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박균호 지음 / 소명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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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재밌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울 수 밖에 없지만 이 책은 진짜 재밌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작품도 좋지만 뒷얘기는 더 흥미로운 것처럼, 책도 정말 좋지만 책에 대한 뒷얘기는 더 재밌다.

알라딘 서재의 블로거 베스트셀러를 자주 체크하는데 언제나 책에 관한 책이 상위권에 몇 권쯤은 반드시 포진해있다.

이른바 책 덕후들이 좋아하는 책이니 아마도 당연한 결과일거다.

 

시작부터 흥미를 바짝 일으킨다.

난해하기로 유명하여 나같은 사람은 읽어볼 엄두도 내지 않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얽힌 이야기들은 <율리시스>라는 책이 주는 무게감과는 달리 코메디극같다.

악필로 유명했던 제임스 조이스가 원고에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마침표를 크게 찍어 보냈는데 이 마침표를 인쇄공들이 파리똥으로 착각해 누락함으로써 작가의 분노를 샀다는 이야기, <율리시스>출간 당시에는 '야한'책으로 낙인찍혀 판금이 되자 이 책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이야기, 그리고 실제로 책을 받아 읽게 된 사람들은 얼마나 당황하고 황당해했을까를 상상하는 재미까지 안겨준다.

이렇게 책의 초반에 강력한 한 방을 날려주시고 난 이후에도 책에 대한 비화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문화재가 된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4번이 비어있게 된 이유를 찾는 중에 느닷없이 출간되지도 않은 364번 책이 중고장터에 올라오는 희안한 일을 추적하는 것, 최인훈선생이 평생에 걸쳐 <광장>을 개작하는 이야기, 그 유명한 <닐스의 모험>이 사실은 스웨덴의 초등학교 역사, 지리 교과서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샐린저는 왜 그렇게 은둔자의 삶을 살았을까 너무 궁금한 가운데 그의 다른 단편을 보려면 앞으로도 40년을 더 기다려야 하고, <호밀밭의 파수꾼>을 영화로 만들려면 60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책을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내가 열거한 이 이야기들 모두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테다.

덕후란 원래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법이니 말이다.

 

이 책의 두번째 좋은 점은 아름다운 책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책의 만듦새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같은 책이 여러권 있다면 번역자 이런거 안보고 난 책 표지 디자인과 본문의 활자체를 먼저 보는 사람이다.

가끔은 표지 디자인이 맘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읽지도 않을 책을 사 들였던 적도 있다, 아니 꽤 많다.

2005년 민음사에서 나왔다는 <단원풍속도첩>을 나는 왜 몰랐을까?

이 책에 실린 사진만으로도 절판된 단원풍속도첩에 대한 물욕을 무럭 무럭 키우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 전집은 또 왜 그렇게 표지가 아름답고 책의 만듦새가 단정하지?

열린 책들의 <천일야화>특별판은 완전 내 취향이잖아....

이 책은 구매욕구를 무럭 무럭 키운다는 의미에서 나쁜 책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여기 나온 아름다운 책들은 대부분 절판이어서 그나마 다행이기도 하다.

웃돈을 주고 중고를 사지는 않을 것이기에.....

 

아름다운 책은 지금 나오는 책에 한정되지 않는다.

전설같은 책들을 사진으로나마 만나는 건 또 새롭고도 즐거운 경험이다.

시인 이상이 장정했다는 김기림의 시집 <기상도>의 표지는 그 세련됨이 1930년대라곤 믿을 수 없다.

내가 좀 더 덕후질을 심하게 했다면 이 시집을 찾아서 헤매고 있지 않을까 싶은 만듦새다.

책등의 제목을 무려 수를 놓아 만들었다는 서정주의 시집 <화사집>복각본이나, 나쓰메 소세키가 직접 장정한 책까지...

수집가의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한 초보 덕후인 나로서는 사진으로 이 책들을 영접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해진다.

