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는 이렇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이 담겨있습니다. 그 통찰이 당대 사회의 모습만 보여 주는 게 아니라 미래사회를 예견하기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 때문입니다. 과거에도 인간은 행복과 자유를 추구했고 선과악을 품고 있었습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서 노예처럼 일하는항해사들의 모습이 요즈음 직장인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며, 그러한 인간의 모습은 먼 미래에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 P5

경제 규모가 크다고 해서 난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과 능력이 저절로 갖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난민 수용에 앞서 우리 사회는몇 가지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 난민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미리엘 신부가 장 발장을 ‘형제‘라고 부른 것처럼 편견과 배척의시선을 거두고 난민을 새로운 형태의 동반자로 보아야 한다. 미리엘신부처럼 한없는 자비를 베풀며 살아가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장발장을 매정하게 내쫓은 식당과 여관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P22

《모비 딕》은 1851년 발표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안동 김씨가 세도 정치를 이어 가고, 개혁 운동에 앞장선 김옥균이 태어난 해다. 그시기에 쓴 소설에 허먼 멜빌은 21세기 현대인의 고민과 문제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교도에 대한 관용, 자연에 대한 경외심, 음식 제국주의, 종교의 부작용과 대처 방법 등이 바로 이 19세기 작품에 그려져있다. 마치 21세기에 쓴 소설이 아닌가 할 정도다. 당시 서양에 만연했던 인종 차별이나 종교의 부작용을 비판한 내용이라는 평가도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이 작품의 놀라운 힘은 그 비판이 19 세기만이아니라 오늘날의 사회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 P28

과거의 인류는 건축물에 모든 것을 담았다. 인간의 기억력에는한계가 있으니 후세에 전해야 할 정신적 유산을 모두 건축물에 담아길이길이 간직하도록 했다. 유사 이래 15세기까지, 즉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까지 인류는 당대의 사회, 문화, 종교 등 모든 것을 건축에 쏟아부었다. 피라미드, 만리장성, 노트르담 대성당 등 위대한 건축물은모두 민중이 그 시대의 삶과 정신을 표현한 한 권의 책이었다. 그중에서도 노트르담 대성당은 성서 그 자체였다.
- P59

인쇄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사정은 바뀌었다. 돌로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산더미 같은 돌과 나무, 수만 명의 인부, 그리고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길게는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활자를 만들어 종이에 인쇄하기만 하면 되는 인쇄술을 이길 수가없었다. 중세 건축물 ‘덕후‘인 위고로서는 인쇄술에 밀려나는 건축에대한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그토록파리 건축을 예찬한 것도 그러한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 P60

《걸리버 여행기》는 1726년 출간되자마자 초판 1만 부가 다 팔렸고,
어린이와 성인 할 것 없이 모두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어린이들은 계란의 양 끝 중에 어느 쪽을 깨서 먹느냐를 두고 두 나라가 싸우는 이야기, 소변을 누어 왕궁의 불을 끈 이야기 같은 동화적인 요소에 열광했다. 어른들은 풍자적으로 그려신 등장인물을 두고 현실의 인물 중누구를 지목한 것인지에 대해 설전을 벌이며 이웃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 P137

셰익스피어는 새로운 단어와 구를 만든 한편, 영어의 특징중 하나인 명사의 동사화‘ 용법을 일반에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예를 들면 추문 gossip 이라는 명사는 셰익스피어 시대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 단어를 험담하다 라는 동사로도 사용한 것은 셰익스피어가 처음이었다. 영어는 셰익스피어 덕분에 더 풍부하고 유연한 언어가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스웩‘이 아닐 수없다.
- P155

고정관념은 차별을 낳고 상대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든다. 고민을 솔직히 나누고 건강하게 해소하는 사회를 만들려면 차별적인 시선부터 거둬야 하지 않을까?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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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호퍼의 작품세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는 본격적으로 그림에 착수하기 전에 제계적이고 치밀한 준비 작업을 거치지만 걸고 계산적이지 않으며,
자신이 감정적으로 보다 친밀감을 느끼는 오브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내적경험과 회화적 관섬 사이의 화합을 지향하고, 시신과 그림을 일 지시키려 노력하며, 문명화 과정 중에 파묻혀 버린 진정성에 이르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구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싶어한다. - P14

