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따뜻한 오후의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차들은 온갖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이웃집들을볼 수 있었는데, 그 집들은 마치 집안에 있는 질병 때문인 것처럼 언제나 블라인드를 드리우고 있었다. 실제로 집 안에는 질병이 있었다. 소모된 삶이라는 질병이. - P20

붐비는 터미널과 도시와 비를 거쳐 오는 동안 랜드는 막연하.
지만 어떤 황홀한 희망과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는 긴 여행에 맥이 빠져 병든 닭처럼 졸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구름이 갈라지며밝은 빛 속에서 그 모든 것의 상징이 우뚝 드러났다. 심장이 뛰었다. 마치 그가 도망치고 있는 것처럼,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이상하고도 강렬한 방식으로 뛰고 있었다. - P45

겨울이 지나갔다. 그 시절이 어땠는지 기억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학창 시절의 첫해처럼 희미해졌다. 그가 외로웠다는 것을, 빛과 온기를 부러워하며 그 일부가 되고 싶었으면서도 그러지 않기로 결심하고 사회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는것을 그의 얼굴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그의 얼굴에는 이 가운데 어떤 것도 드러나지 않았다.
위에서는 에귀유가 반짝거렸다. 산은 잠들고 빙하는 눈 속에숨어 있었다. - P81

그리하여 가장 위험한 시도가, 비록 죽음을 초래하게 된다 할지라도, 그 정당성에 의해 아름다워진다. 암벽에는 약점이 있고 결함이 있다. 그 약점과 결함으로 암벽의 매끄러움을 극복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것이정상에 이르는 길이다. - P88

그는 자신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할 것인지 같은 일들이 설명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렇게 되면 뭔가가사라져버리기 때문이었다. 그가 많은 대가를 치르고 얻으려 한지극히 가치 있는 단 한 가지는 방해받지 않고 혼자 나아가는 것이었다. - P121

나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네. 그는 캐벗에게 편지를 썼다. 난 죽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잃었어. 요즘은 혼자서만 산에 오르네. 트리올레 북벽과 베르트의 쿠트리에를 올랐지. 환상적이었어. 말로 다 설명할순 없네. 미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자넨 어떻게 지내? - P174

"당신은 산을 사랑하는군요……." 그들이 말했다.
"산이 아닙니다." 그가 대답했다. "아니에요, 산을 사랑하는 게아닙니다. 나는 삶을 사랑합니다." - P195

그는 샤모니를 생각했다. 맑은 아침 공기와 그곳 역에 서 있는 모습을 등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와 어깨에 둘러맨 등반장비에서 나는, 절거덕거리는 쇠붙이의 엄숙하고 믿음직한 소리를 떠올렸다. 여기서는 고난이 불행이지만, 거기서는 고난이 인생의 풍취였다. - P214

인간의 얼굴은 항상 변하지만 완전히 완벽해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 모습을 갖춘 것이다. 그것은 불변의 얼굴이다. 그날 랜드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을 때 그런 순간이 그에게 찾아들었다. 그는 서른 살이었고-사실은 서른한살이었다-그의 용기는 꺾이지 않았다. 그의 머리 위에 워커가 있었다. - P227

발아래 긴 직선거리가 그의 발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갑자기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은 먼지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슴이 휑했다. 연신 침을 삼켰다. 그는 돌아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위는 용서가 없었다. 만약 집중력을 잃는다면, 의지를 잃는다면, 바위는 그가 살아남아 존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어제와 같은 바람이불었다. 그는 혼잣말을 했다. 자, 힘을내. 캐벗이라면 힘을 냈을것이다. 르슈카 식당의 그 사내벽에 붙은 사진 속 인물인 예전의 랜드 자신을 말함도 그랬을 것이다. - P230

