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 36 : 회화 - 우리 문화와 역사를 담은 옛 그림의 아름다움
백인산 지음 / 컬처그라퍼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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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역할을 보다 많은 대중에게로의 전시에 둘것이냐, 아니면 작품의 보존과 연구에 중점을 둘것이냐?

쉽게 답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또한 사람에 따라서 정말 다양한 의견과 생각이 제시될 수 있다고 본다.

아마도 그 의견들 대부분은 나름의 논리적, 심증적 근거를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 스스로가 대중의 입장에서 그동안의 간송미술관의 활동방법에 대해서는 불만이 좀 많았었다.

1년에 2번, 무슨 시혜처럼 베풀어지는 소장품의 공개, 거기다 그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좁은 미술관 공간, 그리고 사설 미술관의 재정적 한계라는건 알지만 세련되지도 못하고, 친절하지도 않은 전시방식, 즉 연도와 작품이름, 작가이름만 덜렁 적어놓은 전시방식은 뭐 전문가들만 와서 보라는거야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물론 간송미술관이 자신들의 역할을 연구와 보존에 중점을 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간송미술관의 정책에도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일명 DDP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는 간송미술관 소장품 전시회(지금 3기 전시가 진행중이다)와 이 책 <간송미술 36 : 회화>의 출간이 그것이다.

또한 인터뷰형식으로 진행된 이 책의 저자 서문에서도 대중을 향한 조심스러운 첫걸음을 확인할 수 있어 반가웠다.

 

저자 서문에서 재밌는 말이 있어 살짝 옮겨본다. 또한 이 책을 읽는 키워드가 될 수도 있을듯하다.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그건 아는 것밖에 안 보인다는 말도 될 수가 있어요. 게다가 자기가 알아낸 것도 아니고 남이 알려준거잖아요. 그때는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들지만 금방 쉽게 잊어버립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오래전 유홍준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한 이후로 광풍처럼 몰아친, 그래서 지금은 문화유산이나 예술작품을 보는데서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말이다.

여기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 것도 재밌고, 실상 아는 것이 어떻게 알게된 것이냐에 대한 문제제기도 재밌다.

결국 알기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관점으로 자신의 생각으로 미술품을 볼 수 있어야 진짜 제대로 보인다는 것이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고 그림의 기법과 배경을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하다못해 도망간 여자친구라도 떠올릴 수 있어야 실제 그림의 아름다움에 진정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조선시대 대표회화들의 배경과 기법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얘기하기도 하지만 그림과 예술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끊임없이 얘기하고 있는것이 바로 이런 의도에서인듯하다.

 

책의 만듦새를 보면 제대로 된 그림책을 만들기 위한 배려가 곳곳에서 우러난다.

이런 책은 도판의 인쇄상태, 종이의 질 등이 모두 중요한데 전문가가 아니라 종이종류가 어떻고 할 수준은 전혀 안되지만 상당히 비싼 고급지임은 확실해보인다.

또한 도판의 인쇄상태 역시 이전 내가 실제로 봤던 그림들을 떠올려봐도 이정도면 아주 훌륭하다.

놓치기 쉬운 배려도 눈에 띄는데 그림을 최대한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림이 있는 면은 아주 연한 노랑으로 바탕면을 다시 깔아준 것이 그것이다.

그림을 감상하는데 글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편집을 시원하게 했고 그림의 제목과 그림을 나란히 배치하기 위해 앞의 글이 짝수 페이지에서 끝날 경우 다음 한페이지를 아예 공백으로 두는 것도 책의 단가보다는 가독성을 우위에 둔 배려로 돋보였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때 페이지에 비해서 책값이 너무 비싼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책을 다 보고 난 지금 그 책값이 결코 비싸지 않음을 알겠다.

이런 책은 싸게 만드는게 능사가 아니라 제대로 볼 수 있게 만드는게 중요하다고 할때 그 기본에 가장 충실한 편집을 보여준 출판사에 대한 신뢰도가 살짝 올라간다.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면 행복한 순간들의 연속이다.

과연 명품들의 향연이라 할만하다.

처음 리뷰를 쓰고자 할때는 포토리뷰를 생각했으나 되지도 않는 사진실력으로 어정쩡하게 그림을 올리는건 작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은 실제로 보는 것이 최고고, 다음은 되도록이면 좋은 도판으로 보아야 한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회화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성있고 지명도가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덕분에 아는 그림도 많고 대부분의 작가가 어디선가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았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명품이되 부담스럽지 않게 편안한 마음으로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의 의미가 뭐일까를 계속 생각했었다.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은 시대를 본다는 것이고, 동시에 미적 감성의 공유를 통해 지금의 나를 들여다보는 것같다.