호퍼는 언뜻 불안정해 보이는 회화적 요소들에서 출발해서 마침내 신세계라는 경험의 장(場)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역할을 직접 겨냥하는 상징체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그리고 도상학적 기법의 고정된 기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때마다 새로운 투사를 통해서 다양하게 표현되는 회화적 요소들은 바로 이 상징체계에서 나온다.  - P23

"모든 예술활동의 처음이자 끝은 내안의 세계를 통해서 내 주위에 세계를 다시 만들어내는 일이다.  - P28

1920년대 말 호퍼는 집이나 풍경, 도회지 정경을 인간적 삶의 관점에서 재현한다.  - P43

호퍼가 후기로 갈수록 작품에 내재하는 육체직 · 성적 팬태즘을 부재(不在)의 방식으로 은밀하게 회화적 복합체로 변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P52

문제의 핵심은 이 그림과 이 그림이 재현해내는 것 사이의 관계에 있지 않고, 현실에 대한 리얼리즘적 재현이 사실은 환상일 따름이란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실상 리얼리즘적 재현이란 개인의 능력을 뛰어넘은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도 질서정연하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복구해내려는 허구에 뿌리를 둔 환상이다. 호퍼의 후기작들은 순수한 현실에 대한 이와 같은 허구성을 꼬집는 반발의 의미를 간과하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 P63

눈으로 보는 바를 그리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기억 속에간직하고 있는 바를 그리는 것은 훨씬 더 훌륭한 일이다. 이는 상상의 힘이 기억과 결합함으로써 변모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화가는 자신을 구속하는 것, 즉 필연적인 것만을 다시 만들어낼 뿐이다. 기억과 창조성은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자연이 부과하는 억압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 P67

얼핏 리얼리즘에 충실한 듯이 보이는 호퍼의 회화는 복제가 가능한 현실을 단순히 재현해내지 않고, 언제나 순수 경험세계를 뛰어넘는 재구성을 지향한다. 호퍼가 자주 재현해내는 그림 속 그림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전반적 회화 작업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복제해내는 대신에 빈 공간을 창조해낸다. 그럼으로써 그의 작품은 현실에 대한 지각이나 지각하는 능력 자체에서 드러나는 단절을 부각시킨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호퍼의 작품은 침묵의 메타포로 설명되곤 한다. 말이란 말해지지 않은 부분과 침묵의 지배를 받는 부분이 있다. 호퍼의 회화도 공개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부분이 은밀하게 구심점을 이룬다. 전반적으로 호퍼의작품은, 분명한 의미로써 해석되는 회화적 상황을 측량할 길 없는 깊디깊은 심연속으로 밀어 넣는 독특함을 보여준다.
- P85

호퍼의 회화 작업은 표현적 형태를 추구하면서도 반드시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려 하지는 않는 독특한 시각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보여준다. 이렇게 볼 때 호퍼의 회화는 현실을 상상력과 기억의 힘을 빌려 변모시키고자 했던 에드가 드가와 궤를 같이 한다.
- P86

호퍼에게 리얼리즘이란단 한번도 눈에 보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냄을 의미한 적이 없었다. 호펴는 순수한 회화적 재현을 전혀 신뢰하지 않을뿐더러, 매 작품마다 복제와 상상력, 재현과 구성 사이에 즉각적인 상호연관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실과 결부된 여러 회화적 요소들과, 또한 이것들을 함께 엮어내는 시선의 현실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만이 호퍼의 회화가 제시하는 현실을 설명해준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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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라, 그러면 내 권능이 완벽해지리라. 나를따르라. 나는 북극의 영원한 얼음을 쫓아갈 테니. 거기라면 나는 끄떡없어도, 너는 추위와 서리의 참담함을 느끼게 되리라. 네가 너무 게을리 따라오지만 않는다민, 북극 근치에서 죽은 토끼를 보게 될 것이다.
먹어라, 그리고 힘을 얻어라. 어서 와라, 내 원수, 우리에겐 목숨을 걸고 벌여야 할 결투가 남아 있으니까. 하지만 네가 힘들고 비참한 시간들을 견뎌내야 그때가 올 것이다."
- P278

