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거짓말쟁이나 얼간이로 취급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은 감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취급을받는다 (전정에 장애가 있거나 수술로 고막을 제거한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 P98

"절단 환자의 경우 환각이 대단히 중요하다. 다리가 의족일 경우, 소위 신체 이미지 즉 환각이 의족 부분과 정확하게 들어맞아 일체감을 느끼지 못하면 절대로 만족스럽게 걸을 수 없다."
- P125

우리가 간과해온 그 비밀스러운 감각에 일단 결함이 생기면 정말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눈이 보이지 않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 것과 같다. 고유감각을 완전히 상실하면 신체는 자기가 내는 신호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되고, 글자 그대로 자신을 소유하는 것 즉 자신을 자신으로 느끼는 것이 중지된다. - P133

이것이야말로 대통령 연설의 패러독스였다. 우리 정상인들은마음속 어딘가에 속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잘속아 넘어간다(‘인간은 속이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속는다‘), 음색을 속이고교묘한 말솜씨를 발휘할 때 뇌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 빼고는 전부 다속아 넘어간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 P151

실생활이야말로 모든 대뇌 기능의 궁극적 표현이다. 적어도 상상 기능, 기억 기능, 지각 기능과 같은고도의 기능이 거기에 나타난다. 기존의 신경학은 결함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정신생활 그 자체를 보지 못했다. 실제의 뇌와 정신 상태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바로 그러한 상태에 관심을기울여야 한다. 특히 뇌와 정신이 고양된 상태, 과도하게 활발한 상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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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유산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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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인상적인 장면들과 문장들은 있다.

 

 하염없이 울고, 시도 때도 없이울고, 멍하니 넋이 나가고, 오랜 시간 멍했던 것들이 다 지나간 뒤에 찾아온 굳은살 같은 얼굴이었다. - P58

 

힘든 시대를 살아온 고모의 얼굴을 묘사하는 저 대목은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때때로 지금은 노인이 되신 부모님의 얼굴에서 저런 표정을 보게 된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그 얼굴들이 어떤 얼굴이었는지 알겠다.

 

그것을 두고 간 자도 차지한 자도똑같이 욕하는 목소리였다. 적산, 적이 남겨두고 간 자산이라는 표현에는 불을 지르고 싶은 적의와 한입에 삼키고 싶은 상반된 욕망이 뒤섞여 듣기만 해도 잠잠하던 피마저 들끓게 했다. - P67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재산, 이른바 적산에 대해서는 항상 이론적인 면에서만 접근했었다.

적산의 분배를 둘러싸고 어떻게 친일파들이 다시 부자가 되어가는지,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뭐 이런거 말이다. 때때로 여행길에 보게 되는 일제 시대 건축물이나 주택에 대해서도 기능적이거나 미술사적인 측면에서 보는게 중점이었는데, 당대의 사람들에게 이 적산이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분노에 찬 적의와 소유욕의 이중적인 시선!

지나간 시대에 대한 분노와 자본이 힘이 되는 새로운 시대적 욕망의 뒤섞임!

소설가임으로 해서 가질 수 있는 감성이라 생각이 든다.

 

악명높은 친일파 윤덕영이 지었던 벽수산장이라는 거대한 서양식 건물 - 적산을 둘러싸고 이후의 사람들이 벌이는 암투와 감정, 일종의 제3자로 등장하는 서양인 애커넌

친일파의 후손인 윤원섭의 뻔뻔함.

그 뻔뻔함을 격렬하게 경멸하고 미워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고, 그래서 무력감과 양심과 일자리사이에서 갈등하는 해동.

아 뭔가 이야기가 만들어질 무대는 다 마련이 된 것 같은데....

뭔가 더 이야기할 것이 많지 않을까 싶은데....

갈등도 이야기도 저택의 운명도 뭐하나 제대로 이거다라고 잡히는게 없다.

초록비님의 표현을 잠시 빌리고 싶다.

작가님이 많이 바쁘셨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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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1-10 1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가님이 바쁘셨나보다 ~ 어떤 느낌인지 알 거 같아요. ㅎㅎ

바람돌이 2021-01-10 11:49   좋아요 2 | URL
심윤경 작가님 좋아하는분인데 이 책은 뭔가 쓰다 만듯한 느낌이랄까 그렇네요. 뭐라고해야할지 참 그랬는데 초록비님이 다른 책 리뷰에서 쓰신거 보고 아 이거구나 싶어 살짝 도용한 표현이네요. ㅎ

scott 2021-01-10 10: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가님 할머니랑 찍은 사진 보고 호기심이 확땡겼었는데,,,
[악명높은 친일파 윤덕영이 지었던 벽수산장이라는 거대한 서양식 건물 - 적산을 둘러싸고 이후의 사람들이 벌이는 암투와 감정, 일종의 제3자로 등장하는 서양인 애커넌,,,,]
이렇게 펼쳐놓은 인물들,,,,
사전 조사가 부족했나,,,

작가님 이렇게 휘리릭 한권으로 끄읏!인가요?

