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들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노석미 그림 / 살림Friends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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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귀여운 남자아이가 보인다.
터키식 모자(책에서 보면 이걸 '페스'라고 하는 것 같던데)를 쓰고 눈은 사과로 표현되었다.
처음 이 표지를 볼때는 어릴 때 가난했던 작가가 사과를 먹고싶은데 못먹었었던 추억이 있나같은 딱 내 수준의 유치한 상상을 했다. ^^
그런데 책을 보면 비밀이 나온다.
아버지는 어린 아지즈 네신에게 사과를 던져주면서 말한다.
"봐라. 신이 이 사과들을 네게 보내주셨다. 기도하거라."
그러나 아지즈 네신에게 사과를 보내준 그 신은 그의 여동생을 회복시켜주지는 못했다. 여동생은 죽었다.
표지를 자세히 보면 소년은 울고있다. 사과와 눈사의 틈새로 눈물이 주루룩 흐르고 있는 것.
에고 이걸 못봤었구나.... 

터키 최고의 풍자작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어린 시절을 되짚는 그의 기억들 역시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다.
식탁에서 왜들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라고 외치는 아이의 모습을 그릴때나,
응답없는 첫사랑이란 제목으로 옆집 꼬마아가씨를 좋아하기라도 했나 싶어 읽어보면 그 첫사랑의 대상이 터무니없이 닭이었던 이야기, 그리고 그 닭에 대한 정말 애절한 짝사랑,
그리고 배가 너무 고파 점심시간을 착각한 이야기들에서는 푸하하~~ 저절로 웃음이 터진다. 

그러나 그런 유머감각속에 녹여낸 그의 어린시절이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아니 너무 많이 가난하고 너무 많이 아프고 힘들었던 듯하다.
18살의 어머니는 집을 태운 화재속에서 너무 놀라 아이 둘을 먼저 구해내고 다시 들어가 구해낸 물건이란게 겨우 재봉틀과 요강이다.
어린 동생은 영양결핍으로 인한 구루병으로 죽었고, 어머니 역시 결핵으로 고통받는다.
가난한 아이들 중에서도 더 가난했던 듯 길거리에서 노는 가난한 아이들 틈에도 끼일수 없었던 모습들이 간간히 보인다.(여기에는 종교적인 이유도 있는듯한데 터키의 종교상황에 대해서 잘 모르니 짐작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가 대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때문일까?
가난하지만 자존심을 잃지 않도록 비굴하지 않도록 가르친 그의 부모님들
그리고 공화국으로 변신한 터키에서 그와 같이 가난한 아이들도 공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이런 것들은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글들의 갈피 갈피에 녹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의 말미에 작가는 자신이 이런 얘기를 쓴 것은 과거의 가난을 부끄러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지난 어른 세대의 삶은 추억이 되어야지 오늘의 아이들에게 이런 삶을 살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아마도 그가 그의 작품의 국내, 해외 인세 모두를 고아들을 위한 기금으로 남긴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우리 부모들의 세대와 비슷한 삶의 고통을 겪은 아지즈 네신의 어릴 적 얘기는  오늘 우리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도 필요한 이야일 것 같다.
아지즈 네신의 바람이 아이들에게 그런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그 바람은 오늘의 대한민국 어른들에게도 점점 더 절실한 바람이 되고 있다. 오늘 더 많은 어른들이 아지즈 네신을 읽었으면 하는 이유다.

사람들은 제게 왜 풍자 작가가 되었냐고 항상 묻습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절 풍자작가로 만든 것은 저의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눈물속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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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가 - 어린이 판소리 그림책
최은미 그림, 이현순 글, 김동원 감수, 이슬기 어린이 소리녹음 / 초방책방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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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별 5개인데 왜 포토리뷰에는 별이 없을까?

