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주렸다.
씹어서 연하게 만든 것이 목구멍을 지나가는 느낌이 어땠는지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침만큼은 아직 나지만 넘어가지 않고 입술 양옆에 고이기만 한다. 목구멍이 거칠어져 일부러 마른침을 삼켜보려 할 때마다 부대끼고 거슬린다. 주룡은 나무를 떠올린다. 손을 넣어 만져볼 수 있다면, 우선 식도를 지나갈 때 죽은 나무의 좁은 옹이구멍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는 듯한 통증을 느낄 것이고, 내장들은 손이 스치는 대로 낙엽처럼 바스러질 것이다. 그대로 뒷구멍까지 손을 밀어 넣어 뽑고 어깨를 구겨 넣고, 머리도, 나머지 한 팔도넣으면..
배가 부르겠지. 나는 뒤집히겠지. 그런 상상을 하는 주룡의 얼굴에 희박한 웃음이 돈다. 나를 삼켜서 뒤집어진 나는 또 배가 비겠지.  - P7

발소리가 온다.
발소리를 들으면 주룡은 곧장 몸을 일으키곤 했다. 등을 곧추세운 채로 발소리를 맞는 것이야말로 굶주린 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가장 나중 된 저항의 몸짓이라고 여겼다.  - P8

당신이 좋아서 당신이 독립된 국가에 살기를 바랍네다. 내 손으로, 어서 그래하고 싶었습네다. 동무들하고 약조한 바도 약조한 바이지만은,
- P36

내 모르갔습네다, 악인이란 거이 수차례 들었지마는 눈앞에 있는사람을 내 손으루 쏘자니 가슴이 떨려 내가 더 죽을 것만 같았시요..
광운은 잠자코 주룡의 말을 들어준다.
영감이 총 맞구는 오짐을 지리더이요. 맞기 직전에 지린 거인가맞는 순간에 지린 거인가는 모르갔습네다. 다만 아, 요거이 사람이고나, 요괴 귀신 도까비가 아인 사람이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네다. 요전 날 나와 같이 말입네다.
- P72

소위 구여성 차림 그대로 카페에 앉아 있자면 종종 여급들이 저를 본체만체하거나 대놓고 괄시를 하는 것을 느낀다. 저보다 늦게들어온 사람들의 주문을 먼저 받거나 주문한 음료를 한참 만에야생각났다는 듯이 갖다주거나 하는 식이다. 그 애들은 돈을 얼마나벌까. 나도 여급이나 해볼 것을 그랬나. 양장 맞출 날은 요원하니 나도 머리부터 산뜻하니 단발로 잘라볼까. 머리가 단발이면 옷이야어떻든 모단 껄 시늉은 하는 것처럼 보일 텐데.
- P133

누가 나더러 모단 껄이 아니라 했다고 내가 정말 모단 껄이 아닌것은 아니다.
자기가 모단 껄이 아니라는 것, 모단 껄 되고 싶은 심정이 언감생심으로 보이리란 사실은 주룡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언제나 그것에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으니 도무지 모를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반장 때문은 아니다.
반장 같은 것은 모단 껄 되기에 요만큼도 방해가 될 수 없다.
구남성의 박해를 받았으니 이는 도리어 모단 껄 되기의 제일보에진입한 것이다.
주룡은 그런 생각으로 남은 업무를 버티고, 기어이 집에 가서 울음을 터뜨린다.
- P140

간도에 갈 여비만 모으면 그만두려던 공장 일을 여태 하고 있는것도 평양에 계속 머무르게 된 것도 이런 생각과 멀지 않으리라. 비록 대단한 일은 아닐지 몰라도 주룡은 평생 처음으로 제가 고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를 풀고 옷을 벗을지 옷을 벗고 머리를 풀지를 선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부모를 따라서 이주하고, 시집을 가래서 가고, 서방이 독립군을 한대서 따라가고, 그런 식으로 살아온 주룡에게는 자기가 무엇이 될 것인지를 저 자신이 정하는 경험이 그토록 귀중한 것이다. 고무 공장 직공이 되는 것 말고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은 일말 서러운 일일지언정.
- P153

조합원 교육에서 배울 적에는 많아야 예순 명이 잘 모르고 웅얼웅얼 입속말로 부르던 노래를 이제 수백 명이 다 외워서 부르니 절로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수많은 사람들이 다 함께 입을 모아 같은노랫말을 부른다는 것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만은 한뜻이 된다는것이 벅차고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국제가는 조선만이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노동자들이 부르는 노래라고 했다. 이 노래를 부를 때만은 작은 나라의 작은 공장의 보잘것없는 여자 직공 하나가 아니라, 세계 모든 노동자와 어깨동무를 한, 그들 모두와 마찬가지로 위대한, 평등한 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실감이 든다.
다음 노래는 고무 공장 큰아기다. 간혹 국제가>를 다 외지 못한 사람은 있을지라도 고무 공장 큰아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평양 사람이라면 삼척동자라도 다 부르는 노래다.
이른 새벽 통근차 고동 소리에
고무 공장 큰아기 벤또밥 싼다.
하루 종일 쭈그리고 신발 붙일 제
얼굴 예쁜 색시라야 예쁘게 붙인다나 - P183