오늘은 밥 안먹어도 배부른 날이다.(물론 밥은 다 먹었다.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지 말이야...)

 

그 외에 출판사들에 대한 이야기도 제법 많이 나오는데 그 이야기들은 앞의 미적 만족에 이어 실용성까지 충족시켜준다.

많은 출판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을 내고 있는데 각 전집의 1권을 보면 그 전집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얘기는 내가 왜 문학동네 전집을 주로 읽는지를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내공이 그리 높지 않은 무난한 독자였던 것이다. ^^

주석 달린 책들이 가지는 의미라든지, 책 제목에 숨겨진 의미 같은 이야기들은 앞으로의 책 선택이나 실제 독서에서 지침이 될만한 내용들이기도 하다.

책에 대한 애정은 때로는 출판사나 편집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작가와는 달리 나는 돌베개 출판사를 굉장히 좋아한다.

이 출판사에서 나오는 관심가는 책은 가능하면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고 사서 보는 편인데, 그건 책이 좋아서이기도 하고 이 출판사가 돈도 안되는 테마 한국사 시리즈를 너무 정성스럽게 만들어내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역시 책 덕후라면 좋아하는 출판사 하나 정도는 짚을 수 있어야지 말이다.

물론 내공이 더 깊은 덕후라면 각 출판사마다 장단점을 다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건 이 책의 작가님의 글을 읽는 것으로 만족하겠다.

 

그 외에도 원하는 책을 구하기 위한 분투기, 너무 많은 책으로 인해 있는지 모르고 같은 책을 또 사게 되는 이야기,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도 꿋꿋하게 버티는 컬렉터의 본분지키기라고 쓰고 눈치보기라고 이해하는 이야기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 웃음은 공감의 웃음이기도 하다.

이사때마다 이삿짐 센터 일하시는 분들한테 눈치를 봐야하고, 쌓여있는 책들로 인하여 항상 너저분한 집을 감수해야 하고 하는 이야기는 이미 기본이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아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이 사람은 나보다 더하네, 그래 나 정도면 그리 심각한 건 아니니까 앞으로 좀 더 사도 돼라는 자기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아주 강력한 장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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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30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5쪽만 읽고 조용히 책을 덮었다고 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낄필요는 없다. 어차피 당신에게 혹독한 장난을 친 선배 독서가 중에서도 『율리시스』를 끝까지 읽은 사람은 없다. 선배들은 ‘인내하라,
그리하면 읽힐 것이다‘라는 주옥같은 충고를 하지만 어차피 그 말을 하는 사람도 안 될 것을 알고 하는 거짓말이다.
- P12

놀라지 마시라, 하동호의 『한국 근대시집 총림서지 정리』에따르면 1923년에서 1945년까지 조선에서 출간된 창작 시집의 총권수는 154권이다. 22년 동안 154권의 시집만이 나온 것이다. 1923년을 비롯한 여러 해에는 2권만이 출간되었고 1928년에는 출간된창작 시집이 전무했다.  - P122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s제목의 번역이 독자들의 이해를 방해한 예에 속한다. 누구의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가 좀 더 정확한 번역이다. 원래 toll이란 교회에서 장례식을 알리기 위해서 타종하는 방식을 말한다. 예포를 쏘듯이 천천히 긴 간격으로 슬픈 분위기를 자아내는 타종방식이다. toll을 들으면 주위에 사람들은 누군가의 장례식이 열린다는것을 알게 된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미국 청년과 게릴라로 활동하는 스페인 여인과 슬프고 비극적인 결말과 어울리는 제목이다.
- P149

서평가로서 조지 오웰이 가장 힘들어 한 것은 서평을 하는 대부분의 책에 대해서 과도한 칭찬을 해야 하는 구속이었다.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없으며 아무런 재미를 못 느꼈기 때문에 돈 때문이 아니라면 서평을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가 본심이지만 이 책이야 말로 당신이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100권의 책 중의 한 권이다‘라고 칭찬을 하는 일이 조지 오웰에게는 가장 힘든 일이었다.
- P186

