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 한두 줄만 쓰다 지친 당신을 위한 필살기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 지음 / 그린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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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에 서재를 만들고 잡문을 끄적이면서 생긴 은밀한 욕망
아 나도 누구처럼 글을 잘썼으면...
A는 어쩜 저럼 논리정연하게 자기 생각의 표현을 잘할까?
B는 똑같은 책을 읽었는데도 저렇게 감각적으로 글을 쓸수 있을까?
C는 쓰는 글마다 어쩌면 저렇게 사람을 웃게 만들수 있을까?
D E F...... 아 정말 끝없는 부러움의 대상들이라니.... 

은밀한 욕망이라고 했다.
내놓고 누구처럼 글을 잘 쓰고 싶어요라고 말하기에는 좀 많이 처진다는거 알거든.
뭐 욕망도 내놓고 말할 수 있는건 어느정도 기본은 갖춰야 하는거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아주 쿨한척....
뭐 잘 쓰는 사람만 글을 쓰나요? 그냥 쓰는거죠.... 돈받고 팔 글도 아닌데 잘 못써면 어때서요라는 뻔한 말로 나자신을 위로하기도 하고 위장하기도 하고....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아주 절실하지 않은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뭔가가 절실하면 저절로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데, 즉 글쓰기방법에 관한 책을 열심히 읽고 또 좋은 문장이 있으면 이건 어떻게 썼지 생각도 하고 국어 문법 공부도 좀 하고 뭐 이런 노력 말이다.
그런데 이런 노력은 전혀 않으면서 무작정 '아! 나도 글을 잘 썼으면...'하고 막연한 탄사만 날리는게 지금의 딱 나라고나 할까?
그러면서 글이 붜 별거야? 그냥 열심히 쓰다보면 느는거지 하면서 무작정 열심히 쓰기만 한다.(아 물론 열심히의 기준은 내 기준이다.) 
뭐 이렇게 쓰기만 해도 전혀 늘지 않는 것은 아니더라...
서재 생활 초기의 내 글과 비교하면 용됐다는 느낌이 들때도 있고, 가끔 업무상 일을 하다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면 문법에 안맞거나 문장이 고르지 않은 것들이 예전과 다르게 눈에 확 들어오는 경우가 있으니말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어느 정도의 경지를 뛰어넘고 싶으면 거기서부터는 본격적인 공부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 말것인가에는 어느정도의 절실함이 요구되는법.
처음으로 글쓰기에 관한 책을 손에 들면서 내가 가진 은밀한 기대는 내게도 글을 진짜 잘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을까? 제목도 "나를 바꾸는 글쓰기..."라잖아.
근데 이런 기대는 불발로 끝날 가능성을 항상 자신 안에 안고 있는 법.
자기 내면에서 쓰야한다는 치열한 욕구가 생기지 않는 한은 어떤 책을 읽는다고 그게 생길수는 없는법이니... 
그래서 저자는 자기에게 가장 절실한 것을 쓰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을 바꾼다면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절실해야 한다 또한 그것을 쓰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그만큼 절실해야 함을 말하는 것일게다.
글쓰기의 유형이나 방법론을 말하는 것은 그 다음 얘기이다.
내게는 무엇이 그리 절실할까? 결국은 그것부터 찾을 일이다.
서재귀퉁이에서 서평을 쓰는 일조차도 해당 책이 내게 절실했거나 정말로 좋았을때 쓰기가 쉬워지는것도 그런 의미일테다.
내게는 아직은 그런 욕구가 그리 절실하지 않은지 뒷편의 글쓰기에 대한 구체적인 지도에서는 책을 읽는 속도가 더뎌지기 시작했다.
저자의 말이 어느 하나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은 없었으나 그의 첨삭지도나 예제문장들을 보면서는 이것들을 다 신경쓰면서 글을 쓰려고 하면 나는 절대 글을 못쓰겠구나 싶었다.
저자 역시 그 모든 규칙들을 일일이 신경쓰면서 글을 쓰는 작가는 없다 했으나 그럼에도 글을 쓰고 다시 읽고 고치고를 반복하는 퇴고의 과정은 정말 없어서는 안되겠구나싶은 마음을 갖게 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가장 싫어하는게 퇴고구나...
왜 나는 내가 쓴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싫을까?
그래서 내 리뷰엔 추천이 별로 없는 것도 아마 이것과 무관하지는 않을 터....

