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아침 조례 시간에 한 녀석이 학교엘 아직 안왔다.
순간 가슴이 섬뜩 내려앉는다.
다른 녀석이면 별 걱정 안하겠지만 두번이나 가출한 전력에다 그 가출 기간이 거의 2개월에 달하는지라,
더 이상 결석이 생기면 아예 유급이다.
바로 집으로 전화했더니 다행이 엄마가 받아서 늦잠을 자서 그러니 지금 바로 보내겠단다.
다행히 1교시 마치고 녀석은 왔고....

근데 전날 밤에 저희 집에서 다른 반 친구랑 같이 잤다는데 저만 오고 그 녀석은 아예 학교를 안왔다.
이유를 물어본 즉슨 그 반 담임이 머리를 해결해 오랬는데 그걸 못해서 혼날까봐 무서워서 안왔다는 것.

녀석의 머리 가히 폭탄이다.
나 역시 그녀석의 머리꼴을 좋아하지 않는다.
도대체가 사자머리 + 안 빗어서 부스스 + 머릿결 엉망진창 + 이상한 파마로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그런 머리다.
교사들은 물론이고 아이들조차도 이해가 안간다고 하는 머리다.

그러나 어쩌랴!
녀석은 그런 자신의 머리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있는걸....
머리모양을 바꾸느니 학교를 안다니겠단다.
사실 담임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교사들도 포기상태다.
한쪽은 목숨걸고 머리모양을 사수하겠다는데 좀 보기싫어 거북한 정도인 사람들이 참아야지 어쩌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학생부다.
학생부 역시 교사개인이라면 그냥 인정해주고 말지 싶지만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두발 단속때마다 이녀석은 봐주고 다른 아이들은 잡는다는게 불가능한 것.
그러니 아이는 계속 학교오기 싫다하고, 학생부는 학생부대로 난감하다.

그래서 내 생각은 이런 소모적인 두발단속은 아예 없애버리면 좋지 않을까?
우리 학교의 경우 지난 번에 있던 학생부장 선생님이 전교조 조합원이었던 관계로 아이들의 규제 조항을 참 많이 완화시켜놨었다.
그래서 여학생들의 경우 몇 녀석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두발 단속에 안 걸리는 편.
그냥 파마나 염색의 경우만 단속하는 정도다.
그럼에도 아이들과의 숨바꼭질은 늘 계속된다.
아무리 규제를 풀어줘도 그것마저도 벗어나고자 하는 아이들은 늘 있기마련....

담임으로선 참 할짓이 아니다.
죽어도 아침에 컬 넣어서 예쁘게 하고 싶다는 아이들이랑 티격태격하는 것!
그 속에서 내가 택한 전략은 그렇게 하고싶으면 뒷감당도 알아서 해라라고 내버려두는 것이다.
아이들과 소모적인 감정싸움을 안하고싶은게 제일 크다.
일면 무책임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냥 완전히 두발자율화를 시켜버리면 큰 일이 날까?
파마를 하든 염색을 하든 뭐 그리 큰일이겠나 싶다.
근데 사람 생각은 참 많이 다르다.
학교의 교사들도 반반쯤 된다.
더 이상의 자율화는 안된다는 쪽과 그냥 다 풀어주자는 쪽이...
근데 문제는 안된다는 쪽이 대부분 권력을 가진 쪽이라는게 문제지...
거기다 완전 자율로 하면 학부모들의 반대도 만만찮을테고....

항상 머리모양과 학업분위기를 일치시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머리를 어떻게 하든 공부 안하는 애들은 여전히 안하고,
또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냥 그대로 다닐텐데 말이다.

이것도 내 생각일뿐인걸까?
하지만 한쪽은 그놈의 머리에 목숨을 걸고 있다잖은가?
그러니 덜 절실한 쪽이 그냥 양보하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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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7-09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왜 그리 절실하게 단속해야 하는지 이해 못하겠어요.