그는 가능한 한 멀리까지 나아갔고, 최대한 높이 올라갔다. 더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았다. 무릎이 떨리기 시작했고, 떨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미끄러지기싫어서 계속 필사적으로 홀드를 붙들고 싶었으나 그 대신 양팔을 활짝 뻗고 얼굴은 하늘을 향한 채 성자처럼 떨어졌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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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인 ‘젠더 갈등‘과 ‘세대갈등‘도 상당 부분 ‘공감의 게임‘이다. 흥미로운 건 이 갈등들엔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에 소통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소통 없는 ‘젠더 갈등‘과 ‘세대갈등‘에 소통의 싹이나마 틔우기위해서라도 다정한 편파성보다는 냉정한 공정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달리 말하자면, 다정한 편파성을 양산해내는부족주의에서 탈출하는 게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 P9

조고은이 지적한 두 가지 오해는 어떻게 볼 것인가?
첫 번째 오해와 관련, 나는 한국에선 페미니즘 운동이 너무과도한 게 아니라 운동이 겨냥하는 타깃이 정확하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작 싸워야 할 대상(페미니스트 코스프레‘만 하면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기성세대 남성)은 놓아두면서, 이대남에게 부담이 집중되는 변화만 추구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대남이 그런 전략에 반발하는 걸가리켜 백래시라고 부를 수 있을까?
두 번째 오해와 관련, 나는 페미니스트들이 백래시로보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에선 조고은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그 주목의 목적과 내용은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모색 역시 투쟁이다.
왜 투쟁을 타도 위주로만 여겨야 한단 말인가? - P33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일자리 영역에선 사회전 분야에 걸쳐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여성 차별이 심해진다. 은밀하게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차별인지라 정면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차별해소 방안이 장기적·포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세대간 불공정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 차별로 인한 수혜는 기성세대 남성이 보고 있지만, 그 차별을 해소하겠다며 이대남에게 집중된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게 이대남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있는 것이다. - P34

사실 그간 이대남 관련 논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전체 성별 임금 격차의 책임은 이대남이 아닌 기성세대에게따져 물어야 할 것이었다. 여성의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 나이가 들면서 벌어지는 성별 임금 격차의 요인이기 때문이다.  - P50

상징 투쟁과 진영 전쟁은 모든 문제를 흑백 이분법으로 환원* 시킨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무엇이건 상징이 되면 타협이없는 ‘올인 게임‘이 되고 만다. 상징은 늘 편 가르기에 따라
‘성역화‘되거나 ‘악마‘ 되기에 이런 상징투쟁에 타협은없다. - P62

"남성을 규탄하는 여성의 목소리‘는 선대 여성들이억압받아왔다는 역사적 맥락에 의해 언제나 정당했고, ‘이에 반박하는 젊은 남성의 목소리‘는 세상을 어지럽히려는불순함으로 언제나 매도당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선대의 잘못들까지 모두 뒤집어씌운 채 그렇게 입을 다물고조용히 있을 것을 강요했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려 하는 이들은 언제나 여혐주의자, 복고주의자, 극우, 대안우파 따위의 불편한 꼬리표를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오늘날2030 남성들의 분노는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물리적, 물질적인 문제이기 이전에 정신, 문화, 관념적인 억압의 문제입니다."1" - P63

젠더 갈등에서 상징 투쟁이 자주 일어나는 것에 대해 두렵게 생각해야 한다. 상징투쟁은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이미 정해진 모범 답안에서 후퇴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 P74

"20대 남성들은 성평등과 페미니즘을 다른 개념이라고 봐요. 이대남이 생각하는 성평등은 ‘육아? 우리도 할게‘, ‘경력 단절? 보상해야지‘ 이런 식으로 과거에 여성만지고 있던 의무나 페널티를 완화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게 현재 여성들에게 여성 가산점, 여성할당제와 같은 ‘결과의 평등‘을 제공하자는 건 아니에요." - P91

구세대의 관점에서 볼 때엔 1990년대생은 신인류다. 페미니즘을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다르다.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구세대에게 페미니즘은 무조건 지지해주어야 할 당위였다. 여기서 주의해야 한다. ‘무조건 지지해주어야 할 당위‘라는 건 형식적인 시혜 수준의 제스처일뿐, 그것은 실천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는 점이다. 즉, 공적영역에선 남성 페미니스트인 척하지만, 사적 영역에선 전혀 다른 인간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미투 운동‘에서 드러난, 수많은 진보주의자의 성폭력 작태를 통해 질리도록 입증된 사실이다. - P92

