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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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사춘기 아들을 가진 분이라면 꼭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은책이다.

물론 남편이나 남자 애인이 이해가 안가는 분이 읽어도 좋다. 

남자분들은 자기 얘기를 읽듯이 읽을 수 있겠구나싶기도 하고....


이 책은 그야말로 한 남자 인간이 12살부터 87살까지 자신의 몸에 대해서 쓴 일기이다.

이런 일기 형식의 소설을 쓰겠다고 한 작가의 발상이 너무 기발하지 않은가?

사실 줄거리를 얘기할게 별로 없다.

초반에 몸의 일기를 쓰게 되는 계기가 가슴아픈데 1차대전에 참전했던 주인공의 아빠는 독가스로 인해 몸이 병들어서 돌아온다. 

몸을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아빠, 남편의 병과 아마도 생활고에 치여 점점 자조적이고 독단적, 폭압적이 되어가는 엄마,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빠의 옆에서 아빠와 동일시 되어가는 주인공 아들.

이 셋의 관계는 전적으로 아들인 나의 입장에서 서술되므로 엄마의 생각이나 내면은 알 수 없다. 움직이지 못하는 남편, 생활고 이런 것때문에 삶이 팍팍했을, 그럼에도 병든 남편을 떠날 수는 없었던 엄마에게도 할 말은 얼마나 많았을까싶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들의 몸이므로 그는 엄마의 마음까지 살펴볼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그런 아빠가 죽고난 이후 엄마는 빌빌거리는 아들을 보이스카웃 훈련에 보낸다. 

그런데 여기서 훈련 도중 아들은 게임을 하던 상대편 아이들에 의해 숲속 나무에 홀로 묶이는 수모를 당한다.

처음에는 그리 무섭지 않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개미 한마리가 발등을 타고 오르고.... 그때까진 괜찮다. 개미가 사람을 죽이지는 않으니까....

잠시 후 개미 한마리가 더 발등을 타고 오른다. 2마리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그 순간 몇 미터 앞쪽에 개미가 우글거리는 개미집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나는 못움직이는데 저 개미들이 모두 내 몸을 기어올라 나의 눈을 파먹고, 내장을 파먹고......

상상은 공포를 낳고 공포는 패닉을 불러일으킨다.

숲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고 너무 무서운 나머지 설사똥을 지려버리는 우리의 주인공.

그는 12살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내가 10살때쯤이었나? 그 때 우리 동네 애들은 머리에 이를 한움큼씩 달고 다녔다.

엄마는 그 때 내 머리를 참빗으로 거의 쥐어뜯다시피 빗어내리며 이잡기 작전에 돌입했고, 나는 너무 아파서 징징거렸는데 그 때 울 엄마 왈 "너 머리에 이 계속 키우면 그 이들이 너 눈으로 귀로 들어가서 눈도 파먹고 안에 내장도 파먹고 한다"라고....

아 그 공포라니..... 그 때부터는 말없이 머리를 그냥 쥐어뜯기는 수밖에 없었고, 이후 한동안 이가 내 몸속으로 내장으로 들어가는 상상은 나를 공포스럽게 했다. 

나는 그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뭔가를 한 기억이 없는데 이 주인공은 너무나도 창피한 그 기억때문에 자신의 몸을 바꾸기로 하고 그 때부터 자신의 몸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어찌보면 결국 몸의 가장 원초적인 부산물인 똥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하지만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이 사건은 주인공이 아빠의 세계에서 벗어나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기 존재를 자각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엄마는 소년에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그의 일생을 보면 시대적으로 봐도 꽤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일기는 그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오로지 자신의 몸의 변화, 몸이 느끼는 것들, 몸의 기쁨과 고통을  다룬다.

이 책이 재밌는 이유는 이런 몸의 일기를 쓰면서 금기가 없다는 것이다.

운전하면서 다 큰 어른이 코닦지를 가지고 노는 이야기며, 첫경험에서 얼어붙어 결국 발기불능이란 오명을 쓰고 고민하는 이야기며, 섹스 중 몸이 느끼는 변화며 어떤 것도 몸의 이야기라면 빼놓지 않는다.

온갖 건강염려증을 읽다보면 이거 내 얘긴가하면서 솔깃하기도 하다.


노년에 이르면 실제로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온갖 병들을 겪게 되는데, 그 과정은 한편으로 애잔하게 마음을 두드린다.

인간이라면 결국 누구나가 저 과정에 이르겠구나하면서 동일시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심심할 수도 있는 이런 이야기들을 빛나게 해주는건 역시 작가의 탁월한 유머감각이다.

곳곳에서 빵빵 터지는 지점들이 있다.

예를 든다면 나이들어 신장에 문제가 생겨 오줌주머니를 한동안 차고 다니게 되는데 이 오줌주머니는 일정 시간이 되면 비워줘야 되는 것이다. 안그러면 이번에는 설사똥이 아니라 소변을 발밑에 흥건하게 흘리게 되므로 말이다.

그런데 딱 쇼핑을 하고 있을 때 오줌주머니를 비워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 화장실을 부탁하지만 점원이 들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어떡했냐고? 

심술이 가득해진 이 할아버지 주인공은 가게의 새 사냥부츠에다 오줌주머니에 가득찬 오줌을 몰래 비우고 능청스럽게 나와버린다. ㅎㅎ 


이 책에서 유일하게 맘에 안들었던 장면은 노년의 이 주인공이 남미 학술행사에 갔다가 20대 아름다운 아가씨에게서 유혹을 받는 순간이다. 

이미 나이가 70대이고 사랑하는 아내와 더 이상 섹스는 하지 않지만 여전히 따뜻한 포옹을 즐기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 이 할아버지는 어느 순간 드디어 섹스의 유혹에서 벗어났다고 자신만만하다. (사실은 발기가 안된다. 70대 할아버지니까 뭐 당연한거 아닌가?)

아 그런데 이 할아버지 20대 아가씨의 유혹에 홀라당 넘어가버려 생애 마지막 섹스를 즐기는거 아닌가?

사실 난 동양권의 문화가 섹스에 대해서 지나치게 심각한 의미를 부여한다고 하는 생각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식의 섹스에 대해선 아무래도 관대해지지가 않는다.

그러니까 만약에 이 할아버지가 아내가 없거나 아니면 아내를 사랑하지 않거나 뭐 이렇다면 그래 그럴수 있지, 멋진 아가씨가 모든걸 다 받아들인다며 유혹하는데 안 넘어갈 이유가 없지 할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 주인공은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왜???? 

얼마전에 봤던 영화 <돈룩업>에서도 주인공이 아내와 별 문제가 없음에도 그냥 여자의 손짓하나에 홀라당 넘어가버리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를 보다가 남편한테 남자들은 저런 상황에서 무조건 별 생각없이 그냥 유혹에 넘어가서 섹스할 마음이 나는지 질문했더니 저런 유혹을 안 당해봐서 모르겠단다. 참내..... 