세실 2006-07-09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자유롭게 키웠으면 좋겠어요. 단발머리처럼 촌스러운 것보다는 낫잖아요.
초등학교때 자유롭게 내버려 두었다가 중학교 되어서 통제하는 것도 좀 그렇고...
외국애들 자유로운 스타일이 부럽기도 해요.

바람돌이 2006-07-10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절대적인 가치관의 차이예요. 그러다보니 이게 타협이나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문제점이 있죠. 더구나 학교일의 결정권을 거의 다가진 권력자 교장이 있는 한은 민주주의 원칙 개뿔입니다.
세실님/근데요. 그녀석의 폭탄머리보다는 단발머리 촌스러운게 나아요. ^^ 초상권 침해우려에 의해 사진을 못 올림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제가 그녀석 부모라면 아마 그 머리 갖고 난리가 났을겁니다. ^^ 요즘 여학생들은 사실 거의 자율화가 되었다고 봐야죠. 그래서 두발에 대해서도 여학생들의 불만은 거의 없습니다. 이제 남학생들이 문제죠. 두발자율화에 대해 목소리 높이는건 모두 남자애들이예요. 요즘 남자애들 덥수룩한 머리에 구레나룻 기르는게 유행인데 그걸 못하게 하니..... ^^

푸하 2006-07-22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제 생각에는 학생이 '도무지 이해불가능 한' 그 순간을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갈까? 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학교에서는 너무나 쉽게 학생의 개성이 무시되는 것 같아요. 저번에 처음 댓글 다네요... 안녕하시죠? 고민많으신 선생님이라 학생들이 많이 행복할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06-07-22 0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안녕하세요. ^^ 고민은 많지만 아이들이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
학교라는 곳이 군대같은 면이 워낙에 많은 곳이라 그 다양한 아이들의 개성을 다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죠. 하지만 님의 말대로 그 개성이 부딪힐때 어떻게 상대방을 이해하느냐가 중요한데 한쪽은 너무 중요하고 한쪽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때는 부딪힘이 커지는 것 같아요. 별거 아닌걸 왜 못바꾸냐 하는 식으로.... 가치관의 차이죠. 어쨌든 전 이런 경우는 무조건 한살이라도 더 먹은 사람이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 나잇값이죠. ^^

푸하 2006-07-22 0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주제네요...^^;

저는 정말 어려운 주제는 문제를 둘러싼 구성원들 모두를 만족시키는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데에 그 핵심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 교육제도는 '어려운 문제'를 우회하거나 피하거나 '있는 걸 없다고' 하거나 하면서 중앙집권적으로 해결을 해왔던 거 같아요.
제 생각은 이래요. 어려운 문제는 피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질문이 뒤따라야 할 것이거든요. '그건 결국 내 문제다.' 그리고 '네 문제다.' 이런 방법뿐이 없다고 생각해요. 외부의 어떤 전문가가 나타나서 함부로 말 할 수 없는 것이죠. 고민의 결들과 모순이 중첩되는 상황에서 그러한 문제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당사자이거든요. 저는 여기서 학생들 편이에요. 특히 문제아라고 불리는 학생들이요. 좀 이상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우리 교육제도(학교로 대표되는)는 ‘적지 않은 부분’의 폭력적 성향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장치라고 생각해요. 애초에 세상에 해악을 끼치지 않은 아이들이 세상에 나오면서 부딪히는 현실 중 ‘폭력의 영역’은 결코 적지 않거든요. 이렇게 보면 아이들은 날 때부터 원죄를 지닌 ‘피해자’의 측면이 있지요.
이런 배경 하에 학교는 무엇일까? 하고 저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가 많아요. 아이들에게 ‘문제아’라는 타이틀을 주는 학교는 무엇일까? 저는 이렇게 물어봐요. 문제아라고 규정하는 학교 측이 더 문제인 거죠.(일률적으로 말하는 건 횡포인데 제가 지금 그러고 있네요 감안해주세요...^^;) 어쩌면 문제아 학생이 폭력에 더 안주하지 않는 자신의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는 그런 ‘건강한 반항아’가 아닌가? 하고 잠정적으로 생각하거든요.





