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그 그림에 반해화가에 대해 알아보았다가 누군가의 부인이란 설명이 먼저 오는것에 아연함을 느꼈었다. 이렇게 대단한 걸 그려도 그보다 중요한정보는 남성 화가의 배우자란 점인지, 지난 세기 여성들의 마음에절벽의 풍경이 하나씩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최근에 더욱 하게 되었다. 십 년 전 세상을 뜬 할머니를 깨워, 날마다의 모멸감을 어떻게 견뎠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떻게 가슴이 터져 죽지않고 웃으면서 일흔아홉까지 살 수 있었느냐고,
- P15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죽음으로 향하는 내 안의 나선 경사로를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구부러진 스프링을 어떻게든 펴야겠다고, 스스로의 비틀린 부분을 수정하는 것, 그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길인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예술가가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비틀림일수록 그 곁에 어린 환상들을 걷어내십시오. 직선으로 느리게 걷는것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택해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
- P30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면읽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죽음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행위는 읽기라고, 동의할 만한 사람들과 밤새 책 이야기나 하고 싶었다.
- P72

이승만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승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로 첨예하게 반분되어 있던 한인 사회는 세대를 내려가며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들었다. 끝내는 익숙해질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가 망명한 집에 밤에 몰래 가 유리창이라도 깼을까? 평행하는 세계에 대해 읽어보았지만 역시 그런 게 없었으면 한다.
- P93

그리고 피해자들이 민사를 막 시작하려고 할 때 자살했다. 염산을 쓰지는 않았고, 욕실수건걸이에 목을 매달았다.
죗값을 치르지 않고 도망쳤다. 그건 도망이었다. 화수는 잊을수 없었고 늘 화가 나 있었고 이제 그 화는 화수만을 해쳤고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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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갈에서 풀려날 때, 야백은 사람의 밥을 벌고, 사람이 걸어주는 장신구를 붙이고, 사람을 태우고 달린 생애의 시간이몸속에서 소멸하는 것을 느꼈다. 지나간 시간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아서 이 빠진 자리는 빈 채 서늘했다 - P146

젊은 농부가 죽은 딸의 머리맡에 묻은 돌은 이 악기를 본떻것인데 어려서 죽은 월의 아이들은 모두 이 악기를 선물로 지니고 갔다. 사람들은 들짐승이 무덤을 파헤치지 못하도록 돌로 무덤을 덮어놓았는데 돌에 구멍을 뚫어서 무덤 속 아이와별이 서로 쳐다볼 수 있도록 했다.
- P178

사람이 땅에 들러붙으면, 땅은 그 위에 들러붙은 자의 것이 되는데 그위에 기둥과 지붕을 세우고 그 안에 들어앉은 자들의 어두움을 표는 상양성에서 알았다. 초원에서 창세 이래로 전개된 싸움은 세상에 금을 긋는 자들과 금을 지우려는 자들 사이의 싸움이었고, 초원 끝까지 나아가서 금을 지우면, 그 뒤쪽에서다시 금이 그어져서 싸움은 끝이 없었다.  - P191

초원의 봄은 땅속에서 번져 나왔다. 봄에 초원은 벌렁거렸다. 눈이 녹아서 부푼 흙 속에서 풀싹이 돋아나고 벌레들이깨어났다. 벌레들은 땅속에서 올라오고 숲에서 살아났다.
벌레들은 가을에 모두 죽어서 없어지고 봄이 오면 새로운벌레들이 초원에 나타나서, 모든 벌레는 작년에 죽은 벌레의자식이 아니며, 이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나는 새로운 벌레이고, 벌레들이 다 죽어도 벌레들의 초원에는 죽음이 없다고 무녀는 연에게 말해주었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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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는 산 자들의 나라였다. 초나라에서 죽음과 죽은 자들은 금세 잊혔다. 죽은 자들은 마을에서 먼 강가나 초원의 먼 가장자리에 묻었다. 묻은 자리를 꾸미지 않고 흙이 들뜬 자리에풀을 옮겨 심고 가랑잎을 덮어서, 무덤이 늘어나도 초원은 평평했고 별일 없어 보였다. 죽은 자를 묻는 일도 별것이 없었다. 죽은 자들을 벌거벗기고 겨드랑이와 사타구니를 벌려서햇볕에 말렸다가 들것에 신고 초원으로 갔다. 가죽옷을 벗기고 햇볕을 쬐어주는 가벼움은 죽음이 가져오는 사치였다. 사체를 실어낼 때 촌장이 대열을 인솔했고, 그 앞에서 수탉이높이 울어서 죽은 자의 퇴거를 나하에 고했다. 선왕들의 정벌과 치적의 일부가 후대에 구전될 뿐, 초나라 사람들은 죽은자의 살았을 적 일을 입에 담지 않았고, 죽은 자를 위해 돌을쌓지 않았고, 죽어서 땅에 묻히는 일을 슬퍼하지 않았다. 축음은 산 자의 마을에 얼씬댈 수 없었다.
- P15