반면 1990년대생에겐 그런 이중성이나 위선이 없다.
구세대는 생활은 반페미니즘을 실천하면서 머리로만 페미니즘을 긍정하는 반면, 1990년대생은 출생 이후 생활이곧 페미니즘 그 자체였다. 2008년과 2018년의 통계청 조사 결과를 비교해보자. 2008년엔 가사 분담에 대한 견해를 묻는 항목에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응답이 20대남성은 44.0퍼센트, 20대 여성은 61.3퍼센트로 나타났다. 2018년엔 어떻게 달라졌는가? 놀랍게도, 20대 남성은80.0퍼센트, 20대 여성은 83.0 퍼센트였다.  - P93

1990년대생 남성의 반페미니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자신이 남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과거 세대의 과오에 대해 연대책임을 묻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데, 페미니즘은 ‘남자 대 여자‘라고 하는 전통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다. - P95

맞다. 우리는 ‘관념화된 집단‘으로서 정체성 정치를추구함으로써 사실상 집단 간 증오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는 기존의소통방식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관념화된 집단‘ 이전에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야 한다. 어떻게? 시민단체를 포함해 공익을 위해 일하는 단체나 기관들이 바로 그런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 P124

작가 임명묵은 개딸 현상을 아이돌 팬덤의 문법이 정치 팬덤에 전면 이식된 것으로 보았는데, 이 진단이 의미심장하다. 아이돌 팬덤의 주요 행동강령은 ‘절대적 비타협주의‘이기 때문이다. 오직 오빠를 위하는 일에 타협을 해야 할 게 무엇이 있겠는가? 개딸은 오직 이재명을 지켜야한다는 이유로 검찰 개혁을 외쳤다. 검찰 개혁의 여러 방법론 가운데 ‘절대적 비타협주의‘를 내세우는 민주당 강경파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와 그 리더인 최강욱을 위해서라면 페미니즘에 등을 돌리고 그 영웅인 박지현을 내쫓아야한다는 게 개딸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 P137

문제는 이런 현실주의 페미니즘은 인권운동으로서보편적인 설득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일 게다. 개딸 현상이
‘피해 호소인‘ 사건처럼 ‘정치권력 우선주의‘인지 아니면아이돌 팬덤의 변형일 뿐인지 아직 단언하긴 어렵다. ‘개딸도 모르는 개딸‘이란 말처럼 문화적 현상으로서 아직 형성과정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개딸이 부디 2년 전 민주당여성의원들이 저지른 ‘피해 호소인‘ 사건의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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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은 힘이 세다. 그런데 그 힘은 조언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는 사람에게 발휘된다. 고양감이 올라가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쪽은 조언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는 사람이다. 조언의 내용이나 조언을 받는 당사자의 반응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면 일단 내가 뭐라도 된 듯한느낌을 받게 된다. 조언을 통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가진 경험과 정보, 심지어는 느낌까지 제법 그럴듯하고 대단한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 P25

힘에 겨운 우리에게는 어쩌면 자신감이나 동기, 의욕 같은 심리적인 역량이 더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럴수도 있지‘, ‘나도 그렇더라‘, ‘잘 했네‘ 같은 말을 덮어놓고 듣고 싶은 건 그래서 당연한지도 모른다. 조언을통해 진짜 얻고 싶었던 건 ‘위로‘ 아니었을까. - P27

남성은 나는 믿을 만한 사람이며 당신이 마음을 기댈 수 있을 만큼 미래가 밝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여성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감을 유지하고 자존감에 상처받지 않게 해주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남성은 우리가 장기적인 관계를 갖길 바란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허풍을 떨고, 여성은 애틋한 사랑의감정을 지속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우리가 나누는온갖 가식적인 말에는 과거를 아름답게 포장하고픈 마음과 미래를 희망차게 바라보고픈 심정이 오롯이 담겨있는 것이다. - P36

우리 뇌는 끊임없이 거짓 신호를 보내 과거를 내 입맛에 맞게 적극적으로 조작한다. 우리의 가장 자연스럽고 탁월한 가식은, 경험을 합리화하고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일이다. 우리가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하고또 가장 많이 속는 대상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어떤 의미에서 진실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마음에는 다양한 거짓과 가식이 있다‘는것만이 진실이지 않을까.  - P37