내게 이 책은 오히려 앞부분의 독서법을 얘기하는 곳에서 더 유용했다.
책을 읽되 제대로 읽고싶다는 욕구는 글쓰기의 욕구에 우선한다.
특히나 요즘처럼 나이를 먹어 읽은 책의 내용은 물론이고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여부조차 불투명할때는 더더욱 말이다.
어떻게 하면 내 독서를 더 풍요롭게 하고 내 자신이 좀 더 잘 기억하고 내 삶의 지평을 확대해주게 할 수 있을까라는 나의 고민에 이 책은 아주 유용한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되 그것과 관련이 되는 책들을 모두 모으고 그 중에서도 최소한 10여권을 가려내고 한 권 한 권 읽으며 맘에 드는 문장에 밑줄을 치며 씨앗문장을 찾아내라는 권고....
가끔은 책을 음미한다기 보다는 그저 책을 읽기 위해 읽는 것처럼 후다닥 읽어버리고 말때가 많은데 책 역시도 음미하면서 읽어야 한다는 당연한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가을, 아직은 글쓰기보다는 책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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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9-09-10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밀한 욕망에 공감..사실 직업상 글쓰기 수련 혹독하게 받았으나, 그 글은..그냥 드라이하게 문맥 맞게 쓰는 법을 배운거고...글은 늘 자신없어요.

바람돌이 2009-09-11 14:10   좋아요 0 | URL
그래도 마냐님 글은 참 쉽고 재밌게 읽힌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수련도 받으셨군요. 하기야 직업이 그렇죠? 저는 말하기 훈련 받고 싶은데 왜 그런 수련은 안해주는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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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교 지음 / 그린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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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기적절한 인연을 가리켜 불가에서는 '줄탁동기'라 일컫는다. 좋은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본래 병아리가 알 속에서 깨어나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에 맞춰, 밖에서 어미닭이 알을 쪼아주는 것을 뜻하는 말로, 떠들 줄, 쪼을 탁자를 쓴다.-84쪽

어느 정도 읽어 봐서 구미가 바짝 당기지 않으면 접어야 한다. 밑줄을 그어대면서 자신의 눈을 반짝거리게 하는 책이 아니라면 일단 접어야 한다. 물론 구미가 당기는 대로만 읽다 보면 만화책이나 대중소설에만 머무를 위험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재미있다면 우선은 그것부터 읽어야 한다. 마음이 거기로 끌린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자신을 믿고 마음 끌리는 대로 가야 한다. 어정쩡한 교양서적이나 유행 담론 서적들을 폼 나게 끼고 읽은 끝에 결국 폼이나 잡는 교양인이 되는 것보다는 무협소설만 읽다가 무협소설 계통에서 새로운 혁신을 일으키는 무협소설 작가가 되는 것이 백 배는 더 낫지 않을까.-86쪽

씨앗도서, 혹은 씨앗문장을 몸과 마음에 심어 두는 첫번째 방법은 씨앗 표시를 해두는 일이다. 즉 공명이 울리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 일일 것이다. 어떤 대목이나 단원 전체가 마음에 들면 그곳에 별표를 해두면 된다. 일독하고 나면 이렇게 표시해 둔 부분만을, 재독한다. 이때 따라 써 두면 더욱 좋을 것이다. 따라 쓰기에는 너무 많은 분량일 경우엔 다만 눈을 감고 소리 내어 문장을 읽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제목과 따라 쓰기 외에 밑줄을 묵상하는 방법도 있다. 문장을 읽은 다음 침묵의 상태로 연상되는 이미지나 이야기, 변형문장, 궁극적 의미 등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96쪽

