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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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을때가 있다.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고통인, 또는 어떤 말을 해야 타인의 상처를 쓰다듬어줄 수 있는지 알 수없는 그렇게 감당이 안되는 감정들이 있다.

올해 세월호가 그렇고, 그리고 광주가 그렇다.

 

광주의 영상들을 수십번도 넘게 봤음에도 그럼에도 늘 머릿속에 말은 넘쳐나는데 그것을 뱉어낼수가 없다.

아픈 역사를 하나씩 하나씩 짚으며 수업을 진행하면서 늘 가슴이 아프지만 그래도 광주에 이르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식민지시대의 아픔도, 한국전쟁도, 4.19도, 유신시절도 역사적 상황으로 대치가 되지만, 광주는 여전히 역사속에 묻히지가 않는다.

울컥하는 순간 깨닫는다.

아직 광주는 현재진행형이구나!

우리는 아직도 광주의 목소리를 다 듣지 못했구나!

아직 들어야 할 이야기가 그래서 내가 한덩어리가 되어 보듬어 안아야 할 이야기가 많고도 많구나....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아직 미처 다 듣지 못했던 그 목소리들을 듣는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57~58쪽)

 

 

 

묵묵히 쌀알을 씹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 년 동안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85쪽)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더너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114쪽)

 

 

동호,정대, 정미,  진수, 은숙, 선주, 영재.....

흔하디 흔한 이름들속에 숨죽이고 있던 그 많은 이야기들을 아직은 더 들어야 하나보다.

아직 내가, 우리가 더 듣지 못해서 세상의 변화가 이리도 더딘가보다.

듣고 듣고 잊지 않으리라.

 

----------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진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작가 자신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고통스러움이 마음에 잡힐듯하지만 그럼에도 덕분에 광주를 형상화한 문학이 한 고비를 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후일담으로서의 광주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서의 광주를 여기 이자리에 다시 돌려놓아준 한강 작가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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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룸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10 링컨 라임 시리즈 10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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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물만두님의 4주기다.

추리소설을 읽는 순간, 그리고 리뷰를 쓰는 순간 늘 물만두님이 떠오른다.

 만두님 덕분에 추리소설의 재미를 알았고, 그 중에서도 제프리 디버를 만난건 정말 행운이었다.

만두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도 이 링컨 라임시리즈를 못봤으리라...

부디 아픔이 없는 곳에서 편안하시길......

 

링컨 라임 시리즈 10번째

이제 제프리 디버식의 반전과 트릭은 익숙해져서 딱히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 또한 있다.

이쯤에서 반전이 나와줘야 해 하면서 페이지를 넘기며 두근거리는 느낌말이다.

 

예전에 아프가니스탄의 시골마을에 대한 미국의 공중폭격화면을 본적이 있다.

쏟아지는 폭탄속에 어찌할바를 모르고 개미처럼 우왕좌왕하던 사람들....

전쟁이 인간 대 인간이 아니라 기계 대 인간이 되고 있구나,

그래서 무슨 컴퓨터 게임화면처럼 펼쳐지던 영상은 다른 세계같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저기에서 저렇게 필사적으로 뛰어가고 있는 이들이 인간이 맞는걸까?

그리고 또 TV에서 미국에서 무인비행기 드론을 이용한 택배뉴스를 보면서 섬뜩했던 기억이 있다.

아 저거 곧 군사용으로 사용되겠구나, 아니 원래 군사용으로 개발했겠구나 싶은....

군대니 무기니 하는 것에 관심이 없어서 몰랐을 뿐이지 이미 드론의 무기화는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었던 거였다.

이제 미국 뉴욕의 사무실에 앉아 전쟁을 하는 시대가 되겠구나

이제 전쟁은 가해자의 고통을 최소화 시키고 피해자의 아픔에 완전히 눈돌릴수도 있겠구나....

 

이번에 링컨 라임 시리즈의 주요 소재는 바로 이 드론이다.

미국의 대테러 작전 수행과 그 과정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쫓아간다.

이전 작품 <브로큰 윈도>나 <버닝 와이어>들에서도 미국의 거대한 각종 권력들에 대해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선보였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작정하고 스케일을 키웠다.

미국의 대외정책(대 테러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살인사건을 풀어나간다.

(하지만 미국인들의 비판의식은 항상 어딘가 한군데가 뚫려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제프리 디버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나라 미국의 뛰어남을 전제한 상태에서, 내부정화의 능력을 확신하는 상태에서의 비판이랄까?)