바람돌이 2006-07-22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건 학생들 맞죠. 그리고 학칙이나 규정 같은걸 학생들 스스로가 만들고 지킬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도 맞긴 한데, 그게 참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 교육이란게 아시잖아요. 성적이란 거 하나로 딱 재단되는거.... 교사도 학부모도 누구도 그런 교육을 시키지 않았으니 요즘 아이들은 자기 얘기를 제대로 할 줄 모릅니다. 아주 사소한 불만 하나도 불평은 많고 뒤에서 욕은 하지만 정작 스스로 풀어나가게 했을때는 아무것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예요.(이건 제 경험담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어디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갑갑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님이 말하는 문제아는 요즘 학교에서 말하는 문제아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가끔 님이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얘기와 주장을 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대부분이 공부잘하고 똑똑한 아이들이죠. (어떤 면에서는 특별한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부 몰지각한 학교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문제아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 아이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대화까지 거부되는건 아니거든요.(인문계 고등학교는 근데 이런면에서는 좀 뒤쳐지죠.)

오히려 지금 중학교나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얘기되는 문제아는 이런 거예요. 일방적인 폭력, 왕따, 삥뜯기, 절도, 가출 - 일반 사회라면 범죄라고 얘기될 수 있는 것들이지요. 이정도 돼야 '문제아'라고 얘기하지 두발이니 교복이니 이런것 갖고는 문제아 명함 달기 힘듭니다. 이런 아이들의 사연이나 상황들을 보면 다른 두발이니 교복이니 갖고 얘기하는 아이들의 고민은 사치스러워 보입니다. 학교와 가정 사회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이 아이들이니까요. 거기다가 학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거의 없습니다. 입장 바꿔서 나라도 들어가기 싫을 것 같은 집에 늘 들어가야만 하는 아이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그냥 아이들을 생각하면 갑갑합니다. 어떤 아이들이라도...