오! 남자답게 행동하십시오. 아니, 남자 이상의 존재가 되십시오. 확고하게 목표를 다지고 반석처럼 든든히 버티십시오. 얼음은 여러분의 심장과는 재질이 다릅니다. 얼음은 변하기 쉬우니, 의지만 품는다면 결코 여러분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이마에 굴욕의 낙인을 찍고 가족에게 돌아가지는 마십시오. 싸워 이긴 영웅이 되어 돌아가십시오. 적에게 등을 돌리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영웅으로 돌아가십시오."
- P292

나는 이성적인 존재를 창조했으니, 내 능력이 닿는 한행복과 복지를 보장했어야 합니다. 그게 제 의무였어요.  - P295

"범죄를 저지를 때마다 이 사람이 겪은 고통이 나보다.
덜하면 덜했지 더하지는 않았다. 오! 잊히지 않는 범행의 과정 하나하나에서 그는 내가 겪어야 했던 고통의 만분의 일도 겪지 않았단 말이다. 끔찍한 이기심 때문에 도저히 멈출 수 없었으나, 내 심장에는 가책의 독이 퍼져 있었다. 클레르발의 신음이 내 귀에 음악 같았을 거라 생각하는가? 내 심장은 사랑과 연민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졌다.
불행이 심장을 쥐어짜 죄악과 증오를 품게 만들었을 때, 당신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문 같은 아픔 없이는 그 지독한 변화를 견뎌낼 수 없었다.
- P299

 타락한 천사가 사악한 악마가 되는 법이다.
하지만 심지어 신과 인간의 원수에게조차 외로움을 함께할 친구와 동료가 있다. 나는 철저히 혼자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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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2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3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가 청했습니까, 창조주여, 흙으로 나를 인간으로 빚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올려달라고?
실낙원」 - P5

내가 처한 이 공포스러운 상황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대중의 의견이, 그리고 재판관들의 얼굴이 벌써부터 내 불행한 희생자를 단죄하고 있음을 깨닫고, 괴로움에 법정 밖으로 황급히 뛰쳐나갔다. 피고의 고통도 나보다는 덜했다. 그녀는 결백의 힘으로 견디고 있었지만, 회한의 날카로운 이빨은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으며 끝내 놓아주지 않았다.
- P110

"어떻게 해야 당신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아무리 애원해도 자기가 만든 피조물에 호의를 보일 수 없단 말인가? 이렇게 당신의 선의와 연민을 갈구하는데도? 내 말을 믿어라, 프랑켄슈타인, 나는 선했고, 내 영혼은 사랑과 박애로 빛났다. 하지만 나는 외롭지 않은가? 참담하게 고독하지 않은가? 내 조물주인 당신이 나를 증오하는데 하물며 내게 아무것도 빚진 바 없는 당신의 동포들은 어떻겠는가? 나를상대도 하지 않고 증오할 뿐이다. 사막 같은 산맥과 음침한 빙하들이내 안식처다. 수많은 날들을 여기서 방황했다. 얼음 동굴도 나는 두렵지 않다. 그러니 여기가 인간들이 불평하지 않는 내 유일한 거주지다.
이 황량한 하늘을 나는 반가이 맞는다. 저 하늘은 당신의 동포들보다내게 훨씬 더 친절했다. 무수한 인류가 내 존재를 안다면, 당신처럼무장을 하고 나를 파멸시키려 들 것이다. 그러니 나를 혐오하는 그들을 어찌 내가 증오하지 않겠는가? - P133

내가 생명을 얻은 그날을 증오한다! 나는 피로움에 울부짖었다. ‘저주받은 창조지! 어째서 자기마저 역겨워 등을돌릴 흉악한 괴물을 빚어냈단 말인가? 신은 연민을 갖고 자신을 본떠인간을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창조했다. 그러나 내 모습은 당신의 더러운 투영이고, 닮았기 때문에 더욱 끔찍스럽다. 사탄에게는 그를 승배하고 격려해줄 동료 악마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고독하고 미움을 받는다.‘
- P174

"나를 위해 여자를 만들어달라. 내 존재에 필요한 공감을 함께 나누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건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요구는 당신이 거절할 수 없는 내 권리의 주장이다."
- P193