감상적, 도식적, 윤리적, 일상적, 상투적, 통념적 언어질서에 복종하는 글스기는 약자의 글쓰기다. 반면 스스로의 감각과 사유와 상상을 생성해내고 즐기며 기성문법을 넘어서는 새롭고 낯선 소수언어를 만드는 자가 비로소 작가고 예술가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란 언제나 소수언어로서의 창작언어를 탄생시키는 일이다. 창작언어를 탄생시키는 일이란, 기성질서와 언어에 저항하고, 기성질서와 언어를 전복하고, 무엇보다 기성질서와 언어보다 더 강해지고 넉넉해진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창작언어는 자연스레 글쓴이의 개성이 묻어나는 언어이고 저항의 언어이고 전복의 언어이고 강자의 언어이고 난장의 언어다.-238쪽

결국 글쓰기는 '경험을 재현'하는게 아니라 '주제를 구현'하는 일이다. '글쓴이가 실제 경험한 내용인가?'하는 재현의 문제보다는 '글쓴이가 실제 고민(갈등)하는 주제가 담긴 내용인가?'하는 구현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경험을 갖고 글을 쓰기 보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글을 써야 견고한 짜임새를 갖춘 글을 구현할 수 있다.
어떤 작가에게 독특하고 강력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좋은 글감이 되겠지만, 그에게 독특하고 강렬한 주제의식이 없다면 글은 기껏해야 기록에 그칠 것이다.-254쪽

겉으로는 열심히 치열하게 읽고 쓰고 고민하는 듯하지만, 그것이 결코 열심히 치열하게 읽고 쓰고 고민한 것이 아닌 경우가 얼마든지 많다. 열심히 읽은 것이 아니라 조급하게 읽었거나, 많이 읽은 것이 아니라 방만하게 읽었거나, 성의껏 쓴게 아니라 욕심껏 쓴 것이거나, 자기 도약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자기 도취에 빠져 쓴 것이거나, 치열하게 고민한 것이 아니라 치졸하게 고민한 것이거나, 다양하게 고민한 것이 아니라 산만하게 고민한 것이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것이 아니라 혼자뿐인 시간을 가진 경우, 그러한 노력은 허사다. -3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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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8-31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앗표시라 인상깊네요^^ 열심히 해야겠어요

바람돌이 2009-09-01 08:47   좋아요 0 | URL
이 책 글을 잘 쓰는 방법은 아직 눈에 안들어오고 책을 잘읽는 방법은 눈에 번쩍 뜨이네요. 아무래도 제 관심사가 글 잘 쓰는거에 있지는 않나봐요.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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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의 책을 읽다보면 항상 마음이 불편하다.
어디를 찌르면 제일 독자가 찔려하고 마음 불편해할지 아는 듯하다. 

80년 광주에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고 괴로워하는 친구를 보며 해금이 자신에게 묻는다.
(친구가 죽었는데도) 나는 왜 잠도 잘 자고 밥도 잘먹는거냐고.....  

20살, 무엇을 해도 어떻게 꾸며도 어여쁠 그 시절
이제 막 어른의 문턱을 간신히 넘어와 세상이 모두 아름다워 보여야 마땅할 시절.
세상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고 외치고 싶을 그 시절
하지만 광주에 묶인 그들에겐 그렇게 치기어리고 예쁘야 할 시절, 그리고 좀 이기적이어도 괜찮을 그 시절을 늘 다른 것, 다른 사람의 고통, 다른 세상에게 빼앗겼다.
누구도 친구의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누구도 당당할 수 없었던 시절들....

80년 광주에서만 그럴까?
2009년 대한민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나는 여전히 밥도 맛나게 먹고, 잠도 잘잔다.
용산에서 사람이 죽어도, 쌍용노동자들이 절망적인 투쟁을 계속하고 있을때도....
같은 사람이 누구는 저렇게 죽도록 고생하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밥이 잘 넘어가도 되는건가?
마음속에서는 저들이 저러고 있는데 나는 이러고 있어도 되는건가라며 아우성을 치는데,
저들이 바로 나잖아! 근데 왜 나는 여기서 이렇게 사소한데만 목숨걸고 사는거냐고 난리인데,
그래도 그래도 밥은 목구멍으로 잘도 넘어간다.