푸하 2006-07-22 0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이들의 '일방적인 폭력, 왕따, 삥뜯기, 절도, 가출'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상처입은 동물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린다는 하지요. (흑백논리를 경계해야하지만) 으르렁거리는 것은 ‘결과’의 측면이고 원인은 ‘상처’라고 생각해요. 저는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는 말에 공감하고 ‘악으로 선을 이룰 수 없다.’ 동의해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범죄와 같은 일을 저지르는 아이들이 날 때부터 그러한 ‘폭력성’을 타고 낳을까? 하는 의문이에요. 저는 아이들은 ‘사회가 감당하기 힘든’폭력성을 갖고 태어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뒤틀린 사회관계’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폭력적 셩향을 발현하기 쉬울 것 같아요. 폭력적 환경에서 민감한 아이들은 그러한 것들을 배우기도 쉽다는 것이죠. 아이들을 성적하나로 재단하는 교육의 ‘실제’목적이 문제의 핵심 같아요. 물론 문제의 본질은 자본주의적으로 구성된 인간관계 아닐까? 하고 의심하고 있어요. 한 4~5개월 전에 도서관 가는 길의 어느 고등학교에 ‘학교폭력 예방 100만인 서명’을 촉구하는 플랜카드를 본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 옆에는 ‘스카이대학 합격자’플랜카드가 붙여져 있었지요. 저는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폭력을 막으려고 서명을 받는 것은 참 웃긴 일 같아요. 서명을 받기보다는 학벌지상주의의 상징인 옆에 그 플랜카드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을 문제아/모범생/평범한 학생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꼴찌도 자신의 존엄을 확인하는’그런 교육이 최선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많이 이상적이지만, 저는 그러한 판단이 더욱 진실과 가깝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위대하지만, 한 가지 잘 못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평가하는 것이에요. 특히 사지선다와 주관식 같은 것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것은 더욱 그렇지요. 물론 ‘현재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논술도 저는 의심해요.(많은 가정에 기초해 상상력을 덧붙여 말씀드리고 있어요. 이건 정말 제가 공부해서 해명하고 싶은 주제이기도 해요.)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은 반대로 사람은 정말 위대한 측면이 있다는 의미에요. 제가 모든 개인이 위대하다고 하는 이유는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과 조금 상관있어요...^^; 아무리 알아도 전혀 모르는 개인의 측면이 있거든요. 그리고 그러한 면들이 현실에 표현되는 것보다 적지 않을 것이라는 심증을 가져요. 요약하면 모든 개인은 일률적인 평가기준보다 너무너무 복잡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학교에서 아이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성적이 대부분이죠. 그럼에도 그 성적은 ‘개인의 지성을 어느 정도는 드러내는 것 아닐까?’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어요. 저는 그러한 의견도 진실의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학교 성적이 분명 능력을 키우는 측면이 있어요. 그 방식이 최선일까? 라는 의혹이 떠나지 않거든요. 현대 사회가 좀 복잡해져서 ‘일정부분 정형화된 지식을 빠르게 학습시키는 것’이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요. 그렇지만 그러한 부분은 아이의 ‘지성적’인 능력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지성을 어떤 개념을 다루는 능력이고 문제를 쟁점화 시키는 능력이라고 보는데요. ‘사색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낼 수 있어요. 중등학교에서 공부를 잘 하면 잘 할수록 대학에서 페이퍼를 쓰는 게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잘 아시겠지만 요새 학부생의 기본은 빠르게 답이 될 것만 공부하고 페이퍼는 모델이 되는 ‘어떤 것’에서 많이 차용하며(대부분 베낀다고 봐야합니다. 부끄럽지만 저도 그랬어요.ㅜㅜ) 마지막 졸업논문도 그냥 무사히 통과하면 되는 그런 것이거든요. (지성에대해서 조금 쓴 거 있어요 http://www.aladdin.co.kr/blog/mypaper/917680) 삼천포로 샜었네요. 다시 돌아오면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은 분명 그들의 ‘주체적 판단’과 결정에 따라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부인할 수 없어요. 학생이 책임 져야할 일이죠.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어요. 과연 사회(학교가 주된 담당자임)가 학생을 ‘어느 방향으로’기르는가? 하는 것이에요. 이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항상 서울대 플랜카드에서 한숨짓고 선생님의 눈빛(차별의 시선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어요.)에서 ‘자신은 누굴까?’하는 의문을 가지며 몇 가지 차별에서 어려워하지요. 그렇다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은 괜찮을까?라는 의문도 들어요. 그렇지도 않을 것 같아요. 제가 전에도 페이퍼에 썼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부를 잘하면 잘 할수록 엘리트이고 그 엘리트는 합리적인 인간이 되어서 자신에게 별 필요 없는 존재에 대해서 함부로 대하거든요. 그렇게 된 이유는 물론 교육 탓이라고 생각하고요.
 
 전출처 : 울보 > 캘리포니아 롤 레시피,,

준비물,

김밥용김. 밥은 김밥용밥으로 해서 양념을 해둔다, 양념이라야 소금이랑 참기름 ,,넣고싶다면 통깨도,,

그리고 아보카도, 없으면 말구, 맛살. 오이. 치즈. 참치(물을 쪽 빼고) 양파. (살짝 물에 담가서 매운맛을 제거)

날치알(마트에 가면 많다. 색깔별로준비해두어도 좋다) 마요네즈조금. 와사지 조금. 일식집 마늘이랑 생강이것도 마트에서 판다,

이렇게 준비해두고,,

우선

1 김에 삼분의 이까지 밥을 편다

2 그리고 뒤집어서 밥을 펴지 않은곳에 위에 준비해둔 갖은 재료를 넣는다,

3 그리고 꼭꼭 눌른다,

4 그렇게 만든 누드김밥을 날치알에 퐁당해서 돌돌돌 \굴린다,

5 이쁘게 썰어서 위에 마요네즈랑 와사비를 얹어서 먹는다.,.