모든 휘두름은 닥쳐오는 휘두름 앞에서 덧없다. 수와 공은 다르지 않고 공과 수는 서로를 포함하면서 어긋난다. 모든 공과모든 수는 죽음과 삶 사이를 가른다. 그러므로 공에서 수로,
수에서 공으로 쉴 새 없이 넘나드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이엎어지고 뒤집히는 틈새를 사람의 말로는 삶이라고 부른다.
고 시원기』에 적혀 있는데, 수네 공이네 죽음이네 삶이네 하는 언설들은 훨씬 게을러진 후세에 기록된 것이다. - P23

산맥 위로 초승달이 오르면, 말 무리는 달 쪽으로 달려갔다. 밤은 파랬고, 신생(新生)하는 달의 풋내가 초원에 가득 찼다. 말들은 젖은 콧구멍을 벌름거려서 달 냄새를 빨아들였고,
초승달은 말의 힘과 넋을 달 쪽으로 끌어당겼다. 초승달이 뜨면 젊은 수말들은 몸을 떨면서 정액을 흘렸다.
- P48

추는 오리나무 밑동에 말고삐를 묶었다. 추가 말의 엉덩이를 두드리자 말은 무릎을 꿇었다. 추가 칼을 뽑았다. 백산 쪽 하늘에 초승달이 걸려 있었다.
총총은 고개를 들어서 초승달을 바라보았다. 총총의 이마에박힌 초승달 무늬가 하늘의 초승달을 향했다.
추는 칼로 총총의 목을 내리쳤다. 칼 지나간 자리에서 피가솟구쳤다. 총총은 쓰러져서 네 다리로 허공을 긁었다. 총총의머리는 세 번 칼을 받고서 떨어져 나갔다. 추는 웅덩이 물에칼을 씻었다.
- P63

춘분날 열병식에서 토하가 왕자 표를 태우고 목왕 앞에 나갔을 때 왕은, 말을 타고 달리는 자는 세상을 안다. 세상은 넓고 세상은 좁다는 것을 안다. 세상이 좁아서 멀리 달려가면세상은 넓어지고, 거기가 또 좁아서 더 멀리 달려간다. 말에올라타면 비로소 세상이 보이는데, 세상의 끝은 보이지 않고출발한 자리도 보이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 P82

금칠로 바다의 저녁 빛을 끌어들여 어둠을 휘젓는 소행을목왕은 추하게 여겼다. 저녁이 어둡지 않으면 저녁이 아니고들뜬 빛에 별들이 주눅 들고 풀과 말의 잠이 어수선해서 초원은 무너질 것이었다. 목왕은 초원의 어스름 속에 번뜩이는 빛을 더럽게 여겼다. 목왕은 여생의 짧음을 한탄했다.
- P86

서물은 전하지 않지만 그 문장을 읽은 자들의 기억의 파편몇 개가 후세에 전한다. 「토만평양육서」의 골격은 나하를 야만의 남진(南進)을 막아주는 은혜의 강물로 신성시하면서, 나하를 또한 세상을 둘로 갈라놓은 단절의 강물이었다고 쓰고,
이제 단의 상서로운 힘이 산하에 가득 찼으니 물 건너 북쪽에서 삶을 땅 위에 앉히지 못하고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서 금수 축생으로 떠도는 무리를 무로 평정하고 문으로 쓰다듬어서 왕의 은혜로 목욕시켜 새롭게 태어나게 하니, 나하는 비로소 가지런한 세상의 줌심을 흐르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언사가 낡았고, 옛글의 조각을 끌어모아서 꿰맨 자리가 여기저기 널려있었고, 꿰맨 솔기가 터져서 너덜거렸다. - P96

