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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박균호 지음 / 소명출판 / 2021년 1월
평점 :
아! 재밌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울 수 밖에 없지만 이 책은 진짜 재밌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작품도 좋지만 뒷얘기는 더 흥미로운 것처럼, 책도 정말 좋지만 책에 대한 뒷얘기는 더 재밌다.
알라딘 서재의 블로거 베스트셀러를 자주 체크하는데 언제나 책에 관한 책이 상위권에 몇 권쯤은 반드시 포진해있다.
이른바 책 덕후들이 좋아하는 책이니 아마도 당연한 결과일거다.
시작부터 흥미를 바짝 일으킨다.
난해하기로 유명하여 나같은 사람은 읽어볼 엄두도 내지 않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얽힌 이야기들은 <율리시스>라는 책이 주는 무게감과는 달리 코메디극같다.
악필로 유명했던 제임스 조이스가 원고에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마침표를 크게 찍어 보냈는데 이 마침표를 인쇄공들이 파리똥으로 착각해 누락함으로써 작가의 분노를 샀다는 이야기, <율리시스>출간 당시에는 '야한'책으로 낙인찍혀 판금이 되자 이 책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이야기, 그리고 실제로 책을 받아 읽게 된 사람들은 얼마나 당황하고 황당해했을까를 상상하는 재미까지 안겨준다.
이렇게 책의 초반에 강력한 한 방을 날려주시고 난 이후에도 책에 대한 비화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문화재가 된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4번이 비어있게 된 이유를 찾는 중에 느닷없이 출간되지도 않은 364번 책이 중고장터에 올라오는 희안한 일을 추적하는 것, 최인훈선생이 평생에 걸쳐 <광장>을 개작하는 이야기, 그 유명한 <닐스의 모험>이 사실은 스웨덴의 초등학교 역사, 지리 교과서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샐린저는 왜 그렇게 은둔자의 삶을 살았을까 너무 궁금한 가운데 그의 다른 단편을 보려면 앞으로도 40년을 더 기다려야 하고, <호밀밭의 파수꾼>을 영화로 만들려면 60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책을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내가 열거한 이 이야기들 모두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테다.
덕후란 원래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법이니 말이다.
이 책의 두번째 좋은 점은 아름다운 책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책의 만듦새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같은 책이 여러권 있다면 번역자 이런거 안보고 난 책 표지 디자인과 본문의 활자체를 먼저 보는 사람이다.
가끔은 표지 디자인이 맘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읽지도 않을 책을 사 들였던 적도 있다, 아니 꽤 많다.
2005년 민음사에서 나왔다는 <단원풍속도첩>을 나는 왜 몰랐을까?
이 책에 실린 사진만으로도 절판된 단원풍속도첩에 대한 물욕을 무럭 무럭 키우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 전집은 또 왜 그렇게 표지가 아름답고 책의 만듦새가 단정하지?
열린 책들의 <천일야화>특별판은 완전 내 취향이잖아....
이 책은 구매욕구를 무럭 무럭 키운다는 의미에서 나쁜 책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여기 나온 아름다운 책들은 대부분 절판이어서 그나마 다행이기도 하다.
웃돈을 주고 중고를 사지는 않을 것이기에.....
아름다운 책은 지금 나오는 책에 한정되지 않는다.
전설같은 책들을 사진으로나마 만나는 건 또 새롭고도 즐거운 경험이다.
시인 이상이 장정했다는 김기림의 시집 <기상도>의 표지는 그 세련됨이 1930년대라곤 믿을 수 없다.
내가 좀 더 덕후질을 심하게 했다면 이 시집을 찾아서 헤매고 있지 않을까 싶은 만듦새다.
책등의 제목을 무려 수를 놓아 만들었다는 서정주의 시집 <화사집>복각본이나, 나쓰메 소세키가 직접 장정한 책까지...
수집가의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한 초보 덕후인 나로서는 사진으로 이 책들을 영접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해진다.
오늘은 밥 안먹어도 배부른 날이다.(물론 밥은 다 먹었다.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지 말이야...)
그 외에 출판사들에 대한 이야기도 제법 많이 나오는데 그 이야기들은 앞의 미적 만족에 이어 실용성까지 충족시켜준다.
많은 출판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을 내고 있는데 각 전집의 1권을 보면 그 전집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얘기는 내가 왜 문학동네 전집을 주로 읽는지를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내공이 그리 높지 않은 무난한 독자였던 것이다. ^^
주석 달린 책들이 가지는 의미라든지, 책 제목에 숨겨진 의미 같은 이야기들은 앞으로의 책 선택이나 실제 독서에서 지침이 될만한 내용들이기도 하다.
책에 대한 애정은 때로는 출판사나 편집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작가와는 달리 나는 돌베개 출판사를 굉장히 좋아한다.
이 출판사에서 나오는 관심가는 책은 가능하면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고 사서 보는 편인데, 그건 책이 좋아서이기도 하고 이 출판사가 돈도 안되는 테마 한국사 시리즈를 너무 정성스럽게 만들어내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역시 책 덕후라면 좋아하는 출판사 하나 정도는 짚을 수 있어야지 말이다.
물론 내공이 더 깊은 덕후라면 각 출판사마다 장단점을 다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건 이 책의 작가님의 글을 읽는 것으로 만족하겠다.
그 외에도 원하는 책을 구하기 위한 분투기, 너무 많은 책으로 인해 있는지 모르고 같은 책을 또 사게 되는 이야기,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도 꿋꿋하게 버티는 컬렉터의 본분지키기라고 쓰고 눈치보기라고 이해하는 이야기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 웃음은 공감의 웃음이기도 하다.
이사때마다 이삿짐 센터 일하시는 분들한테 눈치를 봐야하고, 쌓여있는 책들로 인하여 항상 너저분한 집을 감수해야 하고 하는 이야기는 이미 기본이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아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이 사람은 나보다 더하네, 그래 나 정도면 그리 심각한 건 아니니까 앞으로 좀 더 사도 돼라는 자기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아주 강력한 장점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