남자의 몸의 일기를 읽으면서 여자의 몸의 일기를 읽어보고싶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런 식으로 쓰면 그것도 일종의 표절이 되려나 싶어 안나오겠구나 싶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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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1-31 08:5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는 이 책을 안읽을테지만 여자의 몸의 일기가 나오면 꼭 읽을거 같아요 ^^

Falstaff 2022-01-31 09:00   좋아요 6 | URL
이 책, 굉장히 유명합니다. 페나크의 대표작이기도 하고, 특히 수십 년 동안 중등학교 교사를 해서 그런지 사춘기 시절에 관한 이야기가 탁월합니다. 여러가지 방면으로 재미나는 책입니다만.... ^^;;
이이의 말로센 시리즈라고 있습니다. 그 시리즈는 미들-하이틴을 위한 스릴러인데요, 성인이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다만 한 두 권만 읽을 경우 그렇습니다. ㅋㅋㅋ

새파랑 2022-01-31 11:45   좋아요 6 | URL
유명하고 재미있는 책이군요 ㅋ 딱 이거만 읽어보겠습니다~!!

바람돌이 2022-02-01 01:44   좋아요 3 | URL
골드문트님 대단하세요. 제 글을 읽고는 미동도 없는 새파랑님을 설득하시다니..... ^^
진짜 이 책의 백미는 초반부와 사춘기시절인거 같아요. 뒷부분으로 가면 조금 앞부분의 긴장을 이어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좀 들었어요. 저는 페나크의 책은 말로센 시리즈는 말고 소설처럼이랑 학교의 슬픔 읽어보려구요.

bookholic 2022-01-31 10:0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 앞으로 우리 둘째가 사춘기 되면 이 책에서 아버지가 했던 말씀을 이야기해주려고 생각했어요.^^

바람돌이 2022-02-01 01:46   좋아요 1 | URL
아이의 아버지는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몸이 그렇게 안좋은 상황에서도 자기 나름대로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소년의 유머감각은 아버지한테 그대로 물려받은듯요. ^^

미미 2022-01-31 11:5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가지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페나크의 책을 3권 갖고 있네요! 70대 할아버지가 20대 여성에게 유혹을 받다니ㅋㅋ
‘몸의 일기‘라는 소재가 참 기발하다고 생각했는데 유머도 있다니 더 기대됩니다.^^*

바람돌이 2022-02-01 01:47   좋아요 1 | URL
가지고 있는 책이 많음에도 새 책을 늘 사는 우리들의 슬픔.... ㅎㅎ 재밌습니다. 정말로요. ^^

blanca 2022-01-31 13:3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 꼬맹이 아들의 사춘기 대비를 위해 이 책을 읽어야겠네요. ^^

바람돌이 2022-02-01 01:48   좋아요 2 | URL
완전 앞서가시는 블랑카님이십니다. ㅎㅎ 남자 아이들은 정말 여자인 엄마가 보기에는 이해불가능한 면들이 너무 많아 사실 미리 준비가 필요한거같긴 해요. ^^

그레이스 2022-01-31 14:1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사놓고 아직 못읽었는데 읽어봐야겠어요
책장으로 걸어가요~^^

바람돌이 2022-02-01 01:48   좋아요 2 | URL
역시 좋은 책은 많은 분이 이미 사셨다는..... 서재 지인님들 책장에 무슨 책이 없겟어요. ^^

mini74 2022-01-31 14: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ㅎㅎㅎ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란 말이 생각나요 요즘 제 2의 사춘기를 지나는 거 같은 남편을 위해 읽어봐야 될 듯 합니다 ~

바람돌이 2022-02-01 01:49   좋아요 3 | URL
ㅎㅎ 저도 그 말 떠올렸어요. 남편은 갱년기죠. 저희집에도 1명 있습니다. 여성호르몬의 생성으로 인해 저보다 더 감성적이 되어가는.... ^^ 그런 면에서는 여기 이 책의 분은 조금 아닌듯해요. ^^

희선 2022-02-01 00: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실제 어딘가 개미는 사람 뼈만 남기고 다 먹기도 하죠 아마존이었던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야기에도 그런 게 나왔군요 그런 거 보고 개미가 조금 무섭기도 했습니다 모든 개미가 그런 건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병든 아버지를 보고 그 뒤에 겪은 일 때문에 자기 몸을 잘 보게 되다니... 그것도 자기 자신을 잘 보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2-02-01 01:51   좋아요 3 | URL
베르나르의 개미는 저도 읽었는데 그런 개미에 대한 이야기는 기억이 안나네요. 이놈의 기억력.... ㅠ.ㅠ
근데 개미집을 우연히 발견하면 전 저 개미들이 나에게 아무 피해도 못입힌다는거 알면서도 무섭더라구요. 그 무시무시한 군집이 주는 공포랄까? ㅎㅎ 이 책 보면서 저도 저의 몸에 대한 생각들을 좀 하긴 했습니다. ^^
 

모나의 사랑의 구두점, 이 쉼표를 내게 맡기면 느낌표로 만들어줄게.
- P177

한 사림은 왼쪽 집 벽에, 또 한 사람은 오른쪽 집 벽에 등을 기댄채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도시는 지구상에 베네치아밖에 없다.
- P183

인간은 극사실주의속에서 태어나 점점 더 느슨해져서 아주 대략적인 점묘법으로 끝나 결국엔 추상의 먼지로 날아가버린다.
- P215

열다섯살 때 나도 해변에서 내 또래 남자애들을 상대로 이두박근과 복근 시합을 벌였었다. 열여덟 살인가 스무 살 때는 수영복 아래쪽이 얼마나 불룩한지를 자랑했다. 서른 살, 마흔 살이되면 남자들은 머리카락을 비교한다(대머리에겐 불행이다). 쉰살 때는 배(배가 안 나와야 한다), 예순 살 땐 치아(빠진 게 없어야한다), 이제 소위 원로라 불리는 늙은 악어들의 모임에선 등, 걸음걸이, 입을 닦는 방식, 일어나는 방식, 외투를 걸치는 방식을 비교한다. 한마디로 나이, 나이를 비교하는 것이다. 아무개가 나보다.
훨씬 늙어 보이지, 안 그래?
- P217

여럿이 어울려 있을 때 우리 얼굴에서 쉽게 읽을 수 있는 메시지는, 그 그룹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욕망, 거기 속하고 싶다는 억누를 수 없는 욕구다. 그걸 교육이나 맹종 혹은 주관 없는 성격의탓으로 돌리는 게 보통이지만 그게 티조의 가설이었다——난거기서 오히려 존재론적인 고독에 저항하는 시원적(始原的) 반응을 본다. 본능적으로 유배의 고독을 거부하고, 공동체에 끼어드려는 몸의 반사적인 움직임이랄까. 심지어 피상적인 대화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그러하다.  - P223

여자들이 더 오래 살게된 건 아기를 낳다가 죽는 일이 없어지면서부터라는 것이다. 오늘날 수명에서 여자가 남자를 앞지른 것은, 잃어버린 수천 년을 되찾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 P257

그 시절엔 여자 혼자서다른 여자들에 둘러싸인 채로 분만을 했다. 남자들은 자신들이 맡은 종족 번식에서의 능동적인 역할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신석기 초기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임신한 여자에 관해 얘기할땐,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고 표현했지. 마치 아이가 성령의 작품이라고 믿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사실 여자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아이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한 거고, 정작 기다리기만 하는 건 남자인데 말이야. 그러나 남자는 기다린다는 걸 숨기기 위해 여자를속여 왔어. - P297

인간이 진정으로 겁을 먹는건 오로지 자기 몸에 관해서뿐이다. 자기가 말로 한 걸 누군가가 진짜 행동으로 보여줄 수도 있다는 걸깨닫는 순간,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다.
- P315

