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촌에 있는 수백만 명의 난민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거나 새로운 고향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거의 품지 못하고 있다. 아렌트는 무국적 인간의 범주와 숫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은 현대 정치의 가장 문제적인 징후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최초의 주요 정치사상가 중 한 명이다.
- P35

 난민과 인권 문제를 다루는 국제기구들과 NGO들이 증가했는데도 주권 국민은 자신들이 누구를 난민으로 받아들일지 또는 받아들이지 않을지를 결정할 "절대적" 권리를 여전히 맹렬하게 지켜내고 있다. 오늘날 주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오용되고 있다. 그 개념이 주로 "바람직하지 않은 난민들을 배제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위기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더 많고 더 큰 수용소를 만드는 일이 되었다.  - P41

권리를 갖지 못한 자의 파국은 그들이 삶, 자유, 행복 또는 법 앞에서의 평등을 추구할 권리 그리고 의견의 자유- 자신의 공동체 내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형식 -를 박탈당했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 이상 그 어떤 공동체에도 더 이상 속할 수 없다.
는 점에 있다. 이러한 곤경은 그들이 법 앞에서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어떠한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들이 억압받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그들을 억압조차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P48

 아렌트는 "톱니바퀴 이론", 즉 아이히만이 거대한 관료주의 기제의 한 톱니바퀴였다는 생각도 분명히 거부했다. 자신은 단지 한 체제의 톱니이거나 바퀴 중의 하나라는 주장에 대응해 "그러면 왜 당신은 톱니바퀴가 되어 이런 방식으로 계속 기능했는가?"라고 법과 도덕의 관점에서 되묻는 것은 언제나 적절하다.
아렌트의 가장 중요한 지적은 악을 신화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P101

근자에는 새로운 형태의 거짓말이 등장했다. 이것은 아렌트가 "이미지 메이킹"이라고 불렀던 것인데, 이미지에부합하지 않으면 사실적 진리라도 배제해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미지는 현실의 대체물이 된다. 그런 모든 거짓말은 폭력의 요소를 은닉한다. 조직적인 거짓말은 그것이 부정하려고 결심한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경향을 항상 지니고 있다. 전통적인 정치적 거짓말과 현대의 거짓말의 차이는 숨기는 것과 파괴하는 것의 차이다.  - P117

아렌트가 오늘날 그토록적실성을 지닌 이유는 시민이 함께하고 공동으로 행위하며, 공적 자유를 실천하고 역사의 경로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깊은 확신에 더해, 전체주의로 결정화되었던것이 오늘날에도 현저하게 나타나는 경향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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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생애 최초 탐정물이라는 빌 호지스 3부작은 약간 특이한 구조를 갖고있다.
각권이 독립적인 것 같으면서도 1부와 3부는 완전히 연결되어 있고 2부 <파인더스 키퍼스>만이 홀로 독자적인 사건 구조를 이룬다. 미리 말한다면 나는 저 2부 <파인더스 키퍼스>가 제일 좋았다. 하지만 리뷰를 쓰기에는 읽은지가 오래 되어 기억이 가물 가물.... ㅠㅠ

1부와 3부는 퇴직형사인 빌 호지스가 사이코 테러리스트인 브래디와 대결하는 것이 이야기의 기본 뼈대를 이루고 있다.

이야기는 태생적 사이코인듯한 브래디의 의식을 따라가는것이 한 축을 이루고 나머지 한축은 퇴임 후 무기력해지고 있는 빌 호지스의 의식을 따라가는것이 한 축이다. 결국 이 두 인물의 매력과 그럴듯함에 이야기의 재미가 딸려있는 셈인데, 나머지 추리소설의 핵심이라 할 사건과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의 이야기적 재미는 떨어지는 편이다. 후자 즉 이야기적 재미를 따지자면 역시 2부인 <파인더스 키퍼스>가 가장 좋다.