그러므로 옛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역사적 배경이나 작가에 대한 지식이 어느정도는 필요할 것 같고, 그러면서도 여기에 얽매이지 않는 나의 마음으로 그림을 보는 연습 이 양자가 함께 어울릴때 그림이 좀 더 깊이 보아지지 않을까 싶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의 저자는 상당히 좋은 안내자라는 생각이 든다.

 

시대적인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한 그림이야기로 인상깊었던 것들을 짚어보자.

첫 번째 그림으로 신사임당의 포도그림이 나온다.

음... 신사임당 하면 대표작이 초충도 아닌가? 그런데 대표작이 포도그림??

이런 의문이 드는데 실제로 사임당 당대의 평가를 보면 신사임당은 산수화와 포도 그림에 대한 평가가 높았다고 한다.

그런데 후대에 우암 송시열의 글을 결정적 계기로 하여  화가로서의 사임당보다는 율곡의 어머니로서의 사임당에게 어울리는 그림을 더 평가하게 되는 웃지못할 이데올로기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우암 송시열답다고나 할까?

 

이정의 작품 <풍죽>을 보면 바람앞에 흔들리면서도 꼿꼿함을 잃지 않는 대나무의 기개가 선비의 기개처럼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맞서야 하는 안타까움도 같이 느껴진다. 이는 이정이라는 화가의 개인사-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칼을 맞아 팔이 잘려나갈 뻔한-를 알고 보면 더 마음으로 와닿게 되기도 한다.

그런 이정의 말년의 그림 <문월도 -달에게 묻다>를 보면 이 위대한 대가가 개인적인 고난을 이겨내고 드디어 도달한 경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단 2개의 그림으로 이정이라는 대화가의 삶이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착시를 경험하다니 이는 뛰어난 안내자의 힘인듯도 하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들은 워낙에 알려진 그림들이지만 그럼에도 <단발령 망금강>을 저자의 설명과 함께 다시 보는 것은 새롭다. 동시에 이 대가가 그린 또다른 분위기의 <서과투서 - 수박 훔치는 쥐>의 그림은 같은 화가가 그린 그림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정겹고도 유머감각이 넘쳐난다.

 

조선후기 조선남종화를 탄생시킨 심사정의 그림은 사실 평소에는 그리 감흥이 없던 그림인데 이 책에 소개된 <삼일포>는 새롭게 알게된 저자의 불우하고도 불우했던 일생과 같이 보다보면 그 쓸쓸함이 배가되어 애잔한 마음이 든다. 더불어 눈내리는 삼일포를 그린것으로 알던 것이 실제로는 눈이 아니라 보관의 잘못으로 좀이 쓸어 구멍이 뚫린 것이라는 설명을 듣다보면 오히려 그림의 애잔함이 더해지는 기가막힌 우연을 만나게도 된다.

 

추사 김정희의 그림을 통해 쓰러져가는 조선의 마지막을 선비의 학문과 기개로 헤쳐나가고자 했던 그 마음이 그림을 통해 읽혀지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마지막의 몸부림이 지나친 경직화로 이어지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모든 그림이 이러한 시대적, 개인적 사회사를 통해서만 읽혀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그림들은 그것과 상관없이 보는 순간 무한한 아름다움의 세계로 이끌기도 한다.

강세황의 <향원익청-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다>속의 연꽃의 아름다움은 그 향기가 책을 뚫고 배여나오는 듯하고,

김홍도의 <마상청앵 -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을 보면 인생의 후반기에 선 노대가의 마음이 손에 잡힐 듯하다.

또한 역시 김홍도의 <황묘농접 - 노란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속의 어린 고양이는 당장이라도 포근히 안아주고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온갖 감정을 모두 느낀 듯하기가 쉽지 않은데,

역시 뛰어난 예술은 하나 하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임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책장 속에 꽂아두고 두고두고 펴가면서 보고 또 보고싶은 책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명백한 진리이지만, 그 아는 것을 뛰어넘는 것이 또한 예술을 보는 제대로 된 힘임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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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1-08 0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책 정말 읽어보고싶게 만드는 글을 쓰셨어요. ^^
간송미술관 딱 한번 가봤는데, 그 기억도 이제는 가물가물하네요

바람돌이 2015-01-09 16:37   좋아요 1 | URL
두 번 가기 힘든곳이 간송미술관이잖아요. ^^
이 책 보고는 다른 소장품들에게 대해서도 이런 책을 좀 더 내줬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자신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간송미술관 팀이 지나치게 폐쇄적이란 느낌을 많이 받았었거든요.