긁는 즐거움, 짜릿한 쾌감이 점점 커지다가 결국 시원함으로 끝나는 것뿐 아니라, 특히 가려운 지점을 1밀리미터 오자도 없이 정확히 찾아냈을 때의 희열이란, 그거야말로 자신을 잘 이해하는것 아닐까. 긁어야 할 지점을 옆 사람에게 정확히 가리켜준다는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사람은 날 만족시킬 수 없다. 누가하는 목표 지점을 살짝 비껴가기 일쑤다.
- P319

그런데도 이 변치 않는 김정은 어찌 된 걸까? 몸 구석구석이 다퇴화되고 있는데도 삶의 환희는 변함없이 남아 있으니, 어제 모나가 내 앞에서 걸어가는 걸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티조가 말한 모나의 여왕 같은 자태, 늘 모나의 뒤를 따라 걸어가길 40년, 그사이에 물론 모나의 몸은 무거위겠고 탄력도 잃었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몸만 무거워진 거지 걷는 자세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난 모나가 걷는 걸 보면서 늘 똑같은 즐거움을 느낀다. 걸음걸이가 곧 그녀다.
- P367

하지만 내겐그 기억들만으론 충분치 않았다. 내가 그리워한 건 그들의 몸이었으니까! 내 앞에 마주하고 있어 손만 뻗치민 만질 수 있는 몸, 그거야말로 내가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 몸들은 더 이상 내 풍경 안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집을 조화롭게 꾸며주다 지금은 없어져버린 가구들과도 같았다. 그들의 육체적 존재가 갑자기 얼마나 그립던지! 그들 없는 세상이 얼마나 히전하던지! 당장 여기서그들을 보고, 그들을 느끼고, 그들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후추 님새 나는 아줌마의 땀, 티조의 허스키한 목소리, 거의 꺼져가는 아빠의 숨소리,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그레구아르의 탄탄한 몸.
- P448

그래, 나의 도도, 이젠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겁먹지 마, 너도 데려가줄게.
- P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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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책 왜 이렇게 재밌냐?
곳곳에 번뜩이는 유머, 삶에 대한 통찰
4분의 1쯤 읽었는데도 올해의 내 책으로 지명될 것이 분명!!!

나는 지금 매일 매일 일본의 굴레 1,2장을 보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으므로 지금 일본의 굴레로 돌아가야 하는데 아 싫다. 어딘가 정희진 선생님 글에서 이 책 추천하는거 보고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진짜 대박이다. ^^


그때 이후 평생 써온 이 일기의 목표는 이랬다. 몸과 정신을 구별하고, 내 상상력의 공격으로부터 내 몸을보호하고, 또 내 몸이 보내는 부적절한 신호에 대항해 내 상상력을 보호하는 것. - P22

정을 하지 않았다. 아들아, 넌 미친 게 아니야, 넌 네 느낌과 놀고있는 거야. 네 나이의 아이들이라면 다 그렇지. 넌 네 느낌에게 질문을 던지지, 아마 끝없이 계속 물을 거다. 어른이 돼서도, 아주 늙어서까지도, 잘 기억해두렴, 우린 평생 동안 우리의 감각을 믿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단다.
- P32

우리 목소리는 바람이 우리 몸을 통과하면서 연주하는 음악이다. (항문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바람 말이다.) - P36

조르주 삼촌과 아빠의 대화가 생각난다. 아빠가 몸을 잘 일으키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을 때다. 거의 먹지도 못했다. 조르주 삼촌은 제발 기운을 차리라고 당부했다. 거의 애원하다시피 했다. 눈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힌 채, 이젠 안 돼, 아빠가 말했다. 난 속이대머리거든! 네 머리털이 안 나는 것처럼 내 속도 다시 자랄 순 없어. 조르주 삼촌과 아빠는 서로를 정말로 사랑했다.
- P53

로베르는 나와 동갑내기지만 자기 몸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일 뿐이다. 그게 다다. 그의몸과 그의 정신은 함께 자라났고, 그 둘은 좋은 친구여서 놀랄 일이 생길 때마다 매번 다시 사귀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로베르의 몸이 피를 흘린다 해도 로베르는 놀라지 않는다. 반면에 내몸이 피를 흘리면 난 놀라 기절을 한다. 로베르, 그는 자기 몸이 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몸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피를 흘리는 것도 당연하지, 돼지를 잡을 때 돼지가 피를 흘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난, 뭔가 새로운 사건이 생길 때에만 비로소내게 몸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 P68

이 낯선 느낌을 없애주진 못할 것이다. 루소가 산책길에 식물채집을 했던 것처럼 나도 내 몸을 채집하고 싶다. 죽는 날까지, 그리고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그것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것이 되어도 좋겠지만 말이다. - P112

인체 해부도는 여전히 내 눈앞에 놔둔 채로, 그런데 갑자기 눈에 들어온 게 있다. 인체 해부도의 다리 사이에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 음경도 고환도 그려져 있지 않다! ...... 라루스씨는 고자다.(라루스 인체 해부도를 만든 사람)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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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1-27 0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 보고 일기인가 했는데, 소설이군요 소설이면서 일기기도 한... 소설에서 자기 몸을 바라보는 일기...


희선

바람돌이 2022-01-27 01:59   좋아요 1 | URL
자신의 몸에 대한 평생의 일기예요. 굉장히 재밌어서 단숨에 다 읽었네요. ^^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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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이라는 작가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내 나름대로 뽑아보자면 다름으로 인한 결핍, 연민, 그리고 환대쯤 될까?

이전에 읽었던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단편집 역시 이런 키워드로 읽을 수 있었다.


이 단편집의 주인공들 모두 어떤 결핍들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결핍을 가지지 않은 인간이 어디에 있겠냐마는 문제는 그것을 가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영악하게 자신의 결핍을 가리고 산다. 

이 사회는 결핍이 결핍으로 인정되는 순간 그것은 자신의 약점이 되고, 자신을 규정지음으로써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힘들게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핍이 숨겨지지 않는 종류의 것일 때 사람들에게서 받을 수 있는 최대의 호의래봤자 동정 정도일까?


이 단편집의 주인공들은 그 숨겨지지 않는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결핍들을 가지고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없이 멸망한 문명의 증거들을 회수하는 작업을 하는 로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죽음의 두려움을 인식하는 로몬족, 그러므로 그는 다른 로몬들처럼 담대할 수 없고 늘 어딘가 모자라는 로몬으로 취급받는다. 당연히 멸망의 잔재들을 수거하는 작업에서 늘 배제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로몬으로서 자신의 정체성 자체를 의심케 하는 결핍으로 치부된다.

시지각 이상증을 겪는 마리는 플루이드라는 기계가 전해주는 위치 좌표를 통해 다른 사람의 행동을 파악하고, 로라는 자신에게 제3의 팔이 있다는 감각을 견딜 수가 없다. 또 한편으로 모두가 의미 입자들을 봄으로써 소통하는 세계에서는 인간의 언어를 통한 소통은 이방인이다. 태어날 때부터 작고 여리게 태어난 이브는 자기 세계의 적응에 필요한 신체적 능력이 함량미달임으로 해서 그 세계에의 합류를 거부당한다. 그것이 설사 배려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지라도, 배제는 배제일뿐이다. 