친구 승희의 엄마는 처음으로 해금에게 진짜 위로를 던진다.  
"악아, 우지 마라. 사는 것은 죄가 아닌게로 우지를 마라."
그래 살려면 밥도 먹고 잠도 자야지...
사는건 죄가 아니라잖아.  
해금아 너도 그리고 나도 살자. 살아야지...
그런데도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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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살아있는 사람의 도리
    from 마주하다 2009-08-28 00:57 
    80년 광주에 대한 기억이 내겐 정확하게 없다. 그때 나는 일곱살이었고, 드문드문 뉴스를 보며 데모하는 모습이 나오면 폭도, 빨갱이는 죽여야지.라고 했던 어른들의 얘기들만 듣고 자랐으니 그때나 조금 더 커서나 데모를 하는 건 나쁜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때 멋진 담임 선생님을 만났었고 그분을 통해서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좋은 책들도 많이 읽게 되었다. '원숭이의 꽃신', '우동 한 그릇', '마루타', '돌베게'(이건 중3때 선생님
 
 
 
<거꾸로, 희망이다>를 리뷰해주세요
거꾸로, 희망이다 - 혼돈의 시대, 한국의 지성 12인에게 길을 묻다
김수행 외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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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에 내가 소싯적에 "돌아온 혁명가"라는 농담이 있었다.
운동권의 이론 논쟁이 한창이던 시절 진정한 혁명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누군가가 온갖 이론서적들을 끌어안고 산속에 들어가서 정말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고 결국 드디어 진리의 길, 혁명의 길을 발견한다.(아! 이건 무협지에서 정말 자주 써먹는 장면이다. ㅎㅎ)
그런데 돌아와보니 세상에나~~~ 이미 세상은 혁명이 끝나버렸다나 어쨌다나...
아주 뻔한 진실, 그러니까 결국 진짜 지식, 진짜 혁명의 길은 현실에 있다는 것, 그런데 그 현실을 벗어나버린 온갖 이론적 논쟁에 지친 이들이 만들어낸 농담일게다. 

그러면 지금은? 지금도 이 돌아온 혁명가라는 농담이 통할수 있을까?
아! 정말 썰렁하다.  이미 세상은 누구도 혁명을 말하지 않으니 저런 농담이 농담이 될 수 없는 시대인게다.
책의 표제에서 그렇게 말한다. 혼돈의 시대, 한국의 지성 12인에게 길을 묻다라고...
저 혼돈의 시대라는 말에 마음이 가 꽂힌다.
사실 세상이 혼돈의 시대가 아니었던 적이 과연 있기나 했던가?
80년대이전의 시절은 모두가 군부독재에 대항해 싸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적이 누구인지가 너무나 분명한 시절이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단순해보였고...
하지만 정말로 단순했을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저 세상을 보는 시선의 편협함이 세상을 단순화시켜버렸던게 아닌가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그렇게 싸웠는데도 아직도 세상이 요모양 요꼴이지 하면서...
그렇다면 지금은 적어도 혼돈의 시대, 무엇이 나아갈 길인지 누구도 제대로 알지못한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해야 하는건 아닐까싶기도 하다. 

지금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모두들 비판의 달인들이 된듯하다.
정부에, 정부의 정책 비판에 누구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듯...
그러나 동시에 모두가 묻는다.
그래서 대안이 뭐예요?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이놈의 세상이 달라지냐구요?
일단 이런 질문은 80년대와 지금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기대하는 대답은 정말이지 다르지 않을까?
80년대에는 그 대답이 혁명이라고 많은 사람이 기대했다. 다만 그 혁명으로 가는 길이 무어냐를 물었을뿐...
하지만 지금은 대안을 묻는 누구도 혁명을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쓸어엎어버릴 혁명을 빼버리고 나니 더더욱 대안은 궁색해진다.
누구도 이것이 길이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니 길에서 촛불을 들고, 술자리에서 정부 비판을 하고, 앞선 두 대통령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그 모든 행위들은 그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방향을 갖지 못한다.
모두들 그 자리에서 맴돌고 맴돌고... 어쩌면 그러다 지치기를 그 누군가는 바라고 있겠지... 