하지만 제프리디버의 소설을 특히나 이 링컨라임시리즈의 재미는 스케일에 있지 않다.

스케일이 커지면서 오히려 소설의 극적 긴장감은 예전 시리즈만 못하다는 느낌이다.

짧은 시간동안 꽉 짜여진 구성에 살인범과의 심리적 대립, 대결구도가 이 시리즈의 최대 강점이었는데,

이번에는 그 구도가 무너지면서 좀 빈듯한 느낌이다.

시리즈 11에서는 원래의 링컨 라임으로 돌아왔으면싶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 총을 든 링컨 라임과 그 과정에서 새롭게 자신을 자각하는 링컨에 대한 에피소드는 흥미로웠다.

스포일러라 뭐라 말하지는 못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의 심리가 개인의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짧은 에피소드지만 흥미롭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내게는 가끔 이런 작은 에피소드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으면서 이 시리즈를 계속 기다리게 하는 힘이 된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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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4-12-13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이 아니었다면 4주기인지도 모르고 지나갈 뻔했네요!!!!ㅠㅠ 저도 고인을 가끔 생각해요~~~~책으로 여러사람에게 영향을 주신 분이죠~~. 시험도 끝났으니 물만두의 추리책방 꺼내서 읽어봐야 겠어요. 그리고 제프리 디버도 찾아볼래요.

한깨짱 2014-12-1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장르소설이 정말 보고 싶었는데, 우연찮게 만나게 되네요.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이탈리아 오래된 도시로 미술여행을 떠나다 - 미술사학자 고종희와 함께 이상의 도서관 26
고종희 지음 / 한길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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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모든 것을 말한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 이탈리아 여행.

문득 떠오르는 도시만 해도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나폴리, 품페이.......

보고싶은 것들을 아는 것만 열거해도 끝없이 이어질 리스트를 정리하기 위해 손에 든 책이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보고 싶은 것이야 자연도 있겠지만 뭐니뭐니해도 미술이다.

근대 이전 이탈리아는 항상 서양 미술의 중심지였다.

고대 로마제국의 건축과 미술, 중세 성베드로성당과 미술품들 그리고 중세 교회들,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생각해보니 용도가 분명해진다.

서양미술사 공부를 이제 시작해보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워밍업으로 딱 알맞은 책이다.

 

깊이 있는 학술서는 아니지만 이탈리아 여행에서 어떤 것들을 볼 수 있는지를 잘 정리해놓았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같은 유명한 도시들도 있지만,

시에나, 아시시, 라벤나, 파도바같은 작은 도시들도 놓치지 않는다.

이 작은 도시들은 도시가 작지, 도시가 품고있는 미술품들의 양과 질을 보면 결코 소도시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라벤나라는 작은 도시는 이

책을 보면서 꼭 가고싶은 도시로 확 떠올랐다.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화들, 특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테오도라 황후의 모자이크화로 유명한 성비탈레 성당이 여기에 있었다니 결코 놓칠 수 없는 도시다.

 

예전 로마인 이야기를 읽을 때 로마인들이 그리스인들을 가리켜 조상 잘만나서 호강하는 재수없는 인간 취급을 한다더니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이탈리아인들이 딱 그 말에 맞을 듯하다. 재수없다는 대목은 내가 모르는 바니 빼고.... ^^

책을 읽으며 하나씩 하나씩 밑줄을 치고 가고싶은 도시를 고르고 도시에서 봐야 할 것들을 고르다보니 어느새 이탈리아 한바퀴를 돌고 온듯하다.

기다려라 이탈리아! 언젠가는 꼭 가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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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12-13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탈리아 가고 싶은곳 1순위예요.
막 떠나고 싶어라~~~
오늘 딸내미 쌍커플 수술 상담 갔는데 견적 3백만원! 이탈리아 날라갔네요.ㅜ

바람돌이 2014-12-13 13:32   좋아요 0 | URL
ㅎㅎㅎ 요즘 수능끝내고 나면 하고싶은 버킷리스트 1위가 쌍커플 수술이더군요. ^^
하는 김에 조금 더 손보니까 견적 저렇게 나오더라구요. 정말 돈땡이들.... ^^
음 저는 지금부터 애들한테 니 눈 제일 예쁘다 소리를 하루에 10번씩 하기로 결심했어요.
돈 없어요. ^^;;

라로 2014-12-13 14:59   좋아요 0 | URL
나도 쌍커풀 수술할까???ㅎㅎㅎㅎ 보림인 하면 정말 엄마보다 이뻐지겠다!!!!!

