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천천히 하더라도, 분단을 야기한 냉전체제해소는 시급히 이루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냉전체제가 이 나라를 완전히 볼품없는 나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냉전체제는군사 주권을 미국에 양도함으로써 한국의 국가 주권을 훼손했고,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 지형을 조성하여 정치 구도를 기형화했으며, 재벌 독재의 경제 질서를 만들어 경제 정의를 파괴했고, 권위주의적 성격을 심어 한국인의 성격 구조를 왜곡했습니다.
- P199

귄터 그라스는 바로 이 역사적 사실을 짚은 것이지요. 독일 민족이 다 함께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을 동생 격인 작은 나라동독이 혼자 떠맡았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따라서 통일세는 서독이 동독에게 진 바로 그 역사의 부채를 탕감하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그라스의 ‘부채 탕감론은 들끓던 통일세 논쟁을 잠재웠고,
서독인의 불만 정서를 누그러뜨렸습니다. 독일에는 이런 말을할 수 있는 ‘지식인의 자리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지요 - P223

한반도 통일과 관련하여 남북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핵심적인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북한의 권위주의적 사회주의를 어떻게 민주화할 것인가, 남한의 약탈적 자본주의를 어떻게 인간화할 것인가. 이 두 개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이 바로 통일 사회가가야 할 길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통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분단체제를 해소하는 것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전제는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공동의 인식입니다.
- P243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상상력이 너무도 빈약하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종속변수로 보는 태도도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움직임으로써 새로운 상황을 창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바뀌는상황에 무조건 적응하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새로운상황을 만들고, 잘못된 상태를 바꿀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실행에 옮길 용기와 비전이 없을 뿐입니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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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독일에서는 성교육을 가장 중요한 정치교육으로 본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약간의 설명이필요합니다. 독일의 교육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민주주의 최대의 적은 약한 자아"라고 했습니다. 왜한국에서는 이렇게 민주주의가 취약할까 고민하던 시기에 아도르노의 에세이에서 본 이 말은 저에게 개안의 충격을 주었지요.
이 말이 옳다면 약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는 얘기지요. 민주주의를 하려면 구성원 하나하나가 강한 자아를 가진 성숙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것이니까요. 저는 이 말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가 왜 취약한지를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국인들은 과연 얼마나 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을까요?
- P113

저는 ‘진보‘란 정치적 좌우 개념을 넘어서 보다 넓은 의미에서 고통과 억압에 대한 민감성‘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겪은 고통과 억압을 보다 민감하게 느끼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좌파라는 겁니다. 이에 반해 보수는 대개 고통과 억압보다는 권력과 질서에 민감하지요..
- P137

세계적으로 눈을 돌려보아도 우리처럼 과도하게 우편향된 정치 지형을 가진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대부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의 기형성을모른 채, 우리 정치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모든언론이 거짓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지금 보수와진보가 서로 경쟁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것은 한국의 기득권이 만들어낸 최악의 거짓말입니다. 사실해방 이후 한 번도 보수와 진보가 경쟁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 한국의 정치 지형은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수구와 보수가 손을 잡고 권력을 분점해 온 구도입니다. 저는 이것을수구-보수 과두지배(oligarchy)‘라고 부릅니다.
- P172

이러한 우편향된 지형에서 수구와 보수가 선거법을 매개로과두 지배하는 것이 한국의 정치 현실입니다. 한국이 수차례의민주 혁명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의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더 지옥이 되어가는 이유는 이러한 구조적인 결함에 있습니다. 민주화가 되어도, 정권 교체가 이루어져도 이 나라는 변하지 않는구나, 이 점을 이제는 국민들이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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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인 대다수는 내 안의 파시즘‘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억압의 문화, 부조리의 상황을 하나의 문제로서 인식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물의 질서‘, ‘세상의 이치‘, ‘자연 상태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에리히 프롬 식으로 말하자면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것은 정상성의 병리성‘이었던 것입니다.
- P95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 P100

결국 문제는 민주화 이후 86세대가 보인 행보입니다. 그들은 정치 게임에 능한 반면, 사회개혁에 무능했습니다. 이것이 한국의86 세대와 독일 68세대의 결정적인 차이점입니다.
- P104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새로운 사회로 변화하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86세대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입니다. 86 세대가 자신들의 도덕적 결단에 의해서, 또 수많은 희생을 통해서 한국 민주주의를 이만큼 진전시킨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상대와 싸워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보다 왼쪽에 있는 사람들과 경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로 자유롭고 정의롭고 평등한 세계를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과 대결해 본 적이 없습니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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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Franco Bifo Berardi)는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한국 사회의 특징을 네 가지로 짚었습니다.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가 그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꼭 지옥의 구성 목록처럼 느껴져 섬뜩합니다.
- P5

