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내 까렌족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친구는 까렌반군 밀집지와 미얀마인 마을 사이에 살고 있었다. 미얀마군은 수시로마을에 쳐들어와 그들 까렌족‘을 공격하곤 했다. 그런데 까렌군 또한그들이 ‘미얀마인‘이라고 공격했다. 양측 모두 마을을 파괴할 만한 각자의 명분을 갖고 있었다. 서로의 눈에 비친 그들은 마치 난민처럼 경계 저 너머 반대편에 있는 존재였다. 그들도 결국 어딘가에서는 난민인 것이다.
- P125

이주 노동자 소학교는 어느 식당 건물의 꼭대기 층에 숨어 있었다.
철제 난간과 양철로 가려진 그곳은 그런대로 교실의 모습은 갖추고 있었다. 200여 명의 학생들이 허름한 식당의 옥상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선생님 집에서 보충 수업을 받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물론 그곳은 타이완의 보충 학습반과는 다르다. 1층 식당에서 3층교실까지 올라가는 길에는 아웅산 수치의 사진과 미얀마 국기가 걸려 있고, 교실 벽면에는 까렌 국기와 까렌 국부 사우바오우지의 사진이 태국 국왕 초상, 태국 국기와 함께 나란히 걸려 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공간에 정치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 P127

1965년 8월 9일 월요일 아침, 여느 때와 똑같이 경쾌하고 아름다운선율의 음악이 흘러나와야 할 라디오에서 뜻밖에도 엄숙한 독립선언이 들려왔다. 그리고 90 글자에 불과한 그 선언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인들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싱가포르가 독립을 강요당한 것이다. 리콴유는 기자회견에서 이 내용을 선포하며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흘린다. 천연자원 하나 없는 손바닥만 한 작은 섬이 어떻게 미래로 나아가야 할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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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베트남에게 중국은줄곧 가장 두렵고 극도로 증오하는 이웃이었다. 그리고 중국을 위협적인 존재로 느끼는 정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베트남인들에게 중국이 어두운 그림자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 P27

태국 국경 주변을 떠돌던 크메르루주군은 그곳에다가 길을 따라지뢰를 무수하게 뿌려놓았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땅속에서 터지기를기다리는 천만 개의 지뢰다. 그렇다면 베트남과 캄보디아 간의 관계는어떻게 되었을까? 그 사이에는 국경선의 천만 지뢰들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국민들 간의 원망과 증오가 묻혔다.
- P61

린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더 큰 세상으로나가서 성장하길 바라. 캄보디아로 돌아오지 말고 말이야." 매일 같이육체노동으로 달러를 벌면서 다양한 피부와 언어를 가진 외국인 관광객들을 볼 때마다 그는 자신도 바깥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단다. 타이완으로 해외여행도 가고 말이다. 그런데 해외는커녕 프놈펜도아직 못 가봤고, 그저 이 세상이 얼마나 광활하고 그곳 생활들은 얼마나 좋을지 상상만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린은 비록 자신은 평생 씨엠립을 벗어나지 못할지라도 아이들만큼은 이 나라의 국경을 넘어 자신과는 다른 신분으로 살아가길 비라면서 오늘의 고단함을 버티고 있었다. 아이들이 사회를 바꿀 수 있고, 육체노동으로 먹고사는 이들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힘을 지닌 사람으로 커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 P65

산업 기반이 취약한 라오스는 대부분의 민생물자를 태국으로부터수입해온다. 게다가 라오스인들은 쉬면서 텔레비전을 볼 때도 선택할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 태국 것으로 한정된다. 라오스 정부가 미디어를 엄격히 통제하면서 채널을 하나만 공개하고, 그나마 따분한 국내뉴스만 내보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라오스인들은 태국에대해 두려움과 증오를 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힘과 투자에 의해 경제가 좌지우지되면서 더욱 태국에 의존하게 된다.
- P73

14세기 남칸강 부근에 도달한 라오족은 남칸강과 메콩강이 합류하는 루앙프라방에 란쌍 왕조(란쌍은 백만 마리 코끼리와 하얀 파라솔이라는 뜻이다)를 세운다. 그전까지 해당 영토에 분포하고 있던 작은 공국은 진랍(캄보디아)과 앙코르 왕조의 지배를 받았는데, 란쌍 왕조가 세워지면서 비로소 라오스의 초기 틀이 그려진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기초적인 윤곽만 그린 것일 뿐이었다. 라오스는 이웃 국가인 미얀마와 태국의 침략과 공격을 받아오며 오랫동안 사방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근대 제국주의 시절에 이르러선 프랑스가 태국에게 메콩강 동쪽 땅을 양도하도록 압박함에 따라 식민지배를받으며 양귀비를 재배하는 제국의 뒤뜰이 된다.
- P78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은 동남아시아의 적화를 막기 위해 인도차이나반도에 대거 주둔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파테트라오의 집권을 막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북베트남이 라오스 영토 내의 ‘호찌민 트레일‘을 경유해 부대와 물자를 운송하는 일을 막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군은 60만 차례나 항공기를 동원해 200만 톤이 넘는 폭탄을 라오스에 투하한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퍼부어진 것이나 한국전쟁 때 쓰인 폭탄보다도 많은 양이다. - P83