흥미로운 점은 성격이 매력적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바로 ‘내 성격‘이라는 것이다. 즉 내가 싫어하는 내 성격의 어떤 특성이 상대에게 보이면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내가 좋아하는 내성격이 상대에게 보이면 그의 성격이 마음에 든다고느꼈다. 또 내가 평소에 그런 성격이었으면 하고 바라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 상대의 성격을 만족스러워했고, 상대방에게 내가 고치고 싶어 하는 성격 특성이 보이면 상대의 성격에 불만을 느꼈다. 우리는 상대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기보다 순전히 내 기준에서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 P52

무엇이 나에게 중요하고 내 삶에 힘이 되고더 유리한지에 온 신경을 쏟는다. 어떤 것이 사실이 아니며 진실이 아니라 한들 경우에 따라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는 건 이제 내 삶이 그런 믿음에 기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 뿐이다. - P101

이별의 뿌리를 자라게 한 것도 둘 모두의 몫이다. 만나는 동안 이별은 곳곳에서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그럼에도 헤어지는 이유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면 그건내가 관계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뜻, 상대에게 집중하지않았다는 뜻이 아닐까. - P119

사람은 외부 정보를 객관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고자신의 신념이나 생각과 일치하거나 유리한 것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이러한 현상을 선택 지각(selectiveperception)이라고 한다. 야한 것에 꽂힌 사람은 보이거나 들리는 자극마다 야한 의미로 해석하기 십상이고또 그런 자극만 귀신같이 찾아내어 보고 듣는다. - P126

 내 오류를 시인하는 일은 내가 나를 공격해 다치게 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타격을 입히기에 본능적으로 꺼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 대신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내 세상이 잘못되었다는것을 받아들이는 일보다 상대의 행동이 나쁘다고 믿는편이 훨씬 쉽고 간편하다. 선택 지각은 이토록 게으르고 뻔뻔한 인지과정을 통해 강화된다. - P130

이처럼 ‘특정 성별에 유리하다‘ 같은 전제는 우리의능력을 흔든다. 남성이 여성보다 방향감각이 뛰어나다같은 말이 둘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 것처럼.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성보다 남성이 방향감각이 좋다는편견은 그렇지 못한 남성들에게 불편감을 주고 수시로위축되게 만들었을 것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공감 능력이 좋다는 오해는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서를 자꾸만 의심하게 하지 않았을까. 공감이 어려운 마음을두고 혹여 나는 이기적인 사람인가 싶어 자주 자책했을 테니까. - P140

뻔한 소리처럼 들릴 위험을 감수하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인간다운 삶을 살고 인간다운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력‘이 필요하다. - P170

애쓰지 않으면 우리는 또 습관처럼 무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며 살게 될 수도 있다. 노력을 잃으면 사랑도 잃게된다. 사랑다운 사랑을 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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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탐사선을 탄 걸리버 - 곽재식이 들려주는 고전과 과학 이야기
곽재식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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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과학 서적을 읽기에는 기본 소양이 많이 모자라고,

그럼에도 또 호기심은 있어 과학서적을 기웃거리나 대부분 실패하고, 그리고 절망하고,

난 안돼를 연발하면서 머리카락이나 쥐어뜯는 나같은 천생 문과생도 이 책은 읽을 수 있다.

그것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일단 가장 좋은건 문과생이 좋아하는 고전과 역사들을 재료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과학 몇 스푼이 딱 맛을 내는 감미료처럼 뿌려진다. 

그러면 음식맛은 음...... 당연히 맛있어 진다.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의 원형 우트나피슈팀의 방주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다른 지역의 여러 신화에서도 널리 회자되는 것은 이런 식의 대홍수가 이 시기 언제인가 있었을 가능성이 많았다는 것일거다.

그러면 작가는 살짝 지구의 기후 이야기로 옮겨간다. 

빙하기의 종말이었으면 어쩌면 이런 규모의 대홍수가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것.