나는 불행하기 때문에 사악하다. 모든 인류가 나를 피하고 증오하지 않는가? 내 창조주인 당신도 나를 갈가리찢어버리고 승리의 기쁨에 젖으려 한다. 그걸 기억하라. 그리고 인간이 나를 동정하지 않는데 내가 왜 인간을 동정해야 하는지 말해달라.
당신은 나를 저 얼음의 갈라진 틈새로 거꾸로 떨어뜨리고 당신의 작품인 내 육신을 파괴하더라도, 그걸 살인이라 부르지 않겠지. 인간이나를 경멸로 대하는데 내가 인간을 존중해야 하는가? 상처가 아니라친절을 서로 나누며 나와 함께 살아간다면, 나도 그렇게 받아들여준은혜에 감격해 눈물을 흘리며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감각은 우리의 공존을가로막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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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불가 라틴아메리카
장재준 지음 / 의미와재미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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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인생의 버킷리스트가 있고 물론 나에게도 있다.

그 중 상위에 있는게 바로 남미 일주여행이다.

최소 한달 이상의 날짜를 빼기도 어렵고, 돈도 장난 아니고, 그래서 아직도 버킷리스트에 머물러있지만 지금보다 더 체력 떨어지기 전에 가고야 말리라 늘 결심하며 라틴아메리카 여행기가 나오면 일단 챙겨서 보게 된다.

 

그렇다. 난 이 책이 여행기인줄 알았다.

라틴 아메리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여서 책소개도 대충 보고 집어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예상과 다르기에 더 좋은 일들이 세상에는 많고, 이 책이 바로 예상과 달랐기에 더 좋은 책이 돼버렸다.

하지만 절망도 같이 했으니, 아 난 도대체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서 아는게 뭐야라는 자괴감이다.

유럽에 관한 책들을 읽다 보면 딱히 검색을 하지 않아도 반 이상은 이름이나 업적 정도는 아는 사람인데 이 책에 나오는 이름들은 정말 모두가 아는 이름 -체 게바라, 프리다 칼로, 네루다 등등-빼고는 모르는 사람 투성이다.

핸드폰을 옆에 두고 끊임없이 검색을 해가며 책을 읽었지만 검색에서 찾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나의 무지 수준이나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무지 수준이나 비슷하다고 할까? (도대체 이런 데서 위안을 얻는 나라는 인간은 무엇인가 말이다.)

 

책을 한마디로 소개하자면

현재의 라틴 아메리카 - 음악 -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의 역사 - 잉카제국의 네트워크의 힘 - 플랜테이션 제국주의

이렇게 5개의 키워드로 돌아보는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현재이다.

키워드 중심의 서술이 가질 수 밖에 없는 범위의 협소함이라는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한 세계, 그것도 그토록 다양한 인종과 민족과 자연과 문화로 이루어진 세계를 몇 개의 키워드로 어떻게 감히 정리할 수 있을까?

심지어 이 세계는 세로로 길기도 길어서 라틴 아메리카 남북의 길이가 한국-베를린 간의 거리라고 한다.

지구에서 세로로 길다란 세계란 것은 다양한 위도로 인한 다양한 식생과 다양한 문화를 가질 수 밖에 없고 그 자연환경의 차이로 인해 교류의 폭이 가로로 긴 세계보다 훨씬 어렵다.

거기다 안데스 산맥이란 길고도 높은 산맥은 동서방향마저 갈라놓는다.

카리브 해의 그 수많은 섬들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키워드로 알 수 있는 것은 아주 조막만한 단면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한계는 분명하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뭔가 더 말해야 할 것 같고, 더 읽어야 할 것 같은 갈증을 유발한다.

 

하지만 그 외의 모든 부분은 장점으로만 가득 찬 책이다.

어떤 지역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이며, 기본적으로 그 지역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이 책의 저자는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자신의 애정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굳이 사랑해 사랑해라고 얘기하진 않지만 행간과 사실의 전달 속에 저자가 가지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나온다.

또한 일반화된 서구의 시선이 아니라 그 땅을 살고있는 이들의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도 돋보인다.