책이 SF라는 외피를  띄고 있는 것은 이런 결핍을 이야기하기에 더없이 좋은 전략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결핍들은 단어 몇개만 살짝 바꾸면 지금 우리 사회의 배제당하는 사람들로 생각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이라든지 이주노동자라든지 등등.... 

이런 배제들을 직접적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가지는 선입견을 영리하게 비켜갈 수 있는 소재로서의 SF, 그럼으로써 이런 배제의 문화를 우리 앞에 객관적으로 제시하며 당신의 생각은 어때요라고 묻는 듯한 효과를 보여준다.


이야기의 진행은 항상 연민에서 시작되어진다.

자기가 속한 세계로부터 배제당하는 이들을 그 세계에 속해있는 누군가가 연민을 느끼고 다가가고, 그럼으로써 결핍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거나 결핍이 결핍이 아님을 그래서 오히려 결핍을 조장하는 사회의 틀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멸망한 세계를 지키며 인간 친구 라이오니를 기다리는 기계 셀과의 만남에서 자신의 오랜 복제 원본이었을 라이오니를 깨닫는 로몬족 나는 무언가 모자랐던 로몬족이 아니라 당연히 느껴야 할 감정을 가지고 있는 온전한 존재로 각인한다.

마리의 춤연습을 돕는 나 역시 플루이드를 통한 의사소통을 인지하고서야 그들의 존재를 숨겨왔던 세계의 폭력성을 깨달을 수 있다. 

이러한 배제의 폭력성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그 다음 진정으로 서로를 환대하는 것이 가능하다.

제3의 팔을 기계로 장착하고서야 자신의 존재와 의식의 조화를 회복한 로라의 심정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그 느낌을 인정하는 순간 3번째 기계팔로 자신을 안아주는 로라를 느끼며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126쪽)라고 물을 수 있게 된다.

환대와 사랑이 무조건 받아들이고 이해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 물음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끝내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다름이 그저 차이로 인정될 수 있다면.....

그러나 모든 단편들이 다 이런 이해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숨그림자 사람들의 입자를 통한 소통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었던 조안은 다른 세계를 찾아 떠날 수 밖에 없다. 조안이 말하는 "이곳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들이 이곳을 덜 미워하게 하지는 않아. 그건 그냥 동시에 존재하는 거야. 다른 모든 것처럼."(182쪽) 


결국 소통과 연대는 연민이 아니라 타자를 인정하는 것, 다름과 차이를 그 자체로 인정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지점이다.

다만 그 시작이 연민일뿐....

그렇다고 해서 모든 소통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캐빈 방정식에서 보이는 언니와 나의 세계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캐빈속에 함께 했던 그 순간 그들은 따뜻한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그 순간 삶은 따뜻한 공감으로 환대의 손을 내민다.

후기에 적은 작가의 말처럼 그 짧은 접촉의 순간들을 그려내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초엽 작가의 책을 4권째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작가 고유의 스타일을 완성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스타일은 앞에서 말했던대로 우리 인간의 다양한 결핍을 그려내고 그 결핍이 만들어내는 배제가 극복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겠다. 그래서 작가의 말처럼 여기서 손을 흔들 때 저쪽에서 안녕 인사가 되돌아오는 그 순간들을 그리고 싶은 것이다. 그런 환대가 우리 삶을 좀 더 살만한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게다.

어떻게 보면 작가의 스타일의 무한 변주를 보는 느낌이다.

작품들마다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는걸 보면.

그래도 아직은 좋다. 그 비슷한 상황들과 스타일을 독특하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가의 상상력의 세계가 무궁무진하게 펼쳐지고, 그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세계를 보는 것도 김초엽이라는 작가를 읽는 이유로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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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1-23 19:4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김초엽 작가님 책을 벌써 네권이나 읽으셨군요. 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 있다면>만 읽어봤는데 ㅎㅎ 다 이 작가님을 좋아하시는데 저도 더 읽어봐야 할거 같아요~!! sf를 소재로 쓰는 작가의 상상력은 정말 대단한거 같아요. 게다가 결핍과 연민이라니~!!

바람돌이 2022-01-24 00:04   좋아요 4 | URL
이제 <므레모사>와 <사이보그가 되다>만 남았습니다. ㅎㅎ 새로운 작가의 전작주의를 하는건 쉬워서 좋아요. 나올 때마다 한 권씩 보면 되니까말입니다. ㅎㅎ 김초엽작가의 강점은 저 주제의식에도 있지만 그걸 버무려내는 새로운 공간들을 창조하는 능력에 더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이런 세계를 다 만들어낼까 감탄하게 되네요. ^^

mini74 2022-01-23 20: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랬어요. 김초엽스럽다. 그러나 싫지 않고 지루하지 않은 김초엽만의 스타일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인기가 있는거 아닐까 합니다

바람돌이 2022-01-24 00:06   좋아요 4 | URL
김초엽스럽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스타일링을 완성해가는 중에 있는 작가인데 저는 그 스타일링을 깨고 한 발 더 나아갈 김초엽작가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에게는 저보다 더 많은 시간이 있는데 그 완성을 못보게 될건 좀 안타깝기도 하네요. ^^

그레이스 2022-01-23 21:2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결핍되어 있어도 연민과 환대가 그 결핍을 채워나가는 사회를 상상해봅니다.

바람돌이 2022-01-24 00:07   좋아요 4 | URL
김초엽 작가가 끊임없이 그려내는 것도 바로 그 결핍을 결핍이 아니라 다름으로 받아들이고 같이 어울리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쉬운 언어로 이런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주는 작가들이 있는한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다고 믿으렵니다. ^^

미미 2022-01-23 22: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는 워낙 성과위주다 보니 더욱 개인의 결핍에 관대하지 못한 것 같아요. 말씀하신 SF라는 외피에도 불구하고 공감할 수 있는 지점들은 현실과 역시 닿아 있는 부분들인것 같네요. 저도 김초엽을 읽어야겠습니다.^^*

바람돌이 2022-01-24 00:09   좋아요 4 | URL
SF는 외피죠. 결국 김초엽작가가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가 타자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라는걸 바로 알아챌 수 있으니까요. 김초엽 작가 강력추천합니다. ^^

희선 2022-01-24 00: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결핍 연민 환대 세 가지 알고 책을 봐도 괜찮겠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다 알기는 어렵겠지요 다르다는 것만 받아들여도 좋을 듯합니다 다르다가 틀린 게 아니다고...


희선

바람돌이 2022-01-24 01:11   좋아요 4 | URL
그런데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배제하는게 슬픈 현실이죠. 며칠전에는 신문기사를 읽다가 안산에 외국인 노동자의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한국인 아이가 없다는 슬픈 얘기를 봤어요. 그 얘기 보면서 제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가난한 집 아이들이 많다는 이유로 새 아파트의 아이들이 전학을 오지않고 근처의 복작복작한 학교로 다 갔던 것도 생각나고요. 슬픈 일인데 우리 안의 이런 나쁨들은 더 커지기만 하는 것 같아서 더 슬프기도 하고 그렇네요.