하여튼 오래 전에 이 책을 구입했으나 막상 아이들한테는 너무 어려운 듯하여 묵혀뒀다가 이제는 괜찮겠다 싶어 책을 꺼내 들었다. 심청 얘기는 아이들한테 이야기로만 들려주었지 책으로 읽혀준적은 없었다.
솔직히 아이들이 판소리를 좋아할 지 어떨지도 미지수...

일단 책의 첫페이지
위쪽의 검은 글씨는 해설 부분이고, 아래쪽의 초록 글씨는 판소리로 불리우는 부분이다. 해설은 김동원이란 분이 고수 겸 해설을 하고, 판소리 부분은 초등학교 여학생이 앳된 목소리로 부르는데 소리가 장난아니다.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올까 싶은....

다음 페이지에는 이렇게 어린 청이를 안고 춤을 추는 심학규의 그림이 나온다. 그런데 그냥 그림이 아니라 이렇게 탈을 쓰고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배경 없이 소리에 맞춰 탈춤을 추는 주인공의 분위기가 효과적이다.
아이들이 이 첫장면부터 바짝 그림책에 관심을 가진다.
엄마!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생겼어?
그리고 아기가 이상하게 생겼어 등등....
딱 맞춰 질문을 하는 아이들에게 탈춤과 판소리에 대해서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즐겼는지 가르쳐 줬더니 뭐 대충 이해하는듯....

책속의 공간을 자유 자재로 활용하여 심봉사가 개천물에 빠진걸 화주승이 구해 주는 장면은 이렇게 역동적으로 표현됐다.
딱히 배경이 없는데도 위기의 순간을 이렇게 구도 하나만으로 나타내다니...

주인공 심청의 모습을 뺄 수가 없다.
이 부분은 인당수에 빠지기 직전의 심청의 모습
탈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를 알고 슬픈 심청의 모습이 절묘하게 표현됐다.
마지막 길을 떠나는 심청의 절절한 아픔과 체념이 마음에 짠하게 와닿는 표정이다.
요때는 아이들도 슬픈지 조용히 얘기를 듣는다.

판소리 원래의 맛을 살리기 위해 소리 부분은 원문을 되도록 살려놓았다. 그러다보니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단어들이 곳곳에 나온다. 뭐 그렇다고 이야기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평소에 모르는 말이 나오면 진짜 열심히 묻는데 이 책은 정말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래도 모르는 말을 그냥 넘어갈수야 없지 했는데 다행히도 이렇게 책 마지막에 용어 해설을 넣어뒀다. 참 친절하기도 하시지....

그런데 정말 절망인건 내가 이 책을 산지가 하도 오래 되어서 CD가 붙어있는걸 까먹었다는 것. 덕분에 진짜 혼자서 해설하고 소리하고 생난리를 치며 읽어줬다. 책 다 읽고 덮으려는데 큰 녀석이 "엄마 뒤에 CD있어" ㅠ.ㅠ
방금 그렇게 목이 터져라 읽어줬는데도 꼭 CD로 다시 듣고 싶단다. 20분 정도의 분량인데 아이는 그동안 꼼짝도 않고 책을 보며 CD를 듣는다. 처음 접하는 판소리가 신기한가 보다. 심지어 오늘 아침에는 나보다 먼저 일어난 이 녀석들이 틀어놓은 판소리에 잠이 깼으니....
아이들더러 "엄마가 노래 잘해? 아니면 CD속에 언니가 잘해?"라고 물었더니 너무나 냉정하게 언니란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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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09-08-07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아이들의 시선은 참으로 냉철하다죠.^^
헌데 님의 판소리곡이 갑자기 듣고 싶어진다는~~
그걸 어떻게 열심히 현장감있게 들려주셨어요??