라로 2015-01-08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형필의 책을 읽었지만 간송미술관에는 가보지 못하고 미국에 와버려서 늘 안타까워요. 이 글을 읽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꼭 가보고 싶네요~~~.

바람돌이 2015-01-09 16:39   좋아요 0 | URL
한국에서도 쉽지 않은데 그곳에서 간송미술관을 가보려면 정말 신의 도움이 있어야 할 듯하군요. 일년에 2번(일주일씩인가?)밖에 안 열어요. ㅠ.ㅠ
부디 비비아님에게 그런 축복같은 행운이 가기를..... ^^

라로 2015-01-10 00:52   좋아요 0 | URL
일년에 두 번 일주일!! 그래서 제가 결국은 못 보고 온 거에요,,,ㅠㅠ 근데 정말 행운이 따라줬으면 좋겠어요~~~.엉엉

바람돌이 2015-01-10 01:41   좋아요 0 | URL
요즘 간송미술관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3번째 전시회인데 5월까지 한다죠. ^^ 혹시 그전에 한국으로 출장이....

돌궐 2015-01-08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소개 잘봤습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는 `만들어진 명작`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저런 평가들과 별개로 또 초충도 자세히 보면 정말 동물이나 곤충들 잘 그린 거 같아요.
아는 게 보는 걸 가릴 때도 있다고 하잖아요. - 명법스님 책에 나온 말이에요.^^

바람돌이 2015-01-09 16:41   좋아요 0 | URL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유명세를 띄면서 모작이 정말 많이 만들어졌다더군요. 그래서 지금 남아있는 그림들의 진위여부가 사실 의심스럼다는 말도 이 책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식으로 생각하면 진위여부야 미술사가들에게 중요한거고, 그걸 실제로 신사임당의 그림이라고 믿을만큼 멋지다는거잖아요. 미술의 즐기는 입장이 저같은 사람이야 그렇게 멋진 그림을 볼 수 있으니 베낀것도 고맙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

댄스는 맨홀 2015-01-09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담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ㅎㅎ

바람돌이 2015-01-09 22:17   좋아요 0 | URL
저는 좋았습니다. 책의 만듦새도 내용도요. ^^

달걀부인 2015-01-28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읽었습니다. 전 간송미술관빠예요. 일년에 두번밖에 열지않지만..가끔 거기 정원가서 놀다와도.. 친절하지도 않지만...거긴 식민지시대부터 우리것을 지키고자한 어떤 무시무시한...정신이 서려있는듯 하거든요.사색하기에 좋은 장소. 아. 바로 그옆에 섭지코지도 맛있어서..밥도 먹고요.. 이러나저러나 이 책이 얼마인지 궁금하네요.

바람돌이 2015-01-28 23:37   좋아요 0 | URL
서울에 산다면 일년에 2번이라도 가는게 아주 어려운건 아닐 수 있지만 지방사는 저는 정말 저 날짜에 맞춰서 보러가는건 정말 쉽지 않아요. 간송이 지키고자 한 정신은 기리고 감사히 여겨야 할 게 분명 맞지만 시대가 바꾸면 그 정신은 다른 방법으로의 표현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책값은 책소개 보시면 뭐.... 2만원이네요. ^^
 
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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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무언가가 '쨍'하고 깨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불현듯 갑자기 들이닥친듯 싶지만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보면 그 전부터 실금이 하나씩 하나씩 늘어나고 있었던거다.

그리고 한계에 달한 순간 쨍! 무너져내린다.

 

이 단편집의

<일시적인 문제> <질병 통역사> <섹시>같은 작품들은 무너지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감정의 선들과 무너지는 그 순간의 아찔함들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분명히 얼마안되는 단편인데도 읽고나서의 무게감은 장편을 읽은 듯하달까?

이 책의 여러 단편들 중에서 나에게 가장 공감과 인상깊은 순간을 준 작품들도 모두 이 작품들이었다.

<일시적인 문제>에서 아이를 사산한 부부는 그 경험과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하고 각자가 그것을 견딘다.

<질병 통역사>에서 다스 부인은 오랫동안 혼자만의 비밀을 감당해왔다. 그 비밀은 부부의 생활을 겉돌게 하지만 다스 부인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아니 그 비밀을 혼자서 감당하는데도 너무 지쳐있다. 다스 부부 가족의 위장된 평화가 깨지는 것은 언제든 가능하다. 그것은 아마도 예기치 못한 순간의 날벼락처럼 닥칠것이다.  다스 씨의 어린 아들이 원숭이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았던 것 처럼....