책읽는나무 2022-01-24 09: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김초엽 책 첫 소설만 읽고, 지금 계속 다른 책들은 사다 모으고만 있네요.읽어야 되는데..^^
빛의 속도...책은 이제 딸들이 앞부분 좀 읽었나 보던데..좋다고, 인생 책이라고 하더군요.
쟤들은 읽기만 하면 맨날 인생 책이라고 하고, 보기만 하면 인생 영화라고 하던데..인생 얼마나 살았다고?? 싶긴 하던데, 김초엽 작가 책을 맘에 들어하니 좋긴 하더라구요^^

바람돌이 2022-01-25 02:21   좋아요 4 | URL
둥이들이 엄마랑 같이 책을 읽어주는거 너무 좋네요. 우리집은 큰 놈은 수업 교재 외에는 책을 보지 않고요. 어렸을 때는 진짜 책을 좋아하더니 지금은 근처도 안갑니다. 그나마 둘째는 열심히 책을 보나 취향이 워낙 매니악하여 저랑은 100만광년쯤 떨어져 있는듯합니다. 그래서 같이 책보고 얘기할 일이 없어요. ㅠ.ㅠ
나무님이 부러워요. ^^

mini74 2022-02-10 17: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초엽님 글로 당선 ~ 축하드립니다 ~

그레이스 2022-02-10 18:09   좋아요 4 | URL
바람돌이님 저도 축하해요 🎉

바람돌이 2022-02-12 01:0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쓴걸로 당선되니 더 좋은듯해요.
두분 다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저는 토일 모두 가족행사가 있는지라 바쁜 주말이 될듯해요. ^^

새파랑 2022-02-10 18: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당선 경축 드립니다 ^^

바람돌이 2022-02-12 01:06   좋아요 1 | URL
역시 감사합니다. ^^

scott 2022-02-11 00: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꿀 방학 선물!
이달의 당선 이관왕
추카 합니다 ^ㅅ^

바람돌이 2022-02-12 01:06   좋아요 1 | URL
이 돈으로 또 책을 살 생각에 설레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희선 2022-02-12 0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또 축하합니다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바람돌이 2022-02-12 01:0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희선님도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이것은 동시대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자기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전기를 쓰는 한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아주 재미있는 책이 될 것이다. 어떻게 쓰는가가 문제다. 비타는 올랜도라는 젊은 귀족 남성이 돼야 한다. 리튼도 써야 한다. 사실 그대로. 그러나 환상적이어야 한다. (울프 일기 195쪽)


이 짤막한 일기 글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의 시작을 알 수 있다.

걸작 <등대로>를 쓰고 난 이후 지친 몸과 마음을 풀어주고자 약간 장난스런 기분으로 쉬는 마음으로 시작한 소설이 바로 <올랜도>다. 그녀의 연인이었던 비타 색빌웨스트를 주인공의 모델로 하면서 연대기를 쓰듯 또는 연애편지처럼 가볍게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책의 시작은 다른 버지니아 울프의 책처럼 어렵지 않다.


16세기 끄트머리 이제 열일곱살이 된 올랜도는 세상 두려울 것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아름다운 귀족 소년이다.

얼마나 귀족이냐고?

그의 집에 엘라자베스 1세가 방문할 정도로.....

그 여왕의 방문의 날 그는 여왕을 만나러 가는 길에 식탁옆에서 종이와 맥주를 마주한 뚱뚱하고 초라해보이는 남자를 스쳐지나가는데 그는 바로 세익스피어.

그 때 느꼈던 기묘한 감각은 문학에 대한 올랜도 평생의 희구를 암시한다.


여왕은 그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여 그를 궁정으로 불러 궁정귀족의 지위를 주고 그는 귀족청년으로서 승승장구한다.

그가 러시아의 공주 사샤를 만나기 전까지는....

약혼자가 있음에도 사샤에게 빠져드는 올랜도, 첫사랑은 너무도 강력하여 그의 눈과 정신 모두를 멀게 하고 사랑을 위해서라면 모든걸 버릴 수 있는 청년으로 만든다.

세상에 어려움이라고는 모르는 이 광기야말로 젊음의 특권인것을 어쩌겠는가?

하지만 사샤는 사랑 하나에 모든 것을 걸기에는 많은 것이 복잡해보이는 여인이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주인공은 올랜도이므로.....

모든 것을 버리고 둘이서 떠나자고 약속한날 그녀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고, 그날 내린 비로 런던의 얼음이 모두 녹아 런던은 대홍수에 휩싸인다. 

사나운 흙탕물이 쏟아지는 광경 속 수많은 집들과 사람들이 하염없이 떠내려가면서 보이는 온갖 광경의 묘사는 압권이다. 

떠내려 가는 얼음조각들 위에서 무릎을 꿇은 사람,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이, 성경을 읽는 사람, 개과천선을 맹세하며 기도하는 사람, 멍한 사람, 허세를 부리며 노래하는 사람, 아일랜드인에게 이 재해의 책임을 돌리며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사람, 자신의 은주전자 같은 보물들이 가라앉는걸 차마 보지 못해 물속으로 뛰어드는 사람..... 한 페이지의 묘사에 온갖 인간의 모습이 모두 자리잡은듯 하다.

이전 <등대로>에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던 버지니아 울프의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장면이다. 

이런 아비규환 속에서 결국 올랜도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러시아로 떠나는 사샤의 배다.

첫사랑의 배신 앞에 놓인 올랜도에게 다다른건 부서진 옹기 하나와 지푸라기 하나(59쪽)다.

그의 젊음의 한 때가 끝났다. 


나는 <올랜도>를 반쯤 장난스런 문체로, 사람들이 단어 하나하나를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 매우 분명하고 평이하게 쓰고 있다. 그러나 진실과 환상은 주의깊게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울프 일기 201쪽)


아직은 그래 아직은 괜찮다. 읽을만하다. 버지니아 울프가 일기에서 얘기하듯 분명하고 평이하게 쓰고 있다지 않은가말이다.

실연 후 올랜도는 궁정에서 쫒겨나다시피해 고향으로 돌아가고 잠에 빠진다. 

이번의 첫 잠은 그리 길지 않다. 일주일.

첫사랑의 아픔이란 격렬할 뿐 그리 깊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의 생활은 고독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이 고독해지는 순간 자기 내면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고, 올랜도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필생의 작업이 될 그의 단 하나의 작품 <참나무>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무엇을 쓰야할지 모른다.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묘사들은 어쩌면 울프 자신의 어려움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올랜도는 그래서 도움을 줄 사람을 구하기로 하고, 이 때 등장하는 인물이 니콜라스 그린이라는 작가다.

하지만 이 작가는 그야말로 뻔뻔한 사기꾼에 가까운 이로 올랜도의 글에는 관심이 없다.

자만에 가까운 자의식에 가득찬 이 인물은 자신이 필생의 역작을 만들 수 있도록 해줄 후원자가 필요했을 뿐.....

니콜라스 그린과의 관계 역시 당연하게 인간에 대한 환멸과 배신으로 끝난다.

올랜도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나 확신 없이 누군가에 기대 삶의 기쁨을 찾거나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것은 그저 허상일 뿐이라는 것을 그린과의 관계가 보여준다. 여인이든 시인이든 관계의 끝이 허망한 것은 똑같다.

2장에서 올랜도의 삶은 고독을 지나 이제 다른 인생의 기쁨을 찾기 위한 온갖 시도로 점철되어 있다.

파티, 집장식, 전원생활 등등등....

그러나 그가 진정 자신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그의 조용한 방에서 <참나무, 한수의 시>를 쓰고 또 쓸 때이다.

지워지는 것이 많아 늘 처음 시작점과 쓰여진 양은 달라지지 않지만....