라로 2014-12-13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로마에서 도둑을 당해서 그런가 아직도 그 원망(? 정말 고생 했어요. 여권까지 도둑 맞아서 ㅎㅎㅎㅎ)이 풀어지지 않았나봐요~~~~~ㅠㅠ 이제 슬슬 용서를 할까요????ㅎㅎㅎ

바람돌이 2014-12-15 08:48   좋아요 0 | URL
여권 도둑은 정말 아찔하셨겠군요. ㅎㅎ 여행가서 돈으로 그나마 해결되는건 다행인데 여권은 해결하기 위한 노력과 시간이 여행시간을 다 잡아먹잖아요. 예전에 스페인가서 카메라 도둑맞았었는데 그게 차라리 나은듯.... ^^

춤추는인생. 2014-12-15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탈리아... 저 이번주에 가요 바람돌이님. 그런데 윗분이 말씀하신것처럼 소매치기때문에 완전 걱정이 많아요 ㅠㅠ
로마인들 그리스인들한데 뭐라하면 안되죠. 조상잘만서 지금까지 관광산업으로 호강하는 제일의 도시이니까요 ㅋㅋ
미드중에 로마시즌있어요 저는 가기전에 보려구 봤는데 너무 잼나더라구요 (어디까지나 드라마지만요 ^^)

바람돌이 2014-12-16 13:20   좋아요 0 | URL
이런 스위스로 모자라 이탈리아를.... 이건 부러움의 광선을 몇배쯤 더 보내야 할듯.... ^^
소매치기는 사람많은 곳은 어디든지 방심하지 마시고요. 잠시 방심하면 그냥 가져가더라구요. ㅎㅎ 즐거운 여행되시고 이탈리아한테 안부전해주세요. 제가 갈때까지 그대로 잘 있으라고.... ^^
 
이주헌의 서양미술 특강 - 우리 시각으로 다시 보는 서양미술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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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조곤조곤 살뜰하게 서양미술을 이야기하던 이주헌씨가 그간의 이야기들을 한권에 압축했다.

저자 스스로 서문에서 17년간의 강의내용을 압축했다고 말한데서 알 수 있듯이

책의 내용은 대단히 명쾌하고 정리가 잘되어있다.

마치 시험직전에 보는 적중 정리용 문제집같다고나 할까......

 

이 책에서는 서양미술의 특징을 3가지로 압축한다.

인간중심의 미술, 사실주의미술, 감각주의 미술이 그것이다.

이런 3가지의 특징을 풍부한 도판을 통해 조곤조곤 얘기해가는 것은 이전의 책들과 다를 바 없지만 이번 책에서 약간 다른 점은 한국미술 또는 동양미술과의 비교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도는 상당히 성공적인 듯 보이는데 원래 어떤 논리나 설명에서도 비교라는 수단은 아주 효용적이다.

즉 비교를 통해 나를 상대화시킬수 있을 때 그 고유의 특징이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양의 인간중심 미술의 특징을 간단히 보면

최고의 미술 장르로 역사화를 위치시키고, 인물의 감정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기 때문이며 이것이 기술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원근법의 발견이다.

원근법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나라는 주체가 바라보는 세계이다.

즉 나의 입장에서 봤을 때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이 핵심이다.

동양화에서는 자연은 내가 바라보는 자연이 아니다.

자연은 존재하는 것이고 그 자연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 대상화시킬 수 없는 자연이다.

이렇게도 동양과 서양의 자연관은 다르다.

 

이러한 경향은 사실주의의 발달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그리스의 역사와 사회의 특징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서양미술의 역사는 '나'라는 주체가 대상을 얼마나 잘 인식할 수 있고 그것을 실제와 가깝게 구체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르네상스미술이든 바로크든 로코코든 표현법의 차이일뿐 본질에서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또한 감각주의라는 것 역시 온 몸의 감각 특히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서 사실주의와 맞닿아있다.

이러한 서양미술의 전통은 그들의 철학의 발달, 합리적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개인의 위치와 의미를 끊임없이 탐구했던 것과 궤를 같이 한다 할 수 있겠다.

 

반면 우리 미술에서는 지나친 사실적 표현은 외형묘사에 지나친 에너지를 쏟게 되어 사물의 본성을 통찰하고 표현하는 일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차이는 말 그대로 차이이며 개인적 사회적 취향의 문제일뿐,

이것이 문화의 우월성으로 판단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그 차이가 만들어내는 문화의 간극은 깊고도 넓다.