연구공간 수유 너머에서 펴내는 부커진에서 이들이 지금의 사회는 주류운동세력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다양한 소수자들의 운동에 의해서 바뀌어간다라는 논지를 읽었다.
주류에 대항하는 온갖 소수자들의 구멍내기가 결국 배를 침몰시키든 아니면 배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배로 개조하게 만들든지 할것이라는 논지였던것 같은데...
그때는 읽으면서 지나치게 낙관적인게 아닌가라는 의구심부터 들었었다.
그런데 요즘, 특히나 <거꾸로, 희망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들의 그런 실험적인 생각들이 마음에 와닿는걸 자꾸 느끼게 된다.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세력, 저항세력의 거대한 한 축들을 이루어온 이들이 강연을 하고 좀 더 젊은 이들이 사회와 질문을 한다.
모두들 거대 담론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다.
녹색평론의 김종철선생은 자율적인 상부상조의 공동체를 우리들 스스로 만들어서 자본과 국가라는 지배체제 바깥에서 살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러한 공동체는 농촌을 기반으로 할 수 밖에 없으며 그러한 농촌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못한다면 도시에서라도 농업적 가치, 농사를 도울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고.....
김수행선생은 사회보장을 지속적으로 줄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결국 시장의 축소를 가져오고 결국 그것이 세계적 규모의 공황을 불러왔다고 얘기한다. 개인이 부자가 되는 것과 모든 국민이 잘살게 되는 것은 분명히 다른데도 신자유주의는 그것을 헷갈리게 한다는 것.
이런 신자유주의하에서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본주의를 깨지 못하는 이상은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 모델의 유효성을 인정한다. 사회보장제도를 중심으로 노동자의 구매력을 향상시킬 것, 그럼으로 내수를 늘려야 하며, 일정정도의 계획경제, 중요 산업의 국유화를 통해 국민의 기본소득은 보장해주는 체제, 감세가 아니라 세금을 올려 재원을 마련할 것 - 결국 보다 확실하게 소득을 재분배할 수 있는 체제의 구축을 얘기한다. 이 정도라면 사실 자본주의 체제의 털끝도 건드리지 않는 체제 내에서의 개혁인데 이놈의 나라에서는 이것을 이루어내기도 참으로 멀어보이니...
한편 박원순 선생은 정부에 무엇을 얘기하지 않는다.
사회적 기업 - 아름다운 가게처럼 공공적 목적을 기업적적 방식으로 실현하는 기업, 각 지역의 특성에 기반한 향토산업의 활성화, 창조적 아이디어로 무장한 소기업의 활성화, 1만명을 고용한 1개 대기업이 아니라 1인을 고용한 1만개의 소기업을 만들어냄으로써 지금의 경제 위기를 원천적으로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제작소를 통해 이런 사업들을 위한 첫걸음을 떼어놓고 있다. 

경제의 해법을 찾아내고자 하는 위의 논지들과 함께 개인대 개인의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인간다움의 회복, 세상을 보는 제대로 된 시각의 확보를 위한 논지를 펼쳐주는 이들도 있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선생은 돈과 학벌의 굴레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의 자기자신과의 대면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역설한다. 조한혜정선생은 권력에 항거할 때 쓰는 언어가 실제 삶을 지배함으로 그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사냥꾼의 질서에서 벗어나 우정과 환대의 소통과 문화로의 전환을 위한 새로운 주술과 주문 언어를 만들어낼 필요성을 얘기하여 신선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책은 마지막으로 작년 이놈의 정부의 건국절논쟁과 관련하여 역사학자 서중석 선생의 입을 통해 건국절이란 명칭이 이 나라에서 친일파의 문제를 벗어날 수 있는 유력한 근거를 제시하며 동시에 남북의 분단이라는 상황에서 남한의 정통성을 확고하게 하는 남한만을 전체로 둔갑하는 논리가 됨을 살펴보며 제대로 된 역사인식의 필요성을 환기시킨다. 