그러나 그의 글은 현란함은 다듬어지고, 그의 장광설은 억제되었으며, 산문의 시대가 따뜻한 샘을 얼어붙게하고 있었다. (101쪽)

이런 올랜도에게 다시 자칭 루마니아의 대공부인 해리엇 그리젤다라고 하는 여인이 찾아온다.

올랜도의 초상화를 보고 한 눈에 반했다며 올랜도의 집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는 매일 찾아오는 이 여인의 존재는 수상쩍다.

그 수상쩍음이 무엇이었는가는 책의 뒤편에 다시 등장한다.

기대하시라...... 입이 딱 벌어진다. 

어쨌든 이 여인의 구애는 올랜도를 곤혹스럽게 하고 도피하고싶게 만든다.

올랜도는 이제 터키 대사가 되어 터키로 떠난다.


<올랜도>, 이것이 이번 가을의 중심 과제다. 평론을 쓰고 있을 때는 하루나 이틀 아침을 제외하고는 결코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없다. 오늘 아침에 제3장을 시작했다. 여기서 나는 뭔가 배울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농담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런 평이한 문장이 좋다. 그리고 기분 전환으로 시도해본 양식도 마음에 든다. 물론 깊이가 너무 없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튀겨놓은듯. (울프 일기 202쪽)


깊이가 없다뇨. 

버지니아 언니 책 중에 이정도로라도 책장이 넘어가 주는 책은 이 책밖에 없었다고요.

그리고 이걸 평이하다고 하다뇨. 그저 등대로나 델러웨이 부인에 비해서 읽기가 좀 나은건 맞지만 이걸 평이하다고 하면 언니의 정신세계는 도대체 어디쯤에 위치해있는건가요?

그럼에도 언니의 문장은 여전히 사람을 혹 빨아들이니 그냥 계속 깊이가 없는 채로 가주시는건 어떨지요라고 막막 주장하고 싶은데..... 인생이 어디 뜻대로 되는게 있던가? 책도 내가 작가가 아니니 뜻대로 안 될게 뻔하고말이다.


터키대사로 콘스탄티노플로 간 올랜도는 매일 아무 의미없는 형식적인 외교적인 절차를 되풀이한 덕분에 공을 인정받아 공작도 되고 출세한다.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는 어디서나 화제 만발이고 수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도 하지만, 그의 내면은 공허하다.

그리고 공작의 관을 쓰던 날 올랜도는 다시 깊은 잠에 빠진다.

그의 꿈속에 순결, 정절, 겸손의 여신들이 들어와 올랜도에게 저주인지 축복인지 모를 말들을 쏟아붓고, 진실을 외치는 고함들속에서 올랜드는 깨어난다.

이제 그는 여자가 되었다. 

이제 올랜도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집시와의 방랑이라는 전혀 다른 삶을 경험하다가 이제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다. 여인으로서....

여성으로서의 경험에 대한 올랜도의 생각은 "여성들은 타고나기를 순종적이지 않으며, 순결하거나 향기롭거나 세련된 차림을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 없이는 인생의 즐거움 어느 하나 향락할 수 없는, 이 미덕들을 지겨운 훈련을 통해 얻을 뿐이다"(139쪽)라는 말에 집약되어 있다.

남성으로서의 올랜도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들이 이제 올랜도에게 다가온다.

자유롭게 살던 남성 올랜도는 여성적 미덕들로 추앙받는 것들이 그저 참고 견디는 훈련을 통해 강제된 것일 뿐이며, 남성일 때는 중요하지 않던 옷이 여성일 때는 다른 사람의 존중과 친절을 얻어 낼 때 필수적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심지어는 이제 여성이 된 그녀는 남성이 없이는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수도 없게 되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인간 올랜도는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데 여성 올랜도는 남성 올랜도와 완전히 다르다고 인식되는 것이다.

심지어 이전에 올랜도를 터키로 가게 했던 지겨운 루마니아 대공부인 해리엇이 다시 등장한다.

심지어 남자로.... 그는 해리엇 대공부인이 아니라 해리 대공이었던 것이다.

올랜도처럼 성별이 바뀐 것은 아니고 같은 성별인 올랜도의 초상을 보고 한눈에 반한 그가 여장을 하고 올랜도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의 집 근처로 왔던 것.

이제는 올랜도가 여자가 되었으니 그는 여장을 멈추고 남성으로 돌아간 모습을 보인다.

아 이정도면 찐사랑인가?

올랜도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없이 올랜도만을 바라고, 그는 맹목적인 사랑을 퍼붓는다.

하지만 여기서도 버지니아 울프의 생각이 돋보인다.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이 아니므로 올랜도는 그런 맹목적인 구애에 당혹해하고 벗어나고싶을 뿐이다.

사실 이게 현실이지. 그리고 올랜도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타인의 맹목적인 사랑에 기대어서는 불가능한 도전이다.

올랜도는 올랜도 자신이 무엇인지를 여전히 고민하고 찾고 있다.

그녀의 내면에는 남자와 여자가 혼재해 있어, 하나의 성이 전면에 나서는가 하면 다음에는 다른 성이 우위에 서고(167쪽) 있는 중이다.


<올랜도>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쩌다 그처럼 그 자체로 강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일까! 마치 태어나기 위해 주위의 모든 것을 밀쳐낸 듯하다..... 정신은 풍자적이고, 구조는 환상적이다. 정확히 그렇다. (울프 일기 206쪽)

이 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빨리 썼다. 이 책은 전체가 농담이다. 그러나 즐겁게 빨리 읽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울프 일기 212쪽)

다루고 있는 소재가 더 재미있으며, 인생에 더 애착이 있으며, 더 폭이 넓다고. 사실을 말하자면, 장난삼아 시작했던 일이 뒤에 가서는 진지해진 것이다. 그래서 통일성이 부족해졌다. (울프 일기 218쪽)


<올랜도>에서 시간은 순차적인 흐름을 보이지 않는다.

300년을 산 올랜도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잠이 들고 어느 지점에서 훅 시간이 지났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심지어 100년전의 사람이 그대로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맹목적으로 올랜도에게 구애하는 루마니아 대공이 그런 인물이다.

그러므로 300년의 시간을 선형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미리 포기하고 읽어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듯이 이 책은 환상에 그 구조를 두고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말이 되냐고 하는 질문은 살짝 접어두어야 한다.

5장에 이르면 이제 19세기다. 

5장의 시작은 19세기 영국 사회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영국의 기후 변화와 그것이 인간의 심성에 끼치는 영향, 남녀의 성차가 오히려 강화되어 가고 있는 사회현실등을 묘사하는데서는 그녀가 얼마나 민감하게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내면을 응시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자신 내에서 자아를 완성해가는 올랜도는 자신이 찾고 싶은 것을 "인생! 연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인생! 남편!"이 아니라...

그러나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시대정신은 여성에게 철저하게 억압적이었고, 이전의 보다 느슨한 사회를 살아왔던 올랜도에게는 구속과 패배로 느껴진다.(여기서 영국인인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 나라의 각 시대에 대한 평가도 엿볼수 있다.특히 여성의 위치에 입각한면에서.)