기록들은 쓴 자들의 마음에 쏠려서 허무했고, 후세에 쓴 글들은 서로 부딪쳐서 옮길 만한 문장이 없었으나, 이야기들은팔풍원의 꽃씨처럼 바람에 날려서 초원과 산맥에 흩어졌다. 홀어진 자리에서 돋아나고 퍼져 나가서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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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작가의 책이 새로 나왔다. 책 뒷날개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글에 대한 소개를 이렇게 정확하게 하다니.... 역시 김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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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약 십여 차례 일본 방방곡곡을 여행했지만, 일본에서 오키나와만큼평화를 갈망하고 전쟁을 두려워하는 곳은 보지 못했다.
오키나와인들은 전쟁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일본인들과 국적이같기에 가해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이 일본을 가장 증오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일본을 대신해 가장 철저하게 반성할 줄 아는민족도 그들이다. 오키나와인들에게 모순은 어디에나 항상 존재한다.
- P172

"일본이 둥베이를 점령하면서 강제로 데려온 조선인 이민자들도있었지. 식민주의자는 각 마을의 황무지와 논을 할당해 그들에게 일구도록 했어." 교수의 말에 따르면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일본은 양질의 토지를 일단 조선인들에게 분배해줬고, 한족들은 상대적으로 척박한 땅으로 내몰렸다. 따라서 그들은 수수와 쌀만 재배할 수있었다. 당시 둥베이에서는 일본인이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했고, 조선인이 그 뒤를 이었으며, 만주인과 한족이 최하위였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나는 한족이 우리를 증오하는 걸 느꼈어, 우리는 늘 가오리방高棒子(한국인에 대한 멸칭)‘ 라고 욕먹고는 했지."
- P199

그런데 정작 타이완에서 생활한 지 오래됐고, 스스로 자신은 종족갈등과 편견을 지워낼 수 있다고 믿는 량유쉬안은 어느 날 길을 걸어가다가 한 말레이족이 길을 물어오자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며 경계심을 보였다. 그는 말레이족을 향해 말했다. 뭘 하려는 거야?" 그 일이 있고 난 후 량유쉬안은 반성하며 한숨 지었다. 종족 사이 마음속에존재하는 응어리를 진정으로 풀려면, 정말이지 아직 갈 길이 한참 먼것 같아."
- P257

오늘날 홍콩이 반환되고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는 한편 인구의 이동도 이전보다 용이해졌지만, 그럼에도 홍콩과 중국 사이의 경계는 소멸되지 못했다. 심리적 경계는 더욱 그러하다. 홍콩 사회에서는 늘 대륙의 손님들이 몰려드는 데 대한 불평이 터져 나오고, 대륙인들이 협소한 홍콩 땅에 대거 몰려들어 자신들의 자원과 기회를 박탈하고 부담을가중시킬까 봐 우려하기도 한다.
- P270

초기 화교 이민자의 문화와 언어는 여기서 국물 위에 뜬 기름기와 같다. 실제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역사적 유물로서 국물 위에서 겉도는 것이다. 그것은 얼핏 하나가 된 듯해 보여도 결국에 녹아들지 못했고, 그렇다고 말끔하게 걷어내지도 못했다. 사당의 향불 연기, 길가의 설맞이물건들, 벽에 붙은 붉은 달력 등 모두가 지워지지 못한 기름얼룩이자말끔하게 걷어내지 못한 기름 덩어리다.
- P332

이 책의 마지막에서 나는 이런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다. 국경을 넘고 역사적 경계와 심리적 경계를 뛰어넘어 다른 국가, 다른 종족, 다르다고 생각했던 모든 이들을 새로이 인식해보는 것은 어떨는지. 그들이바로 우리이고, 우리가 그들이 될 수도 있음을 빠르게 발견할 수 있을것이다. 이러한 역지사지를 거치고 난 다음에야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우리‘가 된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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