내처 한마디 덧붙이자면 여러분은 그네들의 사상이 어떤지궁금해본 적두 없을 거입네다. 내심 아녀자의 무학무식이 당연하구,
여러분이 공산자인가 공산주의자인가 하는 거이니 부인도 도매금으루 공산 부인인 거이 당연하다 여기시디요. 이 말이 옳지 않다면시비 가려주시라요. 틀렸다 하신들 여러분이 부인에겐 이런 배움의기회를 주지 않고 혼차서 예 와 있는 것은 변하지 않습네다. 부인들께선 아일 적부터 배운 법도대루 남편에게 순종하여 집을 지키고있는 거이 아닙네까.
- P202

우리는 마흔아홉 우리 파업단의 임금 감하를 크게 여기지는 않습네다. 이거이 결국에는 피양 이천삼백 고무 직공 전체의 임금 감하를 불러올 원인이되기에,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는 것입네다.
이천삼백 우리 동지의 살이 깎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내 한 몸뚱이 죽는 - P240

거이 아깝겠습네까? 내래 배워 아는 것 중 으뜸 되는 지식은, 대중을 위하여목숨을 바치는 것처럼 명예로운 일이 없다는 거입네다. 하야서 내래 죽음을각오하고 이 지붕 우에 올라왔습네다. 평원 고무 공장주가 이 앞에 와 임금감하 선언을 취소하기 전에 내 발로 내려가는 일은 없습네다. 끝내 임금 감하를 취소치 않는다면 내 고저 자본가 압제에 신음하는 노동 대중을 대표해 죽기를 명예로 여길 뿐입네다.
기러니 여러분, 구태여 날 예서 강제로 끌어 내릴 생각은 마시라요. 뉘기든이 지붕 우에 사닥다리를 갖다 대기만 하면 내래 즉시 몸 던져 죽을 게입네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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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3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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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년전쯤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클림트 전시회를 보러갔었다.

아 사람 사람..... 그림을 제대로 본다는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사람이 몰려왔었다.

원래 한가람 미술관의 전시방법이나 공간 배치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다가 그 많은 인파때문에 솔직히 전시관람은 별로 성공적이지 않았다.

전시의 주인공격인 작품은 <베토벤 프리즈>였는데 솔직히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3면이 막힌 공간과 그 내부의 충분한 여유공간을 둬야 할 것 같았는데 그 때 기억으로는 무슨 통로처럼 좁은 길을 만들어놓고 쭉 이어서 보는 식이었던 것 같다. 작품의 연속성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전시는 작품에 대한 몰입을 불가능하게 했다. 심지어 그 통로마저도 사람으로 꽉 차서 줄서서 지나가기 바빴으니.....

클림트 단독 전시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광고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클림트의 인기가 그토록 대단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때 아 클림트 그림을 제대로 보려면 빈을 가야겠구나 뭐 그런 생각을 했던 듯하다.

 

클림트가 대단한 것은 그가 어디에서도 미술사조의 계보를 그려넣을 수 없다는데 있다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철학이든 예술이든 앞세대에서 또는 당대의 사조에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데 클림트는 그 계보를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니 그의 독창성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클림트의 계보를 아예 그릴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19세기 말 파리를 중심으로 모든 화가들과 예술가들이 새로운 미술, 모더니즘을 구가할 때 클림트는 아예 고대와 중세로 떠난다는 것.

 

여기에 클림트의 모순이 있다 누구보다도 현대적으로 보이지만클림트의 선배들은 이토록  과거에 존재하고 있었다클림트는 19세기  분리파를 만들어 과거 스타일을 답습하는 기존 오스트리아 예술계에서 스스로를 분리하겠다고 선언하며 혁신가의 면모를 과시했다그러나 그의 영감은 미래가 아니라 고대와 중세 초기의 예술에서 왔다클림트는 누구보다도 혁신적인 화가인 동시에 가장 고답적인 화가이기도 했다.- P15

 

이 구절을 읽고 나니 "아!"하는 탄성이 나온다.

그렇구나... 이탈리아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가 그의 가장 중심적인 계보구나.

클림트가 그 모자이크들을 보면서 어떤 충격과 경이를 느꼈을지가 생생하게 새겨졌다.