그래서 이 책은 출발에서부터 좋은 책이 될 수 밖에 없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은 탁월한 영화지만 또 한편으로 그것이 얼마나 서구 자본주의적 시각에 철저히 매몰되어있는가를 얘기하며 쿠바의 음악을 소개하는 장은 흥미롭다.

영화속의 음악가들을 서구는 발굴했다고 얘기하지만 실제 그들은 몇십년 전부터 음악을 멈춘 적이 없으며, 쿠바라는 지역에 갇혀있지도 않았다.

온 세계를 상대로 순회공연을 하고, 음반을 발표하고 쉼없이 음악을 계속해왔음에도 마치 쿠바혁명의 희생양인양, 서구가 비로소 이 음악가들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처럼 소개하는 영화의 시선은 오만하기 그지없다.

유튜브로 이들의 음악을 찾아 들으면서 또 다른 영화 <쿠바의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다.

쿠바의 남성과 결혼했다는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영화를 찾아봤더니 카카오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혁명을 빼놓을 수 없다.

어쨌든 체 게바라의 땅이 아닌가?

무엇보다 흥미롭게 읽힌 것은 멕시코 혁명에 참가했던 여성들, 아델리타라고 불리우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것처럼 이 곳 역시 마찬가지다.

페트라 에레라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남장을 하고 혁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스스로 여성임을 밝히자 그녀의 무훈은 평가절하당하고, 오히려 그녀를 향한 내부총질에 더 힘들어야 했단다.

멕시코 혁명 중 뛰어난 지휘관이었고 탁월한 군인이었던 아멜리아 로블레스는 스스로를 남자라고 생각한 여성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도 아멜리오로 불리워지기를 바랬지만 그 바램은 죽은 이후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동의 대의를 위한 싸움에서 성별 자체가 문제가 되어버리는 세상은 여기나 거기나 참....

멕시코 혁명에서의 여성에 대한 책을 좀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잉카제국이 유지될 수 있었던 중요한 힘은 네트워크다.

그 네트워크는 오로지 인간의 발로 이루어졌다.

말이나 소같은 대형 포유류가 없었던  라틴 아메리카에서 제국의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것은 순수한 인간의 발이었다.

차스키라고 불리웠던 파발들은 하루에 350km까지 주파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하루에? 그것도 온갖 산지와 사막같은 지형이 산재한 곳에서?

그 비밀은 차스키 한명이 담당하는 구간이 3km정도였다는데 있다.

그들은 3km정도의 거리를 전력질주하여 다음 주자에게 자신의 임무를 넘긴다.

이들 차스키는 어렸을 때부터 선발되어 철저하게 훈련받은 전문직업인들이다.

전달해야 할 내용이 많을 때는 그것을 모두 외워 다음 주자와 같이 뛰면서 전달했다고까지 한다.

그러니 그 유명한 몽골의 역참제도보다 더 빠른 속력으로 제국을 연결할 수 있었겠다 싶다.

그런 잉카제국이 멸망할 때는 이 차스키를 근간으로 하는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 정말 공부하고싶고 해야할 것은 너무나 많다.

 

설탕과 카카오가 노예무역과 연결되어  라틴 아메리카를 황폐화시키는 과정은 너무나 적나라하여 얼굴이 뜨겁다.

한 사회가 다른 한 사회를 이토록 처절하게 짓밟는 야만의 장이 이 넓은  라틴 아메리카대륙 전체에 퍼져있다.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을 어떻게 그들만의 문제로 이야기할까?

쿠바의 사회주의가 여전히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것을 어떻게 그들 자신의 책임이라고만 얘기할 수 있을까?

온 서구가  라틴 아메리카의 착취에서 그토록 많은 부를 쌓았음에도 그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지금도 그 착취는 좀 더 세력되어지고 수많은 협정이나 조약으로 가렸을 뿐 현재진행형이다.

 

1장에는 미국-멕시코 국경의 벽에 내걸린 십자가와 관들의 사진이 있다.

저자는 이 국경지대의 난민들을 '난민과 국민사이를 오가며 이중의 디아스포라를 살아내고 있다, 내일이 없는 어제를 산다'고 표현한다.

누가 그들을 이중의 디아스포라로 만들었는가?