빅토리아 시대를 상징하는 복장이 크리놀린 드레스라면 올랜도에게 이 드레스는 자유로운 삶을 구속하는 억압에 다름 아니다.(크리놀린 드레스는 옷 자체로 여성억압을 상징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이 드레스를 입기 위해 허리를 극단적으로 조이는 모습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리의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이 드레스는 이후 어떤 저택에 화재가 났는데 남자들은 다 무사히 탈출했는데 크리놀린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작은 문을 통과하지 못해 대부분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고, 이후 엉덩이 부분만 부풀린 버슬 드레스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영화 올란도의 한 장면>


소설 <올랜도>에서는 이처럼 곳곳에서 복장을 매개로 한 여성 억압과 사회적 편견을 보여주는 곳이 등장한다.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버지니아 울프의 예리한 시선이 미치지 않은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잠시 올랜도는 시대정신에 굴복해 결혼을 열망하지만 이 열망은 진정한 열망이 아니라 시대에 어떻게든 편승해보려고 결혼을 열망하는 듯이 자신을 속여보기도 하고, 몰래 결혼반지로 유행하는 스타일의 금반지를 사서 손가락에 끼워보기도 한다. 

또한 점차 자신을 잃고 그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맞춰지는 자신의 행동양식, 마음의 변화에도 당황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묘사하는 것은 정말 버지니아 울프만이 할 수 있는 서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의 자연과 주인공의 마음을 교차시키면서 온갖 비유들을 모두 주인공의 심리변화에 복속시키는 길고 긴 서술이 장황하지 않게 주인공의 마음에 독자가 깊이 감정입하도록 고조시키는 글쓰기의 힘은 박력 그 자체다.

이러니 어떻게 버지니아 울프의 글에 빨려들지 않을 수 있을까?


어쨌든 모두가 예상하듯이 올랜도는 자랑스럽게 이런 굴복에서 벗어난다.

올랜도가 누구인가?

300년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온갖 삶의 과정과 심지어 여성과 남성의 삶까지 모두 섭렵한 인물이 아닌가?

이런 인물이 비인간적인 시대적 억압에 굴복한다면 이 소설은 살아남지 못하지 않았을까?


자신을 잃어간다는 초초감속에서 헤매이는 순간 올랜도에게 진짜 사랑이 나타난다. 

그들은 만난지 몇 분만에 약혼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쉘, 당신은 여자예요!" 그녀가 외쳤다.

"당신은 남자예요, 올랜도!" 그가 외쳤다.(221쪽)

어느 순간 갑자기 튀어나온 이 남자에게도 올랜도에게도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니다.

그들은 둘 다 남자일수도 여자일수도 있는 그저 자존감과 자신의 고유성과 삶을 가진 인간으로 묘사된다.

올랜도와 달리 이 남자에게는 어떤 구체성도 부여되지 않는다.

그는 올랜도를 사랑하고, 결혼하고, 그리고 바람이 불면 항해를 위해 떠난다.

사랑과 결혼이 서로의 삶의 형태를 간섭하지도 바꾸지도 않는다.

각자 자기의 삶을 살고 그리고 사랑한다.

이제 올랜도는 자신의 필생의 과업인 <참나무>시를 완성할 수 있다. 


그녀는 자기 시대와 싸울 필요도 없고, 그것에 굴복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바로 그 시대에 속하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남아있었다. 그런고로 이제 그녀는 글을 쓸 수 있었고, 실제로 글을 썼다. 그녀는 쓰고, 쓰고, 또 썼다.(234쪽)


올랜도는 이제 마음껏 "신난다. 신난다."를 외칠 수 있는 인간, 세상이 바뀌어도  불변하는 것이 있음을 자각하고 누릴 수 있는 인간, 삶의 기쁨으로 충만한 인간으로 드디어 태어난다.


그러나 <올랜도>는 확실하고 분명하고 압도적인 충동이 가져다준 결과물이다. 나는 장난을 하고 싶었다. 나는 공상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리고 이것은 중요한 사실인데) 사물에 만화적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다. 이 기분은 아직도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울프일기 232쪽)


확실히 <올랜도>는 이전에 읽은 <댈러웨이 부인>이나 <등대로>와는 많이 다른 책이다.

아마도 맘껏 상상하고 환상을 창조하고 싶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생각이 반영된 탓일테다.

그럼에도 이 책은 누가 봐도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이라는 것을 조금만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온갖 사물과 상황과 정경들을 주인공의 내면으로 끌어들이는 탁월한 서술이 버지니아 울프의 것이 아니라면 누구의 것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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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1-19 00:38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랜도를 울프 일기와 함께 읽었어요.
그래서 훨씬 더 이해하기 쉬웠고 너무 무겁게 접근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정말 버지니아 울프가 아니면 이 소설을 누가 쓸 수 있을까요!
그냥 올랜도가 버지니아 같았어요^^

바람돌이 2022-01-19 00:57   좋아요 7 | URL
작년에 이어 버지니아 울프 전작 읽기에 계속 도전 중입니다. 읽다보니 올랜도가 처음과 뒷부분이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좀 고전햇어요. 그래서 좀 더 이해해 보려고 사두었던 울프일기를 펼쳐 읽었는데 이게 의외로 도움이 되더라구요. 버지니아는 이 책을 비타에게 헌정하고 그녀를 모델로 했다지만 저도 오히려 버지니아 그녀 자신으로 읽히더라구요.

새파랑 2022-01-19 00:36   좋아요 1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은 <올랜도>를 재미있게 읽으셨군요 ^^ 저는 울프 책중 이 책이 제일 어려웠어요 ㅎㅎ 시대와 공간이 급하게 변하다 보니 못따라가겠더라구요 ㅋ

<울프 일기>와 함께 읽으셔서 더 좋았을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2-01-19 00:59   좋아요 7 | URL
이 책이 초반에 좀 읽기 쉬워서 오 버지니아 울프 언니 고마워요 읽다가, 뒷쪽에서 뒤통수 확 후려치는.... ㅎㅎ
그래서 저는 울프일기도 같이 읽었지만, 이 글 쓰면서 거의 책을 다시 보다시피 했어요. 어떤 면에서는 등대로보다 더 어렵다는 느낌 이해가 가기도 해요. 뒷부분 읽으면서는 저도 막 그런 느낌이 들더라구요. ^^

희선 2022-01-19 02:00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올랜도는 삼백년이나 살았군요 시간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하다니... 버지니아 울프는 이 소설을 즐겁게 쓴 것 같네요 자신도 올랜도처럼 되고 싶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결혼도 그때와는 많이 달랐겠습니다 이것도 버지니아 울프가 바라는 거였겠네요


희선

Falstaff 2022-01-19 06:23   좋아요 7 | URL
올랜도, 아직 살아 있어요. 어제 신도림역 3번 출구에서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민 온 건 아니고 잠깐 다니러 왔다고 BBC에서 얘기했던 게 기억나기도 하고요. 영어방송이라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stella.K 2022-01-19 15:51   좋아요 4 | URL
골드문트님 또 취기가 오르셨나 봅니다. ㅋㅋ

희선 2022-01-21 00:02   좋아요 2 | URL
올랜도가 아직 살아 있군요 지금은 여성일지 남성일지... 여성으로 여성이 살기에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2-01-22 16:22   좋아요 1 | URL
??? ㅎㅎ

바람돌이 2022-01-22 16:25   좋아요 3 | URL
여성이든 남성이든 한 인간으로서 소중하고, 결혼이든 뭐든 그 자신의 고유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하는데 삶의 기쁨이 깃들수 있다는 점에서 올랜도는 지금의 모든 인간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 골드문트님이 비록 취기에 하신 말씀이지만 바로 이런 뜻이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맞죠? ㅎㅎ

다락방 2022-01-19 08:28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오, 울프 일기와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된다니, 좋은 팁 얻어갑니다. 일단 그러면 울프 일기를 사야겠네요. 이런 참...