바람돌이 2021-01-10 11:51   좋아요 2 | URL
맞아요. 사진이랑 책소개만으로 진짜 기대 기대했는데말이죠. 어느 것 하나 충분하단 느낌이 안들어요. 좋아하는 작가님인데 좀 슬프네요

붕붕툐툐 2021-01-10 15:10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님 많이 아쉬우셨겠당~ 이런 독자가 있는데... 작가님 아무리 바쁘셔도 좀만 더 힘내 주시지!! 잉잉~ㅠㅠ
 
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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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들기 전만 해도 그랬다.

이 코로나 시국에 카뮈라는 이 뛰어난 작가는 이 사태를 어떻게 예견하고 이런 사태속에서 벌어지는 온갖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를 펼쳐나갈까?

아마 나는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자들의 도시>쯤을 예상하지 않았나싶다.

카뮈판 눈 먼자들의 도시? 딱 이 지점이 이 책을 읽기 전 내가 예상한 지형도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갈수록 이 예상은 묘하게 어그러진다.

페스트가 창궐한 오랑시의 모습은 일반 독자가 예상할 수 있는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절망하고 그러다가 과거를 그리워하고, 희망없는 미래를 생각하느니 현재를 소비하고....

그리고 이에 맞서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에서 몇번이나 강조되는 것은 영웅주의에 대한 경계이다.

다른 소설이었다면 영웅으로 묘사되었을 사람들이 몇몇 있다.

하지만 카뮈는 이에 대해 몇번이나 부정한다.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의사 리외의 말에서 이는 두드러진다.

 

"당신 말이 옳아요. 랑베르, 절대적으로 옳아요. 당신이 지금 하려는일을 나는 결코 막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하려는 일은 내가 봐도 정당하고 좋은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것만은 말해주고 싶어요. 이 모든 것은 영웅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건 성실성의 문제예요. 비웃을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성실성이 대체 뭔가요?" 랑베르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를 예로 들면, 성실성은 내 직분을 완수하는 거예요."  - P194

 

의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직업윤리와 성실성,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기본 감수성- 휴머니즘이 이 책에 짙게 깔려있는 기본 이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행자였던 장 타루는 제일 먼저 앞장서서 보건대를 만들고 페스트를 이겨내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역시 영웅서사를 거부한다. 말하자면 이 사람은 실패한 혁명가다.

유럽의 혁명이란 이름이 붙는 모든 곳에서 활약했지만 어디서도 자신의 이념을 실현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 검사였던 아버지가 범죄자에게 사형을 언도하는 모습을 보고 사형제도가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벼락같이 깨달은 후 장 타루는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온갖 혁명에 뛰어들지만 그 어디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휴머니즘은 없었다.

어떤 혁명도 인간의 생명 자체를 구하지 못했으며, 그가 오랑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이 책을 읽은 이후 나는 이 두 사람이 어쩌면 카뮈 그 자신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뒤에 붙어 있는 저자의 해설을 보면 카뮈 자신은 이 소설에 대해

"나치주의에 반대하는 유럽 레지스탕스의 투쟁"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는데, 단지 그렇게만 얘기할 건 아니지 싶다.

 나치주의에 한계를 지을게 아니라 카뮈 그 자신이 얘기하고 싶었던 핵심은 전쟁, 파시즘, 전염병등 무엇이든간에 개개의 인간이 저항하기 힘든 거대한 폭력에 맞서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페스트의 상징의 범위는 훨씬 범위가 넓다고 느꼈다.

 

문제는 이러한 폭력에 대하여 카뮈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이다.

해설에 보면 알제리 독립에 대한 카뮈와 사르트르의 의견대립이 잠깐 언급된다.

 

카뮈는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르트르는 구조적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폭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카뮈가 폭력을 거부했다고 해서 그가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카뮈는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알제리 독립을 반대했지만, 알제리 사태가 식민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한 구조적 문제라는 사실을 관과하고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인간애에 호소하는 감상적인 태도를 보인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사르트르가 희생되는 개인들의 문제를 정의의 이름으로 외면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p364 해설

 

30대 나이까지의 나였다면 이 둘의 입장에서 나는 아마 거의 무조건 사르트르의 입장에 섰을 것이다.

카뮈의 입장이란 사실상 감상주의, 회색분자, 순진한 낭만주의로 공격받기 딱 좋고 실제로 저런 입장을 취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혁명기, 또는 독립투쟁기에 언제나 기회주의자로 매도당해왔던 것이 역사다.

 

하지만 지금은 저 카뮈의 입장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한 인간이란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지, 저 해설의 비판받아 마땅하다며 감상적인 태도를 얘기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카뮈의 생애를 보면 상당히 복합적이고, 왜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공감이 가는 면이 있다.