 

 

이 그림 누구나가 학교 다닐 때 세계사 시간에 한번쯤은 본 그림일테다.

비잔티움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모자이크로 산 비탈레 성당 돔의 벽면에 그려져 있다.

도판으로 이 그림을 보면서 감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물들의 생동감도 없고, 표정들도 무표정이고... 아이들은 보면 그림이 웃기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나 역시 이 그림에 대해서 일말의 기대도 없었다.

 

그러나 산비탈레 성당을 들어서서 천장을 보는 순간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이렇게 사진발 안받는 그림도 없을거라는 걸 깨닫고야 말았고, 이 그림을 포함한 벽면의 벽화들 앞에서 1시간을 넘게 서성이며 경탄에 경탄을 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돔의 벽면은 이렇게 위쪽의 예수를 중심으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테오도라 황후의 모자이크가 배치되어 신에 대한 경배를 바치는 모습이다.

비잔티움의 모자이크는 사진으로는 절대로 그 감동을 느낄 수 없다.

아 여기가 신의 공간이구나, 저 분이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시겠구나라고 저 황금빛들이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황금 모자이크가 얼마나 적절하게 신성을 유발하는지는 실제로 그 앞에 서야만 느껴지는 체험이다.

그래서 중세의 미술은 직관적이다.

보는 순간 신앞에 무릎꿇게 하고 경탄하게 하는 권위의 미술이다.

이는 르네상스 이후 근대 미술이 걸어온 사실성과는 다른 층위의 미술이다.

 

클림트의 그림이 그토록 직관적인 것이 여기서 시작되었구나라고 깨닫는다.

클림트의 그림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저 보는 순간 마음을 훅 빼앗기는 그런 힘이 있다.

그림의 내용이 무엇인지 화가의 철학은 무엇인지 굳이 따지지 않아도 마음을 파고드는 힘이다.

이는 오늘날 클림트의 그림이 무수히 많은 아트상품으로 소비되어 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클림트의 그림을 보면 느끼게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느낌은 뭔가 몽환적이고 퇴폐적인 아름다움이다.

특히 여성의 표정은 하나같이 관능적이고 유혹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직도 여성이 독립적인 인격을 가진 주체로 인정되지 못하던 시대에 클림트의 여성들은 적어도 성적으로는 능동적으로 보인다. 물론 여성에 이런 판단이 올바르다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모독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있는 여성관임에도 클림트의 여성은 아름답다.

역사에서는 이런 아름다움을 세기말의 공포로 허우적거리던 당대 남성들의 두려움의 표현으로 보기도 한다.

남성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팜므파탈의 개념과 이미지가 여기서 나온다.

클림트의 그림속 여성들은 그 팜므파탈의 이미지에 딱 맞는 분위기를 보여준다고 흔히 인용되어져 왔다.

하지만 정말 그런걸까? 클림트의 여성은 그의 남성성의 거세에 대한 불안의 표현이었을까?

글쎄 그렇게만 보기에는 클림트의 여성들은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그녀들을 사랑하지 않고서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클림트의  이런 그림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우리는 자주 예술 작품을 통해  시대의 개성과 변화를 발견하게 된다클림트의 그림에서 받는 독특한 느낌과 기묘한 불균형은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빈의 모습  자체다19세기 말의빈은 다가오는 다음 세기를 한사코 거부했다중세 시대 사람들이그러했듯이 빈은 미래보다는 과거를 더욱 갈망한 도시였다클림트의 그림들은 빈의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물이었다.   - P14

 

한 때 유럽 전체를 호령했던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합스부르크가는 이제 몰락을 향해 가고있다.

늙은 제국은 과거의 영화만을 간직한 채 침몰하고 있는데 누구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유럽의 변방이었던 지역들이 산업혁명이다 제국주의다 변화를 겪고 있을 때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중세에 머물며 그 광대한 과거의 영화를 붙잡고 있을 뿐이다.

현재에 대해 눈감은 수도 빈은 더 화려한 예술로 치장하고 자신의 몰락에서 애써 눈돌리고 있다.

클림트는 그 제국의 변화를 감지하면서도 미래로는 나아갈 수 없었던 딱 그 지점의 빈에 머물러 있다.

그렇게 보면 클림트의 그림 속 여성들의 표정을 단순히 관능으로만 해석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갈망, 그러나 결코 닿지 않고 닿을 수 없는 빈의 현재가 그녀들의 표정에 드러난 것이 아닐까?

누구보다 빈을 사랑했던 인간 클림트의 절망과 안타까움으로 그녀들을 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클림트가 꿈꾸던 미래는 어쩌면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속의 그녀였을 것 같다.

 

 그가 평생토록 사랑했다고 하는 여성 에밀리 플뢰게를 그린 이 그림에서 여성은 드디어 독자적 정신과 주체성을 가진 여성으로 그려진다.