와사비는 취양이므로 꼭 넣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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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 경비실!
그 좁은 공간이 뭐가 그리 신기한지 우리집 아이들은 거길 지나칠때마다 한 번씩 빼꼼 들여다 봅니다.
요즘은 인사도 깍듯이 잘하고요.
경비아저씨도(아이들한테는 할아버지지만) 늘 우리 아이들 귀엽다고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시지요.

근데 며칠전 쓰레기 버리러 갔던 옆지기
쓰레기 버리다가 경비아저씨랑 마주쳤습니다.
근데 우리 쓰레기 중에서 예린이 샌달을 보신 아저씨
잘 붙이면 쓸 수 있는데 왜 버리냐고....
작년에 예린이가 신던건데 밑창이 다 떨어져서 너덜 너덜!
워낙에 떨어진 부위가 넓은지라 그냥 버리려고 한 거거든요.
근데 경비아저씨 하시는 말씀이 자기가 30년동안 신발일 했다고 잘 붙여주겠다고 하셔서 감사히 맡기고 왔습니다.

그래도 아저씨가 고마워서 오늘 저녁에 식사하면서 드시라고 깐풍기랑 입가심용 자두 몇알을 갖다 드렸어요.
그리고 그릇과 함께 오늘 건네받은 신발이예요.



밑창도 예쁘게 붙었고 아세톤으로 닦으면 된다고 얼룩까지 깨끗하게 지워주셔서 완전히 새신발이 되었습니다.
한 3일정도 있다가 신으라하시는군요.

거기다 보너스까지!
아이들이 좋아할거라며 예린이 신발을 정말 멋지게 그려주셨어요.



전문가라는 게 확 느껴지는 신발 디자인!
너무 멋진 그림이죠?

경비 아저씨 고맙습니다.
내일부터는 더 예쁘게 인사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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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6-07-09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져요,,

울보 2006-07-09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 오늘 새벽별을 보며님 따라 다니면서 추천을 누르고 있는 울보입니다,

바람돌이 2006-07-09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울보님 정말 그렇죠! 앞의 상태가 어땠는지를 못보여 주는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저도 지금 새벽별님과 울보님 서재를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요. ^^

바람돌이 2006-07-09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둘의 애정표현은 딴데 가서 하시라구요. 각자 서재에서.... 흥!!!
왜 남의 서재에서 애정행각을.... ^^;;

조선인 2006-07-09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한편으로 감동의 물결이, 또 한편으로는 전문가들도 은퇴 후에 구할 수 있는 직장은 경비실이라는 것에 안타까움이...

세실 2006-07-09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멋진 경비아저씨네요~~~ 와 예린이가 좋아하겠어요~

국경을넘어 2006-07-09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부산이군요. 한때 신발하면 부산. 참 좋은 경비 아저씨를 두셨군요.

바람돌이 2006-07-09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그렇죠! 우리들 역시 더 나이가 들면 다르지 않을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나이가 들더라도 전문성은 살려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뭐 그래요.
세실님/당연히 좋아라 하죠. ^^
폐인촌님/오랫만에 들어오셨네요. 요즘 바쁘시죠? 신발산업은 이젠 여기서는 완전 사양산업이고 거의 없다고 봐야죠. 한때 옛 신발공장들 한 가운데 있는 학교에서도 있었는데 주변 환경 정말 끝내주게 열악했었습니다. 학부모들도 보면 사연한자락씩 없는 사람들이 없었고....
 