다시 말하면 이 나라에서는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가 괴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충분히 민주주의자가 되지 못한 거지요.......
우리 사회가 광장 민주주의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일상 민주주의에서 여전히 낙후되어 있는 것은 뿌리 깊은 유교 사상과도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와 군사독재 시대가 남긴 집단주의, 군사주의, 병영문화 등도 깊은 관련이있겠지요. 바로 이런 것들이 뒤얽혀서 일상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중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군사문화의 전면적인 지배입니다. 우리는 군사문화가 너무도 뿌리 깊고, 너무도 널리 퍼진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 P33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구성원들의 자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구성원들의 의사가 어떻게 민주적으로 모아지는가 하는 것, 즉 조직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조직 내부에서 형성되는가 하는 것이 사회 민주화의 요체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사회 민주화의 기본 원리는 구성원들의 자치입니다.
- P38

전쟁이 끝난 후 독일에 들어온 연합군은 나치 체제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고민에 빠집니다. 과연 기업 영역에선 어떻게 나치즘을 청산해야 할까? 이들이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나치가 기업 전체를 완전히 장악해서 삽시간에 전쟁 기업으로 전환시킬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보다도 노동자의 권력이 너무나 약했기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치즘과 같은 재앙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기업 내부에서 노동자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결국 나치즘의 역사가노사공동결정제의 탄생에 결정적인 구실을 하게 된 셈입니다. 이렇게 역사는 때론 참으로 역설적인 행보를 보입니다.
- P45

요컨대 베트남전쟁을 보면서 도덕적 충격을 느끼고, 미소 간의핵무기 경쟁을 보면서 부조리한 세계를 체험한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 전체를 부정하고 기성 가치 전체를 회의하는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가치 질서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기성세대가 이루어 놓은 것은 기실 거대한 억압의 체제이고, 이것을 혁파해야 한다는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여기서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해방‘이라는 68혁명의 핵심 구호가 탄생하게 됩니다.
- P57

‘아우슈비츠 이후의 교육으로서 독일 교육의 독특한 성격을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바로 ‘비판 교육(Kritische Pidagogik)‘입니다. 정말 특이한 교육이지요. 세계에서 비판 교육을 교육의 원리로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독일밖에 없을 것입니다.
- P66

반면 한국에서는 권력을 비판하는 개그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고 조롱합니다. 뚱뚱하다는둥, 못생겼다는 둥, 게으르다는 둥, 무능하다는 둥 외모를 비하하거나 약자를 조롱합니다. 정말로 한국 사회가 얼마나 병든 사회인지를 전도된 개그 정신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비판하지못하는 개그가 약자를 공격하는 형태는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병리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P68

전 세계가 베트남전쟁에반대할 때 우리만 베트남전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셈입니다. 제가 유일한 지상군 파병 국가라고 할 때 사실상‘이라는 말을 붙였는데요. 그것은 지상군을 파병한 나라가 하나 더 있기 때문입니다. 대만이 20명의 지상군을 파병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1964년부터 1968년까지 5년 동안 32만 명의 지상군을 파병했는데 대만은 달랑 20명을 파병했습니다. 20만 명이 아니라 20명 말입니다. 대만 역시 미국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파병했을 텐데 오죽하면 20명을 보냈을까요. 그러니까 한국이 사실상 유일한 지상군파병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P87

1968년부터 한반도가일종의 게릴라전 상태로 접어들면서, 박정희는 이를 명분으로 남한 사회를 본격적으로 ‘병영사회‘로 재편하기 시작합니다. 이를위해 처음으로 한 일이 바로 주민등록법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주민등록법을 만든 목표는 명확합니다. 바로 ‘간첩 색출입니다.......국민교육헌장, 예비군 훈련 시작, 교련 수업 등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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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를 떠올리면 ‘시인 되기에는 두 가지 핵심적인 것이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내면에 말의 보물창고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말을 잘 골라내고, 말에색깔을 입히고 그것들을 잘 배열하는 재능 말이지요. 이는 인위적으로 꾸며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천성적으로 주어지는 것일 테지요. ‘뮤즈‘를 자신의 안에 간직한 자들이 시인인것이지요. ‘보물창고‘는커녕 ‘웅덩이 조차 없어서 시인 되기를 포기한 저 같은 자들도 더러 있으니까요.
- P49

또 다른 하나는 ‘젊어서 늙어버리기‘같은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서 병들고 늙어야지" 같은 구절들이 황지우 시에는 있지요. 이를 견자로서의 시인 되기‘의 품성이라 합니다. 김소월, 윤동주 등이 다 그러한데, 이들 시인들은 청춘 시기에도 나는 늙었다. 청춘이지나갔다 말합니다. 그들은 젊어서 이미 늙어버린‘ 자의 철학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일찍 철들고 일찍 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습니다. ‘농담‘ 같지만 은유적인 구절들이 그의 시에 있고 그것은 철학적이고 예언자적인 아우라를 풍기며 독자를 기다립니다. 한 문장으로 요약된 시인의 인생철학은 구구절절 나열하지 않고 머뭇거리지 않고 단박에 달려 나가듯 질주하는 시인의 언어 바로 그 자체입니다.
- P50

이런 쉼표를 저는 ‘철학자의 쉼표‘, 미학자의 쉼표‘라 부릅니다. 황지우는 그 쉼표를 시 자간에, 시 행간에 찍어둡니다.
질주하면서 사유하고 사유하면서 달려가라고 말하지요. ‘쉼표‘라고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쉼표 하나하나에 너무나 많은 말이 담겨 있습니다. 황지우에게 쉼표는 사색의 표지이자 침묵의 표지입니다.  - P72