또한 이 책 <페스트>에서 카뮈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지를 되짚어보게 된다.

 

카뮈는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이다.

이 당시 알제리는 100년이 넘게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제시대 우리나라에 온 일본인쯤이랄까?

이것만이라면 침략자이자 지배자로서의 프랑스인으로 보통 3가지 중 1가지의 정체성을 갖기 마련이다.

즉 완전히 지배자와 착취자로서의 제국주의자, 또는 식민지인에 온정적인 식민지 본국인, 아니면 세계혁명론을 주장하는 사회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

이 3가지의 정체성은 상호 침범하지 않는다. 각자 독립적이며 배타적이므로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카뮈는 또 하나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데 그는 프랑스인이었지만 알제리에서의 그의 삶은 최하층 노동자계급이었다는 것이다. 무학이었던 어머니는 글을 몰랐고 막노동으로 그를 키웠다.

식민지 알제리에서 지배국 프랑스인 하층계급이란 이 조건은 그의 심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굉장히 똑똑했을 것이며, 동시에 감수성 예민하고 짐작컨대 휴머니스트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을 카뮈 말이다.

카뮈는 식민지에서 산다는 것, 그리고 사회의 하층민으로 산다는 것의 고통을 몸으로 체감했을 것이고, 자신을 비롯한 자신 주변의 사람들이 거대 이론이나 선동적 주장으로 어떻게 희생되는지를 충분히 보고 자랐을 것이다.

또한 그는 나치시대에 실제 레지스탕스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이건 프랑스의 레지스탕스활동이건 밖에서, 후일담으로 공부하고 얘기할 때는 훌륭하고 감동적인 스토리일수 있지만 실제 그 속에서 활동한 사람들게는 감동과 자랑스러움은 얼마 안될지도 모른다.

통계로 잡을수가 없어서 그렇지, 일제 시대 독립운동가들 중에 일본과 싸우다 감옥에 갇히거나 저격당하거나 해서 죽은 사람보다, 사실은 동지들끼리 밀정으로 의심하고 의심당하면서 죽은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카뮈는 그런 삶을 보고 느끼고 살아왔을 것이다.

사르트르가 이론으로서 지식으로서 아는 것을 카뮈는 이렇게 경험으로 몸으로 체화하는 삶을 살아왔다.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정책에 반대하지만, 알제리인들의 독립투쟁이 가져올 그 커다란 희생에 대해서는 거부하고싶은 마음.

천천히 조금씩 되도록이면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없이 바꿔나가고 싶은 마음.

공산주의든 무엇이든 거대 혁명이론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

격변의 시기 혁명의 시기에 이런 주장은 기회주의적으로 보일 것이고, 제국주의자들에게는 정치적으로 이용해먹기 딱 좋은 관점인건 분명하다.

그래서 카뮈와 사르트르의 결별이 충분히 짐작 가능하기도 하다.

 

아마도 카뮈는 많이 외롭고 힘들었지싶다.

본질적으로 정의로웠고 인간을 사랑하던 이가, 억압받는 이의 적으로 오히려 매도당하는 상황을 견디기는 쉽지 않았겠다.

이 소설은 바로 이런 카뮈의 정치적 입장에서 자신이 하고싶었던 말을 하고자 나온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짙게 하게 된다.

소설 속 의사 리외와 장타루는 카뮈 자신의 분신 자체가 아니었을까?

페스트는 질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도구화하게 되는 모든 거대이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카뮈가 주장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하루 하루 자신이 해야 할일을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의 삶.

오랑을 탈출하고자 하는 랑베르의 행복추구권이 당연하다고, 나와는 입장도 생각도 다르지만 당신의 생각도 존중할 수 있다고 하는 그 태도.

하나의 목표를 향해 무엇도 둘러보지 않고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느리더라도 다양한 삶의 양태를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휴머니즘이라는 생각.

 

늘 이론보다 실제는 상상하기 힘들정도로 복잡하고, 삶과 생각의 다양함은 그 폭을 가늠하기 어렵다.

사람이란게 원래 그러하다.