관능이나 유혹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던 여성 에밀리의 모습이 여기 있다.

클림트가 가장 소망한 것은 이런 에밀리였고, 다르게 보면 미래를 똑바로 응시하고 나아가는 빈이 아니엇을까?

하지만 소망이 모두 현실이 될 수 없음에 항상 역사는 비극이 된다.

언제나 클림트는 간절했던 듯하다.

 

<베토벤 프리즈를 위한 스케치>에서 젊은 클림트의 간절함이 너무 절실하게 와닿는다.

그의 이런 간절함은 이후 대표작인 <키스>에서도 여전히 간절함만으로 남았다는게 그의 비극일테다.

 

 

오랫동안 클림트는 나에게는 알 수없는 화가였다.

그의 그림이 너무 좋지만 무작정 좋아하기에는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는, 그래서 고민하게 하는 화가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클림트라는 인간을 조금 더 알게 되었고, 그의 그림에서 이해되지 않던 간절함과 부조화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아르떼 출판사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참 좋구나...

역시 앞으로 계속 정주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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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10-1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의 글을 읽으니, 독창성이라는 면에서 서양 철학사의 스피노자가 연상되네요. 클림트는 「세기말 빈」과 「통찰의 시대」를 통해 접한 화가라 이번 바람돌이님의 페이퍼를 통해 더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0-10-11 10:23   좋아요 1 | URL
저는 스피노자는 사과나무밖에 몰라서....ㅠㅠ 겨울호랑이님이 말한 책들을 살펴보니 재밌을듯해요. 언젠가 읽어보려고 일단 보관함에 넣어둡니다

막시무스 2020-10-11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중세의 모자이크화가 클림트에 닿아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되네요! 저도 라벤나에서 중세 모자이크 벽화들을 목이 빠져라 올려다 본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나 조금 버스를 타고 나가는 곳에 위치했던 성당의 어린양 그림은 잊혀지지 않는듯 합니다! 정말이지 저런 벽화는 거기 그장소가 아니면 절대 느낌을 살릴수가 없는것 같아요! 저도 이 책이 집에 쟁여져 있는데 후기를 쓰게 된다면 빈에서 보았던 베토벤프리즈랑, 클림트와 에곤실레의 명작이 있던 레오폴트미술관, 벨데베레궁전 미술관 사진을 보태 보겠습니다!ㅎ 한가람미술관 전시때 여자친구랑 19세 미만 출입금지 전시실에 들어갔다가 무안했던 기억은 덤인가 봅니다! 즐거운 추억을 상기시켜 주셔서 감사해요!ㅎ

바람돌이 2020-10-11 23:31   좋아요 1 | URL
저도 둘을 연관시키지는 못했는데 이 책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저는 볼로냐에 있으면서 당일코스로 라벤나를 방문했었기에 어린양그림이 있는 산타 아폴리나레 인 클라세성당까지는 못갔어요. 여기 교통이 좋은 편이 아니라 마지막 기차시간 안놓치려고 시내를 15분정도 전속력으로 막 뛰어 갔던 기억이..... ㅎㅎ 빈은 클림트때문에라도 꼭 가보고싶은데 일단은 막시무스님 사진으로 대리만족하겠습니다. 기다릴게요. ^^
한가람미술관 전시때 19금관은 저는 아이 둘까지 있는 아줌마였던 관계로 하나도 안 무안했습니다. ㅎㅎ

scott 2020-10-19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도시에서 살았었는데 산 비탈레 성당 돔의 벽화와 클림트의 황금빛 색채로 물든 회화를 전혀 연상시켜보지 못했네요.
해가 길어지기 시작할때쯤이면 빈 여름 궁전에 대대적으로 클림트 특별 전시가 열렸는데 그때 맞춰 클림트 화폭속에 그려진 꽃들도 궁전 정원에 가득 심어서 관람객들에 발길이 끊이지 않았어요

산 비탈레 성당 돔의 벽화가 사진발이 안받는 이유는 특수 조명을 설치 해서 카메라에서 내뿜는 빛을 차단한데요.
벽화가 손상되는걸 방지 하려고(관람객들에게 사진찍지 못하게 하는것 보다 이게 더 효과적이라고)

바람돌이 2020-10-19 20:15   좋아요 1 | URL
악 빈에서 살았단 말씀입니까? 악 갑자기 scott님이 위대해보입니다. 제 소원이에요. 아무데나 좋으니까 딴나라 가서 한 1년쯤 살아보는거.... ㅠ.ㅠ 아마도 늙어서 퇴직하면 가능해질듯요.
저도 이 책 읽기 전에는 비탈레성당과 클림트를 연결시키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 책 읽고 보니까 아 그럴수 있겠다 수긍이 가더라구요. ㅎㅎ
산비탈레 성당의 특수 조명 얘기도 처음 듣네요. 음 좋은 방법같아요. 사진이 잘 나오는 것보다 역시 유물을 보존하는게 우선 맞죠? 사람들의 아이디어는 참 무궁무진하네요.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셔서 또 감사합니다. ^^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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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의 지인들 중 지난 2016년 촛불 시위 때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해본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 그들이 요즘 술만 먹으면 울분을 토한다.