브래디의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1부까지는 괜찮은 캐릭터였다. 어느 날 그저 뭔가 위대해져보이고 싶다는 또는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알리고싶다는 충동으로 메르세데스를 훔쳐 사람들을 향해 돌진하는 태생적 사이코. 그리고 이후에도 막연한 다중에 대한 증오를 바탕으로 자살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인물이다. 그가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가 불분명하고 그저 사이코이기 때문이라는 설정은 약간 불편하긴 하지만 뭐 세상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사이코가 많기도 하니 이런 설정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3부에서 식물인간 상태였던 브래디가 깨어나고 자신의 육체를 벗어나 유체이탈과 다른 육체로의 빙의를 통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이르면 이거 뭐임? 하는 생각이 든다. 브래디를 너무 살리고싶었던 작가가 너무 나간게 아닌가 싶다. 차라리 브래디가 깨어서 정신병원을 탈출해 호지스와 대결을 벌이는게 낫지 이건 뭐 장르파괴도 아니고.... 갑자기 이야기의 현실성이 훅 떨어지면서 독자를 어이없게 만들어버린다. 아 킹 아저씨 이건 아니잖아요!

빌 호지스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광고문구에 스티븐 킹판 필립 말로의 탄생이라고 본 것같은데 사실 이 문구에 낚였다. 경찰에서 퇴직하고 보니 갑자기 존재의의를 상실하고 아내와는 이혼했고 하나밖에 없는 딸은 멀리 살면서 가끔 전화나 하는 무기력하고 고독한 빌 아저씨. 이만하면 조건적으로는 충분히 필립 말로가 될것도 같다. 하지만 구체적인 디테일로 들어가면 호지스 아저씨는 하드 보일드 탐정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의존적이며 따뜻하다. 거기다 자꾸 아파서 독자를 걱정시킨다. 자신의 재임 기간동안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메르세데스 살인범을 잡지 못한것에 대한 책임감으로 괴로워하는 호지스아저씨는 너무 인간적이다. 한 마디로 쿨함과는 백만광년쯤 떨어진듯하다.

어쩌면 작가는 인간적인 감정에는 완전히 백지인 브래드와 인간적 따뜻함으로 중무장한 빌 호지스의 대비를 통해 사람들간에 여전히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자 한 것같기도 하다. 이는 주변 인물을 통해서도 나타나는데 브래드 주변의 인물은 그의 어머니조차도 인간적 교류와는 한참 멀고 소통부재의 인물이다. 브래드는 누구와도 공감하지 않고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는 절대 고독의 인물이다. 하지만 빌 호지스는 옆집의 어린 소년과도 따뜻한 우정을 나누고 우연히 만난 신경쇠약성 우울증에 시달리는 중년의 여인에게도 따뜻한 손을 내밀줄알고 그 따뜻함과 배려를 돌려받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캐릭터의 매력이 1권에서 끝이라는 것. 3부에서는 캐릭터의 반복 중 이야기가 우주 저멀리 어디로 광탈이동해버리는 바람에 캐릭터의 매력마저도 같이 날아가버린다. 우리 사랑스런 호지스 아저씨가 필립 말로가 될 기회도 같이 날아간다. 안녕 호지스 아저씨, 안녕 필립 말로!


브래드는 1부에서 끝을 맺고 3부는 차라리 다른 이야기로 돌아왔다면 빌 호지스 3부작이 좀 더 근사하게 완결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많이 남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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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무엇이 다가올지 무엇이 변화할지 모를 때 인간은 불안을 느낀다. 그 많은 개혁과 혁명의 순간에 급진적 개혁의 발목을 붙잡는 것은 항상 이 불안이었다.
지금 우리 삶의 양태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아직 불투명하다. 코로나의 불안은 그 자체로부터도 오지만, 앞으로 나의 삶이 어떻게 될것이며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모르는것에서도 온다.

이 전염병은 과도하게 나를 지배하는 것 같다. 요즘나는 어지간히 건강 염려증 환자가 되었다. 이틀에 한 번씩 밤마다 아내에게 이마를 짚어달라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나는 병에 걸릴까봐 겁나는 게 아니다. 그러면 무얼 걱정하냐고? 감염이 바꿀 수 있는 모든 것. 내가 알고 있는 문명의 구조가 엉성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 모든 게 초기화되는 것이 두렵지만, 그 반대로 아무 변화없이 이 불안이 지나가는 것도 염려스럽다. - P25

그러나 전염의 시대에는 우리가 무엇을 실제로 기대해도 되고 기대하면 안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무작정 최선의 것을 바라는 것과 적절한 선에서 기대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불가능하거나 매우 불확실한 것을 기대한다면 거듭되는 실망에 빠질 것이다.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허황된 마술적 사고는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할뿐이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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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2권의 고고학 관련 책을 연달아 읽게됐다.