 

이주헌씨의 설명을 따라가다보면 문화적 전통이라는것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된다.

동양화의 여백을 보면서 저절로 편안함을 느끼는 내가 서양화의 꽉찬 화면을 보면서 가끔씩 갑갑함을 느낄 때가 있다.

또한 한국화의 그림들을 보면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그림의 의미가 확 와닿을때가 많은데 서양화는 끊임없이 설명을 읽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게 대부분인게 이렇게 생래적인 문화의 차이때문이구나 싶기도 하다.

내가 느끼는 이런 감정을 아마도 서양인들은 동양화에서 똑같이 느끼지 않을까?

 

책을 읽다가 문득 얼마전에 봤던 뤽 베송 감독의 영화 <루시>가 생각났다.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루시를 보러왔다가 우씨!! 하게 될줄이야..."

우스개소리로 이렇게 툴툴거리며 나왔던 기억이다.

 

요즘 동양사상이나 문화에 관심을 표하는 서양인들이 많은듯한데 뤽 베송 역시 그런 느낌이었다.

서양의 과학이 돌파하지 못하는 인간능력의 한계를 동양적 사유들을 통해 풀어보려했다는 느낌.

그런데 그들이 표현하는 동양적 사유란게 왠지 어설퍼 그것도 역시 서양의 논리라는 프리즘을 통해 이해하려 했던게 아닐까싶다.

논리의 영역이 아닌 것을 죽어도 논리로 풀어내고자 하는....

오랜 세월동안의 문화적 차이가 만들어낸 간극을 극복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느꼈다.

그것은 결국 내가 서양미술을 이해하는 것도 참으로 쉽지 않으리라는 것으로 통하리라.

 

그래도 이주헌씨의 책은 이 방면에서 늘 친절한 안내자역할을 한다.

서양미술을 접하면서 만날 수 밖에 없는 차이의 간극을 최소화시킬 수 있도록 해주고,

독자를 주눅들게 하지 않으면서도 명쾌한 안내자.

서양미술에 대해 입문서적인 책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은 최고의 책일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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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12-1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조근조근 설명해주는 글 읽다가 루시 우씨!가 눈에 들어오니 웃음이 납니다....ㅎㅎ

오늘은 도서관에서 김선우의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시집 읽고 있어요.
딱정벌레의 시체놀이를 보면서 내 일상과 연관지어 들려주는 솔직, 담백한 시가 좋으네요^^

바람돌이 2014-12-12 09:35   좋아요 0 | URL
아주 가끔이지만 학교에서 책을 볼 때 아 이 직업이 좋구나 싶어요. 어느 직장에서 근무시간 중간에 책을 볼 수 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세실님이나 저랑은 복받은 것 같아요. ^^
 
스캔들 세계사 3 - 로코코의 여왕에서 신의 분노 흑사병까지, 화려하고 치명적인 유럽 역사 이야기 풍경이 있는 역사 3
이주은 지음 / 파피에(딱정벌레)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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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뒷표지에 보면

 

"역사를 이야기 형식으로 가르친다면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 J.R. 키플링(정글북 작가)"

 

이 책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출판사의 선전문구이다.

아 근데 나는 이 한 줄의 글이 어찌나 거슬리는지....

영국인 키플링이 어떤 맥락에서 저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 말을 한 키플링이 역사를 제대로 교육받은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키플링은 아주 견고한 제국주의자의 논리로 무장하고 그 논리를 문학으로 전파했었다.

 

         백인의 의무    -키플링-

백인의 의무를 다하라

너희가 가진 최정예를 파견하라

용사들은 쉽게 못 돌아올 것이니

새 백성들은 교화할 일이 너무도 많은 탓이라

무력도 불사해야 하리라

참으로 미개한 원주민들,

막 포획되어 아직 야수와 같은

사납고도 유치한 이 무리들에게는

 

 

식민지 경험을 한 우리는 키플링이 말하는 바 미개한 원주민들에 속했다.

제국주의자들의 최정예 군대에 의해 무력을 통해서라도 교화를 받아야 하는....

출판사가 어떤 의도로 저 문구를 광고 문구로 선택했는지 그 의도는 알겠으나,

이 의도가 읽는 독자들에게 과잉 해석되어 마치 지금 학교의 역사교육이나 어린 시절의 역사교육이 재미가 없어서 내가 역사를 못했다는, 그래서 역사교육이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통한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로 귀결되어버리는 걸 자주 목격했다.