울분의 주된 이유는 당연히 실망감이다.

그들은 말한다.  촛불시위가 성공하고 박근혜의 탄핵이 결정되었을 때 자신은 정말로 새로운 세상이 올줄 알았다고....

사실 나로서는 이렇게 말하고 울분을 토하는 지인이 더 신기했다.

차마 입으로 내놓고 말하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아니 정말? 진짜로? 세상이 완전히 뒤집힐 줄 알았다고요? 설마요?'이런 말을 중얼거렸던듯하다.

 

조국 사태를 처음 보도로 접했을 때 나의 반응은 약간 시큰둥했었다.

저 양아치들이 또 트집을 잡고 있구나라는 감정 약간과 그래 뭐 조국같은 사람조차도 자식 문제에서는 남들과 똑같구나 정도의 감정이었다. 거기다가 '아니 대한민국이 이런거 몰랐어? 조국도 있는 집 출신이고, 대한민국의 있는 집이면 저 정도는 다 예상할 수 있는거잖아'라고 생각했었다.

솔직히 분노라기 보다는 약간의 허탈감 정도가 내가 느낀 감정의 다였다.

그런 내가 이 문제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역시 주변의 20대, 30대 초반의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였다.

그들은 정말 분노했다.

조국의 딸이 가지는 그 기회를 갖기 위해서 자신들이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는지, 그럼에도 가질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기회 자체의 박탈을 겪어온 세대가 대한민국의 오늘을 사는 20대 30대였다.

그 때 느꼈던 것 같다.

내가 기성세대구나. 지금은 20대 30대와 나는 축적해온 경험이 다르고, 불평등을 민감하게 느끼는 지점이 다르고 그런 점에서 내가 너무 안이했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했던 저 단편적인 생각들을 다시 되돌아봤다.

문제는 내게 있는게 맞다.

80년대의 암흑을 지나온 나는 어느 순간 '그래 이만하면 됐지. 지금까지 그래왔듯 조금씩이지만 그래도 천천히 나아질거야'라는 근거없는 낙관으로 내 삶을 편안함의 자리로 옮겨놓았었구나.

그래서 점점 더 심해지는 불평등과 불합리를 내 속에 그냥 묵혀두었었구나.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Franco Bifo Berardi)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한국 사회의 특징을  가지로 짚었습니다. 끝없는 경쟁극단적 개인주의일상의 사막화생활 리듬의 초가속화 그것입니다

 

이 문장을 읽는 시작부터 내 마음의 죽비소리가 울려퍼졌다.

아 맞아 우리 이러다가 정말 다 죽을지도 몰라.

세상은 전혀 좋아진게 아니야.

살기는 더 팍팍해졌고, 절망하는 이들은 더 많아졌고, 불평등은 더 심해지고 있는데도 나는 세상이 다 그런거지라는 말 속에 그것들을 다 묻어버리고 있었구나

 

다시 말하면  나라에서는 광장 민주주의 일상 민주주의 괴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우리가 아직 충분히 민주주의자가 되지 못한 거지요.......
우리 사회가 광장 민주주의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일상 민주주의에서 여전히 낙후되어 있는 것은 뿌리 깊은 유교 사상과도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와 군사독재 시대가 남긴 집단주의군사주의병영문화 등도 깊은 관련이있겠지요바로 이런 것들이 뒤얽혀서 일상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고   있습니다.
이중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것은 군사문화의 전면적인 지배입니다우리는 군사문화가 너무도 뿌리 깊고너무도 널리 퍼진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 P33

 

문제는 역시 민주주의다.

오랫동안의 독재와의 싸움을 해왔던 우리는 정치적 민주주의, 광장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합의된 지점이 있다.

결코 길지 않은 시기동안 우리가 겪었던 민주주의 투쟁을 생각해보자.

1960년의 4.19혁명은 사실 엄청난 일이었다.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겨우 15년, 공화국 체제가 시작되고 투표라는걸 처음 해본게 1948년이고, 심지어 한국전쟁이라는 끔찍한 내전까지 겪은 나라에서 벌써 정치혁명을 일으키다니 이건 세계사적으로도 엄청난 일임에 틀림없다.

