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희망이다>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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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희망이다 - 혼돈의 시대, 한국의 지성 12인에게 길을 묻다
김수행 외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6월
평점 :
아주 옛날에 내가 소싯적에 "돌아온 혁명가"라는 농담이 있었다.
운동권의 이론 논쟁이 한창이던 시절 진정한 혁명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누군가가 온갖 이론서적들을 끌어안고 산속에 들어가서 정말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고 결국 드디어 진리의 길, 혁명의 길을 발견한다.(아! 이건 무협지에서 정말 자주 써먹는 장면이다. ㅎㅎ)
그런데 돌아와보니 세상에나~~~ 이미 세상은 혁명이 끝나버렸다나 어쨌다나...
아주 뻔한 진실, 그러니까 결국 진짜 지식, 진짜 혁명의 길은 현실에 있다는 것, 그런데 그 현실을 벗어나버린 온갖 이론적 논쟁에 지친 이들이 만들어낸 농담일게다.
그러면 지금은? 지금도 이 돌아온 혁명가라는 농담이 통할수 있을까?
아! 정말 썰렁하다. 이미 세상은 누구도 혁명을 말하지 않으니 저런 농담이 농담이 될 수 없는 시대인게다.
책의 표제에서 그렇게 말한다. 혼돈의 시대, 한국의 지성 12인에게 길을 묻다라고...
저 혼돈의 시대라는 말에 마음이 가 꽂힌다.
사실 세상이 혼돈의 시대가 아니었던 적이 과연 있기나 했던가?
80년대이전의 시절은 모두가 군부독재에 대항해 싸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적이 누구인지가 너무나 분명한 시절이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단순해보였고...
하지만 정말로 단순했을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저 세상을 보는 시선의 편협함이 세상을 단순화시켜버렸던게 아닌가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그렇게 싸웠는데도 아직도 세상이 요모양 요꼴이지 하면서...
그렇다면 지금은 적어도 혼돈의 시대, 무엇이 나아갈 길인지 누구도 제대로 알지못한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해야 하는건 아닐까싶기도 하다.
지금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모두들 비판의 달인들이 된듯하다.
정부에, 정부의 정책 비판에 누구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듯...
그러나 동시에 모두가 묻는다.
그래서 대안이 뭐예요?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이놈의 세상이 달라지냐구요?
일단 이런 질문은 80년대와 지금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기대하는 대답은 정말이지 다르지 않을까?
80년대에는 그 대답이 혁명이라고 많은 사람이 기대했다. 다만 그 혁명으로 가는 길이 무어냐를 물었을뿐...
하지만 지금은 대안을 묻는 누구도 혁명을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쓸어엎어버릴 혁명을 빼버리고 나니 더더욱 대안은 궁색해진다.
누구도 이것이 길이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니 길에서 촛불을 들고, 술자리에서 정부 비판을 하고, 앞선 두 대통령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그 모든 행위들은 그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방향을 갖지 못한다.
모두들 그 자리에서 맴돌고 맴돌고... 어쩌면 그러다 지치기를 그 누군가는 바라고 있겠지...
연구공간 수유 너머에서 펴내는 부커진에서 이들이 지금의 사회는 주류운동세력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다양한 소수자들의 운동에 의해서 바뀌어간다라는 논지를 읽었다.
주류에 대항하는 온갖 소수자들의 구멍내기가 결국 배를 침몰시키든 아니면 배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배로 개조하게 만들든지 할것이라는 논지였던것 같은데...
그때는 읽으면서 지나치게 낙관적인게 아닌가라는 의구심부터 들었었다.
그런데 요즘, 특히나 <거꾸로, 희망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들의 그런 실험적인 생각들이 마음에 와닿는걸 자꾸 느끼게 된다.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세력, 저항세력의 거대한 한 축들을 이루어온 이들이 강연을 하고 좀 더 젊은 이들이 사회와 질문을 한다.
모두들 거대 담론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다.