바람돌이 2009-08-07 23:46   좋아요 0 | URL
현장감은 무슨... 제가 아주 약간 음치예요. 그리고 좀 심한 박자치고요. 그래서 노래방 가서 탬버린도 못 흔들어요. ㅎㅎ 그냥 애들이니까 생쇼를 한거죠. ㅎㅎ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을 리뷰해주세요.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 상처에서 치유까지, 트라우마에 관한 24가지 이야기
김준기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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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을 하다가 처음으로 사고를 낸게 운전 5년만이었다.
유치원에 아이를 데릴러 갔다가 아이를 태우고 출발하려는데 뒷좌석에 앉혔던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 바람에 놀래서 운전석 문을 황급히 열었다.
그 순간 골목길을 달려오던 차가 내 차 문을 그대로 박살내고 앞쪽 전봇대를 박은 것.
차는 양쪽다 무참하게 부서졌지만 사람은 크게 다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근데 이 기억은 정말 오래도록 나에게 머무르고 있다.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니 그 기억때문에 괴롭거나 한건 아니지만, 내 몸이 그 상황을 시도때도 없이 되살려내는 것이다.
운전석의 문을 열때마다  가장 먼저 그 기억이 무조건 반사로 떠오른다. 그리고는 주변을 살피게 되는 것.
결국 트라우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란 어려운 말의 뜻도 이런 식의 기억이 아닐까?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온 몸의 세포에 속속들이 각인되어있는 상처의 기억들. 

전에 이런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아이를 본적이 있다.
정확하게 알수는 없지만 내가 알아낸것은 결국 어린시절 어머니에게서 버림받았던 기억이었던듯한데 문제는 그 기억을 안아주고 보듬아 줄 어머니의 존재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기억이 계속 확대재생산되고 있었던것.
아이의 아버지는 끈임없이 괜찮아질거라며 아이의 공부만 걱정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아버지는 받아들이지 않고, 아이의 상태는 갈수록 심각해졌었다. 결국 아이가 온몸으로 비명을 지르고 나서야 아버지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많은 사람들이 상처는 그저 의지만 있으면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상처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의지박약으로 몰아버리는 것이다.
아마도 저자인 김준기씨가 이 책을 굳이 쓰야겠다고 결심한것도 그런 사회의 인식을 바꾸고 싶어서일게다.
아무래도 임상기록을 책으로 내는건 환자의 사생활을 침해할 가능성이 많으므로 힘들었을 것이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영화가 아닐까?
저자는 원래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은 아니란다.
오로지 이 트라우마를 얘기하기 위해서 그 때부터 관련영화를 찾고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보면서 책을 만들어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영화들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오히려 나에게는 친근하게 다가오는 면도 있었다.
아 그 영화의 주인공은 이런 상처를 갖고 있었구나 같은.... 

살면서 감당하기 힘들만큼 큰 상처없이 살아갈수 있다면 그것도 또한 얼마나 큰 행운인지...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상처나 고통과 맞닥뜨릴 가능성을 훨씬 높이고 있다.
갈수록 사회가 개인에게 지우는 고통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는점에서 무차별적이고 또 그만큼 혹독하다.
그런 고통은 때로 가족의 죽음이나 어린시절의 학대나 버려짐 부모의 차별, 사고나 죄, 질병, 실연등등 곳곳에 널려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은 가해자에게나 피해자에게나 트라우마를 남기고 당사자의 일생을 지배한다.  
또한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얻은 집단적 트라우마나 분단이 낳은 군대징집이 낳는 트라우마도 신문을 간간히 장식한다.
이런 상처는 결코 개인의 힘으로 혼자서 극복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책은 역설한다.
넌 할수 있어,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격려, 행복하거나 뿌듯했던 순간들의 기억을 되살리는 능력, 자신의 아픔을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누군가의 존재 그리고 이런것들을 가져다 줄 전문적인 치료의 필요성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건 이런 것들이 아닐까?
당신도 이런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당장 지금이 아니라도 언제 어디서 얻게 될지 모르는 트라우마, 그 위협을 준비하고 대처할 용기를 가지려면 그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책은 얘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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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8-04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땅에 살면서... 빨갱이 트라우마(레드 컴플렉스), 경찰 진압복 트라우마... 이런 게 생겼습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무섭죠.

