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 이전의 서양화는 언제나 어렵다. 왜냐하면 그림의 아름다움 여부를 떠나 그림의 소재가 대부분 서양의 역사거나 신화 아니면 성서의 이야기들을 소재로 하고 있어 그림이 담고 있는 스토리를 모르면 무슨 내용인지 어떤 장면을 그린건지 잘 모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카노 쿄코의 그림 이야기는 항상 재밌게 읽힌다. 내가 모르는 그림속 이야기를 아주 친절하게 풀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도판의 훌륭함은 그림을 온전히 보여주기까지 한다.

아 도판 얘기를 하려니 뭉크의 절규 얘기부터 해야겠다.
아주 운이 좋게도 노르웨이에 간적도 없는 내가 뭉크의 절규를 직접 미술관에서 만났었다. 2년전쯤 겨울에 중학교를 졸업했던 둘째 딸과 둘이서 일주일정도 일본 도쿄 여행을 했었다. 둘 다 그림에 관심이 많아 그야말로 미술관 여행이었는데 정말 운이 좋게도 뭉크 전시회를 만날 수 있었다. 그 때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이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갔다던가? 하여튼 밖으로 거의 나오는적이 없는 절규를 비롯한 뭉크의 엄청나게 많은 그림들이 일본 나들이를 한 것이다. 뭉크의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많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었던 행운이었다.
평일 아침 일찍 미술관을 찾았는데 사람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우리도 유명한 그림이 오면 미술관이 복작복작하지만 이건 그 수준 이상이었다. 조용한 관람은 물건너갔고, 뭉크의 절규앞에서는 딱 2분정도 봤다. 줄 서서 이동하면서 사람에 떠밀려 봤으니.... 원작을 본 감동? 잘 모르겠다. 워낙에 많이 알려진 작품이고 이 책 도판이 워낙 훌륭하다보니 지금 도판으로 보는 것이나 별로 다르지 않은듯하다.
일본의 서양미술에 대한 관심은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듯하다. 그 짦은 기간동안 내가 본 대형 전시만 뭉크전, 베르메르전, 루벤스전 3개였다. 전시의 규모도 대표작 1,2개에 소품들로 채우는 우리 전시와 달리 마치 현지에 가서 보는 듯 온전하게 작가의 연대기별로 충실하게 시기별 대표작을 모두 알차게 채워놓은 전시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 많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가지고 올 수 있었을까 싶은.....또한 그외 상설 전시관들의 컬렉션도 굉장히 훌륭했고.....
아마도 이런 문화적 환경이 나카노 쿄코같은 작가를 만들어낸게 아닐까 싶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다양한 작품들을 보고 즐길 수 있었던 사회적 인프라랄까?
더구나 도쿄의 대형미술관들은 모두 우에노공원 안에 몰려있다. 멀리 찾아 다니지 않아도 하루종일 걸어서 미술관만 돌아다녀도 되니 접근의 편리함이 아마도 이런 미술에 대한 관심과 소양을 더 키워줄듯하다. 이 부분은 살짝 부러웠다.

나카노 쿄코의 이번 책은 운명이라는 주제로 그림들을 모았다. 책 속의 그림들은 이미 본적이 있는 그림들보다 처음 보는 그림이 더 많다.
시작부터 로마의 검투 장면을 거린 제롬의 <아래로 내린 엄지>로 시작해 패배한 검투사의 삶과 죽음의 기로의 순간을 표현한 그림으로 시작한다. 그림에 대한 설명과 함께 당시 로마의 검투사들의 처지 진행과정 등을 쉽게 설명하니 그림과 역사가 이야기로 어우러진다. 물론 깊이있는 심오한 이야기를 하는건 아니다. 이 책의 그림을 감상하는데는 약간의 배경지식만 있으면 충분할테니.... 누구든 쉬운 문장으로 상세한 그림 이야기로 쉽게 그림을 볼 수 있다는게 이 책의 최대 장점일듯하다.