책을 읽는 내내 그 두장의 사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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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2-10 0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남미 여행 혹은 남미에서 살기가 버킷리스트에 있어욤!! 우리가 아는 세계에 대한 시각이 어찌나 주류 서구사회적인지 깨닫게 되는 요즘인 거 같아용~ 그걸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인 거 같네요~👍

바람돌이 2021-02-10 12:29   좋아요 2 | URL
네 조금 산만하긴 하지만 재밌어요. 이분이 좀 더 체계적으로ㅜ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 책을 내줬으면 좋겠더라구요. 툐툐님 명절 잘보내시고 복도 듬뿍 받으세요.

붕붕툐툐 2021-02-10 22:28   좋아요 0 | URL
좀 더 체계적~ㅋㅋㅋ 바람돌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용!!😻😻

바람돌이 2021-02-10 23:42   좋아요 1 | URL
아 좀 더 체계적이란건 이 책이 약간 어떤 느낌이냐면 여러 군데에 그 때 그 때 쓴 글을 모은 느낌? 특히 1장이 좀 심해요. 하나의 주제로 묶기에도 약간 어려운 느낌이고요. 근데 이 분이 가진 내공은 학자라는 느낌이 팍팍 들거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써 주시면 좋을듯해서요. 역사서적도 외국인이 쓴 것 보다는 역시 우리나라 사람이 쓴게 전 이해하기가 훨씬 좋더라구요. 촘스키를 좋아하지만 촘스키 글 읽을 때는 정말 땀을 빨빨 흘리면서 읽어야 해서 항상 아쉽거든요. ^^

scott 2021-02-10 12: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자신에 사견이 들어가 있지 않아서 독자들이 객관적인 시선으로 읽게 되는것 같네요 ^.^

바람돌이 2021-02-10 12:31   좋아요 2 | URL
하지만 글 전체에 저자가 얼마나 그 땅을 사랑하는지는 내내 느껴져요. 그리고 그에 대비해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봉수 있다는것도 좋았습니다. 학자다운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시각이 좋았어요

수이 2021-02-10 13: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체 게바라가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어요. 지금은 때가 많이 묻어 예전처럼 그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바람돌이님께서 추천하시니 읽어봐야겠습니다. 명절 행복하게 보내세요 바람돌이님. (저 1키로 빠졌어요 소곤소곤, 올해 새해 계획 중에 다이어트 있던 거 기억나서 ㅎㅎㅎ)

바람돌이 2021-02-10 13:41   좋아요 2 | URL
저는 지금도 한 인간으로서의 체 게바라는 가장 위대한 인간의 원형이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저도 사실 1키로 빠졌어요. 어쩌면 쬐끈 더... ㅎㅎ 우리 같이 힘내자고요. 수연님도 명절 잘 보내시고 새해에는 복도 듬뿍 받으세요

mini74 2021-02-10 16:25   좋아요 1 | URL
여러분의 1키로들을 제가 다 갖고 간듯 합니다 ㅠㅠㅠ ㅎㅎ 축하드려요 두 분 다. *^^*

바람돌이 2021-02-10 23:42   좋아요 1 | URL
mini74님 감사합니다. 저 여분의 살 많아요.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ㅎㅎ

mini74 2021-02-10 16: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의 평생을 좁은 연구실에서 마야문자를 해독해 낸 크노로조프가 생각나네요. 소련붕괴 후 처음으로 라틴아메리카를 방문했다고 하죠. 방에서 라틴아메리카를 꿈꾸다 보면 언제가 그 곳에 가 있지 않을까요. 멋진 베레모에~ 왠지 저는 베레모 쓰고 가야 될 것 같아요 ㅎㅎ~ 바람돌이님 즐거운 여행 하실거예요 *^^*

바람돌이 2021-02-10 23:38   좋아요 1 | URL
시간과 돈과 체력이 모두 허용되는 그날을 네 기다려야죠. 그 전에 책이든 다큐든 영화든 열심히 읽고 보고 좀 알아야겠어요. ㅎㅎ 베레모 쓴 mini74님! 안데스 산지를 훨훨 누비는 모습 상상하고 있습니다. 전 좀 가려야 돼서 챙 있는 모자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