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자신이 한 실수 - 결정장애란 말을 혐오표현에 대한 토론에서 아무 생각없이 썼던 경험 -에서 책의 서두를 시작한다. 사실 이 경험에 이 책의 주제가 모두 들어 있다. 가치 중립적으로 보이고 대부분의 사람이 일상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쓰이는 이 용어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이 무심결에 지나친다. 더 나아가서는 문제제기에 대해 그거 지나치게 예민한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하지만 이 말을 듣는이 중에 장애우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에게는 결정장애라는 단어 중에 장애라는 단어거 더 크게 울릴것은 자명하다.

나는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신화일뿐이라는 것을 논증하는 것, 그래서 차별받지 않는 나에서 나아가 차별하지 않는 나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사회적 관계망 속에 존재하고 어떤 경우에는 때로는 차별받는 위치에 있지만 때로는 차별할 수 있고 차별하는 위치에 존재한다. 통행에 불편함을 모르는 나는 장애인의 통행권에 무관심하며, 국민이라는 범주에 안전하게 안착한 나는 난민의 권리에 무감하다.

일상생활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차별에 대해 무감각한지를 돌아보기에 좋은 책으로 많은 이들이 함께 읽고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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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의 글머리에 인용한 아서 골드버그 대법관의 말을 다시 새겨보자. "차별은 단순히 지폐나 동전이나, 햄버거나 영화의 문제가아니다. 누군가에게 인종이나 피부색을 이유로 그를 공공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할 때, 그가 당연히 느낄 모멸감, 좌절감, 수치심의 문제이다." 바로,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다.
- P133

공공의 공간에서 거절당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을 소수자 minorities 로 만드는 중요한 성질 가운데 하나다. ‘소수‘라는 건 수의 많고 적음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여성처럼 숫자로는 많아도 어쩐지 공공의 장에서 보이지 않는사람들이 있다.
- P137

성소수자에게 "왜 굳이 축제를 하나요?" "왜 굳이 커밍아웃을 하나요?"라고 묻는 질문 속에는, ‘성소수자‘라는 기표가 아고라에 입장할 자격이 되지 못한다는 전제를 품고 있다. 이들을 향해 너희는사적 영역에 남아 있어야 하며 공공의 장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있으라는 요구다.
그렇기에 역으로 성소수자가 축제와 커밍아웃을 하는 이유가 더분명해진다. 보이지 않는 성소수자에게 축제와 커밍아웃은, 보이는 존재로서 평등한 세계에 입장하고 민주적 토론에 참여하기 위해 낙인이 찍혀 있는 사적 기표를 공공의 장에 노출하는 행위다.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어떤 사적 특성이 공공의 장소에서 받아들여지는가? 공공 공간의 주인은 누구인가? 공공 공간에 입장할자격은 누가 정하고 통제하는가?
- P141

마이클 왈저 Michael Wazer는 영토 안에 권리가 적거나 없는 계층이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미 민주주의에 반하는 "폭정"tyranny 이라고말한다.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기본 전제로 그 안의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관계를 가지고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적이 다르다고 사람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울 수 있을까.우리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윤리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만 은폐된 불평등을 전제로 평등을 누렸던 그리스의 폴리스와는 다른, 진정한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P151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다수자와 소수자의 자유는 같지 않다. 존 스튜어트 밀lohn Start Mill이 『자유론,
에서 지적하듯, 다수자는 소수자의 의견을 거침없이 공격할 수 있다. 반면 소수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표현을 순화하고,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도록 극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된다. 다수자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서 잘말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사실상 침묵을 강요한다.
- P171

불평등한 사회가 고단한 이유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노력으로해결하도록 부당하게 종용하기 때문이다.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책임을, 차별을 당하는 개인에게 지우는 것이다. 그래서 삶이 불안하다. 아프거나 실패하거나 어떤 이유로건 소수자의 위치에 놓이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해야 한다.  - P187

그러니 내가 모르고 한 차별에 대해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몰랐다" "네가 예민하다"는 방어보다는, 더 잘 알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자고 제안한다.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우리들은 서로에게 차별의 경험을이야기해주고 경청함으로써 은폐되거나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는불평등을 감지하고 싸울 수 있다. 우리가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할 내용을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는 것이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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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둘러싼 말과 생각들을 하나하나 훑는 작업은 마치 세상을다시 배우는 느낌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신화일 뿐이었다. 누군가를 정말 평등하게 대우하고 존중한다는 건 나의 무의식까지 훑어보는 작업을 거친 후에야조금이나마 가능해질 것 같았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나를 발견하는 일 말이다.
- P10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학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특권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발견‘인 이유가 있다. 일상적으로 누리는 이런 특권은 대개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조건이라서 많은 경우 눈치채지못하기 때문이다. 특권은 말하자면 ‘가진 자의 여유‘로서, 가지고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이다.
- P28

고정관념은 일종의 착각이지만 그 영향은 꽤 강력하다. 일단 마음속에 들어오면 일종의 버그처럼 정보처리를 교란시킨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사실에 더 집중하고 그것을 더잘 기억한다. 결과적으로 그 고정관념을 점점 더 확신하는 사이클이 만들어진다. 반면 고정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사실에는 별로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고정관념과 충돌하는 사례를 보더라도고정관념을 바꾸지 않는다. 대신 전형적이지 않은 특이한 경우라고 여기며 예외로 치부한다. 고정관념이 활발하게 작동하는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반증 사례를 아무리 제시해도 별 효과가 없는 이유이다.
- P48