3. 성적 판타지, 그 홈파인 공간

*변강쇠가의 의문 - 변강쇠가가 사설만 전하고 판소리는 전하지 않는데 대해 그 내용이 당시 집권양반층의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통설. 하지만 역으로 신재효 전집의 판소리 12마당중 6마당이나 소실되고 전하지 않는 가운데 지독한 외설과 하드코어. 그리고 권선징악의 구도도 취하지 않는 변강쇠가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것도 당시에는 열린마당에서 이것이 '말해졌다'는 것 그것이 진짜 미스터리가 아닐까?

흔희 <변강쇠가>의 외설은 주로 탈중세적인 것으로 해설되곤 했다.
중세는 성담론을 억압했고 성을 자유롭게 떠들어대는건 근대적인 것이라고 설정한것이다.
바로 여기에 근대적 망상과 편견이 작동한다.
근대에 들어 비로소 성이 해방되었다느 것은 중세를 억압과 질고의 암흑기로 설정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중세 후기와 근대는 불연속적 지대이다.
욕망이 억압되었다가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마다 각기 다른 욕망의 배치가 있는것이다.

근대적 성담론은?
성담론에서 인종론 및 인구론적 관점이 새로운 척도로 작동되기 시작.
우수한 인종의 생산. 인구의 번성이 성의 목표로 설정되고 이제 성은 국가의 통제와 관리대상이 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욕망의 불온성을 경계밖으로 축출하고 그자리에는 '민족'이라는 블랙홀이 등장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랑하라, 단 신과 민족의 이름 아래서만!
기독교와 민족주의가 성욕에 대한 '거룩한 억압'을 유도하는 가운데,
자본은 성을 상품화하면서 성욕의 배설구를 다채롭게 마련하되,
원만한 관리를 위해 경찰과 위생제도를 적극 동원하는 식으로,
이렇게 하여 욕망의 이원적 양극화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게 된다.

3.1운동 이후 조선은 유례없는 이상 열기에 휩싸였다.
바로 연애열.
중세에서 가치들은 다원적이다.
연애감정, 충, 효, 사제간이나 도반들 사이의 우정과의리 같은 가치들이 백가쟁명하는 것.
하지만 근대에 들어 연애만이 삶을 떠받치는 지고한 가치가 되었다는 것은 연애 이외의 다른 관계들은 다 별볼일 없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존재를 걸고 욕망을 투여할 만한 다양한 경로들이 막혀버린 것이다.
연애열이 자라난 토양은 신과 민족이다.
연애는 신과 민족에 대한 숭배를 대체한 것이므로 거룩해야 한다.
숭고하기 위해 '욕정'을 배제한다.
육체가 지닌 우발적이고 불온한 힘들을 제어하려 한다는 점에서 애국, 신앙, 연애는 동일한 배치를 이룬다.

4. 연애의 정석, 죽거나 권태롭거나

1920년대의 연애 - 이광수의 <재생>을 통해서
근대적 사랑은 오직 영혼의 순수성으로만 승부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능한 한 육체성의 흔적을 지워버려야 한다.
근대적 '순결'관념의 탄생이다.
결국 이것은 연애의 열정과 성적 욕망을 결혼으로 흡수하기 위한 성정치학의 일환이다.
그런데 이러한 연애가 불멸의 위치로 상승하면 할수록 그것은 삶에서 멀어진다.
이제 연애의 위대함을 증명하는데 죽음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부재와 결여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입증한다는 점에서도 연애는 신과 민족이라는 기호와 '구조적 동형성'을 이룬다.

1930년대의 연애 -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를 통해서
1930년대 카프가 결성되면서 욕망은 혁명을 중심으로 재조직된다.
이제 연애는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으로 퇴각해버린다.
그럼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외부와 단절된 자기만의 방, 자의식 속에 갇혀 버린다.
자의식이란 인간이 자연과 단절되는 그 순간 태동했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의 타자화'는 가장 먼저 인간들 사이의 견고한 장벽을 낳는다.
단절은 고독을 낳고, 고독은 자의식을 낳고, 자의식은 다시 권태를 낳고 이 악순환의 고리가 바로 근대 도시인의 정체성이다.

