를 부딪쳐 뇌에 이상이 생겨서 마지막까지 뼈아프게 살다간 김영철의 묘앞이다.
감옥에서 42일간 재소자 인권보장을 외치며 단식투쟁을 하다 사망한 박관현의 묘도 선생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죽어간 사람들.
"잊을 수 없는 5월 27일 새벽, 윤상원 열사는 계엄군 진압작전 앞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도청을 지키다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들의 죽음 위로 세월은 흘러갔고 그 무덤 앞에 선 아이들은 뜨거운 함성 뜨거운 맹세 속에 죽어간 청년들의 죽음을 듣고 있다.
방광범은 벗겨진 검정고무신을 주우려다 죽었다고. 계엄군이 강간을 한다는 소리에 분개해 총을 들고 나간 조대부고 3학년 김부열은 결국 목이 없어진 채 발견되었다고.
적대국의 병사보다 잔인했던 계엄군의 총구 앞에 죽어간 10대 청소년이 50여명이라고 선생님이 말한다.
아이들은 수첩에 받아 적는다. 5.18당시 주검 269구 이후 3,4 묘역에 묻힌 부상 구속자까지 360이라는 숫자는 무차별 학살의 증거라고 또박또박 받아적는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질문이 많다.
암매장된 시신을 발굴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있었느냐, 다친 사람은 국가에서 무료로 치료를 해주고 있느냐, 왜 5.18 희생자를 국가유공자로 예우해 주지 않느냐, 학살을 명령한 사람은 어째서 밝혀내지 못하느냐, 미국은 어떤 관련이 있느냐...
'진실을 말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5.18자료전시실 입구, 당시 시신을 덮었던 태극기 위로 그 말이 씌어져 있다.
2001년 5월, 묘지에 소풍나온 아이들은 역사와 정의라는 단어를 그 무덤의 묘비명 속에서 읽고 있다.
'5.18묘지 소풍'의 선생님-김효석 '오월의 빛' 회장
"아이들의 수업태도가 무척 진지했습니다"
'청소년과 함께하는 5.18 바로알기- 나는야 5.18 주인공' 특별수업을 진행한 김효석 '오월의 빛'(5.18 시민봉사단)회장은 아이들이 5.18에 대해 전혀 모를 것이라 예상했었다고 한다. 광주청소년 중 67.6%가 5.18이 일어난 해가 언제인지 모른다는 충격적인 조사결과(99년,광주사회조사연구소)가 나온 바 있다.
"주로 5.18 당시 청소년들의 희생을 이야기한 것은 단지 잔혹한 죽음을 알리자는 게 아닙니다."
김효석회장은 그들의 죽음을 통해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아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싶었다고 한다.
"약자를 탄압하는 것이 불의이며 강자의 폭력에 맞서는 것이 정의라는 깨달음이 왕따문제나 학교폭력에도 당당히 맞설 수 있는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고난중에 하나가 되어 주먹밥을 나누고 한 모금의 물을 나누었던 5.18대동세상 그 나눔과 질서의 공동체에서는 우정과 사랑을 배우고 헌혈이나 어려운 이웃 돕기, 자원봉사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 이 수업의 결과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그렇게 5.18정신을 일상에서 행하고 이어가는 것이 묘지 수업을 한 김효석 회장의 바람이다.
남인희 기자(namu@jeonlado.com)
http://www.jeonlad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