『닐스 홀게르손의 신기한 스웨덴 여행으로 당시 스웨덴 초등학생은 스웨덴의 지리, 문화, 자연에 대해서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곳곳에 등장하는 스웨덴 민담은 이 교과서로공부하는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스웨덴 초등학생에게 스웨덴 지리와 역사를 가르치려면 일부 지역이 아닌 스웨덴의 전국을 모두여행을 해야 했기 때문에 주인공 닐스의 크기를 15cm 정도로 줄여서 거위에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도록 설정했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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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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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단편 연작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을 읽는건 힘겨웠다.

시대적 배경을 정확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충 짐작해보건대 1920년대에서 1970년대쯤이 될 것 같다.

캐나다라고 하는 나라의 이미지는 바로 붙어있는 미국과는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펼쳐지는 캐나다의 시골마을의 모습은 미국의 어디라고 해도 음 그렇구나 싶겠다.

아! 저 시절엔 캐나다도 별 수 없었구나, 여성이 온전한 인간으로서 자리를 차지할 수 없는건 똑같았구나 싶어진다.

소녀에서 중년의 여인이 될때까지 주인공 로즈의 삶은 참으로 안타까운 연민을 자아낸다.

 

이 소설 속 로즈는 너무 현실적인 캐릭터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이 훈계란 이름의 '장엄한 매질'로 당연시되고 정당화되는 시골마을.

아 이건 너무 익숙하잖아.

내가 어린 시절도 아이들은 잘못하면 맞는 것이 당연했다.

얻어 맞고도 반항도 못하고 밥상머리에 앉아 주는 밥을 꾸역꾸역 먹던 기억 하나쯤은 내 나이쯤 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페이지쯤 가지고 있을 거다.

하지만 폭력은 그것이 어떻게 포장되든 그저 폭력이다.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 몸에 새겨진 자존감의 상처이고, 자신감을 잃게 하는 트라우마다.

 

로즈가 당한 매질의 폭력은 더 큰 폭력과 대비된다.

딸을 학대하고 강간할 것이다라는 짐작만으로 - 그것도 근거없이 부풀려진 소문만으로- 마을의 노인을 찾아가 죽을때까지 때리는 3남자의 사적 폭력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일상적인 폭력의 행사가 장엄한 매질로 정당화 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런 끔직한 범죄를 만들어낸다.

더 끔찍한 것은 이런 범죄적 폭력이 일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로즈가 다니는 학교는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며 언제든 강간의 위협이 상존하는 곳이다.

그저 잘 피해다니고 조심하라고 할 뿐 보호는 없다.

한 명의 소년과 은밀한 만남을 약속했던 마을의 다른 소녀는 집이 빈날 약속한 소년을 기다리지만 실제 찾아오는 것은 3명의 소년이다.

그들은 그것을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유희일 뿐이다.

그들은 강간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으며, 멀쩡해보이는 어른으로 자라 잘, 아주 잘 살아간다.

 

이렇게 자란 로즈가 자존감 충만한 어른으로 자라기는 쉽지 않다.

사랑받고 싶다는 열망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열렬하게 고백하는 부자 청년 패트릭과의 결혼으로 이어지지만, 이 결혼은 시작부터 파경을 예고하고 있다.

패트릭은 자신이 만든 이미지를 사랑할 뿐이고, 로즈를 <코페투아왕과 거지소녀>의 거지소녀로 비유한다.

그는 로즈의 환경을 이해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할 수도 없으며 그저 시궁창같은 환경에서 로즈를 구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즈는 그런 패트릭을 사랑할 수 없지만, 한번도 제대로 사랑받아보지 못한 이 소녀는 혼란을 거듭하다가 결국 사랑받고 싶다는 열망에만 사로잡혀 패트릭과 결혼을 하는 것이다.

로즈가 결혼을 승락하는 이 장면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자아와 인정욕구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로즈의 극도의 분열 상태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다.