<섹시>의 미란다는 사랑을 하지만 타인의 눈으로 보면 그저 그런 불륜일뿐이다. 그들의 행적을 쫓는 독자의 눈에는 훤히 보이지만 사랑을 하는 미란다는 알 수 없다. 그녀는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어린 소년 로힌은 "섹시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미란다의 사랑이 쨍 깨지는 순간이다. 사랑의 감정은 오랫동안 남겠지만 더이상 미란다는 데브를 만나지 않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타인임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에....

 

때로 삶은 은근히 잔인하다.

전쟁이나 노골적인 폭력이 아니어도 충분히 잔인할 수 있음을 <진짜 경비원> <센 아주머니의 집> <비비 할다르의 치료>는 말해준다.

진짜 경비원에서는 선의의 순간이 어떻게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지를 보여주며,  센 아주머지는 익숙한 곳으로부터 분리된 두려움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런데도 누구도 그녀의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의 가장 큰 두려움은 그 이해받지 못함에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비비 할다르의 삶은 어디서부터가 비극이고 어디서부터가 비극의 끝인지 누가 재단할 수 있겠는가?

타인의 선의가 또는 악의가 그녀의 삶을 근본적으로 규정짓거나 바꾸지는 못하는 것이니, 비비 할다르의 삶은 비비 할다르의 몫이다.

 

때로는 <축복받은 집>처럼 아슬아슬한 불일치, 미묘한 엇갈림이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너무나 사소해서 그것들은 마지막 파멸의 순간을 지연시키기도 한다. 어떤 마지막도 한번의 엇갈림으로 오는 것은 아니기에.....

 

하지만 삶이 그렇게 무너지는 순간만이, 견디는 순간만이 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가?

우리 삶의 순간은 또한 회복과 따뜻함의 순간을 또한 준비하고 있다.

<피르자다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에서 피르자다씨는 동파키스탄(분리 후 방글라데시지역) 사람이고 이슬람이며 주인공 소녀의 가족은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이다. 그들의 고향은 지금 전쟁중이고 피르자다씨의 가족은 소식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린 소녀에게 이런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머나먼 땅 미국에서 그들은 함께 피르자다씨의 가족을 걱정하고 있다. 피르자다씨가 준 초코릿을 입에 물고 이빨을 닦지 않음으로써 그의 가족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소녀의 순수한 마음이 삶의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고 견디는 힘을 만들어낼터이다.

마지막 단편인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에서 역시 작가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세개의 나라도 아니고 3개의 대륙을 건너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에서 만난 100세가 넘는 월세방 주인 할머니는 아직도 놀랄 것이 남았고, 아직도 좋은 사람의 연대는 가능함을 보여준다. 좋은 기억의 힘이 세상을 견뎌나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모두가 다른 이야기임에도 마치 한 권의 장편을 읽은 듯, 또는 삶의 모든 다양한 순간을 모두 경험한듯 하나의 단편집이 줄 수 있는 최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축복받은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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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1-04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이리 잘 쓰시니 올해 제 리뷰쓰겠다는 결심 또 흔들립니다 그려~~~~^^;;; 저도 읽은 책인데 고개 주억거렸어요~~~ㅋ

바람돌이 2015-01-04 14:15   좋아요 0 | URL
설마요. ㅎㅎ 이 글이 좋아보이는건 이 책을 비비아님도 좋게 읽으셨기 때문일거구, 저랑 생각이 비슷해서이겠지요. 원래 같은 걸 좋아하면 더 좋아보입니다. ^^
 
역사 ⓔ 2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2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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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와서는 역사에 대한 콘텐츠는 어쩌면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넘쳐난다.

그런 콘텐츠들 속에서 역사e가 가지는 강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디테일이 가지는 힘을 한껏 밀어붙인다는데 있다.

 

역사학계의 주류적인 흐름은 거대담론으로서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을 수밖에 없다.

즉  역사를 거대한 하나의 흐름으로 보고 그 속에서 오늘날까지 큰 영향을 끼친, 또는 당대의 주도적인 정치, 사상, 경제, 문화분야들을 연구하여 그것의 법칙성을 찾아냄으로써 역사가 오늘날과 미래를 살아가는 교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학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담론으로서의 역사연구는 당연히 수많은 인간들이 살아가고 만들어나간 그 세밀하고도 풍부한 경험들을 놓칠 수 밖에 없다.

그것들을 가지치기하지 않고 살려두다보면 역사는 도대체 뭘 얘기하자고 하는지 알 수없는 난해한 덩어리자체가 되버릴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버려진 것들, 작은 것들이 모여서 인간의 삶의 풍부함을 만들어낸다는 사실 또한 분명한 진리이다.

역사는 거대담론만으로 절대 완성될 수 없다.

역사는 인간 군상들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 수많은 인간군상들은 집단성만큼이나 하나하나의 개별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역사학계의 오랜 논쟁과 고민의 지점이기도 했다.