지구는 아주 미세하지만 비틀거리면서 움직이고, 이 움직임 때무에 태양빛을 많이 받는 시절 또는 덜 받는 시절을 맞이할 때가 있어, 이것이 오랜동안 쌓이면 지구의 기후가 크게 바뀌기도 한다는 이야기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리고 빙하기의 종말 - 해수면의 상승과 기후의 온난화가 겹치면서 대규모의 홍수를 유발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우트나피슈팀의 이야기는 대홍수로 세상이 멸망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 후의 세상에서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 늘어나고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는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는 해석을 덧붙인다.

문과생은 생각하기 어려운 해석으로 나같은 독자에게는 새로운 눈을 떠게 해주는 해석이다.

아 역시 다른 지식은 다른 눈을 뜨게 해주는구나 하고 감탄 중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연결이 항상 성공적일 수는 없어서 가끔은 연결에 무리가 있거나 지나친 일반화로 인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중국의 소설인 <수호전>을 다루면서 이 소설이 나오는 배경인 송대의 경제발전을 연결시키는데, 이 송대의 경제발전을 '점성도'라고 하는 가뭄에 잘 자라는 벼품종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하고, 이것을 다시 주희의 성리학이 등장하는 배경으로 직결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만약 베트남에서 건너온 점성도라는 벼품종이 없었다면, 지금 한국인들이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성리학 문화도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바로 선언해버린다. 

경제발전이라는 것은 온갖 다양한 요소들의 합작품이다. 북방유목민족에 밀려 남쪽으로 밀려갈 수 밖에 없었던 송왕조가 어쩔 수 없이 강남지방을 본격적으로 개발할 수 밖에 없었던 정치적 상황, 그에 따라 선택된 벼의 품종- 베트남에서 온 점성도가 없었다면 그들은 그에 맞는 또다른 품종을 찾아내거나 만들어냈을 것이다. - 이모작, 삼모작이 가능한 기후환경, 나침반의 발명 이후 바닷길을 이용한 상업 무역의 발달..... 이 모든 것들을 한가지 벼의 품종으로 선언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 된다.

또한 성리학이란 학문 역시 송대의 경제발전에 어느정도 기대고 있는 것은 맞지만 더욱 본격적인 등장배경은 북방유목민족에 쫒겨난 중국 한족의 문화적 자존심을 주된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과장된 선언적 단정들이 나타날 때마다 책을 읽다가 살짝 깬다고 할까? 


또 하나 230페이지에 조선의 증기기관 발명시도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조선의 김기두라고 하는 기술자가 증기기관으로 운행하는 배를 만들었는데 석탄 대신 숯으로 배를 움직여서 결국 실패햇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는 이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고, 흥선대원군의 명령이었다는 기록만 있어 조선이 새로운 기술이나 산업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어 조선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없지 않았을까라는 말을 전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사실상 조선이 기술에 관심이 없어서 기록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조선이 증기기관으로 가는 데 사용한 엔진은 그 유명한 제너럴 셔먼호의 엔진이다.

평양에 식량을 구한다고 들어왔던 미국의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평양항구에 상륙후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고 사람들을 살상하자, 열받은 평양주민들이 배를 급습하여 불태우고 선원들도 모두 죽여버린 사건이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다.

일은 벌어졌고, 이것을 수습해야 하는 평양감사 박규수는 정말 난감햇을 것이다.

나쁜 놈들이긴 하지만 남의 나라 상선과 선원들을 모두 불태우고 죽여버렸으니 잘못하면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를 대사건인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은 조용히 묻히고 함구령이 내린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박규수는 제너럴 셔먼호의 엔진과 남은 부재들을 중앙으로 올려보내고, 흥선대원군은 이것을 이용해서 서양의 배와 같이 빠른 배를 한 번 만들어보라고 한 것이 저 사건인 것이다.

물론 실험은 실패했다.

아무런 기술적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 엔진을 이용해 배를 가게 하긴 했는데 연료를 뭘 써야 할지를 몰랐던 조선에서는 그나마 높은 열을 내는 숯을 열심히 땠던 것.

배는 가기는 가는데 한시간 동안 몇십미터쯤 움직였다고 하니 실패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실험이나 결과, 과정은 제너럴 셔먼호사건이 비밀이었으므로 절대 기록에 구체적으로 남길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과정은 다음의 세가지 과정을 반복한다.