 

패트릭과는 10년만에 이혼하지만 로즈의 이런 분열은 책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된다.

결혼 중 불륜의 대상이었던 친구의 남편 클리퍼드와의 사랑은 로즈는 절박했지만 클리퍼드에게는 그저 조금 심각한 장난질일뿐이었다.

그래서 사랑할만한 사람을 만났을 때도 로즈는 결코 자신이 일생동안 받은 상처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일생에 걸친 자존감의 상처가 사람을 어떻게 삶의 고비 고비마다 단단한 방어막으로 숨어 들게 만드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소설 속 로즈는 그런 상처로 가득한 여자고 인간이다.

소설의 말미쯤 되면 그래도 이혼도 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결국 찾아 사회적 성취도 어느 정도는 이루었으니 뭔가 자각하고 깨어있는 로즈를 기대했지만 그런 로즈는 끝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은 이게 현실이다.

우리 삶에서 극적인 반전은 그리 흔한게 아니다.

상처받은 마음은 상처받은 대로 끝까지 안고가는게 실제 현실이다.

로맨스 소설처럼 타인에 의해 상처가 깨끗이 치유되고 이제 불행 끝 행복시작이란건 그야말로 로맨스 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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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1-29 08: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으며 빨간 머리 앤이 떠오르더라고요. 배불리 먹이고 믿고 사랑해 주는 친구와 양육자들. 로즈에게도 그런 행운이 찾아왔다면 해피엔딩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ㅎㅎ 오늘 날이 참 차네요. 따뜻하게 입으세요~

바람돌이 2021-01-30 00:30   좋아요 1 | URL
먼저 배불리 먹이고가 안돼요. 많이 가난하거든요. 인간이 인간으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가난이 낭만이 될 수 있는건 최소한 먹고 입는 문제는 해결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항상 느낍니다. 오늘 날시가 많이 추웠는데 mini74님도 따뜻한 밤 되세요

수이 2021-01-29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아직 읽지 못했는데 로즈 이야기 듣고 있노라니 나혜석 언니 떠오르네요. 아무리 강단 있고 할 말 모두 했지만 시대가 받아주지 않아서 행려병자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저도 곧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폭력에 대해서 하신 말씀은 백번 공감이요.

바람돌이 2021-01-30 00:33   좋아요 2 | URL
음.... 나혜석과는 조금 결이 달라요. 나혜석은 말씀대로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적인 생각으로 인해 그 천재적인 재능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면 로즈는 아주 평범한 삶조차도 환경의 억압으로 자신이 가진 기본적인 자아조차도 억눌리는 주인공이예요. 그리고 아직 로즈는 좀 더 기회가 남았어요. 책의 마지막에 중년의 로즈가 있는데 혹시 작가가 이 이후 이야기도 더 썼을지도 모르죠. 그럼 또 다른 로즈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
 
파씨의 입문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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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난한 일상의 스산한 풍경들

 

첫 번째 단편인 <야행 夜行>을 보다가 팡 터졌다.

"뭘 해달라는 것도 아니었고요. 이런 저런 일로 내가 하도 우울해서요, 위로라도 좀 들을 수 있을까, 싶었을 뿐이었는데요. 저 동생 하는 말이요, 자기한테 계속 그런 얘기를 하려면 다시는 전화를 하지 말라는 거였고요......"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하루 이틀이라는데 그 위로를 매일 해줘야 했던 상대는 당연히 지겹고 괴로웠을거다.

모진 맘을 먹고 따지러 가는 일가족의 출발부터, 그 가족을 맞은 다른 가족의 떨뜨름함과 그런 어른들의 갈등에는 별 관심이 없고 불편하기만 한 아이들의 어색함까지, 정말 어딘가에서 본듯한 일상의 한 장면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삶이란건 생각보다 구질구질한 장면들의 연속이다.