이후 19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의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2016년의 촛불투쟁까지 우리는 정말 숨가쁘게 정치적 민주화를 위한 길을 달려왔다.

 

이 책의 논지와는 상관없이 논외로 가끔은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숱한 반동에도 굴하지 않고 싸워올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웃나라 일본과 비교해도 정말 다르지 않은가말이다. 그냥 나 혼자 생각인데 우리 역사 속 중앙집권화의 역사가 하나의 키워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싶다. 근대 이전의 역사에서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는 사실상 예외적인 현상이다. 이런 통치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선 고도의 관료제와 상비군체제를 갖추어야 하는데 이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조선왕조 500년의 중앙집권화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강고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은 다른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중앙집권적 통치체제에 익숙한 민중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그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에게 강력한 중앙권력은 그리 낯선 존재도 지나치게 무서운 존재도 아닌게 아니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져 온 시간이 너무 길었기에 말이다. 그 중앙권력을 바꾸는 힘도 우리 역사속에서 같이 키워져 온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문제는 일상의 민주화다.

중앙집권적 체제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통제에 익숙하고, 통제속에서 질서를 지키며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데도 익숙하다. 그것의 억압이 극한에 달했을 때는 그 권력을 깨기도 하지만, 일상속에서는 권력의 연쇄고리안에서 적당히 보존하고 사는데 익숙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일상의 권력적 위계질서에 아주 익숙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 속에는 권력의 위계질서가 내면화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인 대다수는  안의 파시즘 인식하지 못합니다이러한 억압의 문화부조리의 상황을 하나의 문제로서 인식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그것이 사물의 질서세상의 이치자연 상태라고 생각한 것이지요에리히 프롬 식으로 말하자면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것은 정상성의 병리성이었던 것입니다. - P95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P100

 

갑질문화의 창궐, 미투 운동에 대한 비아냥, 여전히 억압적인 성담론과 문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부재, 자본주의적 경쟁에 대한 회의 없는 긍정, 불평등한 교육의 기회에 대한 문제 제기 없는 교육계의 현실, 기업과 싸울 때 오히려 가면을 쓰고 싸워야 하는 현실, 생 양아치들을 보수우파라고 칭해주는 우편향의 정치문화, 민주당이 어떻게 좌파가 될 수 있냐싶은데 그들이 좌파라고 칭해지는 현실,

그 어디에도 한국사회가 진보적이라는 증거가 없는 이 현실을 어찌 할까?

 

이런 문제에 대해 저자는 서구에서 기존의 모든 가치와 담론에 문제제기를 했던 68혁명 정신이 한국의 군사독재에 의해 저지당했던 것을 결정적인 문제점으로 얘기한다.

기존의 가치가 한번 어떤 식으로든 전복되지 않으면 새로운 생각이 발을 붙일 수 없다는 것.

어쩌면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이 혼란과 아비규환 같은 상황들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들....

항상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문제다.

문제를 알게 되면 이제 해결점을 찾아가면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부끄러워졌던 나를 잊지 않는 것.

내 일상을 다시 바로잡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세상에 대해 다르게 얘기하고 있는 새로운 세대들에 대해서 귀 기울이는 것.

오늘 내게 온 죽비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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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10-10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영복 선생님의 ˝함께 맞는 비˝라는 글귀를 좋아하는데, 저 죽비를 저도 맞아야겠네요!ㅠ 좋은 세상을 기원하면서요!ㅎ

바람돌이 2020-10-10 18:59   좋아요 2 | URL
일상의 민주화 말은 쉽지만 정말 어려워요. 오늘도 이 휴일에 딸래미 학원 데려다주면서 이놈의 경쟁교육에 내가 또 일조하고 있구나.... ㅠㅠ 일상의 민주화란 일단은 내 안의 욕망을 한번 걷어내는 작업이 먼저일듯요. 우리 죽비는 같이 맞아요. ^^
 
시인의 말법 - 전설의 사랑시에서 건져낸 울림과 리듬
조영복 지음 / 이와우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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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역시 시의 계절이다.

날씨가 쌀쌀해지며 마음도 약간 쓸쓸해지는 느낌이 찾아온다.

좀 있다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 멜랑꼴리함은 조금 더 짙어지겠지....

그럴때면 시를 읽고 싶어지다.

아니 사실은 시를 쓰고 싶어진다.

 

시를 쓴다는는 것은 때로 쉽고, 정말로는 어렵다.

그냥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쓰면 그것이 시가 된다고 우기면 된다.

하지만 그런 시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특히나 낭송은 절대 불가하다.

부끄럽잖아.....