기형도의 시에 빠져드는 것은 자연스럽고 정직하게 우리 삶의미세한 흔적들을 탐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P84

하지만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타인의 죽음의식에 공감할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의 상실을, 연애의 불모를 겪은 자의 것이라면 우리는 그 심정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비극의 심정에 되풀이하듯 다가가면서 시인을 향한 공감의 알림 버튼을 쉴 새 없이 누르겠지요. 이것이 타인의 아픔과고통과 상실을 같이 사는 한 가지 방법이지요. 연애시는 심정적으로 타인과 공감의 연대를 맺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 P95

시어 하나하나에, 각각의 구절에 각각의 의미가 대응되어야 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믿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온전하게 시를 읽는 방법이아닙니다. 리듬으로도 읽고 이미지로도 읽지요. 시를 낭송할때 느끼는 리듬 감각이 시의 의미를 해독하는 지적 기능보다.
더 우위에 있고 그것이 보다 우리의 삶에 더 간절한 신호를보낸다 하지요. 의미를 해독하려 애쓰지 마시고 그냥 읽으세요. - P99

여류‘라는 호칭은 문학 혹은 시가 남성의 소유물임을 증명하는 용어였고, 남성의 후광 아래서 존재하는 시인, 특이한 일(문학)을 하는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의미가 ‘여류‘라는 명칭아래 숨겨져 있었습니다.  - P169

여성주의 시인‘을 호명하면서 일종의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시기는 1980년대였습니다. 1980년대에 등단한 여성시인들은, 남성시인의 ‘타자‘, 그러니까 ‘여성‘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여성 시인‘으로 인식되었는데, 이 따옴표(‘)의 이동이야말로 하나의 사건‘이 아닐 수 없지요. 이들여성시인들은 스스로 빛나는 자이지 타자의 후광으로 빛나는 수동적 인간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 P170

시의 말은 결국 동일한 은유의 틀 내에서 움직이고 이 유형적인 말법을 은유의 방정식‘이라 칭합니다. 은유란 죽은말법인데, 시인들은 죽은 은유들을 살려내 의미의 진폭을 확장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영혼을 충동하지요. 암시된 것은 단호히 주장된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인간의 마음은 진술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라는 에머슨의 말도 있습니다. - P198

김춘수는 특이한 존재입니다. 그는 죽음 직전까지 ‘젊은시‘, 좀 더 쉽게 말하면 모던하고 세련된 시를 썼습니다. 보통시인의 생물학적인 연대와 시의 스타일은 평행하게 간다고말합니다. 관례대로 한다면, 시인이란 모름지기 느지막한 나이에 이르러서는 모던한 시에서 손을 떼고 노장사상이 노니는 초월의 수풀로 들어가거나 시단의 원로로서 권위를 지키면서 대가급의 시론을 펼쳐야 옳다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김춘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김춘수는 최후까지 우리말 이미지가 빛나는 시를 썼습니다. - P228

시의 언어가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할 때, 시인은 항상 언어의 구속, 의미의 구속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들 것입니다. 일상의 말과 시의 말이 어떻게 다른지 회의하기도 하지요. 시인은 ‘의미‘로부터 자유롭고자 하지만 독자들은 시인의 말에서 언제나 ‘의미‘를 찾고 ‘의미‘가 찾아져야 제대로 시를 읽었다 생각하지요. 시의 말에 일상적이고 사전적인 ‘의미‘를 갖다 붙이기 일쑤이지요. 시 교과서에서 시의 ‘주제‘를 찾는 작업과 유사합니다.
- P231

한용운 시학의 핵심에 ‘언어의 침묵‘ 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말은 말을 다 드러내지 못한다. 인간의 언어는 불충분하다(신의 언어만이 완전하다)‘는 그 개념 말이지요. 언어의 불완전성, 불명확성 때문에 시인은 고뇌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완전한 표현이 될 때까지 계속 쓸 수밖에 없는 언어의 무한 지옥이 시인의 운명인 것이죠. 이를 ‘언어의 감옥‘ 이라고 합니다. 언어의 창조자이자 언어로부터 절멸당하는 시인의 숙명은 피할 수 없는 모순에 갇힌 자의 그것이지요.  - P284

심장에 다가갑니다. 그러니 소월의 시를 읽으려거든 머리가아니라 심장으로 읽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지의 칼을벼르기보다는 심장의 불을 켜기를 권합니다.
- P307

시는 곧 은유이고 은유가 곧 최고의 대상을 향해 말을 건네는 방식이라면, 이 정의를 완벽하게 실현하는 것이 ‘연애시가 되겠지요. 연애시의 말법은 ‘은유‘라는 문장 구성법과본질적으로 동류라는 것이지요. 연애시는 시의 본질적 수사법인 은유와 등질적으로 접합된다는 점에서 연애시를 읽는밤은 곧 시를 배우는 밤이지요.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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