평화와 행복을 찾는 길이 단선적일리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카뮈는 세상을 좀 더 깊게 이해했던 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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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1-10 00: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거대한 목표를 추구하는 일은 사소한 일상을 거대하게 이루어가는 일보다 쉬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봐요. 사실 거대한 목표는 내가 꼭 이루지 않아도 되는데, 개인에게 주어진 일상은 각 개인들이 반드시 감당해야되는 일이잖아요. 각 한 사람의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그래서 위대한 일인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1-01-10 00:41   좋아요 4 | URL
어떤 삶이든 쉬운 것은 없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돼요. 특히 거대한 흐름에 나를 맡기게 될 때는 자신을 잃거나, 인간으로서의 기본 감성을 잃기가 너무 쉬운게 또 인간이지요. 아직은 그냥 하루하루의 삶을 성실하게 사는 것만으로 훌륭하지는 않지만 나쁘지만도 않은 그런 시대와 나라에 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소시민이 저입니다. ^^

막시무스 2021-01-10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초에 쌓아두신 책 완전 가속으로 정주행하시는군요!ㅎ 페이퍼까지 쓰시면서 대단하십니다! 화이팅하세요!ㅎ

바람돌이 2021-01-10 12:14   좋아요 1 | URL
목표달성은 이미 불가할거같구요. 그래도 화이팅하다보면 비슷하게는 읽지 않을까싶어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ㅎㅎ
 

즉 병이란 결코 상실이나 과잉만이 아니다. 병에 걸린 생명체, 다시 말해서 개인은 항상 반발하고 다시 일어서고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하고 주체성을 지키려고 한다. 혹은 잃어버린 주체성을 되찾으려하고 아주 기묘한 수단을 동원하면서까지 반드시 반응한다. - P22

그렇더라도 인간은 기억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는 아닙니다. 인간은 감정, 의지, 감수성을 갖고 있는 윤리적인 존재입니다. 신경심리학은 이런 것에 대해서 언급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학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이 영역에서 당신은 그의마음에 영향을 미쳐 그를 변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P69

성스러운 종교의식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그의 마음은 미사의 정신과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었다. 긴장과 정숙이 감도는가운데 그는 완전히 무아지경에 빠져서 종교의식에 자신을 내맡기고있었다. 그런 모습 어디에서도 기억상실증이나 코르사코프 증후군의기미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병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생각할 수없을 정도였다. 이제 그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메커니즘의 희생자가아니었다. 기억상실증이나 기억의 불연속 따위가 도대체 그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는 어떤 하나의 행위에 그의 존재를 기울여 그것에 몰두했다. 인간에게 감정과 의미를 부여하는 유기적인 통일을, 바늘 하나도 꽂을 틈 없는 연속을 그는 달성하고 있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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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렇다고요. 제가 이틀에 한 번씩은 꼭 저 형님 전화를 받는데요, 가만히 들어주는 것도 정도가 있는 거예요. 매일매일 어두운 이야기뿐이니까, 충분히 지겹고 과민할 때가 있는 거라고요. 그래서 전화 좀 몇번 끊었다고 이 한밤에 사람을 죽일 듯이,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 거냐고요. - P29

그건 너무 덧없다고 내가 말하자, 덧없는 편이 낫다,라는 것이 유도 씨의 대답이었다. 죽어서도 남을 쓸쓸함이라면 덧없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었다.
죽어서도 남을 쓸쓸함이라면,
유도 씨.
유도 씨는, 덧없이 사라질 수 있을까.
에라, 하고,
유라, 혹은 미라, 하고,
- P57

.......떨어져 내린다. 언젠가는 어딘가에 닿을 것이라 희망을 품었다가도 이렇게 떨어져서야 가망이 없다는 낙담뿐이다. 누가 누가 누가 없어요 나와 나와 나와 충돌해줘.
- P78

시끄러운 생물이 인간이라는 점까지 생각해보면 억울해 땅을 칠노릇인 것이다. 도무지 이 몸이란 짐승 역시 먹고사는 것을 제일로여기는 처지, 먹고사는 일로 따지자면 어느 짐승의 먹고사는 일이가장 중요한지는 누구도 간단히 말할 수 없는데도, 자기들만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듯 아무 데나 눈을 흘기는 인간들이 승하는 세계란 단지 시끄럽고 거칠 뿐이니 완파되는 편이 좋을 것이다.
- P115

어쨌든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
디디는 도도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의팔이나 다리나 머리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비좁은 거실을 가로질렀다.
달칵, 하고 신발장을 열어보았다.
- P179

그대는 이 기록을 눈 속에서 발견할 것이다.
나는 눈에 갇혔다.
그대가 부르고 싶은 대로 나를 부르라. 그 남자, 그 기록, 그 새끼, 그 물건, 그것, 나는 즉 그다. 그는 이미 많은 얼굴을 잃어버린뒤 그 집에 당도했다. 많은 얼굴을 제대로 떠올릴 수 없었고 그 자신의 얼굴 역시 그런 얼굴들 속에 있었다. 겨울이었다.  - P183

그는 상상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텅 빈 납골당으로 들어서는 사람, 눈사람과도 같은거인, 그의 등과 머리에 쌓인 눈, 체온의 냄새. 한발 한발 전진해갈때마다 그는 그에 관한 꿈을 꾸었다. 그에 관한 꿈으로 완전에 가까워지고 있었으므로 그는 갈 수 있었고, 살 수 있었다.
하.
후.
하.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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