의외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그림은 메인더르트 호베마라는 네덜란드 작가가 그린 풍경화 <미델 하르니스의 가로수길>이라는 작품이다.
전에도 어디선가 봤던 작품인것 같은데 그저 평범한 풍경화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갔던듯하다. 아마도 원근법의 들장 정도만 신경 쓰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그림이 내포한 스토리는 생각보다 흥미진진했다. 가로수길이라는 것이 시작은 귀족의 전유물이었다는 것. 하지만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전쟁을 벌여 자유를 쟁취했던 네덜란드에서는 이 가로수길의 계급성이 사라지고 장중함을 연출할 필요도 없이 누구나가 향유할 수 있는 길로 등장한다. 또한 네덜란드이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그들의 치열한 고민이 이 그림속 길에 담겨있다. 포플러 나무를 선택한 것은 이 나무의 실용적 용도- 쳐낸 아래쪽 가지와 잎을 비료로 사용하고, 줄기를 습기가 많은 네덜란드에 적당하누나막신의 재료로 삼으며, 지면의 흙이 넘치는 물에 쓸려가지 않도록 단단하게 잡아주는 역할-를 모두 고려하여 네덜란드이 환경에 맞게 조성된 것이다. 풍경화 하나에서 당대 네덜란드인들의 지난한 삶의 과정이 모두 펼쳐져 있는 느낌이다.

표지 그림인 아리 셰퍼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역시 이야기와 함께 읽으면 더욱 안타깝고 아름다운 그림이다. 불행한 정략결혼을 했던 두 연인의 사랑과 죽음이 어떻게 이야기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스토리와 함께 만나는 그림 이야기는 언제나 즐거운 독서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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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카데미에서 군림했던 장 레옹 제롬은 인상파 화가들의 앞길을가로막았다. 예술은 지적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한 그에게 인상파는 허용할 수 없었던 미술이었다.
- P21

지금껏 패배를 몰랐던 영웅호걸이 러시아의 혹한과 노련한 적장에게 처절하게 박살나 버린 일을 후세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예전에 두 번이나 쉽게 이겼던 러시아군이었기에 아무리 자신만만했어도 상대편 지휘관이 미하일 쿠투조프(Mikhail Kutuzov)로 바뀌어 전략이 크게 변했다는 사실을, 우여곡절 끝에 모스크바까지 당도했지만 비참하게 패하고달아나야 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65만 명의 대군 가운데 살아서프랑스로 돌아간 병사의 수는 겨우 3만 명이었던 사실을, 또한 역사를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집무실의 본인만은 아직 모른다. - P53

예로부터 가로수길은 왕후와 귀족이 사유지에 냈던 특별하고 개인적인 도로였고, 보기에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우거진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제공했다. 대부분 성 안 정원에 조성했지만 성곽 밖으로 가로수 길이 난 경우는 보통 성문이나 사적인 예배당 등과 직접 연결되었다. 따라서 서민의 출입을 차단하여 선택받은 사람만 다닐 구 있는, 마치 레드 카펫과도 같은 길이었다. - P89

하지만 새롭게 탄생한 독립국 네덜란드는 특수한 나라였다. 당시주변국들은 어디든 절대주의 왕정 체제를 다지고 있었지만 네덜란드는왕족과 귀족도, 가톨릭교회도 몰아낸 나라였기 때문이다.(총독이 명목상최고 통치자였지만 의회가 존재하던 연방 공화정 체제였다.) 또한 이 시대는 자연을 힘으로 굴복시킨 인공의 나라였던 네덜란드가 해외 무역을 통해부의 축적까지 이루어 낸 황금기였다. 이제 가로수길은 더 이상 특권 계급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시, 읍, 면이 공공사업으로 건설하여 국민 전체에게 개방되었다. 길게 늘어선 나무도 당연히 장중함을 연출할 필요가없었다.
- P90

이렇듯 호가스가 묘사한 인간의 모습에는 한결같이 가차 없는 시선이 나타나 있다. 그의 냉정한 태도는 상류 계급을 향한 것만은 아니었다. 귀족이는 거지든,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든 어린 아이든 부자든 빈민이든, 현명한 자는 어리석은 자든, 그 누구도 호가스가 쥔 날카로운 풍자의 붓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죽음의 신과도 같은 평등주의가 바로 호가스가 지닌 매력이었다.
윌리엄 호가스는 "내 그림은 나의 무대이고, 등장인물은 나의 배우다."라고 항상 말했다고 한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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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에 절대 상륙하지 않았으면 하는 말은 ‘공원‘이다. 기념‘이라는 말 대신에 ‘기억‘이란 말이 자주 쓰였으면 좋겠다.
는 바람도 있다. 개발‘ 이라는 말까지 아예 등장시키지 말라고는 않겠다. 남북 철도와 도로를 잇는 작업은 필요하니 말이다. 대신에 ‘최소 개발 개념이 등장하면 좋겠다. ‘평화‘라는 말은 저절로 우러날개념일 것이다. 평화란 끝없이 노력해야만 지켜낼 수 있다는 진실을마주하는 공간, 한 지역의 평화에 세계의 평화가 달려 있다는 진실을 새기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
- P181