바람돌이 2009-08-04 10:52   좋아요 0 | URL
사실은 일본에 대한 트라우마나 군대 트라우마보다 더 심각한 트라우마일수 있겠네요.
 
세계화 그 끔찍한 이름을 고발하다.
<어린 왕자의 귀환>을 리뷰해주세요
어린왕자의 귀환 -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
김태권 지음, 우석훈 / 돌베개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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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로 아저씨는 세계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돌아온 어린왕자는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기 위해 방황한다.
근데 공통적인건 세계화는 신자유주의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
그리고 마초로아저씨나 어린왕자나 둘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별로 많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 

마초로아저씨는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시작하여 자본주의라는 것 자체가 결국 신자유주의로 갈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그 속에서 멕시코와 같은 약한 나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제국주의 국가들의 밥이 될 수 밖에 없음을 얘기한다.
그에 반해 어린왕자는 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얘기를 중심에 둔다.
고등학교때 배웠던 비교우위 이론에 근거한 자유무역이라는 것의 환상은 오로지 책에만 존재하는 것. 현실은 오히려 플렌테이션에 집중한 나라들에게는 기근을 선물했을뿐이며 식량같은 비교우위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한 대책은 전혀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의 환상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은 결국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인가? 

자유무역협정(FTA)은 그것이 무엇을 의도하든 간에 국가에 의해 유지되어져야할 공공부문의 약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고 그것은 바로 경제적 약자에게는 쓰나미와도 같은 충격이 되어 어린왕자들의 삶을 파괴할 것이라는 것. 경쟁력 강화의 명분으로 진행되는 온갖 공공부문의 민영화라는 것은 결국 부자들의 경쟁력 강화일뿐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경쟁력제로의 삶을 가져다 줄것이라는 것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왜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은 이전보다 더 단결하지 못하는가?
그 해답역시 신자유주의 속에 들어있다.
분할통치!
옛날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직접통치하던 시대에만 있던 것이 아니다.
모습만 달리했을뿐 자본주의는 여전히 분할통치를 핵심으로 내걸고 여전히 잘도 우려먹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내국인과 외국인 노동자, 남성과 여성, 지역간 차별 등등등..... 나눌 수 있는 것은 다 나눠서 노동자끼리 적대하게 하는 아주 고전적인 수법.
이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를 더 아래의 자신에게 투사하고 적대하는 것이다. 

아 정말 멕시코든 대한민국이든 희망은 있는 것일까?
무엇이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고 나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지, 내 삶의 안정성을 송두리째 뽑아가는지 일단은 알고 볼 일이다. 마초로 아저씨도 어린 왕자도.... 

우리가 정말로 알아야할 경제지식이라는 부제를 붙여되 될 듯한 내용을 굳이 만화로 나타낸건 아마도 보다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이라는 사명감때문일게다.
확실히 활자화된 책보다는 훨씬 쉽게 읽히는게 사실이다.
마초로 아저씨가 장면 장면의 그림에  촌철살인의 핵심을 절묘하게 표현하는데 보다 집중했다면, 어린왕자는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주력했다.
덕분에 그림을 보는 재미는 마초로 아저씨 쪽이 훨씬 낫다.
때로는 주절이 주절이 늘어놓는 것보다 한 컷의 그림이 훨씬 명확하고도 많은 뜻을 한꺼번에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별에서 쫒겨난 어린왕자의 고달픈 여행을 통해 정말 주절이 주절이 늘어놓는 푸념과 이야기들은 우석훈씨의 해제와 어울려 그림에서 우리가 더 읽어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대안은 있는가? 공정무역, 공동체적 가치의 회복, 환경친화적 삶 등등 대안으로 제시되는 삶들을 우리가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함을 슬쩍 제시해주기도 한다. 