역사e가 위치하는 지점이 바로 고민의 지점, 이곳이다.

 

역사e 1권에 이어 2권에서도 역사e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실들을 발굴해내고 그것을 기존의 역사적 흐름과 접목해내고 그것의 의미를 되살려낸다.

 

1부에서는 주류역사에서 버려졌던 많은 사람들을 복원해내고 있다.

조선시대 주류담론을 생산해내는 것은 사대부 지식층들이었지만 그들 역시 그것을 유통시키는 존재가 없었다면 존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통자로서의 책쾌를 다시 이곳에 불러낸다.

노비 출신의 시인 정초부(초부는 나뭇꾼이란 뜻이니 제대로 된 이름으로도 불리지 못한 존재다)는 그의 시를 짓는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평생 양반들이 '노비가 시를 짓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지?'라는 결국 구경거리의 신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그런 그의 속내는 한 편의 시로 전해지는데, 평생을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시짓는 노비로 대접받아야 했던 시인의 씁쓸함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강가에 있는 나무꾼 집일 뿐

과객 맞는 여관이 아니라요

내 성명을 알고 싶다면

광릉에 가서 꽃에게나 물으시오

 

조선 최초의 여의사인 박에스더의 삶과 그 당시로는 참 드물게도 그런 부인을 내조했던 남편 박유산의 삶도 흥미로웠다.

자신이 기르던 아이가 왕이 되었을 경우 판서보다 높은 품계를 받았던 유모의 존재

역사속에 묻혀 조명되지 못한, 그러나 동학농민운동과 의병운동의 사이를 메웠던 활빈당

조선의 장애인 인식의 일면을 보여주는 세종실록의 기록

 

"옛날의 제왕은 모두 시각장애인에게

현송(거문고를 타며 시를 엂음)의 임무를 맡겼으니

이는 세상에 버릴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세상에 버릴 사람이 아무도 없듯이, 세상에 버릴 역사와 삶이 아무것도 없다하겠다.

 

2부에서는 사라진 것들을 되살리는 노력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실학자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역사시간에 시험용으로 이름만 외웠던, 그래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진 책인지 알려지지 않았던 그 책을 복원해낸 사람들. 그리고 실학자 서유구를 오롯이 오늘에 되살리고 있다.

다른 실학자들이 제도의 개혁을 주장할 때 서유구는 밥먹고, 씨 뿌리고 거두고, 땀흘리는 일상에서 개혁은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바지를 걷고 밭을 갈고, 꽃을 가꾸고 옷을 지어입으며 이 책을 완성하였다.

온갖 농사와 의식주와 건강법, 일상생활의 모든 면을 망라한 이 백과사전은 내용의 방대함에 국가기관에서도 번역을 포기했는데 40여명의 소장학자에 의해서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번역해낸 학자들이 어쩌면 서유구의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은 이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일본의 군용모피를 만들기 위해 거의 멸종되어진 우리 시골마을의 삽살개를 다시 살려낸 사람들,

일본의 공업용 원료로 사용될 소금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밀려난 우리 전통 소금 자염. 너무도 쉽게 다들 천일염이 전통소금이라고 생각하지만 노인들을 찾아 묻고 물어 원래 끓여서 만들던 자염의 제조법을 되살린 사람들

되살려낸 것 그 자체도 소중하지만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들을 되살려내는 사람들의 마음과 노력은 또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2부 마지막은 야스쿠니신사와 도쿄전범재판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은 2부의 소제목에는 어울리지 않는듯 보이지만 우리가 잊어가고 있는 것들, 하지만 아직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전쟁의 신으로 또는 일본을 위해 희생한 일본인으로 둔갑해버린 조선인 강제징병자 2만 1000여명.

우리가 잊는 순간 그들은 그 억울함의 공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야스쿠니 신사가 아니라 그들의 고향 땅임을 잊지 말고 지속적인 반환운동을 추진해야 한다.

 

3부는 시대의 맥박, 살아있다는 표현으로 민족의 위기를 극복해냈던 순간들을 되살린다.

임진왜란 당시 초기의 열세를 뒤집어낼 수 있었던 조선의 화약기술의 발전과 비격진천뢰

의성김씨 명문가 종손으로 태어나 한평생을 파락호로 살면서 집안의 전 재산을 거덜낸 줄 알았으나, 그가 죽은뒤에야 밝혀진 진실은 그 많은 돈을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자금으로 보낸 애국지사였다는 것. 독립운동의 역사에 김용환 그 이름 석자를 조용히 올려본다.

