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더, 포르투갈에서 하지 않은 것이 있다. 나는 짬시간을활용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버스에서, 기차에서, 지하철에서, 그 정류장들에서 이동하고 기다리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책도읽지 않았고 노래도 듣지 않았다. 가능한 한 머리를 비우면서, 도시의 소리들에 감각을 열어두고 싶었다. 심지어는 소음까지도.
- P17

 딴사람의 이름으로 쓰기, 아니 아예 딴사람이 되어 쓰기 - 이것은 페소아가 거의 평생에 걸쳐 습관적으로 혹은 강박적으로 지속한 일이다.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시공간으로부터 벗어나, 또 자아로부터도 유체 이탈‘ 하여, 과거 이력까지 정교하게 만들어낸 어느 타인의 관점을 취한 상태에서 시심을 발휘하는 행동, 그렇게 지어진 시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 어디도 아닌 곳에 위치할수밖에 없고, 그 시의 시선은 온전히 캄푸스의 것도, 페소아의 것도,
시인이 아닌 실존 인물 시민 페소아의 것도 아니게 된다. 그렇게 복수의 시선들이 탄생하고, 그 시선들이 서로 어지러이 교차한다.
- P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많은 사람이 좋다고 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거라는걸 다시 깨닫는 순간
겉으로는 평범해보이는 모든 순간이 나름의 고통과 열정을 내포함으로써 삶의 어느 순간도 편안하기만 할 수 없음을 주옥같이 뽑아놓은 단편들.
마치 내가 여기 메인주 크로스비 올리브라는 여인 곁에 있는듯한 독서의 시간들이었다.


지금 이 순간도 제인은 그의 얼굴에서 의뭉스럽고, 늘 겁에 질린 어린 소년이 보이는것 같았다. 잠들어 있는 이 순간마저도, 그의 얼굴에는 불안으로긴장한 표정이 감돌았다. 행운이야. 제인은 벙어리장갑을 낀 손을 가볍게 그의 다리에 얹으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누군가를 수십년 동안 알고 살 수 있다는 것은,
- P235

 그녀는 삶이 두려운 늙은 여자일 뿐이다. 요즘 올리브가 아는 거라곤 해가 떨어지면 잘 시간이라는 사실뿐이다.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아낸다는그 말, 올리브는 확신하지 못한다. 거기에도 여전히 파도는 있지, 올리브는 생각한다.
- P314

때때로, 지금 같은 때, 올리브는 세상 모든 이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걸 얻기 위해 얼마나 분투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필요한 그것은 점점 더 무서워지는 삶의 바다에서 나는 안전하다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사랑이 그 일을 할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어쩌면 그 말은 사실이었다.  - P378

매일 아침 강변에서 오락가락하는 사이, 다시 봄이 왔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봄이, 조그만 새순을 싹틔우면서, 그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봄이 오면 기쁘다는 점이었다. 물리적인 세상의 아름다움에 언젠가는 면역이 생기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사실이 그랬다. 떠오르는 태양에 강물이 너무반짝여서 올리브는 선글라스를 써야 했다.
- P461

올리브는 머리 위로 한 손을 들어 보이곤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 이후 산책하는 동안 올리브는 해도, 강도, 아스팔트 산책로도, 움트는 새순도 알아채지 못했다. 올리브는 걷는 내내 부부중 친절한 사람이었던 아내가 죽고 없는 잭 케니슨에 대해 생각했다. 지옥에 살고 있다고 그 자신도 말했지. 물론 그럴 터였다.
- P463

젊은 사람들은 모르지, 이 남자의 곁에 누우며, 그의 손을, 팔을 어깨에 느끼며 올리브는 생각했다. 오, 젊은 사람들은 정말로모른다. 그들은 이 커다랗고 늙고 주름진 몸뚱이들이 젊고 탱탱한 그들의 몸만큼이나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내 차례가 돌아올 타르트 접시처럼 사랑을 경솔하게 내던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모른다. 아니, 사랑이 눈앞에 있다면 당신은 선택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녀의 타르트 접시는 헨리의선량함으로 가득했고 그것이 부담스러워 올리브가 가끔 부스러기를 털어냈다면, 그건 그녀가 알아야 할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알지 못하는 새 하루하루를 낭비했다는 것을.
- P483

그녀는 눈을 감았다. 지친 그녀는 파도를 느꼈다. 감사의, 그리고 회한의 파도를,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햇살 좋은 이방을, 햇살이 어루만진 벽을, 바깥의 베이베리를, 그것이 그녀를힘들게 했다. 세상이. 그러나 올리브는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않았다.
- P4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바루 왜건은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순간 케빈은 방금 전그 느낌은 희망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희망은 마음의 암이었다.
그는 희망을 원치 않았다. 원치 않았다. 이 연약한 초록빛 희망의 싹이 가슴속에서 움트는 걸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다리에서뛰어내렸다가 죽지 못하고 살아난 남자의 끔찍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남자는 누군가 금문교 위에서 한 시간 동안 울며 서성대던그를 막고 왜 우느냐고 물었더라면 뛰어내리지 않았을 거라고말했다.
- P84