녹색평론의 김종철선생은 자율적인 상부상조의 공동체를 우리들 스스로 만들어서 자본과 국가라는 지배체제 바깥에서 살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러한 공동체는 농촌을 기반으로 할 수 밖에 없으며 그러한 농촌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못한다면 도시에서라도 농업적 가치, 농사를 도울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고.....
김수행선생은 사회보장을 지속적으로 줄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결국 시장의 축소를 가져오고 결국 그것이 세계적 규모의 공황을 불러왔다고 얘기한다. 개인이 부자가 되는 것과 모든 국민이 잘살게 되는 것은 분명히 다른데도 신자유주의는 그것을 헷갈리게 한다는 것.
이런 신자유주의하에서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본주의를 깨지 못하는 이상은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 모델의 유효성을 인정한다. 사회보장제도를 중심으로 노동자의 구매력을 향상시킬 것, 그럼으로 내수를 늘려야 하며, 일정정도의 계획경제, 중요 산업의 국유화를 통해 국민의 기본소득은 보장해주는 체제, 감세가 아니라 세금을 올려 재원을 마련할 것 - 결국 보다 확실하게 소득을 재분배할 수 있는 체제의 구축을 얘기한다. 이 정도라면 사실 자본주의 체제의 털끝도 건드리지 않는 체제 내에서의 개혁인데 이놈의 나라에서는 이것을 이루어내기도 참으로 멀어보이니...
한편 박원순 선생은 정부에 무엇을 얘기하지 않는다.
사회적 기업 - 아름다운 가게처럼 공공적 목적을 기업적적 방식으로 실현하는 기업, 각 지역의 특성에 기반한 향토산업의 활성화, 창조적 아이디어로 무장한 소기업의 활성화, 1만명을 고용한 1개 대기업이 아니라 1인을 고용한 1만개의 소기업을 만들어냄으로써 지금의 경제 위기를 원천적으로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제작소를 통해 이런 사업들을 위한 첫걸음을 떼어놓고 있다.
경제의 해법을 찾아내고자 하는 위의 논지들과 함께 개인대 개인의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인간다움의 회복, 세상을 보는 제대로 된 시각의 확보를 위한 논지를 펼쳐주는 이들도 있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선생은 돈과 학벌의 굴레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의 자기자신과의 대면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역설한다. 조한혜정선생은 권력에 항거할 때 쓰는 언어가 실제 삶을 지배함으로 그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사냥꾼의 질서에서 벗어나 우정과 환대의 소통과 문화로의 전환을 위한 새로운 주술과 주문 언어를 만들어낼 필요성을 얘기하여 신선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책은 마지막으로 작년 이놈의 정부의 건국절논쟁과 관련하여 역사학자 서중석 선생의 입을 통해 건국절이란 명칭이 이 나라에서 친일파의 문제를 벗어날 수 있는 유력한 근거를 제시하며 동시에 남북의 분단이라는 상황에서 남한의 정통성을 확고하게 하는 남한만을 전체로 둔갑하는 논리가 됨을 살펴보며 제대로 된 역사인식의 필요성을 환기시킨다.
결국 모든 이들이 궁극적인 대안을 내놓지는 않는다.
아니 누구도 그런 말을 하기에는 사실 지금의 세계가 너무 혼돈스럽잖아?
근데 다르게 생각하면 그 혼돈 자체가, 그래서 이렇게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비록 소수에서부터지만 그렇게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것. 비록 속도는 느릴지라도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대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들어가고 있다.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삶의 양식들이 나타나고 다양한 생각들이 출현하고 그렇게 다양한 모델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럼으로써 세상이 변화해나가는 것, 너무 낙관적인가?
현실은 너무 힘들고 어두운데 희망은 너무 소박하여 이걸 희망이라고 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리게 되지만 그럼 다른 대안은 있어? 라는 질문에 또 뭐라고 대답해야하나...
거꾸로 희망이다 그래 희망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