어쨋든 결론은 마초로 아저씨든 어린왕자든 그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우리가 정말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이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 진정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싸워도 싸울 것이 아닌가말이다.
기왕이면 저 두권 같이 읽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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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7-29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마초로 아저씨도 세계화의 위험을 경계하고 있죠.
문제는 신자유주의에 두손들고 항복한 노무현은 존경하면서 이명박을 욕하는 사람들의 희한한 논리죠. 노무현 정권이 분명히 잘못한 것들도 죽고 나선 어물어물 묻혀 넘어가면서 마치 노짱이 위인이었던 듯 신격화하는 거 보면... 아직도 멀었다 싶습니다.

바람돌이 2009-08-01 00:49   좋아요 0 | URL
노무현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과 그의 삶의 공과를 따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 그걸 착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의 정책을 비판하면 싸잡아 비난하는 것도.... 갑갑할때가 많아요.
 
<지구 위의 작업실>을 리뷰해주세요
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지음, 김상민 그림, 김선규 사진 / 푸른숲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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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속감의 족쇄로부터 풀려나기 위해 예술 체험이 필요하다고 강의하는 나에게 어떤 공무원이 물었다. "왜 벗어나야 합니까?"라고. 그런 사람을 두고 젊은 날의 황동규 시인이 이런 시를 썼다. "다들 망거질 때 망거지지 않는 놈은 망거진 놈뿐야." (188쪽) 

'왜 벗어나야 합니까'와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날수가 없어요'의 거리는 얼마쯤 될까?
그리 멀지는 않을듯...
국가 민족같은 거대영역에서부터 직장과 가정같은 일상의 영역까지 우리는 항상 어딘가에 소속되어있고 그 소속에서 오는 의무를 괴로워하고 그러면서도 소속되지 못해 또는 소속에서 벗어날까봐 두려워하고....

그런 일상과 소속의 삶의 쳇바퀴에서 벗어나고 싶은 기분을 느낀다면 김갑수라는 이 남자의 공간을 살짝 엿보자.
지하 30평 홀을 온전히 자신을 위한 공간으로 바꾸어버린,
커피와 음악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공간 줄라이홀이다.
커피는 원두가 아니라 아예 생두를 손수 갈고, 커피를 끓이기 위한 온갖 장비들이 즐비하다.
그래도 음악에 비하면 커피는 아무것도 아니다.
음반의 양에도 기가 질리지만 더한건 이게 무슨 미친짓이냐 싶은 온갖 오디오장비들.
그것만으로도 팔아치우면 한 밑천 마련하겠다 싶은 용도도 알아듣기 힘든 온갖 기계들.
오로지 맘에 드는 소리 하나 만나겠다고 하는 투자에는 기가 질릴 정도다.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사치냐고 퉁명스런 비죽임이 먼저 새어나올만도하다.
세상은 너도 나도 생존경쟁에 휘둘려 미쳐 돌아가고, 온갖 시대를 거꾸로 거스르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이 시대에 말이다. 
이런 책 쓰면서 그정도 비아냥은 감수해야지 싶기도 하다.

근데 그 알아듣기도 힘든 그의 이야기에 왜 자꾸 마음이 끌리는걸까?
그의 표현대로 '열정적 소수"의 삶에 대한 동경일까?
아니면 내 맘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감히 풀어보지 못한 욕망을 그가  실현하고 사는 데 대한 대리만족인걸까? 

사실 누구에게든 물어보라.
자신만의 온전한 동굴같은 공간 하나쯤 안 갖고 싶은 인간 있는가?
온전한 자신으로의 회귀 그건 본능에 가까운 인간 욕망이다.
문제는 그것의 실현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공간을 가지는것은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고 여유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서 여유는 경제적 심리적 여유 모두를 말한다. 

김갑수의 줄라이홀
누구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권리쯤은 있지 않냐고,
비일상의 공간이 또 다른 일상이 되는 곳에서 삶의 충족이 있는 것 아니냐고,
그의 공간이 말한다. 

나의 줄라이홀, 이 넒은 지구위에 딱 그만큼의 공간이 내게도 주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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