시집에 가져갈 장농값마저 빼앗아가버려 평생 시댁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했던 딸의 시는평생 원망스러웠던 아버지에게 시를 쓴다.

 

................

그러면 그렇지 우리 아배 참봉 나리

내 생각한 대로, 절대 남들이 말하는 파락호 아닐진대.....

 

 

어쩌면 그 따님마저 이토록 의연한지...

평생의 원망을 저 하나로 날려보낼 수 있는 의연함이 명문 집안의 가풍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와 함께 너무 평범하거나, 너무 작거나, 너무 사소해서 잊혀진 6264인의 독립운동가들을 오늘의 역사에 불러내본다.

집을 나간 장부는 뜻을 이룰때까지 살아돌아오지 않는다면 2개의 폭탄을 쥐고 상하이 홍커우공원으로 향했던 윤봉길의사의 마음과 6264인의 잊혀진 독립운동가의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오늘 다시 깨닫는다.

 

역사e가 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6264인의 독립운동가를 살려내는 것.

너무 사소해서 작아서 평범해서 우리 역사에서 잊혀진 것들. 하지만 그것들을 전체로서 오롯이 살려낼때만이 기존의 역사의 뼈대에 살이 붙고 근육이 붙고 피가 흘러 제대로 온전히 바라봐줄 수 있는 것들. 이런것들을 살려내는 그 첫걸음.

이것이 역사e가 하고자 하는 것, 역할이 될 것이다.

 

때때로 방송을 의식한 과장이나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도 보인다.

예를 들면 17, 18세기의 조선은 폐쇄된 나라라는 인상을 주지만 실상은 이미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외국어를 가르치고 외교관을 배출하는 시스템을 확보하고 있었으므로 폐쇄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라는 서술의 경우이다.

물론 조선은 역관을 국가에서 주도하여 길러내고 있었고 이들이 외교에서 일정 역할을 담보한 것은 부인할 수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조선의 지배구조나 개별정책이 아닌 조선의 외교정책의 기본틀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그 시대 조선의 결정권을 가진 것은 사대부이지 역관이 아닌 것이다.

 

또한 조선의 장애인정책을 설명하는 부분에 있어 정조때의 재상이었던 체제공을 시각 장애인으로 표현하고있는데 이는 얼핏보면 두 눈이 모두 안보였다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런데 체제공의 장애는 사시이다. 체제공의 초상화를 보면 그가 사시였던걸 알 수 있는데, 이 정도의 장애로 아무 부연설명없이 시각 장애인이란 표현을 쓰는건 지나친 과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방송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지 말자.

실수라거나 잘못알았다면 고치면 그만이지만 방송효과를 노린 의도된 과장이라면 이 자체로 역사왜곡이 될 수 있다.

어떤 목표를 향한 과장, 왜곡은 항상 그 부작용이 더 컸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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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괴물 - 다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권재원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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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도 모르는 새 나는 좀 많이 지쳐있었나보다.

교육에 대한 온갖 담론들과 책들과 학교의 문제들과....

하 많은 책들이 쏟아져나왔지만 예전처럼 새로운 열정으로 그 책들을 보고싶은 생각이 별로 나지 않았다.

온 국민이 교육전문가인것 같은 나라에서 정작 가장 앞서 교육을 고민해야할 의무가 있는 나는 오히려 무기력증에 빠져있었던듯하다.

 

교육서적들은 이것 저것 잡설들을 빼고나면 결국 2가지다.

대한민국이 처한 심각한 교육의 문제를 어디서 풀어갈 것인가 해법을 구하는 거대담론이 그 하나고,

온갖 새로운 방법론 내지는 기술들을 가르치면서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선언하는 만병통치약같은 책들이 나머지 하나다.

 

전자는 사실상 답이 뻔한 문제를 내놓고 그 답을 피하고 싶어서 이리저리 에둘러 가는 듯했다.

이 나라의 심각한 입시교육과 아이들의 살인적인 학습과잉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결국 사회를 바꾸는 것이다.

세상에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충분히 하고도 남을 일이 얼마나 많은가?

세상에 나가는 무수히 많은 아이들이 어떤 직업이든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최소한 먹고 사는데 부족함이 없다면 왜 대학입시에 이토록 목을 매달겠는가?

이상적인 사회란 이 나라의 모든 노동을 하는 이들이 그 노동의 성실한 댓가로 먹고 살고, 뭐든지 한가지 정도는 하고싶은 취미든 뭐든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그런 사회란 생각이 든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연구를 하고, 손재주가 좋은 아이는 뭔가 기술을 배우고,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는 자동차를 만들든 디자인하든 버스운전을 하든 하여튼 무엇을 하든 먹고살수 있어야 한다.