멜로의 순정과 씁쓸한 권태, 근대적 연애는 이 두가지 축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1990년대 이후의 상황은 변한 것 같지만 멜로, 권태, 그리고 현대의 변태적인 섹스, 포르노의 범람 등등은 공통점을 가진다.
성적 욕망이 조금도 삶속으로 진입하지 않고 있다는 것.
즉 성이 삶의 능동적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향유되고 있는 것이다.
포르노가 판을 칠수록 멜로 또한 고양된다.
이 죽음 충동으로 가득찬 '홈파인 공간' 자체를 벗어나지 않는 한 출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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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침 도서관 가는 날이라 변강쇠전을 찾아봤지요. 검색해보니 딱 하나 나오더라구요.

1991년판 명문당에서 나온 이름도 지루할 것 같은 <한국고전문학대계 1권>



책조차도 고풍스럽지 않나요?

근데 안은 더 고풍스럽답니다.



공포의 2단 편집!!!

저 깨알같은 글씨하며 에고 에고....
우리나라 고전들이 아무리 이해하기 쉽게 말을 바꾸고 어쩌고 해도 저 고어들때문에 독해가 상당히 어렵더라구요.
바로 바로 잘 안와닿아요.
그런데 마음의 부담을 듬뿍 넣어주는 저 편집까지.... ㅠ.ㅠ

아마도 이 책에서 변강쇠전 외에는 다른 건 안읽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이야기들은 이 책 말고도 보기 좋게 편집된 책이 많으니까요.

어쨌든 목표로 한 책을 찾아냈으니 즐거운 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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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7-04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발견이셨겠어요.. 공포의 2단 세로 편집..^^ 저런 책 예전에 많이 있었죠. 제가 중학교 때 세계문학, 한국문학전집 저런 편집이었어요..ㅋㅋ

바람돌이 2006-07-04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옛적에 중고등학교 다닐때 저런 책 꽤 있었죠. 그때는 이렇게 공포스럽지 않았는데 다시 보니 공포스러워요. ^^

아영엄마 2006-07-04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루지기 타령이랑 변강쇠전이랑 다른건가요? 저 책보니 예전에 한국고전문학전집이라고 사서 본 책이 생각나네요. 공포의 2단 세로 편집...^^;; (친정에 그 책이 남아 있으려나..)

세실 2006-07-04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헛..헷깔려서 읽기 힘드시겠어요~~~ 아직도 자료실에 있군요.
우린 서고에 보관되어 있는데 ㅋㅋㅋ

바람돌이 2006-07-05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제가 알기로는 같은걸라고 알고 있는데요. 정말 예전에는 저런 책도 많았죠. 경제적인 면에서만 본다면 저런 편집도 괜찮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읽기가... ^^
세실님/도서관에서는 오래된 책들을 따로 보관하나보군요. 다행히 여기 도서관에서는 찾았는데... 예전에는 저런 책도 잘 읽었는데 사람의 습관이란건 참 무섭네요. ^^

미미달 2006-07-05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변강쇠전 꼭 읽으셔야 할 일이 있으신가봐요. +ㅁ+
왠지 내용 무지 강렬할듯 +ㅁ+ ㅋㄷㅋㄷ *^^*

바람돌이 2006-07-05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미달님 그건 아니고요. 그냥 다른 책을 보다 변강쇠전의 내용이 나왔는데 거기에 인용된 표현들이 정말 끝내주는지라 갑자기 보고싶어진거예요. ^^대충의 이야기만 알지 제대로 본적이 한 번도 없어서요. ^^

조선인 2006-07-05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포의 2단 편집으로 읽어도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야합디다. ㅎㅎㅎ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