그 구질구질함이 연속되면 누구라도 붙들고 하소연하고 싶어지는게 인지상정이고, 그 하소연을 매일 들어줘야 하는 사람은 고역인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삶의 한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한 이 단편은 너무 슬픈데 또 너무 리얼하고 절묘해서 순간적으로 팡 터져 웃고 말았다. 내게 황정은 작가가 항상 옳은건 이런 절묘함이다. 그 밤 방에 모인 모두의 마음이, 누구도 나쁘지 않은, 그러나 누구도 절대적으로 착하고 아름답지도 않은 그런 일상의 우리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져 마음을 아리게 한다.

삶에 위로가 필요하다는 심리학자나 정신분석학자들의 말이 한편으로 다 쓸데없는 말이 되는건 이런 순간이다.

이들은 그 위로를 구할 여유조차도 없기에 안그래도 팍팍한 삶에 나부터 위로 받아야 하는데 누구를 위로한단 말인가?

진짜 가난은 이렇게 팍팍하다.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는 길, 난 뜬금없이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막막함과 팍팍함이 그저 정지된 한 장면인듯 펼쳐지는게 비슷하다고 느꼈던걸까?

 

이런 일상의 반복과 구차함과 그럼에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다른 단편인 <양산 펴기>에서도 잘 표현되고 있다.

하루 아르바이트로 바자회에서 양산을 팔면서 펼쳐지는 풍경은 이 도시 어디를 가나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특별한 사건도 사고도 없지만 나의 팍팍한 삶을 한순간도 잊지 않게 해주는 온갖 장면들.

딱히 인물들의 감정을 구구절절하게 말하지 않아도 정치인을 대동한 기자가 바자회에 자원봉사 나왔냐고 하는 질문에 "그냥 알바예요"라는 대답에 하루동안 이들이 느꼈을 그 온갖 신산한 감정들이 묻어나온다.

 

2. 잊혀진다는 것은......

 

<대니 드 비토>와 <낙하하다>가 얘기하는건 잊혀짐이다.

이 두 단편은 다른 이야기이면서 같은 고통을 얘기하고 살짝 교차하기도 한다.

<대니 드 비토>가 잊혀짐의 과정을 실시간으로 체험하고 봄으러써 작아지고 작아지는 자신을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보고있는 지옥이라면, <낙하하다>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끊임없이 낙하하는인물이 등장한다. 낙하가 너무나도 오랫동안 계속되어 기억을 하나씩 둘씩 버리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한개의 문장에만 집착하게 되고, 그래서 너무 외로워서 차라리 무엇인가와의 충돌조차도 바라게 되는 지옥이다.

 

정말로 사람이 죽는 순간은 잊혀지는 순간이라는 말이 순간 떠올랐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잊지 말자는 말을 하고 살아간다.

내가 결심한 잊지 말아야지만으로도 탑 몇개는 거뜬히 쌓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잊지 않았나?

<대니 드 비토>의 유도씨가 마지막 남긴 이름이 유라인지 미라인지 알 수 없다고, 설사 유라였다고 하더라도 유도씨의 삶에서 유라가 잊혀진 것이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잊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게다.

그저 이름을 기억한다는 정도가 끝없는 낙하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게 아닐거다.

잊지 말아야 할 이름을 불러주고, 그 이름을 위해 무언가 보살핌을 베풀고 잊지 않고 있음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일거라도 이 소설들은 역설적으로 얘기하는게 아닐까?

사소하게는 죽은 이를 기억하는 제사일수도 있고, 다르게는 아직도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고통스러울 세월호의 아픔을 기억하고 진실규명을 위해 무언가 손을 보태는 것도 기억의 힘일 수 있겠다.

잊혀짐을 보여줌으로써 기억의 힘을 말하고자 하는 게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뼈도둑>의 사내는 눈속에 파묻히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지 않을까?

누구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했던, 그래서 죽은 연인의 뼈하나 조차도 허락받지 못했던 그 마음을 누군가는 기억해주고 인정해줬으면 하던 마지막 저항이 아니었을까?

기억은 이토록 필사적인 무엇이다.