기어츠의 말에 따르면 수학공식처럼 정리된 지도는 민족주의를 불러왔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국가 단위로 선명하게 구분된 지도를 통해 종족의 역사, 문화부터 자기 정체성까지 모두 국가와 관련지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가 보기에 민족주의 자체가 결코 잘못된 사상은 아니었다. 다만 완전히 다른 특성들까지도 하나로 아울러 저마다 품고 있던 고유한 정서들을 모호하게 뭉뚱그리는 식으로 잘못 쓰일수는 있었다. - P93

그 땅에 도달한 이들은 순서와 무관하게 전부 토착성을 가진 토착인 (인도네시아어로 아슬리asi) 으로 간주되었고 동시에 ‘원주민 (인도네시아어로 프리부/pribum, 이 땅의 자손‘이라는 뜻이다)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화교는 일찍이 17세기부터 이주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줄곧 외국인 인도네시아어로 아싱asing)‘ 취급을 받는다.
그와 같은 화교와 원주민 간의 지우지 못할 경계선은 네덜란드 식민통치 시대에 그어진 이후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당시 식민주의자들은 인도네시아 군도에서 인종 분리 정책을 실시했다. 종족 전체를 상류층에 속하는 유럽인, 중류층에 위치하는 동양계 외국인, 그리고 하류층의 토착인으로 나눈 것이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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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안나 씨.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싶은 겁니까?"
"말했잖은가. 기다리고 있는 걸세.
안나의 시선이 창밖의 우주를 향했다.
"언젠가는 슬렌포니아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을 기다리는 것이지. 언젠가는 이곳에서 우주선이 출항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언젠가는 슬렌포니아 근처의 웜홀통로가 열리지 않을까………. 자네에게는 흘러가는 시간이붙잡지 못해 아쉬운 기회비용이겠지만, 나 같은 늙은이에게는 아니라네."
- P177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 P181

"선배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제 생각은 이래요. 물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사로잡아요. 왜, 보면 콘서트에 다녀온 티켓을 오랫동안 보관해두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사진도 굳이 인화해서 직접 걸어두고, 휴대폰 사진이 아무리 잘 나와도 누군가는 아직 폴라로이드를 찾아요.
전자책 시장이 성장한다고 해도 여전히 종이책이 더 많이팔리고, 음악은 다들 스트리밍으로 듣지만 음반이나 LP도꾸준히 사는 사람들이 있죠.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이미지를 향수로 만들어서 파는 그런 가게도 있고요. 근데 막상사면 아까워서 한 번도 안 뿌려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 P205

만약 그때 엄마가 선택해야 했던 장소가 집이 아니었다.
면 어땠을까. 어떻게든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면, 표지 안쪽, 아니면 페이지의 가장 뒤쪽 작은 글씨,
그도 아니면 파일의 만든 사람 서명으로만 남는 작은 존재감으로라도, 자신을 고유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를 남길수 있었다면, 그러면 그녀는 그 깊은 바닥에서 다시 걸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녀를 규정할 장소와 이름이 집이라는 울타리 밖에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녀를 붙잡아줄 단 하나의 끈이라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더라면. - P264

가윤은 이 우주에 와야만 했다. 이 우주를 보고 싶었다. 가윤은 조망대에 서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까지 천천히 우주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언젠가 자신의 우주 영웅을 다시 만난다면, 그에게 우주저편의 풍경이 꽤 멋졌다고 말해줄 것이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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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지구에 돌아온 이후로 평생 동안 유리를 수집했다. 할머니의 서재를 채우는 유리 수집품은 무척 다양했다. 유리로 만든 공예품에서 프리즘, 렌즈, 거울에 이르기까지. 할머니는 그 유리들로 책이나 그림을 들여다보기도하고, 손전등을 그 위에 비추기도 했다. 유리를 모으는 이유를 할머니가 직접 말해준 적은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짐작해보곤 했다. 빛을 모으고, 분리하고, 보통의 감각으로 볼 수 없는 대상을 보게 하는 도구, 할머니가 행성에 머물며 가장 절실히 원했던 것들은 아마 그런 도구들이었을 것이다.
- P79

- 잘 자.
처음으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깔개 위에 몸을 뉘었을때 희진은 문득 울고 싶었다. 고작 그 정도의 말을 건네는것만으로도 누군가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는 사실을예전에는 몰랐다.
- P82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다시 만날 때는, 우리는 더는 유약한 이방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도구를 가져갈 것이다. 그들에 관한 정보를 눈으로 확인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말을 분석하고 그들의 문자를 분석할 것이다.
루이와 할머니의 관계는 재현될 수 없을 것이다. 나는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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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일상의 균열을 맞닥뜨린 사람들만이 세계의 진실을 뒤쫓게 되는 걸까? 나에게는 분명한 균열이었던 그 울고 있던남자와의 만남 이후로, 나는 한 가지 충격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어.
우리는 행복하지만, 이 행복의 근원을 모른다는 것.
- P19

지구에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충격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수없이 많겠지. 이제 나는 상상할 수 있어. 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 P52

그들이 어떤 모습이건 순례자들은 그들에게서 단 하나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찾아냈겠지.
그리고 그들이 맞서는 세계를 보겠지. 우리의 원죄, 우리를 너무 사랑했던 릴리가 만든 또 다른 세계. 가장 아름다운 마을과 가장 비참한 시초지의 간극. 그 세계를 바꾸지 않는다면 누군가와 함께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도 없으리라는 사실을 순례자들은 알게 되겠지.
지구에 남는 이유는 단 한 사람으로 충분했을 거야.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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