 

 

 시를낭송하면 그 소리는 낭송하는 인간의 몸에서 빠져나와 타인에게로 향합니다.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소통적이고 타인을 향해 열려 있는 것이 청각이라고 합니다. 소리가 인간을 황홀하게 하는 것은 단독으로 소유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시를 크게 소리 내서 읽어보고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물리적 소리도 들어보고 또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숨겨진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이 필요하지요. 저절로 시의 리듬에몸을 맡기고 하염없이 그 시의 말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고 황홀해지겠지요. 그때 위로가 찾아옵니다. - P12

 

김소월이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라고 저 쉬운 말로 몇마디 읇조린 것을 읽을 때면 내 머릿속 산에는 온통 진달래꽃이 흐드러진다. 그 시를 가만히 입으로 소리내어 읇조리면 진달래꽃 흐드러진 산이 내 머리속을 뛰쳐나와 내 주변을 감싼다.

저 짧은 말로 다른 세상을 보게 하는 것 그것이 시인인듯......

 

저자는 시인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황지우를 떠올리면 ‘시인 되기에는 두 가지 핵심적인 것이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내면에 말의 보물창고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말을 잘 골라내고, 말에색깔을 입히고 그것들을 잘 배열하는 재능 말이지요. 이는 인위적으로 꾸며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천성적으로 주어지는 것일 테지요. ‘뮤즈‘를 자신의 안에 간직한 자들이 시인인것이지요. - P49

또 다른 하나는 ‘젊어서 늙어버리기‘같은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서 병들고 늙어야지" 같은 구절들이 황지우 시에는 있지요. 이를 견자로서의 시인 되기‘의 품성이라 합니다. 김소월, 윤동주 등이 다 그러한데, 이들 시인들은 청춘 시기에도 나는 늙었다. 청춘이지나갔다 말합니다. 그들은 젊어서 이미 늙어버린‘ 자의 철학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일찍 철들고 일찍 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습니다. ‘농담‘ 같지만 은유적인 구절들이 그의 시에 있고 그것은 철학적이고 예언자적인 아우라를 풍기며 독자를 기다립니다. 한 문장으로 요약된 시인의 인생철학은 구구절절 나열하지 않고 머뭇거리지 않고 단박에 달려 나가듯 질주하는 시인의 언어 바로 그 자체입니다.- P50

 

 

이 정도면 시인은 일단은 타고나는 것이어야 하고, 아마도 그들은 어느 다른 별에서 온 사람인듯하다.

똑같은 것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표현하고 그것이 사람을 감동시키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끄럽게 하기도 하는게 시인이다.

시를 쓰고 싶다고 하면서 내면의 보물창고는 커녕 단 한줄의 문장도 길어올리지 못하는 나같은 범인들은 그래서 그저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대리만족한다.

 

하지만 때로는 좀 더 잘 읽고 싶은 욕망은 있다. 비록 쓰지는 못할지라도....

나라는 인간의 머리는 사실 고도의 압축된 상징이나 아포리즘 같은 문장보다는 기승전결이 탄탄하게 엮인 서사에 더 관심이있다.

사실 그래서 항상 시읽기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읽고 싶다고 읽어도 내가 그 시를 제대로 읽은건가?

지금 내가 이 시에서 느끼는 감정이 맞는건가?

항상 의문을 달고 산다.

 

아마도 그래서 신간 소개에서 이 책을 봤을 때 바로 손이 간듯하다.

시인의 말법이라니.....

시인에게 일종의 경외감을 가지고 있는 나같은 이에게는 뭔가 그들이 가진 언어의 비밀창고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나도 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시인에게 가지는 이 열등감을 조금은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참 오랫만에 기대에 찬 책 선택이었다.

 

저자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을 알고있는 시인들의 연애시를 소개하며 같이 읽자고 얘기한다.

백석, 황지우, 기형도, 황동규, 김수영, 문정희, 윤동주, 김춘수, 서정주, 한용운, 김소월이 그들이다.

너무 유명해서 새롭게 읽을게 없지 않나 싶을 정도의 시인들이다.

저자가 고른 그들의 사랑시 또는 연애시 역시 잘 알려진 작품이 대부분이며 간간이 처음 읽는 시가 있었다.

 

항상 새 책을 손에 들고 첫페이지를 읽기 시작할 때는 머릿속에 잔뜩 힘을 준다.

너를 완전히 이해하고 말겠어라는 일종의 기합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저자 서문에서 이 기합을 완전히 빼버린다.

시는 그렇게 읽는게 아니라고 말한다.

논리, 인과, 언어적 이해 이런 걸 버리고 그냥 내 마음에 좋은지 안좋은지, 시에서 말하는 풍경이 떠오르는 것만 보라고 얘기한다.

시를 읽는 100사람이 다 자기의 풍경을 가지고 있을테고, 자기만의 풍경을 떠올린다면 시는 그것으로 족하다고 얘기하는듯하다.