패티가 떠내려가지 않게만 하면 되었다. 소용돌이치며 두 사람을 집어삼키는 바닷물속에 다시 잠겼을 때 그는 패티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그녀의 팔을 꼭 붙잡았다. 널 놓지 않을게, 파도가 칠 때마다 햇살이반짝이는 짠 바닷물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케빈은 그녀의 눈을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그 옛날 여왕처럼 줄넘기를 하던 소녀, 지금은 바다에 빠진 젖은 머리의 여인이 두 사람의 구조만을 바라며 바다의 힘만큼이나 격렬하게그를 붙잡고 있는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오, 미친, 이우스운, 알 수 없는 세상이여! 보라. 그녀가 얼마나 살고 싶어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붙잡고 싶어하는지.
- P86

때면 그녀는 많은 것을 이해했다. 이 나이에 수십 년 동안 그녀를 동정해왔노라 꼭 말을 해야 했다면 낙심한 인생이라는 걸 그녀는 이해했다. 보스턴을 향해, 함께 아이 셋을 낳아 기른 아내를 향해 해안을 따라 운전해 내려가면서, 오늘 그녀를 지켜본 그가 어떤 만족감을 느끼리라는 걸 앤지는 알았고, 다른 많은 사람들 역시 이런 위안을 필요로 하리라는걸 알았다. - P105

앤지는 이제 머리를 복도 벽에 기대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검정 치마를 만지작거리며 자신이 뭔가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그리고 그것이, 너무 늦었을 때에야 뭔가를 깨닫는 것이 인생일거라고 생각했다. - P108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올리브는 침대에 누우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외로움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여러가지 방식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 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 P124

스웨터는 망가지고, 신발은 브래지어와 같이 던킨 도너츠 화장실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져 쓰고 버린 화장지와 오래된 생리대 더미에 덮여 있다가 다음 날 대형 쓰레기통 안으로 구겨져들어갈 것이다. 사실 닥터 수가 올리브 가까이에서 살 거라면,
수잔이 스스로에 대해 계속 의구심을 갖도록 올리브가 이것 조금, 저것 조금을 가져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올리브가 스스로에게 작은 기쁨을 선사하는 것이다. 크리스토퍼는 자기가 뭐든 다안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살 필요는 없다. 뭐든 다 아는 사람은아무도 없으니까. 사람은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니까.
- P1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핀은 정말 볼가강으로 향했다. 배 끄는 인부들과 친해져 그들의표정과 동작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싫증 내지 않고 귀를 기울이자 그들 한 명 한 명이 실로 개성 넘친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레핀 자신이 지금까지 극빈층을 하나의 검은 집단으로밖에 보지않았다는 증거였다. 둔전병(屯田兵)의 아들로 태어나 고생 끝에 미술학교에 다니는 처지면서도 계급 사회에 눈이 어두웠던 것이다. 그때부터 그의 눈은 인간 자체를 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완성한 그림이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이다. - P101

둥근 유리병에 붉은 꽃이 두어 송이 꽂혀 있다. 어떤 꽃인지는 모른다. 혹갈색 연무가 화면 전체를 뒤덮어 낡고 그리운 세피아 톤 사진을 보는 듯하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는 듯한 이 독특한 색조는 화가의 이름을 따서카리에르의 안개‘라고 불린다. 야외의 밝은 색채로 둘러싸인 인상파 전성시대에 그는 내면으로 침잠해 색의 가짓수를 줄인 모노톤의 아름다움을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았다.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대중의 인기는 얻지 못했다. 마치 순문학 회화 같다고 할까.
- P1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딩씨 마을의 꿈은 현실을 쓴 것인 동시에 꿈을 쓴 것이고, 어둠을 쓴 것인 동시에 빛을 쓴 것이며, 환멸을 쓴 것인동시에 여명을 쓴 것이었습니다. 제가 쓰고자 한 것은 사랑과 위대한 인성이었고, 생명의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함이었습니다. - P7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둘러싸고 있는 고난을 극복하고 선과 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영혼의 교육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과 내일에 대한 기대와 인성의 가장 후미진 구석에자리한 욕망의 그 꺼지지 않고 반짝이는 빛이었습니다.
- P8

식사를 하는 동안 누구도 리싼런이 이불 속에서죽었다는 사실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예전과 거의 같은 양의 밥을 먹었고,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전과 똑같은 양의 식사를 했다. 바람은 불지않았다. 햇빛은 부엌에서 서쪽으로 약간 비스듬하게 비치고있었다. 교정 안에는 따스함과 고요함이 가득했다. 모두들바닥에 앉거나 선 채로 만터우를 먹고 자오씨우친이 큰 솥에볶은 채소를 먹었다. 그리고 그녀가 소금물을 넣고 끓인 옥수수탕을 먹었다. 교실에서 가지고 나온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서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신발을 깔고 앉아 호호입김을 불면서 먹는 사람도 있었다. 마을 안에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우스운 일과 웃지 못할 일들을 이야기 하면서 먹었다.
중요한 이야기도 있었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도 있었다.
- P202

사람이 죽는 것이 나무에서 나뭇잎이 떨어진 것과 같았다. 등불이 꺼진 것과 같았다. 무덤을 파고 사람을 묻는 일이 삽을 들어 마을 어귀에 구덩이를 파고죽은 고양이나 개를 묻는 것만큼이나 순조로웠다. 슬픔도 없었고, 울음소리도 없었다. 울음소리와 슬픔은 말라버린 강과 같아서 소리도없고 호흡도 없었다. 사람들의 눈물은 맑게 갠 날 허공에 떨어지는빗방울만큼이나 희박하여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말라버렸다. 그리하여 별로 대단한 일이 없게 되었다. 우리 삼촌과 링링, 딩샤오유에와 쟈껀바오를 단숨에 다 묻어버렸다.
전부 묻어버렸다.
- P5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