이 두가지를 연결하다니 참신한데! 여기에 이런 과학이 숨어있단 말야? 와 신박하다!!!

아 이건 좀 무리가 있는 연결인데? 좀 억지스럽지 않나?

에이 이건 역사지식이 좀 부족한 것 같아. 다른 상황도 고려해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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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9-13 01: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포스팅 제목을 천재 문과생으로 읽었습니다 😊
역사 신화와 연결시킨 과학 흥미가득
이제 화상탐사선엔
걸리버 닮은 AI가 탑승🙊

바람돌이 2022-09-15 12:40   좋아요 2 | URL
앗 그렇게 읽으셨으면 그냥 계속 천재로 기억해주시길...... ㅎㅎ
이 책은 과학을 잘 아는 사람은 읽으면 심심할듯요. 저처럼 진짜 문외한인 사람은 재밌게 읽었습니다.
걸리버 닮은 AI 기대되네요. ^^

stella.K 2022-09-13 10: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꽈엔 도통 문외한인 저 같은 사람이 읽으면 좋겠군요.
곽재식 좋아하긴 하는데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네요.
요즘.책 많이 읽으시네요.
명절 잘 지내셨죠?^^

바람돌이 2022-09-15 12:41   좋아요 2 | URL
저도 진짜 문외한인데 재밌게 읽었습니다. ^^
이분은 유튜브나 팟캐스트로도 유명하시더라구요.
요즘 어쨌든 억지로라도 집에서 쉬고 있으니 책은 열심히 읽어지네요. 스텔라님도 즐거운 명절 되셧기를요. ^^

mini74 2022-09-13 12: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약간의 갸우뚱~ ㅎㅎ 뭔지 알거 같아요 바람돌이님*^^* 문과생도 읽을 수 있지만 문과생이기에 찾아낼 수 있는 모자란 부분이 있는거 같아요 ~~ 이 글 곽재식 작가님께 보내드리는 거 어떠세요. 아주 좋아하실거같아요 바람돌이님 *^^*

바람돌이 2022-09-15 12:42   좋아요 1 | URL
보다가 갸우뚱???? ㅎㅎ 작가님께 보내라고요? 아휴 미니님 저 부끄럼도 많고요. 낯도 가리고요. 감히 이런 생각도 잘하고요. ㅎㅎ
그냥 여기서 저런 얘기 쓸때도 쓸까 말까 고민 백번쯤 하고요. ㅎㅎ

희선 2022-09-14 01: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잘 아시는 바람돌이 님은 역사를 알아서 조금 억지가 있다는 것도 아셨군요 홍수 이야기, 지금 일어나는 일과 비슷할까 싶은 느낌이 들어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지 않아야 할 텐데... 재미있게 보기에 좋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2-09-15 12:43   좋아요 1 | URL
어쩌다보니 제가 알고 있는 부분이 나온거네요. 머나먼 저 시절의 홍수나 자연 재해는 그야말로 자연의 사이클이었다면 지금의 기후위기는 우리 인간이 자초하고 계속 앞당기고 있다는게 문제겠지요. 그래서 더 위험한.....
자연과학쪽은 뭐라도 공부를 하다보면 이 지구의 운명을 걱정하지 않을수가 없는거 같아요.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
수잔 손택 지음, 배정희 옮김 / 이후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19세기의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얘기하며 여성의 재능을 꽃피울 조건을 이야기했다. 19세기의 버지니아 울프는 시대를 앞서갔다. 20세기의 수잔 손택이라면 버지니아 울프를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손택의 앨리스는 20세기에 맞는 질곡과 굴레를 표현하는 것을 기대하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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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9-13 1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잔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 라는 글은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2-09-15 12:45   좋아요 0 | URL
수잔 손택은 정말 뛰어난 저술가인데 제가 가진 기대에 비해서 이 책은 좀 많이 헷갈렸습니다.
지금? 왜? 그리고 이렇게 뜬금없는 방식으로?
저는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었는데, 사진에 관하여도 읽어봐야겟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