기합이 절로 빠진다.

아 그래서 내가 시를 잘 못읽는구나......

 

무엇이든 좋은 선생님이 있어 그 안내를 받을 수 있다면 빨리 배울 수 있고 더 깊이 배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시읽기에 좋은 선생님이다.

많이 알려져 접근하기 쉬운 시, 시와 관련된 시인의 상황, 인간의 삶의 풍경들의 적절히 엮어지면서 그냥 우리 이렇게 시를 읽고 이렇게 연애를 하자고 조곤조곤히 나를 안내한다.

좋은 시가 좀 더 좋아지고, 시를 읽는 내가 좀 더 좋아지는 시간이다.

그래 내가 싫어지고 세상이 싫어지고 자괴감이 들때면 시를 읽자.

 

어쨋든 연애시의 백미는 역시 백석이다. 취향은 어쩔 수 없다.

눈 내리는 마가리의 밤을 생각하면 조금은 더 견딜 힘이 생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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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주 예술 작품을 통해 한 시대의 개성과 변화를 발견하게 된다. 클림트의 그림에서 받는 독특한 느낌과 기묘한 불균형은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빈의 모습 그 자체다. 19세기 말의빈은 다가오는 다음 세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중세 시대 사람들이그러했듯이 빈은 미래보다는 과거를 더욱 갈망한 도시였다. 클림트의 그림들은 빈의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물이었다.
- P14

여기에 클림트의 모순이 있다. 그 누구보다도 현대적으로 보이지만, 클림트의 ‘선배‘들은 이토록 먼 과거에 존재하고 있었다. 클림트는 19세기 말, 빈 분리파를 만들어 과거 스타일을 답습하는 기존 오스트리아 예술계에서 스스로를 ‘분리‘하겠다고 선언하며 혁신가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러나 그의 영감은 미래가 아니라 고대와 중세 초기의 예술에서 왔다. 클림트는 누구보다도 혁신적인 화가인 동시에 가장 고답적인 화가이기도 했다.
- P15

유럽의 미술관에서 중세 시대의 그림들을 볼 때 우리는 어떤 인상을 받는가? 아마도 맨 처음 드는 인상 중 하나는 ‘갑갑함‘일 것이다. 안료를 구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중세 시대의 그림들은 사용된 색상이 얼마 없으며, 예외 없이 성서의 내용들을 담고 있다. 또한 중세의 화가들은 원근법, 즉 2차원 평면 안에 3차원 공간을 표현하는 법을 몰랐다. 이 때문에 그림의 주인공들은 어떠한 공간감도 양감도 없이 묘사되어서 그저 평평하게 보인다. 결정적으로 중세의 그림들, 특히 성모나 예수를 그린 작품에는 예외 없이 금칠이되어 있다. 이런 공통점들 때문에 중세의 그림이 우리에게 특별한인상을 남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 P121

이 고귀한 단순함을 발견한 순간, 클림트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새로움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가장 먼 과거를 향해, 예술과 종교의 ‘원형‘을 향해 돌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고대와 중세 초기 미술 작품이 띠고 있는 원형의아름다움을 발견한 클림트의 눈에 인상파를 비롯한 동시대 화가들의 작품들이 어떤 인상도 남기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속한 세계인 빈과 오스트리아는 파리나 런던, 프랑스와 완전히 달랐다. 그는 제국의 과거를, 그리고 이국의 문화를 숙명적으로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다.
- P139

장식으로 사람의 몸을 휘감고, 사람의 몸을 지극히 평면적인 방식으로, 반면 장식은 화려하고 정교하게 표현하는 것, 클림트의 황금시대는 이렇게 고답적인 방법으로 시작되었다. 왜 클림트는 평면을 추종했을까. 라벤나의 금빛 모자이크들은 클림트로 하여금평면의 영원한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1,500년 이상 생동감을 잃지 않고 있는 비잔티움의 모자이크 장식을 통해 클림트는 보이는그대로 묘사한다고 해서 그림이 영원한 생명력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보다는 보석 왕관과 자줏빛 가운에 휘감긴테오도라 황후처럼, 추상적이고 절대적인 방식으로 그려진 작품이 오히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영원성을 얻을 수 있었다.
- P146

실레는 열일곱 살이던 1907년에 클림트를 처음 만났다. 당시 실레는 빈 미술학교 학생이었고 클림트는 이미 빈 분리파와 빈 공방을 통해 오스트리아 전체에 이름이 알려진 화가였다. 그러나 실레의 드로잉을 본 클림트는 이 소년의 넘치는 재능에 압도되고 말았다. "제가 재능이 있다고 보시나요?" 라는 실레의 물음에 클림트가
"재능이 많아, 너무 많아" 라고 대답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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