물론 이것은 출판사의 본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래 의도와 달라지는 일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야기라는 형식 또는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스토리텔링은 결국 역사교육의 방법론일 뿐이다. 효과적인만큼 한계도 분명한..... 

방법론을 본질적인 내용으로 치환해버리는 오류를 조장한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건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일까?

 

거창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사실 하고 싶은 얘기는 별게 아니다.

이 책은 역사를 소재로 한 이야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이야기'이다.

그냥 재밌는 이야기... 더더구나 저자의 입담과 글솜씨가 좋아서 상당히 재밌게 읽히는 이야기.

어릴 적 할머니같은 어른들에게서 귀를 쫑긋대며 듣던, 또는 몇권 안돼서 아끼고 아끼며 읽던 동화책속의 이야기들.

이야기들은 재밌게 읽으면 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즐겁게 읽어 달랬다.

쓸데없이 과도한 의미무여를 할게 아니라는거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 건 꽤나 즐거웠다.

'스캔들'이란 말 자체의 사전적 의미가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지 않은가?

원래 무난하고 도덕적인건 재미가 없다.

얘기 중에서도 뒷담화가 재미로는 최고다.

세계는 넓고도 오래됐으니 웃기고, 슬프고, 부도덕하고, 충격적인 인물들, 사건들은 넘쳐난다.

뒷담화를 할 소재가 무궁무진하다는거다.

그들의 사생활을 엿보고 본격적으로 뒷담화를 해보는건 재미의 영역만큼은 확실히 보장한다. 물론 최소한의 말솜씨는 있어야겠지만....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도 이야기꾼을 잘못 만나면 얼마나 썰렁해지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인 이주은씨는 상당히 숙련되고 세련된 이야기꾼이다.

걸쭉한 입담은 아니지만 조근조근 맛깔나게 말을 버무릴줄 아는 이야기꾼이다.

 

또한 책속 각 장의 부제들을 보면

'합스부르크 가문, 악마를 낳다' '여왕의 연인, 그리고 슬픈 부인', '오스만 제국의 올드보이', '왕의 자리를 탐낸 꽃미남'......

이런 걸 선정적이라 하던가?

이런 제목들 치고 실제 내용이 부실하지 않은 경우가 드문데 의외로 이 책은 내용도 상당히 충실한 편이다.(덕분에 벌써 3권까지 나왔고 나 역시 1-3권을 다 읽었다)

이런 글들의 특성상 전체적인 내용에서 논쟁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빼거나 ~카더라 식으로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면서도 필요한 자료나 증거들은 성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즉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일 수 있는 자료들을 잘 수집하고 버무려놓았다.

또한 흑사병의 전파과정이나 이유들, 마녀재판의 이야기, 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렸다는 조지 카버의 일생 같은 이야기는 선정성과 상관없이 생각해볼 거리들을 제공하여 약간의 지적 만족감을 느끼게도 한다.

 

이정도면 좋은 이야기책이라고 할만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괜히 역사책이라고 우기지 않는다면 그냥 역사를 소재로 잘 만든 이야기책으로 읽는다면 충분히 즐거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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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9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14-12-09 23:28   좋아요 0 | URL
우와 돌바람님 정말 오랫만이죠. 뭐 제가 게으르고 무심해서인지라 죄송하기만 해요. ㅠ.ㅠ
잘 지내시죠? 오랫만에 들어와서 여러분들이 그래도 잊지 않고 이렇게 인사해주시면 너무 반갑고 또 한편으로는 죄송하고 그래요. ㅎㅎ
집 주소는 그대로예요. 늘 게으른 저인지라 이사같은 어려운 일은 못한답니다. 반드시가 아니면요. ^^
자주 들를게요.

바람돌이 2014-12-12 09:45   좋아요 0 | URL
돌바람님 정말 감사하게 책 받았어요. 어젯밤 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책이 와있더라구요.
예전에 등단하셨다는 얘기는 잠시 들었지만 이후 전태일 문학상까지 받으신지는 정말 몰랐어요. 의미도 큰 상이잖아요. 제 이름을 넣은 사인본 책은 진짜 감동이에요. 이런 훌륭한 작가님과 아는 사이라니, 제 자랑거리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

귀한책 잘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서재를 막아놓으신건가요? 님의 서재로 들어가지지가 않네요.
또 하나 따로 써주신 타이프체 편지는 진짜 타이프인가요? 아님 새로운 글씨체?
오랫만에 타이프 글씨를 보니 옛날 생각이 나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