직업의 종류가 다를 뿐 삶의 질은 비슷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분명한 해답을 빼고 대안을 찾으려니 어떤 대안이든 구름잡는 소리일 수 밖에 없다.

 

후자의 온갖 방법론과 기술들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이 책에서도 비판하고 있는 바 EBS의 최고의 교사류의 책은 당사자인 교사에게 무한노동을 은근히 요구한다.

나는 지난 4년간 소위 행정교사로 살았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얘기하자면 학교에 행정교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온갖 행정잡무에 치여 서류더미에 파묻혀살게 되는걸 말하는 것이다.

학교에도 3D는 있다.

일이 너무 많아서 왠만하면 모두가 피하려고 하는 자리가....

그 자리를 4년동안 하다보니 학교에서의 생활은 딱 2가지다.

수업과 그외의 모든 시간은 행정잡무 처리.

우리 반의 아이들과 상담할 시간 하나 내기 힘들고, 학교에서 수업자료 준비는 꿈도 못꾸고....

결국 일이며 수업준비며 모두 집으로 싸들고 와서 우리집 아이들 뒷치닥꺼리와 저녁식사와 집안일이 끝나는 밤 11시쯤 돼야 비로소 일거리를 마주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집안일을 포기하든 학교 업무를 완전히 내팽개치든 뭔가 하나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새로운 수업준비니 뭐니 씨알도 안먹히는 소리다.

언론같은 매체들에서 뭔가 새로운 교육담론을 얘기하면 감이 딱 온다.

저거 또 일거리로 떨어지겠구나...

 

그런 내가 오랫만에 이런 교육서적을 다시 든건 순전히 한 때 알라딘 서재를 풍미했던 바람구두님 때문이다.

시사인인가 한겨레21인가 헷갈리는데(둘다 정기구독을 하고 있으니 기사들은 항상 헷갈린다. ㅠ.ㅠ) 하여튼 거기에 바람구두님이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쓴걸 발견했다.

원래 바람구두님에 대한 신뢰와 또 그 글이 맘에 들었기 때문에 한 번 다시 읽을볼까 하게 된거다.

 

조금은 속이 시원해졌다.

이 책은 저자가 몇년간 각종 매체에 썼던 교육에 대한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덕분에 어렵지 않으면서 학교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동시에 현장교사로서의 풍부한 경험이 그러한 논의를 더욱 더 풍성하게 하고 있다.

대한민국 온갖 교육문제의 책임이 마치 학교에 있는 것처럼 마녀사냥을 하는 풍조에 반대하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다시 한번 제기한다.

이런 거다. 학교폭력 문제로 온나라가 떠들석하면서 그것이 학교의 문제인듯 얘기하지만 교사들은 안다. 그건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의 문제이고, 가정의 문제는 사회노동의 문제임을.....

학교가 왜 괴물이 되어가는가? 결국 무한경쟁과 무한노동의 사회가 그대로 그 체제를 학교에 삼투압시키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보면 해법도 보이는 법이다.

학교 교육의 기본 이념이 바뀌어야 한다.

사회가 학교를 괴물로 만든다면 학교는 교육은 그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대부분이 노동자가 될 아이들이 자신의 노동의 권리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있도록 올바른 판단력과 비판정신과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개천에서 용나도록 열심히 공부하면 너도 출세할 수 있어가 아니라 아이들이 처할 현실을 인식하고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가르쳐야 한다.

이 책은 출발점을 제시할 뿐이다.

하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 변화의 진정한 시작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 프레임을 다시 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를 위한 용기를 내기 위해서 변화의 가능성들을 제시하고, 전교조의 기존 정책을 비판하고, 방법론들을 다시 살펴본다.

 

새해의 출발과 함께 하기에 좋은 책이다.

신발끈을 다시 묶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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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1-01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사에게 은근히 강요하는 무한노동.
그와 비슷한 것이 또하나 있어요.
일하는 엄마에게 은근히 강요하는 슈퍼맘이요.

결국은 돌고돌아 그 어느 누구라도 함께 짐을 나누어야하는게 정답이죠. 사회도, 학교도, 가정도!

새해 아침에 저 또한 마음에 담을 만한 이야기인 것같아 좋아요. 하고 갑니다. ^^

바람돌이 2015-01-02 00:13   좋아요 1 | URL
아 슈퍼맘... ㅎㅎ 무한노동 맞죠.
고통을 나누자고 앞에서 소리치는 사람치고 진짜 고통을 분담하는거 못봤어요. 진짜 분담하는 사람은 말없이 조용히 하죠.
새해는 제발 아픈 사람들이 좀이라도 고통을 나누고 덜수있는 사회를 기원합니다.