비무장지대만큼은 한반도에서 찾아보기 힘든 ‘숨 쉬는 공간, 인간보다 다른 생명들이 우선하는 공간, 느린 공간, 기억하는 공간, 생각하는 공간, 성찰하는 공간, 상상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얼마나 더 크고 새로운 성장을 약속하는 공간이 될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설렌다!
- P185

길바닥을 장식한 문양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한데, 길을 걷다 보면 갑자기 발에 툭 걸리는 게 있다. ‘슈톨퍼슈타인 solpersion‘이다. 독일어 뜻 그대로 걸림돌‘이다. 가로세로 각각 10센티미터의 작은 황동 판에 글자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이름, 생년월일, 추방 연도 또는 사망 연도, 나치의 광기에 희생되었던 사람들이 살았던, 숨었던,
체포되었던, 죽임을 당했던 바로 그 장소를 기억하며 만들어놓은 장치다. 독일 쾰른에서 1992년 한 조각가가 만들기 시작한 슈톨퍼슈타인이 전 독일에 퍼지고 또 전 유럽에 퍼져서 이제는 7만여 개에이른다. 잊지 않겠다는 걸림돌‘이 하늘의 별처럼 유럽 도시들에 뿌려져 있는 것이다.
- P199

이상하게 여기는 시각은 아주 특별한 능력이다. 인지하고 식별하는 능력이고, 더 나아가 바꾸고 개선하는 역량이다. 일상을 너무도 당연해하는 것,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 것, 그저 그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애쓰거나 갖은 꾀를 부리는 것으로는 절대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질문하면서 변화의 단서를 찾는다. 이상하게 볼 줄 아는 이방인의 시각을 잃지않고,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방법을 모색하는 시민의 태도를 잃지 말자.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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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도시의 근본 조건인 ‘익명성‘과 도시에서가장 중요한 공간인 ‘길‘과 길의 한 부분으로서의 ‘광장‘을 만나게 해보자. 어떤 함의가 있을까?
익명성 측면에서 보면 길이란 도시의 익명성이 최대한 표출되고 또 허용되는 공간이다......길에 나서는 행위란 공공영역에서 익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에게 자신을 동등하게노출하는 행위이니 제한받지 않는다. 통행할 권리만큼은 그 누구에게서도 빼앗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의 것이자 누구의 것도 아닌 공간이 길이다.
광장은 도시의 익명성을 잠시나마 잊게 만드는 공간이다. 서로아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서로 공유하는 그 무엇이 있음을 잠시믿게 된다는 뜻에서다. 

길과 광장이라고 하는 아주 당연한 도시 요소에 관해서 이렇게긴 글이 필요한지 의문하시는 독자라면,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길들이 사라지고 있는지, 광장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히 남아 있지는않은지도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길의 매력, 골목의 매력을 다시 발견하는 시대임에는 분명하지만, 대규모 도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수많은 길들이 속절없이 사라져버린다. 많은 대형 개발이 길과 광장을시민들에게 내놓지 않고 내부 영역화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다니는 길들이 줄어들면 사람들의 마음도 줄어들고익명성에 대한 두려움도 더 커질 수 있다. 스스럼없이 다니는 길들이 없어지면 광장이 생길 기회조차 생기지 않을 것이다. 스스럼없이다닐 길이 있어야, 이왕이면 사방으로 통하는 길이 있어야 너른 공간, 광장도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 P58

현대의 청사들이 충분히 위엄을 보이지 않는 것 또는 위엄을 보이려 들지 않는 것은 문제다. 알게 모르게 사회 심리에 영향을 준다.
물론 공사비 등의 현실적인 문제도 있겠으나, 권력의 긍정적 측면을내보일 자신이 없으니 아예 무표정한 유니폼 아래 권력 자체를 숨기려는 동기도 작용할 것이다. 권력 스스로 자신의 정통성과 역할에자신이 없을 때 드러나는 불안감의 발로일 것이다.
- P90