바람돌이 2022-01-22 16:12   좋아요 3 | URL
올랜도를 읽을 때 너무 심각해지지 않도록 어느정도 지침을 주더라구요. 이번에 저도 처음 시도해봤는데 앞으로 울프 책 읽을 때마다 울프 일기와 함께 읽어야기 생각하게 되었어요. 울프 일기가 또 벽돌책이라 한꺼번에 읽기에는 또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또 일기다 보니까 특정한 흐름이 없어서 리듬을 타기도 어려운데 이렇게 읽으니 울프 책도 이해가 잘되고, 울프 일기도 잘 읽어지고 1석2조라죠. ^^

책읽는나무 2022-01-19 08:52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저도 꿀팁이에요^^
예전에 울프 책 읽다가 어려워 포기했었는데 전작하려고 일단 조금씩 책 사다 놓기만 하고 있거든요. 올랜도 책 보니까 솔 책인 것 같아 반가웠어요. 저도 솔 출판사로 깔맞춤 결정 내려 현재 두 권 모셔 놓았습니다ㅋㅋㅋ
그런데 울프 일기도 미리 읽어야 하는군요??
아........

바람돌이 2022-01-22 16:15   좋아요 4 | URL
아 나무님 울프일기 사신 페이퍼 봤어요. 죄송해요. 벽돌책이건 얘기 안해서....ㅠ.ㅠ
울프일기는 한번에 완독은 못하겠더라구요. 울프 연구자도 아닌 우리가 그냥 쭉 읽어내려가기에는 재미가 없어서... 어쨌든 일기잖아요. ㅎㅎ 울프 책과 함게 그 책이 출간된 연도 찾아 전후로 읽어주는 방법으로 읽으려고 하고 있어요. ^^ 아 그리고 제 경우엔 울프 일기를 미리 읽는 것 보다는 책을 읽고 후에 읽는게 더 좋았던거 같아요.
저도 솔출판사 깔맞춤으로 사고 있는데 지금 6권 샀어요. 다음에 출항 읽으려고 준비 중.... 여기서 고민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등대로를 사서 시리즈를 완성하느냐 마느냐라죠. 물론 등대로에서 울프에게 혹 반한 저이니 아마 사겠죠? ㅎㅎ

미미 2022-01-19 09:39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저 울프일기는 조금 읽다 말았는데 이렇게 도움이 되는 줄 알았으면 <올랜도>읽을 때 같이 볼껄 그랬어요! 바람돌이님 이 글, <올랜도>를 앞으로 읽을 분들에게 훌륭한 안내자가 되어줄 듯 합니다. 다시 감동이 살아나면서 한 번 더 읽은 기분이예요 ^^ <올랜도>도 재독하고 싶어졌어요!!

바람돌이 2022-01-22 16:17   좋아요 3 | URL
울프 책은 계속 재독하고 싶은 기분이 들어요. 저는 댈러웨이 부인이랑 자기만의 방은 리뷰를 못썼는데 그 이유가 다시 읽어야 뭔가 울프를 제대로 읽은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막 들더라구요. ㅎㅎ 나중에 울프 다른 작품들 다 읽고 나면 저 책들도 다시 읽고 울프 일기랑도 같이 읽고 리뷰에 도전할래요. ^^

단발머리 2022-01-19 11: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에 울프 전집읽기 계획 세우고 딱 두 권 읽었거든요. 아.... <올랜도> 읽을 때 일기도 같이 읽었어야 하는 것을.
바람돌이님 계속 읽으신다고 하시니 저도 슬쩍 다시 계획세워볼까 합니다.

바람돌이 2022-01-22 16:18   좋아요 4 | URL
저도 작년에 전집읽기 계획 세웠지만 몇권 못읽었습니다. 뭐 그러면 어때요. 올해 또 도전하면 되죠. 그쵸? ㅎㅎ
단발머리님의 올랜도 리뷰 마음 설레며 기다리겠습니다. ^^

stella.K 2022-01-19 15:5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옷 때문에 불타죽다니! 그런 일이 있었군요.
까마득히 오래 전에 <댈러웨이 부인> 읽다 포기한 적이 있는데
<올랜도>는 정말 흥미롭네요. 울프의 상상력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영화도 함 봐야겠군요.^^

바람돌이 2022-01-22 16:20   좋아요 4 | URL
저 드레스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싶습니다. 치마를 너무 부풀리다보니 안에 들어가는 심이 장난 아니게 강한 거라서 말이죠. ㅎㅎ 댈러웨이 부인보다는 저는 올랜도가 읽기 좀 나았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인물이 좀 댈러웨이 부인보다는 흥미롭다고 할까요? 저도 댈러웨이 부인 보면서는 부인이 너무나도 맹숭맹숭하여 좀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그레이스 2022-01-19 19: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환타지같은 이야기 !
21년에 읽었는데 굉장히 오래된것 같은 건 소설내용때문일까요?

바람돌이 2022-01-22 16:22   좋아요 3 | URL
진짜 환타지인데 또 앞뒤 선후관계나 개연성 같은건 거의 밥말아먹은 것 같아서 논리에 익숙한 저같은 사람에겐 좀 그게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럼으로써 환타지성은 더 강화된 것 같다는 생가도 들고요. 작년에 읽었는데 오래 된 것 같은 이유는 저는 지금 막 읽었으므로 내년에 답해드릴게요. ^^

mini74 2022-02-10 18: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잘 쓰셔서 부러웠던 글 ㅠㅠ 2관왕 축하드려요 *^^*

바람돌이 2022-02-12 01:04   좋아요 1 | URL
오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새파랑 2022-02-10 18: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우 2관왕 울프네요 ㅋ 축하드립니다. 방학은 아직 안 끝났습니다~!!

바람돌이 2022-02-12 01:0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2월 개학했다가 이제 다시 방학입니다. 한동안 엄청나게 바빴습니다. ㅎㅎ 문제는 다음주는 또 출근이라는.... 하지만 학생이 없는 학교 출근은 천국입니다. ^^

그레이스 2022-02-10 19: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2관왕~~!

바람돌이 2022-02-12 01:0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울프여사가 참 저에게 많은 것을 주네요. ^^

희선 2022-02-12 0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축하합니다 즐겁게 보시고 쓰신 글이어서 기쁘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2-02-12 01:06   좋아요 1 | URL
버지니아 울프,김초엽 둘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라 더 기쁜게 맞는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

책읽는나무 2022-02-12 0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바람돌이님 축하드려요^^
스콧님의 사울 레이터 책이랑 이어 바람돌이님의 요 페이퍼를 읽고 구매한 울프 일기였었는데....
역시 나의 안목!!ㅋㅋㅋ
제 구매로 이어지게 만든 페이퍼가 당선되니 기쁩니다^^

바람돌이 2022-02-13 16:2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스콧님이 소개한 사울 레이터 책은 저도 이번달에 구매하려고 대기중이에요. 사진이 아무리 봐도 진짜 멋지더라구요. 나무님의 안목이야 항상 옳습니다. ^^