알려진것만 30여종의 인류가 있었는데 왜 하필이면 호모사피엔스만 살아남았는지 묻는 제목부터 흥미를 유발하는 책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
사실 이런 제목의 책 치고 네이밍센스만큼 책 내용이 따라주는적이 없었던지라 별 기대 없이 잡은 책이다. 앗 그런데 이 책 생각보다 즐거운 책이다. 읽는 내내 오오오 하면서 읽은 부분이 꽤 많다.

흑요석은 구석기 시대의 획기적인 발명품 중 하나다. 아주 섬세하고 날카로운 첨단 재료였지만 이것의 생산지가 한정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연구성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발굴되는 흑요석의 원산지는 백두산이며, 남해안에서 발견되는 흑요석 뗀석기의 원산지는 일본 규슈란다.
백두산에서 한반도를 지나 일본 규슈까지 연결되는 구석기시대의 흑요석루트라니....
흑요석을 구하기 위해 이동하는 구석기인들을 상상하는건 너무 힘든데 고고학은 역시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의 학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먹도끼라는 유물 하나가 어떻게 인종차별적 논리의 근거로 이용되는지,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에서 발견된 주먹도끼가 어떻게 서구의 제국주의적 인종 차별 논리를 깨는지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가장 재밌는건 역시 제목에 있는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는지 네안데르탈인과 비교하면서 설명하는 대목인데 그 논리가 상당히 재밌다. 유발 하라라가 <사피엔스>에서 같은 주제를 심도있게 다루면서 공동페를 이루는 힘을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얘기했던것같은데 이 책에서는 고고학 유물의 입장에서 아주 사소한 작은 유물 하나로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을 설명하는데 나름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그 유물이 무엇이었는지는 책을 직접 읽을 분들을 위해서 남겨놓기로 한다.

인류가 오른손잡이가 압도적인 형태로 진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두개골만으로 직립보행을 했는지 안했는지 판별할 수 있는 방법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구석기 시대의 예술 등등등

쉽게 써졌지만 고고학의 세계로 독자들을 능숙하고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간다. 제목때문에 그저 청소년용 교양서가 아닌가 의심하실 분들을 위해 한마디 한다면, 고고학이나 역사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강력추천한다.

다음으로 잡은 책은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앞의 책과는 약간 다른 방향에서 고고학을 얘기한다. 저자가 시베리아쪽 발굴에 참여한 경험이 많았던듯 다양한 발굴경험과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시베리아쪽의 문화를 비교하며 고고학을 좀 더 폭넓게 소개하고자하는 노력이 보인다.

각 지역별로 죽음을 생각하는 방식이 어떻게 각 유물에 나타나는지, 인류에게 중요했던 불, 술, 음악, 음식 등등의 흔적을 어떻게 고고학이 쫓아가는지를 얘기한다.
또 책 후반에서는 고고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발달과 유물들의 현재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문제는 하고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 듯하여 독자가 도대체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헷갈린다는거다. 독자는 고고학자가 아니고, 또 저자가 고고학자를 꿈꾸는 소수를 위한 입문서로 이 책을 쓴게 아니라면 전달하고자 하는 범위를 좀 더 좁게 명확히 해서 썼다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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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06-23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치 못한 분야였는데 흥미롭네요 바람돌이님 리뷰를 읽고 오른손 잡이가 왜 많아졌는지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리뷰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바람돌이 2020-06-23 10:56   좋아요 1 | URL
저도 한번도 딱히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읽어보니 아하 싶더라구요. 도구를 사용하는 쪽의 뇌와 관련된다네요. 나머지는 책에요. ㅎㅎ
 

추리소설이 좋은 이유 중에 하나
인간의 약점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지 말아야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가끔은 추리소설 속 이런 말들이 철학책 몇권을 보는 것보다 더 나의 삶의 방침을 잘 알려준다.

호지스는 T 부인이 열쇠를 꽂아 두고 내렸을 가능성을 아직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자기도 모르는 새 공범역할을 했다 하더라도 그와 피트의 대웅이 형편없었다. 싫어하는 인간의 말은 안 믿거나 무시하기가 쉽다. 너무 쉽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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