도시에서 "콘텍스트를 읽으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어느 것도 홀로 서 있지 않다. 다른 무엇과 관계를 맺으면서 성격이 규정된다. 만약 우리가 어떤 도시 공간에서 감이 동하는 것을 느낀다면 그 공간이 주변과 어떤 관계를맺으면서 특정한 감정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녹아든 듯한 자연스러움, 언제나 거기에 그렇게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듯한 영원의 느낌, 놀라움, 생소함, 극한의 대비, 의외성, 이야기를 걸어오는 듯한친밀함 등 그것은 풍경과 식생과 다른 건물들과 길과 광장과 조형물들과 조화와 변조를 이어간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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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파도>라는 책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었었다. 나치가 600만의 유대인을 학살할 때 왜 독일국민들은 가만히 있었을뿐만 아니라 동조하기까지 했는가? 그 많은 사람이 그렇게 비인간적인 행태에 동조하는것이 말이 되는가라는 것에 대한 실험에 대한 글이었는데 실험 자체는 너무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와 비판받았지만 시사하는 바는 컸다. 집단에의 소속감을 강화해 가는 일련의 과정이 어떻게 비이성적 광기로 쉽게 전화해가는가에 대한 경종을 울려주는 글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모든 집단이 또는 집단적 행동이 비이성적 광기로 전화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렇다면 멀리 갈것도없이 우리나라의 촛불시위라는 지극히 이성적이었던 혁명은 어떻게 설명할것인가말이다.

한나 아렌트의 이름보다 먼저 들었던 것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해진 ‘악의 평범성‘이라는 단어였다. 사실 이 단어와 설명을 들었을 때는 감동적일 정도였다. 항상 왜 그 많은 독일인들은 유대인 학살이라는 극악한 범죄에 동조하고 일익을 담당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대한 해석의 단초를 제기해주는 이 단어는 악의 신화화에 대해서 반대한다. 악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듯이 악마적 인간에 의해서만 저질러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멈추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는 능력을 결여˝한 보통의 인간들이 구조속에서 나는 그저 내 임무를 다했을 뿐이다라는 그 말이 바로 악을 실현하게 한다. 한나 아렌트의 표현대로라면 ˝확장된 심성˝의 결여, 내 식대로 말한다면 나의 행동에 대한 반성적 사고 또는 타인의 입장에서 사고하는 것의 결여가 결국 거대하누악의 일부분으로 나를 언제라도 밀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만으로 그토록 거대한 범죄를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답은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나와 같은 보통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좀 더 쉽게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생각들을 보다 보면 한국의 현재가 아주 소름끼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제법 많다. 그 때는 대부분 돈과 관련될 때이다. 최근의 예로는 부산항에서 러시아 선원들의 코로나 확진이 발생했을 때 왜 그걸 우리나라에서 공짜로 치료해주느냐하는 엄청나게 많은 댓글들, 다른 나라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에 대한 항의들, 국내 거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들.... 나 개인의 돈도 아니고 국가 세금으로 진행되는 일에 대해서도 마치 내 돈인듯 분개하는 사람들의 악의에 찬 말들은 우리가 지금 옳은 방향으로 가고있나를 되묻게 한다. 독일인들도 그랬다. 세계 대공황 이루 무너진 독일 경제를 히틀러가 강한 독일의 건설로 극복할 수 있다고 연설했을 때 바로 거기에 열광했다. 당시 독일인의 고통이 독일인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독일인 내부에 숨어 있는 유대인같은 반독일 세력때문이라고 했을 때 열광하며 히틀러에게 기꺼이 표를 던지고 기꺼이 학살의 대열에 동참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갈수록 커져가는 부에 대한 열망과 확장된 심성의 결여 그리고 개인의 죄를 가려주는 집단주의 이것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만날 때 너도 나도 모두가 악의 대열에 발을 담그게 되리라는 섬뜩한 경고가 한나 아렌트에 대한 이 글을 읽는 내내 떠 올랐다.

또한 앞으로 우리의 국가단위에서의 심성과 도덕성을 결정짓는 바로미터는 어쩌면 난민에 대한 대처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도 됐다. 선구적이게도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전체가 난민이 되던 그 순간에 앞으로 난민 문제가 세계의 핵심 문제가 되리라는 것, 이것이 유대인만의 문제가 아니리라는 것을 예견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자신의 권리가 억압당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할 권리조차도 아예 없는 새로운 완벽한 무권리의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쏟아져 나오리라는 것을 누가 예상했으랴. 하지만 난민문제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독일인들이 유대인들을 추방하던 그 태도와 무엇이 다를까?

읽는 동안 계속 착잡하고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드는 글이었다. 그리고 또한 이런 고민을 던져주는 것이 지식인의 임무라면 한나 아렌트는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고 그러므로 아직도 우리는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젠 어려운 책은 읽기 싫어서 이렇게 한나 아렌트의 생각을 요약해서 전해주는 책만 읽는 나의 정신적 게으름을 한탄하는 것도 겸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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