결국 모든 이들이 궁극적인 대안을 내놓지는 않는다.
아니 누구도 그런 말을 하기에는 사실 지금의 세계가 너무 혼돈스럽잖아?
근데 다르게 생각하면 그 혼돈 자체가, 그래서 이렇게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비록 소수에서부터지만 그렇게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것. 비록 속도는 느릴지라도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대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들어가고 있다.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삶의 양식들이 나타나고 다양한 생각들이 출현하고 그렇게 다양한 모델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럼으로써 세상이 변화해나가는 것, 너무 낙관적인가?
현실은 너무 힘들고 어두운데 희망은 너무 소박하여 이걸 희망이라고 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리게 되지만 그럼 다른 대안은 있어? 라는 질문에 또 뭐라고 대답해야하나...
거꾸로 희망이다 그래 희망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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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9-09-05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굳이 피하고 있슴다. 사고싶지 않아요. 다 아는 얘기일까봐 왠지 겁난다고 할까요. 책장을 덮고 나면 어떤 생각일지..별로 궁금해하지 않는게 나을 것 같아서. 그래..이게 정답에 가까운거야...라고 하면 기분이 별로일거 같아요.
 
여러나라 이야기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6
정지용 지음 / 마루벌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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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엄마의 그림을 통해서 본 여러 나라 이야기.
보통 이런 류의 책들이 각 나라의 지리나 풍습 특색등을 여러가지 정보제공의 형태로 설명하고자 하다보니 아이들이 보기엔 딱딱해지기 쉽다.
근데 이 책은 그런 정보제공에 대한 욕심을 아주 많이 줄였다.
여러 나라에서 한 가지 이야기들을 뽑아 다정하게 얘기해주면서 그 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시킨다고 할까? 

미국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생명 모두를 자연이 주는 선물이라고 믿고 소중히 여긴 인디언에 대한 얘기를 한다. 인디언들의 집인 티피그림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절대왕정기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뜨와네뜨의 사치스런 생활과 그 때문에 가난했던 백성들에 대해서 얘기한다. 마리 앙트와네트의 탑처럼 솟은 가발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책을 읽다가 아이는 프랑스 국민들이 참 안됐다고 중얼거린다. 

영국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이야기를 통해 세익스피어를 얘기하고, 이집트의 내세관과 피라미드, 그리스신화와 헤라클레스,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생활, 타지마할의 유래를 통해 본 인도, 여성의 화장풍습을 통해본 일본, 그리고 한국의 이순신
각 나라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들이 어떤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 나라를 대표하는데 적당한가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긍정적인 답을 내기는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각 나라에 대한 아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기에는 충분하다고나 할까?
책에서는 한 장면의 그림과 짧은 글로 표현되었지만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아이들과 나눌 수 있은 이야기들은 더 많을 것이다.
그림 속 인디언들이 왜 사막같은 곳에 살고있는지, 마리 앙트와네트는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이집트의 피라미드내부에는 어떤 그림들이 더 있는지...
하여튼 아이들과는 이야기를 풀어내면 낼수록 더 많은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리고 이 모든 그림들이 아이들을 위해 엄마가 만든 그림책이 된다는 설정도 살짝 미소를 짓게 하는 따뜻한 설정이다.
엄마가 만든 그림책을 받아든 아이들의 마음을 간접적이지만 살짝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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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9-08-21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욕심에 이것저것 더 보여주고 싶었을텐데 한가씩으로로 더 호기심 자극했군요..역시~!

바람돌이 2009-08-21 11:37   좋아요 0 | URL
책이든 말이든 뭐든지 하고 싶은 말을 줄이고 추려내는게 더 힘든 법이잖아요. 아직 본격적으로 다른 나라를 보기는 힘든 아이들한테 출발로 좋을 것 같은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