라파엘 2015-01-01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감사합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ㅎㅎ

바람돌이 2015-01-02 00:14   좋아요 0 | URL
안단테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닉네임을 소리내보니 왜인지 한발짝씩 리듬에 맞춰 타다탁 걸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

반딧불,, 2015-01-01 1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하, 교사만이 아니라 이 사회는 조금이라도 잘 해보려고 하는 사람에겐 무한노동을 강요합니다.
그리고 당연한 듯이 네가 선택했으니 더 해라고 합니다. 그거 아시죠? 지쳐 나가떨어지면 잘난 척 하더니 잘됐다고 합니다.
같이 노력하지 않지요. 왜 그런 것인지 늘 궁금했는데 그 무한노동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더군요.
시작하면 결국 그만두지 못하는 일부가 늘 다치게 되는 시스템이라니.
아하,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 정말 잔인하죠? 그것이 제가 겪어본 현실이라는 것이.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이
마음이 아픕니다. 정말 바꾸는 것이 가능할지 요사이는 자신이 없습니다.
분개만 하는 스스로가 참 많이도 싫구요.

바람돌이 2015-01-02 00:20   좋아요 0 | URL
정말로 세상이 바뀌어질지 어떨지 사실 저도 자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거지요. 오히려 악화되어가지요.
어떤 권리도 그냥 주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더이다. 칭얼거리기라도 해야 고물이라도 하나 얻어먹는거죠.

새해 우리 같이 힘내요. 같이 나누면 좋은게 또 이런 위로잖아요. ^^

순오기 2015-01-02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면 좋겠네요~~일단 찜해둡니다!

바람돌이 2015-01-03 00:06   좋아요 0 | URL
^^ 뭐 솔직히 학부모보다는 교사들이 읽으면 더 좋은 책이지 싶긴해요. ^^
 
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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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미술'이라는 개념이 형식화되고 고정되면 쉽사리 권력으로 변한다. 가령 어떤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자만이 '우리'이며 '우리'란 어떤 특정한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는 순환논리는 배타적인 자의식을 공고히 한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와 미술 사이에 굳이 빗금을 넣고 싶었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빗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 작품들의 이야기다.

 

'우리'속에 포함되어 있고, 그속에서만 사유할 때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서경식 선생님의 글을 만나기 이전의 나 역시도 그러했다.

무수히 많은 '우리'라는 공동체에서 별로 떠나본적이 없었던 나의 주요 관심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 우리 민족의 미술, 우리 나라의 민중 등등 무수히 많은 우리였다.

이 '우리'는 타자를 전제하는 것이었음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아니 그 타자는 늘 억압자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우리'와 '타자'의 대립을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맞겠다.

그런 나의 관념에 '우리'도 적대적 '타자'도 아닌 디아스포라의 존재, 즉 어디에서 속하지 못하고 '배제'되어버린 이들의 이야기는 내게 나의 생각 전체를 되짚어보게 하는 충격이었다.

다르게 본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고, 여전히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깨닫게 해준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내 독서와 사유의 스승이었다.

 

저자는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우리/미술이라 지칭하고 싶었다 한다.

우리와 미술사이의 저 빗금이 바로 디아스포라의 영역이다.

또한 많은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구분지어버리는 우리와 타자의 경계이기도 하며, 그럼으로써 또한 배제의 영역이기도 하다.

내가 우리속에 갇혀있는 한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인식의 벽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늘 희망은 존재한다.

이 빗금위를 춤추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그래서 '우리'의 틀에 갇힌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알려주는 친절한 저자도 있다.

우리도 같이 그렇게 책을 통해서라도 저 빗금위를 춤추고 놀아본다면 이 굳을대로 굳은 '나와 타자'의 철학의 한계를 조금은 벗어날지도 모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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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4-12-30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하게도 같은 책을 읽고 있었네요. 서경식 선생의 어느 책에선가 조선민족공동체의 틀을 어떻게 봐야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했던 생각이 납니다.. 제 나름으로는 그걸 읽고 정리하기를 같은 땅에 살거나, 역사가 같거나, 언어가 같거나 이런 식으로 끝도 없는 OR로 연결된 공동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닫힌 우리로는 문제를 정확히 보고 나아갈 수 없다, 끊없는 더 작은 우리들이 타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람돌이 2014-12-30 22:43   좋아요 0 | URL
소년의 눈물과 이 책을 우리 비슷하게 읽고 있는 것 같아요. ㅎㅎ서경식선생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내 존재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 도 있다는걸 느꼈습니다. 근데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이런 식의 우리라는 틀덕분에 끊임없이 타자화되고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면에서 서경식선생의 책은 어떤 책이든 한 번은 꼭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팬이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