‘우리‘와 ‘그들‘ 이라는 감각의 차이는 두 집단을 가르는 경계에서 생긴다.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
즉 그들을 쉽게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적으로 자신이 속한 내부 집단은 복잡하고 다양하고 더 인간적이라고 느낀다. 반면외부 집단은 훨씬 단조롭고 균질하며 덜 인간적으로 보인다. 내부집단과 외부 집단의 차이를 과장하여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를 중심으로 집단을 가르는 마음의 경계를 따라 ‘그들‘ 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만들어진다.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도 이 마음의경계에 따라 달라진다.
- P51

여성이 남성과 같은 일을 하면서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상황은 직관적으로도 부당한 차별로 여겨진다. 하지만 여성이 애초에 임금이 낮은 직종에 진출하는 상황은 다르다. 어떤 면에서 여성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노동시장으로 자발적으로 진입한 셈이 되었으니, 여성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구조적 차별ystemic discrimination 20 은 이렇게 차별을 차별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미 차별이 사회적으로 만연하고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어서 충분히 예측 가능할 때, 누군가 의도하지 않아도 각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차별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생긴다.  - P74

그래서 의심이 필요하다. 세상은 정말 평등한가? 내 삶은 정말차별과 상관없는가? 시야를 확장하기 위한 성찰은 모든 사람에게필요하다. 내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지적해주는 누군가가 있다.
면 내 시야가 미치지 못한 사각지대를 발견할 기회이다. 그 성찰의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회질서를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며 차별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평등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
- P79

소수자에 대한 잠재된 거부감이 혐오표현을 통해 방출되는 것이라면 최근 한국사회는 그 적나라한 모습들을 보았다. 범람하는 혐오표현을 통해 편견은 더욱 자유롭게 소통되며 차별을 정당화하는
‘규범‘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평등에 관한 규범이 모호한현실과 관련 있다.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확립된 규범이 없는상태에 기생하는 유머들인 것이다. 차별금지의 규범이 사회적으로확립되기 전까지 유머를 통해 누군가를 비하하고자 하는 욕망은계속 표출되고 증폭될 수 있다.
- P93

그래서 어떤 소수자 집단은 낙인이 부착된 단어를 그들 스스로전유reappropriation 해버리기도 한다. 아예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호명하는 단어로 사용하면서 긍정적 의미를 부여해버리는 전략이다.
대표적인 단어가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퀴어‘다. 퀴어는 본래기괴한‘ 이란 뜻으로, 성소수자를 조롱하는 용어였다. 그런데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이 단어를 전유해버렸다. ‘기괴하다‘는 뜻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기괴함은 나쁜 것이 아니라 특별하고 독창적인 것이며 다양성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오히려 자랑스러운 특징이라고 선언해버렸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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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 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가 되살아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회복하지 못했으면 하는 집요한 의지의 실행이었다.(178페이지)


박원순시장은 내가 정말로 좋아하던 몇 안되는 정치인 중 한명이었다. 지금 이렇게 과거형으로 쓸수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울 정도로.....


며칠전 발표된 피해자의 편지에서 ˝사과 받고 싶었습니다.... 용서하고 싶었습니다˝라는 두 문장이 가슴을 치받았다. 그 두 마디에 녹아있는 간절함이 너무도 절절해서.


그가 자살하지 않고 죄값을 받고 진심어린 사과를 했더라면 피해자인 그녀는 용서할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다. 가보지 못한 길이기에.... 그럼에도 그럼에도 말이다.


박원순은 살아서 사과했어야 했다.
죽음이 사과라고?
아니, 그것은 피해자를 향한 또 한번의 폭력이고 가해일뿐이다. 그것도 최종적이고 완전한 폭력.


나는 박원순 시장이 살아 뉘우치고 끊임없이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먼 훗날 그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비록 치명적인 잘못을 한적도 있지만 그래도 당신이 한 일에 우리 사회가 많은 빚을 졌다며 그의 죽음에 애도를 보낼 수 있었을 것도 같다.


하지만 무책임한, 피해자에게 또 한 번의 상처를 줘버린 그의 자살앞에서는 감히 그의 죽음을 애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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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에게 친절한 사람들이 사람에겐 친절하지 않다는 게 이상 - P115

폭력은 사람의 인격을 조각한다. 조각하다가 아예 부숴버리기도 하지만, 폭력에서살아남은 사람은 폭력의 기미를 감지할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얻은 감지력을 유용하게 쓰는 사람도 있고 절망해 방치해버리는사람도 있어서 한 가지 결로 말할 수는 없다. - P126

한빛은 그렇게 느낄 수 있다. 규림은 자신의 해명이 힘도 없고중요하지도 않음을 이해했다. 화수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죽은 남자가 사촌 큰누나에게 염산을 던졌을 때, 가해자가 피해자인 척할 때의 역겨움을 온 가족이 똑똑히 이해할 수밖에없었고 규림 자신은 도저히 같은 짓을 할 수 없었다. 가해와 피해의 스펙트럼에서 스스로가 가해에 더 가까웠음을 인정해야 했다. - P173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가 되살아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회복하지 못했으면 하는 집요한 의지의실행이었다.
- P178

우리가 이천 년 가깝게 사랑해온 땅들은 플랜테이션 농장이 되었어요. 백인 선교사의 자식들이 그 농장을 차지했습니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대거 바다를 건너왔고요. 농장주들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에 합병을 한 겁니다. 아무것도 우리가 원한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의 정신과 문화가 희석되는 걸 막기 위해 지극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말이 살아나고 훌라가 살아났지만 갈 길이 멀어요. 우리를 그저 관광상품으로 대상화하면 안됩니다. - P213

빛나는 재능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 P288

즐거워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질리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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