 

3. 그럼에도 삶은 배려와 기억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옹기전>에서 항아리 하나를 주운 소년은 항아리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를 나침반 삼아 항아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 그것을 데려간다. 그 곳이 비록 모든 흔적이 사라진 곳이라 하더라도, 그곳에는 그래도 남은 항아리들이 있다. 함께 터질 수 있는 독들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 마음은 단편 <디디의 우산>에서 "어쨌든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라고 디디의 읊조림에 모두 담겨있다.

그 우산은 비를 피하는 우산일 뿐만 아니라 다른 이를 기억하고 배려하는 마음이다.

황정은의 소설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우울하다. 짧게 끊어치는 문장들이 더 그런 우울함을 배가시킨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고 난 마음이 우울하지만은 않은 것은, 그 짧게 끊어치는 문장들 사이 사이 들어있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배려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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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1-01-29 1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우상보다는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우산 같은 존재가 되어야겠습니다. ^^

바람돌이 2021-01-30 00:36   좋아요 0 | URL
비맞지 않게 배려하는 우산같은 사람 쉽지 않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내 욕심을 없애면 내 옆의 몇명의 사람을 배려하는거 그렇게 어렵지 않을까요? 저도 늘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창문 유리에 비친 우리의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다. 함께 있는 우리. 그 모습은 옳아 보였고, 옳게 느껴졌다. 앨런이 나에게 팔을 둘렀고, 나는 그에게몸을 기댔다. 우리가 함께하는 것은 앨런에게 좋아 보이는 만큼이나 나에게도 좋았다. 우리의 관계는 나에게 관성과 두려움 말고도 계속 살아갈 이유를 주었다. 나는 그와 함께 갈 수밖에 없었다. 그게 옳은 일 같았다.
- P71

우리는 수십억 개의 세포 각각의 세포핵에 오만 개의 다른 유전자를 신고 있다. 그 오만 개 중 하나의 유전자가, 예를 들어 헌팅턴 병 유전자 하나가 우리의 삶을 그토록 크게 바꿔놓을 수 있다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우리가 무엇이될 수 있는지를 그 유전자 하나가 규정할 수 있다면, 대체 우리는 무엇인가?
정말로, 무엇이란 말인가?
- P109

노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나를 다룬 방식과, 외계인들이 포로생활 초기에 나를 다룬 방식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소위 인간이라는 자들은 자기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음을 알았다.
는 점뿐이에요.  - P201

"보이는 것이 그게 다냐?" 신이 물었다.
그 말은 마사에게 더 큰 혼란을 주었다. "제가 무엇을 보는지 모르세요?" 그녀는 물어보고 나서 얼른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게 아닌가요?"
신은 미소 지었다. "그래, 그런 짓은 오래전에 그만두었지.
그게 얼마나 지루한지 너는 상상도 못할 거다."
- P224

"그것이 정말로 감옥이었다면 너는 아직도 그 안에 있을 테고, 나는 아직도 네가 처음 보았을 때 모습 그대로 보이겠지."
"그건 그렇네요. 감옥이 아니면 뭐라고 부르시겠어요?"
"오래된 습관이라고 하겠다. 습관은 그게 문제지. 쓸모가 없어져도 오랫동안 이어지는 경향이 있어."
- P253

과거, 미래, 현재에 대한 SF의 사고가 무슨 쓸모가 있을까?
대안적인 사고와 행동을 경고하거나 고려하는 SF의 경향은무슨 쓸모가 있을까? 과학과 기술, 혹은 사회 조직과 정치 방향이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SF의 탐구는 무슨 쓸모가 있을까? 기껏해야 SF는 상상력과 창조력을 자극할 뿐이다. SF는독자와 작가를 다져진 길 밖으로, ‘모두‘가 말하고 행하고 생각하는 좁고 좁은 오솔길 밖으로 끌어낸다. 지금 그 모두 가누구든 간에 말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흑인에게 무슨 쓸모가 있을까?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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